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토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21 철원 승일교 박승일 대령의 최후 행방은? (33)
  2. 2010.01.15 5. 수뇌부의 무능 그리고 한강교 (88)
  3. 2010.01.04 3. 3일만에 능욕당한 서울 (3)

철원 승일교 박승일 대령의 최후 행방은?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10.21 08:39


서울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한탄강 상류에 놓인
승일교라는
다리와 만나게 된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을 있는 다리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다리는 남쪽 절반과 북쪽
절반의 디자인, 즉 생김생김이 다른 언바란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승일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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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승일교라는 다리 이름이 남쪽의 이승만 정부가
절반을 짓고
북쪽의 김일성 도당이 절반을 지어
승만의 승자와 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 교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자 승일교라는 이름은 6·25전쟁에서 평북
덕천 전투에서 전사한 박승일 연대장[대령]을
기린 이름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승일교 다리 현장의 다리 설명이나 인접 승일 공원에도
전사한 박승일 대령을 기념해서 명명했다고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박승일 연대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좀 알아가자 나는 꼭 같은 덕천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고근홍 대령이라는 분도 전사했음을 알았다.


고근홍 대령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다부동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국군 1사단이 분전할 때
백선엽 사단장 지휘 하에서 김점곤, 김종갑 대령들과 함께
연대장으로서 격전중의 어려운 전황에서 부대를 지휘했던 분이다.


나는 다부동 전투에 관련된 여러 글을 자주 읽어서
이 분의 이름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박승일 대령도 처음 접한 분이었다.
관심을 갖자
차츰 관련 정보들이 들어왔다.

고근홍 대령은 일본군 지원병 출신이고 박승일 대령은
만주군 출신으로서 둘 다 육사 1기 생이었다.
박대령은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20년 생이다.


오른 쪽에서 두 번째 카이젤 수염을 기른 분이 박승일 대령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별을 단 철모를 쓴 분이 7사단장 신상철 준장.

내가 유일하게 구할 수있는 그 분의 사진이다.

승일교가 있는 철원군에서 행정 경로를 밟아 성우회와
연락해서 육사 1기생 앨범을 구해 보면
박승일 연대장의 사진을 찾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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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박승일 대령이 덕천에서
고근홍 대령과 같은 시기에
전사한 것이 아니라
전투 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글을 볼 수가 있었다.


글을 쓴 분은 6·25전쟁때 한국군 총 참모장이었고
총리도 역임한 정일권 장군이었다.


그 분은 회고록에서 박승일 대령이 부하들과 함께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산악지대로 탈출해서 한동안
유격전을 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분은 박승일 대령이 유격전을 하다가 중공군에게 몇 겹으로
포위당한 뒤 무선으로 "중공군이 온산을 겹겹히 포위했다"라는
마지막 전문을 보내고 소식이 끊겼다고 썼다.


나는 그래서 박승일 대령이 상당한 세월 북한
북부
산악지대에서 유격 활동을 하다가 최후를
맞은 것으로 상상했었다.


그러면서 연대 급에 지급된 무선기가 어떻게 남한까지
교신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국군 3사단 장병들.
이때만 해도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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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여 년 전, 북한 문제에 관한 글도
많이 쓰고 책도 여러권 출판했던 이기봉 선생의
저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50년 11월 덕천에서 작전중인 국군 7사단, 오른쪽의
무전기를 맨 병사가 이 기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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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국군 박승일 연대장의 7사단 5연대 소속
무전병으로 근무하다가 같은 덕천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뒤 평양 인근 순안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되었다가 1951년 4월 초 탈출 했었다.

그러나 대동강을 건너다가 붙잡혀서
평양 사동 교화소에서 당분간 수감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다시 탈출, 갖은 역경 끝에 그 해 5월 25일
임진강을 넘어 국군 1사단으로 귀대했다.

그는 그의 저서 제 5 전선- 장백산에서 임진강까지-
이라는 저서에서 포로가 된 박승일 연대장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사실을 전하고 있다.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 온 미군들 모습.
한 책자는 이들이 1951년 2월 중공군 4차 전역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미군 전선으로 귀환한 미군들이
라고 되어 있으나 다른 책자에는 중공군이 석방한 미군
포로들이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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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은 포로가 된 직후 온 천지가 얼어 붙는 추운 날씨에
북으로 끌려 가면서 수많은 참혹한 장면을 목격을 했었다.


그는 북으로 끌려가는 도중 고근홍, 박승일 대령이
포로가 되어
북한군에게 넘겨졌다는 정보를 동료
포로들에게 들었다.


궁금해 하던 그는 우연히 포로가 된 박승일 대령을 목격했다.
이 선생은 자기의 자서전에서 그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포로로 끌려 가서 아연 광산인 초산군 화풍 광산
얼음굴에서 고생하다가 다시 분류되어 이동하기 위해
광산 사무소 앞에 전 포로들이 집결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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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병들의 포로 인원 점검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도중이었다.
“야! 저기 7사단 5연대장 아녀?”


포로 중에 누가 이렇게 외치며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켰다.
나는 귀가 번쩍 틔어 그 쪽을 바라봤다.


물론 나뿐이 아니라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봐도
그는 분명히 박승일 대령이었다.


그러나 그의 몰골은 너무나 처참하였다.
그는 지난 날 [6·25전쟁]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서부터
이른바
귀신 유격대 대대장 [당시 제 5사단 3연대의]으로서
발군의 전공을
세운 거구와 카이젤 수염으로 이름난
명 지휘관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운(武運)이 다 했단 말인가?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무척 인정 많고 부하를 친형제처럼 아끼던 지휘관이었다.
적병에게도 인자했다.


지난 날 중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북한군의 포로를
자기 지프에
싣고 의무대로 달리는 걸 보았고 때때로 최전방
초소에 나가 사병들과
산병호에서 비를 맞으며 밤을
지새우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나는 박 대령의 부대[국군 제 7사단 5연대]에 배속되어
낙동강 전선의 영천에서부터 여러 번 전투에 참가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덕천에서 중공군 포위망에 빠져
함께 적중을
헤매다가 헤어지지 않았던가?


그 후 포로가 된 박 대령은 이 수용소 어딘가에 따로
감금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만치 둔덕길 위에서 역시 국군의 고급장교
[연대장 또는 대대장급]로
짐작되는 수명의 다른 포로와 함께
소 달구지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박 대령의 얼굴에 그 인상적인
카이제르 수염이 안 보인다.
스스로 깎아 없애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 쓰라린 심정이 오죽 했을까?


일반 포로들이 모여 서있는 광장 저만치 둔덕길 위에서
박 대령 일행을 태운 소달구지는 이내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위는 착검한 총을 든 5-6명의 북한 병들이 따랐다.

“ 연대장님!”
포로 가운데 누군가가 이렇게 불쑥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박 대령은 달구지 위에서 머리에 쓰고 있던 방한모를
벗어
우리를 향하여 흔들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머리를 죄수처럼 박박 깎지 않았는가?
박 대령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계속 방한모를 흔든다 .

서글픈 듯한 미소를 띄우며---


“ 연대장님 !”

“ 박 대령님 !”

포로들의 목 메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잇달아 일어난다.
박 대령은 달구지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 팔을 쳐들어
포로들의 아우성에 응답을 했다.

“아, 아니! 이 동무들 덜 돼 먹질 않았구만잉 !
  닥치라우. 쌍 ---!”

북한 경비병들은 당황해서 포로들의 머리 위에 총대를
휘두르며
악을 썼다.


박 대령을 부르는 포로들의 아우성은 곧 잠잠해져 버렸고
박 대령과 그의 몇몇 고급장교 포로들을 태운 소달구지는
계속 계곡 아랫길로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압송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압송 당하고 있는 본인들도 물론 모르리라.
이것이 박승일 대령의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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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 선생은 고근홍 대령의 신상도 전했다.

이 선생은 앞에서 말했듯 포로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시 체포되어 평양 사동  교화소에 구속되었었다.


그는 이곳에 고근홍 대령이 갇혀 있었고 그가 수준 이하의
대접에 분노하여 격렬히 항의하자 교화소 경비자가 그를
구타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혜산진에 도달한 미 7사단 17연대 장병들이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을 바라보고 있다.

서부 전선이나 장진호 방면과 달리 이 방면에는
중공군이 투입되지 않아 한미 연합군은 비교적 쉬운 북진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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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대장이 포로가 된 덕천 전투를 간단히 소개한다.
한국군의 7사단이 주축이고 6, 8사단이 구원군으로 나선
군단 병력이 중공군의 대병력에 두들겨 맞고
붕괴 된
덕천 전투는 1950년 11월 26, 27일 양일간에 걸쳐
평북 덕천에서
발생했었다.


중공군이 군우리와 운산에서 미군들과 한국군들을
격파해서 재미를 본 제 1차 전역에 이어 보급과 정비를
마치고
다시 공세를 시작한 2차 전역에서 7사단을 주축하는
국군의 3개 사단이
무참히 당한 것이다.


포위되었던 신 상철 7사단장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미 고문관과 함께 연락기 L-19로 탈출했다.

사단장도 포로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장군을
포로로 넘겨줄 수 없다는 상부의 결정에 의한 지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덕천에서 북창 방면으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는 설이 유력하기도 하다.]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왼 쪽]과 24사단장
윌리엄 딘소장[오른 쪽].

그는 대전 전투후 35일간 헤매다가 포로가 되었다.
북한은 그가 포로가 된 사실을 1년 반이 지난
1951년 12월 18일까지 알리지 않았다.

북한은 그의 손가락 밑에 성냥개비 같은 뾰족한 것을
넣고 고문했었다.

체구가 당당했던 그가 돌아 올 때는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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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사단의 국군 패잔병이 우글거리는 덕천의
텅빈 7 사단 CP에 모인
연대장들은 8사단 10연대의 고근홍 대령,
6사단 2연대의 김봉철 대령,
7사단 5연대의 박승일 대령,
7사단 8연대의 김용주 대령이었다.


이들은 선임인 고근홍 대령을 임시 총 대장으로 추대하고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부대가 혼재 되어 와글거리는 상황에서 지휘할
병력조차
파악 할 수가 없었다.

김용주 대령과 김봉철 대령은 산을 타고 탈출했지만
그런대로 부대를
편성해서 밤까지 저항하던 고근홍, 박승일
두 연대장은 부대가 궤멸되고 포로가 되었다.

박승일 대령은 산위에 고립되어 겹겹으로 포위 된 뒤에
중공군의 거듭된
권고에 할 수없이 산을 내려와 투항했다고 하니
앞서 정일권 장군이
회상한 유격전은 이 짧은 전투가
와전되어서 그렇게 오해를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덕천 전투에서 피해가 컸던 7사단 중에서도
박승일 대령의 5 연대는 거의 전멸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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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다.

나는 그 뒤에도 틈만 나면 두 연대장이 북한에 남긴 무슨 자취가
있을까하고 자료를 찾아 보았지만 그런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에 간 기회에 그 곳 연변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자료를
찾아 보았는데
두 분의 자취는 없었고 좌익 월북자 강 태무
소령의 전후 행적만 부수적으로 수확할 수가 있었다.

이 자는 표무원 소령[지원병 출신]과 함께 군에 잠복하고
있었던 좌익이었는데 숙군의 초점이 자신들을 겨누자
지휘하던 대대를 이끌고 이북으로 넘어가서 국군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알아보니 그 자는 전쟁이 끝날 무렵 동해안에 주둔한
북한군의
사단장이 되어 있었다.


더 찾아보니 세월을 흘쩍 넘어 1980년대 초, 노쇠한 강 태무가
자신에 의해 강제 월북한 부하들과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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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흑인 구성 24연대의 병사들-
전투력에 문제가 있어 흑인 연대는 해체되었다.

중.북한은 유엔군 포로들을 국군들 보다는 비교적
나은 대우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1951년 봄에 수용소에
창궐한 발진 티푸스로 절반이 사망했다.
이 기간 국군 포로가 당한 학대는 이루 표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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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연대장은 물론이고 고근홍 연대장의 그 뒤
소식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접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두 분이 과연 전사 처리가 되었는지 알기위해
전쟁 기념관을 찾아가 전사자 명단을 검색하니 고근홍 대령은
덕천에서
사망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단지 전사일이 덕천 전투가 있던 때보다 열흘 정도 빠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박승일 대령이 전사자 명단에 보이지 않았다.
검색을 여러번 시도해봐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한가닥
기대감이
생겼다.

행여 내가 모르던 사연이 있어 박대령이
전사한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기 때문에 다르게 분류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이었다.

국군 전사자를 관리하는 국방부의 성기욱 사무관에게
긴급 부탁을 했다.


이런 것도 마치 국가 기밀인양 쉬쉬하던 인간들도 있었던지라
조바심이 났지만 이 국방부의 얼짱 사무관은 엘리트답게
이 주제의
중요성에 빠르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가 찾아낸 자료는 박승일 대령이 역시 덕천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실오라기 같은 기대가 사라지자 낙심천만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더 알아 볼 길은 없었다.


승일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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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탄강의 상류에 걸린 승일교는 흐르는 물에
묵묵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다리는 등록 문화재 26호로서 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북한 김일성 일당의 손아귀에 그 운명이 던져진 것을
마지막으로 보이
고 사라진 박승일 대령의 최후는 물론
고근홍 대령 두 분 최후의 진실이 어땠는지 정말 궁금하다.

북한과 교류가 있으면서 궁금했던 이광수 선생이나
조만식 선생의 마지막 모습들이 밝혀진 것처럼 북한에서
종적이 묘연해진 행방불명 국군중 제일 계급이 높았던
두 분 국군
장교들의 마지막도 밝혀졌으면 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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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울프 독 2010.10.23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ppsp님
    감사합니다.

    연대장 구타 정보가 자꾸 출현하는 것을 보면
    저놈들이 이분들을 무척 구타한것은
    그 실제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3. 이재필 2011.07.04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큰아버지 두분이 형제분으로 7사단5연대에서 같이 전투에 참전하셨죠 큰형님이 바로 덕천에서 중공군에 잡혀서 북으로 잡혀가시다가 동료들과 함께 탈출하셔서 몇달몇일을 남쪽으로 산맥을타고 남아하셨는데 얼마후 대구 근방까지 오셔서 구사일생으로 귀환했지요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동생분은 아직까지 행방불명입니다 같은연대 대대인데 중대가 달랐는데 영천전투에서 작은 부상으로 후송같다는 같은중대 동료의 말이 마지막으로 듣지못햇죠 그후 병적확인 결과 최종부대가 7사3연대로 나오고 행방불명이 된시점이 51년11월4일 입니다 그시점이 강원도 양구에서 중공군에 밀릴때 오마치 고개에서 중공군 일개중대에 고개가 점령당하면서 3개사단이 괘멸된 시점인것 같은데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요 그리고 전사자 기록을 조회해도 같은 이름이 많고 그시절 시골집으로 전사통지서인지 행방불명 통지서인지 할머니가 받어셨다는데 워낙 빨치산이 많은 시절이라 경찰관이 주고간 서류를 가족들을 보여주지도 않고 아궁이에 넣고 불질러 버려서 전사장소도 군번도 현제까지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4. Medical Tourism 2012.02.08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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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지나가다 2012.06.18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프네요...울컥하여 막걸리 힌잔 올립니다.............김일성과 좃도없는 공산주의 그리고 남북 분단과 내전!!!!!!그런 지금 남쪽의 종북은 뭡니가?

  8. 지나가다 2012.06.18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모든 비극은 스탈린과 김일성 그 좃같은 역도넘입니다...두고 보십시요...역사가 평가할겁니다...물론 미국/영국의 나몰라(남이라고)하는 태도도 있지만...그리고 근원적 실마리는 일본넘과 무능한 우리 민족에도 있지만..... 결국은 김가놈 그넘입니다........통일이 오고 그넘들의 실체가 들어날때 우리는 소름 끼치는 진실을 알겁니다!!!!

  9. do my writings 2012.12.22 0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대학들이 주변에 널려있어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건물 하나인 것 같았는데, 아마도 주변의 건물들을 함께 사용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10. what are the top ten research paper writing companies 2013.01.12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보다도 여기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울 상당히 확신합블로그를 즐겨찾기에 나의 아이들이 여기 자주 점검해야합니다.

  11. buy VPN 2013.02.02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멋진 사이트를 살펴 봤으니, 내가 너무 좋은 사이트를하지 발견했습니다. 이 웹 사이트 원래 그룹의 방법과 certainloy 상태의 수가 상당히 교육입니다. 확실히 사람이 열정적인 독자를 활용하여 제공하는 것 정보를 즐기다!

  12. Rolex Day-Date 2013.02.19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의 좋은 소식입니다. 필자 전에 물건을 읽고 당신은 너무 멋져요.

  13. herbal 2013.05.30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使用OpenVPN的最大优点是,安装VPN客户端后可以快速地切换VPN服务器和快捷连接。价格为14.99美金/月

  14. maag herbal 2013.05.30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너무 좋은 사이트를하지 발견했습니다.

  15. pelangsing 2013.05.30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너무 좋은 사이트를하지 발견했습니다

  16. 김석 2013.08.08 0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요한 전쟁의 기록을 보고 지식을 얻고자 하는데 사진들이 모두 깨졌습니다. 웹사이트 관리가 안되는 것인지요.

  17. online transcriber 2013.08.10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은 동유럽의 직업 영역에 대한 자신의 협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의 직업 영역 경계에 동의하고, 그들이 어디에 서 각각 일본의 항복을 받아 들일 것 때문이다.

  18. Look for Christina Noble Movie Here 2014.02.16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의 직업 영역 경계

  19. what does bubblegum casting do 2014.03.23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승일교라는 다리 이름이 남쪽의 이승만 정부가

  20. Go to Crib and Whip 2014.03.27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5전쟁, 강원도, 공비토벌, 미군, 박승일, 서울, 승일교, 연대장, 이승만, 중공군, 지리산, 철원, 철원군, 포로, 한탄강

  21. Natural Garcinia Cambogia 2014.05.22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この記事は、多分この記事は、ここで説明を受けされる必要があり、特にここに掲載の画像は、他の人と比較して、このブログは、より優れた作るのですので有益である

5. 수뇌부의 무능 그리고 한강교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1.15 14:19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한민국의 심장은 서울이었고 북한이 이곳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여 주력을 집중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고, 같은 이유 때문에 국군은 이를 결사적으로 지키려 하였습니다. 10만의 국군을 이끌던 참모총장 채병덕(蔡秉德) 소장은 26일 오전까지만 해도 “서울 사수를 위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의정부를 지켜야 한다”며 예하 부대를 독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와 상관없이 당시 육군 수뇌부가 보여준 모습은 무능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초에 촬영된 서울전경]


    수도방위를 위해 공비토벌 임무를 담당하고 있던 후방의 사단들을 급거 서울로 이동시킨 것은 굳이 작전이라 할 사항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귀중한 자원을 어떻게 방어전에 투입하여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군 수뇌부는 전혀 준비가 없었습니다. 채 총장은 단지 무너지고 있던 전선을 어떻게든 틀어막겠다는 생각에만 매몰되어 후방부대들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즉시 의정부지역에 투입하도록 명령했는데, 이것은 마치 방화선을 구축하여 근본적으로 산불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물 한 양동이씩 준비되는 대로 거센 산불을 향해 뿌려대기만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예비 병력의 축차투입(逐次投入)은 단순히 의정부 방어의 실패로 그치지 않고, ‘서울 함락과 국군 주력의 소진(消盡)’이라는 비극적인 사태를 야기하였습니다.  6월 27일 10시에 창동방어선이 무너지자 북한군의 서울 진입은 시간문제가 되었는데 그때 그 순간까지 정부는 단지 국민의 동요를 막겠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국군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있다’고 상황을 오도하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정작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이미 그날 새벽 03시에 150만의 서울 시민을 적의 군홧발 아래 남겨두고 서울을 빠져 나갔습니다.

[개전 초의 무능으로 인하여 많은 비판을 받는 채병덕 참모총장]


    그러자 단지 위정자들이 서울을 비웠다는 이유만으로 채 총장은 그때까지 주장해오던 서울 사수 결심을 번복하기에 이르렀고 육군본부를 시흥으로 이동하여 한강을 방어선 삼아 저항하겠다고 천명했으나, 막상 한강 이북에서 고군분투 하던 부대들의 효과적인 철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습니다. 의정부축선으로 남침한 북한군은 제3사단과 제4사단, 그리고 105전차여단 예하의 전차 2개 대대였는데 반하여, 이를 막기 위해 포진되어 있던 아군은 제7사단과 후방에서 긴급 전개한 제2, 5사단 그리고 수도경비사령부의 4개 사단이었습니다. 비록 화력에서 절대열세였지만 당시 미아리고개를 경계로 하여 대치중인 피아간의 병력규모는 이처럼 얼추 비슷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안심하고 시가전을 펼칠 수 있도록 조치한다던지 아니면  안전하게 한강 이남으로 빼어내어 새롭게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단지 위정자들을 쫓아 군 수뇌부만 안전지대로 내려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무책임한 지휘의 절정이 6월 28일 02시 30분에 벌어진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하는 작전이었는데, 아무런 통제나 대피도 없이 작전이 감행되어 피난민을 포함한 약 800명의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단지 2대의 T-34만이 미아리를 넘었을 뿐이었고 아군의 대다수 주력부대는 아직도 한강 이북에서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점령된 서울은 무자비한 폭력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한강 이북에서 작전하고 있던 부대는 제1, 2, 5, 7, 수도경비사령부였는데 한강교 폭파로 말미암아 이들 육군 주력부대들의 철수로가 자동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 따라서 국군은 야포, 박격포, 차량 등 주요장비를 폐기하고, 소총만을 휴대한 채로 나룻배를 이용하여 소부대 단위로 도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울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겠다면서 개념 없이 저지른 작전이 결론적으로 주력을 사지에 내팽겨 치고 수뇌부만 이동한 어처구니없는 행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군의 부대편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병력 숫자도 개전 당시 10만여 명이 2만5천여 명으로 급감 했습니다.

 
    안전하게 피난갈 수도 있었던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수많은 시민들이 남겨진 서울에서 벌어진 일은 바로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들이대며 서울을 접수한 북한이 새 세계를 열겠다며 자행하였던 일은 반공인사 살해 같은 피의 학살극이었고 이것은 이후 오래 동안 동족 간에 씻기 힘든 상처와 증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을 초래하는데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당시의 위정자와 수뇌부들의 책임도 컸다는 사실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할 역사의 교훈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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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피알앤애드 2014.06.25 1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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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3. 3일만에 능욕당한 서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1.04 19:35

 3. 3일만에 능욕당한 서울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거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장단반도, 문산, 동두천, 춘천 그리고 강릉의 5개 방향으로 38선을 일거에 돌파하여 남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2개 군단으로 구성된 20만의 북한군 선두에는 잘 훈련되고 준비도 완벽하게 마친 7개 사단(서에서 동으로 제6,1,4,3,2,7,5사단)이 도열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로 구성된 완편사단들이었고 더불어 제105전차여단 예하의 전차부대를 배속 받아 화력이 증강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바로 뒤에는 돌파구를 확대하면서 후속 진군할 2선부대로 6개 사단(서에서 동으로 제7,10,13,9,15,8사단)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전쟁개시와 함께 북한군은 38선을 돌파하였습니다]


                                    [전쟁초기 북한군의 공격축선 상황도]


   반면 당시에 국군은 8개 사단(수도경비사령부 포함) 그리고 1개 독립연대로 구성된 총10만이었는데, 이중 4개 사단과 1개연대가 38선 일대를 경계하고 있었고(서에서 동으로 제17연대,제1,7,6,8사단) 나머지 사단들은 후방에서 공비 토벌 등의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삼각편제 기준으로 완편 된 부대는 4개 부대밖에 없었고 이 또한 포병연대가 배속된 북한군과 달리 15문으로 구성된 포병대대밖에 없어 평면적으로 전력을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병력으로는 1:2 수준이었지만 화력을 계량화한다면 1:5수준으로 북한군이 압도적으로 국군을 앞서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앞서 알아보았던 것처럼 6월 24일 0시를 기해 국군은 그동안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면서 많은 병력이 휴가, 외출 등을 나와 있었던 관계로 개전 시점의 전력차이는 더욱 벌어져있던 상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동두천-포천으로 돌파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진군할 북한군 주공은 2개 사단(후속할 제13사단까지 포함하면 총 3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으로 구성된 총 3만2,000명 수준이었는데 반하여 이를 방어할 국군 제7사단은 총 7,000여명의 병력 중 2,500여명이 휴가나 외출중이어서 4,500여명만 부대에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병력으로도 7배였지만 화력은 무려 18배가 벌어진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개전이 되자 국군의 이동이 이루어졌으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력차이 중에서도 이후 두고두고 국군에게 오래 동안 콤플렉스가 되었을 만큼 가장 위협을 주었고 또한 막아내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전차였습니다.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개전 당시 북한군은 242대의 소련제 T-34전차를 남침의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T-34는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당대 최고의 명품전차였는데, 그중에서도 소련이 북한에게 공급한 T-34는 85밀리미터 포를 장착하여 화력이 강화되고 장갑도 증가된 최신형이었습니다. 반면 이를 막아내기 위해 국군이 보유했던 장비는 2.36인치 로켓포와 57밀리미터 대전차포였습니다.


   게다가 이들 대전차무기로 T-34의 장갑을 뚫을 수는 없었으며 더구나 대다수의 병사들이 전차를 북한군의 남침 당시 처음 보았을 만큼 구체적인 공격방법조차 모르던 상태였습니다. 비록 많은 용사들이 화염병이나 포탄을 직접 들고 특공작전을 벌여 전차의 진격을 막아내어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북한군 주공이 엄청난 압력을 가하여 내려온 의정부축선은 제7사단의 허무한 붕괴와 함께 돌파당하며 개전 하루 만에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가 북한군에 점령당하였습니다.


                                         [서울로 입성한 북한군 T-34전차]


   그런데 이런 전선의 위급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총지휘하여야 할 정부와 군 수뇌부는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였고 어떻게든 서울을 방어하겠다는 조급증에 이끌려 후방에서 올라온 부대들을 축차적으로 전선에 투입하는 악수를 두어버렸습니다. 결국 뿔뿔이 쪼개져 후방에서 서울로 이동한 제2사단과 제5사단 예하부대들은 대오도 정비해보지도 못하고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차례차례 전선에 투입되면서 소진되어 버렸습니다. 비록 3개 사단을 쏟아 부으며 피로써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시내전역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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