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고문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18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3)
  2. 2010.07.13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2 ] (10)
  3. 2010.03.26 서부전선의 눈물 1편 (30)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18 08:38

  대한민국 군번 제1호로 유명한 이형근(李亨根 1920~2002) 예비역대장은 1993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른바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개전 당시에 제2사단장이었고 이후 여러 요직을 거쳐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던 인물이 의심을 가졌을 만큼 전쟁 초기의 정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이상한 점이 많기는 하였습니다.


[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이형근 전 참모총장 ]


  그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선 부대의 적정동향보고를 수뇌부에서 철저할 정도로 묵살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하여, 전쟁발발 열흘 전인 6월 15일 중앙요직은 물론 일선사단장과 연대장을 거의 동시에 대폭교체한 점, 6월 13일부터 20일에 걸친 대대적인 부대 재배치 등등 모두 10가지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이것들은 전쟁초기에 너무나 일방적으로 적을 이롭게 하고 반대로 아군의 몰락을 가져온 미스터리로 거론되기에 충분한 주장들입니다.


[전쟁직전인 1951년 6월 초 서울]


  그러한 이상 정황은 아직도 논란이 많고 여기에 대한 추가 연구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북한 측의 전쟁 사료가 완전하고도 가감 없이 사실그대로 공개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오래 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이형근 예비역 대장이 꼽은 미스터리들 중에서 네 번째가 6월 24일 0시 (또는 6월 23일 24시)를 기하여 육군본부가 전군에 내려져 있던 비상경계조치를 해제시켜 버렸던 사실입니다.


[창군 초기의 국군(1948년 여순 반란 당시)]


  사실 이점은 이형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적인 의심사례로 거론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전쟁 징후를 느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불과 30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침공했다는 자체가 내부에 적을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아무리 사전에 남침을 계획하고 있던 북한군이라 하더라도 아군의 비상경계령이 해제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전쟁을 감행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더구나 당시 육군본부의 비상경계 해제명령에도 불구하고 부대 자체판단으로 긴장된 경계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였던 제6, 8사단의 경우는 개전 초에 상당히 선방하였던 반면, 4할 정도의 병력이 일거에 외출 외박을 나가 전력이 약화 된 제7사단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점만 봐도 비상경계령의 유무가 전쟁 초기의 전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훈련 중인 창군 초기의 국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더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1950년 들어와 아군은 정보기관이 수집한 각종 정보에 의거 북한의 전면 남침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4월 29일 처음 비상경계령을 발령하여 긴장된 전투태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쟁 발발 전까지 5월 3일~5월 9일 사이, 6월 2일~6월 11일의 두 차례에 걸쳐 경계령이 일시 해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비상은 계속 이어진 상태였습니다.


[창군 초기 국군 수뇌부]


  따라서 6월 24일의 경계해제는 영구적인 조치가 아니라 앞선 두 번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해제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예를 참조한다면 일단 경계해제 후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비상경계에 돌입할 가능성은 농후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군 수뇌부에 잠입한 간첩의 공작 때문이라는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국군의 비상경계령 해제 조치가 가까운 시일 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 충분히 예측하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 전 국군 기갑연대를 검열하는 미 군사고문단]


  그런데 지난 두 차례의 비상경계령 일시 해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군이 비상경계 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사실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북한 측도 충분히 가까운 시일 내에 국군이 일시적이라도 경계령을 해제할 것이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설명할 그 이유는 어쩌면 그 시절 우리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하였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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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2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13 07:59

 

  한강교량 폭파는 시기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후퇴 시 한강교량 같은 거대한 다리의 폭파는 철수하는 아군이 철수가 완료된 후 적의 추격 도하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실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한강교량들이 폭파될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우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성급하게 폭파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관련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한강교량의 폭파는 시기부터 잘못된 작전이었습니다]


  다리가 폭파되던 당시에 북한군 주력은 아직 서울 외곽에 있었고 오로지 2대의 북한군 전차만이 당시 서울의 북쪽 경계인 미아리를 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서울 방어를 위해 투입된 많은 아군부대들이 한강 북쪽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는데, 동부전선의 제6, 8사단과 옹진반도에서 퇴각한 독립 제17연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부대들이 이곳에 투입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서울 방어의 중핵인 의정부 지구에서 선전을 독려하는 최병덕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수뇌부]


  비록 제7사단처럼 초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부대들이 많아 서울의 함락이 예견될 정도로 상황은 암울하였지만 반면 경의축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던 제1사단처럼 고군분투하던 부대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건재가 유지되었건 아니면 무너졌건 한강 이북에 있던 모든 국군 장병들은 침략자를 막아내기 위해서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후방의 한강다리 폭파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싸우던 국군에게 한강교량 폭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후퇴로가 없어졌다는 의미로만 해석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한창 전투와중에 한강다리들을 폭파함으로써 국군 지도부 스스로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증명하였고, 이 때문에 한강이북에 있던 부대들의 전투 의지 또한 급속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전의를 상실한 아군은 모든 중장비를 유기한 체 단위부대 별로 흩어져 한강을 건너게 되는데 바로 이때 전쟁 초기 아군의 전력이 가장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도하하여 후퇴하는 국군의 모습]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지원 나온 미 군사고문단의 처치(John H. Church) 준장은 미증원부대가 올 때까지 서울에서 적극 시가전을 펼칠 것을 권고하였지만 육군본부는 다리를 성급히 폭파함으로써 서울을 사수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반면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 작전 당시에 전력이 열세였던 북한군은 서울을 요새화하여 무려 열흘 가까이나 방어해 내었습니다. 이처럼 서울은 적에게 점령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어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서울은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내어준 것에 가까웠습니다.]


  다리 폭파직전에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전개한 부대는 서울을 방어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야반도주한 위정자들을 따라 함께 내려온 육군본부와 김포반도에 긴급 배치된 일부 부대들뿐이었습니다. 즉, 한강교량의 폭파는 어떠한 전후좌우 사정도 가리지 않고 국군 주력을 한강 이북에 그대로 둔 상태로 무턱대고 벌인 우발적인 사건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한강교량 폭파가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었냐는 폭파 당일의 모습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한강교량 폭파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위정자들의 보여준 무책임의 극치였습니다]


  비록 방송에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위정자들이 서울을 버리고 야밤에 줄행랑쳤다는 소문이 돌자 수많은 시민들이 한강교량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를 통제하지도 않은 체, 다리를 폭파하여 최대 800명으로 추산되는 서울 시민들이 폭사하거나 한강으로 떨어져 익사하였고 50여대의 차량도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아무리 위급한 전시라도 이것은 결코 용납하기 힘든 작전이었습니다.


[개전 초 북한의 남침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최근 드러났습니다 ]


  결국 한강교량의 폭파는 필요하였지만 시기와 방법이 완전히 잘못된 작전이었습니다. 한강교의 폭파로 잃은 것은 수도 서울의 조기함락, 국군의 조속한 붕괴 그리고 죄 없는 민초들의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희생을 대가로 얻은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은 미미하였습니다. 처음 언급하였던 것처럼 처음에는 북한군의 진격을 3일간 막은 이유로도 보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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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성급하게 폭파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관련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서부전선의 눈물 1편

웹툰 모음 2010.03.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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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랑 2010.04.12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색상도 좋네요

  3. 김영태 2010.04.17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 백선엽 장군님!!!!! 존경

  4. 록나비 2010.08.28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선엽 장군님 젊은시절 얼굴과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는...^^;

  5. 최중원 2011.05.1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 얼뗠껼에 만화를 접했는데 정말 재밌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네요~할머니께 전해만 들은 6.25동난 잘보고 갑니다.
    이 만화를 제가활동 하는 까페에 올려 놓고 싶습니다..
    많은 회원 분들이 감상 하게 출처 남기고 스크랩 해갑니다
    감사합니다(_ _)
    남기는 곳은 http://cafe.daum.net/soccerz2
    쉼터 게시판 입니다.

  6. goguryeouri 2011.06.2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갑니다...

  7. 에효 2011.09.27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 전쟁에선 백선엽 장군이 분명 큰 역할을 했지만, 친일도 부인할 수 없죠.

    솔직히 존경이란 단어는 안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8. 에효 2011.09.27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장군의 군과나란 책도 다 읽은 사람으로, 군인으로써 6.25전때 세운 무공은 대단하나, 빨치산 토벌 시 했던 잔악한
    명령들이나, 일본의 세상으로 인정하고 일본군 장교로 출세를 위해 군인이 된건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안된다고 봅니다.

    현재 이 만화는 군과나의 앞페이지를 만화로 옮겼군요.. 암튼 아직도 살아 계시니... 참으로 대단하긴 하신분

  9. ㅎㅎ 2012.03.2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네요

  10. 강경훈 2012.04.27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내용이 기대되서 빨리 넘어가려 했으나 예의상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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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Rosann Mcallister 2012.06.01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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