'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0.01.08 전설의 스파이 김동석 (14)
  2. 2009.12.29 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9)

전설의 스파이 김동석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1.08 22:55

 

 전설의 스파이 김동석


  혹시 첩보영화 좋아하세요? 상상을 초월하는 최첨단 무기를 갖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첩보영화의 주인공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동경의 대상입니다. 특히 첩보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언제나 멋진 턱시도 혹은 슈트를 차려입고 값비싼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리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적이 등장해도, 언제나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 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만 <나폴레옹 솔로>에서 최근의 <트리플 X>까지 대부분 첩보영화 주인공들의 모습 역시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첩보원들의 모습은 영화에서 묘사된, 화려하기까지 한 ‘영화 속 첩보원’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첩보영화의 대표작 007시리즈] 

 

   첩보원, 간첩, 스파이(Spy) 등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숨겨진 영웅입니다. 첩보원이라는 임무 특성으로 인해 이들의 활약상이 일반에 알려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현재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숨겨진 영웅’ 중에는 ‘6·25전쟁의 4대 영웅’으로 칭송되는 고(故) 김동석 예비역 대령이 있습니다. 지난 해 3월 26일, 향년 86세로 별세한 고 김동석 애국지사는 우리나라 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6·25전쟁의 영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인은 철저한 비밀을 요구하는 첩보부대의 일원으로 6·25전쟁 기간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전공을 과시하거나 결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재평가가 없었다면 아마도 고인의 활약상은 영원히 베일에 감추어 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인에 대한 재평가는 지난 2003년 미국 정부가 정전협정(1953.7.27) 체결 50주년을 앞두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6·25전쟁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고인의 놀라운 활약에 놀란 미국 정부는 고인을 맥아더,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백선엽 육군 대장과 함께 6·25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5월 7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미 제2보병사단 캠프 레드 클라우드 내 사단 전쟁박물관에 ’김동석 영웅실’이 만들어 졌습니다.

                           [북공작원의 대부 김동석 대령 회고록 ‘This Man']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고인의 회고록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중견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는 것입니다.


 

                     [고 김동석 대령과 딸 가수 진미령씨(회록록 출판 기념회)]


  반대로 말해 만약 회고록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면 6·25전쟁과 북파공작활동에 얽힌 고인의 활약상은 영원히 베일에 가려져있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6·25전쟁 기간 중 고 김동석 대령의 활약상을 살펴볼까요? 육사 8기 출신인 고인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여해 북한의 박성철이 지휘한 인민군 15사단을 전멸시킨 용맹한 지휘관이었습니다. 이 전공으로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으며 6·25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50년 9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이후 고인은 육군정보부대(HID)의 정보장교로 6·25전쟁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당시 결정적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포로 심문과정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인민군 장교를 설득해 반격작전 뿐만 아니라 평양탈환에 필요한 결정적 정보를 얻어 냈다는 것입니다. 고인은 최초로 서울에 진주(進駐)한 인민군 105전차여단 1대대장 김 영 소좌가 포로로 잡히자 그를 설득해 결정적 정보를 얻어냈고 이 정보는 국군이 평양을 탈환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고인은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었습니다. 휴전협정으로 인해 전선에서의 직접적인 충돌은 거의 중단되었지만 적진 후방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고 적을 교란하는 첩보작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북파공작원]


  휴전 이후에도 동해안 일대에서 북파공작업무를 진두지휘한 고인은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1954년 2월 강원도 통천 부근 원산만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생포, 납치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해 낸 것입니다. 만약 정보부대원들의 고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용기, 조국 통일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이 임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인은 적군에게는 공포를, 아군에게는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 됩니다. 정보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공을 세운 고 김동석 대령은 1961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하고 정든 군복을 벗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남다른 능력을 갖춘 그를 다시 불렀습니다.


  민간인 신분이 되었지만 국가에 대한 고인의 충성은 한 치 흔들림이 없었고 삼척시장을 시작으로 강릉시장, 속초시장, 목포시장, 수원시장, 함경북도지사 등 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공직생활을 끝마친 이후에도 대한유도회 부회장(유도8단)과 한·미 친선골프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고 김동석 대령은 1923년 8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 기슭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독립 전에는 중국 국민당 애국의용대 부대장과 백범 김구선생 경호원 등을 역임한 독립투사이기도 합니다. 물론 고 김동석 대령은 과거 독립활동, 국군 첩보부대장교로서의 활약 등을 고인의 회고록이 출판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지인들이 많을 정도로 과묵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공적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부하들의 공적을 더욱 빛나게 만든 영웅 고 김동석 대령. 고인은 지난 해 3월 26일 오후, 향년 86세로 별세했고 고인의 유해는 3일 뒤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우리보다도 오히려 미국 정부에 의해 6·25전쟁 4대 영웅으로 추대된 고 김동석 대령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은 올해,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영웅들과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이 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잊혀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거짓 영웅이 판치는 지금, 진정한 영웅을 찾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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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만중 2010.01.22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고 진미령 가수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특이하네요.
    60주년을 맞이하여 17연대가 대승을 거둔 화령장전투기념행사시 그 유족(진미령씨 포함)이 초청되었으면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2. Koreanwar60 2010.01.22 15: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인것 같습니다.

  3. 김동현 2011.05.17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김동석님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저인데.. 오늘 놀러와에서 전유성씨가 나오셨거든요. 아내되시는 분이 진미령씨라길래 인터넷 찾다가 그녀의 아버지도 알게되었는데 이렇게 유명하신 분인줄 몰랐네요. 많은걸 느끼고 갑니다.

  4. Construction Jobs in California 2012.02.06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전공으로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으며 6·25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50년 9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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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초반글이 좀 장황합니다. 독자가 식상할 듯..독자에게 계몽적으로 설명하지 마시고,
    간단명료하면서 좀 문학적으로 썼으면..요새 독자들 똑똑해요!
    2.블라디보토크로 끌려가던 박정희, 정일권을 탈출시켰다는 글도 있던데..사실?이면 누락?
    3.북파공작원/첩보원들 모두 찾아내 합당한 대가/보상과 예우를 하셔야지요!
    실미도나 TV를 보면 그들에 대한 안스러움과 국가에 대한 실망감마저..
    광주사태 몇천 몇억 보상금 환수해 그들에게 줍시다!

  12. låna 2013.09.0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리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적이 등장해도, 언제나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 냅니다.

  13. car leasing 2013.10.24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대부분 첩보영화 주인공들의 모습 역시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14. 히유 2013.12.30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파 백선엽이랑 고인을 같은 부류에 넣으면 안될것같습니다ㅠ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ㅠㅠ

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09.12.29 15:46

“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언론인 신화봉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신화봉 기자(외국명 Bill Shin)는 한국인이면서 AP통신기자 자격을 갖고 6·25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입니다. 다른 외국 종군기자들과 달리 인천상륙작전을 특종하면서도 한국인이 겪는 한국인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한국의 입장을 대변한 기자이기도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부 대변인을 맡기려고 했을 정도로 신화봉 기자는 신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을 겪고 나서 쓴 「휴전선 열리는 날」이라는 책은 6·25전쟁을 생생하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특종을 많이 하여 ‘스쿠프(scoop) 신’으로 불렸던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1950년 9월 15일 부산.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의 한국 특파원이던 신화봉 기자는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었다. 어서 소식을 동경 AP지국에 전해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외국 특파원들이 공동으로 쓰던 미군 보도과로 달려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종의 생명은 보안이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환수가 나왔다. “동경 2201 또는 2202번 대 주시오.” 동경의 랜돌프 기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살아 있나?” 평상시라면 그의 농담을 넉살 좋게 받아주었겠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중대 기사다. 인천이다. 빨리해.”신기자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기사를 읽어댔다. “유엔군이 오늘 아침 인천 월미도에 상륙했다…”로 시작하는 AP통신의 이 기사는 6·25전쟁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였던 인천상륙작전을 처음으로 보도한 특종이었다. 오후 1시50분의 일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공식 발표는 그로부터 수시간 뒤인 그날 밤에 있었다.


       <월미도에 상륙하는 한·미 해병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의 나이 32살, 신출내기 ‘한국인’ 기자 신화봉은 그렇게 해서 입사 7개월 만에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한국인 기자가 수 많은 외국 기자들을 제치고 이뤄낸, 의미 있는 특종이었다. 


   언론인 신화봉(미국명 Bill Shin)은 1918년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에서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다녔고 해방 후에는 38선을 넘어 월남, 서울에서 삶을 꾸렸다. 대학 시절부터 유창했던 영어 실력 덕에 미군의 통역일을 도우며 인연을 쌓다가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헤이스팅스 대학 졸업반에 편입했고, 1949년 말에는 네브라스카 주립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의 안정된 일자리를 권유하는 주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집에 불이 났을 때 자기만 살려고 도망쳤다가, 가족과 이웃이 불을 다 끈 뒤에 돌아와서 ‘내가 이 집의 주인이노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소. 나는 내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있으니 더욱 더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소.” 그렇게 고국에 돌아와 1950년 2월 AP통신 서울특파원 무어 기자의 추천으로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950년 6월 25일. 운명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서울엔 비가 내렸다고 한다. 휴일 고즈넉한 분위기의 거리에 퍼지던 얇은 빗소리는 한층 여유를 뿜어냈다.

  신화봉은 그날 이삿짐을 꾸리다 오전 11시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서울 상공에 못보던 항공기가 북을 향해 바삐 날아가고 있었다. 전쟁이었다. 이날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했다. 그는 이날부터 1953년 7월 27일의 휴전성립 후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그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미군 C-54 수송기로 비행중인 종군기자들, 맨뒷줄 맨 오른쪽이 

신화봉 기자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인천상륙작전 특종 이후 ‘스쿠프(특종) 신’으로 불렸다. 일부에서는 당시 AP통신의 인천상륙작전 보도가 작전 시행(15일) 전인 13일에 이뤄진 ‘위험한’ 특종이었다는 식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가름할 중대한 작전을 미리 보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종군(從軍)기자의 욕심이 앞선다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시 상황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면 이적행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인천으로 향하던 함정에 타지 못했던 그는 부산에서 당일 아침 모든 인맥을 동원해 상륙 성공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한 뒤 한국군을 설득, 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정일권 소장의 발표 형식을 빌어 역사적인 1보를 타전했다. 이튿날인 9월 16일자 동경발 AP기사에도 이 같은 사실이 언급돼 있다. “인천상륙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AP통신 특파원 빌 신은 오늘(16일)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을 금지당했다… 신은 어제(15일) 정일권 소장이 인천상륙을 발표했을 때 그곳에 있었던 단 한 사람의 국제 통신사 특파원이다.”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이 금지 되었다는 1950년 9월 16일 AP통신 기사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이후에도 1952년 5월 7일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난동 사건(포로수용소의 미군 사령관이 공산군 포로의 포로가 됐다), 1953년 5월 휴전협상을 벌이던 유엔군측이 대폭 양보를 담은 새로운 극비 제안을 했다는 사실 등을 여러 차례 특종 보도했다.


                 <1952년 6월 거제도 76포소수용소의 폭로 폭동을 진압하는 유엔군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3년 3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중앙)에게 휴전 회담 전망을 묻고 있는 신화봉 기자,

     왼쪽 민간복은 신태영 구방장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7년 AP통신을 떠난 뒤에도 언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세계통신사, 미군 전문지 성조에서 일했고, 6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시사통신사의 동경지국장을 지내고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사평론’을 발행하는 등 언론 외길을 걸었다. 1980년 말 미국으로 이주해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02년 10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나이 8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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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IPV Mini 2014.11.27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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