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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3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7)
  2. 2010.04.26 음~ 너무나 맛좋은 개고기... (92)
  3. 2010.04.02 31. 낙동강아 잘 있거라 (7)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13 13:41

태평양 전사를 읽다 보면 마리아나 군도(群島) 칠면조 사냥
-Marianas Turkey Shoot.-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온다.


1944년 6월 19일 20일 간 사이판 섬  상륙작전을 실행하던

미 스프루언스 제독의  미 기동함대에 도전했던 
일 오자와 제독의 일본 항모가
세 척이나 침몰당하고 함재기가
600기나 격추당한 해전을 미 해군들이
부르는 속칭이다.

정식 명칭은 필리핀 해 해전이다.


숙련 조종사들을 거의 다 잃은 일본 해군이 급히 양성하여
구식 항공기에 태워 출격시킨
미숙한 신참 조종사들은 훈련도
잘 받고 신형 전투기를 조종하는
미 해군 조종사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필리핀 해 재전에서 필사적으로 미 해군기의 뇌격과 폭격을 피하는
일본 전투함들.- 오른쪽 가까이는 중순양함 조카이, 아니면 마야
이고 더 먼 곳의 회피 기동을 하는 것은 항모 지요다이다.
잘 보면 왼쪽에서 달려가는  어뢰들의  두 줄 흔적이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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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사냥이라는 것이 한국 언어 정서에는 없는 소리지만 이를

'파리 떼 두들겨 잡기' 정도로 해석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6·25 전쟁에서도 그런 칠면조 사냥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투가 있었다.

해상이 아니라 육상이었고 파괴 대상이 함재기가 아니라

모터 사이클과 트럭, 짚차등 차량이었지만 공격후 수 킬로에 널 부러진

그 잔해가 마치 칠면조 사냥을 연상케 헤서 이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고성의 칠면조 사냥이다.[Kosong turkey shoot,]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기습을 감행했던 북한군은 사흘 뒤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좌익들이 동원한 서울 시민의 강제 환영을 받으며

서울시가 행진을 했다. 

행렬 중신에 105전차 여단의 T-34 탱크와 함께 긴 장사진을 친
모터 사이클
부대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쟁 기념관의 모터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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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들이 사이드 카 부대라고 부른 이 부대는  적 105전차

여단 소속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들의 주력은 중국 인민 해방군 47군 소속이었던 조선족
부대였다.
47군 소속 조선족이 모두 차출하여
북한에 보내진 5,400 명중
1,000명이 105전차 여단의 83기계화 
보병 연대에 편입되어
주력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 105 전차 여단- 서울 점령후 사단으로 승격- 소속 T-3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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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기계화 연대는 북한군들에게 사이드 카 부대로 불렸다.]

서울 입성 후 시가행진에서 위풍당당하게 굴러 가던

이 정예 부대는 그로부터 40일 뒤에 서울에서 한참을 남해안

고성 서방에서 전멸을 당해 그 기계화 부대라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좌익들이 조직한 환영 인파 사이를 당당히 행진하는 서울 점령
북한군- 이들중 몇 명이나 살아 돌아  갔는지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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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초.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은 낙동강 교두보라는 한반도 일각에
몰려 버렸다.

비록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새로운 병력과 보급품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지만 공격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은 북한군의
공세는
거세기만 했다.


부산 교두보 확보에 불길한 적신호가 발령된 것은 서부 전선에서

국군 1사단과 잠깐 대결하고 한강 하구 쪽을 도강했던
방 호산 소장의
북한군 6사단이었다.

[한국군 1사단과 정면 대결 했던 북한군은 최 광이 지휘하는

 북한군 1사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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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호산은 1913년 함경도 출신으로  공산계 항일  무장 투쟁의
경력이 깊다 .모스크바 유학 경험이 있어서 상당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방 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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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25전쟁 초기 전투지휘를 높이 평가한 중국의 전사가들은
그를 항미원조 전쟁[6·25전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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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은  문자 그대로 바람 같은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해안을 따라 급거 남진했다.

호남 지방을 관통하고 남해안에 도달하자 그대로 좌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을 건너서 낙동강 교두보의 측면에 나타났다.


워커 중장에게 이 부대의 측면 출현은 심야에 도끼를 든 도둑이

옆 울타리를 뜯고 나타난 것과 같았다.


놀란 미8군은 북 6사단을 격퇴하기 위해서 19 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19연대에 배속된 29연대는 2대대는 7월 22일 하동고개에서

북한군의 매복에 걸려  35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대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에서 전임 채병덕 참모총장이 전사했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미군의 자문역으로
백의종군했었다.


여세는 몰은 6사단은 7월31일 진주를 점령했다.

마산의 점령은 시간문제였다.

측면에 나타난 적이 무서운 전투력을 가진 부대라는 것을

알게 된 워커는 막강한 반격부대를 구성했다.


미 25사단과 본토에서 도착한 5전투단[RCT] 그리고 긴급히

한국으로 출동한 미 해병 1여단이었다.


낙동강 교두보의 서부에 나타난 북 6사단을 구축하고 잃은 땅을

회복할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25사단장 킨 소장의 이름을

따서 킨 태스크 포스[TF]라고 명명되었다.



우측 창원으로 부터 공격을 개시한 미 해병은 남쪽 축선을 따라
고성으로 진격했다.- 최종 목표는 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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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 향한 반격은 8월 6일부터 개시되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전사에는 이 쪽 공격을 담당한 부대가 방 호산의

6사단뿐이었다고만 하지만 실상은 북 105여단의 83기계화 연대와

북 5사단 병력이 증파되었었다. - 뒤에 말한다-


사흘간 이들을 산과 계곡에 들어 밖여 저항하는 이들을
분쇄하고
전진을 하기 전에 사흘이나 소비해야 했다.

북한군은 마산 진동리 일대의 적을 소탕하고 서쪽의 진주를
향하여
전진해  갔다.


이 이야기는 서쪽을 향해 전진하던  해병 1여단의 정예 5연대가

8월 10일 공격 방향을 남으로 돌려 고성을 공격했을 때 발생했다.


해병들이 낮은 구릉과 논이 많은 고성 북쪽을 향해 진격하자
적들은
지형을 이용해서 반격해왔다.

그러나 해병들은 고성으로 들어가는 남행 도로가 스쳐가는

대다복 고개를 성공적으로 돌파했다.


고성 못 미처 지역에서 충분한 경계 태세로 한밤을 지센 해병들은

다음날 8월 11일 새벽, 어둠이 가시기 전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해온

북한군과 격렬한 전투를 한 차례 치러 이들을 물리치고

다시 얼마 멀지 않은 고성을 향해 진격했다.


북한군은 47mm 일본군  속사포까지 잠복 해놓고
해병들을 포격했다.

한 해병 장교의 짚 차가 이 포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속사포는 뒤에서 후속하던 전차까지 공격하다가 전차포의
반격으로
파괴되었다.



일본제 1 식 47mm 속사포 [대 전차포]. 남양전선에서 활약.
북한군이 이것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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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앞세운 해병들이 북쪽에서 무섭게 밀고 들어오고 해병대의

포병 포화까지 집중하던 점심 무렵에 고성의 북한군의 기계화 부대는

전 부대 이동 장비를 몰고서 서쪽 사천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트럭과 짚 차 그리고 모터 사이클들은 모두 동원되었다.

그 긴 행군 장경[長徑]은 무려 수 킬로미터나 되었다.

그들이 달리는 곳은 비포장 도로였고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마른 도로의 먼지는 자욱하게 상공을 가렸다.

인근 상공 어디서나 발견되는 대부대의 이동이었다.

이 부대는 앞에서 소개했던 105 전차 사단의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 무렵 105 전차 사단은 낙동강 북쪽에 있었다.

유엔군의 서쪽 측면이 의외로 쉽게 뚫리자 북한군 전선 사령부

[충북 수안보 위치]가 83연대를 따로 떼어서 서쪽으로 급파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83기계화 보병 연대는 원칙으로 보면 북쪽에서 육박해 들어오는

해병들의 기세를 판단하고 그 전날 야음을 틈타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해병들이 고성읍을 점령하기 일보 직전에야 보따리를 싸서

허겁지겁 도망 길에 오른 것은 북한군 상부의 융통성 없는
사수 명령에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야 철수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세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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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대의 각종 전투 장비가 수 킬로 뿌연 먼지를 날리며

도로를 달리는
것을 북한군은 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상의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해병 VMF-323 전투 비행단 소속 F4U
콜세어 기 편대를 놓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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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병 비행단은 지금 F/A 18로 장비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미라마의
해병 항공대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고성 공습의 수훈 부대 해병 항공대 VMF-323 부대의 현재 전투기
F/A -18 호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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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세어 기들은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이 먼지 속으로 급강하했다.

공격은 행렬 선두 차량에 집중되었다.

선두 차량이 파괴되면 행렬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선두 차량에 이어 맨 후미 차량도 첫 번 공격의 대상이었다.


차량 행군 대열을 앞뒤로 막아버린 콜세어들은 20mm 기관포와

로케트 포탄으로 북한군 표적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은 논이었다.

차량이건 모터 사이클이건 바퀴 달린 것이 도망 갈 곳은 없었다.



콜세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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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북한군들에게 검고 괴상하게 생긴 콜세어 기는

생긴 것부터가 두려운 존재였다.
이  괴물이 폭음도 요란하게 날아오며 기총소사를 하자
북한병들은 질겁을 하고 
논으로 튀어 흩어졌다.

100여량의 장비중 온전하게 남아있는 차량도 없었지만
북한군도 200여명이나
격멸되었다.


도로는 금방 검게 탄 차량의 연기와 파편과 죽은 시체로 가득 찼다.

고성을 점령하고 금방 현장으로 달려온 해병들은 행군을 가로막는

파괴 차량들을 도저 전차로 밀어 내면서 그날로
사천 남방 장천까지 전진했다.



북한 83 기계화 보병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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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콜세어 기중에 한 기가 저공으로 기총소사를 하다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산언덕과 박치기 하여
조종사 한 명이 전사하였다.


지상에서 맞대응한 기관총에 맞았는지 기체 고장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참전 해병 조종사에서 최초의 전사자이다.


몇 십 분에  걸친 항공 공격으로 득의만만하게 서울 입성의
시가행진을 하던
  83 기계화 보병 연대는 사실상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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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습에서 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해병대의 L-19 연락기를 조종하던 허버트 바렌타인 상사는

이 죽음의 함정에서 탈출했거나 먼저 출발했던  북한군 짚차
한 대가
행열의 훨씬 앞서
사천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것을
발견했다.


해병 정찰기 OY .-육군 명 L-19로서  나중에 0-1 버드 독으로
불렸다. 미 세스나 회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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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짚 차에는 운전병과 고급 장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뒷 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 짚차 한 대 잡자고 바쁘게 적 차량과 모터 사이클 들을
부수고 있는
콜세어 기를 부를 수는 없었다.


그와 뒷좌석에 탑승하고 있던 포병 관측장교 패트릭 시버트 중위와

둘 다  장비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로 이들을 공습하기로 했다.

몇 차례나 저공비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북한군 짚의 승차인간들에게
권총 사격을 했지만 짚 차는 그저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였다.


대상이 무장하지 않은 경비행기인 것을 안 북한군은 계속  

달리면서 권총으로 대응했다.


두 어 번의 공습이 실패로 끝나고  실탄도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기로 하였다.

경비행기가 다시 저공으로 접근하자 운전병은 매번 하듯
뒤를 뒤 돌아 보았다.

그러나 너무 길게 돌아 보았다.


앞은 구부러진  언덕길이고 앞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계곡의 급사면이었다.

짚 차는 그대로 계곡으로 돌진하여 거꾸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상태라면 두 북한군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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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특수 임무 부대는 방 호산의 6사단 부대를 몰아부쳤지만

독한 호산은 형편이 어려워져도  단념하지 않았다.

북 6사단 특공대는 전진하는 미군의 후방으로 침투해서
진동리의 2개의 포병대대를 기습해서
큰  타격을 주었다.


사천 점령을 앞두고 급히 되돌아온 해병들의 반격으로 6사단은
격퇴 되었지만
포병 장비는 모두 항공 공격으로 파괴하여야 했다.

그러나 다시 서쪽을 위한 공격은 일단 정지해야 했다.

북쪽에서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의 대부대가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원래 적이 점령한 진주로 예정했던 킨 특수부대의 임무는 적의

마산 공격 눙력을 분쇄한 것에 만족하여야 했다.


방 호산은 이 낙동강 교두보 서쪽 전투에서 2,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그는 9.15 인천 상륙작전으로 낙동강의 북한군이 붕괴하여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할 때 부대를 잘 인솔하고 귀대해서 김일성의 격찬을 받았고

이중 영웅을 칭호를 수여 받은 뒤  군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김 일성은 명성이 높아지고 
북한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방 호산을 그냥 놓아 두지 않았다.

방 호산은 1955년 숙청당해서 지방의 
탄광 부지배인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 뒤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김일성의 직속 졸개였었고 김 일성의 처 김정숙 동생의
남편이었던
83기계화 보병 연대의 직속 사령관 유경수가
승승장구하던 것과는 대조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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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othy 2010.08.17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감니다. 이글은 북괴군 입장에서 보니 감이 새롭고 더욱 실감이 있어 좋읍니다. 감사합니다.

  2. esk0441 2010.08.1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쓰신분이 북괘 군 인가여?

  3. chaffee2080 2010.09.14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군은 아닙니다. 다만 좀 외곬수인듯...^^

  4. 김광수 2010.10.01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동전투에서 사용된 oy-1,정찰기는 고성인근에 활주로가 없어서 미군들이 합판을 논에다가 깔아서 활주로로 사욯했다는것을 읽은적이 있네요, 부모님이 진주서 사셨는데 그 당시 피란을 가는데 인문군이 사이드카에 기관총을 달고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오는것을 보고 놀라 고갯마루옆으로 할머니랑 어머니랑 도망을 가는데 이 북한군들이 사이드카를 세우고 "동무들 도망가지 마시라우 같은 동포인데 왜 도망하느냐 "하더라는데 아마 선무부대 아니였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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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너무나 맛좋은 개고기...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26 08:50


 

  38선 돌파 후 무제한의 쾌속 북진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에 대해서 두고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도 분단된 우리나라의 지도를 볼 때마다 만일 당시의 전쟁 지휘부가 북진속도를 늦추더라도 ‘역습에 대비한 방어선을 구축한 후 진격하였으면 과연 어떠하였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아쉬움이 많았던 북진은 결국 흥남철수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각개 부대 간 경쟁을 유도 할 정도의 쾌속진군이 전선의 단절을 불러와 중공군의 내습에 꼼작 없이 당했다’는 지난 역사의 결과를 알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그 시점에서 본다면 정답은 없을 겁니다. 어쨌든 인천상륙작전 성공이후 낙동강 교두보를 박차고 나온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어 이를 소개합니다.


[1950년 가을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북으로 달려갔던 시기입니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여 평양을 선점하기 위한 무제한의 레이스에 돌입한 부대가 국군 제1사단, 제7사단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여하한 일이 있어도 평양의 수복만은 우리의 손으로 먼저 이루라’는 신신당부를 국군지휘부에게 내렸을 만큼 그 북진속도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평양 선점을 향한 부대 간 경쟁은 대단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제한의 북진은 가뜩이나 열악한 당시 도로사정과 더불어 당연히 후속한 보급과 군수지원의 문제를 야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군수지원의 문제는 비단 국군뿐만 아니라 최전선까지 코카콜라가 공급 된다는 미군 또한 심각하게 겪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지형적인 제한 등으로 보급에 애를 먹었습니다]


  다음은 미 제1기병사단 5기병연대 I중대 소속으로 북진에 참여하였던 카디널(James Cardinal) 일병의 이야기입니다. 


  평양근처에 이르러 식량과 담배부족으로 고생을 했다. 이때쯤 우리들은 하루에 통조림 고기 한 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주로 영화에서 군인들은 여자얘기나 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식욕은 모든 욕구 중 최고 입니다]


  오로지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하였으며 밤에는 먹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 (중략) ... 또 하나의 문제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동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내용만 보면 스탈린그라드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던 독일 제6군이 오버랩됩니다)


[야전에서 제때에 식사를 하는 것도 복입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선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우리 소대에는 한국인들이 6명(이른바 KATUSA입니다) 있었는데 ... (중략) ... 어느 날 나는 한국인에게 먹을 것을 좀 구해오라고 부탁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닭이나 송아지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닭이나 송아지를 상상했는데 나타난 놈은 ?]


  3시간 후 한국인 병사가 돌아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바짝 마른 잡종개 한 마리였다. 그러자 부대 안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은 환호 하였고 즉시 잡종개를 요리하기 시작하였다. 요리가 끝나자 한국인들이 나를 식사에 초대하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들의 식사초대를 거절했다.


[보신탕 시식회에 참석한 외국인들]


  그러나 그로부터 3주일 후 허기와 싸우다 지친 내가 한국인들 보다 맛있게 개고기를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쟁 기간 중 어떤 요리도 그때 먹었던 개고기보다 맛있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고유한 식습관은 문화의 우월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사실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고유한 식습관은 문화의 우월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신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편협한 이유만으로 우리를 야만시하는 외국의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극한상황(?)에 있던 카디널 일병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편견을 깨는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 : ‘ 한국전쟁 : 부산에서 초산까지 ’에 수록된 참전 미군들의 회고담 중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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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머쉰 2010.08.21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아?
    문맥을 이해 못하시는건지 , 아니면 일부러 곡해하고 싶으신건지?
    그 행태 = 갑을병의 왈가왈부가 아니라
    그 행태 = 갑을병정 십간이, 아니 수백간이 돌아가며 여기서 한번 저기서 한번 끈질기게 강요하는 행태

    개인적인 자리에서 개고기 찬반 관련 토론이 벌어지는건 뭐 그들 자유겠습니다만
    세명 이상? 세번 이상? 하하 이거;;




    정도의 예를 들어 비교한 후


    그 정 도 수 준 에 서 만 족 못 하 시 겠 습 니 까?


    라고 말했습니다만.
    개보호론자 혹은 해당 이념을 지닌 누리꾼과 인권,환경보호론자 혹은 해당 이념을 지닌 누리꾼의 차이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이 개고기 찬반문제의 범주에서 절대로 절대로 벗어나지 않았다고 몇번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듣고싶지 않은 내용은 자꾸 논제에서 벗어났다고 하시는데
    개고기반대론자의 대부분이 지금 이와같은 행태를 하고 있으며 글쓰시는 흐흐님도 결국 마찬가지 격이니
    그건 곧 강요이고 누구든 이념을 강요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개고기 반대론자들의 근본적인 접근방법부터 잘못되었으며, 현재의 행태는 절대 자연적인 사회인식 작용이 아니니
    스스로 자중할 필요가 있고 결론은 상호존중 Let it be 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해 되십니까?

  3. 흐흐 2010.08.21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는 이 블로그에 개식용반대 댓글을 단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이로군요...?

  4. 머쉰 2010.08.21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보호운동은 상호 피해를 주지 않는 취향의 차이를 강요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충분히 도가 지나친 상황이므로
    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흐흐 2010.08.2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 개식용반대 댓글을 단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이로군요?

  6. 흐흐 2010.08.21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약시킨 답변이 아니라 비약시킨 머쉰님의 논리겠죠.
    문제삼는 대상과 반론의 근거를 저에서부터 특정 행동주의단체, 동물보호운동 전체에 걸쳐
    홍길동처럼 넘나드시는군요. 마치 프랙탈을 경험한 듯 짜릿했습니다.

    단순히 나와 다른의견을 가진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하시는 그 논점,
    잘 깨닫고 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면 병림픽이라 일컬을테고
    저나 머쉰님이나 똑같은 사람으로 보겠습니다만,
    나름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논의는 이만 줄이도록 하죠.


    결론은 제가 졌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려요.
    머쉰님 개고기 맛있게 드세요.


    모든 개식용찬성하시는 분들께 흑백논리를 추천해 드립니다.
    도를 넘어서는 비논리에 동물보호론자들이 치를 떨며 나가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7. 머쉰 2010.08.21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기 비논리적인지 모르겠군요.
    끝까지 흑백논리라고 고집하며 그걸 비논리라 하니
    자신이 여타 개보호론자와 다르다고 어떻게든 자위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같으니 문제이지요. 허허
    강요라는 공통점이 당신들을 하나로 묶는다고 했잖습니까.
    흑을 흑이라 불러야지 그럼 무어라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흑백논리 혹은 가상의 허점을 만들어 불리한 논점은 피하려는 자세
    훌륭했습니다. 특히 최근의 ' 그 행태' 관련에선
    비꼬는게 아니고
    정말로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
    하하 ;; 다시 웃습니다.
    그쪽 역시 단순히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먹는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 않습니까?

    용도는 다르지만 써놓고 보니 참 우습습니다.

  8. 머쉰 2010.08.21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네. 단순하게 비약시킨 답변이 듣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다시한번 답해드리죠.
    잘못입니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요?
    아고라 개고기 토론방이나, 개고기 찬반 이슈관련 스레드에서나 이런 댓글이 어울리는겁니다.
    무슨 네이버 다음 오늘의문학 이런 게시물에도 사람들이 많이 보겠다 싶으면 뜬금없이
    '개가 죽습니다.제 블로그의 도축영상을 보고가세요' 이런 댓글이라거나..
    보신탕 집에서 직원회식을 했다는 개인블로그에 무슨수로 찾아왔는지 악습이 어쩌고 분위기 망치고..
    6.25 회고록에 개고기를 먹은 미국인 이야기가 나오니 역시 악습에 식인에 서구가 말리니 맞춰주자는 둥 ..
    어이쿠 잘못이죠. 암요 잘못이고 말고요.

    잊지 마시죠. 당신도 '그들' 입니다.

  9. ㄹㄷㄴ 2011.05.11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왜 소나 돼지 그리고 닭 기타등등은 먹어도 되고 개는 안돼는 이유를 알 수 가 없죠.

    풀만 먹는 인간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를 하지 개빼고 다먹는 인간들이 개 먹지 말라고 하면

    어이가 없을뿐..

  10. 택군 2011.06.26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전쟁사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개판이 되었네요

  11. 머꼬이기 2011.09.03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 빠순이들이 이리 많을꼬...
    지네만 좋으면 그만인것을 머 남까지 끌어들이려 하남..

  12. 최승규 2011.10.03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지도 않는 이론 가지고 주입식 세뇌하려는 사람 많이 보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중 채식주의자가 얼마나 될지?
    돼지나 소는 가축이고 개는 동물이다?
    그러한 구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도 퍽이나 궁금하네요.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 하는것이지 종류별로 존중을 받고 안받고 해야하는것이던가요?
    태어나서 고기 맛있게 먹은 적 없는 사람과 채식주의자 이외에 사람들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말도 안되는 모순사이에서 돌고돌뿐으로 보이는...
    그 이전에 언쟁은 아무리 해도 끝날 수 없지요.
    개개인의 상대성을 존중하는게 어떨가 싶네요.
    개인의 이념을 주입식으로 세뇌시키려고들하지 마시고...

  13. 최승규 2011.10.03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아닌,
    개인적 견해이자 판단이지만 흑백논리는 흐흐님이 아니실지?
    애초부터 어떤 동물과 동물의 종류를 가지고 가축과 가족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14. 진짜 2011.10.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같은 소리 하고 있네

  15. head to all of us today 2012.05.14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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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낙동강아 잘 있거라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02 08:31

 

  인천상륙작전 다음날인 9월 16일 09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드디어 제8군의 반격이 개시되었습니다. 피 말리는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었던 힘들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일거에 뒤엎을 수 있다는 간절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대처럼 성공적으로 상륙부대가 적의 배후 깊숙한 곳을 강타하는데 성공하자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있던 아군은 교두보를 박차고 나와 북한군을 돌파하여 경부 축선을 따라 진격해 인천상륙부대와 연결하는 사전계획대로 진격을 개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인천상륙과 동시에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김천에 설치한 전선사령부 예하의 13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사단이 낙동강가에 촘촘히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공군의 후방차단으로 보급 및 병력보충이 불가능하여 총병력은 7만 여명에 불과했고 그 대부분도 점령지에서 강제 징집한 신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초훈련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전투력도 모자랐고 식량 및 탄약이 절대 부족하여 사기도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전선붕괴는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반면 국군과 유엔군의 병력은 총 16만여 명까지 늘어나 있었고 전차, 야포 등의 중화기 전력은 어느덧 10배 이상의 우위를 보였습니다. 더구나 하늘과 바다에서의 전력차이는 비교불가의 상태일 만큼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아군의 전선 돌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천에 아군이 상륙한 이후인 9월 16일 까지만 해도 전장의 주도권을 아직도 북한군이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북한군은 7월 31일 이후 거의 고착화되어 있던 마산-왜관-영천-포항을 연하는 선에서 집요한 공격을 감행하던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아군의 반격작전이 시작된 9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어느 쪽이 공자(攻者)이고, 어느 쪽이 방자(防者)인지도 모를 정도로 전선이 혼란스러웠던 상태였고 더구나 기상악화로 항공지원이 곤란하자 제8군의 공격은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대응은 집요하였고 전선 돌파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9월 18일, 비가 그치고 기상이 호전되자 돌파구를 개척하려 왜관-김천축선에 B-29폭격기 42기가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하였으나 공격은 진척이 없었고 반격의 선봉으로 내정 된 미 제1기병사단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에 낙동강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사단장까지도 유엔군의 인천상륙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계속 낙동강에만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당시의 낙동강방어선에 모여든 북한군은 자신들의 정확한 처지도 모르고 오로지 공격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자 제8군사령관 워커의 근심은 커져갔고 맥아더는 군산에 추가적인 상륙작전 준비를 지시했을 만큼 초조해 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인천에 상륙한 미 제10군단이 경인지역에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될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때 이런 어려운 고비를 뚫었던 것은 국군 제1사단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 작별인사를 하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원래 주공으로 예정되었던 미 제1기병사단의 우측에 있던 국군 제1사단은 북한군의 방어지역을 공격하던 중 가산산성 우측계곡이 텅텅 비어있던 것을 알고 이곳으로 신속히 돌파를 감행하여 9월 19일에 기습적으로 갈뫼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갈뫼가 아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대구공격에 투입되어 있던 북한군 제1, 3, 13사단의 동측이 완전히 차단되었는데,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배후가 차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낙동강가의 북한군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국군의 선전으로 미 제1기병사단은 19일 14시경, 북한군 제3사단을 붕괴시키면서 왜관을 탈환하고 이어서 저녁 무렵에는 낙동강을 건너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 22일, 국군 제1사단이 지난 8, 9월 내내 양측이 명운을 걸고 피로 물들였던 다부동에서 미 제1기병사단과 연결되자 나머지 국군과 유엔군의 모든 부대들은 낙동강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앞으로 내달릴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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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별!!
    좋은 작별도 있었네요.

  2. G-Crusader 2010.04.12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부동의 기적의 승리와 낙동강 방어가 있었기에...

    인천상륙이 가능했고...

    오늘의 자유대한이 있습니다.


    백선엽대장께서는 다부동의 승리가

    하나님께 받은 기도 응답이었음을 엊그제 간증하시더군요!


    무궁화(=Rose of Sharon=예수님의 꽃!)의 대한민국!

    하나님께 우리가 마음을 온전히 돌려야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지상의 공산주의는 바로, 성경적인 Lucifer대사탄의 20세기 지상 재발현!

    북한은 광명성(=계명성, 광명성),적그리스도이자 루시퍼의 도구인,

    김정일의 사탄의 군대일뿐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에게 진압되었던 반란 혁명군들일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21세기 대한민국!
    여호와 닛시~!

    In the name of Jesus Christ,
    Amen.

  3. home insurance britain rates 2012.06.05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본 웹 사이트 가로질러 너무 기뻐요, 전에도이 문제에 동안 노하우를 모두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웹 사이트를 실행하고 가능한 나를 인식하게 자유롭게면 난 네가 나를 위해 게스트 crafting 일을 원한다면, 인스턴트 메시징은 일반적으로 내 웹 사이트를 참조하기 위해 사람을 찾고 이동하십시오. 나중에 한번 코멘트 이별로 방문하여 확인하십시오! ...

  4. home insurance downloadable beautifully 2012.06.05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그것이 약간 단조로운 이전 게시물이있게 마련 믿었지만, 정말 내 시간에 관해서는 지불. 내 웹사이트에서이 웹 사이트로 링크 중 하나를 게시하려고하고 있습니다. 거의 확실히 내 사이트 방문자가이 특히 편리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5. home insurance fees 2012.06.0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이 주제에 맞는 세부 쓰기까지 함께 얻을 수 있으며 특히 감독에게 우리의 의견 및 보고서를 줘야 조사에 관하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내용은 제가 상당히 될 수밖에.

  6. internet advertising agencies 2012.06.12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이 주제에 영향을주는보기입니다. 당신 의견과 아이디어를 공유 행복해하고 내 자신이 동의 찾습니다. 당신의 맑은 문체와이 작품에 투입했습니다 노력을 즐길 수 있습니다.사이트와 고체 작업과 행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크게 앞으로 더 많은 업데이 트를 기대합니다.

  7. first aid kit for caravan 2012.10.21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궁화(=Rose of Sharon=예수님의 꽃!)의 대한민국!

    하나님께 우리가 마음을 온전히 돌려야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지상의 공산주의는 바로, 성경적인 Lucifer대사탄의 20세기 지상 재발현!

    북한은 광명성(=계명성, 광명성),적그리스도이자 루시퍼의 도구인,

    김정일의 사탄의 군대일뿐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에게 진압되었던 반란 혁명군들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