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9.27 82. 시작된 줄다리기 (6)
  2. 2010.06.30 그들의 이야기 [ 3 ] (129)
  3. 2010.05.07 41. 중공군의 준비되었던 참전 (2)

82. 시작된 줄다리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27 08:16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첨예한 신경전을 보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회담장에 마주앉았지만 처음부터 회담이 잘 되었을리 없었습니다. 7월 11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부터 커다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엔군 측은 협상의제, 휴전감시방법, 전쟁포로 등 군사적인 문제만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라고 주장했지만, 공산군 측은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지, 외국군 철수 등을 우선적으로 토의하자며 정치적인 주장을 앞세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공통의제로 떠오른 군사분계선마저 우리는 현 전선보다 북쪽을, 북한 측은 전쟁 전의 남북 분계선인 38선을 주장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회담장 출발 직전 리지웨이의 환송을 받는 휴전협상 대표단]


  처음부터 이렇게 난항을 겪은 것은 휴전회담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자하는 공산군 측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단만 해도 유엔군 측은 정치에 관여해 본 일이 없는 순수한 야전 군인들로 구성하였지만, 반면 공산측은 군복을 입었지만 정치경험이 있는 자들로 선발했을 정도였고 더구나 회담을 실질적으로 막후에서 지휘하던 자는 스탈린이었습니다. 그는 형식상 마오쩌둥에게 회담의 전권을 위임한 것처럼 하였지만 회담장소를 최초에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공해상의 덴마크 병원선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산군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회담을 벌이도록 전문으로 통해 지시하였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이러한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제1차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유엔군은 1개월간의 전투중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몇 주일이면 회담이 완전히 끝나고 휴전에 이를 것으로 낙관적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설전 끝에 7월 26일에야 총 5개항으로 구성된 토의의제를 겨우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제선정은 이제부터 말로써 싸울 범위를 선정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이렇게 겨우 합의를 도출한 제1차 휴전회담은 이후 2년간 계속되는 지루한 마라톤의 출발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토의의제 중 제 2항에 규정한 군사분계선 설정이었습니다. 전쟁이전 남북 간 분계선이었던 38도선을 주장하는 공산군 측과 해-공군의 우세를 반영해 오히려 현 접촉선 보다 아군의 전략적인 공격 범위에 노출 된 북쪽에 분계선을 설정해야한다는 유엔군 측과 주장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8월 23일, 공산군 측이 일방적으로 회담불참을 선언함으로써 회담이 결렬되었습니다.


[첨예한 회담 이면에는 이런 모습도 간혹 있었습니다.

회담장 밖에서 단소를 나누는 유엔군 헬기 조종사와 북한여군]


  이에 유엔군은 군사적 압박을 가하여 공산군을 회담장으로 다시 불러낸다는 방침을 수립하고, 또한 차후 예상되는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려기 위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양구 지역의 해안분지(이른바 펀치볼),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백석산 등지를 점령했고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이 월비산을, 중부지역에서는 국군 제2사단이 금성의 서남쪽 후방까지 진출하였으며, 국군 제6사단이 금성천과 교암산을 점령했습니다. 결국 아군의 행동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공산군 측은 결국 회담 재개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엔군은 회담장소의 불리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시 접촉선인 경기도 파주군 진서면 어룡리의 널문리 마을로 장소변경을 주장하였고 회담 재개가 다급해진 공산군 측이 개성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회담성사가 어려워 질것으로 예측하여 여기에 전격 동의함으로써 이곳이 새로운 회담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만큼 1951년 초가을에 있었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아군의 압박은 전사에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공산군 측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던 군사작전이었습니다.


[널문리의 임시 회담장, 이후 이곳이 판문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곳은 널문리 마을 초입에 있던 주막 앞은 사방이 탁 특인 평범한 콩밭이었는데 여기에 텐트를 치고 회담이 재개 되었습니다. 이곳은 단지 남북 간 군사 접촉선에서 평평하게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는 중간지점으로 어느 일방도 사전에 매복하고 있다가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기는 힘들다는 지리적인 이유만으로 선정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널문리의‘널’자를 교전당사국중의 하나였던 중국어로 표기할 수 없어 이를 의역하여‘널문리 주막’의 한자어 표기인 ‘판문점(板門店)’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세계적으로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유명한 지명이 되었고 아쉽게도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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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 [ 3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6.30 09:07


 

  종종 11월이면 평안남도 양덕군에 있는 중공군 묘지를 백발의 중국여인이 찾아오고는 하는데, 이 여인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정권에서 직접 안내하며 예를 갖추기 바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유송림(劉松林) 또는 유사제(劉思齊)라고도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첫째 며느리입니다.  비록 현재 중국정부의 요직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북한에서 이 여인에 대해 신경을 써야할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남편의 묘소를 참배하는 유송림]


  왜냐하면 유송림의 남편인 마오안닝(毛岸榮)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여 그곳에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정권을 획득하고 죽을 때까지 철권 통치자로 중국을 지배하였던 마오쩌둥의 첫째 아들은 사실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부자료에는 자원해서 참전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지시로 그는 전쟁터로 나갔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마오안닝의 묘]


   우리입장에서야 10월 25일 등장한 중공군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중공군의 참전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만약을 대비하여 18개 사단으로 구성된 25만의 동북 변방군을 만주일대에 배치해 두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중순이후 전세가 역전되자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6·25전쟁에 개입할 것을 공공연히 천명하고는 하였습니다.


[중공군의 참전 이면에는 커다란 갈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를 평가절하 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대일본 전쟁 및 국공내전을 간신히 끝내고 국가를 건국한지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신생국이었으며 오히려 대만문제, 만주문제, 티베트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중국이 6·25전쟁보다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있던 난제들이었습니다.


[중국은 신생국이어서 국내에 산적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바로 이때 스탈린이 참전을 권유하는 전문을 보내왔는데, 마오쩌둥은 이를 소련의 적극 개입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마오는 중국이 한반도의 전쟁에 개입하면 스탈린이 적어도 공군을 참전하여 줄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월 12일, 소련의 지원이 불가함을 통보 받은 마오는 만주에서 출병 준비를 하고 있던 펑떠화이(彭德懷)를 소환해 참전 여부를 재검토하였습니다.


[결국 마오쩌둥의 결단으로 참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린바오(林彪)나 까오강(高岡) 등 권력 실세 대부분이 파병유보를 주장했을 정도였고 상황도 불리하게 돌아가자 마오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대국과 국경을 마주할 수 없다는 고래의 원칙에 따라 파병을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은 마오의 전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마오쩌둥은 소련의 지원을 얻어내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자 그의 장남을 참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마오쩌둥과 마오안잉]


  마오안잉은 그의 어머니인 양카이훼이(楊開慧)가 국공내전 동안 국민당군에게 피살당한 후 겨우 목숨을 건져 세상을 전전하다가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중국으로 돌아와 1949년 유송림과 결혼하였는데, 불과 1년도 못되어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아버지의 명에 따라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오안잉은 펑더화이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참전하여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갔습니다.


[마오안잉과 유송림]


  하지만 마오쩌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껄끄러웠던지 펑떠화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교들은 그의 참전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전선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였던 마오안잉의 요구와 달리 후방의 사령부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사령부가 미 공군의 맹폭을 받아 11월 25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마오쩌둥은 대의를 위해 유송림의 소원을 거절하였습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마오쩌둥은 잠시 눈시울을 붉혔지만 "전쟁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고 간단히 말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유송림은 눈물로 남편의 시신만이라도 중국으로 가져 올 것을 마오쩌둥에게 부탁하였지만 해외 파병 중 전사한 중국군은 현지에 묻힌다는 전통을 깰 수 없고 수많은 중공군 전사자들과 형평이 마지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유송림이 북한에 있는 마오안잉의 묘소를 찾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아쉽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찾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 유엔군 최고지휘부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의 아들들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그 역할을 다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피아를 떠나 자국의 국민들에게 지도층으로 모범이 되어줄 만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6·25전쟁사에는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있는데,  막상 이와 관련한 우리의 이야기는 찾기가 몹시 힘듭니다.


  물론 당시 국군 최고지도부의 대부분이 불과 30대에 불과할 정도여서 이런 경우는 구조적으로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을 포함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빛을 발한 예보다 국민방위군 사건처럼 경악할 만한 권력층 비리를 찾기 쉽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6·25전쟁에 참전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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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중공군의 준비되었던 참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5.07 08:20

 

  중공군의 참전은 아군에게 너무나 갑작스런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미 중국은 1950년 7월부터 8월 중순사이에 18개 사단 25만 여명으로 구성된 동북변방군(東北邊方軍)을 편성해 만주일대에 배치해 두었는데, 그 때는 북한군이 가장 극성기에 있던 시기였습니다. 다만 이때는 중국의 보편적인 정책인 “적대국가와 국경을 같이하지 않는다”라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사상에 따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조치였습니다.


[중국의 참전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마오쩌둥]


  그런데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북한군이 서울에서 철수한 9월 29일, 김일성과 박헌영의 공동명의의 스탈린에게 긴급지원을 요청했을 만큼 상황이 돌변하고 아군의 38선 돌파가 점차 가시화되자 중국의 생각도 복잡 미묘해 졌습니다. 일단 9월 30일, 중국 수상 저우언라이는 국경절 연설에서 중국 가까이에 적대세력이 근접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나 6·25전쟁을 구체적으로 직접 거론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10월 1일, 박헌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대표단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소련군의 직접 참전이 곤란하다고 판단한 스탈린이 주중 소련 대사를 통해 마오쩌둥에게 파병을 요청하자 중국의 태도도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즉시 정치국 상임위원 회의를 소집해 파병문제를 토의에 붙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10월 3일, 주중 인도 대사를 통하여 “미군이 38선을 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보다 직설적인 의사를 표현하면서 군사개입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천명하였습니다.


[중공군 사령관 펑떠화이와 김일성]


  10월 8일, 갑론을박의 격론 끝에 마침내 마오의 결단으로 파병이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마오는 압록강 북쪽에 배치해둔 동북변방군을 중국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으로 개칭하여 펑떠화이(彭德懷)를 사령관으로 임명한 후, 10월 15일 압록강 건너 입북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은 유엔군의 공식 북진 개시일보다 하루 앞선 결정이었을 만큼 즉각적인 조치였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은 기회가 되면 한반도에 즉시 개입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와 다름없었습니다.


  사실 마오도 미국을 두려워하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빨리 참전을 결심하였던 것은 소련 공군의 참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10월 10일, 마오는 비밀리에 대표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1개 사단 규모의 공군지원을 요청했으나 스탈린은 소련공군의 직접 참전에 난색을 표명하고 대신 10개 사단 분량의 전쟁물자 지원만을 약속하여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마오는 만주에 출병해 있는 펑을 소환하여 참전 여부를 재검토했을 만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고 이것은 이후 중-소 이념갈등의 원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오는 소련공군의 지원여부에 관계없이 출병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게는 한반도의 의미가 소련에 비해 더욱 절실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중공군]


  드디어 10월 19일 야간, 선두부대로 선정 된 12개 사단이 접경지대에서 압록강을 도강하고, 10월 20일에는 지원군사령부가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大楡洞)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아군과 교전이 벌어진 10월 26일에 6개 사단으로 구성 된 제2진이 압록강을 도강함으로써, 불과 일주일 만에 총 18개 사단 26만 여명의 대부대의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들 중공군 부대는 황혼과 함께 이동을 개시하고, 날이 밝으면 은폐하여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유엔군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완벽에 가까운 놀라운 기습 전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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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중국이 참전하게 된 상황과 소련과의 관계 등을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려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2차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제 3차세계대전까지 발발한다면 인류멸망이란 시나리오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도 소련이 참전하는 것을 두려워 나중에 만주까지 진격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은 인해전술이 대표적 전술이기도 했지만, 기습작전이나 교란작전 등 전술전략에도 능한 군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은폐하여 휴식을 취하고 황혼과 함께 이동을 개시하여 완벽에 가까운 놀라운 기습전개를 하는 것에서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