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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5 25. 그해 9월의 마지막 혈전 (64)
  2. 2010.02.16 16. 누가 빠른가??? (22)

25. 그해 9월의 마지막 혈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15 11:03



  폭염 속에 계속된 북한군의 8월공세가 아군의 선방으로 실패하였지만 그렇다고 북한군이 부산 함락에 대한 희망까지 완전히 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8월 공세가 서서히 둔화될 시점부터 오히려 북한군은 기존의 제8, 13사단 외에도 제7, 9, 10사단 등 3개 사단을 추가로 전선에 투입했는데 이것은 당시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이었을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9월공세에 쏟아 부었습니다.



[9월이 되자 북한군의 새로운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북한군은 8월 31일 마산-창녕일대의 서남부에서부터 공세를 재개하여 9월 2일에는 왜관-포항에 이르는 동북부전선에서도 공세를 시작하였는데, 서남부 지역을 먼저 공격한 이유는 유엔군의 시선을 그쪽으로 끌리게 하여 제9군 예비대의 이동을 촉진시킨 후, 동북부 지역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하던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였습니다. 비록 8월 중순을 기점으로 전력균형은 서서히 국군과 유엔군의 우세로 바뀌어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전선의 주도권은 북한군이 잡고 있어서 9월공세의 초전 분위기는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세 첫날, 마산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한 북한군 제6, 7사단은 미 제25사단을 함안까지 밀어붙였고, 영산 및 창녕 일대를 공격한 북한군 제2, 4, 9사단은 미 제2사단이 담당한 방어선의 가운데를 돌파하여 미 제2사단을 창녕과 영산 지역으로 양분시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제8군사령부는 예비대를 영산에 투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북한군이 원하던 바였습니다. 아군 예비대가 서남부로 움직이자 9월 2일부터 북한군 제2군단이 왜관-다부동 지역과 신령-영천지역, 안강-포항 지역에서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지역에서 노획된 북한군 장비]


  이러한 북한군의 9월 공세는 과연 미 제8군이 부산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였고, 그 기세 또한 격렬하여 지난 8월 내내 시체로 산을 쌓았던 다부동, 영천은 또 다시 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군 제1사단을 대신하여 다부동에 투입된 미 제1기병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자마자 불과 3일 만에 다부동을 북한군에게 내어 주고, 4킬로미터 후방으로 철수하고 말았고 9월 5일이 되었을 때 아군의 엄청난 손실에 놀란 제8군사령부는 ‘데이비드슨 선’으로 철수를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회심의 반전 카드인 인천상륙작전을 위해서라도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야 했고 누구의 인내심이 더 큰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9월 12일 북한군의 공세능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미 제1기병사단이 대구 10킬로미터 전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돈좌시켰습니다.


  다부동 돌파와 더불어 북한군 제8, 12, 15사단이 신령, 안강, 영천지역으로 공격을 개시하면서 이곳의 위기도 함께 고조되어 갔습니다. 특히 북한군 제15사단은 국군 제1군단과 제2군단의 열려진 간격으로 저항 없이 전선 후방으로 침투하여 영천을 점령하면서 중․동부 전선이 순식간 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국군 제2군단장 유재흥은 제1,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 씩 차출하여 영천에 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북한군 제15사단은 경주 방향으로 진출했는데 이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북한군은 낙동강을 넘지 못하였고 대한민국은 살아났습니다.]


  제15사단을 측면에서 지원할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에게 격퇴당하며 움직이지 못하자 어느새 홀로 떨어진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에 의해 포위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었습니다. 9월 8일 국군은 영천을 탈환함과 동시에 9월 10일, 북한군 제15사단을 완전 포위섬멸하면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막아내었는데 이로써 북한군 제15사단은 동락리 전투, 화령장 전투에 이어 영천 전투로 세 번째의 참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보았습니다. 결국 여름의 마지막에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는 영천 전투를 마지막으로 서서히 막을 내렸고 대한민국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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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누가 빠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6 10:25


 

  제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무어는 채병덕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동을 공격하여 가급적 오랫동안 확보함으로써 진주 방어를 위한 시간을 획득하려 결심하였습니다.


[미군의 무덤으로 변한 하동고개]


  제19연대에 긴급 배속된 미 제29연대 제3대대는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야간행군을 위험하게 생각한 제3대대장은 하동으로 진입을 다음날로 미루고 횡천리에서 일단 숙영하였는데, 당시 제3대대 병사들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을 한잠도 자지 못했을 만큼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연대의 명령에 따라 27일 08시 45분경 하동고개를 향해 출발한 제3대대는 09시경, 우계리 일대에서 10~15명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추격하였는데 그것은 북한군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북한군의 뒤를 쫓아 하동고개로 진입한 순간 매복하여 있던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고개에 갇힌 제3대대는 대항도 못해보고 붕괴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집계된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추산되었고 제3대대를 안내하던 채병덕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유인책에 미군이 완벽하게 결려든 전투로 그해 9월 말, 미 제25사단이 하동을 탈환했을 때 미군 시신 313구를 발견하였을 만큼 치욕스런 결과였습니다.


[상황을 오판한 미군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하동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제8군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적은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진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7월 29일 오전부터 정면공격과 함께 양익포위 공격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7월 31일 06시경 진주를 함락시키게 되었을 때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가 확인되었고 미군은 경악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이 마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은 부산에서 불과 4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증원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산을 노리는 적은 예상과 달리 2개 사단의 엄청난 규모였지만 이를 막아야 할 미 제24사단은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긴박성을 감안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일한 예비인 제27연대를 마산에 투입하고, 7월 31일 부산에 상륙할 예정인 제5연대 전투단을 마산에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싸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증원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것이 빠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미 제25사단은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마산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결국 워커장군은 8월 1일부로 전 전선을 낙동강 선으로 철수시켜 병력을 절약하고, 상주에 있는 미 제25사단을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시켜 마산 정면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마산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군 제6사단의 예상치 못한 진격이 유엔군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제부터 미 제25사단은 이를 능가하는 기동을 전사에 선보였습니다. 만난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인 8월 3일 17시 30분, 마산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지 못한 이러한 놀라운 이동 전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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