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3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19 13:58

  단지 폭파만 놓고 본다면 한강교량 폭파가 부분적으로 실패한 작전입니다. 당시 한강의 교량은 광진구에 있던 광진교를 제외하고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있던 인도교와 3개의 철교였는데 6월 28일 폭파 당시에 이른바 A교와 B교로 불리는 두개의 철교는 폭파에 실패하였고 이들 다리는 이후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절단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마음만 먹으면 한강을 즉시 도하할 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한강교량 폭파가 완료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력이 한강을 도하하지 않고 3일간 진격을 멈추었던 사실을 미스터리로 만든 결정적 사유였습니다.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아군의 붕괴를 스스로 재촉시켜 버리면서 감행된 한강다리 폭파가 만일 완전히 성공하였다면 어쩌면 한강교량 폭파는 북한군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저지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북한군의 서울 도심 지체가 굳이 미스터리로 남을 이유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파괴되지 않은 철교를 이용하여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기갑부대
그들은 마음만 먹었다면 즉시 한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한강교량의 폭파는 우선 완전 폭파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시기와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 결과는 물론 효과도 미미하다 못해 엄청난 손실만 불러왔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6·25전쟁 중 가장 성공적인 교량 폭파작전은 북한군이 실시한 1950년 10월 19일 대동강 인도교와 철교의 폭파입니다. 그들은 후퇴와중에도 얼마 남지 않은 북한군을 대동강 이북으로 완전 철수시키고 유엔군 도달 바로 직전에 완벽하게 교량을 폭파하여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북한군이 후퇴 시 폭파하였던 대동강철교]


  그런데 ‘라주바예프 전쟁 보고서’처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발굴 된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의 한강 도하와 관련한 경악할 만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는데, 그것은 6·25전쟁 초기상황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같은 사실을 놓고도 그동안 너무 간과하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한강교량 폭파 전에 이미 한강을 도하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의 행적에 대해서 오래 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도 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이미 개전 다음날부터 한강을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쟁 개시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에 선도 부대를 시작으로 다음날까지 개풍에서 한강하구를 건너 무주공산과 다름없던 김포로 대부분 도하를 완료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북한군 제6사단의 극히 일부 선도부대만 김포반도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하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6월 28일 한강교량 폭파 훨씬 이전에 이미 북한군 전체 제6사단은 한강도하를 완료한 상태였고 이들이 한강교량 이남을 아군보다 먼저 점령할 가능성이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철교 인근을 도하하는 북한군 한강하구를 이미 이런 식으로 도하하였습니다]


  따라서 급편 된 김포지구전투사령부(김포사)가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인 방어전을 그동안은 작은 전투사례로 분류하였지만 실로 엄청난 의의가 있음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6월 26일까지 영등포 점령하여 아군을 배후에서 포위하는 것이 목표였음이 밝혀졌는데 만일 김포사의 분전이 없었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즉, 한강다리의 파괴 여부와 상관없이 아군주력의 퇴로는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림처럼 일산근처에서 북한군 제6사단이 도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이미 전쟁 다음날 한강하구를 통해 김포반도로 진입하였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서울 함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과 북한군 주력의 서울 지체에 가려 지금까지 일찌감치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 제6사단에 맞서 싸웠던 김포사의 영웅적인 방어전이 소홀하게 취급된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북한군 주력이 서울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 정확한 이유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지을 극적인 전투는 바로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 산화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참모장 최복수 중령]


  개전 초기 무주공산과 다름없었던 김포반도를 사수하기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병력을 끌어 모아 급편 된 임시부대였지만 김포사는 불리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포비행장 탈환작전 당시에 참모장 최복수 중령은 단신으로 기관총을 거치한 지프차를 몰고 비행장을 질주하여 적을 유린하다 전사하였고 사령관 우병옥 중령은 패퇴의 책임을 통감하고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원미산에서 자결하였습니다.


[고귀한 희생을 망각하였던 사실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6·25전쟁 개전 초에 보기 드물 정도로 최고 지휘관들이 목숨을 걸고 솔선수범하여 전선 맨 앞에서 싸움을 벌인 곳이 바로 김포반도였습니다. 그들의 용전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북한군이 서울에서 지체한 3일이 아니라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망각하고 있던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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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2010.07.30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가 없습니다...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십은데... 관련 서적좀 가르처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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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북한 조종사의 비행'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14 09:20

  귀순 이후 미 공군으로 소속이 변경된 노금석 상위의 미그 15를 미 공군 조종사가 조종해 각종 시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느닷없는 적기의 착륙, 뒤집히는 김포 비행장
 당시 미 공군은 미그 15로 인해 적잖은 곤욕을 치르고 있었고 이 기체를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용감한 북한 공군 조종사의 귀순으로 멀쩡한 상태의 기체를 손에 넣게 되지요.
 3년 간의 치열했던 전쟁이 휴전되었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1953년 9월 21일의 김포 비행장.
  언제 다시금 촉발될 지 모를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여전히 F-86 "세이버"를 비롯한 한국 공군과 미 공군 전투기들이 대기하고 있던 순간, 느닷없이 은빛의 수상한 기체가 신속하게 활주로에 착륙합니다.
  F-86보다 작으면서 원에 둘러싸인 붉은 별 마크가 그려져 있던 그 기체는 다름 아닌 북한 공군의 미그 15 전투기였죠.
  비행장은 순식간에 초 일급 비상사태로 돌입했고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자전거를 타고 신속하게 미그 15로 접근하던 조종사 진 존슨 중위를 향해 기체에서 막 내려온 북한군 조종사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영어단어인 "모터카"를 외치며 그에게 권총을 건네줍니다.
  착륙 10분이 경과하기도 전 김포 비행장은 초 일급 비상경계태세가 발동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전쟁 기간 중 그토록 골칫거리였던 미그 15가 귀순을 해왔으니 말이죠.

    난데없는 귀순 사건으로 인해 김포 비행장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지난 전쟁 기간 중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미그 15가 귀순을 해왔으니 말이죠. 그것도 북한 공군 소속이라는 것이 덕분에 파장이 컸습니다.  
  미그 15를 몰고 귀순한 노금석 상위
  1953년 9월 21일, 김포 비행장으로 귀순한  노금석 상위의 미그 15는 놀랍게도 가장 최신 개량형인 미그 15 bis!
  미군으로서는 가장 일반적이었던 미그 15A형이나 훈련용 복좌기도 아닌 상급 기종이 귀순한 것에 대해 경악했고 이 기체는 몇 장의 사진 촬영만 이어진 후 바로 격납고로 이송돼 엄중한 경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막강한 전투기를 조종해 귀순해온 북한군 조종사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당시 공군 상위였던 22세의 노금석이었습니다.
 귀순 직후 촬영된 노금석 상위의 조종사 복장 착용 모습. 공산권 국가의 전투기 조종사가 어떤 복장을 착용하는지 고증해주는 몇 안되는 자료입니다.
 귀순 당시 22세였던 노금석 상위는 얼핏보기에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유년 시절부터 카톨릭 선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음은 물론 1945년,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하면서 벌인 행패와 만행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면서 겉으로는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한 척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평시에는 북한 공군의 조종사로서 근무했지만 언젠가는 기회를 틈타 반드시 북한을 탈출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던 노금석 상위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죠.
  노금석 상위는 겉으로는 열혈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내심으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이 날은 스타크래프트Ⅱ : 자유의 날개 출시 예정일이기도 합니다. 아직 고교 3학년생인 방문자 분들은 일단 공부에 집중하시는 것이 좋죠 ), 판문점에서 군사 분계선이 그어짐에 따라 3년에 걸친 포성은 멈췄습니다.
  자연 양측 진영 공군은 출격은 하되 상호 간에 교전을 치를 가능성이 지독하게 낮아졌고 노금석 상위는 마침내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적기로 오인돼 격추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고 그는 탈출할 장소로 휴전선에서 비교적 가까운 김포 비행장을 선택합니다.
  1953년 9월 21일, 탈출을 앞둔 노금석 상위는 최신예 미그 15bis의 조종석에 올라 기체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했습니다.
  노금석 상위가 조종해 귀순한 미그 15bis의 모습. 사진은 아군기의 오인을 피하기 위해 미 공군 마킹과 도색이 칠해진 뒤를 촬영한 것입니다. 노금석 상위의 귀순 덕분에 미 공군은 그토록 골칫거리였던 미그 15를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합당한 보상을 치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행 도중 기회를 틈타 신속하게 편대를 이탈, 곧장 남쪽으로 기수를 돌립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미 공군 전투기들에게 격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포 비행장 상공에 도달할 때까지 노금석 상위의 미그 15bis를 향해 달려드는 F-86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자유의 순간을 맞이한 노금석 상위는 신속하게 김포 비행장에 착륙했고 자신의 기체를 세이버로 착각한 미 공군 지상 근무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귀순 이후 미 공군의 엄중한 경비를 받고 있는 노금석 상위의 미그 15bis. 미 공군은 최신 기밀이 새어나갈 거을 우려한 북한 공군의 공습에 대비, 비행장 일대의 경비와 대공망을 철저하게 강화했습니다.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그의 기체는 곧 삼엄한 경비에 들어갔고 본인 역시 몇 장의 사진 촬영만을 실시한 후 신병을 철저하게 보호받았습니다.
  이후 자유와 함께 약 10만 달러의 포상금과 더불어 미국으로 이주한 노금석 상위는 영어를 배운 후 케네스 노라는 미국 이름을 받아 대학 교수로 재직한 뒤 은퇴해 지금까지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유를 향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노금석 상위의 일대기는 6.25 전쟁의 비참한 속에서 나온 몇 안되는 감동 스토리 중 하나입니다.
  올해 69세인 노금석 상위는 현재 케네스 노라는 미국 이름으로 대학 교수로 재직한 후 은퇴,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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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님 2010.05.14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퍼싱의 군사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고 색다른 소재가 항상 색다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2. 김형래 2010.07.11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금석 상위의 목숨을 건 귀순 비행 잘 감상했습니다.

    정말 용단을 내렸네요

  3. expedia itinerary assistance 2012.05.29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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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종류의 게시물을 드러내기 위해 감사를 드려 야지 이것은 정말 놀랄만한 정보입니다.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25 09:16
 

[트라이엄프의 활동을 함재기 화이어플라이기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영상]


  6·25전쟁중 영국군은 상당한 육해공의 병력을 파견해서 중요한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951년 봄, 임진강 전선에서 중공군 춘계 공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그로스터 연대의 용맹한 일화를 육군이 남겼고, 압록강 상공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터어 쌍발 전투기로 공산군 미그 15기와 힘겨운 공중전을 벌인 영국 공군의 분투기도 한국 항공 전사에 기록했었다.


  영국 해군 역시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군으로 김일성 남침 불과 며칠 후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남침 불과 일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 해군 순양함과 같이 동해안에서 남파 병력 호송대를 호위하던 북한 어뢰정 세 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었다.
6·25전쟁중 영국 해군은 황해를, 미군은 동해를 맡아서 3년간 작전했었다. 영국 해군은 6·25전쟁 참전중에 여러 전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이한 활동으로서 최초로 파견된 영 항공모함 트라이엄프의 활약을 소개한다. 트라이엄프는 2차 세계 대전 바로 후인 1946년 5월 6일 취역했다. 총 톤수 1,7000 인 경항모였다.


[영 항모 트라이엄프]


  6·25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들이 27,000톤의대형이어서 80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를 탑재하는데 트라이엄프는 작전시에 단지 24기만 탑재했었다. 트라이엄프의 함재기들은 이미 구식이 되어가는 프로펠러 전투기 씨화이어와 역시 프로펠러 전투기인 화이어플라이 기들이었다. 씨화이어 기는 유명한 스피트화이어기들의 해군용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착륙 장치가 강화된 것이다.


[씨화이어]

 

  이 전투기는 빠르고 운동성도 좋지만 그 모양[실루엣]이 북한 공군의 야크 9와 비슷해 자주 오인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1950년 6월 트라이엄프는 영국 해군 극동 함대에 이동 배치되었다. 사령관은 죠지 앤드류스 소장이었다. 배속된 극동 해역으로 항해하던 중 홍콩 근해에서 트라이엄프와 다른 호위함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았다. 트라이엄프와 호위하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항해를 계속하여 일본 구레[吳]항에 기착했다. 구레 항은 호주군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작전해역으로 투입 전 트라이엄프는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이 군항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비행하기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은 네 기의 씨화이어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내려놓았다. 작전을 위한 격납고내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트라이엄프는 다시 한국 해역으로 출발하면서 다른 영국과 호주함들과 기동 함대를 구성했다.


[영 함재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기동함대를 구성했던 영국함들은 순양함 저메이카, 구축함 HMS 콘소트였다. 두 함들은 6·25전쟁중에 활발한 활동과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영국함들에 호주 프리게이트 함 HMAS 숄하벤과 영국 급유함 웨이브 콘퀘러가 가세해서 6·25전쟁참전 영연방 함대를 이루었다. 트라이엄프 함대는 출항하자 오키나와로 남하하여 급유를 받은 다음 미 7함대의 미 항모 부대와 함께 연합 함대를 구성 출동하였다. 황해 작전 해역에 도착한 트라이엄프의 함재기[827 해군 항공대]들은 미 함대와 합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3일 첫 출격이 있었다. 미 해군 항모 밸리 포지[에섹스급 항모]와 협동 작전이었다. 트라이엄프의 12기의 씨화이어와 9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출동하였다.


[미 항모 밸리 포지]


  영 함재기들은 황해도 해주 비행장을 들이쳤다. 유감스럽게도 적기는 없었다. 공격대는 비행장 빌딩과 격납고를 파괴하고 귀함했다. 다음 날에도 트라이엄프의 공격대가 출격했다. 이 날에는 괄목할 전과가 있었다. 연안과 해주 사이의 철교를 부수어 철로를 끊고 북한군 병영과 고사포 진지를 기총소사했다. 트라이엄프는 대지 공격이 없으면 주로 대잠 정찰과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평양 폭격이 있은 지 2 주 뒤인 7월 19일, 트라이엄프가 탑재한 구난기인 씨 오터 쌍엽기가 조종사 케인 중령이 조종하고 황해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 원산 앞 바다까지 장거리를 날아가 격추된 미군 콜세어 기의 조종사를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구출해내는 위험한 구조 임무를 완료했다.   이 구난 업무는 구식 씨 오터 기들의 마지막 전시 출동 임무였다.


[항모 탑재 구난 비행정 씨 오터. 1943년 취역했다.]


  7월 28일 거의 비극으로 끝 날 뻔한 재난이 발생했다. 씨 화이어 일개 편대가 함대 북동방 공역에서 함대의 레이다가 잡은 미확인 비행체들을 확인 차 출격하였다. 씨화이어들은 그 미 확인 비행체들이 함대에 내습하는 적기가 아니라 미 공군의 B-29임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마음 놓고 접근했던 씨 화이어 3번 기는 300야드 거리에서  B29 한 기로부터 느닷없는 불줄기의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 말한 듯 멀리서 보는 씨 화이어의 실루엣[외형]이 북한 야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한 미 B 29기의 기총수들이 기관총을 쐈기 때문이다.


[씨화이어 기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야크 9기]


  씨화이어기들이 일제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한 기의 연료 탱크에 기총 탄이 명중했다.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조종사는 크게 화상을 입었으나 기체를 뒤집고 자유 낙하하는 방법으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파도가 너무 거칠고 높아 항모에 탑재한 씨 오터 기로도 바다에 표류하는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조종사는 속절없이 한 시간동안이나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미국 구축함  에버솔에 구출되었다. 이 사건 뒤 영국 전투기들은 동체와 날개에 검고 흰줄을 쳐서 야크기가 아님을  알렸다.


[식별 표식을 한 씨화이어 기]

 

  트라이엄프는 계속 현장에서 대공 및 대잠 활동을 수행하고 다시 일본의 구레로 돌아왔다. 8일간 머무르며 재정비와 보급을 마친 트라이엄프는 7월 9일 영 순양함 케니아와 구축함 코머스, 그리고 두 척의 카나다 HMCS 아타바스칸 과 수우등의 전투함과 같이 출항했다. 이번에 주어진 주요 임무는 적 항구에 대한 집중적인 사진 정찰이었다. 함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남한의 목포나 군산 그리고 인천을 정찰했고 북쪽의 진남포까지 항공 촬영하였다. 비행대장 맥라크란드 중령은 순양함 저메이카가 군산시에 위치한 대형 공장을 포격하는 것을 유도했다.


  8월 14일 진남포 인근 대동강 하구에 큰 대형 선박 세 척이 정박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인 중령 지휘 아래 오후에  6기의 씨 화이어기들과 6기의 화이어 플라이기들이 로케트 탄으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편대는 대공포화가 격심했지만 로케트 공격으로 이 선박들을 대파시켰다. 나중에 격파된 한 척은 북한 해군 소해정이었고 한 척은 2,000톤 크기의 화물선, 한 척은 800톤의 연안선으로 밝혀졌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기동 함대는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영 씨화이어의 착함 모습 - 착륙할 때 후미의 훅이 걸리는

과정을 살펴 보시기 바람]


  정찰 업무가 끝나고 트라이엄프는 계속 서해를 초계하며 작전을 이어 나갔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연안용 작은 배들도 여러 척 격침했고 해변에 설치된 오일 탱크를 파괴하였다.


  8월 19일에는 영국 구축함 콘소트와 트라이엄프의 화이어플라이가 협동하여 군산에 있는 공장을 포격했다. 8월 23일 고장 사고 격추등의 이유로 작전 가능했던 24기의 함재기가 단지 9기만 남자 트라이엄프는 일본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트라이엄프는 일본 사세보로 돌아와 싱가폴에서 함재기들을 수송해온 항모 개조 공작선 유니콘으로부터 14기의 함재기를 인수받았다. 


  트라이엄프가 사세보에 기항해있는 사이 황해에서초계 항해를 하던 구축함 HMS 코뮤스는 군산 서쪽 85마일 해역에서 북한 공군 IL-10 두 기의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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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는 김포 아니면 수원 비행장에서 출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격위치는 어청도에서도 중국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제공권도 없는 북한기가 이렇게 먼곳까지 출격을 나왔던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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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의 우현이 파괴되고 수병 한명이 전사했고 한 명이 부상했다. 함은 동료함 콘소트의 호위 아래 사세보로 돌아왔다.


[소련제 IL 10 공격기]


  8월 26일 다시 출항한 트라이엄프는 한국의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북한 서해안에 정찰비행을 나간 두기의 화이어플라이기 들은 해변에서 숲으로 우거진 세개의 이상한 섬을발견하였다.그러나 잘 살펴보니 나무와 풀로 뒤덮어 위장한 세척의 북한 위장선이었다. 세 척은 위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이어플라이기에 즉각 파괴되었다.  이번 출동에서 적의 100톤짜리 어선을 비롯한 여러 척의 북한 배들을 파괴하였다. 트라이엄프는 통상의 초계업무를 했고 함대의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채리티의 연안 함포사격을 위한 사전 정찰과 탄착점 유도를 하는 지원 업무를 했다.


 

  8월 29일 트라이엄프 함상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 기가 꼬리에 달린 정지 후크없이 착륙하다가 항모 갑판을 미끄러져 안전벽에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함교로 날아가 작전실의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맥라크란 중령을 후려쳤다. 맥라크란 중령은 800 해군 비행대의 대장이었다. 맥라크란 중령은 이 불운한 사고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한 해역에서 의식을 갖춘 장례식으로 수장되었다. 그는 6․25전쟁중에 사망한 유일한 해군 조종사였다.


[영국 해군의 함상 장례식]


  9월 3일 출동한 트라이엄프 함대는 군산 비행장과 군산역을 포격한 저메이카를 위한 탄착점 유도를 했다. 9월6일 트라이엄프는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아라뭉가, 그리고 바타안과 같이 황해를 떠나서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작전하던 미 7함대 항모 부대의 작전임무를 인계 받았다. 7함대는 일시 휴식과 보급 그리고 정비를 위하여 일본의 모항으로 귀항해야만 했다. 트라이엄프 함대의 동해안 작전은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와 씨화이어등은 연일 북한 땅의 목표들을 공습해서 북한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했다.


  첫 주요 목표는 철도였다. 원산 남방으로 뻗은 철도를 따라 내려가던 6기의 씨 화이어와 6기의 화이어플라이는 한 작은 역에서 열차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화차들을 모두 벌집이 되게 파괴하고 기관차는 완전히 운행불능인 고철이 되게 부수어 놓았다. 이어서 동해안 철도를 따라 계속 수색하여 고원 역에서 80량의 화차를, 영흥 역에서 40량의 화차들을 발견해서 모두 파괴해버렸다.


[유엔기의 공습을 받는 북한 열차]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9월 12일에 보급 및 재정비를 마친 트라이엄프는 호위하는 와라뭉가,채리티와 콕케이드, 콩코드등과 함께 기동 부대를 만들어 사세보를 출항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인천이었다. 바야흐로 역사적 인천 상륙작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폭격받는 인천시]


  함대 승무원들에게는 행선지는 물론 비밀로 했다. 트라이엄프 기동부대의 임무는 상륙 작전 사전에 항공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상륙작전 직전 함대는 화력지원과 정찰 업무를 개시했다. 트라이엄프의 함포 사격 지원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순양함 저메이카와 케니아의 함포는 화이어플라이가 지시한 고지의 북한군 목표를 포격해서 대 폭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곳에 적 탄약고가 있었던 것이다. 산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고 엄청난 연기가 2,500미터 이상 솟구쳤다. 그날 저녁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 소장은  맥아더 원수로부터 치하 전문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첫날 13,000명의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다음날 17일 새벽 북한 야크기 두기가 인천 앞 바다의 상륙 함대를 공습했다. 두 기는 미 순양함 로체스터를 폭격하고 그중 한 기는 겁 없이 더 먼 바다에 있던 영 순양함 저메이카를 기총소사를 했다. 수병 한 명이 전사하고 두 명이 부상했지만 야크기는 저메이카의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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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습 전투기가 야크- 9기라는 설과 IL-10  기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국 기록은 이 북한 기들을 IL-2로
 적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기가 투하한 폭탄의 크기가
 전투기용인 소형으로 보여 야크기 설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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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양함 저메이카]


  트라이엄프는 인천 상륙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9월 21일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항했다. 이 번이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작전 항해였던 것이다. 함재기들의 손실도 많았고 함의 이곳 저곳도 손을 보아야 할 함들이 많아 한국 파견 임무를 종결해야했다. 트라이엄프는 이틀간 사세보 드라이 독크에 들어가 작전 중 입은 파손 부위를 긴급 수선했다 9월 25일 트라이엄프는 임무를 일주일 뒤에 극동해역에 도착할 다른 항모 테세우스에게 인계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테세우스 - 트라이엄프와 같은 급이댜.]

 

  트라이엄프는 그 후 영국 해군에 장기간 더 봉사했다. 50년대 말에는 함정 수리를 전담하는 공작함으로 변신해서 재 취역을 했다. 퇴역한 트라이엄프는 1981년 스페인 고철 업자에게 팔려 해체 되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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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3.26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좋은 시간이되세요..^^

  3. 야후 낙화 2010.03.2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기고글 잘 보았읍니다
    감사 드립니다 독님

  4. li815 2010.03.26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phy1133 2010.03.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기고가가 되신 ~님께 축하 메세지 남김니다. 즐감~

  6. 장대수 2010.04.1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어요~

  7. Douglass Pabich 2012.05.3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유익한 기사 극단적인 재미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 내에있는 모든 사람을 겪고 있습니까? 나 역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쓰는 사람의 방법을 만끽하는 데 도움 것을 보내 겠소. 감사

  8. Michel Alvidrez 2012.05.3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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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edical emergency kit supplies 2012.10.21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5. Full Term Insurance 4 Sale Article 2014.03.31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