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7.20 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밸리 전투(제 2편) (4)
  2. 2010.04.22 안양 상공에서 격추 된 최초 적기 (42)

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밸리 전투(제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20 08:38

퓨시리어 대대와 같이 한 시간 만 더 일찍 명령을 접수했다면

얼스터 대대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명령접수 지연은 그날 밤 큰 불행을 얼스터 대대에게 안겼다.


철수명령을 늦게 받은 대대는 유기 장비들이 없도록 모든

짐을 다 트럭에 적재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미군들은 급한 상황 철수시 모두 버릴 장비도 영국군은

모두 챙겼다.


보병들은 언덕에서 내려와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수 행군 순서는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B중대가 앞장서고

그 뒤를 대대 본부가 뒤따랐다.


그리고 전투식량과 탄약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다음,

그리고 C,D A,중대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을 크롬웰과 대대에 배속된 탱크 지원중대의

파견대가 후위를 맡았다.


마지막 기만과 정찰을 위해서 박격포로 무장한 소대병력
장갑차 부대가
작은 고개에 잔류하여 불규칙한 교란 사격으로
적을 견제하도록
  하였다.

이 부대의 장갑차들은 11시 20분에 철수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낮에 제일 높을 고지인 작은 고개를 점령했다가 공습으로

공격대가 전멸당한 중공군은 고지에서 영국군이 모두 철수하자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고지를 점령하고 그 연이은 언덕들에
신속히 침투하였다.



철수로는 우측 위의 쟁고개로부터 아래로 그은 푸른 선이다.
이 소로옆을 따라 언덕이 연이어 있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곡릉철교를 전후에서 전투가 격화되었다.
---------------------------------------------------------

나증에 비극의 현장을 이 된 이 작은 고개 지역은 100미터도
안되는
언덕들이 도로를 따라 몇 백미터 내려오다가
곡릉천을 만나면 오른쪽
즉 하류 쪽으로 휘어져 하천을 따라 갔다.


다른 말로 쉽게 설명하면 ‘ㄴ’를 거꾸로 휘어 놓은 것 같은

형태를 띄우고 있다.


지금은 작은 고개를 통과한 도로가 남쪽을 향하여 직선으로
힘차게 뻗어 갔지만
영국군이 싸울 때는 도로가 바로
작은 고개를 넘어와 곡릉천을 만나면
다시 옆으로 휘어져
언덕과 하천 사이를 따라 가다가 하천을 건너 삼하리
벌판을 
가로 질러 매내미[큰 고개]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작은 도로였다.
새도로가 뚫리고 이 도로는 없어졌다. 


우마차나 겨우 다니는 소로였고 지역 물류나 교통은

이 지역을 지나는 열차가 담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대를 수송할 차량부대가 이 역 L자가 끝나고

곡릉천을 건너 삼하리로 들어가는 지점, 다시 말하면 교외선의

철교가 지나는 지역의 눈 덮인 논에서 정렬하여
대기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곡릉 천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 구도로 -이 길로 영국군의
보병들과 전차들이 철수했다.
------------------------------------------------------


문제는 이 지점이 중공군이 은폐해서 접근할 수 있는 언덕애서
불과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대는 어둠 속에서 중공군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근처 언덕을 따라  빠르게 전개했다고 믿었다.


그래서영국군은 어둠을 이용해서 이 소로를 타고
빨리 전선을 벗어 나기로 했다.

기도비닉이 중요하였다.


-------------------------------------------------------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이는 잘못된 전술적 판단으로 보인다.

중공군의 전투 자산은 ‘밤’과 ‘산’이다.


이 중공군의 전술적 자산은  밤이 되면 산을 타고

은밀하게 유엔군의 틈새로 침투해서 후방 도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미 한달전 미 1 기병사단의 한 대대가 이같은 우회침투와
도로 차단의 전술에 의해서 궤멸 되어 버렸다.

영국군의 철수로 좌측은 낮은 산[언덕]이 동행하듯 같이

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는 영국군 철수도중 중공군이 얼마든지 도로차단과

측면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공군 전술이 이날 밤 이 순간에 꿈틀대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군에게 이 우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도로 옆
언덕[산]에서
일 분이라도 빨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였다.


즉 '기도비닉'보다도 '신속이탈'의 전술적 명제가

더 급한 상황이었다.

쟁고개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철수로와 나란히 뻗은
언덕형 산맥- 철수시 이 언덕의 위험을 인지하고
빨리 이탈해야 했었는데 --- 유감 스럽다,
------------------------------------------------


전차부대 지휘관 쿠퍼 대위가 선두에 서겠다고 자원했지만

전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적에게 부대 철수를

알린다고 믿어서 이 요청은 거절당했다.


모든 트럭과 보병이 떠난 후  전차 부대는 뒤에서 천천히

후위를 맡아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탁상공론을 또 해본다.

먼저 전차와 트럭에게 보병 1개 중대를 배속시켜

중공군이 붙은 우측 산에서 신속하게 이탈하여

후방 매내미 고개로 철수하고  이들로 하여금

철수 부대의 화력지원을 하게 한다.


보병들은 도로에서 벗어나 구보로 삼하리 들을 가로지르는
직행으로 3킬로 떨어진
매내미 고개로 가게 했다면 그날 밤
아무리 상황이 나빴어도
전차 14량을 다 잃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철수는 계획대로 되어 가는 듯했다.


우측 언덕의 중공군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줄은 알았지만

어둠 속에서 길 위의 이 부대를 무턱대고 공격할 수는 없었다.

병참이 빈약한 중공군은 실탄을 물처럼 쏴대는 미군들에 비하면

무척 사격군기가 강해서 실탄을 아껴 함부로 교란 사격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전투 지역에 두 개의 철교가 있다.
이 철교는 첫번째 철교로서 얼스터 대대는 그 우측 길을
무난히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


이 철수 부대에 갑자기 불행이 찾아 온 것은 밤 9시 30분이었다.

선두 B중대와 본부 중대는 이미 매내미 고개를 넘어서

전투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일부 부대가 승차한

트럭 부대가 후속하는 철수의 중간이었다.


검은 하늘에 출동한 미 공군기가 낮에 항공 공격을 했던

이 지역에 이르자 조명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비밀리에 움직이던 영국군의 모든 것이 언덕위의 중공군에게

백일하에 들어났다.

중공군은 즉시 자동화기 포문을 열고 공격을 개시하고 이어서

수백발의 박격포탄이 날아보냈다.



중공군의 매복 공격.
-------------------


이동하던 영국군과 트럭들은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다.

일부 트럭들은 정지하기도 하고  불에 타기로 했고

많은 보병이 죽어 나갔다.


최대의 비극적인 전투가 대대가 최종 목적지인 곡릉천 이북

철교 근처 작은 마을 불미지 인근의 수송 트럭 집결지에서
발생했다.


영국군이 중공군에게 불의의 첫 일격을 맞은 곳은

곡릉천 철교 오른쪽의 논에 수송트럭들이 집결한 곳이었다.


중공군의 지휘관은 매우 노련하였다.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으로 영국군의 지휘체계를

충분히 흔들어 놨다고 판단하고 언덕으로부터 이 지점으로의

돌격을 명했다.


돌격 나팔 소리와 함께 언덕으로부터 중공군 대병력이

새까맣게 언덕 아래 영국군의 측면으로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와
부대를 덮쳤다.



중공군들이 내려와 영국군을 급습한 낮은 언덕의 한 부분.
이 연속 언덕은 앞 사진 언덕의 연속이지만 앞의 언덕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이 언덕은 곡릉천을 따라 동서로 뻗어 있다.
-----------------------------------------------------------


중공군이 항상 장기로 삼는 단병접전(短兵接戰)의 전술이

어둠 속에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적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사격을 하며 몰려와 삽시간에 영국군과 뒤섞여 버렸다.

아무리 정예 부대라도 이 상태로 기습을 당해
지휘체계가 붕괴 되었다면 어쩔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은 근거리의 영국군을 닥치는대로 쐈다.

영국군들도 스텐 기관총과 소총, 브렌 기관총으로 용감하게
응전했으나
이미 지휘체계가 마비 된 상황에서 그것은 각 병사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전투는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영국군과 이를

살육하려고 쫓는 중공군 때문에 전투장이 서쪽과 남쪽으로

직경 1km정도로 확대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서쪽으로는 전진하는 영국군이 진입한 불미지

마을과 그 동쪽 터널로 전투장이 확대되었다.


영국군의 기록에 의하면 중공군들이 크롬웰 전차의 궤도를

궤도 파괴용 특수 폭탄을 써서 파괴 했다고 되어 있지만

현지를 방문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공군은
특수 폭탄이 아니라
평범한 방망이 수류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

크롬웰 전차의 궤도는 방망이 수류탄에도

파괴 될 만큼 좁고 얇고 연약하였다.


방망이 수류탄에 전차 14대가 나가 떨어지는

전무후무한 진기한 기록을 만들었다.


현지에 가서 확인했지만 이곳 지형은 센츄리온 전차나

크롬웰 전차의 기동에 차별적 제약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더 튼튼한 궤도를 가진 센츄리온

전차를 파견 헸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에 참전한 센츄리언 마크 3 형 전차- 20 파운드[84mm]
포를 가지고 있다.
---------------------------------------------------------

6·25전쟁 참전 센츄리언 탱크는 특히 그 탁월한 야지 횡단
능력과 고지 등판 능력으로 미군들의 전차들 보다도
휠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 튼튼한 철 궤도의 현수장치는 나중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메르카바 전차를 개발할 때 참조했었다. 

1960년대에 한국군에서 센츄리온 탱크와 비슷한

크기의 M-47 탱크 철궤도에 수류탄을 넣고 폭파하는

실험을 했지만 궤도는 끄덕 없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


크롬웰 전차대의 소대장 알렉산더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들을 피해서 곡릉천 제방 위를 달렸다.



곡릉천. 이 하천은 당시 얼어 있었다. 남쪽 제방에서 본 북쪽 제방.
---------------------------------------------------------------

기동하면서 그는 중공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진지에 75mm

전차포를 발사했다.

크롬웰 전차들과 보병들은 적이 점거한 불미지 마을로 진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전차는 불미지를 통과했지만 적의 방망이

수류탄 공격으로 궤도가 벗겨지고 정지해야 했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피다가 피격당해

전사했다.

그의 전차 승무원들은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뒤에서 후속하던 대장 쿠퍼 대위 역시 전차 궤도가 끊어져

포수 쿠퍼 하사와 함께 곡릉천쪽으로 피했지만 이들은

중공군 20여명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목격당하는 것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일부 전차들은 철로를 따라 고양 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집요하였다.


철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터널 [용본 터널-동네 어르신네는
굴칸이라고 부른다.]
안에 진입한 크롬웰 전차를 공격해서
기동 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뒤에 따르는 두 여대의 전차들도 정지하고 승무원들은 중공군의

사격 속에서 피신할 곳을 찾은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 유기된 크롬웰 탱크.
중공군이 고정 포대로서 활용하려고
위장 했었다.

크롬웰 전차 한 대는 중공군이 몰고 한강 철교까지
내려와서 배치되었다가 마침 반대편의 남안에 나타난
영국군 센츄리언 탱크에 의해서 격파 되었다.
--------------------------------------------------
 

중공군은 영국군을 완전히 포위하고 섬멸작전을 계속하였다.

불길에 휩싸인 불미지는 영국군의 묘지가 되었다.


부대의 맨 뒤에서 행군하던 대대장 대리 브레이크 소령은

이 난전을 지휘하려 애쓰다가 이 동네 외곽에서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중공군의 공격은 곡릉천 남쪽 양주시 삼하리에서도 전투가
격심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철교와 불미지 마을 일대가
최대의 격전장이었다고 했다.



전투의 분깃점인 곡릉철교- 이 좌측에
해피 밸리 전투 최대의 격전장이 있었다.
--------------------------------------


전투 후에 곡릉천 북쪽 선유리에서만 파괴되고 유기된 전차만

6-7대나 되었다고들 하였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클릭∼∼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ahasiswa terbaik 2011.10.23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파일입니다. 나는 비즈니스 프레 젠 테이션을 자신의 콘텐츠를 작성 데이터의 형식을 배우고, 이것은 또한 분명합니다.

  2. cobra wellbeing insurance 2012.05.28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즐기세요! 흥미로운, 나는 진짜로 실제 새로 도착한 리뷰뿐만 아니라 조언 마찬가지로 건설 바래요. 이 데이터를 공유하기위한 많은 감사합니다 그냥 맘에 들어.

  3. express village insurance 2012.05.28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기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믿을만한 정보 원과 매우 현명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편견을 가능하게 인식할 수있는 무언가를 쓴 모든 사용자의 피사체가 흥분했다. 지금은 미래가 활용에 관한 이런 종류를인양하고 있습니다.

  4. government wellness insurance 2012.05.28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을 놀라게, 이것에 대해서 검색을 다수의 남성이나 여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게시물에 대한 확신 연합 states.Be에 대해 논의를 위해 때문에 article.Thanks의 충분한 리소스를 찾을 수있다.

안양 상공에서 격추 된 최초 적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22 08:39

 

F82 쌍발 야간 전투기 기체 아래에 붙은 것은 야간용 레이다이다.
------------------------------------------------------------

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 거주 미국인 긴급 피난을 위해서

미공군 수송기가 서울 근교 김포 비행장에 파견되었다.


북한 공군기는 이 C-54수송기를 지상에서 공격해서
염상(炎上)시켰다.



북한기의 공습으로 불타는 미공군 C 54 수송기
-------------------------------------------

이에 미군은 일본에서 수송기를 호위할 호위기를 파견했다.

그런 임무를 받고 일본에서 날아온 전투기 중에 우리가

잘 보지 못하던 이상한 모양을 한 쌍동의 전투기가 있었다.


F 82 G 전투기로서 F 51무스탕 전투기 2기를 옆으로 연결한
쌍발에
쌍동의 전투기였다.


승무원은 두 명이다.

야간 영격이 주 임무였다.

큰 레이다가 기수 아래 달려있고 조종사중 한 명이

이 레이다 조작을 담당했다.



미공군 C47 수송기 민간형은 DC 3. 최고의 쌍발 수송기라는 평을 받고 있다.
-----------------------------------------------------------------------


규우슈의 이다쓰케 기지에 주둔해 있었는데 한국에

긴급히 파견하는 느려 빠진 C 47 수송기를 한국 김포까지
장시간 동반 호위 할 만큼 항속 거리가 긴

마땅한 전투기가 F82 빼고는 없었다.


그래서 이 독특한 모양의 전투기가 김포까지 날아왔다가

공중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날 고공은 F80이 초계하고 저공은 F82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F80 슈팅 스타 전투기
--------------------


아래는 6·25전쟁에서 최초로 북한 전투기를 격추한 F82의

레이다 조작 담당 조종사 칼 프레이저 중위의 회고이다.


우리 기(機)가 교민 철수를 위해서 파견한 수송기 호위를 위해서

김포 비행장 상공을 초계 비행하고 있을 때 낮게 깔린 구름 속에서

북한 전투기 야크 7B기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찰리 모란과
프레드 라킨스가
조종하는 같은 편대의 다른 F82 G에게 덤벼들었다.


그 북한기의 사격 솜씨가 상당히 좋아서 찰리 전투기의

꼬리를 명중시켜 파편을 여러 곳으로 비산시켰다.




내 비행기의 조종사 허드슨은 미끄러지듯 기수를 돌려 도전해온

북한 편대 편대장기의 후미를 물었다.


우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은 것을 알아 챈 북한 기는

옆의 구름 속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우리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는 불과 몇 십 미터 뒤에서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름 속에서도 적기를 잘 볼 수가 있었다.


우리의 첫 발사는 적기의 기체 후미 파고 들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적 야크기 조종사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힘든 상승을 시도했다.


우리는 뒤쫓아 가며 적기의 우측 날개의 연료탱크 부분을
조준하고
다시 한 번 기총소사를 가했다.

이 사격으로 연료 탱크에 불이 붙었다. 

오른쪽 날개의 후랩과 보조익이 떨어져 나갔다.

보기에도 적기는 더 이상 조종 가능 상태가 아니었다.


적기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후미를 따르던 우리 기는 적기를

충돌 일보 직전까지 근접했다,


나는 적기 조종사가 후방석을  뒤돌아보며  뒷 조종사에게
뭐라고
고함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다 틀렸으니 탈출하라고 했을 것이다.]



6·25전쟁에서 최초로 격추된 야크 7B형-복좌형이다.
-------------------------------------------------


적기 조종사는 캐노피를 뒤로 밀고 날개 위로 기어 나왔다.

그는 다시 뒤로 기대듯 돌아보며 후방석 조종사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후방석 조종사는 너무 겁을 먹었던가 부상했던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적 조종사는 날개에 선채 낙하산의 고리를 당겼다.

펴진 낙하산은 그를 잡아채듯 기체에서 끌어냈다.

 



북한 주력 전투기 -야크 9기
이 전투기는 대전폭격도 했고 경북 의성 상공까지
날아와 공군의 연락기를 격추 하기도 했지만
원체 막강한 미군 항공력에 일찌감치 다 소멸되었다.

-----------------------------------------------------------
개전 초기 북한 조종사를 포로로 잡았다는 한국군 기록은

있지만 그의 운명에 대해서 기술한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군복무시 한국군이 철수하면서 이 조종사를 사살했다는
풍문을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잠깐 들은바 있다.

그는 일본 육군 다찌아라이[太刀洗]소년 비행병학교 출신
비행사들은 한국 공군에도 많이 복무했지만 북한 공군에도
다수 합류해서 6·25전쟁 침공의 선두에 섰다가 미공군에 의해서 
대부분 전사했고 나머지 생존 조종사들은 김 일성에게
숙청당했다.
일본군 출신을 절대 신용하지 않았던 그에게 실컷
이용만 당했던 것이다.
------------------------------------------------------------


그의 탈출 직후 기체는 뒤집어 지면서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공중전은 불과 300미터 이하 상공에서 벌어졌다.



허드슨에게 격추되는 야크기가 옆 편대원에게 꼬리 부분만
촬영되었다.
--------------------------------------------------

기지로 돌아온 뒤에 편대원 모란이 적기 한기를 격추시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미에 붙은 적기를 따돌렸지만 실속에 빠졌다.

그가 겨우 기체를 바로 잡았을 때 바로 정면에 다른

야크기가 날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서 그 적기를 격추시켰다.

F82 야간 전투기
----------------


우리 두기만 적기를 격추한 것이 아니었다.

적 야크기를 격추했던 다른 편대기인 F82기가 또 있었다.


북한 공군의 액운은 이것으로 끝나지만 않았다.

그날 늦은 오후 피난민들을 태우고 이륙하려고 했던 수
송기들을 공습하러
나타났던 8기의 북한 IL-10 공격기들은
출현한 적기를 보고
고공에서 급히 강하한 미 공군 F80
슈팅 스타기들에게 4기가 격추당했다.



김포 비행장에서 격추된 북한 IL-10 공격기
북한은 이 우수한 대지 공격기가 60기나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


3일간 김포 비행장에서 수행했던 피난 민간인 구조 작전은

한명의 민간인 피해도 없이 완수되었다.


------------------------------------------------

허드슨에게 격추된 북한기가 야크 7B형이라는 기록도

있고 야크 11형이라는 기록도 있다.

여기에 다른 편대기가 격추한 북한 전투기가 LA-7형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북한이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전투기를
혼성 편성해서
출격시킬 리가 없다.

격추기 조종사들이 적기들을 혼동한 듯하다.

여기서는 격추기의 기록자인 프레이저의 말대로

야크 7B형으로 포스팅한다.

그래도 북한이 정찰기도 아니고 공격편대에 복좌 전투기
[연습기]를
섞어
보낸 것은 특이한 일이다.

---------------------------------------------------------


앞에서 기술했던 적 야크 7B기 한국 전쟁 3년 동안 유엔군
해공군기에게 격추당했던 공산측 976기의 첫 전투기였다.


북한 공군은 개전 일부터 서울 상공에 나타나서 활개를 펴고
시설이나
국군 병력들에게 기총 소사를 가했다.


그들의 큰 수확은 개전 당일 여의도 기지에 [주기駐機]해 있던

한국 공군기 10기에 기총소사를 해서 7기를 파괴시킨 것이다.

한국 공군사는 이들이 L 4 정찰기라고 말하고 있다.


 

L 4 정찰기 - 파이퍼 커브라는 민간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내구성이 아주 좋은 기체로서 비활주로에도 
별 문제없이 쉽게 착륙했다.
지금도 알래스카에서 사용하는 개인들이 많다.
--------------------------------------------------------


전쟁 초장부터 이 정도로 성과를 올렸다면 북한 공군의 간도
커질만큼 커졌을 것이다.

대공 사격도 미미하고 한국 공군의 저항도 없어졌으니
이들이 마음 놓고
떼거리로 날아다니다가 박살났다고 하겠다.


공중전 능력이 형편없는 복좌 연습기를 미군의 최신예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싯점에도 출격을 시킨것은 이런 잘못된
자신감의 타성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단 이틀째 되던 날 이날 북한 공군은
무려 7기나
격추 당했다.


이날 이후 북한군은 그들이 소련으로부터 미그 15기를
공여
받을 때까지 한번도 유엔기에 도전해오지를 않았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gibson guitars 2012.09.24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뭇거리며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것은 투수뿐 아니라 전 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3. uefa live 2012.09.25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4. workout tips 2012.09.26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섰다가 미공군에 의해서 대부분 전사했고 나머지 생존 조종사들은 김 일성에게

  5. survival kit 2012.10.21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 매우 흥미 스마일은 내가 읽기를 사랑하고 항상 이런 정보를 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찾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 위대한 문서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6. dog fencing 2012.12.03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와 사실 다음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과 함께 수업에서 내 문서는 고맙게도 내가 당신의 웹사이트에이

  7. modern rattan furniture 2012.12.27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최근과 함께 수업에서 내 문서는 고맙게도 내가 당신의 웹사이트에

  8. modern rattan furniture 2012.12.27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최근과 함께 수업에서 내 문서는 고맙게도 내가 당신의 웹사이트에

  9. free credit report 2013.01.09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의 힘싸움 과정에서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경계가 나뉘

  10. obat alami kencing manis 2013.02.06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 웹 사이트를 보는 선호합니다. 이 놀라운 소스에 대한 감사!

  11. online account software 2013.02.12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我真的很感谢您的文章,请您解释一下每一点非常好。感谢分享这些信息,而且我一定会喜欢读你的下一篇文章。

  12. phen375 2013.03.05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nformative and interesting which we share with you so i think so it is very useful and knowledgeable. I would like to thank you for the efforts. I am tiring the same best work from me in the future as well.加。

  13. free online casino 2013.03.20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分享你的事,我很高兴,让我知道这么多关于您的信息。

  14. cipro 2013.03.24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트윈 머스탱은 야간뿐 아니라 장거리 호위기로 선정된 겁니다. 당시 한국공항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맥아더의 방문때에 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후의 여러작전에는 그렇게

  15. online poker 2013.03.26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相当令人惊异的文章。这真的是真正的非常精彩的和有益的职位。感谢您与我们分享他的!这是我第一次去参观。

  16. discount scrubs 2013.03.26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e are really grateful for your blog post. personalise d gifts You will find a lot of approaches after visiting your post. Gre和有益的t work.

  17. icing cupcakes 2013.03.29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팬이면서 만화를 좋아 하시는 분들이라면 대개는

  18. Torrance 2013.04.06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어디서 출항했느냐’는 뜻의 신호 불빛이 또다시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파도 저 멀

  19. online masters degree in marriage and family therapy 2013.04.24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호 불빛이 또다시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파도 저 멀 신호 불빛이 또다시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파도 저 멀 신호 불빛이 또다시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파도 저 멀

  20. bonus casino 2013.05.01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这些后总是鼓舞人心,我更喜欢阅读质量的内容,所以我高兴地发现很多好点的在后,写作简直太棒了,谢谢你的文章......

  21. Social Bookmarking 2013.05.27 0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하고 항상 이런 정보를 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찾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 위대한 문서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