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11.08 98. 전쟁이 남긴 것 (154)
  2. 2010.04.20 한국군 최초의 전차, M36 "잭슨" (19)
  3. 2010.04.01 맥아더가 만난 장군 그리고 병사[上] (11)

98. 전쟁이 남긴 것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8 07:57


  6·25전쟁은 이 땅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반도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당연히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전쟁 전에 남북을 가르던 희미한 38선은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욱 깊게 파인 굵은 휴전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와 전쟁의 폐허만을 거머쥐고 남북한의 감정과 이념대결이 더욱 격화됨으로써 평화통일의 기대는 더욱 멀어져 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3년 동안 파괴와 희생만 부르고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 온 것뿐이었는데 그로인한 대가가 너무 컸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으며, 어느 쪽도 명확하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겨진 피해는 너무 컸습니다. ]


  그렇지만 지난 3년간 피를 바치면서 혈전을 벌여왔던 양측 모두는 전쟁이 멈추자 자신들이 이겼다고 맹렬히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전쟁을 계속하기는 곤란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존심까지 함부로 내팽겨 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세계최강의 미국에게 역사상 첫 패배를 안겨주며 남한의 북침을 저지하여 북한이 승리한 전쟁’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을 물리치고, 남한정부의 전복을 막아 자유를 수호하였기 때문에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승리의 대가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작은 한반도에서 3년을 넘게 계속된 전쟁으로 남-북한 모두는 참혹한 전화(戰禍)를 경험하였습니다. 전선이 남으로는 낙동강까지, 북으로는 청천강 및 함경도 일대까지 오르락내리락 하였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봐야했을 정도였고, 특히 주인이 수차례 바뀐 서울에서 38선 일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참혹한 인적, 물적 손실이 발생하였으며 국토는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전쟁기간 동안 전사상 당한 국군과 유엔군의 손실은 77만 6천여 명이나 되었으며, 화력의 열세를 인해전술로 메우는 전술을 사용하던 북한 및 중공군은 약 2백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더불어 후방의 민간 또한 이에 못지않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민간인의 경우 남한은 100만여 명, 북한 150만여 명 등 250만여 명의 인원피해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전 남북한을 합친 총인구인 2,500만여 명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더불어 320만 명의 피난민과 30만 명의 전쟁미망인, 10만 명의 전쟁고아 등은 그야말로 사회적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수준이어서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민간인의 피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더불어 소중한 개인의 재산은 물론 해방직후 미미하나마 존재하던 국가 기간산업시설과 공공시설마저도 송두리째 파괴되었는데, 이로 인한 재산적 손실만도 당시 가치로 32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습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외침에 의해 국가가 멸망당한 최악의 경우도 있었지만, 6·25전쟁은 피해를 단순히 수치로만 계량화한다면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비참했고 참혹했던 재난으로 인정하는데 결코 이의가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남북 서로가 주장하는 전쟁의 승리 주장을 떠나 전쟁의 결과는 남북한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남북한 모두가 전쟁을 전후하여 인구의 재배치가 급속히 이루어졌는데, 특히 북한은 전쟁 중 대규모의 북한인구가 자진 월남함으로써 인적자원 면에서도 상당한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이동은 해방 및 분단 직후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별개의 상이한 체제를 택하였던 남북간의 경쟁에서 어느 체제가 인간을 존중하였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명확한 바로미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체제에 반대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진 월남함에 따라 공산정권으로서는 전쟁 전 보다 쉽게 ‘김일성 독재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반사 이익도 누렸습니다.


  외적으로 북한은 제2차 대전 후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과 전쟁을 치름으로써 제3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이로 인해 서방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고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화 정책은 더욱 가속화되어 1958년에 이르러 모든 생산수단이 완전히 국유화되어 체제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외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오늘날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 이르게 될 만큼 급전직하 추락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피난민의 이동은 한반도의 인구분포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대한민국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대폭 들어난 인구의 대부분이 중부권에 집중됨으로써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시기의 인구 집중과 달리 단지 전란으로 인한 피난민의 증가는 의식주 해결에도 벅찰 만큼 힘든 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0년대까지 국가의 경제정책은 국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은근히 이어져 내려오던 봉건주의적 마지막 잔재가 무너지고 시장경제 질서에 급격히 성립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란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초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반공이념을 심어 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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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5대륙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하였고,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최대 130여만의 대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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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으며, 어느 쪽도 명확하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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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mw leases 2013.11.18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한다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반도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당연히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7. frutablend 2013.11.20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으며, 어느 쪽도 명확하게 승리를11

  18. crocs original 2013.11.20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한다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반도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당연히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19. nhcp peninggi badan 2013.11.20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한다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반도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당연히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20. jaket bola grade ori 2013.11.20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21. 피알앤애드 2014.06.25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군 최초의 전차, M36 "잭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4.20 15:07
  M36 "잭슨" 구축전차는 강력한 M3 90mm 대전차포를 탑재해 독일전차를 상대하는데 투입되었고 6·25 전쟁 중에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 전차인 T-34/85를 상대하기 위해 한국군에 인도되었습니다(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구축전차를 대대적으로 투입한 것은 역시 독일이었습니다. 독소전 기간 중 소련군의 강력한 기갑전력에 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독일은 돌격포와 구축전차, 대전차 자주포 등을 대량 생산해 전선에 배치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죠.
  독소전 기간 중 격파되어 소련군에게 노획된 핀란드군의 Ⅲ호 돌격포. 기존 전차의 차체에 두터운 장갑을 두른 전투실과 장포신 대전차포를 장착한 근접 화력지원용 자주포로 초기에는 보병의 화력지원이 목적이었지만 갈수록 수가 늘어나는 소련 전차전력에 맞서 대전차 임무에 주로 투입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축전차와 혼동하기 쉽지만 용도로 분류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 6·25를 방문해주시는 방문자 여러분들은 전쟁 기간 중 우리 국군 장병들이 단순히 미군 전차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실 경우가 많으실 겁니다.
  솔직히 휴전 이후 국군이 운용한 전차가 388대의 M4A3E8 "셔먼"이었고 이후 M47 "패튼"과 M48 "패튼"을 넘겨받아 아직도 보병사단에서 주력전차로 운용 중이니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실 분들의 한탄어린 근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약 1,027대의 K-1 전차가 독립 기갑여단과 기계화 보병사단 및 일선 보병사단에 배치돼 유사시 북한 기갑부대의 공세를 저지함과 동시에 반격의 선봉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5 기갑여단, 필자 제공 )
  그렇지만 1987년, K-1 전차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현재 한반도에는 1,027대의 K-1 전차와 400여대의 K1A1 전차( 아직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군사 보안 관계 상 정확한 수치는 제외하겠습니다 )들이 일선 기계화 보병사단과 독립 기갑여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로 군림하고 있는 지상의 왕자, K1A1! 120mm 활강포와 복합 장갑으로 무장해 북한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인 "천마호"도 쉽게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북한에게 수적으로 열세였던 한국군 기갑부대는 이제 질적인 우세를 통해 지상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30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
  따라서 아직까지 전차가 필요한 보병사단에서 미국제 전차들이 운용되더라도 과거처럼 미국제 일색이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니 우리 군을 믿고 열심히 응원해주는 것이 저희들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자! 이번에 소개할 것은 개전 이후까지 전차라고는 단 한 대도 없던 한국군에 최초로 배치된 '전차'입니다.

  워낙 강력한 상대를 맞이해야 했던 탓에.... 독소전 당시 독일 기갑부대는 소련군이 투입한 T-34 전차에 경악한 나머지 전차의 성능을 강화했고 그 결과 미군 전차부대는 문자 그대로 "쌍코피"가 터졌습니다. -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전차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꽤 복잡한 단계를 이루지만 방문자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맞딱뜨린 T-34/76은 그 때까지 독일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전차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때문에 독일은 이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할 신형 전차가 필요했고 그 결과 두 대의 전차가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Ⅴ호 전차 "판터"와 Ⅵ호 전차 "티거"가 그들이었죠!
  차기 주력전차로 계획되었던Ⅴ호 전차 "판터"는 75mm kwk 42 전차포와 경사장갑을 도입해 T-34/76을 능가하는 전차로 재탄생했습니다.
  Ⅵ호 전차 "티거"는 불과 1,354대라는 적은 수량만 생산되었지만 이 전차 1대를 격파하기 위해 미군은 최소 3~6대에 달하는 전차를 손실해야 했습니다.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티거 전차는 독일군의 상징으로 널리 칭송될만큼 유명세를 타는 덕분에 오늘날에도 이처럼 소련제 T-55 전차를 개조한 모조차량을 몰고 다니는 팬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방문자 여러분들 중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팬저 탱크라는 플라스틱 모형을 구입해 조립해 본 분들은 이 전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금새 떠오르실 겁니다.
  또한 티거 역시 "타이거 탱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실 것이고요.
  이렇게 전장에 데뷔한 두 전차는 몰려오는 T-34/76을 닥치는 대로 격파해버렸고 덕분에 화력 강화형인 T-34/85, 즉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 선봉을 맡은 전차가 등장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전장에 데뷔한 판터와 티거는 몰려오는 소련군의 T-34/76을 순식간에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에 대항해 T-34/85가 투입됩니다.
  판터와 티거는 1942년부터 참전한 미군 전차부대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 특히 장갑 방어력과 공격력이 열세인 주력전차들은 거의 대량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군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원인은 우선 당시 미군의 교리가 "전차는 어디까지 적 방어선을 돌파하는 임무에만 충실하고 적 전차는 구축전차들이 처리한다"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 기갑병과의 잘못된 교리로 인해 전선의 미군 전차부대는 독일 전차부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독일전차를 상대해야할 M10 "울버린" 구축전차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데다 차량 자체가 매복 전투에 적합한 형태라 직접적으로 전차들을 지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실제 미군의 주력전차인 M4 "셔먼"의 75mm 전차포는 어디까지 보병 제압에 유리한 포였을 뿐 "판터"와 "티거"를 상대하기엔 위력이 부족했습니다.
  반면 M10 "울버린" 구축전차에 탑재된 76.2mm 포는 500m 이내에서 판터와 티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격파된 판터 전차 잔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미군 병사들. 워낙 강력한 독일전차부대와 맞서싸워야 했던 미군이다보니 전후 차기 주력전차 계획을 추진하면서 독일과 협조를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구축전차들이 별도의 독립부대를 이뤄 전차부대와 따로 행동했던 탓에 전차부대가 독일전차와 마주치더라도 구축전차들이 제 시간에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보다 강력한 신형 전차인 티거Ⅱ를 투입하자 미군은 자연히 더욱 강력한 무장을 물색했고 그 결과 M3 90mm 주포를 탑재한 신형 구축전차가 등장합니다.
  바로 M36 "잭슨", 본 포스트의 주인공이 탄생한 것이죠.
  M36 "잭슨"은 사진과 같이 대구경 90mm 전차포를 탑재한 덕분에 화력에서 독일전차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M36의 별칭인 "잭슨"은 남북전쟁 당시 활약한 남군의 스톤월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인데 생산은 자동차 회사로 유명한 GMC가 담당했습니다.
  M36의 배치는 미군 내에서 골칫거리로 작용했습니다. 우선 차체가 부족하다 보니 기존 M10A1 "울버린"의 차체를 전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디젤엔진을 장착한 M10의 차체까지 전용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미군 전차들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던 터라 군수/보급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
  여기에 주포의 위력은 강력하지만 대신 포탑을 새롭게 설계해야 했던만큼 생산일정에도 적잖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총 1,772대가 생산된 M36 "잭슨" 구축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실전 투입되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자 한반도로 투입될 준비를 갖췄지만 차체를 봐서 알 수 있듯 매복전투를 주력으로 하는 구축전차보다는 직접적으로 북한군의 T-34/85에 맞설 수 있는 M26 "퍼싱", M46 "패튼", M4A3E8 "셔먼"이 더 요긴했기 때문에( M36의 장갑은 차체 전면이 51mm, 측면이 38mm에 불과해 85mm 포탄을 맞으면 일격에 격파되었습니다 ) 실질적으로 주임무인 대전차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M36의 차체 상부 사진으로 전차보다 장갑이 얇은데다 개방형 포탑을 채용하는 통에 상부에서 포탄이라도 폭발할 경우 전차병들이 몰살당하기 좋았기 때문에 T-34/85를 상대하는 임무에는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1950년 11월,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에 소재한 육군 종합학교 내에 전차과가 창설되어 전차병이 양성되기 시작하자 미군은 한국군에 전차를 공급하고자 했지만 당장 자신들이 쓸 차량도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한국군 입장에서는 이제 전차병들이 양성되는 판국에 기왕이면 전차를 직접 끌고 전장에서 활약하고 싶어했고 이 때문에 미군은 M36 "잭슨"을 공급하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주력전차가 아닌 구축전차지만 북한군 기갑전력이 사실상 궤멸되어 전차와 맞서싸울 확률이 크게 낮아졌고 탑재된 90mm 주포는 충분히 T-34/85를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데다 미군 자신도 운용할 일이 거의 없어 한국군에게 필요한 차량을 충분히 넘겨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리하여 1951년 10월 15일, 선박편으로 부산항에 하역된 M36 "잭슨" 22대로 한국군 최초의 전차부대인 제51 전차중대가 창설됩니다.
  제51 전차중대는 10월 17일, LST(상륙함)에 탑승해 강원도 속초에 상륙하여 휴전 시까지 동부전선 일대에서 아군의 화력지원을 담당했습니다.
  "북한군, 전부 각오해!!"  전쟁 말기 치열하게 전개된 고지 쟁탈전에서 강력한 90mm 주포로 무장한 M36은 한국군에게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1952년 4월~1952년 2월에 걸친 기간에는 제52 전차중대가 광주에서 창설되는 것을 시작으로 총 9개 전차중대가 M36 "잭슨" 구축전차로 창설되었습니다.
  개전 초, 단 1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했던 한국군이 이제는 총 198대의 M36 "잭슨"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9개 전차중대는 이후 3개 전차대대에 배속되었는데 각 대대는 총 66대의 M36으로 편성되었습니다 )
  1952년 10월,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당시 조칠성 대위의 제53 전차중대 소속 M36 "잭슨" 구축전차들은 고지를 공략하는 제9 보병사단을 90mm 전차포로 화력 지원해 중공군을 격퇴하고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M47 "패튼"과 M4A3E8 "셔먼"으로 모두 한국군에서 운용된 차량입니다. 이 차량들이 주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 대전차 임무를 수행하는 구축전차인 M36은 퇴역해 백령도 등의 주요 해안 요충지에서 해안포대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활약한 M36 "잭슨" 구축전차는 휴전 이후 한동안 운용되다가 곧 미국으로부터 공급된 신형 전차들에게 임무를 넘겨준 후 일부 차량이 백령도에 해안포로 배치되는 등 주요 해안 요충지에서 해안포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제가 현역 시절 포신만 떼어내 콘크리트 거치대에 장착한 M36 포신이 고철로 방치돼 녹슬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정도였으니까요.
   야전에서 정비 중인 한국군의 M36으로 독특한 위장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잉여 M36은 인도 - 파키스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T-55 전차를 격파함으로써 구식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음을 입증했습니다.
  M36은 한국군 최초의 전차전력으로서 전쟁 말기 아군 보병들의 든든한 수호자로 오늘날에도 영원히 추앙받을 구축전차입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M36 "잭슨"의 모습으로 주포를 M3A1으로 교체한 차량입니다.
  좌측의 차량은 M46 "패튼"으로 보다 강력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차체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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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w 2010.04.21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티거(tiger)짱 근데 티거 장갑을위한 엔진의크기 그앤진때문에 방출해야하는 열때문에 많이죽지 않았나요?
    (여기서m10이 엄청난역활을 했다는데??)
    미군 퍼싱은 언제나왔나요???? 장난아니던디 ㅎㄷㄷ 돌격+화력 짱이던디(디스카버리체널에서)

  2. 빌헬름 비트리히 2010.04.21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거와 판터 전차의 활약은 아른헴에서도 이어졌죠.

    특히 공수부대 킬러로 맹활약했는데 잘 보고 갑니다.

    디펜스타임즈 코리아는 서점에 나왔나요? 요즘 발행일을 제때 안 지키는 것 같던데요

  3. sanro 2010.04.22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현재의 군 근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고 군복무에 제외 되는 인원도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 년 6 개월 이상 연장하고 특히 기술 분과는 더욱 교육의 기간을 늘리고 교육의 심도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자들 군에서 보낸 기간이 절대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기술이나, 생활의 태도, 대인 관계등을 배워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심도있는 과학적 무기를 개발 생산해야 합니다. 현대전은 기술 전입니다. 전쟁은 국가나 인족의 안존에 직결된 것입니다. 한국군은 더 강력해야 합니다. 현재 상당히 나약한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4. 산두발 2010.04.22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타이거"를 "티거"라고 쓰는병사가있네....ㅉㅉㅉ 과거국내모형잡지사에서 쓰던표현인데 우리가언제부터 독일식발음으로 호칭했나요 "타이거"(호랑이)원산지가 독일도아니고

  5. 밀리매니아 2010.04.22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10년 좌파정권이라...
    현재 밀매들한테 물어보십시요. (밀매분들은 대다수 보수우파적이십니다..)
    보수우파라는 현정권과 노무현정부때의 국방정책을..
    어느때 더 우리 군 전력이 향상되었는지를...그분들도 전정권인 노무현 정부때
    아주 많은 전력증강이 되었습니다..

    • 그리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지요. 2010.04.23 0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 야구홀릭 2010.04.29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뻘짓도 만만찮게 했지요. 당장 똥파이브를 대체할 전투기도 부족한데 한가하게 F50만들어 수출도 아직 미정이고 공격형헬기와 보병수송용 헬기 노후화되어 급해 죽겠는데 성능미달과 수송인원도 적은 국산헬기 만든다며 예산낭비..성능이라도 어느정도 담보되야 수출길이라도 트는데 이건 개발하는 기체자체가 현용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이라 우리군만 또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정말 한심하죠. 이걸 전력강화라 부를수있을까요?

  6. 햇살 2010.04.23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 복무기간이 너무 짧은것은 정말 우려 할 만한 일이다. 군인은 군인 다울 수 있어야 한다. 보다 많은 젊은이가 군인답게 될 수 있는 여건과 조건이 필요하다. 결코 그것은 국익에 반 하지 않는다!

  7. 강여은 2010.07.11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는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8. insure employed automobiles 2012.05.31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뛰어난 뒤에 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결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많아요. 그것을 통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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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에 사격장에서 훈련 후 어디로 튀어나갔는지 모르는 탄피를 찾기 위해 난리를 떨던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절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창군초기부터 있어왔던 전통입니다.

  14. cipro 2013.03.24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현재의 군 근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고 군복무에 제외 되는 인원도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 년 6 개월 이상 연장하고 특히 기술 분과는 더욱 교육의 기간을 늘리고 교육의 심도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자들 군에서 보낸 기간이 절대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15. 숫자는 힘 2014.01.12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달 머겅 두번 머겅

  16. 숫자는 힘 2014.01.12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달 머겅 두번 머겅

맥아더가 만난 장군 그리고 병사[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01 08:00

 

“ 따르릉 ! ”


  일요일 아침,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벨 소리에 극동군 총사령관 나는 눈을 떴다.  이 시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급한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지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팔을 내밀어 수화기를 집어 들자 당직 부관이 간략한 인사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였다.


“ 각하 !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


[북한의 전면남침 소식에 맥아더는 일요일 단잠을 깨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 뭐라고 ? ” 대답만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평화가 찾아 온지 겨우 5년밖에 안되었는데, 전쟁이라니 ?...한국군은 국내 치안 유지나 할 수 있는 수준인데, 과연 북한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냐 ! 이것은 꿈이 틀림없어...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맥아더 개인에게는 불과 5년 만에 맞이한 전쟁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멍하니 눈을 뜨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지난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또 다시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 각하 ! 무슨 지시라도 내리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 " 이번에는 참모장 알몬드였다.  그때서야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극동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맥아더의 신임이 높았던 알몬드는 이후 미 제10군단이 재창설되면서 군단장으로 임명됩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알몬드와 함께 하고 있는 맥아더)]


  이것은 6.25전쟁과 관련하여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의 회고록, 제일 처음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처럼 맥아더의 6.25전쟁 개입은 전쟁 발발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전쟁 개입여부와 관련 없이 일단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여야 할 임무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관여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토쿄의 사령부를 나오는 맥아더)]


  맥아더는 일단 극동군사령부 군수참모차장인 처치(John H. Church)를 단장으로 하는 소수의 연락단을 파견하여 전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활동한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전해졌고 본국에서도 본격적인 군사개입 가능성이 거론되자 맥아더는 최전선을 직접 시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전선을 직접 시찰하러 1950년 6월 29일 수원에 도착한 맥아더
(무초 미 대사와 함께)]

  그리고 6월 29일, 그는 전용기를 타고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여 선발대로 파견된 처치장군 일행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군을 대표하고 있는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서울이 함락되고 상황이 몹시 불리한데, 당신은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나갈 것이오?”  그러자 채병덕은  “2백만 장정을 징집하여 침략자를 육탄으로  무찌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국군을 대표하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답변에 맥아더는 몹시 실망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맥아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굴든(Joseph C. Goulden)이 지은 한국전쟁(The Untold Story of the Korean War )에 따르면 그 이후에 맥아더는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여 “어떻게 저런 자가 일국의 총참모장입니까? 속히 해임 하십시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채병덕은 패전을 책임지고 직위해제 당하였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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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인연 2010.04.0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제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일화들을
    많이 듣고 갑니다(^^*)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진 것이라고는 육체밖에 없으니 그렇게라도 막고 싶었던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죄라면 허약한 국력이 죄였지요.
    그러나 일국의 참모총장이니 보다 전략적인 답변이 있었어야 했겠지요.
    맥아더는 그런 답변을 원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도 일본에서 단 2일만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현장을 확인할 정도로 책임있고 적극적이었으니까요.
    이번 연평도 천안함 사고? 사건?에 있어서 원인도 모른 채 4일간 관계관 회의를 한 것과 비교가 되네요.

  3. 보안대장 2010.04.18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세상살이 // 천인함 관련 대책회의를 비난하는 데, 네 따위가 뭘 안다고 씨부렁거리느냐?
    너도 채병덕처럼 무턱대고, 북한소행이고 평양을 폭격하겠다거나 장산곶 상륙하겠다고 헛소리할 놈이구나?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5. Rory Kratzer 2012.05.3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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