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16 54. 철군이냐 확전이냐 (4)
  2. 2010.04.05 32. 감격적인 합류 (6)
  3. 2010.02.06 13. 미 제24사단의 굴욕 (20)

54. 철군이냐 확전이냐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6.16 13:55


 

  중공군의 참전은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논의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 철군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유엔군의 철군은 대한민국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한국정부 또한 다급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각종 결의대회와 국민방위군을 설치하여 서방측에 계속하여 항전을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어필하려 부단히 애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국민방위군 고급간부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려 물품을 빼돌려 집단 아사, 동사자가 생기게 만드는 부끄럽고도 한심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한심함의 극치였습니다.]


  미국은 국방비를 증액하고 징집연령을 낮춤과 동시에 18개 사단 재창설 계획을 조기에 앞당기기로 했을 만큼 중공군의 출현은 위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는 서유럽을 방위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군을 창설하였습니다. 이 같은 미국의 정책은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등장으로 전황이 순식간 바뀌자 미국을 비롯한 참전 유엔군 측은 “한반도에서 철군할 것인가, 확전할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12월 22일,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중국의 의도가 한반도에서 유엔군을 몰아내려는 것임이 명백해 진다면, 유엔군은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철수 한다”는 암울한 내부 의견을 정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중공군이 금강을 연하는 선에 진출하게 되면, 한국국민 일부를 제주도로 소개시켜 망명정부를 수립하도록 조치하고 유엔군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나간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한국정부에는 정식통보하지 않고, 단순히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맥아더는 확전을 주장하여 투르먼과 대립하기 시작합니다.]

(1950년 12월 전선을 순시하는 맥아더와 리지웨이)


  반면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를 중심으로 확전을 주장하는 세력도 있었습니다. 그는 합참의 지시가 “전쟁에서 싸워 이기려는 의지를 상실한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다음날 회신에서 중국에 대한 강력한 보복조치를 요구했습니다. 맥아더는 중국해안 봉쇄, 중국본토에 대한 폭격, 타이완 군의 참전 및 중국본토 상륙공격 허용 등의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습니다. 맥아더의 주장은 ‘중국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으로 인하여 일본이나 서유럽이 대규모의 전쟁에 말려든다면 결코 미국의 국익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대통령 투르먼과 대립을 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주요 참전국 중 하나인 영국의 주도로 정치적으로 철군과 확전의 중간인 명예로운 휴전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1월 17일, 당시 3차례의 공세에서 모두 승리하여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던 중국은 이를 휴전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휴전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림 셈이었습니다. 만일 이때 휴전 교섭에 돌입하였다면 공산권 측의 의도대로 전쟁이 멈출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쉽게 최종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여 전쟁을 고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너무 자만심에 도취되어 있었고 미국의 잠재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1951년 1월 4일 서울 시내로 진입하면서 최고 극성기를 연출한 중공군]


  이처럼 연이은 공세를 성공시켰지만 힘이 극도로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1951년 1월 10일을 전후한 시기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래, 나아가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상황이었습니다. 평택-삼척에 형성된 전선으로부터 불과 50킬로미터 후방에 있는 금강까지 더 밀려난다면 유엔군은 즉시 철군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라의 운명은 실로 풍전등화였습니다.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하면서 더 이상 내려올 수 없을 만큼 힘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지만 만일 그때 마지막 힘을 다하여 좀 더 밀어붙였다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이었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군은 중공군을 과대평가하여 회피만 하고 있었지만, 막상 중공군도 유엔군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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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기빅맨 2010.06.22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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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감격적인 합류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05 08:36

 

  국군 제1사단의 선전으로 낙동강방어선이 일순간 붕괴되자 북한군은 소백산맥과 금강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9월 21일경부터 인천상륙 소식이 전선에 전파되었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북한군은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북한군 군관들이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하여 총을 난사하며 독전을 강요하였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노력만으로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워커 제8군사령관은 전선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9월 22일부로 추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드디어 전쟁 개시 후 처음으로 낙동강으로부터 전선을 밀고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낙동강을 벗어나 북으로 진격하는 미 제1기병사단]


  워커로부터 경부가도를 따라 38선으로 밀고 올라갈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었고 그중에서도 선봉은 제7기병연대였습니다. 제7기병연대는 보다 신속하게 전방을 개척하고자 린치(James H. Lynch)중령이 지휘하는 예하 제3대대를 특수임무부대로 편성하여 9월 22일 08시, 다부동을 출발시켰습니다. 그날 중으로 낙동강을 도하한 린치특임대(TF Lynchs)는 다음날 상주까지 진출하여 북한군의 저항 태세를 점검한 결과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해도 될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6일, 사단의 후속부대들이 상주에 집결을 완료하자, 린치는 그의 특임대에 배속된 제70전차대대 C중대 3소대에 수색대를 합류시켜 “보은-청주-천안-오산방향을 따라 전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전진하고 저항하지 않는 적은 대응하지 말라”는 진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린치의 판단대로 전선은 밀고 댕기며 교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군의 진격이 멈춘 곳에서 전선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일 보은으로 출발한 수색대는 오후에 청주를 지나 저녁에 진천 남쪽에서 진격을 멈추었는데 그것도 북한군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색대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군이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북한군 수송대가 미군 전차를 발견하고는 3대의 트럭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공교롭게도 트럭에는 휘발유가 가득 실려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연료를 보충 받은 수색대는 전차에 다시 시동을 걸고 전진을 계속하여 그날 20시 30분경 천안삼거리에 도달했습니다. 교통정리를 하던 북한군 병사에게 “오산?”하며 길을 묻자, 북한군 병사가 얼떨결에 오산방향을 안내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까지 발생하였을 정도로 이들의 진격은 빨랐습니다.


[양쪽에서 전진하던 아군의 선두 부대들은 오산부근에서 연결됩니다.]


  쉬지 않고 오산남쪽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전방에서 갑자기 치열한 사격이 벌어져 노출된 전차병 1명이 전사하면서 일순간 긴장 상태에 빠졌지만 곧 교전이 멈추었습니다. 전방 부대는 인천으로 상륙하여 오산으로 남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31연대였는데, 다행히도 오인으로 인한 아군간의 교전이 확대되기 이전에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때가 9월 26일 22시 26분으로 인천상륙부대와 낙동강 반격작전 선두부대가 감격적으로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선두부대가 조우한 장소가 미군이 한반도에서 북한군과 처음 접촉하여 망신을 당한 죽미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08시경, 미 제1기병사단 본대가 상륙부대인 제7사단의 본대와 연결 되면서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전선은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결국 맥아더의 대담한 도박은 제8군의 낙동강 반격이 성공함으로서 단숨에 북한군 13개 사단의 배후를 포위해 버리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고 38선을 향한 진격은 계속되었지만 포위망 안에 갇힌 북한군 패잔병의 소탕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전의를 상실한 잔적을 소탕하는 것보다 전쟁이 종결을 위해서 전진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남한 각 지역에 쪼개져서 게릴라가 되어 갔지만 그리 위협적으로 여기지는 않고 천천히 소탕하면 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지리산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판단과 달리 북한군 패잔병 게릴라들은 두고두고 후방지역의 암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엔군의 놀라운 진격에 일순간 패퇴하였지만  북한군 대부분은 부대 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오대산, 태백산, 지리산 등지로 잠입해 아군 병참선 차단과 습격 등의 후방교란 임무를 수행하였고 특히 중공군 개입 이후에는 더욱 기승을 부려 아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까지 지연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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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5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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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론 중에 무수히 변하는 변수를 모두 기록한 교범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기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지요. 물론 경험이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경험이야 말로 순간적인 반사행동으로 나오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4.06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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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 제24사단의 굴욕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6 17:35

 
  스미스 부대의 오산 전개와 더불어 한반도에 후속 투입된 미군 부대는 미 제24사단 예하(의) 제34연대였는데, 7월 5일 저녁 경에 평택-안성을 연결하는 선에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제34연대의 굴욕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천안 시가지에 돌입하는 북한군]


  8일에는 후퇴하기에 바빠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도 전에 뒤 쫓아 온 북한군에게 천안을 내어주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장 마틴(Robert R. Martin) 대령이 전사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마틴 대령은 처음 천안에 도착하였을 때 전투복이 아닌 간편복에 단화를 신고 부대를 지휘하였을 만큼, 바로 직전에 있었던 스미스 부대의 참담함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북한군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으나 상대를 우습게보았던 결과는 이처럼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요충지인 천안에서 얻어터지며 물러난 미 제24사단이 다음으로 선택한 방어선은 금강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군이라는 자신감과 이름만으로 북한군을 막을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미 제24사단은 7월 12일 오후에 금강 이남으로 철수를 완료한 뒤 공주와 대평리에 각각 1개 연대를 배치하고 1개 연대를 예비로 후위에 배치하는 방어태세를 갖춘 후 7월 13일 금강의 교량은 물론 도선장과 나룻배까지도 모두 폭파하였습니다. 비록 국군이 한강교를 폭파하였을 때와 같은 비극이나 서두름은 없었지만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2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한군이 금강방어선에 도달하였고 곧바로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강에 방어선을 구축한 미 제24사단]


  공주지역으로 진격한 북한군 제4사단은 치열한 포격과 함께 야음을 틈타 소형 목선을 이용해 기습 도하 후 곧바로 후방으로 진출하면서 후방의 미 제24사단 포병대대를 유린함으로써 전면에서 앞만 바라보고 방어 중인 제34연대를 놀라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변변한 대응도 못한 제34연대는 패배의 무한반복을 계속하며 7월 15일 아침 논산 방면으로 후퇴하였습니다. 그러자 대평리 지역에서 방어 중인 미 제19연대의 좌우가 순식간 텅텅 비게 되었고 이틈으로 북한군 제3사단이 돌파하여 제19연대의 후방을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결국 제19연대도 7월 16일 17시경, 모든 중장비를 파괴한 후 산악 능선을 이용해 유성 방향으로 철수하게 되자 딘(William F. Dean) 미 제24사단장이 기대를 걸었던 금강방어선은 3일 만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제 결전의 장소는 교통의 요지인 대전이었습니다. 천안부터 계속 얻어터지며 이곳까지 밀려 내려온 제34연대에게 대전 방어임무가 부여되었으나 전의도 상실하고 피해도 많이 입어 지쳐있던 1개 연대로 대전을 방어한다는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습니다. 아직까지 북한군의 수적, 질적 우세는 계속되고 있었고 더구나 담당한 전선이 너무 넓어 틈이 많았기 때문에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대전 공격은 숨 돌릴 틈도 없이 7월 19일 아침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딘 소장의 지휘 하에 격파된 T-34전차]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격전에도 불구하고 미 제24사단은 치욕을 겪었습니다.


  갑천을 중심으로 공방전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방어지역 곳곳이 돌파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논산-대전 축선의 북한군 일부가 보문산 남측방으로 우회하여, 금산 및 옥천방향 도로를 차단하면서 제34연대는 다시 한 번 포위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제34연대는 차량 등 중장비를 파괴한 후, 소부대로 분산된 채 산길을 따라 금산과 옥천 방향으로 철수하였고 이로써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인 대전은 7월 20일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금강 및 대전 전투에서 미 제24사단은 2천여 명의 인원 손실과 대부분의 장비를 잃어 전투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낙동강까지 밀려난 제34연대는 전쟁 도중 해체되어 전투서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유일한 6.25전쟁 참전 미군 연대라는 참담한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두에서 용감하게 부대를 지휘하였던 사단장 딘 소장은 철수 중 실종되어 36일 동안 산야를 헤매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되면서 6.25전쟁 중 공산군의 포로가 된 최고위 인사라는 불명예도 얻었습니다. 너무 상대를 깔보았던 미군이 얻은 대가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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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진강 2010.02.07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없이 당했군요

  2. 안강 2010.02.10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께 6.25 전쟁때 이야기 3시간동안 들으면서
    더 알고 싶어서 찾다 보니 좋은싸이트가 있네요,,,

  3. MJ 2010.03.30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의시간에 듣고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는데

    좋은 내용 감사합니당!

  4. Jinkyu Kang 2011.09.13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을 과소 평가 한것이 아니고 본병력이 올때까지의 24사단은 예비사단 이기때문 이라 합니다.

  5. Jewellery Making Supplies 2011.10.30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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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allvoices.com 2013.05.15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16. visit site 2013.05.16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17. merchant processing 2013.05.24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34연대의 굴욕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18. current tornado warnings 2013.07.17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