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0.08.19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13)
  2. 2010.08.12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24)
  3. 2010.08.09 김일성이 펼친 논리적 오류 (27)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9 09:16


  불과 3명의 적병을 사살하고 서울을 탈환한 제1 보병사단  오늘날에도 국토방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기간에 치러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1950년 9·28 서울 수복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비해 51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제2차 서울 수복작전은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50년 9월의 1차 수복작전이 수만 명에 달하는 적의 격렬한 저항을 극복한 후 이뤄졌던 데 반해, 2차 수복작전은 좀 싱겁게 끝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1951년 3월 14·15일에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선봉인 제15 보병연대가 서울에 입성한 이후 적의 경미한 저항만을 받았을 뿐 이렇다 할 치열한 교전없이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서울을 함락한 이후 중앙청 앞에서 승리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 
  이 작전은 미 제8군이 3월 7일부터 발동한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인데 당시 제8군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이 작전을 통해 중부의 미 제9 군단 예하 25 보병사단이 양수리와 팔당 부근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해 서울 동측을 위협하는 한편 한강 남안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미 제1 군단( 한국군 제1 보병사단·미 제3 보병사단)을 투입시켜 큰 피해 없이 서울을 탈환하려 했습니다.
  1951년 3월 7일 전 전선에서 UN군의 리퍼 작전이 개시되자 중·조연합사령관 펑더화이는 미 제25 보병사단의 도하와 중동부 지역에서 감행된 미 제10 군단과 한국군 제1 군단의 공격에 대해 지연전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펑더화이. 리퍼 작전이 개시될 시점에서 펑더화이는 현재 극심하게 소모된 전력으로 반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고 신속한 철수 지시를 하달합니다.
  당시 베이징 방문 이후 막 전선 사령부에 복귀한 펑더화이는 3월 9일 한강 남안 진지에 있던 제38군의 1개 보병사단과 제50군의 1개 보병사단에 한강 북쪽으로 도하에 성공한 미 제25 보병사단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3월 11일에는 베이징의 저우언라이에게 “우리 군은 그 동안의 전투로 전력이 너무 많이 손실되었습니다. 따라서 재편성할 시간을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포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후미 부대로 지연방어를 펼치면서 일선의 유생역량을 보존하고 적 주력을 흡수해 38선까지 진출하도록 합니다.”는 내용의 작전 의도를 밝히는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그의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극도로 혹심한 손실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아! 6.25 방문자 여러분 중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그와 테란을 통해 "인해전술"과 "화해전술"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저그하면 빠른 확장과 부화장, 3마리씩 생산되는 라바를 통한 압도적인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 중국 인민지원군을 저그족으로 보면 되는 셈이죠.
  반면 테란은 대량 생산능력 및 보병 전력이 취약하지만 대신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크라이트 공성전차와 토르, 전투 순양함 등으로 대표되는 '화해전술'을 구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테란이 UN군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1951년 1월 말에서 2월에 걸쳐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부족한 병력의 열세를 강력한 화력으로 보완하는 '화해전술( 火海戰術 )'을 구사했습니다.
  안 그래도 추위와 적시에 보급을 받지 못해 허덕이던 중국 인민지원군은 인해전술을 감행할 때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포탄과 기관총탄, 폭격으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서울을 함락시킨 후 한강 남쪽까지 진출하는 과정까지 누적된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연히 UN군의 리퍼 작전에 맞서 과거와 같은 대 반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무리였던 셈이었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철수하여 후방에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1951년 1월 말부터 감행된 UN군의 맹렬한 공격은 오랜 국공내전 및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인민지원군의 정예병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펑더화이로서는 중국에서 추가적으로 증원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재 전선에 배치된 전력만으로 싸워야했던 한계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죠.
  이에 따라 서울을 방어하던 북한군 제47 보병사단과 중국 인민지원군 제50군에는 3월 13일, 도시를 포기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들은 3월 14일까지 서울에서 완전 철수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3월 14일 제15 보병연대장 김안일 대령에게 수색대를 투입시켜 한강을 도하한 다음 중앙청까지 진출해 적정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미 제3 보병사단과 제1 보병사단 15 보병연대는 치열한 시가전을 치를 것을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죠. 솔직히 위 게임장면을 봐도 알 수 있듯 일선 군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피를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수색대의 지휘를 맡은 제15 보병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장 이석원 중위는 소대를 이끌고 마포 쪽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역을 거쳐 중앙청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이 중앙청까지 행군하는 동안 적의 저항은 하나도 없었고 사실상의 무혈입성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 다가갔을 무렵에야 처음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하는 적을 발견하니 사실상 싱겁게 서울에 진입해 작전을 수행한 셈이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서 적 기관총팀의 저항을 받았을 뿐 사실상 서울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석원 중위는 별다른 문제없이 전방 고착견제와 측방 타격조 우회 전술을 이용해 적 기관총팀 3명을 사살하고 중앙청에 입성했습니다.
  "뭐야, 이 녀석들. 전부 도망간 것 아냐?"
  이석원 중위와 수색대원들은 문자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좀더 수색한 결과 서울 시내에 적이 철수하고 없다는 정황을 확인한 후 저녁 무렵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연대 본부에 복귀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최종 보고를 접한 김안일 대령은 3월 15일, 예하 3개 대대 전체를 서울 시내로 진출시켰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습니다.
  무혈입성하기는 했지만 이미 서울은 치열한 격전 끝에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죠. 사진은 전화로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모습입니다.
  1차 수복 당시에는 해병대가 그 몫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1 보병사단이 그 역할을 수행한 셈이었죠.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치열한 격전 끝에 탈환했던 평양과 달리 너무나도 손쉽게 무혈입성한 서울 탈환으로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기에 장병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요.
  펑더화이의 ‘서울 자진철수’ 결정 및 제47 보병사단이 서울에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중국 측에 격하게 항의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의견이었던 탓에 저우언라이에 의해 간단히 묵살당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1951년 5월 중순까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제1 보병사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서울을 완전 수복한 제1 보병사단의 활약은 오늘날에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제1 보병사단이 탈환한 서울은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의 맹렬한 대공세에도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휴전을 맞이하며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굳건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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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8.19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준기님// 감사합니다.

    제2차 서울탈환작전은 중공군의 신속한 퇴각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작전을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이번 탈환작전으로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전세에 중요한 국면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의의를 둬야겠죠

  2. 강현구 2010.08.2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Ⅱ : 자유의 날개 화면이네요. 울트라리스크와 히드라리스크 대군에게 쫓기는 테란군이라....

    딱 적절한 대조 같습니다.

  3. 김준기 2010.09.15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 님

    내가 김준기인데 위의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요.

    우리 아빠가 내이름으로 열어놓은 블로그인데
    거기에 링크까지 걸었군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양심적으로 실고 싶으면 삭제하세요..

  4. 박소영 2010.10.02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지상군 페스티벌 2010에서도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니 서울에서 당장 내려가 보고 싶네요 ^^

  5. 코튼 맨 2010.10.02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국방부 블로그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안타까워요 ㅠ

  6. 리산 2011.06.07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1년 3월 9일경 한강도하에 성공한 미25사단이
    실제로 어디로 도하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일부 책에는 현재의 양수리(두물머리공원),
    전적비는 조안면 쪽에..

    어떤 책에는 덕소쪽이라고 하는데,

    3군데 모두 도하를 한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면 부탁드립니다.

  7. 용뿔 2011.06.2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소하지만, 오타지적입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에서 우뢰는 우레로 정정합니다.우레는 순수 우리말로 천둥이라는 의미입니다.

  8. 이민하 2012.03.25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뺏기고 뺏기는 ..북한 남한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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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박성현 2012.09.0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 상무대 보병학교 교육단 교도대대 화기중대 상병 박성현 입니다.

    본 포스트를 읽으면서, 먼저 일반적으로 20대들에게 친숙한 스타크래프트2를 인용하며 포스트를 해 주셔서 더욱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포스트로 제 1보병사단의 활약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자신부터라도 남은 군생활 동안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복무하겠습니다.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21sunghyun@naver.com

  13. Get more info about Luminix Power 2014.02.13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2 09:02

  6·25 전쟁은 역대의 그 어떤 전쟁 못잖게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대개 전쟁영웅들의 희비는 참으로 극과 극 그 자체인데 이 중에서도 뛰어난 전공에도 불구하고 가장 불운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 제8군사령관 월톤 워커 중장입니다.
  그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작전을 지도했음에도 중공군 개입 후 38선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트럭과 충돌하여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워커 중장은 군사령관으로서 숱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매튜 리지웨이·밴플리트 장군만큼 영예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워커 중장은 영광보다 오히려 불운·비극으로 점철되다시피한 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월톤 워커 중장은 여러분도 잘 아는 조지 스미스 패튼 대장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패튼 대장은 제3군 사령관 시절 특유의 쾌속 기동전을 통해 북프랑스와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맹장이었고 특히 과감무쌍한 기동작전을 선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특유의 과감한 고속 기동전을 통해 독일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3군 사령관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중장. 그의 과감한 지휘 기질은 부하였던 워커 중장이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러한 상관의 지휘를 받은 워커 중장은 곧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이동합니다.
  물론 전쟁 초반은 그에게 있어 비극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워커 중장이 한반도 전선의 지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받고 전황 파악을 위해 한국에 온 첫날인 1950년 7월 8일 미 제24 보병사단 예하 34 보병연대장 로버트 마틴 대령이 천안전투에서 북한군 T-34/85의 일격을 받아 전사함과 동시에 부대가 와해돼 천안이 함락되었고 7월 13일, 대구시에 미 제8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전선을 지도했지만 아직까지 전황은 북한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7월 20일에는 전략적 요충지인 대전이 함락됨은 물론 사단장 딘 소장까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미 제24 보병사단장 딘 소장과 워커 중장. 딘 소장은 최선을 다해 대전을 사수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던 북한군의 노련한 작전으로 결국 패전지장이 됨은 물론 주민의 밀고로 포로가 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함은 물론 새로운 세계의 맹주로서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군은 그 어떠한 전쟁에서도 당해보지 못했던 수모를 겪으며 패퇴를 거듭, 결국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에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이 때의 망신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던 맥아더 원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미 제8군 사령부를 전격 방문, 워커 중장에게 “됭케르크·바탄 같은 후퇴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오”라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도대체 본토의 증원군은 언제 오는 겁니까?" 좌측부터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콜린스 대장, 존 처치 준장. 워커 중장은 개전 초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충분치 못했던 취약점까지 극복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워커 중장에게는 예비 전력이 충분치 못해 보다 융통성있는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죠.
  특히 그를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전선에 투입된 미군이 대부분 축소 편제된 일본 주둔 부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단은 3개 보병연대로 편성되어 본토 주둔군과 편제상 차이는 없었지만 각 연대는 겨우 2개 대대만 완편되어 있어 사단 전투력은 사실상 2개 연대 수준이었고, 포병과 전차부대도 사정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오늘날의 주한 미군 제2 보병사단은 규모가 많이 감축되었어도 여전히 한국군 1개 사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군의 예상을 깬 북한군의 빠른 남진 속도는 워커 중장을 크게 당혹시켰습니다.
  결국 워커 중장은 독소전 당시 과감한 기동작전을 선보인 소련군에게 훈련받은 북한군의 위력에 경악하며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력들을 부산항에 상륙하는 즉시 바로 전선에 배치시키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죠.
  상황이 이러하니 효과적인 방어 진영 배치나 예비부대의 확보 따위는 한낯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워커 중장은 최악의 전장 환경에서 ‘가난하면서 자식 많은 흥부’가 한 끼 식사를 때워 나가듯 전선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미 제1 기병사단. 하지만 이들은 상륙과 동시에 곧바로 전선으로 이동해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7월 말부터 시작된 미 본토증원 병력으로 전선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 듯했지만 아직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부족했습니다.

  바로 북한군의 대대적인 정면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워커 중장은 즉각 미군 1개 보병연대를 차출해 전략 예비대로 북한군에게 돌파된 지역마다 마치 응급환자에게 긴급 수혈하듯 다부동과 영산돌출부와 같은 ‘전략적 공백지대’를 메워 나갔습니다. 
  여기에 한국군은 아직
 군단조차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뿐만 아니라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도를 수행하는 등 워커 중장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8군 사령관으로 모자라 한국군의 사단들까지 지휘해야 하니 자연스레 지휘부담도 커지게 되었고 1944년 유럽전선에서 패튼 중장의 휘하로 용맹을 떨쳤던 워커 중장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촉박한 한반도에서 졸지에 '우리에 갇힌 맹수'꼴이 되며 지쳐갔습니다.
  캠프 케이시에서 담소 중인 미 제2 보병사단장 마이클.S.터커 소장과 한국군 제5 기갑여단장 나상웅 준장. 오늘날 한국군은 야전군과 군단, 독립 기갑여단 등을 갖춘 체계화된 군대로 거듭났지만 6·25 초반에는 그야말로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군단급 작전은 미군의 지휘를 받아가며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미군의 고초가 컸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버티며 지탱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마침내 총반격작전이 감행되자 워커 중장은 오랜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닥칠 영광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지만 작전의 하이라이트인 서울 점령의 영광은 제10 군단장 알몬드 소장에게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고초를 겪어가며 전선을 유지하고 총반격작전까지 성공시킨 대가는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전선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광범위해진 전선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알몬드 소장과 지휘권을 나누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명분은 좋았지만 아무런 영광도 누리지 못한 워커 중장에게 ‘치욕'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나마 북진작전에서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평양 점령으로 겨우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곧이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전면적인 개입은 악운이자 비극의 서곡으로 작용했습니다.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은 경무장한 보병이 주력이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의 작전에 말려들어 문자 그대로 판돈을 완전히 날려버렸고 이는 오늘날까지 '인디언 헤드'의 치욕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유명한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 "인디언 헤드"가 궤멸적 타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군 제2 군단이 완전히 박살나 미8군 상황판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개전 이래 당해왔던 패배 중 이렇게 참담한 경우가 또 없었습니다. 
  특히 최대의 전리품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던 평양을 포기하고 38선 이남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며 워커 중장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까지 치욕적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워커 중장의 불운과 비극으로 점철된 뫼비우스의 띠는 1950년 12월 23일, 한국군 트럭과의 충돌 사고로 종결됐습니다. 
  평소 자동차 스피드광( 狂, Mania )이었던 워커 중장은 의정부 북쪽 덕정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사망한 것이죠.  미국 정부는 워커의 중장 전공을 기려 대장으로 특진시켰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이런 조치는 이미 한 발 늦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워커 대장의 묘지
  하지만 워커 대장의 생전 활약으로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는 더욱 굳건하게 다져진 만큼 우리는 그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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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ogo Design Contest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상웅 여단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3사 16기로 임관해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렇게 여단장까지 진급하신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3. Write My Essay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사가 그런 것이죠. 전쟁영웅은 대단히 허망한 법입니다

  4. chat 2011.10.30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どのような有用な記事は本当に再びこの時間と時間に戻って来るということだ。おかげで..

  5. Memphis Jobs 2011.11.0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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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web hosting mexico 2012.04.11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올려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답을 안주셨잖아요 ㅠ
    발간 추카드려요~ 일빠로 사볼께요 ㅋㅋ

  7. trina solar 2012.04.25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J'ai apprécié la lecture de votre blog Nice. Je vois que vous offre info de prix. Félicitations, et de garder annonce à n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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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펼친 논리적 오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09 08:00
  전쟁 발발 직전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PPsh 41인 49년식 기관단총의 초도 생산분 출고 기념사진에 찍힌 김일성.
  그는 치밀한 준비를 갖춘 남침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04시 30분, 작전명 "폭풍"을 필두로 감행된 북한군의 무력남침 기도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던 낙동강 전선의 후유증으로 인해 북한군은 지리멸렬 패주를 거듭하다 간신히 중공군의 개입과 지원으로 구사일생으로 겨우 구출됐지만 김일성을 비롯한 지휘부 내부에서는 그 동안의 패전으로 상당한 군사·정치적인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평양을 탈환한 것은 좋았지만 연이은 공세의 실패로 인해 중공군조차 혹심한 인명피해를 입고 전선이 오늘날의 휴전선 일대에서 고착되는 상황에 이르자 그 혼란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같은 내부적 혼란 수습을 위해 김일성은 1950년 12월 만포 북방 3km에 위치한 별오리에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를 소집합니다.

  속칭 '북한의 별오리 회의'라 불린 이 정기대회는 6월 25일, 남침 이후 6개월간의 작전 실패 요인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당면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의 목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김일성이 6·25 전쟁의 남침 작전 실패 책임을 김책·전우·김무정·김일·김열 등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게 떠넘겨질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당 내부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군사·정치적 혼란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죠.
  흔히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이 할 소린 아니잖아?!'는 이런 때 써먹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개전 초기 북한 제2 군단의 춘천 전역을 시작으로 초창기 작전에서의 패인 등 남침 실패의 원인들을 신랄하게 지적하며 비판했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에 서명하기 직전의 김일성. 외모에서 오는 편견과 달리 그의 치밀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판은 단순한 감정적이면서도
즉흥적인 것이 아닌 꽤 세밀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김일성은 남침 이후 6개월간의 과정을 3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즉, 제1 단계에서는 북한군의 진격, 제2 단계는 북한군의 후퇴, 제3 단계를 북한군과 중국군의 재반격 시기 등으로 각각 설정한 것이죠.
   이어 각 시기에 따라 작전 실패 요인을 간부들의 지휘 결함을 비롯한 병참지원·부대규율 취약·패전의식 팽배, 그리고 유격투쟁 미약 등 무려 8가지로 분석해 지적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김일성은 개전 초기 속전속결로 부산까지 진격하는 작전에서의 주 실패 원인을 간부들의 지휘 결함으로 야기됐다고 비판하며 무모하게 작전을 추진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김일성은 우선 북한의 남침계획인 소위 ‘선제타격작전계획’은 미군이 참전하기 이전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한국군 제 6 보병사단의 선전과 제 8 보병사단의 부대 건재 유지 퇴각, 그리고 국방군(
북한 측에서 한국군을 지칭한 용어)의 유생역량들이 무사히 전투력을 보존한 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고 미군이 조기에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할 예비부대가 사전에 확보되지 않은 것 등 북한군의 패전 원인은 간부들의 지휘 결함에 그 원인이 있음을 강조하며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저는 그저 "놀고 있군! 이것이야 말로 한편의 만담이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이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일성 본인은 사전에 이를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냐? 는 의문이 들 법한 비판이라 할 수 있죠.
  개전 초기 북한군은 장비가 열악한 한국군을 맹렬히 몰아부치며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봤어!" 개전 초 열악한 장비와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며 분투했고 김일성은 사전에 충분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김일성 본인부터 승리에 도취돼 이런 변수가 발생한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춘천 패전의 책임을 물어 제2 군단장 김광협 중장과 제2 보병사단장 리청송 소장을 해임하는 등 노발대발은 했어도 어찌되었든 서부 전선에서 거둔 발군의 전공이 너무나도 값졌으니까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후 오산 죽미령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와의 교전과 더불어 연기군 전의면에서 벌어진 미군 M24 채피 경전차들과의 조우전, 그리고 치열했던 대전 전투 등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이 과정에서 일선의 북한군 사단장 및 참모들이 미군의 압도적으로 우수한 포병과 항공전력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그저 전투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지형과 야간을 이용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금쪽같은 전력인 전차·병력 등이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며 이를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우리를 고려 안한 것이 실수야!" 김일성은 미군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한반도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지시한 것이 누구인지 뻔한 상태에서 김일성의 비판은 논리적인 오류가 분명했죠.
  더욱이 당시 낙동강까지 진격한 북한군은 병참선 신장으로 인한 보급품 부족과 그 동안 누적된 전투 손실로 이미 공격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무모한 공세가 불가능했음에도 무리한 공격을 지시한 핵심이 이를 비판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황당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무모한 김일성의 작전 지시와 전장 지휘는 크나큰 파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자면 우리는 절대 저와 같은 사례가 발생해서는 안되겠죠.
  결국 김일성의 무모한 공격지시로 인해 북한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예 전력을 대부분 소진한 채 38도선 이북으로 무질서하게 분산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 대회는 김일성이 제 스스로 패전 책임을 휘하 장성 및 간부들에게 전가하는 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고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그저 쓴웃음을 짓게 하는 몇 안되는 해프닝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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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종현 2012.08.25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결!
    25사단 217포병대대의 일병 안종현 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게 당연한 거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자신의 상대인 우리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섣불리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해 싸우기도 전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전공작을 펼쳐놓았습니다. 게다가 전투에 패했을 때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동안 누려왔던 권력을 위해 부하에게 전가했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그렇다고 결사의 의지와 불굴의 용기로 무장을 하지도 못했던 김일성.
    다시 한 번 상대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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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자료 감사했습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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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yellow teeth 2014.03.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일성의 오류가 꽤 심각한 수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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