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06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22)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5.06 20:17

1951년 함경북도에 갑산지역에 낙하산으로 투입 된 31명의 영도부대는
이 지역에서 자생해서 활동하고 있던 백호부대라는 유격대와 합류해서
활기봉을 근거지로 삼고 왕성한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영도부대는 미국 CIA에서 조직하고 훈련시켜 적지에 투입한 유격대였다.
본부가 부산 영도에 있다 해서 영도부대라 불렸다.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도부대가 험준한 산악지대인 갑산과 삼수, 혜산진 등에서 출몰하여
후방지역에서 유격활동을 펼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지역 공산당 간부들은
1951년 8월 29일 갑산에서 삼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 그리고 군 간부들이 회합을 가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또한 남한 유격대 소탕의 결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이 지역의 리[里]당 위원장같은 조무래기 공산당 간부까지
총망라해서 참석한 붉은 대회였다.

갑산에 정보망을 구축(構築)해 놓았던 백호부대는 이 정보를 입수하자
무선으로 부산 영도의 본부로 바로 보고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논의가 오고 간 끝에 이들 공산당 수뇌부를 공중 폭격으로
격멸하는 임무가 동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해군 기동부대인
CVG-5에게 주어졌다.

갑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항모 에섹스 함 - 태평양 전쟁중에 24척이 건조된 에섹스급의 선두함이었다.

그 때까지 미 해군기가 갑산같이 먼 북쪽까지 출격한 일은 없었다.
먼저 10월 25일 정찰기가 고공으로 갑산 상공을 비행하며
공산당 간부회의가 열릴 갑산 읍내 중심부 지역의 사진을 촬영해왔다.

조종사들은 정찰기가 촬영해온 사진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목표를 익혔다.

특징있는 주변의 지형지물과 건물들이 공격 목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목표 지역은 동서쪽에 큰길이 감싸고 있었고 남쪽에는 도랑이 있었다.
동쪽의 산언덕 자락이 목표지역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주요 목표들은 담으로 나누어진 세 개 구역 내 건물들이었다.

건물들은 모두 16 동이었다.
각 건물들은 목재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화재에 무방비인 취약점이 있었다.

이들 건물 중의 한 동은 북한의 내무서였다.
북한군 대대 본부 건물도 있었다.

그리고 북쪽 구역에 있는 제일 중요한 목표인 조선 노동당 강당도 있었다.
이 강당에서 붉은 간부들의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 낯선 미 해군기의 출현을 위장하기 위해서 10월 28일 갑산에서
동남쪽으로 35마일 떨어진 속현이라는 곳의 공장 시설을 폭격했다.

1951년 10월 29일 새벽 03:30과 04:00 사이에 기동부대 조종사들은 모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출격 브리핑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고 숙지했다.

갑산에서의 공격은 9시에 개시될 예정이었다.
VF-53의 비행 부대장 클레이튼 피셔 중령은 갑산의 대공 사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간 주로 적의 대공화망이 밀집 된 철도이나 교량을 공격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던 조종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안 좋은 정보도 들려주었다.
갑산이 구조 헬리콥터의 운행 거리 밖이기 때문에
만일 격추되더라고 구조 헬기의 파견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전에 공습이 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격대는 이륙과 동시에 파도 높이로 바다를 건너 육지에 진입하면
나무 높이로 저공 비행할 예정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면 수직으로 고도를 올려 공격하는 것이 작전의 전모였다.

이들 공격대의 조종사들은 갑산일대에 영도 부대의 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공습과 동시에 이들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07:30에서 07:45 사이에 CVA-15의 항모(航母) 에섹스 함에서
콜세어 기들과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이륙하였다.


갈매기 형의 날개를 가진 F4U 콜세어기

대기는 맑고 조용해서 비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피셔 중령이 8기의 F4U 콜세어 기 공격대를 지휘했다.

8기의 콜세어 기들은 두 개의 4기 편대로 구성했다.
각 콜세어 기들은 500파운드 폭탄 한 발과 4발의 소형 폭탄들을
적재하고 있었다.

VF -54의 비행대장 폴 그레이 중령이 지휘하는 8기의 AD 스카이레이더 기들도
4기 일개 편대로 구성되었다.

이 대형 공격기들은 2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300갤런의 네이팜탄,
8발의 소형 250파운드 폭탄을 운반할 수가 있었다.
단발 프로펠라 기로서는 대단한 무장량이었다.

6ㆍ25전중 항모에서 이륙하는 스카이레이더 기
[당시 AD 스카이레이더로 불렸음]

공격대가 운반해갈 총 44,000파운드의 폭탄이 3-4 에이커 넓이의
갑산 읍내 목표 구역에 퍼부어질 것이었다.

항모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은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하고,
먼저 갑산 남쪽 속현 쪽으로 날아갔다.

그 하루 전 속현에 가한 공습의 위장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군들은 미군기들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속현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공격대는 무선 침묵을 그대로 유지하며 속현의 서쪽을 지나자마자
기수를 수직으로 들고 급상승으로 폭격 고도를 높였다.

이제는 단 8분내지 10분 정도만 지나면 갑산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설사 갑산의 공산군들이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대비하기에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공격대는 8,000피트 상공에서 수평을 잡자마자 급강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대는 해 뜨는 아침인 이 시간에 동쪽에서 해를 등지고 갑산에 쇄도했다.

기습은 대 성공이었다.
아무런 대공포화도 상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북쪽에 위치한 갑산은 지금까지 별다르게 심한 공습을 당하지 않았기에
대공포대도 없었고 방공호는 그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해서 표적 지역내에는 공습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기에
너무 많은 공산당 간부 인원들이 몰려와 있었다.

공격기들이 급강하하는 순간이 적의 대공포가 포문을 열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다.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하는 집중력을 분산시켜서 폭격의 명중도를 낮추는 반면
항공기가 지상 접근의 순간에 대공포화의 명중도를 높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산에서는 그렇게 할  대공포화가 없었다.
덕분에 각 공격기들을 적재한 모든 폭탄을 목표에 투하시키고
이탈하는 공격 전술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갑산 공격기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폭격 전법을 최대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한 목표에 여러 번에 걸쳐 폭탄을 나누어서 투하를 할 수가 있던 것이다.
첫 폭격은 F4U 콜세어 기가 맡았다.


동해에서 동계 해상 작전 수행중의 함상 콜세어 기들

공격 대장 피셔 중령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스카이레이더 편대의 공격에 앞서 콜세어 편대를 이끌고 급강하했습니다.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나는 지상에 서있는 높은 무선 통신 안테나 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500파운드 폭탄들을 투하한 콜세어 기들은 후속한 대형기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공격하도록 왼쪽으로 반전해서 선회하면서
뒤따라 가하는 스카이레이더 기들의 가공할 공격력을 지켜보았다.

콜세어 기들을 후속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접근하면서 먼저
첫 1,0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을 500피트에서 1,000피트 사이의 상공에서 투하했다.

대형 폭탄을 투하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콜세어 기와 같이
좌측으로 상승 선회한 뒤 다시 돌아와 목표물에 나머지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였다.

다시 좌선회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선회 후 세 번째로 목표물을 타격했다.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300갤런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고,
나머지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20mm 기총 소사를 하였다.

폭탄 적재량이 엄청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돌아와서 네 번째 공격을 했다.
네 번재 공격에서는 공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건물들에
소형 250파운드의 폭탄을 뿌리거나 시설물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조종사로 공격에 참여했던 허버트 리베링 대위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수레바퀴 모양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형 비행 대형을 만들어
빙빙 선회하며 폭격하고 상승하고, 폭격하고 상승하는 공격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요. 목표 지대는 연옥같이 변해버렸어요.”

갑산 읍의 심장부에 대한 공격은 아무 저항도 없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에섹스에서 출격한 16기의 공격대는 한 기의 피해도 없이 항모로 무사 귀환했다

스카이레이더 공격대 대장 그레이 중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목표지역을 떠날 때 지상에는 남아 있는 아무 것도 없었고
거대한 파괴의 더미에서 엄청난 연기만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촬영한 정찰 사진을 판독해본바 우리 공격대가 투하한 폭탄은
큰 도로로 둘러 싸여진 갑산 중심부 목표 지역에 단 한발을 빼놓고는
모두 명중했습니다.
목표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놓은 담도 한 줄만 남고
모두 날아갔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19명의 백호 부대가 갑산 내무서를 습격해서
15명의 반공 인사를 석방하였다.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이 공습에서 산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들이 전멸해버렸다.

나중에 영도부대는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이 공습으로
510명에서 530명이나 죽었다는 정보 보고를 해왔다.

삼수, 갑산, 혜산진의 조선 노동당 군당 조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제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대 수명 5년의 숙명을 타고 난 스카이레이더 기는
월남전까지 겪고 1985년 가봉 공군에서 최후로 퇴역하였다.

이 공습에서 지방 간부급 졸개들이 줄초상이 나자 평양의 김일성 집단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

평양 방송은 며칠을 두고 야만적인 폭격을 해댄
미제국주의자들을 광란적으로 규탄하였다.

방송은 조종사들을 “갑산의 인간 백정 놈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갑산 폭격 조종사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다행히 6ㆍ25 전쟁 중 갑산 작전 참가 조종사들중에 북한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 때 북한의 증오서린 욕설이 인상 깊었던지 갑산 공습 작전을 소개했던
참전 해군 조종사가 갑산의 백정 놈[The butchers of Kapsan] 작전이라고 부른 것이
그 뒤에 미 해군 전사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car insurance 2011.10.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까지 북진에 소극적인 일차적인 이유는 또다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막대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3. online casino 2011.10.10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 써긴했지만... 그래두 성의니까... 가능한가염

  4. dual saw 2011.10.12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5.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견에 앞서 파병업무를 협조하기 위하여 연락장교단을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이 협조과정에..

  6. Dan 2011.10.22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작품을 계속.

  7. dccarservice 2011.10.27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견에 앞서 파병업무를 협조하기 위하여 연락장교단을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이 협조과정에

  8. medical coding and billing 2011.10.29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견에 앞서 파병업무를 협조하기 위하여 연락장교단을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이 협조과정에

  9. temporary health insurance 2012.05.14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걸지도 마음이 이렇게 훌륭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사용하여 존재한다는 문제가 될 수있어. 이것을 통해 다량의.

  10. 247insurancequotes host 2012.05.14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을 놀라게 이것이 그들의 설명은이에 대한 자세한 게시물에 필요성을 us.You 수 있도록 공개 주셔서 감사 submit.We에 충분한 리소스를 찾을 수있다는 것을 추구하는 수많은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11. 247insurancequotes online 2012.05.14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상 정보는 아래에 있어요. 한 주간 시간을 휴대폰에이 문제에 대해 읽어 오게했습니다. 서류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다행로 계산한 블로그 포스트 이내니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넣어했다.

  12. discount louis vuitton 2012.09.21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휴대폰에이 문제에 대해 읽어 오게했습니다. 서류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다행로 계산한 블로그 포스트 이내니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휴대폰에이 문제에 대해 읽어 오게했습니다. 서류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다행로 계산한 블로그 포스트 이내니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

  13. du lich thai lan gia tot 2012.12.14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스카이레이더 편대의 공격에 앞서 콜세어 편대를 이끌고 급강하했습니다.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나는 지상에 서있는 높은 무선 통신 안테나 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14. du lich hongkong tron goi 2012.12.1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15. modern rattan furniture 2012.12.27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전체에 해당 건너 왔다고 생각하게 말하자면이 문제에 관한 통해

  16. free credit report 2013.01.09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의 힘싸움 과정에서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경계가 나뉘

  17. obat alami sakit jantung 2013.02.06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

  18. onlineaccountsoftware 2013.02.13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感谢您写这样一个容易理解的文章就这一议题。

  19. Chatrandom 2013.05.02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 Social Bookmarks 2013.05.13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휴대폰에이 문제에 대해 읽어 오게했습니다. 서류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다행로 계산한 블로그 포스트.

  21. www.lanamedbetalningsanmarknings.se 2013.10.12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