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06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22)
  2. 2010.05.31 '아군을 위협한 KS-12 대공포' (23)
  3. 2010.04.06 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10)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5.06 20:17

1951년 함경북도에 갑산지역에 낙하산으로 투입 된 31명의 영도부대는
이 지역에서 자생해서 활동하고 있던 백호부대라는 유격대와 합류해서
활기봉을 근거지로 삼고 왕성한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영도부대는 미국 CIA에서 조직하고 훈련시켜 적지에 투입한 유격대였다.
본부가 부산 영도에 있다 해서 영도부대라 불렸다.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도부대가 험준한 산악지대인 갑산과 삼수, 혜산진 등에서 출몰하여
후방지역에서 유격활동을 펼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지역 공산당 간부들은
1951년 8월 29일 갑산에서 삼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 그리고 군 간부들이 회합을 가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또한 남한 유격대 소탕의 결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이 지역의 리[里]당 위원장같은 조무래기 공산당 간부까지
총망라해서 참석한 붉은 대회였다.

갑산에 정보망을 구축(構築)해 놓았던 백호부대는 이 정보를 입수하자
무선으로 부산 영도의 본부로 바로 보고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논의가 오고 간 끝에 이들 공산당 수뇌부를 공중 폭격으로
격멸하는 임무가 동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해군 기동부대인
CVG-5에게 주어졌다.

갑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항모 에섹스 함 - 태평양 전쟁중에 24척이 건조된 에섹스급의 선두함이었다.

그 때까지 미 해군기가 갑산같이 먼 북쪽까지 출격한 일은 없었다.
먼저 10월 25일 정찰기가 고공으로 갑산 상공을 비행하며
공산당 간부회의가 열릴 갑산 읍내 중심부 지역의 사진을 촬영해왔다.

조종사들은 정찰기가 촬영해온 사진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목표를 익혔다.

특징있는 주변의 지형지물과 건물들이 공격 목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목표 지역은 동서쪽에 큰길이 감싸고 있었고 남쪽에는 도랑이 있었다.
동쪽의 산언덕 자락이 목표지역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주요 목표들은 담으로 나누어진 세 개 구역 내 건물들이었다.

건물들은 모두 16 동이었다.
각 건물들은 목재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화재에 무방비인 취약점이 있었다.

이들 건물 중의 한 동은 북한의 내무서였다.
북한군 대대 본부 건물도 있었다.

그리고 북쪽 구역에 있는 제일 중요한 목표인 조선 노동당 강당도 있었다.
이 강당에서 붉은 간부들의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 낯선 미 해군기의 출현을 위장하기 위해서 10월 28일 갑산에서
동남쪽으로 35마일 떨어진 속현이라는 곳의 공장 시설을 폭격했다.

1951년 10월 29일 새벽 03:30과 04:00 사이에 기동부대 조종사들은 모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출격 브리핑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고 숙지했다.

갑산에서의 공격은 9시에 개시될 예정이었다.
VF-53의 비행 부대장 클레이튼 피셔 중령은 갑산의 대공 사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간 주로 적의 대공화망이 밀집 된 철도이나 교량을 공격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던 조종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안 좋은 정보도 들려주었다.
갑산이 구조 헬리콥터의 운행 거리 밖이기 때문에
만일 격추되더라고 구조 헬기의 파견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전에 공습이 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격대는 이륙과 동시에 파도 높이로 바다를 건너 육지에 진입하면
나무 높이로 저공 비행할 예정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면 수직으로 고도를 올려 공격하는 것이 작전의 전모였다.

이들 공격대의 조종사들은 갑산일대에 영도 부대의 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공습과 동시에 이들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07:30에서 07:45 사이에 CVA-15의 항모(航母) 에섹스 함에서
콜세어 기들과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이륙하였다.


갈매기 형의 날개를 가진 F4U 콜세어기

대기는 맑고 조용해서 비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피셔 중령이 8기의 F4U 콜세어 기 공격대를 지휘했다.

8기의 콜세어 기들은 두 개의 4기 편대로 구성했다.
각 콜세어 기들은 500파운드 폭탄 한 발과 4발의 소형 폭탄들을
적재하고 있었다.

VF -54의 비행대장 폴 그레이 중령이 지휘하는 8기의 AD 스카이레이더 기들도
4기 일개 편대로 구성되었다.

이 대형 공격기들은 2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300갤런의 네이팜탄,
8발의 소형 250파운드 폭탄을 운반할 수가 있었다.
단발 프로펠라 기로서는 대단한 무장량이었다.

6ㆍ25전중 항모에서 이륙하는 스카이레이더 기
[당시 AD 스카이레이더로 불렸음]

공격대가 운반해갈 총 44,000파운드의 폭탄이 3-4 에이커 넓이의
갑산 읍내 목표 구역에 퍼부어질 것이었다.

항모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은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하고,
먼저 갑산 남쪽 속현 쪽으로 날아갔다.

그 하루 전 속현에 가한 공습의 위장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군들은 미군기들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속현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공격대는 무선 침묵을 그대로 유지하며 속현의 서쪽을 지나자마자
기수를 수직으로 들고 급상승으로 폭격 고도를 높였다.

이제는 단 8분내지 10분 정도만 지나면 갑산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설사 갑산의 공산군들이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대비하기에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공격대는 8,000피트 상공에서 수평을 잡자마자 급강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대는 해 뜨는 아침인 이 시간에 동쪽에서 해를 등지고 갑산에 쇄도했다.

기습은 대 성공이었다.
아무런 대공포화도 상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북쪽에 위치한 갑산은 지금까지 별다르게 심한 공습을 당하지 않았기에
대공포대도 없었고 방공호는 그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해서 표적 지역내에는 공습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기에
너무 많은 공산당 간부 인원들이 몰려와 있었다.

공격기들이 급강하하는 순간이 적의 대공포가 포문을 열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다.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하는 집중력을 분산시켜서 폭격의 명중도를 낮추는 반면
항공기가 지상 접근의 순간에 대공포화의 명중도를 높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산에서는 그렇게 할  대공포화가 없었다.
덕분에 각 공격기들을 적재한 모든 폭탄을 목표에 투하시키고
이탈하는 공격 전술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갑산 공격기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폭격 전법을 최대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한 목표에 여러 번에 걸쳐 폭탄을 나누어서 투하를 할 수가 있던 것이다.
첫 폭격은 F4U 콜세어 기가 맡았다.


동해에서 동계 해상 작전 수행중의 함상 콜세어 기들

공격 대장 피셔 중령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스카이레이더 편대의 공격에 앞서 콜세어 편대를 이끌고 급강하했습니다.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나는 지상에 서있는 높은 무선 통신 안테나 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500파운드 폭탄들을 투하한 콜세어 기들은 후속한 대형기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공격하도록 왼쪽으로 반전해서 선회하면서
뒤따라 가하는 스카이레이더 기들의 가공할 공격력을 지켜보았다.

콜세어 기들을 후속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접근하면서 먼저
첫 1,0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을 500피트에서 1,000피트 사이의 상공에서 투하했다.

대형 폭탄을 투하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콜세어 기와 같이
좌측으로 상승 선회한 뒤 다시 돌아와 목표물에 나머지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였다.

다시 좌선회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선회 후 세 번째로 목표물을 타격했다.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300갤런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고,
나머지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20mm 기총 소사를 하였다.

폭탄 적재량이 엄청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돌아와서 네 번째 공격을 했다.
네 번재 공격에서는 공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건물들에
소형 250파운드의 폭탄을 뿌리거나 시설물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조종사로 공격에 참여했던 허버트 리베링 대위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수레바퀴 모양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형 비행 대형을 만들어
빙빙 선회하며 폭격하고 상승하고, 폭격하고 상승하는 공격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요. 목표 지대는 연옥같이 변해버렸어요.”

갑산 읍의 심장부에 대한 공격은 아무 저항도 없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에섹스에서 출격한 16기의 공격대는 한 기의 피해도 없이 항모로 무사 귀환했다

스카이레이더 공격대 대장 그레이 중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목표지역을 떠날 때 지상에는 남아 있는 아무 것도 없었고
거대한 파괴의 더미에서 엄청난 연기만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촬영한 정찰 사진을 판독해본바 우리 공격대가 투하한 폭탄은
큰 도로로 둘러 싸여진 갑산 중심부 목표 지역에 단 한발을 빼놓고는
모두 명중했습니다.
목표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놓은 담도 한 줄만 남고
모두 날아갔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19명의 백호 부대가 갑산 내무서를 습격해서
15명의 반공 인사를 석방하였다.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이 공습에서 산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들이 전멸해버렸다.

나중에 영도부대는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이 공습으로
510명에서 530명이나 죽었다는 정보 보고를 해왔다.

삼수, 갑산, 혜산진의 조선 노동당 군당 조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제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대 수명 5년의 숙명을 타고 난 스카이레이더 기는
월남전까지 겪고 1985년 가봉 공군에서 최후로 퇴역하였다.

이 공습에서 지방 간부급 졸개들이 줄초상이 나자 평양의 김일성 집단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

평양 방송은 며칠을 두고 야만적인 폭격을 해댄
미제국주의자들을 광란적으로 규탄하였다.

방송은 조종사들을 “갑산의 인간 백정 놈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갑산 폭격 조종사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다행히 6ㆍ25 전쟁 중 갑산 작전 참가 조종사들중에 북한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 때 북한의 증오서린 욕설이 인상 깊었던지 갑산 공습 작전을 소개했던
참전 해군 조종사가 갑산의 백정 놈[The butchers of Kapsan] 작전이라고 부른 것이
그 뒤에 미 해군 전사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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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ar insurance 2011.10.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까지 북진에 소극적인 일차적인 이유는 또다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막대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3. online casino 2011.10.10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 써긴했지만... 그래두 성의니까... 가능한가염

  4. dual saw 2011.10.12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5.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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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an 2011.10.22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작품을 계속.

  7. dccarservice 2011.10.27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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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du lich hongkong tron goi 2012.12.1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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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ree credit report 2013.01.09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의 힘싸움 과정에서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경계가 나뉘

  17. obat alami sakit jantung 2013.02.06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

  18. onlineaccountsoftware 2013.02.13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感谢您写这样一个容易理解的文章就这一议题。

  19. Chatrandom 2013.05.02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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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Social Bookmarks 2013.05.13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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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www.lanamedbetalningsanmarknings.se 2013.10.12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아군을 위협한 KS-12 대공포'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31 09:00
  85mm KS-12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일격에 격추시키기 위해 1939년, 제식 채용되어 소련군의 주력 대공포로 운용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전차포와 야포의 임무까지 수행한 만능 화포입니다( 본 포스트의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련에서 촬영된 영화 "괴전차 T-34"의 한 장면으로 초창기 독일군에게 안겨준 충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독일군의 88mm FLAK 36 대공포의 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바로 KS-12입니다.
  대공포 겸 대전차포, 야포의 임무를 수행한 만능 화포 KS-12는 총 14,422문이 생산되어 독소전 기간 중 소련군의 주력 대공포로 운용됨은 물론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12문이 넘겨져 야포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여러분은 대공 임무, 혹은 방공부대라는 용어를 들을 때 나이키 허큘리스나 비호, 천마 혹은 발칸포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런 첨단병기가 흔해지기 전인 6.25 전쟁때까지만 해도 적의 항공기( Aircraft )를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대공포( Anti-Aircraft Gun )가 투입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대공포가 무엇인가 하면 문자 그대로 신속하게 기동하는 항공기를 격추( 문자 그대로 명중시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키기 위해 포탄을 고속으로 고공을 향해 발사하는 무기체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급속히 늘어가는 대공포에 대항해 조종사 역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군 수뇌부 입장에서도 국민의 혈세를 걷어 비싼 가격에 생산한 항공기를 대공포탄에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갈수록 성능을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포의 표준 중 하나였던 독일의 20mm FLAK 38. 우리 법규 규정에 따라 "포"로 구분이 되지만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대공 기관포가 됩니다.
  사주 및 대공 경계를 취하며 기계화 보병대대의 작전 간 기동을 엄호 중인 K-200A1 장갑차. 기계화가 완료되었지만 여전히 항공기의 공습에는 취약한 기갑부대에서의 대공 임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ieutenant. Kang, Shin-ho )
  한국군의 대표적인 대공 자주포인 K-30 "비호". 30mm KKCB 대공 기관포 2문을 탑재해 독일의 게파르트와 유사한 차량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eutenant. Kang, Shin-ho
  

  초창기의 대공포는 20~30mm 구경의 포탄을 기관총을 방불케하는 빠른 속도로 발사해 문자 그대로 항공기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갈수록 항공기가 상승할 수 있는 고도의 높이가 높아지자 마침내 각국의 군 수뇌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포탄의 구경을 키워서 아예 대포를 만들어주지. 그럼 한 방에 격추가 될테니 나쁠 것은 없다!"
  대구경 고사포의 대표주자인 독일의 88mm FLAK 36.  FLAK  18을 필두로 급속하게 개량을 거듭한 88mm  대공포 시리즈 중 가장 광범위하게 운용된 형식으로 전차포로 개량돼 티거 중전차의 주포로도 운용되었습니다.
  미국제 M2 90mm 대공포.  워낙 88mm 포의 인기가 높다보니 자연 조연으로 밀려난 경우지만 위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만 북한군 항공기들의 활동이 적다보니 대공 임무보다는 아래 사진처럼 야포의 임무를 더 많이 수행했지만요 )
  1950년 9월 15일, 대구 근교에서 북한군을 향해 포탄을 날려보내고 있는 M2의 모습으로 전형적인 야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소구경 포탄을 사용할 경우 탄약 낭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 苦肉之策 )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런 대구경 포탄이야말로 느린 발사속도로 인해 더 심한 낭비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구경 대공포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개발이 진행되었는데 우선 포탄의 구경이 큰 만큼 위력이 강력했다는 점입니다.
  즉, 표적을 명중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항공기는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다녀야 했지만 덕분에 연료가 빠르게 소진돼 임무수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는 점이죠.
  2009 서울 에어쇼에서 전시된 F-51 "무스탕" 전투기. 하지만 이런 기체도 대구경 대공포탄이 근처에서 폭발할 경우 정상적인 작전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취재 협조 : 공군 제15 혼성 전투비행단, 필자 제공 )

  그리고 20~30mm 구경의 포탄은 설사 명중되더라도 바로 격추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발이 피격된 상태에서도 무사히 활주로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대구경 대공포탄은 워낙 위력이 강력한 통에 항공기가 피격될 경우 그 자리에서 두동강 나거나 대폭발을 일으키는 "원 샷, 원 킬"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포신과 포탄이 거대한만큼 사정거리 역시 기존 대공포에 비해 월등히 길어 저공으로 비행할 경우 항공기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죠.
  88mm FLAK 36을 기초로 개발된 전차포인 kwk 36 L/56을 탑재한 Ⅵ호 "티거" 중전차. 대공포는 대구경 포탄을 빠른 초속으로 곧게 날려보내는 특성 때문에 전차포의 모체로 많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점에 눈을 뜬 세계 각국에서는 야포를 방불케하는 대구경 대공포의 개발에 착수했는데 그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독일의 88mm FLAK 18과 소련의 85mm KS-12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애크 애크" 혹은 "에이트·에이트"라며 투덜대는 미군의 대사에 귀가 솔깃해지실 것인데 이 두 속어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88mm 대공포였기 때문이죠.
  88mm 대공포는 대구경 88mm 포탄을 발사하는 바람에 B-17이나 아브로 랭카스터와 같은 대형 폭격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정거리도 10km가 넘었기 때문에 간혹가다 야포로서 포병화력 지원을 담당하기도 했고 철갑탄을 이용해 적 전차를 파괴하기까지 한 문자 그대로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셈입니다.
  유명한 티거 전차의 88mm kwk 36 L/56 전차포가 바로 이 88mm 대공포를 기초로 개발될 정도였으니 말이죠.
  "우리라고 질 것 같은가?!" 1939년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로기노프가 설계하고 제8 포병공장에서 14,422문을 생산한 KS-12 85mm 대공포.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소련의 KS-12는 1939년,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로기노프가 설계한 대구겯 대공포로 중량 4.3톤·최대 사정거리 15.65km, 유효 사정거리가 10.5km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포는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한 제8 포병공장에서 생산이 되었는데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침공하자 긴급히 우랄 산맥 동쪽의 스페르들로프스크로 공장설비를 옮겨 종전 시까지 총 14,422문을 생산했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된 KS-12. 원래 방탄판이 부착되어 있었지만 실제 야전에서는 떼어낸채 운용했습니다. 총 운용인원은 7명으로 대공포로 운용할 경우 바퀴를 떼어낸 후 지면에 밀착시켰습니다.
  85mm KS-12를 기초로 개발된 D-5T 전차포를 탑재한 SU-85 돌격포. 비록 원거리 명중률이나 실제 위력이 88mm kwk 36 L/56에 비해 열세였지만 독일전차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D-5T를 탑재한 T-34/85 1943년형을 운용 중인 제38 독립 전차연대. 85mm KS-12는 전차포로 개량돼 T-34 전차에 탑재되었고 이 차량들의 개량형이 바로 북한군의 남침 선봉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소련은 독일의 티거 전차와 마찬가지로 이 포를 기초로 대전차 전투에 적합한 전차포인 D-5T와 S53을 개발해 Su-85 돌격포와 T-34/85 전차에 탑재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이 포의 존재는 당시 76.2mm가 주력이던 소련군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고 소련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독일과 소련의 치열했던 전쟁이 종전된 후 KS-12는 북한군에 12문이 넘겨졌습니다.
  당시 소련군의 편제는 중대공포 연대에 16문의 KS-12가 소속되었는데 12문이라는 적은 수를 넘겨준 것은 한국군에 전투기나 폭격기가 전무했기 떄문입니다.
  이는 대단히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당시 한국군에 공급된 T-6 "텍산"은 무장이 없는 훈련용 기체였고 P-47 썬더볼트와 같은 전투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남침의 선봉!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0분, 38도선의 한국군 진지를 향해 사격 중인 북한군의 KS-12 포대의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한국군의 항공기가 이렇다할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KS-12는 야포로서 보병들의 진격을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당시 KS-12는 본업인 대공 경계가 아닌 야포의 임무를 수행해 진지에서 고전하던 한국군 장병들에게 85mm 포탄 세례를 퍼부어주었습니다.
  안 그래도 압도적인 전력차가 분명했던 북한군 포병으로 모자라 대공포탄까지 얻어맞아야 했던 당시 호국영령들의 고초를 생각하자면 전쟁에 대비하는 준비와 자세, 그리고 군비확충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38도선을 돌파하고 개전 3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는 등 쾌속 진격을 거듭한 북한군을 따라 KS-12!
  그러나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KS-12는 잇따라 출몰하는 UN 공군에게 효과적인 방공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KS-12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 컸고 UN 공군의 주력을 이룬 미 공군의 보잉 B-29가 워낙 고고도에서 비행하던 탓에 쉽사리 명중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개전 당시 한국군의 주력 항공기였던 T-6 "텍산". 이 기체는 문자 그대로 조종사들의 훈련기였지 전투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북한은 개전 직전까지 최대한 300문 이상의 KS-12를 확보해야 했지만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북진하는 UN군과 한국군의 진격 와중에 보유하고 있던 12문의 KS-12는 폭격에 파괴되거나 노획되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소련으로부터 추가 수량이 넘겨져 산악지대에 은폐해 대공포의 임무를 수행하여 항공기들의 위협이 되었지만 이미 전선이 38도선 일대에 고착된 상태인데다 여전히 제공권을 장악한 UN 공군의 압도적인 대군을 저지하기에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습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KS-12. 전쟁 기간 중 아군에게 노획된 몇 안되는 생존자입니다.
  KS-12는 대전차포로도 운용될 수 있도록 높이를 최대한 낮게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만 워낙 수가 적었던 탓에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대전차포로 운용하자니 높이가 높아 발각될 확률이 높았고 결국 전쟁 기간 중 KS-12가 대전차 임무에 투입된 기록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85mm라는 대구경과 10km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진 KS-12는 휴전 직전까지 아군에게 적잖은 위협으로 작용했고 휴전 이후 중국이 제식명 72식으로 면허 생산함은 물론 북한 역시 지금까지 적잖은 양을 예비 전력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공에서 공격하는 전투기나 지상 공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기갑부대에 K-30이 배치되듯 북한은 적잖은 수의 KS-12를 예비 전력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ieutenant. Kang, Shin-ho )

  최소한 고공에서는 위협이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저공에서 비행할 경우 대구경 포탄 한 방에 전투기가 두 동강 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오늘날 공군에게 있어 대공포는 만만치 않은 위협인 셈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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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6 07:11

  세계 포병 전투사에서 가장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그래서 포병 밀리터리 매니아의 최고 관심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그 프라 모델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포병 포는 독일 군이 사용했었던 88mm 포이다.




[88mm 포를 자세히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이 포는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기는 고사포[지금은 대공포라는 말이 더 일반화 되었지만 이 대구경 포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고사포로 통했다.]로 태어났다. 개발의 주체도 육군이 아닌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였다. 1928년, 88mm 포는 지금 세계 전차포의 주류를 이루는 120mm포를 개발한 독일 라인메탈사에 의해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일 라인메탈사의 88mm 포, 대량으로 생산되어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차 못지 않은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이 88미리 포를 세계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것은
독일 육군이었고 그 신화적 명성은 적기 격추가 아니라 적 전차의 격파로 얻어진 것이다. 이 88미리 고사포는 스페인 내전 시부터 히틀러가 파병한 콘도르 레지온 부대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지상 목표 포격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부터였다. 이 전격전에서 88mm 포의 지상 목표 타격의 효율성에 눈뜬 사람은 프랑스 남부를 휩쓴 기갑사단을 지휘했던 에르빈 롬멜 장군이었다. 88미리 포의 위명(威名)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은 북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막을 무대로 펼쳐진 전투에서이다.



[독일 88mm 포.1분간 20-24발의 속사가 가능하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 롬멜은 부족했던 독일 전차의 전력을
이 88mm 포를 최대로 활용해서 메꾸었다. 롬멜은 키가 커서 노출이 잘 되는 88mm를 땅을 파고 묻어 포신을 1m도 정도 높이로만 노출 시키고  이것마저도 천막천으로 덮어서 북아프리카에 흔한 모래 언덕으로 위장해서 사용했다. 그는 리비아 전투에서 영국 전차들을 유인해서 단 하루만에 유인에 걸린  영 전차 300대중에서 230대를 대파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일군은 리비아와 이집트 전선의 여러 곳에서 영국 전차대를 교
묘히 유인해서 이 매복한 88mm포로 전멸 시키자 그 공포의 충격이 전 연합군에게 전파되었었다. 장사정의 사거리에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독일88mm에 비해서 구경이 40-60mm정도의 초기 영국 전차들은 상대가 되지가 못했다. 전차포 사거리 포 밖에서 광선처럼 날아온 거대 폭탄을 맞고 마치 도끼에 찍힌 정어리 통조림처럼 산산조각이 났었다.




88mm 포의 귀재'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88mm포가 지상 목표 타격에 큰 활약을 한것은 88mm가 가진 또 다른 특별한 기능때문이기도 했다.
88mm가 육공 양면에서 대활약 할 수있었던 것은 대공포답지 않게 포의 고저각 운신이 엄청나게 컸었다. 즉 대공사격을 위해서 포신을 90도 가까운 고각으로 올릴 수도 있지만 고지 잠복 진지에서 포신을 수평 아래로 내려 산 아래 접근하는 전차를 타격할 수 있는 마이너스 10도 각도의 저각 사격도 가능했다.


  전쟁 초기에는 타국의 고사포들은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었기에
88mm 포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88mm 포는 지형상 전투 거리가 짧은 유럽 대륙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지만 광활한 소련 전선에서는 대량의 적 전차 격파로 다시 대 활약을 했다. 물론 88mm가 지상목표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본연의 대공기능에도 충실했다.


  전쟁 후기 독일 영공을 밤낮없이 휘젓고 다닌 영미군의 대형 폭격기들은 포함한 많은 항공기들이 이 88mm 포가 쏘아 올린 무수한 탄들의 탄막에 걸려 격추되었었다.




[독일 88mm와 120mm 포가 터뜨리는 치열한 대공 탄막을 결사적으로 통과하는 미 B-17 폭격기대]


  미군에도 88mm 포와 비슷한 대공포[고사포]가 있었다.
90mm M2 고사포다. 미국이 제공권을 확실히 틀어쥐지 못했던 태평양 전쟁초기. 이 90mm 고사포[구형 M1]는 미드웨이나 과달카날등에서 공습해오는 일본군 폭격기나 전투기들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었다.




[1944년. 오키나와, 대공 경계 중의 90mm 고사포]


  1943년도에 출현한 개량형 M 2 형은 88mm처럼 수평아래 저각 사격이 가능했다.덕택에 유명한 발지전투에서 직접 사격으로 독일 타이거 전차들을  격파하는 롬멜식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트기의 시대가 오자 대구경 고사포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미 90mm 포는 6·25전쟁에 참전해서지막 은퇴 무대를 장식했다. 6·25전쟁중 한국에 전개된 미군의 90mm 고사포는 독일의 88mm 포와 같이 대공 임무가 아니라 지상 임무에 동원되어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미 M-2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준비]


  90mm 고사포는 윌리암 헤닉 대령이 지휘하는 제 10 고사포 포병단
그룹의 한 포대로서 한국에 도착해서 있을 지도 모를 북한 공군의 부산 폭격에 대비해서 잠시 부산 영공 방위에 투입되었었다. [원래의 고사포병단에 다른 포병대대를 혼성했기에 고사포 포병단 그룹이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포병단 그룹장 윌리암 헤닉 대령은 독일 이민의 후손으로서 미 육사 졸업생이다. 한국에 오기 전 해안 포대장등 다양한 포병 지휘관의 이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같이 북진하면서 손발을 맞춰온 백선엽 장군의 평에 의하면 아주 겸손하고 노련한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구성이 독특하다.


제 78 고사포 대대  [90mm 고사포 18문]

제 9야포 대대 [155mm 포 18문]

제 2 중박격포 대대[4.2인치 박격포 18문]


  1950년 한국에 도착했던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미 1군단의 군단 포병으로서 부산 방공 임무를 마치고 그해 9월 다부동 전투에서 선방했던 한국군  1 사단의 지원 업무를 부여 받았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헤닉 대령은 ”내 평생 국군 1사단과 합동 작전을 할 때 최고로 잘 싸웠었다“고 회고했다고 백 선엽 장군의 자서전은 밝히고 있다. 이 미국의 고사포가 국군 1사단에 배속되어 북진하며 싸웠던 기록이 백선엽 대장의‘군과  나’라는 자서전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백 선엽 장군의 회고록 -

  장군의 사진은 휴전회담 대표시 사진]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유엔군이 인천 상륙 직후 백선엽 장군의 1 사단이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후방으로 돌입하여 보급선을 끊어 궁극적으로 적 3개 사단의 적을 붕괴시키는 공격 작전 때부터 막강한 화력 지원을 했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옛 주둔지 임진강 전선으로 복귀한 1사단은 이 10 고사포 포병 그룹과 함께 북진의 길에 올랐다. 평양 선두 탈환을 목표로 쾌속 진군하는 1 사단에 이 고사포 포병 그룹이 동행하며 지원을 했다. 북한군은 평양의 남방 15 킬로미터에 있는 지동리에  밀집된 토치카로 종심(縱深) 깊은 주 저항거점을 만들고 대기 하고 있있다. 방어선의 1사단이 12연대를 선두로 하여 야습할 때 10 고사포 포병 부대는 대규모 화력 지원으로 이 북한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일조를 하게 하였다.


  평양을 탈환하고 다시 북진 길에 올라 통일이 바로 눈앞에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거 개입이라는 큰 장벽을 만났다. 백선엽 장군은 제 2군단장으로 전보 되었으나 중공군의 매복 공격으로 전선이 위급하자 다시 1사단장직으로 되돌아갔다.그 때 1사단은 평북 운산에서 며칠째 중공군과 치고받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사단 선두의 제 15연대는 이미 중공군과의 힘 부치는 전투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1950년 10월 31일, 다시 사단장이 된 백 선엽 장군이 운산의 1 사단을 찾아 갈 때 운산 주변 산악은 중공군들이 미 공습을 방해하느라 여기 저기 피운 산불로 연기가 자욱했었다.연기가 뒤덮은 골짜기와 산등성마다 우글거리는 중공군 병사들을 볼 수 있었고 살기(殺氣)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백 장군은 먼저 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는 미 포병 사령부를 찾아가서 헤닉 대령부터 만났다.

  헤닉 대령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헤닉 대령은 정색을 하며 경고했다. "적이 계속 아군의 틈새로 파고 들어와서 포위망을 조이고 있습니다. 오늘을 견디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아직 사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백 선엽 장군은 "왜 그리 투지가 없습니까?" 하며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나의 정직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오늘 중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한국군 1 사단과 우리 미군 지원 부대는 전멸 할 것입니다."  즉, 그날  밤 안으로 운산 아군을 단단히 묶어 버릴 중공군의 포위망이 완성 된다는 경고였다.


  노련한 헤닉 대령의 진지한 경고에 그제야 충격을 받은 백 장군은 1사단 연대장들을 만나보고 상황이 엄중함을 실감했다. 그는 즉시 국군 1사단이 배속되었던 미 1군단 사령관 밀번 장군을 면담하고 의견 상신을 하고 야간 철수를 허락받았다.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장군과 미 1 군단장 밀번 장군]


  그날 밤 후방 영변의 1사단 사령부에서 백 선엽 장군은 불안속에
1사단의 철수가 잘 진행되기만을 기도했다. 단지 북쪽 1 사단 쪽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철수 작전이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다소 안심을 했을 따름이다.


  한편 미 1군단 사령부에서 철수 명령을 받은 1사단은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밤을 도와 전 사단이 철수를 개시하였다.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은 1만 5천발의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백 선엽 사단장이 철수를 건의하러 가면서 부탁했던대로 적절한 사격 계획을 세워 1사단이 철수 작전을 개시하기 전부터 주변 산악에서 칼을 갈고 있던 중공군들을 이 잡듯한 지역사격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6.25 전쟁의 미 90mm 포 사격]

  헤닉 대령은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온 밤을 지새며 포사격을 직접 지휘했다. 표적 선정과 각 포대의 사격까지 직접 현장을 뛰어 다니며 격려하고 지도했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 표적의 크기와 셩격에 따라 보유했던 90mm 고사포와 155mm, 그리고 4.2 박격포의 포탄들의 불줄기를 표적에 들씌웠다. 90mm는 고사포는 표적에 따라 융통성있게 조준경으로 포착한 적군을 직사로 포격하거나 일반 곡사포와 같이 곡사를 해서 중공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일반 곡사포와 달리 째지는 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90mm 고사포의 포성은 중공군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군 1사단에게는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뿐만 아니라 미 6전차대대의 대대장 그루던 중령이 지휘하는 50여대의 최신형 M46 전차까지 있었다. 엄청난 포병의 지원과 미 전차대의 엄호가 국군 1사단의 철수를 도왔다. 중공군은 그날 밤 한국군 1 사단도 포위하고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가 상상을 초월한 대 포격에 단념하고 불벼락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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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초, 송시륜이 지휘하는 중공군 9병단은
장진호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미 해병 1사단
섬멸에 미련을 못 버리고 함흥평야까지 쫓아 왔었다.

미군은 항구를 떠나면서 
남은 포탄을 모두 소진시키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여분의 포탄을 모두 뒤 쫓아온
중공군 측에 퍼부었다.

이 어마어마한 포격에 간 떨어지게 놀란 송 시륜의 중공군은
미 해병이 증원 군을 받아서 반격하는 줄 오해하고
추격을
중단한채 허겁지겁 대피했었던 전사가 이날 밤 불벼락을 맞은 중공군의
행동을 추측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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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밤  미군이 무자비한 포격으로 소비했던 포탄은 무려
1만 3천발이나 되었다.




[6.25전쟁에서 적진을 타격하는 90mm 고사포]

  헤닉 대령은 1사단의 철수가 다 완료된 후에야 포병들을 철수시켰고 마지막으로 포병 사령부도 철수시켰다. [미측 기록은 철수가 이틀간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있다.]어마어마한 화력의 지원 아래 국군 1사단의 3개 연대는 무사히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나 운산 10킬로 후방에 있는 입석-영변으로 모두 안전하게 철수 할 수 있었다. 포병 화력의 덕을 입어 철수하였던 1사단은 운이 좋았다. 며칠전 바로 옆 산줄기 넘어 1사단 우익에서 중공군의 잠복 기습에 크게 패하고 철수했던 한국군 2군단[6,7,8사단]이 비워 둔 공간을 채우려 진격해 들어갔던 미 1기병사단의 8연대는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섬멸적 타격을 입었다.


  이 연대에도 1사단과 같은 신속한 철수 명령이 내렸지만 집중적인 10고사포 포병 그룹의 사격에 국군 1 사단에 손을 못 대게 된 중공군이 방향을 바꾸어 전력을 미 연대 공격에 집중했기 때문에 포위망을 탈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최선봉의 3대대는 겹겹으로 포위당해 1기병 단장 게이 소장이 눈물을 머금고 구원을 포기했던 비운의 전멸 대대가 되었다. 900명 대대원중 700명의 대대원이 전사했거나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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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 실종자 상당수가 포로가 되었다.중공군은
대다수가 부상자였던
미군 포로들을 북한군에게 넘겨주었고
북한군은 수백 명의 이들 포로들을 강변의 모래 사장에
끌고가 모두
학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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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련한 헤닉 대령이 불안한 전세를 읽고
철수를 강력 건의 한 것이 전쟁 발발 초기 임진강 전선에서 사수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시간을 끌다가 1사단이 붕괴당한 쓰라린 경험을 했던 백 선엽 장군의 신속한 결단을 하게 했고 고사 포병단 그룹의 이은 활약이 1사단을 구조해 냈던 것이다. 8군 휘하에서 한국군 사단들 중에 별 피해 없이 건제를 유지하고 탈출했던 사단은 1 사단이 유일하다. 이 공로로 헤닉 대령은 미 정부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수여받고 나중에 장군으로 진급하여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전쟁기념관에 숨어있듯 조용히 전시 된 M-2 고사포]

 

  고사포 포병 여단은 전선 교착후 1사단과 작별하고 중부전선에 배치되어 높은 고각 사격이 가능했던 90mm 고사포는 보통의 곡사화기들이 다루기 힘든 높은 고지의 적을 포를 높이 올려 쏘는 직사 사격이나 곡사 사격으로 강타하며 보병사단을 지원했다. M2 고사포는 6·25전쟁 뒤 국군에게 제공되기도 했지만 현역에서 은퇴했다. 유도탄이 도래한 신 시대는 그런 대형 대공 무기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6.25전쟁에서 미 90mm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실적을 
독일 88mm 고사포에 비교해보면 그렇게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나 90mm 고사포는 한국 제일의 정예 사단을 적의 포위에서 구출해낸 공적을 세우고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의 마지막 무대를 알차게 장식했다고 하겠다.



[전쟁 기념관의 M 2 고사포. 한국 수호의 한 공신인데 자기를 몰라보는 관람객들의 무심한 눈길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이 포는 서울 용산 전쟁 기념관에 가보면 볼 수가 있다.
별다른 설명도 없어 아무런 특징 없는 무기로 여긴 관람객들이 지나쳐 버리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국군 1사단을 중공군이 만든 죽음의 함정에서 구출했다는 이 고사포가 가진 역사의 향기를 맡아 보시기를 바란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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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mi5 2010.04.0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전쟁이 난다면 어찌될까 하고 생각해보네요..
    갑자기 끔찍해지네요..
    절대 그런 일 없어야되겠죠..^^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7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에 작전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런 작전을 원할하게 해주는 것은 장비와 물자다.
    우리는 자주국방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현대식 최신 장비를 갖추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3. 배상원 2010.04.0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기념관을 갈때마다 전시된 포들을 무심하게 지나쳣는데 다음엔 유심히 보아야 겠네요 ㅎㅎ

  4.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선엽이 개새기 목을 잘라 버리고 가족을 전체 매장시켜 버려 그 치욕을 너희 피로써 갚을 것이다

  5.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드시 갚는다 백선엽 백인엽이 북한에서 일제앞잡이 처단에 쫒겨 남한으로 내려와 이승만이의 반공주의에 되살아나 예전 독립군 토벌의 자랑스러운 경력은 내세우지 않은 채 개한미국의 장군으로 33의 나이에 합참의장이 되었다지? 역시 사람은 시대를 잘 만나고 눈치가 빨라야 하는구나 하지만 당신 가족과 당신의 목 그리고 당신이 죽고 난 후의 유골도 반드시 찢고 갈아 역사의 치욕을 반드시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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