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18 90. 피로 얻은 승리 그리고 교훈 (9)
  2. 2010.09.20 57mm 무반동총의 적 벙커 공격 (11)
  3. 2010.05.25 채명신 장군의 고지 공격법 (12)

90. 피로 얻은 승리 그리고 교훈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18 08:13


  사단장은 지난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여 사기가 저하되어 있던 예하 지휘관들에게 이번 작전은 3개 연대가 동시에 공격하기 때문에 북한군은 병력과 화력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없고, 전차대대가 문등리 일대의 후방을 교란하면 적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시기를 이용하여 일제히 공격하면 터치다운작전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공격전에 철저한 사전준비를 지시하였습니다.


[단장의 능선 인근 전선으로 이동하는 미 제2사단 9연대]


  이에 따라 공병대대는 전차소대의 엄호 하에 진격로 정비를 시작하였고 각급 부대도 훈련에 돌입하였습니다. 미 제2사단은 항공사진을 통해 식별된 적 진지를 표시한 후, 각개 병사들의 개인행동까지도 미리 점검시키는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여 이에 맞게 반복 훈련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제2사단은 10월 5일, 미군으로는 보기 드물게 달도 없는 칠흑과 같이 어두운 심야시간인 22시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초기의 공격은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약간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이 야간 공격에 미숙하다보니 길을 잃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적에게 위치를 노출시켜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정면을 압박함과 동시에 후방지역에서도 기습을 가하여 계획대로 적을 혼란시켜 버렸고 동이 틀 무렵에 원한에 가득 찬 단장의 능선의 929고지 정상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제1차 공격에서 2주간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고지위의 적의 요새가 단 한 번의 야간 공격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터치다운작전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사전에 공병대가 개척한 진격로를 통하여 제72전차대대를 중심으로 편성된 기동부대가 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전차가 지뢰지대를 돌파하고 진격해올 것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북한군은 당황하였고 순식간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악능선에서 남쪽정면에 방어력을 집중하던 북한군들은 미군 전차부대가 후방에 나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분산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점령된 고지위에 남겨진 적 시신]


  이처럼 배후를 차단한 제72전차대대는 적 후방을 완전히 돌파하여 10월 11일, 문등리 북방 4킬로미터 지점의 하심포까지 쾌속 진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심포 일대에는 연이은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전투력이 고갈된 북한군 제5군단을 교대하기 위해 중공군 제204사단이 남하하여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들을 발견한 제72전차대대는 중공군을 기습하였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중공군은 산악능선으로 분산하여 패주하여 버리면서 후방이 완전히 비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2사단은 일제히 돌격으로 전환하여 10월 15일, 서측의 백석산 북쪽 1220고지로부터 단장의 능선의 855고지와 펀치볼 지역의 가칠봉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을 완료하면서 작전을 대성공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결과 미 제10군단은 단전선의 요철부분을 완전히 정리하게 되었는데, 휴전 시까지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의 대규모 공세가 없었으므로 이것은 이후 군사분계선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유엔군 못지않게 공산군의 피해도 컸는데 확인된 북한군 및 중공군 전사자만 해도 1,473명 이었을 정도였고 이를 환산한다면 약 10,000여명이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곳에 투입되었던 북한군 제5군단은 휴전 시까지 전선에 재투입되지 못하였을 만큼 회복하기 어려운 엄청난 참화를 당하였습니다. 공산군은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부터는 산악지역의 재래식 전투에서도 막강한 화력을 지닌 유엔군을 당해 낼 수 없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10월 25일부터 그 동안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의 본 회담이 재개 되었습니다.


[고지전투는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 후방으로 이송 대기 중인 부상병들 )


  반면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를 연이어 경험한 국군과 유엔군은 산악에 구축한 강력한 진지를 화력만으로는 격파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포로 심문결과 공산군은 아군의 포격이 있으면 후사면의 진지에 대피했다가 포격이 중지되고 아군이 돌격하면 다시 전사면의 진지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전투력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빈 산위에 포탄을 가져다 버린 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고지공격작전은 정면공격과 더불어 후방을 우회기습하거나, 교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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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57mm 무반동총의 적 벙커 공격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20 08:28

- 백암산 고지 탈환작전,1951년-

옛 보병 장비인 57mm 무반동총은 6·25전쟁에서 대활약을
했음에도 자매격인 60mm 박격포와 같이 그 전공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7mm 무반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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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이봉조 선생이 썼던
‘분대장’이라는 옛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1951년 7월 18일.
중공군이 포진하고 있던 백암산[1279고지]의 탈환을
명받은 국군 5사단 35연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공격은 이미 전날 [17일] 대대적인 박격포 준비 사격으로
시작되었다.

이봉조 이등 중사는 60mm 박격포 분대장으로

이 고지 탈환
전투에서 박격포 사격을 지휘했다.

아래는 그 분의 전투 수기다.


이봉조 이등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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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본부가 위치한 바로 아래에 우리들 박격포반이
자리를 잡았다.
적진은 우리 부대가 있는 지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공격하는데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기필코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신명을 다 바쳐 백암산을 탈환하겠다고
굳게 결의하였다.


57mm로 적진을 강타하고 있는 미군- 1951년 3월 38선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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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은 워낙 높은 지대라 박격포탄 운반에도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공격에 동원한 박격포는 예비 중대 것까지 합치면
9문이었으나 위치와 포탄 보급 관계로
최초에는 내가 지휘하는 포 1문만 자리를 잡아
기점 사격을 하다가 나중에 다른 박격포도
사격에 참가하게 되었다.


6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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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나는 포반장의 결원으로 분대장에서
박격포 3 문을
지휘하는 박격포 반장으로 현지에서
임명을 받았다.

각 분대에는 포 분대장과 사수가 있었으나
사격술이
미숙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중대장은
나로 하여금
직접 포를 운용하여 지원 사격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그간 소총 분대장으로서 실전 경험을 쌓아 왔었고

박격포 포술에는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명령에 따라 임무 수행이 가능하였다.

우리 포반은 고지 정상을 집중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하였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400미터 내외여서 가늠대를
포목선상[砲目線上] 꽂아 직접 조준하면서 사격제원을
산출할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한 포격을 밤새도록 하고도 뒷날에도

하루 종일 계속 하였다.
우리들의 포격이 정확했음인지 적군의 활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도 유개진지[有蓋陣地]내에 대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어느 때는 적군 몇 명이 뛰는 것을 나의 포진지에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 포반은 포탄 보급정도에 맞추어 쉴새없이 포격을

가해서 적의 활동을 견제하고 시설을 파괴하였다.


단장의 능선 -한국 전쟁 기간의 삼분지 이 세월은 피아 쌍방
이런 험준한 산악에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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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17일 바로 그날 오후부터 다음날 공격 개시 전에서
적진에 퍼부은 박격포탄은 무려 5,000여 발에 가까웠다.
적의 벙커는 명중탄을 여러 발 맞았는데 흙먼지만
일으킬 뿐 파괴되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세밀히 관찰한 바로는 벙커를
덮은 훍의 두께가 1m 이상 되는 것 같았다.


6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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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통하는 9부 능선이 시작되는
곳에
적은 두 개의 벙커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그중 한 곳에 기관총과 따발총으로,
벙커 정면으로
공격하는 우리 부대원이 보이기만 해도 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박격포탄을 계속 벙커에 명중시켰으나

불을 뿜는 적 벙커의 총안[銃眼]는 멀쩡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군 돌격 부대는 적의 기관총 사격 때문에 이 능선

양쪽 계곡에서 더 이상 전진을 못한 채 호를 파고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우리 중대 본부 소대 선임하사인

김정대 중사가 중대장에게
“중대장님 화기 소대의 무반동총으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고 건의하였다.

중대장은
“아! 그걸 잊고 있었군, 빨리 무반동총 가져와!“ 명령하였다.


57mm 무반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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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계곡에 놓아 둔 57mm 무반동총을 관측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즉각 배치하였다.
배치 완료된 시각은 오전 9시 경이었다.

무반동총을 정 조준한 다음 포탄 한 발을

장진하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
급히 살펴보니 공이가 부러져 있었다.

폐쇄기 뭉치에서 고장 난 공이를 제거하고 새 공이를

갈아 끼웠다.
무반동총을 손 보고 다시 발사하기 까지는
10여 분이 걸렸다.

이번에는 이상이 없이 발사되었으나 첫 탄은

총안을 명중하지 못했다.

무반동총 진지에서 적 벙커까지의 거리가 300미터에
불과했는데도 그것을 명중시키지 못한 것이 몹시 쑥스러운지
김중사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다시 침착하게 조준하여 발사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탄착 지점을 확인 할 수가 없었다.
모두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펑!“하고 적의 벙커가 폭발했다.
적 기관총 진지 총안으로 포탄이 들어 간 것이었다.


57mm 고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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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진지 옆에서 보고 있던 중대장 이하 전 대원의 환호성이
요란하게 퍼졌다.“됐다! 명중이야 , 대성공이다.”
이어서 각 소대장에게 돌격명령이 무전으로 하달되었다.
각 소대장은 중대장으로부터 돌격 명령을 받자마자
“소대 ! 돌격 앞으로-!”
백암산 능선 사면을 잽싸게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

적군은 사방으로 놀란 토끼처럼 달아나느라고 야단이었다.
중대원들은 고지 하단부로 도주하는 적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고지가 원체 가파른 곳이라 추격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이 대대에서 내려왔다.

우리 박격포반원들이 산정으로 올라올 때 보니까 문제의
기관총 벙커는 지붕이 무너져 있었다.
그 곳은 적 기관총 조 2명이 완강히 저항했던 곳으로
두 놈이 죽어 있고 기관총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데 놈들이 독하다는 것은 거기서 또 증명이 됐다.
그 곳은 흙으로 후방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 놓아 사방이 막힌
폐쇄된 곳이었다.

두 명을 그렇게 가두어 놓고 죽을 때까지 저항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반동총으로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했던 김 정대 이등 중사는
이봉조 씨와 친한 전우였고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적 벙커 파괴의 수훈을 세운 그는 산 아래로 도망가는

중공군 낙오병을 추격하다가 아군 타 부대원이 던진 수류탄에
아깝게도 희생되었다.

다음 날 7월 19일 아침 각 소대 각 분대 별로 휴식도중 6사단

병력이 올라와서 우리 사단과 진지 교대를 하고 우리 중대는
방어선 후방으로 내려가서 대기하며 정비를 했다.


이봉조 이등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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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 참가자인 이봉조 씨는 1950년 11월 자원입대해서
1954년 5월 제대할 때까지 3년이 넘게 전방을 누비며
소총수, 자동소총 사수, 그리고 소총 분대장, 박격포 분대장
반장직을 역임하면서 싸운 역전의 용사이다.

대담한 적진 잠입으로 중공군 2명을 생포해와
화랑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피의 능선 - 고지 전투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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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당시 소위 ‘빽’없는 보통

국민이었는데
그는 국방의 일선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가 2년간 틈틈이 원고지 1,000매에 쓴 전투 수기 ‘분대장’을

읽어 보면 그가 전쟁기간 내내 보이는 상관에 대한 존중심,
동료 전우들과의 전우애,
부하들을 아끼는 애정,
그리고 업무를 연구하고 열중하는 태도는 물론 전투에 임해서
그가 내리는 냉정한 판단과 지휘의 용감함은 읽는 후배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을 발간하던 1980년도에 50대의 가장으로

택시 운전을 했었는데
지금은 연로하여서
은퇴했을 것을 추측된다.


6·25전쟁에서 영웅들만이 호국의 중책을 수행했던 것이 아니다.

이와같이 국가의 부름에 받고 불평 한마디 없이 일선에 배치되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일반 서민 출신‘보통 병사’들의
무수한 희생과 무공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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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보 2010.09.21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수많은 선배님들의 덕분에 오늘으이 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2. 비도승우 2010.09.22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존경스러운신분입니다. 다만 5000여발의 60mm 박격포탄이 아깝게 느껴지네요..

    57mm 한발로 이리 쉽게 해결될것을.. 그래서 중요한것이 적재적소에 대응화기와 전술을

    대입하는 지휘관의 판단력같습니다. 아무튼 이봉조 선배같은 분들덕에 이나라가 존재합니다.

    그분들의 노고를 언제나 기억합시다.

  3. 바라는것이란 2010.09.22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역 군인입니다....

    분대장이라는 책은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혹 출판사나.. 구매할만 한 곳이 있으면 리플을 달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실전에서 쓰여진 책이니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실... 국/군내에서 구할수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분대급 이하 제대의 전투경혐이 담겨 있는 책은 구하기가 힘듭니다.

  4. 울프 독 2010.09.23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이 책은 30년전에 출판되어서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병학사라는 곳에서 출판했었습니다. 저는 남산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고
    이번에는 국회 도서관에서 복사했습니다. 필요하시면 국회 도서관에 가셔서
    등록하시고 모두 복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병 교육 자료로 쓸만한 같은 책으로서
    일본인 병사가 쓴 '이런 중대장도 있었다'도 추청 할만합니다..- 같은 병학사 간-입니다.

  5. 2010.09.25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하늘바라기 2010.09.25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암산=흰바위산(하얀 바위산이랍니다) 7사단이 관리하고 제2땅꿀이 근처에 있죠 전 적근산 대성산에서 근무했는데
    옛날생각 많이 나네요

  7. 황태 2010.10.05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7미리 메고 다니는 거 보고 많이 놀린적이 있었는데.
    3.5" 하고 57 무반동총 이것도 무시할게 못되는군요.

  8. cthwn 2010.11.06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참고 자료로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복사해 가겠습니다.
    그런데 서두에 백암산 공격개시일 1951년과 중간 부분에 박격포 5천여발 발사싯점의 1953년이 시차가 커서 제가 다른 경로로 확인해 본 결과 1953년이 맞는것 같습니다. 아마 오타인것 같은데어째튼 좋은 자료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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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의 고지 공격법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5.25 08:32


6·25전쟁시 채명신 장군이 7사단 5연대장으로

양구 전선에서
난공불락의 적 고지를 공격했던 전투기이다.
[자서전 '사선을 넘고 넘어' 에서 발췌] 



7사단 5연대장 시절의 채명신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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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어보면 평범한 전투 회고담의 하나이지만 나는

이 고지 점령에서 후배 전투 부대 지휘관들이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고 믿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첫 째는,

난공불락의 어려운 고지 공격을 포병을 동원한 교묘한 기만으로

점령할 수 있었던 극히 창의적인 공격 전술이다.

6·25 전쟁의 후반기는 고지를 두고 공격과 방어가 되풀이 된

산악 전투의 연속이었는데 나는 6·25 전사에서 이런 창의적인
고지 공격전술을
거의 보지를 못했다.


둘 째는,

부하의 인명을 중시하는 지휘관이자 전투에 앞서 면밀히 정찰하고

분석하는 전략가인 명장 채명신 장군의 자세다.


채명신 장군은 북한에서 교편을 잡다가 월남하여 육사 5기로 임관,

제주도 4.3때 부터 월남전까지 수없이 생사가 엇갈린

전장을 누빈 역전의 지휘관이다.

그만큼 실전을 풍부히 겪은 군인도 드물었었고 또 그가 지휘한

전투에서 항상 승리를 거둔 상승장군이기도 했다. 


그는 1951년 2월 600명의 백골병단 유격대를 이끌고 적 후방에
침투하여
두달간 종행무진 활약한 뒤 7사단 5연대 부연대장으로
부임했다.



북파 백골병단의 11연대 귀환 장병들 - 600여명의 북파 백골
병단 대원중 절반만 생존해서 돌아 왔으나 큰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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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연대는 창설 이래 전투에서 자주 패해서 왔다갔다 연대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계속 문제를 일으켜 1년간 연대장이 6번이나
바뀌는
비운을 겪었다.연대장 징크스가 있던 부대였다.


채장군의 상관 김용배 대령도 전사하자 모두 겁을 먹고

아무도 후임 연대장으로 부임하려오지 않았다.

사단장은 할 수없이 1951년 8월 부연대장인 채장군을

대령으로 승진시키고 연대장으로 임명하였다.
동기생들인 육사 5기중 가장 빠른 진급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채장군은 연대장이 되자 장병들을 맹훈련 시키며

부대의 오욕을 씻을 기회를 노렸다.

- 아래는 그의 회고담이다. -


정식으로 연대장이 된 후 얼마 안 되어 나는 양갈보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양갈보 고지는 양구 동북방 지역에 있는 800등고선상의
바위가
톡 튀어나온 고지였다.

워낙 아군과 적군이 자주 바뀌어 정조가 없다고 해

그런 괴상한 별명이 붙었다 한다,


포격으로 황폐화된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북방에 위치. 
채장군이 공격했던 고지와 지형이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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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생김새도 꼭 여자의 그 곳처럼 뾰족하게 튀어 나와
별명으론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지형이 북으로 향하는 산줄기의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감제고지라 그곳을 빼앗지 않고는
북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잘됐다. 이번 기회에 아예 5연대의 사기도 올리고 
 징크스도 없애버리자"

나는 단단히 결심을 했다.

우리 장병들의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 기필코

양갈보 고지를 탈환해야 했다.


나는 며칠동안 그곳 지형을 탐색해 보았다.

정말 가까이 가서 보니 고지는 양측방이 절벽이어서

측방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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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정보를 가공해서 만드는 것이다.

명장들은 작전에 앞서 항상 공격대상에 대한 가능한 한 최대의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서 사전 정찰을 철저히 한다.


요즘 중국에서 전략가로 재평가를 받아가는 중국의 전 국방상
임표는
[모택동 전략의 실제 개발자이며 인해 전술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 모택동에 반대하여 모반 실패로 소련으로 망명중 사망했다.] 
며칠씩 목표물을 몇 번이고 방문해서 여러 번 정찰을 했던

현장 중시 작전으로 유명했고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롬멜도 
진격하는
기갑 부대의 선두에서 항상 유동하는 전황을 놓치지 않고

순간적인 작전판단을 했다.[imprvision중시의 전투지휘라고

하는데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에르빈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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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모르는 아마추어들은 롬멜의 이 전투 지휘를 보고

분대장 같은 지휘관이라는 혹평을 하는데 이는
잘못 평가 한 것이다.


채장군의 주도면밀한 정찰은 그가 명장의 기본부터 철저히

갖추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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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적이 확보하고 있는 감제고지를 우회하여 적진 깊숙이

침투, 적의 뒷면을 차단하는 방법뿐인데 그게 쉽지 않은데다

자칫하면 공격 부대의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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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이 것을 알기에 주요 거점 고지의 우회 가능 접근로에

감시 초소와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철저히 감시했었다.


미군은 이 1951년 10월 단장의 능선 전투 때 몇 번이나 실패한

고지 점령을 위해서 단단히 봉쇄한 적의 거점 고지의 우회 접근로

[옆의 문등리 계곡]로 72전차 대대를 동원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강습 돌파하고 적의 10킬로 후방으로 진출하자 고지의 적은

급히 철수했다.

72전차 대대가 적 후방 강습시 사용했던 M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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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채명신 장군의 이런 우회 접근의 고지 공략은 가능한 지형

도 아니고 미군처럼 막강한 화력도 없어서 불가능 했던듯하다.




피의 능선 남쪽 지역에 있는 단장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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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공격에 앞서 항상 먼저 기습[우회]의 가능성을 살펴라라는

전략에 기본에 채장군은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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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고민한 나는 경사가 심하지만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지형이 워낙 험하고 노출 된 지점이라 병력이 많으면 손해다

아예 소수 정예만 뽑아 습격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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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를 공격할 때 적보다 압도적인 우위 병력으로

점령하기 위해서 좁은 지형에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성공도 못하고 지나친 병력 손실을
입었던 작전 실패가 6·25
전쟁중에 종종 있었다.


채명신 장군은 전쟁의 9대 원칙인 병력 절약의 원칙에 철저한

작전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 때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소모쯤이야

피할 수없는 통제 불능의 변수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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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나는 공격 중대를 지정하고 지형이 비슷한

곳에서 철저히 특수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습 전술은 6·25 전쟁에 개성 북방 송악산 전투 때

써먹은 방법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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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전 1949년, 개성 송악산에서 있었던 전투에

채명신 장군은 중대장으로 참전해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었다.

사단장 김석원 장군은 일본군 대대장으로 중일 전쟁에
참전했던 노장이었다.


채명신 장군은 위험한 고지 전투 현장을 찾아와 부하들을

격려하는 김석원 장군의 리더십에 크게 감명 받고

그 뒤 이를 배워서 실행했었다.


그러나 김석원 장군은 일본군이 화력이 약한 중국군에게

사용해서 자주 성공하던 총검 돌격을 좋아했었다.

1949년 송악산에서 있었던 육탄 10용사의 신화는

그의 지도하에 감행된 것이다.


포항 전선에서 용감하지만 무모했던 총검돌파로 숱한

병력 손실이 있자 사실상 한국군 사단장 인사권이 있었던

미군에게 미움을 받고 소장으로 군을 떠났다.


그러나 총검에 의한 정면 돌격은 6·25전쟁은 물론

월남전에서까지 국군 일선 부대에 의해 자주 사용되었었다.


총검 돌격은 충분히 훈련되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정병(精兵)들만이 구사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부대의 인명 손실이 컸다.


용감하기는 하나 자동 화기가 발달한 현대전에서는

부적합한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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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며칠간에 걸쳐 포병화력을 최대로 집중시키고 공격은
하지 않아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진짜 공격을 기만하는 방법이다,


D 데이를 잡은 우리는 거의 1주일간에 걸쳐 포탄을

엄청나게 쏘아댔다.

물론 보병 공격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적은 분명

"아하 , 놈들은 포만 쏘지 공격은 하지 않는구나."하고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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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된 포격은 적을 기만하면서도 적을 수면을 방해해서

피로 곤핍하게 만드는 2차적인 목적도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참전 용사분 말씀을 들으니 북진 작전 때 영국군이

적 부대에게 밤새 비록 한 두 발이라고 계속 불규칙

연속 포격을 가해서 잠을 못자게 방해하고 다음날
공격하더라고 했었다.

채 명신 장군의 연속 포격도 이런 효과를 발휘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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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D 데이, 날이 막 밝아 올 무렵 양갈보 고지에 엄청난

포탄 세례를 퍼부은 뒤에 정면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엄청난 포격에 놀란 적이 대피호에 처박혀있는 동안

기습하는 것이었다.


공격대가 올라가 보니 역시 적은 예상대로였다,

적은 워낙 심한 포격에 주력 병력 대부분을 대피호에

대피시킨 채 몇몇 경계 병력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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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적[중공군 또는 북한군]에게 전매 특허격인
갱도전술이
자리를 잡지 않았을 때였다.
공산군은 항공력과 지상화력의
열세를 고지 후면에서
전면까지 관통 터널을 뚫어서
공격하는 유엔군을 괴롭혔다.
미군은 대형 8인치 포를 고지 정상으로 끌고가
갱도 입구를 직접 사격으로 함몰하게 하는 포병 전술을
썼었다.


중공군의 갱도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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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대는 호 속에 남아 있는 적을 처치하고 대피호에 들어가 있는

적병들을 수류탄으로 섬멸하여 아주 쉽게 고지를 탈환해버렸다.


나는 지형 특성상 적의 반격이 거세질 것이라고 점은 각오하였다.

때문에 고지를 점령하자마자 북측 능선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해
다음의 조그만 고지까지 아예 점령했다.

그 곳에 호를 파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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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 점령과 동시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적의 역습에 대비한

진지 구축 작업이다.


6·25전쟁 내내 고지를 빼앗기면 적은 신속히 예비 병력까지

증강해서 반드시 역습해왔었고 한국군은 적 역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기도 하고 패퇴 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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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부대는 연막까지 피워가며 호를 팠다.

물론 공격대가 진지를 구축할 때 까지 후방에서는 계속

포 지원을 해주어서 공격대는 간신히 충분한 방호가 되는

진지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적도 맹렬한 포 지원 하에 그날 밤 두 번이나 공격해 왔다,

그러나 나는 예전에 했던 대로 적의 포탄이 우리 호 앞쪽으로

떨어지면 무조건 얼굴도 내밀지 않다가 뒤쪽으로 떨어질 때야

비로소 얼굴을 내밀고 수류탄을 던지는 방법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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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고지방어 전투에서 최고 유효 수단은 수류탄 투척이었다.
국군은 참호 속에 수류탄이 가득 담긴 마대부터 준비하고
방어 전투에 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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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적은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연속해서 역습해왔다.

그러나 이미 전면 방어진지를 구축한 우리 진지는 요지부동,

게다가 맹렬한 포화력의 집중 지원으로 끝내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그 뒤에도 되풀이 하는 적의 공격을 이틀간 견디어 내니

우리 5연대는 완전히 잃었던 사기를 되찾은 데다 승리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고지들이 완전 확보된 뒤 고지를 둘러본 나는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고지에는 적의 시체가 즐비하여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시체를 다 처리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양갈보 고지 탈환은 내가 적 후방에서 작전[백골병단] 할 때

적의 군단 사령부 위치를 알아낸 것만큼이나 대단한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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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 병단은 포로를 심문해서 그 위치를 알아낸 군단 사령부를

직접 기습하려다가 적의 경계가 너무 삼엄하여 포기하고 이를

항공지원으로 초토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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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10 군단장은 김 용배 사단장에게 '용전분투하여 고지를

탈환함에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란 메시지를 보내오니 사단장은

크게 고무되었고 사단은 축제 분위기 감돌았다.

[사단장은 전사했던 5연대 연대장 김용배 대령과 동명이인이다.]


이후에도 우리가 열 차례가 넘는 적의 공세를 끄덕 없이 넘기자

사기가 오른 7사단과 미 10군단은 쉽게 북진할 수가 있었다,

이젠 절대로 적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에서 우리 장병들은

양갈보 고지의 이름을 절개 고지로 바꾸었다,


이 고지를 점령함으로서 아군은 곧 좌우와 연계해 북진,

백석산을 점령하고 1,220 고지와 문등리로 뻗어 내려가는

고지와 능선 일대도 쉽게 확보했다,



단장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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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은 연대 지휘 기간 여러 번의 고지 전투를 

위의 전술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7연대는 연대장이 사고나 전사로 수시로 교체되는
징크스가 없어졌으며 패전 부대라는 오명도 벗었다.


태평양 전쟁시 중국에서 중대장을 역임했던 한 일본 자위대

장군은 그의 저서에서 일본 패망의 기본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일본
장군들이 독서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은 정신 구조였다고

말하였다.


이 말이 타당성을  미군은 일본군 사병들의 광포한
전투 정신을 가진
우수한 파이터들이었지만 장군들은
실패한 공격을 '꼭 같은 장소에서
꼭 같은 공격'을 되풀이해서
부하들이나 떼죽음 시키는 바보 같은
지휘관들이라고 혹평한
일화가 상당 부분 증명해준다.


위에서 소개한대로 보병 지휘관인 채장군이 포병을
창의적으로 사용한 지휘 방식은 그 반대의 사례를 보여준다.

6·25전쟁 후반 고착된 전선에서 전투는 고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말한바대로 난공불락의 적 고지는 독특한 공격 전술을

구사하기가 극히 힘들어서 항상 공격은 포병이나 항공공격을

가한 뒤 큰 희생을 감수하는 정면 공격을 하는 것이

전형적인 전투 행태였다.


채명신 장군의 전술의 개발과 구사의 정신은 그대로 월남전으로

이어져 중대 전술기지, 대민 심리작전, 교전 수칙등의 창의적인

전략 전술을 개발하여 이를 그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훈련시키고

지도해서 한국군이 그 용맹을 세계에 알린 상승의 전공을
세우게 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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