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능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18 90. 피로 얻은 승리 그리고 교훈 (9)
  2. 2010.10.15 89. 또 다시 재현된 악몽 (5)
  3. 2010.09.20 57mm 무반동총의 적 벙커 공격 (11)

90. 피로 얻은 승리 그리고 교훈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18 08:13


  사단장은 지난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여 사기가 저하되어 있던 예하 지휘관들에게 이번 작전은 3개 연대가 동시에 공격하기 때문에 북한군은 병력과 화력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없고, 전차대대가 문등리 일대의 후방을 교란하면 적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시기를 이용하여 일제히 공격하면 터치다운작전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공격전에 철저한 사전준비를 지시하였습니다.


[단장의 능선 인근 전선으로 이동하는 미 제2사단 9연대]


  이에 따라 공병대대는 전차소대의 엄호 하에 진격로 정비를 시작하였고 각급 부대도 훈련에 돌입하였습니다. 미 제2사단은 항공사진을 통해 식별된 적 진지를 표시한 후, 각개 병사들의 개인행동까지도 미리 점검시키는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여 이에 맞게 반복 훈련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제2사단은 10월 5일, 미군으로는 보기 드물게 달도 없는 칠흑과 같이 어두운 심야시간인 22시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초기의 공격은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약간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이 야간 공격에 미숙하다보니 길을 잃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적에게 위치를 노출시켜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정면을 압박함과 동시에 후방지역에서도 기습을 가하여 계획대로 적을 혼란시켜 버렸고 동이 틀 무렵에 원한에 가득 찬 단장의 능선의 929고지 정상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제1차 공격에서 2주간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고지위의 적의 요새가 단 한 번의 야간 공격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터치다운작전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사전에 공병대가 개척한 진격로를 통하여 제72전차대대를 중심으로 편성된 기동부대가 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전차가 지뢰지대를 돌파하고 진격해올 것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북한군은 당황하였고 순식간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악능선에서 남쪽정면에 방어력을 집중하던 북한군들은 미군 전차부대가 후방에 나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분산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점령된 고지위에 남겨진 적 시신]


  이처럼 배후를 차단한 제72전차대대는 적 후방을 완전히 돌파하여 10월 11일, 문등리 북방 4킬로미터 지점의 하심포까지 쾌속 진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심포 일대에는 연이은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전투력이 고갈된 북한군 제5군단을 교대하기 위해 중공군 제204사단이 남하하여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들을 발견한 제72전차대대는 중공군을 기습하였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중공군은 산악능선으로 분산하여 패주하여 버리면서 후방이 완전히 비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2사단은 일제히 돌격으로 전환하여 10월 15일, 서측의 백석산 북쪽 1220고지로부터 단장의 능선의 855고지와 펀치볼 지역의 가칠봉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을 완료하면서 작전을 대성공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결과 미 제10군단은 단전선의 요철부분을 완전히 정리하게 되었는데, 휴전 시까지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의 대규모 공세가 없었으므로 이것은 이후 군사분계선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유엔군 못지않게 공산군의 피해도 컸는데 확인된 북한군 및 중공군 전사자만 해도 1,473명 이었을 정도였고 이를 환산한다면 약 10,000여명이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곳에 투입되었던 북한군 제5군단은 휴전 시까지 전선에 재투입되지 못하였을 만큼 회복하기 어려운 엄청난 참화를 당하였습니다. 공산군은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부터는 산악지역의 재래식 전투에서도 막강한 화력을 지닌 유엔군을 당해 낼 수 없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10월 25일부터 그 동안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의 본 회담이 재개 되었습니다.


[고지전투는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 후방으로 이송 대기 중인 부상병들 )


  반면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를 연이어 경험한 국군과 유엔군은 산악에 구축한 강력한 진지를 화력만으로는 격파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포로 심문결과 공산군은 아군의 포격이 있으면 후사면의 진지에 대피했다가 포격이 중지되고 아군이 돌격하면 다시 전사면의 진지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전투력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빈 산위에 포탄을 가져다 버린 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고지공격작전은 정면공격과 더불어 후방을 우회기습하거나, 교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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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또 다시 재현된 악몽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15 08:18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로 인하여 내키지 않는 고지 쟁탈전에 계속 매달리게 된 제8군은 소극적인 지상작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피의 능선일대를 무혈점령한 미 제2사단 23연대에게 아군에게 밀려나 5~10킬로미터 북방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929고지 일대를 공격하라는 후속 명령이 9월 12일부로 하달되었습니다. 공격에 나선 미 제2사단은 북한군이 피의 능선에서 철수한지 불과 1주일밖에 되지 않아 제23연대가 929고지 일대를 손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습니다.


[929고지의 조기 점령을 낙관하였으나 이곳은 다시 피로 얼룩집니다.]


  하지만 그곳은 도망간 북한군이 허겁지겁 급조하여 구축한 방어선이 아니라 지난 8월 이후 피의 능선일대에서 국군 제36연대와 미 제2사단의 연이은 공격으로 전투가 격화되자 이미 그때부터 후퇴를 고려하여 배후에 종심 깊게 구축해 놓았던 강력한 방어진지였습니다. 그리고 9월 3일 은밀하게 피의 능선을 포기하고 병력을 후퇴시켜 새로운 후방방어선으로 이동 전개하여 놓았고, 추격한 아군이 이를 공격하기로 하자 이곳은 피의 능선 못지않게 피로 물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929고지 일대는 남에서 북으로 해발 800~900미터에 이르는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 험준한 종격실 능선이었습니다. 이 일대의 전투를 취재하던 종군기자 카터(Stan Carter)가 전방대대에 설치된 부상병 후송 대기소를 방문하였을 때, 한 부상병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Heart Break)같다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목도하여 이를 보도하였는데, 이와 같은 연유로 이 능선은 단장의 능선(Heart Break Ridge Line)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횡으로 연결된 피의 능선과 달리 미 제23연대는 칼날처럼 남에서 북으로 연결된 좁은 능선을 따라 공격할 경우, 북한군의 종심진지를 하나하나 점령하여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가 예상되므로 동쪽에서 능선의 중앙을 단절시키는 작전을 구상하였습니다. 먼저 단장의 능선 동측에 있는 엄호진지를 확보한 후, 능선 중앙에 있는 855고지를 동측방에서 공격하여 점령함으로써 능선을 절단한 후 분리된 북한군의 진지를 각개격파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 12일 사태리 계곡 동측의 엄호진지를 점령하자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고지전투 중 부상을 당한 모습]


  9월 13일, 제23연대는 예정대로 능선 중앙의 855고지를 향해 공격하였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저지되었습니다. 피의 능선전투에서 있었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고 결국 같은 방법으로 피를 쏟아 부어야 이곳을 점령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전차까지 동원한 맹렬한 공격을 펼친 끝에 공격 7일 만인 9월 18일 야간에 고지를 겨우 점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고지를 점령하여 능선의 북한군 진지를 2개로 분리시켰지만 북한군이 문등리 계곡을 통하여 계속 증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능선을 완전히 점령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인명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고 점점 피의 능선전투와 같은 모습으로 상황이 바뀌어 갔습니다. 이처럼 전황이 악화된 가운데 9월 20일 새로 미 제2사단장으로 부임한 영(Robert N. Young) 소장은 협소한 능선에서의 정면공격을 포기하고 서측에 전개되어 있던 미 제2사단 9연대를 단장의 능선 서측으로 투입하여 전투지역을 확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29고지를 점령하지 못하였고 지난 2주간의 작전에서 제23연대를 포함한 미 제2사단은 1,670여 명의 막대한 인명피해를 당하였습니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제2사단장은 작전을 중지하게 되었고 이를 보고받은 제8군은 엄청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미군이 6.25전쟁에 참전한 이래 고지하나를 두고 2주 동안이나 공격을 거듭하고도 점령하지 못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장의 능선 공격작전을 중지시킨 영 사단장은 원인분석에 나서 전투력을 축차투입 했고, 포병화력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절치부심한 그는 항공정찰을 통해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험준한 문등리 계곡일대에 전차의 운용 가능성을 발견하고, 공병대로 하여금 고방산~이목정~문등리간의 도로 보수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공병대대장은 현지를 세밀히 정찰한 결과 충분한 시간과 엄호가 보장된다면 도로를 보수할 수 있다고 사단장에게 보고했습니다.


[미 제2사단은 회심의 반격작전을 준비합니다.]


  공병대대장의 보고에 고무된 사단장은 전차운용을 포함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터치다운(Touch Down) 작전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지난 공격에서 얻지 못한 점수를 2차전에서 만회하자는 사단장의 의지가 담긴 작전명칭 이었는데, 작전의 내용은 10월 5일, 사단 전체가 정면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안 제23연대가 929고지를 점령하고, 이어서 전차대대를 적이 생각하지 못했을 문등리로 진출시켜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함과 동시에 각 연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전선을 북상시킨다는 필승의 계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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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mm 무반동총의 적 벙커 공격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20 08:28

- 백암산 고지 탈환작전,1951년-

옛 보병 장비인 57mm 무반동총은 6·25전쟁에서 대활약을
했음에도 자매격인 60mm 박격포와 같이 그 전공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7mm 무반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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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이봉조 선생이 썼던
‘분대장’이라는 옛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1951년 7월 18일.
중공군이 포진하고 있던 백암산[1279고지]의 탈환을
명받은 국군 5사단 35연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공격은 이미 전날 [17일] 대대적인 박격포 준비 사격으로
시작되었다.

이봉조 이등 중사는 60mm 박격포 분대장으로

이 고지 탈환
전투에서 박격포 사격을 지휘했다.

아래는 그 분의 전투 수기다.


이봉조 이등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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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본부가 위치한 바로 아래에 우리들 박격포반이
자리를 잡았다.
적진은 우리 부대가 있는 지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공격하는데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기필코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신명을 다 바쳐 백암산을 탈환하겠다고
굳게 결의하였다.


57mm로 적진을 강타하고 있는 미군- 1951년 3월 38선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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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은 워낙 높은 지대라 박격포탄 운반에도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공격에 동원한 박격포는 예비 중대 것까지 합치면
9문이었으나 위치와 포탄 보급 관계로
최초에는 내가 지휘하는 포 1문만 자리를 잡아
기점 사격을 하다가 나중에 다른 박격포도
사격에 참가하게 되었다.


6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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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나는 포반장의 결원으로 분대장에서
박격포 3 문을
지휘하는 박격포 반장으로 현지에서
임명을 받았다.

각 분대에는 포 분대장과 사수가 있었으나
사격술이
미숙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중대장은
나로 하여금
직접 포를 운용하여 지원 사격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그간 소총 분대장으로서 실전 경험을 쌓아 왔었고

박격포 포술에는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명령에 따라 임무 수행이 가능하였다.

우리 포반은 고지 정상을 집중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하였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400미터 내외여서 가늠대를
포목선상[砲目線上] 꽂아 직접 조준하면서 사격제원을
산출할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한 포격을 밤새도록 하고도 뒷날에도

하루 종일 계속 하였다.
우리들의 포격이 정확했음인지 적군의 활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도 유개진지[有蓋陣地]내에 대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어느 때는 적군 몇 명이 뛰는 것을 나의 포진지에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 포반은 포탄 보급정도에 맞추어 쉴새없이 포격을

가해서 적의 활동을 견제하고 시설을 파괴하였다.


단장의 능선 -한국 전쟁 기간의 삼분지 이 세월은 피아 쌍방
이런 험준한 산악에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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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17일 바로 그날 오후부터 다음날 공격 개시 전에서
적진에 퍼부은 박격포탄은 무려 5,000여 발에 가까웠다.
적의 벙커는 명중탄을 여러 발 맞았는데 흙먼지만
일으킬 뿐 파괴되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세밀히 관찰한 바로는 벙커를
덮은 훍의 두께가 1m 이상 되는 것 같았다.


6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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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통하는 9부 능선이 시작되는
곳에
적은 두 개의 벙커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그중 한 곳에 기관총과 따발총으로,
벙커 정면으로
공격하는 우리 부대원이 보이기만 해도 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박격포탄을 계속 벙커에 명중시켰으나

불을 뿜는 적 벙커의 총안[銃眼]는 멀쩡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군 돌격 부대는 적의 기관총 사격 때문에 이 능선

양쪽 계곡에서 더 이상 전진을 못한 채 호를 파고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우리 중대 본부 소대 선임하사인

김정대 중사가 중대장에게
“중대장님 화기 소대의 무반동총으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고 건의하였다.

중대장은
“아! 그걸 잊고 있었군, 빨리 무반동총 가져와!“ 명령하였다.


57mm 무반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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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계곡에 놓아 둔 57mm 무반동총을 관측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즉각 배치하였다.
배치 완료된 시각은 오전 9시 경이었다.

무반동총을 정 조준한 다음 포탄 한 발을

장진하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
급히 살펴보니 공이가 부러져 있었다.

폐쇄기 뭉치에서 고장 난 공이를 제거하고 새 공이를

갈아 끼웠다.
무반동총을 손 보고 다시 발사하기 까지는
10여 분이 걸렸다.

이번에는 이상이 없이 발사되었으나 첫 탄은

총안을 명중하지 못했다.

무반동총 진지에서 적 벙커까지의 거리가 300미터에
불과했는데도 그것을 명중시키지 못한 것이 몹시 쑥스러운지
김중사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다시 침착하게 조준하여 발사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탄착 지점을 확인 할 수가 없었다.
모두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펑!“하고 적의 벙커가 폭발했다.
적 기관총 진지 총안으로 포탄이 들어 간 것이었다.


57mm 고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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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진지 옆에서 보고 있던 중대장 이하 전 대원의 환호성이
요란하게 퍼졌다.“됐다! 명중이야 , 대성공이다.”
이어서 각 소대장에게 돌격명령이 무전으로 하달되었다.
각 소대장은 중대장으로부터 돌격 명령을 받자마자
“소대 ! 돌격 앞으로-!”
백암산 능선 사면을 잽싸게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

적군은 사방으로 놀란 토끼처럼 달아나느라고 야단이었다.
중대원들은 고지 하단부로 도주하는 적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고지가 원체 가파른 곳이라 추격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이 대대에서 내려왔다.

우리 박격포반원들이 산정으로 올라올 때 보니까 문제의
기관총 벙커는 지붕이 무너져 있었다.
그 곳은 적 기관총 조 2명이 완강히 저항했던 곳으로
두 놈이 죽어 있고 기관총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데 놈들이 독하다는 것은 거기서 또 증명이 됐다.
그 곳은 흙으로 후방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 놓아 사방이 막힌
폐쇄된 곳이었다.

두 명을 그렇게 가두어 놓고 죽을 때까지 저항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반동총으로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했던 김 정대 이등 중사는
이봉조 씨와 친한 전우였고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적 벙커 파괴의 수훈을 세운 그는 산 아래로 도망가는

중공군 낙오병을 추격하다가 아군 타 부대원이 던진 수류탄에
아깝게도 희생되었다.

다음 날 7월 19일 아침 각 소대 각 분대 별로 휴식도중 6사단

병력이 올라와서 우리 사단과 진지 교대를 하고 우리 중대는
방어선 후방으로 내려가서 대기하며 정비를 했다.


이봉조 이등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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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 참가자인 이봉조 씨는 1950년 11월 자원입대해서
1954년 5월 제대할 때까지 3년이 넘게 전방을 누비며
소총수, 자동소총 사수, 그리고 소총 분대장, 박격포 분대장
반장직을 역임하면서 싸운 역전의 용사이다.

대담한 적진 잠입으로 중공군 2명을 생포해와
화랑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피의 능선 - 고지 전투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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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당시 소위 ‘빽’없는 보통

국민이었는데
그는 국방의 일선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가 2년간 틈틈이 원고지 1,000매에 쓴 전투 수기 ‘분대장’을

읽어 보면 그가 전쟁기간 내내 보이는 상관에 대한 존중심,
동료 전우들과의 전우애,
부하들을 아끼는 애정,
그리고 업무를 연구하고 열중하는 태도는 물론 전투에 임해서
그가 내리는 냉정한 판단과 지휘의 용감함은 읽는 후배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을 발간하던 1980년도에 50대의 가장으로

택시 운전을 했었는데
지금은 연로하여서
은퇴했을 것을 추측된다.


6·25전쟁에서 영웅들만이 호국의 중책을 수행했던 것이 아니다.

이와같이 국가의 부름에 받고 불평 한마디 없이 일선에 배치되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일반 서민 출신‘보통 병사’들의
무수한 희생과 무공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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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보 2010.09.21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수많은 선배님들의 덕분에 오늘으이 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2. 비도승우 2010.09.22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존경스러운신분입니다. 다만 5000여발의 60mm 박격포탄이 아깝게 느껴지네요..

    57mm 한발로 이리 쉽게 해결될것을.. 그래서 중요한것이 적재적소에 대응화기와 전술을

    대입하는 지휘관의 판단력같습니다. 아무튼 이봉조 선배같은 분들덕에 이나라가 존재합니다.

    그분들의 노고를 언제나 기억합시다.

  3. 바라는것이란 2010.09.22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역 군인입니다....

    분대장이라는 책은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혹 출판사나.. 구매할만 한 곳이 있으면 리플을 달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실전에서 쓰여진 책이니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실... 국/군내에서 구할수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분대급 이하 제대의 전투경혐이 담겨 있는 책은 구하기가 힘듭니다.

  4. 울프 독 2010.09.23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이 책은 30년전에 출판되어서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병학사라는 곳에서 출판했었습니다. 저는 남산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고
    이번에는 국회 도서관에서 복사했습니다. 필요하시면 국회 도서관에 가셔서
    등록하시고 모두 복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병 교육 자료로 쓸만한 같은 책으로서
    일본인 병사가 쓴 '이런 중대장도 있었다'도 추청 할만합니다..- 같은 병학사 간-입니다.

  5. 2010.09.25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하늘바라기 2010.09.25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암산=흰바위산(하얀 바위산이랍니다) 7사단이 관리하고 제2땅꿀이 근처에 있죠 전 적근산 대성산에서 근무했는데
    옛날생각 많이 나네요

  7. 황태 2010.10.05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7미리 메고 다니는 거 보고 많이 놀린적이 있었는데.
    3.5" 하고 57 무반동총 이것도 무시할게 못되는군요.

  8. cthwn 2010.11.06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참고 자료로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복사해 가겠습니다.
    그런데 서두에 백암산 공격개시일 1951년과 중간 부분에 박격포 5천여발 발사싯점의 1953년이 시차가 커서 제가 다른 경로로 확인해 본 결과 1953년이 맞는것 같습니다. 아마 오타인것 같은데어째튼 좋은 자료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save money tips 2012 2012.05.23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아! 매우 보람,이 도착한 의견과 아이디어는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유용 바랍니다. 이 정보에 대해 얘기하고 감사 정확히 그것을 좋아하지.

  10. progressive era essay 2012.06.07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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