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특급 영웅 황 계광에 대한 몇가지 의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6.02 20:44

<황 계광이 몸을 날려 기관총을 덮치는 순간. 실제 상황은 저런 공중 부양이 불가능했다>

중국은 6ㆍ25전쟁 동안 한반도의 전장에 무지막지 하게 많은 인력을 쏟아 부어 전사자와 부상자도 100여만 명이 넘게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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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에 중국의 강자 등소 평은 6ㆍ25전쟁에서 죽은 중공군들이 40만이라고 했는데 내가 만난 중국군 고위 장교는 30만명이라고 주장했다. 부상자는 사망자와 최소 동수 또는 두어 배는 될테니 인적 손실은 100여만 명이 넘는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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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계 최강대국을 싸워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그들 말대로 전쟁 영웅을 대량 탄생시키고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들을 모신 기념관이 압록강 건너 단동에 있다.

이름하여 항미원조전쟁기념관[抗美援朝戰爭記念館-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말]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모시는 중공군의 전쟁 영웅은 50명이 넘는다.

특이한 것은 영웅들에도 등급이 있어서 두 명은 특급 영웅이고 나머지 50여명은 1급 영웅이다. 특급 영웅 두 명중 폭발하는 불덩어리를 껴안고[알아보니 유엔군이 전방에 설치한 조명지뢰였다.] 죽었다는 구소운이고 다른 한 명은 적의 기관총 진지에 육탄 돌격해서 적 기관총 사격을 몸으로 막고 죽었다는 황 계광[黃 繼光, 중국 발음 후앙 지구앙, 1930-1952]이다.

<황 계광의 영웅 호걸스런 추상화, 중대장의 말을 듣고 그렸다 한다>

여기서 황 계광[黃 繼光]에 대해서 말해본다. 그는 사천성 빈농 출신이다. 원체 가난했던 그를 정확히 볼 수있는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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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약간의 학식이 있어지 않나 한다. 황 계광의 이름은 명대 유명한 장수 척 계광[戚 繼光]을 이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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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시피 위의 사진은 그의 죽음 뒤 화가들이 주변 상관이나 동료들 말을 듣고 그린 상상화이다. 마치 삼국지나 수호지에 나오는 영웅 호걸 같은 모습이지만 사실은 과장이 많을 것이다.

그는 1952년10월 20일 공산군이 상감령[上甘嶺 戰役]이라는 1211고지 전투에서 보시다시피 몸을 날려 적 기관총 화력을 막아내고 목숨을 잃었다.

그는 탄약도 떨어지고 일곱군데 중상을 입은 몸으로 십여미터를 기어 나가 몸으로 화구를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었다. 상감령 전투는 UN측에서 저격 능선이 부르는 전투다. 오성산과 삼각고지 사이 일대가 전투지역이었다. 중국은 이 전투를 크게 과장해서 마치 거대한 승리를 거둔듯이 선전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전쟁에서 전사한 중공군 모든 영웅들의 킹짱이었다. 그의 죽음 뒤 그의 헌신은 국가적 대 전공(戰功)이고, 그는 만고의 영웅으로 여겨져 추모 열기가 중국 전토를 뒤 흔들었다.

갖가지 선전매체와 정부와 당ㆍ군의 간행물에서 그를 찬양하고, 각종 교과서에서 그의 영웅담을 다루고, 추모화가 그려졌으며, 그 전쟁 영웅의 추모 물결이 6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까지 지속되고 있다.

황 계광 전쟁영웅의 추모 하이라이트는 그의 고향 사천성 중강현에 있는 그의 기념관이다.

대단한 규모다.

<고향 사천성의 황 계관 기념관>

북한까지 장단을 맞추어서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연성 고등 중학교를 황 계광 중학교로 개명해서 중국에 아첨했다. 그런데 2007년 황 계광 소속 45사 전선 지휘소 비서였던 호북성의 은퇴 작가 사 만정이라는 한 노병이 황계광 사루 55년만에 그의 사체 사진을 기증했다.

중국군 고위 장교를 지난 중국 동포에게 물어보니 비서라는 직책은 현재의 중국군 체제에는 없는 직책이라고 한다. 아마 6ㆍ25전쟁 당시 있었던 정치 위원의 직책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기증된 황 계관의 사체 사진은 아무리 봐도 의심가는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황계관이 죽은 뒷 모습>


그 긴 세월 황계광에 관한 아무런 사진이 없어서 별별 추상화가 난무하는데, 그 55년의 세월동안 그의 장렬한 최후의 모습 담은 사진을 감추고 있었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엎드려 죽은 사진을 보니 경사가 너무 급해서 그가 몸을 날려 가슴으로 총구를 막을만한 지형이 아니다.

더 미심적은 것은 그가 가슴으로 총구를 막았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연발하는 기관총탄을 가슴으로 막아섰다면 7-8발의 실탄 자국이 있어야하고 그 정도라면 총탄이 뚫고 나간 등 쪽은 산산히 부서져야 했는데 앞 뒤 어디에도 유엔군의 위력 있는 30구경 실탄 흔적이 없다.

<죽은 황 계광의 다른 모습, 시신을 이렇게 세워놓고 사진을 찍은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체의 오른쪽 허벅지에 있는 여러 혈흔이 기관총 피탄 흔적인가해서 잘 들여다 보았다. 피격당한 상처에서 나온 핏자국인 것으로 보인다. 즉 기관총 진지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은밀히 접근해서 뛰어 들다가 집중 사격을 받았다고 추리할 수가 있지만 이것은 결코 실탄에 맞은 상처가 아니다.

첫째, 여러 발을 맞은 피탄 면적이 너무 넓다. 인간의 허벅지 정면은 저렇게 직선으로 나르는 실탄이 맞을만한 넓은 면적을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 허벅지에 실탄을 맞았다면 살을 훑고 지나가는 실탄이[스치고]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고 그 상처는 길게 형성되어 장방형의 혈흔이 생겼겠지만 그 것이 아니다.

셋째, 저렇게 여러 발의 강력한 실탄을 맞았다면 다리뼈가 부러지고, 다리는 사실상 절단된 상태로서 근육으로만 겨우 연결되어 다리 아랫부분이 따로 움직일 텐데 서 있는 시체의 다리에서 그 흔적이 없다. 이것은 실탄이 아니라 수류탄 파편으로 생긴 상처로 보인다. 고지 전투에서 벌어진 보병 전투에서 주요 무기는 수류탄이었다. 6ㆍ25전쟁 중 공격이나 방어에 수류탄들이 집중적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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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 전술에 대응하는 최상의 방어 전술은 수류탄의 집중 투척이었다.
이에 대해서 후에 글을 한 번 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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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계광이 죽기 전 일곱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중공군이 이미 발표했었다. 진지에서 던지는 수류탄은 대개 20-60미터 내외에서 폭발지대를 형성하지만 저격능선과 같이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100여미터까지 폭발 지대가 넓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도 기관총 진지 육탄 돌격 때 지근거리에서 입은 상처가 아니다. 황계광이 부상을 입고 10며 미터를 기어서 육탄 돌격했다는 중국 발표도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그렇다면 그가 목숨을 뺏은 상처는 어디에 생긴 것일까?

이 사진들로 보아서 머리 부분은 감추어져 있다. 더구나 머리를 뒤고 젖힌 각도가 비정상적이다. 완전히 얼굴을 감춘 모습이다. 머리를 감추는 것이 의도적인지 뭔지 몰라도 여기에서 의심의 냄새가 난다.

황 계광이 머리를 땅에 댄 낮은 포복으로 기관총 진지로 접근하다가 제일 노출이 잘된 머리 정수리 부분에 실탄이 명중하여 즉사했다는 결론이다.[뒤통수는 멀쩡하다]

결론은 황 계광은 머리로서 적 기관총 화구(火口)를 틀어 막아 동료들의 돌격할 길을 열었다는 것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머리에 총을 맞거나 가슴에 총을 맞거나 맞는 즉시 생명이 끊어지고 동작은 중지된다.

설사 총구를 가로 막는 상태로 죽었다고 해도 예비 총신이나 사수 또는 부사수의 총으로 사체를 밀어 내버리면 계속 사격은 가능하다. 연사하는 기관총 사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인간이 기관총구에 박치기를 했다는 것은 상식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전투중의 일이지만 국가의 특급 전쟁 영웅으로 칭송해줄만한 이성적인 행위는 결코 아닌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중공군 부대에 일종의 영웅 만들기의 프로그램이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숱하게 전사해서 중공군 전사자의 시체가 산을 이룬 저격 능선 전투에서 후방의 사단 사령부 간부가 그 높은 전방 고지까지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 하필 황 계광만 골라 사진을 찍은 것, 엽기적으로 사체를 세워 놓고 무리한 촬영을 한 것, 그리고 팔 다리 떨어져 나가고 끔찍한 조각 사체를 수없이 만져야하는 영현 처리반에 난데없이 있을 수 없는 간호병이 등장해서 정중하게 황 계광 사체를 처리한 것 등은 영웅 만들기의 프로그램에 필요한 기초적인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하는 것을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황 계광의 시신을 수습하는 두 중공군 간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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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던져서 적의 화력을 중지 시킨 전쟁 영웅은 이미 소련군에 존재했었다. 알렉산드르 마트로소프라는 병사인데 원체 유명했었다. 이를 흉내 낸 북한판 짝퉁 마트로소프나 황 계광이 있었는데 이 자는 이 수복이라는 전사였다. 공산권의 정치 장교라는 것들은 원래 선동 선전이 본업이었기에 영웅 만들기에 재주를 잘 부렸다.

에네미 에트 게이트라는 소련군 저격수 자이체프의 활약을 기본으로 한 영화에서 자이체프를 영웅으로 만드는 유태인 정치 장교의 행태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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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체의 상처가 가슴이 아니라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머리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촬영한 사진은 일단 감추고 가슴으로 막았다는 것으로 발표하자고 결론이 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황 계광이 공중 부양하는 또 다른 추상화>

이 사진이 발표되고 나서 그가 기관총진지에 돌격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공격 중에 길을 잃고 실수로 미군 진지에 다가갔다가 총을 맞고 죽었다는 패러디가 인터넷 망에 대유행했었다. 중국의 기성 세대들은 숭모하는 순국 선열을 야유하는 젊은이들을 개탄하는 말들을 많이 했지만 이는 중국 젊은이들의 철없음을 탓할 수만도 없다.

중국은 군대도 크고 병역을 필한 젊은이들도 많다. 중국군 보병 병과에서 각개 전투 교육과 훈련을 충분히 받았었고 더해서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고 의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그런 패러디는 철없음이 아니라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이 때에 50여년간 중국 교과서에 잘 모셔두었던 황 계광의 영웅담을 빼자는 움직이 있다가 일반인의 거센 반발이 있어서 중지했었다.

아직도 진상을 알고 있는 황 계광 부대의 노병들이 생존하고 있는 이 상황에 말 못할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인다. 6ㆍ25전쟁 중 아군과 대결하여 오늘 날 한국의 수 없는 순국선열들을 있게 만든 중공군, 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특급 전쟁 중의 한 사람의 추모에 약간의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어서 울프 독 개인의 의견으로 몇 자 적어 보았다.

P.S
이 글이 올라간 뒤에 중국과 겨우 연락이 되어서 진상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역시 선전과 다른 이면사가 있었다.황 계광은 중대 통신원[연락병]이있다.통신원은 똘똘하고 동작도 민첩한 병사중에서
선발한다.

그는 그날 유엔군의 기관총 화력이 원체 거세니까 중대장으로 부터 기관총 진지에 폭파통[방망이 수류탄 몇 개를 묶은 것]을 투척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는 포복으로 기관총 진지까지 다가가서 폭파통을 투척했다.그런데 유엔군 기관총 진지에서 이를 거꾸로 밖으로 집어 던졌다.[부사수 또는 조수가 했을 것이다] 황 계광은 이를  되집어 넣었다.

그러나 다시 투척한 황 계광이 생각해보니 유엔군이
다시 뒤집어 던질 것 같아서 그 것을 가슴으로 막아 보갰다고 몸을 기관총에
노출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몸으로 막으려고 했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기관총 진지 안에서 폭파통이 폭파되었으면 자기도 죽을텐데
폭파 범위에 자신을 노출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황 계광은 폭파 범위 안전지대인 기관총 진지 아래 위치에서
유엔군이 던지면 다시 뒤집어 던지겠다는 준비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잘못 취했다가 노출되어 총탄에 맞아 죽은 것이다.

황 계광의 용감성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이야기지만 6ㆍ25전쟁이나 월남전에서 이 정도로 적진에 바짝 육박하다가 산화한 국군 장병들은 상당히 많았었다.

중국군에도 대단히 많았으리라.

중국 영웅화가 그린대로 그가 중국에서 단 두명뿐인 특급 영웅의 지위를 부여할만큼 초인적인 전투행위는 결코 아니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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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산 2011.06.03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는 1952년10월 20일 공산군이 상감령[上甘嶺 戰役]이라는 1211고지 전투에서 보시다시피 몸을 날려 적 기관총 화력을 막아내고 목숨을 잃었다.

    그는 탄약도 떨어지고 일곱군데 중상을 입은 몸으로 십여미터를 기어 나가 몸으로 화구를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었다. 상감령 전투는 UN측에서 저격 능선이 부르는 전투다. 1211고지는 현재 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오성산이다.

    --------------------->>

    1211고지는 김일성고지 전투라고 불리며 현재 북한 땅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구 가칠봉 서북방이구요..

    저격능선은 철원쪽입니다. 확인후 수정바랍니다.

    http://www.army.mil.kr/history/과목개요/a3/15.htm

  2. 울프 독 2011.06.03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적 감사드립니다.
    상감령 전투는 저격능선 전투로서 오성산과
    삼각고지 중간 능선이라고 해서
    그냥 인용했는데 확인해보고 정정해보겠습니다.

  3. New Lexus GS 2011.10.28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일곱군데 중상을 입은 몸으로 십여미터를 기어 나가 몸으로 화구를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었다. 상감령 전투는 UN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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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계광이 죽기 전 일곱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중공군이 이미 발표했었다. 진지에서 던지는 수류탄은 대개 20-60미터 내외에서 폭발지대를 형성하지만 저격능선과 같이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100여미터까지 폭발 지대가 넓어질 수도 있었다.

  12. instagram followers 2014.05.2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체를 세워 놓고 무리한 촬영을 한 것, 그리고 팔 다리 떨어져 나가고 끔찍한 조각 사체를 수없이 만져야하는 영현 처리반에 난데없이 있을 수 없는 간호병이 등장해서 정중하게 황 계광 사체를 처리한 것 등은 영웅 만들기의 프로그램에 필요한 기초적인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하는 것을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밸리 전투(제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20 08:38

퓨시리어 대대와 같이 한 시간 만 더 일찍 명령을 접수했다면

얼스터 대대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명령접수 지연은 그날 밤 큰 불행을 얼스터 대대에게 안겼다.


철수명령을 늦게 받은 대대는 유기 장비들이 없도록 모든

짐을 다 트럭에 적재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미군들은 급한 상황 철수시 모두 버릴 장비도 영국군은

모두 챙겼다.


보병들은 언덕에서 내려와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수 행군 순서는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B중대가 앞장서고

그 뒤를 대대 본부가 뒤따랐다.


그리고 전투식량과 탄약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다음,

그리고 C,D A,중대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을 크롬웰과 대대에 배속된 탱크 지원중대의

파견대가 후위를 맡았다.


마지막 기만과 정찰을 위해서 박격포로 무장한 소대병력
장갑차 부대가
작은 고개에 잔류하여 불규칙한 교란 사격으로
적을 견제하도록
  하였다.

이 부대의 장갑차들은 11시 20분에 철수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낮에 제일 높을 고지인 작은 고개를 점령했다가 공습으로

공격대가 전멸당한 중공군은 고지에서 영국군이 모두 철수하자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고지를 점령하고 그 연이은 언덕들에
신속히 침투하였다.



철수로는 우측 위의 쟁고개로부터 아래로 그은 푸른 선이다.
이 소로옆을 따라 언덕이 연이어 있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곡릉철교를 전후에서 전투가 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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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증에 비극의 현장을 이 된 이 작은 고개 지역은 100미터도
안되는
언덕들이 도로를 따라 몇 백미터 내려오다가
곡릉천을 만나면 오른쪽
즉 하류 쪽으로 휘어져 하천을 따라 갔다.


다른 말로 쉽게 설명하면 ‘ㄴ’를 거꾸로 휘어 놓은 것 같은

형태를 띄우고 있다.


지금은 작은 고개를 통과한 도로가 남쪽을 향하여 직선으로
힘차게 뻗어 갔지만
영국군이 싸울 때는 도로가 바로
작은 고개를 넘어와 곡릉천을 만나면
다시 옆으로 휘어져
언덕과 하천 사이를 따라 가다가 하천을 건너 삼하리
벌판을 
가로 질러 매내미[큰 고개]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작은 도로였다.
새도로가 뚫리고 이 도로는 없어졌다. 


우마차나 겨우 다니는 소로였고 지역 물류나 교통은

이 지역을 지나는 열차가 담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대를 수송할 차량부대가 이 역 L자가 끝나고

곡릉천을 건너 삼하리로 들어가는 지점, 다시 말하면 교외선의

철교가 지나는 지역의 눈 덮인 논에서 정렬하여
대기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곡릉 천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 구도로 -이 길로 영국군의
보병들과 전차들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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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지점이 중공군이 은폐해서 접근할 수 있는 언덕애서
불과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대는 어둠 속에서 중공군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근처 언덕을 따라  빠르게 전개했다고 믿었다.


그래서영국군은 어둠을 이용해서 이 소로를 타고
빨리 전선을 벗어 나기로 했다.

기도비닉이 중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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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이는 잘못된 전술적 판단으로 보인다.

중공군의 전투 자산은 ‘밤’과 ‘산’이다.


이 중공군의 전술적 자산은  밤이 되면 산을 타고

은밀하게 유엔군의 틈새로 침투해서 후방 도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미 한달전 미 1 기병사단의 한 대대가 이같은 우회침투와
도로 차단의 전술에 의해서 궤멸 되어 버렸다.

영국군의 철수로 좌측은 낮은 산[언덕]이 동행하듯 같이

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는 영국군 철수도중 중공군이 얼마든지 도로차단과

측면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공군 전술이 이날 밤 이 순간에 꿈틀대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군에게 이 우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도로 옆
언덕[산]에서
일 분이라도 빨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였다.


즉 '기도비닉'보다도 '신속이탈'의 전술적 명제가

더 급한 상황이었다.

쟁고개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철수로와 나란히 뻗은
언덕형 산맥- 철수시 이 언덕의 위험을 인지하고
빨리 이탈해야 했었는데 --- 유감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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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부대 지휘관 쿠퍼 대위가 선두에 서겠다고 자원했지만

전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적에게 부대 철수를

알린다고 믿어서 이 요청은 거절당했다.


모든 트럭과 보병이 떠난 후  전차 부대는 뒤에서 천천히

후위를 맡아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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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을 또 해본다.

먼저 전차와 트럭에게 보병 1개 중대를 배속시켜

중공군이 붙은 우측 산에서 신속하게 이탈하여

후방 매내미 고개로 철수하고  이들로 하여금

철수 부대의 화력지원을 하게 한다.


보병들은 도로에서 벗어나 구보로 삼하리 들을 가로지르는
직행으로 3킬로 떨어진
매내미 고개로 가게 했다면 그날 밤
아무리 상황이 나빴어도
전차 14량을 다 잃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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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계획대로 되어 가는 듯했다.


우측 언덕의 중공군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줄은 알았지만

어둠 속에서 길 위의 이 부대를 무턱대고 공격할 수는 없었다.

병참이 빈약한 중공군은 실탄을 물처럼 쏴대는 미군들에 비하면

무척 사격군기가 강해서 실탄을 아껴 함부로 교란 사격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전투 지역에 두 개의 철교가 있다.
이 철교는 첫번째 철교로서 얼스터 대대는 그 우측 길을
무난히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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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수 부대에 갑자기 불행이 찾아 온 것은 밤 9시 30분이었다.

선두 B중대와 본부 중대는 이미 매내미 고개를 넘어서

전투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일부 부대가 승차한

트럭 부대가 후속하는 철수의 중간이었다.


검은 하늘에 출동한 미 공군기가 낮에 항공 공격을 했던

이 지역에 이르자 조명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비밀리에 움직이던 영국군의 모든 것이 언덕위의 중공군에게

백일하에 들어났다.

중공군은 즉시 자동화기 포문을 열고 공격을 개시하고 이어서

수백발의 박격포탄이 날아보냈다.



중공군의 매복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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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던 영국군과 트럭들은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다.

일부 트럭들은 정지하기도 하고  불에 타기로 했고

많은 보병이 죽어 나갔다.


최대의 비극적인 전투가 대대가 최종 목적지인 곡릉천 이북

철교 근처 작은 마을 불미지 인근의 수송 트럭 집결지에서
발생했다.


영국군이 중공군에게 불의의 첫 일격을 맞은 곳은

곡릉천 철교 오른쪽의 논에 수송트럭들이 집결한 곳이었다.


중공군의 지휘관은 매우 노련하였다.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으로 영국군의 지휘체계를

충분히 흔들어 놨다고 판단하고 언덕으로부터 이 지점으로의

돌격을 명했다.


돌격 나팔 소리와 함께 언덕으로부터 중공군 대병력이

새까맣게 언덕 아래 영국군의 측면으로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와
부대를 덮쳤다.



중공군들이 내려와 영국군을 급습한 낮은 언덕의 한 부분.
이 연속 언덕은 앞 사진 언덕의 연속이지만 앞의 언덕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이 언덕은 곡릉천을 따라 동서로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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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항상 장기로 삼는 단병접전(短兵接戰)의 전술이

어둠 속에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적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사격을 하며 몰려와 삽시간에 영국군과 뒤섞여 버렸다.

아무리 정예 부대라도 이 상태로 기습을 당해
지휘체계가 붕괴 되었다면 어쩔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은 근거리의 영국군을 닥치는대로 쐈다.

영국군들도 스텐 기관총과 소총, 브렌 기관총으로 용감하게
응전했으나
이미 지휘체계가 마비 된 상황에서 그것은 각 병사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전투는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영국군과 이를

살육하려고 쫓는 중공군 때문에 전투장이 서쪽과 남쪽으로

직경 1km정도로 확대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서쪽으로는 전진하는 영국군이 진입한 불미지

마을과 그 동쪽 터널로 전투장이 확대되었다.


영국군의 기록에 의하면 중공군들이 크롬웰 전차의 궤도를

궤도 파괴용 특수 폭탄을 써서 파괴 했다고 되어 있지만

현지를 방문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공군은
특수 폭탄이 아니라
평범한 방망이 수류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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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전차의 궤도는 방망이 수류탄에도

파괴 될 만큼 좁고 얇고 연약하였다.


방망이 수류탄에 전차 14대가 나가 떨어지는

전무후무한 진기한 기록을 만들었다.


현지에 가서 확인했지만 이곳 지형은 센츄리온 전차나

크롬웰 전차의 기동에 차별적 제약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더 튼튼한 궤도를 가진 센츄리온

전차를 파견 헸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에 참전한 센츄리언 마크 3 형 전차- 20 파운드[84mm]
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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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 센츄리언 탱크는 특히 그 탁월한 야지 횡단
능력과 고지 등판 능력으로 미군들의 전차들 보다도
휠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 튼튼한 철 궤도의 현수장치는 나중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메르카바 전차를 개발할 때 참조했었다. 

1960년대에 한국군에서 센츄리온 탱크와 비슷한

크기의 M-47 탱크 철궤도에 수류탄을 넣고 폭파하는

실험을 했지만 궤도는 끄덕 없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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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전차대의 소대장 알렉산더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들을 피해서 곡릉천 제방 위를 달렸다.



곡릉천. 이 하천은 당시 얼어 있었다. 남쪽 제방에서 본 북쪽 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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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하면서 그는 중공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진지에 75mm

전차포를 발사했다.

크롬웰 전차들과 보병들은 적이 점거한 불미지 마을로 진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전차는 불미지를 통과했지만 적의 방망이

수류탄 공격으로 궤도가 벗겨지고 정지해야 했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피다가 피격당해

전사했다.

그의 전차 승무원들은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뒤에서 후속하던 대장 쿠퍼 대위 역시 전차 궤도가 끊어져

포수 쿠퍼 하사와 함께 곡릉천쪽으로 피했지만 이들은

중공군 20여명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목격당하는 것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일부 전차들은 철로를 따라 고양 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집요하였다.


철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터널 [용본 터널-동네 어르신네는
굴칸이라고 부른다.]
안에 진입한 크롬웰 전차를 공격해서
기동 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뒤에 따르는 두 여대의 전차들도 정지하고 승무원들은 중공군의

사격 속에서 피신할 곳을 찾은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 유기된 크롬웰 탱크.
중공군이 고정 포대로서 활용하려고
위장 했었다.

크롬웰 전차 한 대는 중공군이 몰고 한강 철교까지
내려와서 배치되었다가 마침 반대편의 남안에 나타난
영국군 센츄리언 탱크에 의해서 격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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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영국군을 완전히 포위하고 섬멸작전을 계속하였다.

불길에 휩싸인 불미지는 영국군의 묘지가 되었다.


부대의 맨 뒤에서 행군하던 대대장 대리 브레이크 소령은

이 난전을 지휘하려 애쓰다가 이 동네 외곽에서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중공군의 공격은 곡릉천 남쪽 양주시 삼하리에서도 전투가
격심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철교와 불미지 마을 일대가
최대의 격전장이었다고 했다.



전투의 분깃점인 곡릉철교- 이 좌측에
해피 밸리 전투 최대의 격전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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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에 곡릉천 북쪽 선유리에서만 파괴되고 유기된 전차만

6-7대나 되었다고들 하였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클릭∼∼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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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hasiswa terbaik 2011.10.23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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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다시 한강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01 09:34


 

  실험삼아 실시한 울프하운드작전의 성과는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중공군에게 지난 두 달간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짓눌려왔지만, 생각보다 현재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공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유엔군이 반격할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성급하였던 지난 북진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신중한 반격을 결심합니다.]


  썬더볼트(Thunderbolt)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예정되었습니다.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오산과 여주를 연하는 선에서부터 한강까지를 총 5개의 통제선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의 진정한 핵심은 진격 그 자체보다 중공군의 소탕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지리적인 점령은 그다지 의의가 없고 중공군을 최대한 소모시켜 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전제 요건으로 중공군이 우회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전선을 최대한 오밀조밀하게 연결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이제까지 부대들이 산개하여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가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부대의 좌우가 완전하게 연결된 상태로 전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또한 적을 섬멸한 후 사전에 정한 5개의 통제선을 통과할 때는 군단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5일, 오산-여주를 연하는 선에 정렬하고 있던 미 제1군단 25사단과 미 제9군단 1기병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청천강 일대에서 지난 11월 24일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공세이후 꼭 2개월만의 이루어진 유엔군의 공세였습니다.


[1951년 2월 포격당하는 적진을 관측하는 미 제25사단 병사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어깨를 나란히(shoulder to shoulder)하라는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유엔군은 조심스러운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초반에 오산, 수원, 이천 등에서는 적의 저항이 있었으나 예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31일, 선도부대가 안양-양평을 연하는 선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자 리지웨이는 주력을 앞으로 투입하여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하라고 예하 군단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서울의 초입인 한강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강을 향해 계속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리산과 관악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중공군의 저항강도도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 제150사단 예하 1개 연대가 점령한 수리산 일대는 수원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1번 국도와 수원에서 인천을 연결하는 42번 국도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거점이었는데 이곳을 터키여단이 증강 된 제25사단이 공격하였습니다. 싸움이 고지전으로 격렬해지자 문제는 보급이었습니다.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위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탄약과 보급품을 소모하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치열한 공방전 중공군이 공격을 멈추고 도주하면서 전투가 막을 내렸습니다.


  2월 9일, 제8군은 한강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장애물인 관악산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중공군은 고지정상 일대에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고 완강히 저항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1사단의 공격에 중공군은  저항을 포기하고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격을 계속한 국군 제1사단은 다음날인 영등포-노량진 일대에 진출함으로서 먼저 한강선에 도착하여 있던 미 제3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한강을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아군은 다시 한강에 섰고 이제부터는 서울 탈환을 결정해야할 차례였습니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터키군의 모습 ( 사진은 군우리전투 당시 )]


  그런데 신중한 리지웨이는 유엔군 전력이 중공군에 비하여 월등히 우세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 성급한 서울 재탈환은 군사적으로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서울 점령이전에 중부전선을 남양주-가평선까지 끌어올려 서울의 동측방을 포위하여 배후를 안정시킨 후 한강을 도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일단 여기서 진격이 멈추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서부전선의 아군은 훗날을 기약하며 전력 재정비에 몰입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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