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06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22)
  2. 2010.04.01 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5)
  3. 2010.01.21 8. 맨주먹으로 막아낸 하늘 (3)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5.06 20:17

1951년 함경북도에 갑산지역에 낙하산으로 투입 된 31명의 영도부대는
이 지역에서 자생해서 활동하고 있던 백호부대라는 유격대와 합류해서
활기봉을 근거지로 삼고 왕성한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영도부대는 미국 CIA에서 조직하고 훈련시켜 적지에 투입한 유격대였다.
본부가 부산 영도에 있다 해서 영도부대라 불렸다.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도부대가 험준한 산악지대인 갑산과 삼수, 혜산진 등에서 출몰하여
후방지역에서 유격활동을 펼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지역 공산당 간부들은
1951년 8월 29일 갑산에서 삼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 그리고 군 간부들이 회합을 가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또한 남한 유격대 소탕의 결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이 지역의 리[里]당 위원장같은 조무래기 공산당 간부까지
총망라해서 참석한 붉은 대회였다.

갑산에 정보망을 구축(構築)해 놓았던 백호부대는 이 정보를 입수하자
무선으로 부산 영도의 본부로 바로 보고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논의가 오고 간 끝에 이들 공산당 수뇌부를 공중 폭격으로
격멸하는 임무가 동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해군 기동부대인
CVG-5에게 주어졌다.

갑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항모 에섹스 함 - 태평양 전쟁중에 24척이 건조된 에섹스급의 선두함이었다.

그 때까지 미 해군기가 갑산같이 먼 북쪽까지 출격한 일은 없었다.
먼저 10월 25일 정찰기가 고공으로 갑산 상공을 비행하며
공산당 간부회의가 열릴 갑산 읍내 중심부 지역의 사진을 촬영해왔다.

조종사들은 정찰기가 촬영해온 사진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목표를 익혔다.

특징있는 주변의 지형지물과 건물들이 공격 목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목표 지역은 동서쪽에 큰길이 감싸고 있었고 남쪽에는 도랑이 있었다.
동쪽의 산언덕 자락이 목표지역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주요 목표들은 담으로 나누어진 세 개 구역 내 건물들이었다.

건물들은 모두 16 동이었다.
각 건물들은 목재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화재에 무방비인 취약점이 있었다.

이들 건물 중의 한 동은 북한의 내무서였다.
북한군 대대 본부 건물도 있었다.

그리고 북쪽 구역에 있는 제일 중요한 목표인 조선 노동당 강당도 있었다.
이 강당에서 붉은 간부들의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 낯선 미 해군기의 출현을 위장하기 위해서 10월 28일 갑산에서
동남쪽으로 35마일 떨어진 속현이라는 곳의 공장 시설을 폭격했다.

1951년 10월 29일 새벽 03:30과 04:00 사이에 기동부대 조종사들은 모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출격 브리핑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고 숙지했다.

갑산에서의 공격은 9시에 개시될 예정이었다.
VF-53의 비행 부대장 클레이튼 피셔 중령은 갑산의 대공 사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간 주로 적의 대공화망이 밀집 된 철도이나 교량을 공격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던 조종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안 좋은 정보도 들려주었다.
갑산이 구조 헬리콥터의 운행 거리 밖이기 때문에
만일 격추되더라고 구조 헬기의 파견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전에 공습이 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격대는 이륙과 동시에 파도 높이로 바다를 건너 육지에 진입하면
나무 높이로 저공 비행할 예정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면 수직으로 고도를 올려 공격하는 것이 작전의 전모였다.

이들 공격대의 조종사들은 갑산일대에 영도 부대의 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공습과 동시에 이들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07:30에서 07:45 사이에 CVA-15의 항모(航母) 에섹스 함에서
콜세어 기들과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이륙하였다.


갈매기 형의 날개를 가진 F4U 콜세어기

대기는 맑고 조용해서 비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피셔 중령이 8기의 F4U 콜세어 기 공격대를 지휘했다.

8기의 콜세어 기들은 두 개의 4기 편대로 구성했다.
각 콜세어 기들은 500파운드 폭탄 한 발과 4발의 소형 폭탄들을
적재하고 있었다.

VF -54의 비행대장 폴 그레이 중령이 지휘하는 8기의 AD 스카이레이더 기들도
4기 일개 편대로 구성되었다.

이 대형 공격기들은 2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300갤런의 네이팜탄,
8발의 소형 250파운드 폭탄을 운반할 수가 있었다.
단발 프로펠라 기로서는 대단한 무장량이었다.

6ㆍ25전중 항모에서 이륙하는 스카이레이더 기
[당시 AD 스카이레이더로 불렸음]

공격대가 운반해갈 총 44,000파운드의 폭탄이 3-4 에이커 넓이의
갑산 읍내 목표 구역에 퍼부어질 것이었다.

항모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은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하고,
먼저 갑산 남쪽 속현 쪽으로 날아갔다.

그 하루 전 속현에 가한 공습의 위장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군들은 미군기들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속현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공격대는 무선 침묵을 그대로 유지하며 속현의 서쪽을 지나자마자
기수를 수직으로 들고 급상승으로 폭격 고도를 높였다.

이제는 단 8분내지 10분 정도만 지나면 갑산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설사 갑산의 공산군들이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대비하기에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공격대는 8,000피트 상공에서 수평을 잡자마자 급강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대는 해 뜨는 아침인 이 시간에 동쪽에서 해를 등지고 갑산에 쇄도했다.

기습은 대 성공이었다.
아무런 대공포화도 상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북쪽에 위치한 갑산은 지금까지 별다르게 심한 공습을 당하지 않았기에
대공포대도 없었고 방공호는 그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해서 표적 지역내에는 공습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기에
너무 많은 공산당 간부 인원들이 몰려와 있었다.

공격기들이 급강하하는 순간이 적의 대공포가 포문을 열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다.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하는 집중력을 분산시켜서 폭격의 명중도를 낮추는 반면
항공기가 지상 접근의 순간에 대공포화의 명중도를 높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산에서는 그렇게 할  대공포화가 없었다.
덕분에 각 공격기들을 적재한 모든 폭탄을 목표에 투하시키고
이탈하는 공격 전술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갑산 공격기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폭격 전법을 최대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한 목표에 여러 번에 걸쳐 폭탄을 나누어서 투하를 할 수가 있던 것이다.
첫 폭격은 F4U 콜세어 기가 맡았다.


동해에서 동계 해상 작전 수행중의 함상 콜세어 기들

공격 대장 피셔 중령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스카이레이더 편대의 공격에 앞서 콜세어 편대를 이끌고 급강하했습니다.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나는 지상에 서있는 높은 무선 통신 안테나 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500파운드 폭탄들을 투하한 콜세어 기들은 후속한 대형기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공격하도록 왼쪽으로 반전해서 선회하면서
뒤따라 가하는 스카이레이더 기들의 가공할 공격력을 지켜보았다.

콜세어 기들을 후속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접근하면서 먼저
첫 1,0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을 500피트에서 1,000피트 사이의 상공에서 투하했다.

대형 폭탄을 투하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콜세어 기와 같이
좌측으로 상승 선회한 뒤 다시 돌아와 목표물에 나머지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였다.

다시 좌선회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선회 후 세 번째로 목표물을 타격했다.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300갤런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고,
나머지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20mm 기총 소사를 하였다.

폭탄 적재량이 엄청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돌아와서 네 번째 공격을 했다.
네 번재 공격에서는 공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건물들에
소형 250파운드의 폭탄을 뿌리거나 시설물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조종사로 공격에 참여했던 허버트 리베링 대위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수레바퀴 모양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형 비행 대형을 만들어
빙빙 선회하며 폭격하고 상승하고, 폭격하고 상승하는 공격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요. 목표 지대는 연옥같이 변해버렸어요.”

갑산 읍의 심장부에 대한 공격은 아무 저항도 없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에섹스에서 출격한 16기의 공격대는 한 기의 피해도 없이 항모로 무사 귀환했다

스카이레이더 공격대 대장 그레이 중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목표지역을 떠날 때 지상에는 남아 있는 아무 것도 없었고
거대한 파괴의 더미에서 엄청난 연기만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촬영한 정찰 사진을 판독해본바 우리 공격대가 투하한 폭탄은
큰 도로로 둘러 싸여진 갑산 중심부 목표 지역에 단 한발을 빼놓고는
모두 명중했습니다.
목표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놓은 담도 한 줄만 남고
모두 날아갔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19명의 백호 부대가 갑산 내무서를 습격해서
15명의 반공 인사를 석방하였다.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이 공습에서 산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들이 전멸해버렸다.

나중에 영도부대는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이 공습으로
510명에서 530명이나 죽었다는 정보 보고를 해왔다.

삼수, 갑산, 혜산진의 조선 노동당 군당 조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제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대 수명 5년의 숙명을 타고 난 스카이레이더 기는
월남전까지 겪고 1985년 가봉 공군에서 최후로 퇴역하였다.

이 공습에서 지방 간부급 졸개들이 줄초상이 나자 평양의 김일성 집단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

평양 방송은 며칠을 두고 야만적인 폭격을 해댄
미제국주의자들을 광란적으로 규탄하였다.

방송은 조종사들을 “갑산의 인간 백정 놈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갑산 폭격 조종사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다행히 6ㆍ25 전쟁 중 갑산 작전 참가 조종사들중에 북한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 때 북한의 증오서린 욕설이 인상 깊었던지 갑산 공습 작전을 소개했던
참전 해군 조종사가 갑산의 백정 놈[The butchers of Kapsan] 작전이라고 부른 것이
그 뒤에 미 해군 전사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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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ar insurance 2011.10.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까지 북진에 소극적인 일차적인 이유는 또다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막대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3. online casino 2011.10.10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 써긴했지만... 그래두 성의니까... 가능한가염

  4. dual saw 2011.10.12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5.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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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an 2011.10.22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작품을 계속.

  7. dccarservice 2011.10.27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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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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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14. du lich hongkong tron goi 2012.12.1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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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전체에 해당 건너 왔다고 생각하게 말하자면이 문제에 관한 통해

  16. free credit report 2013.01.09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의 힘싸움 과정에서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경계가 나뉘

  17. obat alami sakit jantung 2013.02.06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

  18. onlineaccountsoftware 2013.02.13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感谢您写这样一个容易理解的文章就这一议题。

  19. Chatrandom 2013.05.02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 Social Bookmarks 2013.05.13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휴대폰에이 문제에 대해 읽어 오게했습니다. 서류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다행로 계산한 블로그 포스트.

  21. www.lanamedbetalningsanmarknings.se 2013.10.12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1 09:52

[일본 쓰이키 기지에 주둔하던 F 80 비행단 기록 필름]


  6·25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보면 한 미묘한 사실이 발견된다.  남한과 북한의 후원국으로 간접적인 전쟁을 하면서도 직접대결은 극력 피했다는 사실이다. 전후 완전히 무장을 해제 하다시피했던 미국 자신도 그랬지만 유럽의 우방국들, 영국이나 프랑스등도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판국이니 대규모 무력 충돌은 피 할수가 없었다. 스탈린도 북한의 침략을 허락했었고 6·25전쟁중에 북한과 중국이 사용하던 전쟁무기들을 꾸준히 공급했으면서도 미국과 전면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다. 소련 공군이 만주지역에 기지를 두고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참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조종사들에게 소련어가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라고 명령했었다.[조종사들의 반발로 이 무리한 명령은 취소되었다.]


   미군 역시 소련을 자극하는 군사행동은 자제했다. 6·25 참전 초기 황해에서 소련 해군기를 격추 시켰을 때도 비밀로 했었고 대청도 근해에 몰래 잠입해 들어온 소련 잠수함을 격침하고도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직접 대결을 피하기 위한 군사력 충돌을 피해 오던 양국의 조심성을 비웃는 직접적인 군사 공격이 있었다.


  미 공군기 두 기가 동해안에 인접한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물론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은 공격이었다. 1950년 10월 8일. 소련 우라지보스톡 인근 쑤카야 레츠카 공군 기지를 두 기의 전투기가 공격했다. 동체에 별 표시가 뚜렷이 보이는 미 공군 F-80 두 기가 바다로부터 초 저공으로 내습, 비행장을 기총 소사했던 것이다. 이 F-80기들은 대구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 공군 49 전투 비행단 소속이다.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전투기 형인 F-80 슈팅 스타기]


  대공 포대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두 기는 일열[一列]로 주기한 소련 공군의 전투기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했다. 기총소사를 하고 스쳐갔던 두 F 80기들은 아무런 대공 사격이 없었던 것에 자신을 얻어 원을 그리고 되 돌아와 기총소사를 한번 더하고 재빠르게 도주했다. 이 소련 공군 기지에서 미공군기들에게 기총소사를 받고 격파 되었던 소련 전투기들은 공교롭게도 미국제 P-63 코브라 전투기들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초기 그 열등한 성능으로 일본 해군 제로기에게 고전했던 미 벨사 제작 P-39기를 성능을 개선한 형이다.


[P-63, 엔진이 비행석 뒤에 있다.]


  미군에게는 성능이 좋은 전투기들이 속속 투입되어서 이 전투기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당시 독일군과 싸우던 소련군에 제공되어 주로 대지 공격기로 많이 활용하였다. 주둔했던 소련  공군 부대는 821 독립 초계 비행단이었다. 일열로 주기했던 탓에 12기의 P 63기들이 F-80의 기총소사로 구멍 투성이가 되었고 연료를 만충해 놨던 한 기에서는 화재가 발생해서 완전 염상(炎上)해 버렸다. 벌집이 되었던 전투기들은 그럭저럭 수리를 해서 다시 비행 가능 상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불붙은 한 기는 다 타 버려 수리가 불가능했다. 소련 측에게는 다행하게도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F-80 슈팅스타 , 한국 공군에서 이 기형의 연습기인 T-33기를 운용했었다.]


  난데없이 공습을 받은 소련은 격분해서 미국 측에 강경하게 항의했다. 미 공군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그날 출격했던 두 명의 조종사들을 일본의 극동 공군 사령부에 불려가 치밀한 조사를 받았지만 두 사람은 ‘항법상의 실수’ 로 소련 영토에 침입해서 공습을 했다는 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미 공군도 그렇게 발표했다. 외교의 뒷 무대에서 미국이 ‘유감‘ 표명 정도의 사과는 했는지 하여튼 소련은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소련 비행장을 습격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속내는 지금으로서 알 수는 없다.



[P-63]


  그리고 이 동해안 최북단은 주로 미 해군 함재기들이 활동하던 구역이었는데 미 공군 F-80 전투기가 이 먼 곳까지 출동한 것도 좀 이색적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하나마 추정 할만한 배경은 있다. 당시 동해안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었던 중국 군용 비행장은 두만강 바로 옆에 위치한 훈춘에 있던 것이었다. 몇 년 전에 가 보니까 비행장은 없어지고 밭이 되어있었다. 훈춘 비행장의 공중 정찰 사진을 북한 땅에 있는 비행장으로 잘못 분석했던 결과를 비행사들에게 브리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훈춘 비행장과 우라지보스톡- 보이지는 않지만 우측 만에 있다.]


  가까운 북한 땅 회령에 옛 일본 육군 항공대의 9 비행연대 비행장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오해의 소지는 기본적으로 있었다. 그러니까 출격한 비행사들이 소련 비행장을 발견하고 이를 북한 비행장으로 착각하고 공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일도 있었다. 6·25전쟁 초기 일본에서 평양을 폭격하고자 야간 출격했던 비행대가 전북 만경강을 대동강으로 오인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으로 오인한 이리를 폭격했던 어이없는 사례가 있었다. 이 실수가 소련 비행장 폭격 같은 오류는 얼마든지 범할 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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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사는 이리역!
    이리 역은 이렇게 전쟁시 폭격을 당했고,
    이후에 1977년 11월 11일 밤 한국화약열차에 의해 또 한 번 폭파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건이 이리역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물론 삼일만세운동이나 기타 의병활동도 있기는 하였지만 단일 사건으로 가장 컷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2. cons for your home 2012.06.05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한 특정 문제가 지금은 꽤 한동안보고 왔습니다뿐만 아니라 당신의 통찰력이 실제로 특별한 것을 무언가이다. 이러한 기록을 확산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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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맨주먹으로 막아낸 하늘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1.21 08:26

8. 맨주먹으로 막아낸 하늘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6.25전쟁 개전 당시에 남북한 간의 전력은 많이 벌어져 있었고, 이런 차이는 개전 초에 국군이 북한군에 밀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공군은 경우는 일방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격차가 컸습니다. 당시에 북한군은 200여기의 각종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국군은 일명 건국기(建國機)라고 불린 T-6 훈련기 9기를 포함한 20여기의 항공기를 보유하였지만 전투기는 단 1기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북한이 제공권을 장악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국민의 성금으로 구입한 T-6 건국기]

 

  6월 25일, 북한 지상군이 공격을 시작한지 6시간 후인 10시경이 되자 북한군의 IL-10 전투기가 서울상공에 출현하여 정찰 활동을 시작하였고, 12시경에는 YAK기 4기가 용산 상공에 나타나 용산역, 서울공작창, 통신소, 육운국 청사 등에 기총소사와 함께 폭탄을 투하하면서 6.25전쟁 최초의 공습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인 16시경에는 5기의 YAK기가 김포와 여의도 비행장을 공습하였는데, 이때 국군의 T-6연습기 1기가 파손되었고 한국에 체류하던 미국인을 소개시키기 위해 김포 비행장에 긴급 투입되어 있던 미 공군 소속의 C-54수송기 1기가 격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 공군의 공격을 하늘에서 막을 방법이 국군에게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공대공 전투를 벌일 전투기가 없어서 개전 즉시 제공권을 북한 공군에게 내줄 수 박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공군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전투기능이 없는 훈련기들 밖에 없었지만 한국 공군은 이들을 출동시켜 전선을 정찰함과 동시에 육군 작전을 육탄으로 지원했습니다. 조종석 밖으로 손을 내밀어 폭탄 274개와 수류탄 500개를 북한군 행렬에 투하하는 그야말로 처절한 작전을 전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지상에서처럼 맨주먹으로 근근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었던 것이었습니다.
 

[북한 공군의 활약은 3일 천하(파괴된 북한의 IL-10)]


  하지만 이와 같이 일방적이었던 북한 공군의 우세는 삼일천하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국군의 전력이 갑자기 커져서 북한 공군을 막아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미군의 조기 참전 결과였습니다. 육군이나 해군과 비교해 신속한 이동과 전개가 가능한 미 공군이 한반도로 긴급 투입되면서 곧바로 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개전 4일 경과하였을 때 38선 이남에서 북한 공군기들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었고 오히려 38선 이북의 북한 후방에 위치한 공군기지는 물론 적의 요충지가 공습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지상에서는 아군이 일방적으로 밀려 후퇴하고 있던 6월 29일의 경우만 보아도 미 제5공군 제3폭격비행단 소속 B-26 경폭격기 18기가 적의 심장인 평양을 폭격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작전으로 미 공군은 8월 10일까지 북한 공군을 완전 무력화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후방차단과 근접항공지원(CAS)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공군의 F-51전투기]


  이와 더불어 6월 27일, 한국 공군은 미 극동 공군의 협조로 조종사 10명을 선발하여 일본 주둔 미 공군 기지에서 단 며칠간의 훈련을 받고, F-51전투기 10기를 인수해 대구기지로 귀환했는데 이때부터 한국공군도 전투기를 운용하게 되었고 7월 3일부터 한·미 공군의 연합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전 초에 일방적이었을 만큼 많은 전력차이가 있었지만 우리 공군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선으로 달려 나갔고 그러한 용기는 도움을 받아 곧바로 힘으로 승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승화된 힘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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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 to usf 2012.05.22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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