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7.22 음지에서 승리를 이끈이들 (6)
  2. 2010.07.01 56. 다시 한강으로 (4)

음지에서 승리를 이끈이들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22 08:30

  전쟁의 승패에 있어 병참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6·25전쟁 또한 군수지원의 중요성이 입증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이던 북이던 38선을 넘어 서면서부터 심각한 군수문제에 시달리고는 하였습니다. 특히 제공권, 제해권을 유엔군에게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수송수단도 열악한 공산군 측의 군수조달 문제는 전쟁 내내 고민거리였습니다.


[수송기를 이용한 보급은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 제1사단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군수조달 환경이 좋았던 아군 측이라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산악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최전선의 군수지원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하였습니다. 도로가 많이 개통된 현재도 동부전선의 산악지역은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병참선이 차단 될 정도로 조건이 나쁩니다.


[미군도 산악지대에서 달구지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한 6·25전쟁 당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히 1951년 말부터 휴전까지 진행된 참호전은 대부분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지에 주둔한 제 부대에 대해서 제때 병참지원을 해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전쟁 중반기이후 고지전으로 바뀌자 병참문제가 더욱 중요하여졌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전술(?)이 일반 노무자들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산악지대에 대한 보급을 민간에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었는데, 전쟁 발발 직후부터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소위 보국대를 비롯하여 유엔군 참전 이후 만들어진 민간 운반단 (CTC - Civilian Transport Corps), 한국근무단(일명 노무단), 부두하역단 등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 활동을 하였습니다.

 

[산악전을 지원을 위해 조직된 민간인 부대의 모습]


  그중 최전선의 산악 고지전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속칭 지게부대라고 불린 노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노무대는 전쟁 동안 산세가 험한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게 포탄, 식량 등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운반하여 주었는데 대부분이 당장의 호구지책이 어려웠던 월남해 내려 온 청장년들이나 피난민들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집으로 충당되기도 하였습니다.


[포탄 같은 중량물도 이 분들의 보급 수송에 절대 의존하였습니다.]


  물품운송에 민간을 동원하한 것은 전쟁 시작과 동시라고 추측은 되지만, 6·25전쟁사에 최초로 지게부대가 등장한 것은 1951년 2월에 있었던 썬더볼트(Thunderbolt) 작전 때였습니다. 1.4후퇴 후, 재반격에 나선 미 제25사단은 수리산 일대에서 저항하는 중국군 제150사단의 응전에 진격이 멈추었습니다. 이때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대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던 반면 중공군은 보급이 차단되어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화물 적재 후의 모습]


  전쟁 당시 노무자들의 규모는 육군 사단에 편성되어 전투근무지원을 직접 수행한 노무단원 9만여 명을 포함하여 약 30여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되며 공식 기록에 의하면 전쟁 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한 노무자들의 규모가 전사 2,064명, 실종 2,448명, 부상 4,282명 등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노무자들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군들은 이 분들을  A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노무자들의 지원 수단은 주로 지게였는데 그 모습이 알파벳 A와 흡사하다고 하여 통상 근무단을 ' A Frame Army ' 즉, 지게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James Van Fleet 1892~1992) 장군은 회고록에서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고 이들의 노고를 극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는 조국을 수호하는 원동력 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지게부대는 戰史의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묵묵히 맞은바 임무를 다한 최고의 정예 부대였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힘써 주신 지게부대 대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인영 2010.07.22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보급품을 수송한 분들이네요.

  2. 모글리 2011.10.15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스펀지 131회 방송도 있네요...

    쫌 내용은 틀리지만..^^

  3. 247insurancequotes centered 2012.05.26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에 의해서 뛰어난 소재, 신사. 방금 전에 요소를 모두 읽은 당신도 아주 좋아요. 당신이 현재이 기사에 있던 모든 물건을 사랑 해요. 이 항목은 종사하게되며 여전히 wise.This은 고전적인 뛰어난 웹로그를 표현셔서 감사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4. 247insurancequotes ip search 2012.05.26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정말 내가 아주 긴 시간에 검사 중 가장 놀라운 웹로그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 내부의 세부 수량은 거의 주제에 대한 전자책을 작성 등 살아 숨쉬는입니다. 당신의 웹사이트는 왜 주제가 더 이해하기 바란다 누구나 이상적입니다. 좋은 제품은, 당신이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5. 247insurancequotes sector 2012.05.26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환상적인 사이트를 공유했습니다. 나는 심각하게 주위를 그 유쾌한 보고서를 공유하기위한주의 누구 많은 덕분에 대해서 싶습니다. 이곳은 보통 문서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현재 유용한 볼거리를 해줘서 정말 고마워.

  6.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많은 역경에 부담 위협하는 것은 아

56. 다시 한강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01 09:34


 

  실험삼아 실시한 울프하운드작전의 성과는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중공군에게 지난 두 달간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짓눌려왔지만, 생각보다 현재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공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유엔군이 반격할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성급하였던 지난 북진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신중한 반격을 결심합니다.]


  썬더볼트(Thunderbolt)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예정되었습니다.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오산과 여주를 연하는 선에서부터 한강까지를 총 5개의 통제선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의 진정한 핵심은 진격 그 자체보다 중공군의 소탕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지리적인 점령은 그다지 의의가 없고 중공군을 최대한 소모시켜 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전제 요건으로 중공군이 우회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전선을 최대한 오밀조밀하게 연결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이제까지 부대들이 산개하여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가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부대의 좌우가 완전하게 연결된 상태로 전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또한 적을 섬멸한 후 사전에 정한 5개의 통제선을 통과할 때는 군단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5일, 오산-여주를 연하는 선에 정렬하고 있던 미 제1군단 25사단과 미 제9군단 1기병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청천강 일대에서 지난 11월 24일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공세이후 꼭 2개월만의 이루어진 유엔군의 공세였습니다.


[1951년 2월 포격당하는 적진을 관측하는 미 제25사단 병사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어깨를 나란히(shoulder to shoulder)하라는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유엔군은 조심스러운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초반에 오산, 수원, 이천 등에서는 적의 저항이 있었으나 예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31일, 선도부대가 안양-양평을 연하는 선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자 리지웨이는 주력을 앞으로 투입하여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하라고 예하 군단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서울의 초입인 한강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강을 향해 계속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리산과 관악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중공군의 저항강도도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 제150사단 예하 1개 연대가 점령한 수리산 일대는 수원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1번 국도와 수원에서 인천을 연결하는 42번 국도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거점이었는데 이곳을 터키여단이 증강 된 제25사단이 공격하였습니다. 싸움이 고지전으로 격렬해지자 문제는 보급이었습니다.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위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탄약과 보급품을 소모하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치열한 공방전 중공군이 공격을 멈추고 도주하면서 전투가 막을 내렸습니다.


  2월 9일, 제8군은 한강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장애물인 관악산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중공군은 고지정상 일대에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고 완강히 저항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1사단의 공격에 중공군은  저항을 포기하고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격을 계속한 국군 제1사단은 다음날인 영등포-노량진 일대에 진출함으로서 먼저 한강선에 도착하여 있던 미 제3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한강을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아군은 다시 한강에 섰고 이제부터는 서울 탈환을 결정해야할 차례였습니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터키군의 모습 ( 사진은 군우리전투 당시 )]


  그런데 신중한 리지웨이는 유엔군 전력이 중공군에 비하여 월등히 우세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 성급한 서울 재탈환은 군사적으로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서울 점령이전에 중부전선을 남양주-가평선까지 끌어올려 서울의 동측방을 포위하여 배후를 안정시킨 후 한강을 도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일단 여기서 진격이 멈추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서부전선의 아군은 훗날을 기약하며 전력 재정비에 몰입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ensure versus make sure 2012.05.25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매력 더한 기쁨 충분히 우리를 가르친다있다. 그것의 전망은 매우 우수하며 따라서 신속 설계. 정말 내용의 작품이다. 그것은 즐거움과 호기심 크게 날 수 있습니다.

  2. available people these days 2012.05.25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그래서 우리가 실현되는 활력하는이 구체적 나는 3 시간 정도 거의 그 이상의 좋은 정보를 찾기 위해 오전 사실로 인해 게시. 개인은 문제가 사실 훨씬뿐만 아니라이 현재 위에보고를 해결 쓸 업 내가 새 많이뿐만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표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3. home insurance.internet vocals fast 2012.05.2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기쁨의 웹 사이트. 나는 종종 친한 메시지, 편리한 입까지 주제를 가진 훌륭한 컨텐츠 관련 기사 작성에 감사드립니다 위해 다시 돌아 오마. 나는 이렇게하면 내가 할 사업에 대한 많은 고맙다는 말을해야합니다! 나는 블로그 사이트에서 추가 도움이 문제를 공부하길 원하고 있어요!

  4.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하면 내가 할 사업에 대한 많은 고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