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군의 제공권을 뒤흔들어 놓은 미그 15'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04 08:52

   전투기, 항공기 팬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영국 본토 항공전"은 공중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습니다.
  이 유명한 대 격전은 007 시리즈로 유명한 가이 해밀턴 감독에 의해 1969년, 영화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좌측이 해외판, 우측이 2004년 국내 출시판입니다.

  미그 15 전투기는 독일 공군이 선보인 후퇴익 기술과 영국의 제트엔진 생산 기술이 결합된 걸작이었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6.25 전쟁은 제트 전투기들이 본격적으로 격돌한 대규모 전면전이었습니다.
 
개전 초반 거의 궤멸되어 버린 북한 공군으로 인해 제공권을 손쉽게 장악한 미 공군은 B-29 편대를 동원한 대규모 융단폭격으로 북한군을 싹쓸이했고 덕분에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확실한 기동전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8일 이후부터 12월까지 미 공군은 한반도의 상공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지만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지상에서의 전력 못잖게 제공권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소련이 자랑하는 신예 미그 15가 한반도 상공에 출현했기 때문이죠.

  최근 되살아나기 시작한 경제와 함께 속속 구 소련의 기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러시아의 전사 출판시장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미그 15에 대한 서적 역시 오존을 비롯한 러시아 인터넷 서점에서 쉽사리 구입할 수 있게 되었죠. 
  미그 15의 출현은 미 공군의 기존 전투기들을 완전 구식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독소전 초반 T-34/76과 KV-Ⅰ 중전차의 출현으로 기존 독일 전차들이 구식화된 것과 동일한 상황이었죠.
  당시 미 공군에서 미그 15를 상대할 수 있는 기체는 오직 F-86 "세이버" 뿐이었습니다.
  미그 15가 출현하던 시점에서 UN군과 공산군 측의 전투기 전력을 석해보면 수적으로는 공산군이 열세였지만 질적인 부분에서는 대등소이한 면이 적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6.25 전쟁 중반기를 기해 비밀리에 자국 공군 조종사와 미그 15를 한반도에 투입했습니다.
  공산군 측 : 미그 15 전투기 비롯 1,000여대 배치
 
소련 공군 : 300~350대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 300~400대
  북한 공군 : 200~250대
  위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 주력은 미그 15이며 소련 공군이 비밀리에 참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UN군의 주력은 미 공군으로 전투기는 약 2,200여대를 동원했습니다.
  미 공군 : 약 1,500여대
  미 해병대/해군 항공대 : 약 500여대
  UN 공군 : 200여대
  한반도 상공에 출현한 미그 15의 괴력으로 인해 북한을 폭격하던 B-29 폭격기 편대는 졸지에 출현한 강적 앞에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1951년 1월부터 소련 공군이 참전해 격추되는 기체가 속출하자 미 공군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해야 했습니다.
  북한을 붕괴 위기에서 구출하고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 공군은 꾸준히 출격하여 공습을 감행, 휴전 직전까지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약 20만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입혔지만 그에 못잖게 격추된 기체가 늘어갔습니다.
  1950년 12월 말에는 중국 동부에 소련 공군이 배치되어 이듬해 1월 참전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중국 공군의 미그 15가 미 공군의 F-86A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51년 3월부터는 소련 공군의 미그 15가 북한 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한 B-29 편대를 요격해 격추 기록을 늘려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급기야 4월부터 B-29의 한달 평균 격추대수가 2.2대로 폭등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늘은 저 편대가 내 밥인가?" 미그 15에서 촬영한 B-29 편대의 모습으로 1951년 4월부터 소련 공군의 요격으로 인해 한 달 평균 기체 격추대수가 2.2대로 급증해 미 공군을 긴장시켰습니다.

  특히 1951년 10월 16일은 미 폭격대에게 있어 최악의 악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B-29 격추대수가 가장 많았고 그만큼 엄호를 위해 출격한 미 공군 전투기들에 의해 미그 15 9대가 격추되었지만 값싼 소련제 전투기와 값비싼 대형 4발 중폭격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엄호를 위해 투입된 F-86A "세이버"가 미그 15에게 열세가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 10월 23일의 공중전 결과를 토대로 미 공군은 급히 개량형 F-86E를 투입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공군에게 격추된 F-86A "세이버" 전투기. 미그 15와의 공중전 결과 미 공군은 이 전투길도 열세라는 점을 인정하고 개량형인 F-86E를 투입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11월 중순에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평균 기체 손실대수가 12대를 기록하는 초유의 피해를 입힘으로써 미 공군 조종사들의 기량이 우수할 경우 F-86A로도 충분히 미그 15를 격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지만 12월부터 공산군 측에서 하루 평균 150대의 미그 15를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펼쳐 잠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최대의 라이벌이이자 숙적관계를 유지하던 미그 15와 F-86은 이제 각자의 무용담을 나누며 사이좋게 비행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1952년 1월에는 미 공군에 신형 F-86E가 투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대규모 공중전이 빈번하게 벌어졌는데 나날이 피해가 늘어만 가자 공산군 측은 대비책으로 야간 공습을 감행하는 B-29 편대를 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1951년 5월부터 지상의 레이더 관제소로부터 통제를 받은 미그 15 전투기들이 야간 공습을 감행하던 B-29 2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건 무슨 영국 본토 항공전도 아니고...."  미그 15의 지속적인 요격으로 인해 야간 공습을 감행하던 B-29의 위기는 지속되었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미 공군은 F-86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F-86F를 투입했습니다.
  1952년 6월부터 배치된 F-86F의 등장으로 7월 이후 미그 15의 활동은 급감했고 8월 9일에는 영국 해군의 시 퓨리가 미그 15를 격추함으로써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나도 제트 전투기와 얼마든지 싸울 수 있습니다!!" 1952년 8월 9일, 성능상 상대가 어려운 미그 15를 격추시켜 노익장을 과시한 영국 해군의 시 퓨리 전투기의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미그 15와의 지리한 대치전을 끝장내기 위해 투입된 해결사 F-86F. 1952년 9월의 대규모 공중전에서 9대를 손실하는 대가로 63대의 미그 15를 격추하는 초유의 전과를 올렸습니다.
  1952년 9월, 전력을 재정비한 중국과 소련 공군은 미그 15를 지속적으로 출격시켰고 이에 대응해 출동한 F-86F "세이버" 편대는 9대를 격추당하는 대신 63대의 미그 15를 격추시킴으로써 1 : 7의 손실비율을 교환했습니다.
  9월 10일에는 미 해병대의 F4U "코르세어"가 미그 15를 격추시킴으로써 기존 프로펠러 전투기들에게도 격추당할 수 있음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러자 소련은 개량형인 미그 15bis를 투입시킵니다.
  "프로펠러 전투기를 우습게 보지 마!!" 1952년 9월 10일, 미 해병대의 F4U "코르세어"가 미그 15를 격추시킴으로써 노익장을 과시합니다.
  소련이 새롭게 투입한 미그 15bis. 하지만 투입된 이후에도 기체 손실율은 항상 미 공군에게 열세를 보이게 됩니다.
  문제는 1952년 10월에 최초 투입된 이후 다음 달에 1대가 격추됨은 물론 1953년 2월의 수풍댐 공습을 요격하기 위해 출격한 미그 15bis 편대가 F-86F와 벌인 공중전에서 27대를 손실하는 대가로 겨우 4대만 격추시키는데 그쳤다는 점이죠.
  특히 1953년 4월 이후에는 F-86F가 사실상 미 공군은 물론 UN 공군의 주력으로 자리잡음으로써 미그 15가 더 이상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휴전이 임박해지면서 북한 공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은 마지막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지만 77대의 기체만 손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 이상 미 공군과의 정면 대결이 어려운데다 갈수록 손실이 늘어만 감은 물론 휴전이 임박해지자 1953년 5월, 소련 공군 조종사들이 본토로 귀환하면서 남겨진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과 북한 공군으로서는 더 이상의 대규모 공중전 시도가 어려워졌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소련 공군 조종사들과 미그 15bis의 모습. 공산권 측 격추기록의 상당수는 소련 공군 조종사들에 의해 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1953년 6월, 휴전을 앞두고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서 미그 15 77대가 격추되고 F-86F 14대가 격추되었는데 이는 휴전을 장식하는 마지막 사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휴전 이후 북한 공군은 미그 17, 19, 21 등의 전투기를 지속적으로 운용하면서 최근에 이르고 있지만 이미 F-15K "슬램 이글"과 KF-16, KF-5 등의 전력을 갖춘 한국 공군이 버티고 있기에 다시는 이러한 제공권 싸움이 어려워졌습니다.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 없던 한국 공군이지만 오늘날 F-16을 보유함으로써 당당하게 영공 방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폴란드 공군 소속입니다 )
  오늘날 최강의 전폭기 중 하나로 꼽히는 미 공군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 한국 공군역시 F-15K "슬램 이글"로 영공 방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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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구엘 히메네스 미그 2010.05.04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적으로 미그 프로덕션 대표인 스페인의 미구엘 히메네스 미그씨인 줄 알았습니다. 잘 보고 가요~

  2. 미그 25 2010.05.04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그 25에 대한 것도 포스팅해주세요. 기체 재질은 영 꽝이었지만 속도 하나만큼은 일품이라 서방측에 공포로 다가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에리히 하르트만 2010.05.14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그 15와 미 공군의 화끈한 공중전 잘 보고 갑니다~

  4. 김형래 2010.07.11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15K의 비행 장면을 지난해 서울 에어쇼에서 감상했는데 언제봐도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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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하이페리온 2013.12.08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제작중에 있는 F-35 라이트닝기가 앞으로 한반도를 책임진다네요.
    F-15 슬램 이글에서 대대적인 교체가 이루어질 듯 합니다.
    F-35 라이트닝은 얼마나 강할까요?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25 09:16
 

[트라이엄프의 활동을 함재기 화이어플라이기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영상]


  6·25전쟁중 영국군은 상당한 육해공의 병력을 파견해서 중요한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951년 봄, 임진강 전선에서 중공군 춘계 공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그로스터 연대의 용맹한 일화를 육군이 남겼고, 압록강 상공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터어 쌍발 전투기로 공산군 미그 15기와 힘겨운 공중전을 벌인 영국 공군의 분투기도 한국 항공 전사에 기록했었다.


  영국 해군 역시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군으로 김일성 남침 불과 며칠 후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남침 불과 일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 해군 순양함과 같이 동해안에서 남파 병력 호송대를 호위하던 북한 어뢰정 세 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었다.
6·25전쟁중 영국 해군은 황해를, 미군은 동해를 맡아서 3년간 작전했었다. 영국 해군은 6·25전쟁 참전중에 여러 전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이한 활동으로서 최초로 파견된 영 항공모함 트라이엄프의 활약을 소개한다. 트라이엄프는 2차 세계 대전 바로 후인 1946년 5월 6일 취역했다. 총 톤수 1,7000 인 경항모였다.


[영 항모 트라이엄프]


  6·25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들이 27,000톤의대형이어서 80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를 탑재하는데 트라이엄프는 작전시에 단지 24기만 탑재했었다. 트라이엄프의 함재기들은 이미 구식이 되어가는 프로펠러 전투기 씨화이어와 역시 프로펠러 전투기인 화이어플라이 기들이었다. 씨화이어 기는 유명한 스피트화이어기들의 해군용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착륙 장치가 강화된 것이다.


[씨화이어]

 

  이 전투기는 빠르고 운동성도 좋지만 그 모양[실루엣]이 북한 공군의 야크 9와 비슷해 자주 오인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1950년 6월 트라이엄프는 영국 해군 극동 함대에 이동 배치되었다. 사령관은 죠지 앤드류스 소장이었다. 배속된 극동 해역으로 항해하던 중 홍콩 근해에서 트라이엄프와 다른 호위함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았다. 트라이엄프와 호위하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항해를 계속하여 일본 구레[吳]항에 기착했다. 구레 항은 호주군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작전해역으로 투입 전 트라이엄프는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이 군항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비행하기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은 네 기의 씨화이어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내려놓았다. 작전을 위한 격납고내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트라이엄프는 다시 한국 해역으로 출발하면서 다른 영국과 호주함들과 기동 함대를 구성했다.


[영 함재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기동함대를 구성했던 영국함들은 순양함 저메이카, 구축함 HMS 콘소트였다. 두 함들은 6·25전쟁중에 활발한 활동과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영국함들에 호주 프리게이트 함 HMAS 숄하벤과 영국 급유함 웨이브 콘퀘러가 가세해서 6·25전쟁참전 영연방 함대를 이루었다. 트라이엄프 함대는 출항하자 오키나와로 남하하여 급유를 받은 다음 미 7함대의 미 항모 부대와 함께 연합 함대를 구성 출동하였다. 황해 작전 해역에 도착한 트라이엄프의 함재기[827 해군 항공대]들은 미 함대와 합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3일 첫 출격이 있었다. 미 해군 항모 밸리 포지[에섹스급 항모]와 협동 작전이었다. 트라이엄프의 12기의 씨화이어와 9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출동하였다.


[미 항모 밸리 포지]


  영 함재기들은 황해도 해주 비행장을 들이쳤다. 유감스럽게도 적기는 없었다. 공격대는 비행장 빌딩과 격납고를 파괴하고 귀함했다. 다음 날에도 트라이엄프의 공격대가 출격했다. 이 날에는 괄목할 전과가 있었다. 연안과 해주 사이의 철교를 부수어 철로를 끊고 북한군 병영과 고사포 진지를 기총소사했다. 트라이엄프는 대지 공격이 없으면 주로 대잠 정찰과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평양 폭격이 있은 지 2 주 뒤인 7월 19일, 트라이엄프가 탑재한 구난기인 씨 오터 쌍엽기가 조종사 케인 중령이 조종하고 황해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 원산 앞 바다까지 장거리를 날아가 격추된 미군 콜세어 기의 조종사를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구출해내는 위험한 구조 임무를 완료했다.   이 구난 업무는 구식 씨 오터 기들의 마지막 전시 출동 임무였다.


[항모 탑재 구난 비행정 씨 오터. 1943년 취역했다.]


  7월 28일 거의 비극으로 끝 날 뻔한 재난이 발생했다. 씨 화이어 일개 편대가 함대 북동방 공역에서 함대의 레이다가 잡은 미확인 비행체들을 확인 차 출격하였다. 씨화이어들은 그 미 확인 비행체들이 함대에 내습하는 적기가 아니라 미 공군의 B-29임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마음 놓고 접근했던 씨 화이어 3번 기는 300야드 거리에서  B29 한 기로부터 느닷없는 불줄기의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 말한 듯 멀리서 보는 씨 화이어의 실루엣[외형]이 북한 야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한 미 B 29기의 기총수들이 기관총을 쐈기 때문이다.


[씨화이어 기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야크 9기]


  씨화이어기들이 일제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한 기의 연료 탱크에 기총 탄이 명중했다.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조종사는 크게 화상을 입었으나 기체를 뒤집고 자유 낙하하는 방법으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파도가 너무 거칠고 높아 항모에 탑재한 씨 오터 기로도 바다에 표류하는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조종사는 속절없이 한 시간동안이나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미국 구축함  에버솔에 구출되었다. 이 사건 뒤 영국 전투기들은 동체와 날개에 검고 흰줄을 쳐서 야크기가 아님을  알렸다.


[식별 표식을 한 씨화이어 기]

 

  트라이엄프는 계속 현장에서 대공 및 대잠 활동을 수행하고 다시 일본의 구레로 돌아왔다. 8일간 머무르며 재정비와 보급을 마친 트라이엄프는 7월 9일 영 순양함 케니아와 구축함 코머스, 그리고 두 척의 카나다 HMCS 아타바스칸 과 수우등의 전투함과 같이 출항했다. 이번에 주어진 주요 임무는 적 항구에 대한 집중적인 사진 정찰이었다. 함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남한의 목포나 군산 그리고 인천을 정찰했고 북쪽의 진남포까지 항공 촬영하였다. 비행대장 맥라크란드 중령은 순양함 저메이카가 군산시에 위치한 대형 공장을 포격하는 것을 유도했다.


  8월 14일 진남포 인근 대동강 하구에 큰 대형 선박 세 척이 정박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인 중령 지휘 아래 오후에  6기의 씨 화이어기들과 6기의 화이어 플라이기들이 로케트 탄으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편대는 대공포화가 격심했지만 로케트 공격으로 이 선박들을 대파시켰다. 나중에 격파된 한 척은 북한 해군 소해정이었고 한 척은 2,000톤 크기의 화물선, 한 척은 800톤의 연안선으로 밝혀졌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기동 함대는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영 씨화이어의 착함 모습 - 착륙할 때 후미의 훅이 걸리는

과정을 살펴 보시기 바람]


  정찰 업무가 끝나고 트라이엄프는 계속 서해를 초계하며 작전을 이어 나갔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연안용 작은 배들도 여러 척 격침했고 해변에 설치된 오일 탱크를 파괴하였다.


  8월 19일에는 영국 구축함 콘소트와 트라이엄프의 화이어플라이가 협동하여 군산에 있는 공장을 포격했다. 8월 23일 고장 사고 격추등의 이유로 작전 가능했던 24기의 함재기가 단지 9기만 남자 트라이엄프는 일본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트라이엄프는 일본 사세보로 돌아와 싱가폴에서 함재기들을 수송해온 항모 개조 공작선 유니콘으로부터 14기의 함재기를 인수받았다. 


  트라이엄프가 사세보에 기항해있는 사이 황해에서초계 항해를 하던 구축함 HMS 코뮤스는 군산 서쪽 85마일 해역에서 북한 공군 IL-10 두 기의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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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는 김포 아니면 수원 비행장에서 출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격위치는 어청도에서도 중국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제공권도 없는 북한기가 이렇게 먼곳까지 출격을 나왔던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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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의 우현이 파괴되고 수병 한명이 전사했고 한 명이 부상했다. 함은 동료함 콘소트의 호위 아래 사세보로 돌아왔다.


[소련제 IL 10 공격기]


  8월 26일 다시 출항한 트라이엄프는 한국의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북한 서해안에 정찰비행을 나간 두기의 화이어플라이기 들은 해변에서 숲으로 우거진 세개의 이상한 섬을발견하였다.그러나 잘 살펴보니 나무와 풀로 뒤덮어 위장한 세척의 북한 위장선이었다. 세 척은 위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이어플라이기에 즉각 파괴되었다.  이번 출동에서 적의 100톤짜리 어선을 비롯한 여러 척의 북한 배들을 파괴하였다. 트라이엄프는 통상의 초계업무를 했고 함대의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채리티의 연안 함포사격을 위한 사전 정찰과 탄착점 유도를 하는 지원 업무를 했다.


 

  8월 29일 트라이엄프 함상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 기가 꼬리에 달린 정지 후크없이 착륙하다가 항모 갑판을 미끄러져 안전벽에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함교로 날아가 작전실의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맥라크란 중령을 후려쳤다. 맥라크란 중령은 800 해군 비행대의 대장이었다. 맥라크란 중령은 이 불운한 사고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한 해역에서 의식을 갖춘 장례식으로 수장되었다. 그는 6․25전쟁중에 사망한 유일한 해군 조종사였다.


[영국 해군의 함상 장례식]


  9월 3일 출동한 트라이엄프 함대는 군산 비행장과 군산역을 포격한 저메이카를 위한 탄착점 유도를 했다. 9월6일 트라이엄프는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아라뭉가, 그리고 바타안과 같이 황해를 떠나서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작전하던 미 7함대 항모 부대의 작전임무를 인계 받았다. 7함대는 일시 휴식과 보급 그리고 정비를 위하여 일본의 모항으로 귀항해야만 했다. 트라이엄프 함대의 동해안 작전은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와 씨화이어등은 연일 북한 땅의 목표들을 공습해서 북한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했다.


  첫 주요 목표는 철도였다. 원산 남방으로 뻗은 철도를 따라 내려가던 6기의 씨 화이어와 6기의 화이어플라이는 한 작은 역에서 열차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화차들을 모두 벌집이 되게 파괴하고 기관차는 완전히 운행불능인 고철이 되게 부수어 놓았다. 이어서 동해안 철도를 따라 계속 수색하여 고원 역에서 80량의 화차를, 영흥 역에서 40량의 화차들을 발견해서 모두 파괴해버렸다.


[유엔기의 공습을 받는 북한 열차]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9월 12일에 보급 및 재정비를 마친 트라이엄프는 호위하는 와라뭉가,채리티와 콕케이드, 콩코드등과 함께 기동 부대를 만들어 사세보를 출항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인천이었다. 바야흐로 역사적 인천 상륙작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폭격받는 인천시]


  함대 승무원들에게는 행선지는 물론 비밀로 했다. 트라이엄프 기동부대의 임무는 상륙 작전 사전에 항공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상륙작전 직전 함대는 화력지원과 정찰 업무를 개시했다. 트라이엄프의 함포 사격 지원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순양함 저메이카와 케니아의 함포는 화이어플라이가 지시한 고지의 북한군 목표를 포격해서 대 폭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곳에 적 탄약고가 있었던 것이다. 산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고 엄청난 연기가 2,500미터 이상 솟구쳤다. 그날 저녁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 소장은  맥아더 원수로부터 치하 전문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첫날 13,000명의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다음날 17일 새벽 북한 야크기 두기가 인천 앞 바다의 상륙 함대를 공습했다. 두 기는 미 순양함 로체스터를 폭격하고 그중 한 기는 겁 없이 더 먼 바다에 있던 영 순양함 저메이카를 기총소사를 했다. 수병 한 명이 전사하고 두 명이 부상했지만 야크기는 저메이카의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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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습 전투기가 야크- 9기라는 설과 IL-10  기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국 기록은 이 북한 기들을 IL-2로
 적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기가 투하한 폭탄의 크기가
 전투기용인 소형으로 보여 야크기 설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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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양함 저메이카]


  트라이엄프는 인천 상륙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9월 21일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항했다. 이 번이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작전 항해였던 것이다. 함재기들의 손실도 많았고 함의 이곳 저곳도 손을 보아야 할 함들이 많아 한국 파견 임무를 종결해야했다. 트라이엄프는 이틀간 사세보 드라이 독크에 들어가 작전 중 입은 파손 부위를 긴급 수선했다 9월 25일 트라이엄프는 임무를 일주일 뒤에 극동해역에 도착할 다른 항모 테세우스에게 인계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테세우스 - 트라이엄프와 같은 급이댜.]

 

  트라이엄프는 그 후 영국 해군에 장기간 더 봉사했다. 50년대 말에는 함정 수리를 전담하는 공작함으로 변신해서 재 취역을 했다. 퇴역한 트라이엄프는 1981년 스페인 고철 업자에게 팔려 해체 되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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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3.26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좋은 시간이되세요..^^

  3. 야후 낙화 2010.03.2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기고글 잘 보았읍니다
    감사 드립니다 독님

  4. li815 2010.03.26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phy1133 2010.03.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기고가가 되신 ~님께 축하 메세지 남김니다. 즐감~

  6. 장대수 2010.04.1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어요~

  7. Douglass Pabich 2012.05.3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유익한 기사 극단적인 재미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 내에있는 모든 사람을 겪고 있습니까? 나 역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쓰는 사람의 방법을 만끽하는 데 도움 것을 보내 겠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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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5. Full Term Insurance 4 Sale Article 2014.03.31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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