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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9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3 ] (8)
  2. 2010.07.01 56. 다시 한강으로 (4)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3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19 13:58

  단지 폭파만 놓고 본다면 한강교량 폭파가 부분적으로 실패한 작전입니다. 당시 한강의 교량은 광진구에 있던 광진교를 제외하고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있던 인도교와 3개의 철교였는데 6월 28일 폭파 당시에 이른바 A교와 B교로 불리는 두개의 철교는 폭파에 실패하였고 이들 다리는 이후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절단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마음만 먹으면 한강을 즉시 도하할 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한강교량 폭파가 완료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력이 한강을 도하하지 않고 3일간 진격을 멈추었던 사실을 미스터리로 만든 결정적 사유였습니다.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아군의 붕괴를 스스로 재촉시켜 버리면서 감행된 한강다리 폭파가 만일 완전히 성공하였다면 어쩌면 한강교량 폭파는 북한군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저지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북한군의 서울 도심 지체가 굳이 미스터리로 남을 이유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파괴되지 않은 철교를 이용하여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기갑부대
그들은 마음만 먹었다면 즉시 한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한강교량의 폭파는 우선 완전 폭파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시기와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 결과는 물론 효과도 미미하다 못해 엄청난 손실만 불러왔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6·25전쟁 중 가장 성공적인 교량 폭파작전은 북한군이 실시한 1950년 10월 19일 대동강 인도교와 철교의 폭파입니다. 그들은 후퇴와중에도 얼마 남지 않은 북한군을 대동강 이북으로 완전 철수시키고 유엔군 도달 바로 직전에 완벽하게 교량을 폭파하여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북한군이 후퇴 시 폭파하였던 대동강철교]


  그런데 ‘라주바예프 전쟁 보고서’처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발굴 된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의 한강 도하와 관련한 경악할 만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는데, 그것은 6·25전쟁 초기상황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같은 사실을 놓고도 그동안 너무 간과하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한강교량 폭파 전에 이미 한강을 도하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의 행적에 대해서 오래 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도 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이미 개전 다음날부터 한강을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쟁 개시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에 선도 부대를 시작으로 다음날까지 개풍에서 한강하구를 건너 무주공산과 다름없던 김포로 대부분 도하를 완료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북한군 제6사단의 극히 일부 선도부대만 김포반도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하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6월 28일 한강교량 폭파 훨씬 이전에 이미 북한군 전체 제6사단은 한강도하를 완료한 상태였고 이들이 한강교량 이남을 아군보다 먼저 점령할 가능성이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철교 인근을 도하하는 북한군 한강하구를 이미 이런 식으로 도하하였습니다]


  따라서 급편 된 김포지구전투사령부(김포사)가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인 방어전을 그동안은 작은 전투사례로 분류하였지만 실로 엄청난 의의가 있음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6월 26일까지 영등포 점령하여 아군을 배후에서 포위하는 것이 목표였음이 밝혀졌는데 만일 김포사의 분전이 없었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즉, 한강다리의 파괴 여부와 상관없이 아군주력의 퇴로는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림처럼 일산근처에서 북한군 제6사단이 도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이미 전쟁 다음날 한강하구를 통해 김포반도로 진입하였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서울 함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과 북한군 주력의 서울 지체에 가려 지금까지 일찌감치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 제6사단에 맞서 싸웠던 김포사의 영웅적인 방어전이 소홀하게 취급된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북한군 주력이 서울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 정확한 이유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지을 극적인 전투는 바로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 산화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참모장 최복수 중령]


  개전 초기 무주공산과 다름없었던 김포반도를 사수하기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병력을 끌어 모아 급편 된 임시부대였지만 김포사는 불리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포비행장 탈환작전 당시에 참모장 최복수 중령은 단신으로 기관총을 거치한 지프차를 몰고 비행장을 질주하여 적을 유린하다 전사하였고 사령관 우병옥 중령은 패퇴의 책임을 통감하고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원미산에서 자결하였습니다.


[고귀한 희생을 망각하였던 사실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6·25전쟁 개전 초에 보기 드물 정도로 최고 지휘관들이 목숨을 걸고 솔선수범하여 전선 맨 앞에서 싸움을 벌인 곳이 바로 김포반도였습니다. 그들의 용전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북한군이 서울에서 지체한 3일이 아니라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망각하고 있던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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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2010.07.30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가 없습니다...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십은데... 관련 서적좀 가르처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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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다시 한강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01 09:34


 

  실험삼아 실시한 울프하운드작전의 성과는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중공군에게 지난 두 달간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짓눌려왔지만, 생각보다 현재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공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유엔군이 반격할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성급하였던 지난 북진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신중한 반격을 결심합니다.]


  썬더볼트(Thunderbolt)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예정되었습니다.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오산과 여주를 연하는 선에서부터 한강까지를 총 5개의 통제선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의 진정한 핵심은 진격 그 자체보다 중공군의 소탕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지리적인 점령은 그다지 의의가 없고 중공군을 최대한 소모시켜 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전제 요건으로 중공군이 우회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전선을 최대한 오밀조밀하게 연결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이제까지 부대들이 산개하여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가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부대의 좌우가 완전하게 연결된 상태로 전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또한 적을 섬멸한 후 사전에 정한 5개의 통제선을 통과할 때는 군단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5일, 오산-여주를 연하는 선에 정렬하고 있던 미 제1군단 25사단과 미 제9군단 1기병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청천강 일대에서 지난 11월 24일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공세이후 꼭 2개월만의 이루어진 유엔군의 공세였습니다.


[1951년 2월 포격당하는 적진을 관측하는 미 제25사단 병사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어깨를 나란히(shoulder to shoulder)하라는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유엔군은 조심스러운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초반에 오산, 수원, 이천 등에서는 적의 저항이 있었으나 예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31일, 선도부대가 안양-양평을 연하는 선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자 리지웨이는 주력을 앞으로 투입하여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하라고 예하 군단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서울의 초입인 한강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강을 향해 계속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리산과 관악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중공군의 저항강도도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 제150사단 예하 1개 연대가 점령한 수리산 일대는 수원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1번 국도와 수원에서 인천을 연결하는 42번 국도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거점이었는데 이곳을 터키여단이 증강 된 제25사단이 공격하였습니다. 싸움이 고지전으로 격렬해지자 문제는 보급이었습니다.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위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탄약과 보급품을 소모하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치열한 공방전 중공군이 공격을 멈추고 도주하면서 전투가 막을 내렸습니다.


  2월 9일, 제8군은 한강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장애물인 관악산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중공군은 고지정상 일대에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고 완강히 저항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1사단의 공격에 중공군은  저항을 포기하고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격을 계속한 국군 제1사단은 다음날인 영등포-노량진 일대에 진출함으로서 먼저 한강선에 도착하여 있던 미 제3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한강을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아군은 다시 한강에 섰고 이제부터는 서울 탈환을 결정해야할 차례였습니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터키군의 모습 ( 사진은 군우리전투 당시 )]


  그런데 신중한 리지웨이는 유엔군 전력이 중공군에 비하여 월등히 우세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 성급한 서울 재탈환은 군사적으로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서울 점령이전에 중부전선을 남양주-가평선까지 끌어올려 서울의 동측방을 포위하여 배후를 안정시킨 후 한강을 도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일단 여기서 진격이 멈추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서부전선의 아군은 훗날을 기약하며 전력 재정비에 몰입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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