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의 정체를 증언한다.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27 08:23

6·25전쟁은 수많은 양민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억울하게 처단 당한 경우로서

보도연맹 사건을 들 수가 있다.


6·25 전쟁 초기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북한군- 무고한 양민 학살을 너무 쉽게 자행하거나
방조한 점에서 중국을 석권한 중국 해방군과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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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이란 좌익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고  전향한

사람들울 모아 정부가 조직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의 후원도 있어서 소속 연맹원들이 많았었다.


전향했으니 당연히 남한의 국민들은 그들이 완전히
사상을 바꾸어 반공의 가치를
일반 국민들과 공유한 것으로
믿었었다.


그러나 그 조직원 상당수가 결코 전향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이 가한 불의의 침공에 황망하게 남으로 이동하던 군경들에게

적치 서울에서 학살 소식이 꼬리를 물고 들려왔다.


서울 시가 행진을 하는 북한군- 연도에 보도연맹같은
강제 동원한 군중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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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를 분노케 한 것은 그 학살의 주도세력이

보도 연맹원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을 그냥 남겨놓고 후퇴했을 때 서울에서와 같은 대학살
사건이
벌어지리라고 판단한 군경은 이들 연맹원들을
모두 처형했었다.


북한군 서울 점령 뒤에 날뛰는 적색 선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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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연맹원들이 모두 전향자들만 있던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도 가입을 했었다.


가입하면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당국자의 말을 듣고

가입했던 사람들은 사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로 전향해서 반공 활동을 하고 있던 연맹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급히 후퇴하고 있었던 정부에게 옥석 가릴 여유가 없었다.

국가 망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생긴 여러 6·25전쟁 비극중의 하나였다.

억울하게 희생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유족들의 한(恨)이야말로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한국의 경제도 발전하고 정치적 수준도

높아지자 좌성향의 여러 진보 단체들도 활동을 개시했다.


이들이 한국 현대사에 트집을 잡고 정부를 공격한 여러
문제 사건중의
하나가 한국 정부가 무고한 보도 연맹원들을

무수히 학살 되었다고 오도하는 사실이다.

보도연맹을 무고한 순수 단체였었는데 정부가 탄압하고
그 연맹원들을 무수히 죽였다는 것이다.
 


보도 연맹 사건은 역사 모르고 실정 모르는 젊은층 일수록
6·25 전쟁에서
앞뒤 안 가리고 정부 공격할때 도마에 오르는
주요 메뉴중의 하나다. 
그들은 적치하에서 돌변한 보도연맹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전혀 밝히지를 않는다.

여기서 보도연맹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분의 글을
소개한다. 


총 후퇴라는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애써 손을

써서 이들 연맹원들을 찾아내 처단해야 됐던 그 절박한 이유를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후퇴하는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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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해주시는  분은 전 북한군 공병 병과 소좌로서

소련어 통역으로 참전했던 주영복씨다.


그 분은 참전중 북괴 체제에 염증을 느끼던중 UN군에 투항했다.

포로로서 제 3국인 브라질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자서전은 국내 주요 일간지에서 연재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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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직전 창봉리 부근에서 다시 지휘부와 합류했다.

평양을 떠날 때는 소좌 중좌 급의 정치 보위부원이 2명 정도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배 이상 늘어 4,5명이 눈에 띈다.


나는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사법권을 쥐고 있는

그런 비밀경찰 같은 부서의 인간들은 경원해왔다.


그들은 군단 지휘소와는 다소 떨어진 독립 막사를

차지하고 어딘가 기분 나쁜 공작을 하는 듯이 보이기만 했다.


군단 지휘부에는 민간인들이 없는데 처음 보는 남한 민간인들이

빈번히 정치 보위부 막사에 들락 달락했다.


나는 그들이 단순한 정보 제공자로 알았는데 그들이야말로
숨었던
남로당 보도 연맹원들로서 색출과 학살의 협조 단들이었다.


얼마 후  손을 뒤로 묶인 5명의 군복차림 젊은이가

그들에게 정치 보위부 막사로 끌려왔다.


나는 눈이 둥그래져서 그들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정찰 참모가 귀에 대고 말했다.


“놈들은 국군 헌병과 악질 경찰들이야!“

“뭐라고 ? 포로인가?”

“포로가 아니야! 체포 된 자야!”

그때 민간인 1 명이 보위부 막사로부터  나와 우리 옆을

지나가기에 다시 물었다.


“ 당신들은 저 사람들을 압니까?”
“ 예 ! 알고 있습니다. 저 속에는 춘천 헌병대에 있는

   악질 특무 상사가 있습니다.

   그 놈은 많은 애국 청년을 죽였습니다. ”

“ 그 외 몇 놈의 경찰관도 많은 남로당을 체포 학살한 
   놈들입니다.”

“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겁니까?“

“ 오늘 보복합니다.”

“ 보복 ?”

그 민간인은 손가락을 구부리며

“ 이렇게 합니다.-총살을 말한다.- 벌써 수 십 명 처단했습니다.”


그 때 보위부 막사에서 때리고 고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한민국 국군 특무상사다아! 죽일테면 죽여라아!”


북한 적색분자들이 자행하는 학살의 전주곡-  인민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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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다른 목소리는 경찰관들인듯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잠시 후 4.5명의 정치 보위 군관들이 그들을 주판알처럼 묶어

잡초가 우거진 언덕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그들의 뒤를 따라 다갈색 군복 입는 총살 집행대가 따발총을

앞가슴에 걸머쥐고 따라 섰다.


경찰관들은 계속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무슨 협조든지 다 할 터이니 목숨만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지만 10여명의 도살자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 집에는 처와 철없는 아이들 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하고 계속 애원했지만 국군 헌병 특무상사는 죽기를 각오한 듯

“이 공산당들아 !죽이려면 빨리 죽여라!” 라고 소리쳤다.


북한군이 고함을 지르며 구타했다.

"이 승만 졸도 개새끼야 !"

그러나 헌병 상사는 기가 죽지 않고 맞고함을 질렀다.

“김 일성 도당 개새끼들아!”


죽음을 각오한 다른 국군이 따라 외쳤다.

“이 빨갱이들아 ! 너희들도 벌 받을 때가 --!“


이때 정치 보위부 대좌가 “ 쏴라!”하고 총살 지시를 내렸다.
“따따따 따! 따르르 따르르르 !”


비스듬히 아래로 겨눈 몇 정의 따발총이 일시에 불을 뿜었다.

수 십 발의 탄알을 한꺼번에 받은 헌병 특무 상사는 털썩 앞으로

거꾸러졌다.


배 허리 가슴 등에 몇 발씩 맞은 국군 포로와 경찰들은
앞으로 옆으로
뒤로 마구 쓰러지고 신음 소리마저 냈다.


그중 한 사람은 딩굴며 풀을 마구 쥐어뜯었다.

또 어떤  경찰은 머리를 땅에 박고 손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다.


“태양 아래 자행되는 살인극!“.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나는 얼굴을 돌려 뒤를 보았다.


그때 서산에 넘어가는 태양을 한창 더 붉게 비쳤다.

내 눈에 비친 그 붉은 태양은 지금 본 피와 혼돈하여 거대한

핏덩어리와도 같다.

그리고 내 가슴은 떨리는 듯하다.



북한 공산분자들의 양민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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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려다본다!

하늘이 나를 보고 있다!

이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 잡혀

분노,허탕, 혐오가 일시에 우러난다.


인민군이 성장하여 용이 될 줄 알았는데 고작 붉은 독사로 변했다.

죄악으로 뭉친 김일성은 남북을 통일하고 다스릴 자격이
없는 죄인이다.

그리고 북한군은 이겨서는 안 되는 악마의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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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국군 특무상사의 저항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준다.
주 영복 씨가 정이 지게 헸던 살해가 있었던 것은
침공 발발
수일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북한군들은 한국인 들만 아니라 미군도 다수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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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과 며칠 사이 잠복했던 남로당과 보도 연맹원들이

숨어 있던 군경들을 잡아내 북한 보위부에 바쳐 죽인 남한 인사가

수 십 명이라니 가히 전문적인 살인 집단이라 할 수가 있다.


남쪽으로 경황없이 도주하던 도저히 비상수단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겠다.


보도 연맹원들은 과거 공산주의자로 대한민국 타도를
시도하다가
체포 된 사람들이다.

북한 정권 같았으면 모두 극형을 면치 못할 존재였는데 정부가

이들을 포용,전향 시켜 만든 단체가 보도연맹이다.


남한 정부의 관대한 포용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들의

전향을 만회하기 위해 살인을 그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 배신을

밥 먹듯했던 인간들이 보도 연맹원들인 것이다.


진보 단체들이 떠드는 대로 보도연맹은 결코 순박하고

선량한 피해 조직이 아니라 잔악한 살인 집단이랴는 것을
북한군 장교였던 주 영복 씨 위의 글이
말해준다. 


결국 따지고 보면 무고한 희생 보도 연맹원들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성급하게 날뛴 다른 보도

연맹원들이 희생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가 있다.


더 많은 학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단행한 이 조치로서 아깝게

이승을 하직한 분들에게는 당연히 가려져서 충분한 보상이

있었으면 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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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상 2010.09.03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피난가지 못해 겪었던 3달간의 공산치하는 정말 치가 떨렸다고 합니다.
    주민등록제도가 아직 없던 시절에 인민군과 내무서원들이 점쟁이 입니까?
    보면 누가 경찰가족인지 군인가족인지 알까요? 제보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보도연맹이지요.
    그 인간들이 동네 어느집에 누가 사는지 명단을 작성해 건네고 완장 팔에 차고 앞장서서 집 찾아
    가서 잡아와 동네주민들 강제로 모아놓고 인민재판 열어 주민들 박수로 선동 유도하여 죽창으로
    처형시키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오죽하면 일제치하에서 일본놈한테도 한번도 못 겪은 끔찍한 공포를 겪었다고 하겠습니까.
    전향했지만 휩쓸려 처형된 보도연맹원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전쟁중 후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득이한 당연 조치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치하에서 학살된 남한주민이 수십만이나 되지만 그나마 수백만이 되지 않은건 바로 보도연맹
    원들을 상당수 미리 처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울프독님 글 잘 읽었습니다.

    • 개념탑재 2010.10.18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쟁중 후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득이한 당연 조치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개념없는 소리하네...
      니 애미 애비가 그런 꼴로 당해도 그렇게 시부릴 꺼냐?

  3. 개대중 2010.09.10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숙과 그녀의 남편, 한명숙은 아직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 이란자가 대표적인 보도연맹 출신 빨갱이 아닌가 !!!

  4. 야이띨띨이들아 2010.09.11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에서 운영하는 KBS1 뉴스에서 국가의 잘못이 맞으며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조사결과 나오는거보면 말다나온거야. 국가가 잘못한게 아니라면 국가가 그런 방송을 하게끔 나뒀을거 같냐? 그것도 국가의 조종아래 놓여있는 KBS1 인데? 더군다나. 9월15일날 있는 보도연맹 글짓기 대회가 있는데, 억울하게 죽은 시민들을 위해 국가의 만행을 알자는 내용의 대회다. 그대회를 여는 사람이 국회위원이다. 최고상이 국회의원 상이고 우수상이 충청북도지사 상이다 ㅄ야 ㅋㅋㅋㅋ 그런걸 국가가 제재를 해야지 국가가 잘못한게 아니라는게 되는거야. 생각을해봐. 그런대회까지 만들어서 운영할 정도면 국가에서도 우리가 잘못한거라고 인정하는거아냐. 그런데 대법원에서 1인당 200억원 보상하라고 해서 지금 보상하기 아까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거아냐. 생각좀하고 뉴스좀보고 공부좀하고 그러고살자.

  5. 야이띨띨이들아 2010.09.11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충북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들을 모아두었다는 청원고등 학교라는 곳을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우리 학교의 모든 국사 선생님들이 국가의 만행에 대해 가르치실 정도로 이미 사회에 잘알려진 국가의 만행이다. 국가에서는 수많은 보도연맹 사람들이 인민군으로 변할까봐 두려워했다고. 그래서 그 수많은 보도연맹 사람들을 학살한거야. 뉴스를 보면 증언하는 분이 나오는데.

    그분 말씀으로는
    "피난을 가려고 하는데 국군들이 보도연맹들은 남으라고해서, 우리마을 보도연맹 사람들이 전부 남았어. 이장집으로 대려가길래 따라나섰더니, 이장집에 우리를 몇일간 가두어두고 몇명씩 불려나가는데, 그럴때마다 맞아죽는 소리가들려. 맞아죽는 소리가."

    라고 하셨다!

  6. chaffee2080 2010.09.14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모르나 본데, 오늘날의 문제는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나온 사람, 아얘 보도연맹원도 아닌데 보도연맹처형시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외국에서 오셨는지 모르지만, 위와 같은 내용때문에 현재 억울한 민간인 학살이 문제화되는 겁니다. ㅉㅉ

  7. 친일파 뒤통수조심해라 2010.09.22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kbs도 빨갱이라할 사람들.. 어려서받아온 일방적 반공교육의 쇄뇌당한사람들...

    보기싫어도 볼건보고 듣기싫어도 들은건들어야지 자기의견에반대하면 무조건빨갱이로 몰아부치는

    무식한사람들...이런류의사람들이 전쟁동안 얼마나많은사람들을 학살했을런지...혹시 친일파들의 의도적으로

    자기죄를감추기위해 학살가담했는지도 의심을해본다..그때는 친일파들의천국이나 다름없었으니....

  8. 직접 봤습니다. 2010.10.13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원도 폐광촌에 무수히 죽어간 민간인들의 해골무덤이 있습니다. 보도연맹 때문에요..

    어린 아기도 있습니다. 청소년 아이들의 해골도 있습니다.

    너무 많고 일일이 쏴죽일 시간도 없어서 그냥 산채로 묶어서 매장시킵니다.

    이들이 빨갱이...일까요?

    지역마다 할당인원이있었고으니... 간부들은 당연히 인원수 채우려고 쌀주고 식량주고..

    먹으려고 가입하고.... 가입했더니 죽이고.......

    빨갱이 일까요?

  9. 가관 2010.10.18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관도 아니군요.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바로 당일 북한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민간인 학살에 앞장선것이 바로 보도연맹원들입니다.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되기도전, 국군이 후퇴하기도 전에 이미 빨간 완장차고 인민군 환영준비 하던것이 바로 보도연맹원들입니다.
    후퇴하는 경찰과 국군들의 등뒤에 총을 쏘고, 양민학살한것이 바로 보도연맹원들입니다. 이런일이 어김없이 점령지 혹은 점령직전의 장소에서 벌어졌습니다.
    좌익들의 잔혹한 폭동은 한국전쟁이전 전국에서 이미 수많은 경험을 한 정부로서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이 밀려 내려올때 어떤 행동을 할지 이미 경험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보도연맹원을 대처단한것은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인민군에 붙어 국군과 경찰, 양민을 학살한 자업자득입니다.
    보도연맹원에 소속된 이유만으로 억울하고 무고하게 죽은 일부인사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일부의 억울한 죽음으로 좌익들의 학살과 반역을 미화하거나 피해자인양 해서는 절대 안될 일입니다.

  10. 내눈들보 2010.10.19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에 패한 일본인들은 쏙 빠져 제 나라로 도망가 버리고 버려진 삼천리 강산에서 어리석은 민족들이 서로를 잡아먹겠다고 죽이고 죽은게 육이오 전쟁. 그러니 그 와중에서 사상이고 뭐고가 어데있노 북은 북대로 남은 또 남대로 제 권력만 잡겠다고 그저 눈에 핏발이 서 가지고 서로 싸웠다, 그러니 후방에서 민간인들이야 제 살기 위해 걸핏하면 상대를 빨갱이다, 군경가족이다 하고 쳐 죽인 것이다. 지금와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아무리 따져봐도 누가 판결하겠는가. 오로지 -- 죽은 원혼들을 위해 위령제를 올리자. -- 그리고 이 참혹한 재난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사람들은 비죽이 웃고 있던 그 어리석은 쌈박질을 냉정히 반성해 볼 일이다.

  11. 내눈들보 2010.10.1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 독 님. 탁월한 역사의식과 치열한 탐구정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계속 건필해 주십시오.

  12. 유가족 2010.10.31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서울에서만 있었습니까?
    낙동강 전선 남동쪽 전쟁과 하등 관련이 없던 경남쪽에서 자행된 것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지 못하고, 그 유족이 힘이 없어 큰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일어났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이지만 명백하게 밝혀진, 또 밝혀지고 있는 과오에 대해서는 억지 끼워맞춤식의
    정당화를 기도하기 보다는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아름다울 듯 합니다.

  13. 나라밥 2010.12.18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도 연맹 학살 지시는 1950년 6월 27일에 있었습니다. 보도연맹원들의 이적 활동에 따라 대응한 사전 조치적 응징이었다는 학살자 측의 주장은 싯점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변명입니다.

    여하한 이유든 법에 의한 재판과 행형이 아니었던 학살을 정당시 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실제로는 보도연맹 출신자로서 북한 점령지에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북한 치하의 재판에서 "민심을 어지럽힌 죄"로 처형을 당한 사례도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위키백과 기록을 참고하셔서 진실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B3%B4%EB%8F%84%EC%97%B0%EB%A7%B9_%EC%82%AC%EA%B1%B4

  14. 12 2011.02.27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도연맹 입안추진자였던 오재도씨 조차도 보도연맹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비를 마련해줘야한다면서 정부의 과오라고 시인했습니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4#

    여기에 10대 청소년도 보도연맹에 강제가입되었다는 자료도 남아있구요. http://www.vop.co.kr/A00000276492.html

    이젠 대한민국 정부가 떳떳한 모습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15. ㅠㅠ 2012.03.01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민족 주의자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
    그속에 정말로 전향 했거나 ...멋모르고 생필품을 준다고 가입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북한군을 도와 양민 학살 인민재판에 참여한 사람이 아닌
    단한명의 평범한 사람이라도 학샐된것이 사실이라면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우리의 죄를 사과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사죄 없음을 지적 하면서 우리의 치부는 그냥 두는 경우가 많네요 ㅜㅜ
    이건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비극이고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사과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공산 주의자이기 때문에 반대로 자유 주의자 이기 때문에
    한번의 판결도 받아볼 기회 조차 주지 않고 앗아 갈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렇다면 그사람들도 재판 이후에 처결 했어야 하는 것이고
    무고한 사람이 학살된 점을 그냥 넘긴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넘어 가는 것에 있어서도 걸림돌이라 생각 됩니다
    무슨 서로가 보복 살인 하는 것도 아니고 ....ㅜㅜ 죽어 마땅한 생명이 어디 있다는 말인지 ㅜㅜ
    생명을 경시하며 우리 시대의 잘못을 반성 하지 않고 넘어 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 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 당장에 아플지라도 반성 할것은 하고 고쳐 나가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노력 해야 할것입니다

  16. calculator words 2012.05.26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 데이터는 여전히 아래에 있습니다. 나는 이미 1 주일이 주제로를 통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 지금의이 클래스에서이 보고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님께 감사 당신의 웹 사이트를 통해 항목을 밝혀 보자. 여기서 좋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7. calculator online 2012.05.26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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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좌좀척결 2014.02.08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헛소리들 하지 말라 살인할 가능성이 있는 놈은 죽여야 한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또 북괴가 남침한다면 이석기 김재연 이정희 김선동같은 악질 뽈갱이들은 무조건 예비검속해서 처단해야 한다 단 한 톨의 가능성만 있어도 국사범은 처형해야 하는 것이다

  20. 필승 2014.02.16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저사람들입장이면,공산당에게 빌붙었을것임..북한군은 이미 쳐내려왔는데..당연히그래야 목숨유지할테니..

  21. AndyYoon3 2014.10.03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는 북한 빨갱이 매도 싸이트로 보이는데, 내가 경험한 625는 인민군은 결코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남한 공산당이 친일파 경찰 관료에 대한 보복극이 있었으나, 보도연맹 학살 같은 대구모학살은 없었다. 서울에서의 우익인사 학살 보도/오보에 분노하여 이대통령 정부 국군 수뇌들이 보도연맹학살을 결정, 군경이 실행 박헌영의 남로당 봉기설은 남한 학살자들이 학살 정당화 날조궤변.. 주의할 점은 학살지령자들이 일본의 잔인성을 배운 친일분자라는점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 [ 下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25 09:40

 

  공식 발간된 전사를 살펴보면 1950년 6월 24일 0시를 기해 내려진 비상경계령 해제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는 합니다.  첫 번째로 장기간의 경계 태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별다른 도발 징후가 보이지 않았던 반면 정치적인 평화공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 들고 있습니다.  북한은 평양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남로당의 거물 간첩인 이주하, 김삼룡의 신병을 맞교환하자는 제의처럼 다양한 각종 평화선전 공세를 펼쳤습니다.

[북한의 민족지도자였으나 공산당의 탄압을 받은 조만식]


  사실 6·25전쟁 직전까지 38선 일대에서는 상당 규모의 국지전이 종종 벌어졌지만 오늘날 DMZ같은 팽팽한 긴장상태가 항상 유지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38선의 경비가 강화되기는 하였지만 남북 간의 통행이나 통상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가 아니었을 만큼 국민들도 설마 동족의 가슴에 북한이 총을 쏘겠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군 당국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장기간의 경계태세의 계속 유지가 힘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6·25이전 최대의 국지전이었던 송악산전투 기록화]


  두 번째로 병사들의 피로 누적주장입니다.  당시 10만도 안 되는 병력으로 후방에서 공비토벌도 하고 38선 일대를 철저하게 경계하기는 사실 무리였는데, 특히 전방의 제1, 6사단 같은 경우는 담당하는 38선 구역만 해도 80~90Km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으로 계속하여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하기는 상당히 힘들었고 이 때문에 부득불 중간 중간에 경계령 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쟁 직전 38선을 시찰하는 덜레스 미 국무부 차관보]


  그런데 상식적으로 판단할 할 때, 단지 경계령이 해제되었다고 장병들의 휴가, 외출, 외박이 일거에 허용될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 당시에 일부 부대는 거의 절반 정도의 병력이 영외에 있었을 만큼 경계령 해제와 더불어 전군에 걸쳐서 동시에 대규모의 장병들이 부대를 벗어났습니다.  어쩌면 비상경계령 해제 자체 보다 이러한 사실이 미스터리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전쟁 전 국군의 모습 ]

  이와 관련하여 거론되는 주장이 농번기 일손 부족입니다.  당시 38선 이남의 최대 산업은 농업이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양력 5~6월은 농사에 가장 바쁜 시기인데 특히 당시는 거의 대부분을 인력에 의존하고 있었고 대다수 장병들도 농촌 출신이어서 일을 거들어야 할 절박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국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경계령을 해제하고 병사들의 외출 외박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48년 서울 근교 농촌의 가을걷이 모습]


  그런데 이와 더불어 더욱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군량미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고, 6·25전쟁 발발 당시의 미스터리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그리 중요하게 평가된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을 요소라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양력 6월이면 보릿고개가 절정에 다다른 때로 온 국민이 굶주림에 배를 움켜쥐던 시기였고 군대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보릿고개는 온 국민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보면 전쟁 발발 당시에 부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보유 군량미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6·25전쟁사에 따르면 국군 제6사단은 1950년 3월이 되었을 때 이미 보유한 알곡은 전무한 상태였고, 비상식량도 하루치에 불과한 약 700상자의 건빵뿐이었다고 나와 있는데, 여타 부대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난은 6·25전쟁을 반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따라서 호구지책을 해결하라고 병사들을 병영 밖으로 적극 내보내고는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나라의 궁핍했던 군대의 자화상이었고, 우리의 선배들은 그렇게 굶주린 상태에서 도발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미스터리라는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오늘날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직전의 비상경계령 해제는 결론적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비참했던 우리시대의 자화상이 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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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L 2010.08.30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한국군 식량부족에 대한것은 공감이 갑니다...6사단의 춘천전투 일화(증언?)에서도 우두산 부근 164고지부근에서 적의 공격을 한번 저지시키고(혹은 자주포 1대까지 나포했다고 함...) 고지에서 살구로 점심을 때웠다고 하였으니...

  2. 흑기사 2011.06.23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 더 빼신 게 있으신데요...

    위의 주장들이 백번 옳다고 쳐도 장교 구락부 낙성식에 군 수뇌부들이 죄다 몰려 있었던 것은 어떤 (큰) 이유가 있는가요?

    병사들을 (위의 이유로) 휴가를 보내줬다쳐도 (그 중요한 때에) 지휘관만이라도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면 초전 대학살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또 그 장교 구락부 낙성식에 거물급 간첩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던데 이 또한 연구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3. 실버스타 2011.08.05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상경계령 해제와 땐스파티는 미 군사고문단장 직무대리인 라이트 대령이 채병덕 참모총장을 종용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당시에도 소문이 파다 했습니다.

    라이트 대령은 걸핏하면 헨리 대령이라는 명찰로 바꾸어 달았기에 육본 정보국에서 라이트 대령의 신변 조사도 했습니다.
    라이트 대령은 라이트 형제중 동생 오빌 라이트의 후손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 냈어요...

    이로 인해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음모설이 생겨 났지요.

    미국 정부는 남침을 유도하지 않았습니다.
    단 맥아더가 남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본국으로 가는 남침 정보를 모두 차단하고 )
    국군의 전력을 떨어뜨려 남침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든후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수퍼맨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후 대통령에 출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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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로 작성된 콘텐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 및 사이트

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1.18 09:28

 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상식과 전혀 반대로 엉뚱한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를 흔히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가장 극한 상황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전쟁터에서 이런 모습은 의외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또한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전 초에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공격하지 계속하지 않고 3일간이나 지체하였던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중동부전선에서 선전한 국군 제6사단 외에 전선의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는데, 바로 이때 북한군 주력이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을 상징하는 중앙청에 게양된 인공기]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아군 주력을 고립시키면서까지 시도된 한강교 폭파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현 한강대교 구교)와 3개의 철교가 있었는데 2개의 철교가 폭파에 실패하여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군은 물론 국군에게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남침의 선봉장 노릇을 하던 전차들까지 마음만 먹었다면 신속하게 한강을 건너 패주하고 있던 국군을 추격을 계속할 수 있었었습니다. 만일 이때 북한군의 진격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면 국군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사실 북한 스스로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밝힌 자료가 없기 때문에 추측만 있고 이것이 미스터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러한 이유 중 하나로 당시에 북한이 정세를 크게 오판하고 있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침계획 수립당시 북한의 전쟁지도부는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 전 지역에서 남로당원이 봉기하여 이승만 정부가 순식간 붕괴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6월말까지도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것은 전후에 김일성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을 숙청 할 때 구실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폭파되지 않은 한강 철교를 6월 30일 미군기가 폭격하는 모습 ]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군이 3일간 서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북한의 초기 계획을 완전히 망쳐버린 국군 제6사단의 대승과 김포축선을 방어했던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분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축선을 돌파하여 서울을 선점한 북한군 제3, 4사단의 좌우익 상황이 지지부진하자 더 이상 단독으로 앞서 나가기 힘들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북한군의 지체를 틈타 육군본부는 한강선 방어를 위해 임시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했고 삼삼오오 한강을 도하해오는 철수병력을 재편성하여 6월 29일에는 간신히 한강방어선이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을 지체했던 북한군은 그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고, 더불어 미국 지상군의 조기 참전가능성이 대두되자 6월 30일 밤부터 한강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전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마주보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고 난 후인 7월 1일 04시, 철교를 이용하여 4대의 적 전차들이 강을 건너고 후속하여 북한군 주력이 영등포까지 진출하자 그동안 아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내던 한강 방어선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국군은 7월 3일, 경부축선을 따라 남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철교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는 북한군 전차]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강 방어선은 붕괴되었지만 국군과 북한군이 한강을 사이에 놓고 대치했던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의 5일간은 전쟁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그러한 시간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한강교 폭파로 인해 적진에 고립되며 붕괴되었던 국군 주력 부대들이 천금같은 5일간의 시간을 이용해 부대를 수습하고 재편성하여 지연전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미군이 증원되어 참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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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sablanca 2010.01.22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은 비극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미스테리가 많군요.

  2.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3. 제르 2011.10.20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전쟁역사를 좋아하는데.. 이런 보물같은 자료들을 찾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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