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1]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19 08:33
  개전 초기 한국군을 공황상태로 몰아간 북한군의 T-34/85
  전차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군을 상대로 북한군 전차부대는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에게 있어 6월 25일은 치욕의 날이자 절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는 하루입니다.
  이 날 새벽 4시 30분을 기해 암호명 "폭풍"으로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 2개 군단의 일제 공격준비 포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운 보병들의 진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특히 오전에 개성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함락된 데 이어 포천마저 함락됨은 물론 밤 10시에 동두천까지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함락되면서 한국군 지휘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전차라는 무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한국군은 졸지에 T-34/85의 무한궤도에 참혹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참담했던 6월 25일이 지나고 26일 오전 1시가 됐을 때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야전 사령부에는 세 명의 '별'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로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 제2 보병사단 "노도부대" 사단장 이형근 준장, 그리고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이 그들이었죠. 
  한시가 급한 시각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전면적인 붕괴가 시작된 중서부 전선의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은 제2, 7 보병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7 보병사단은 1연대와 18연대를 병렬해 덕정에서 38도선 방면으로, 2 보병사단은 5연대로 축석령에서 포천을 향하여 26일 미명을 기해 역습하시오.” 

  무모하기 그지없는 반격작전을 지시한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
  이는 정말 정상적인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현 위치에서 방어전을 펴는 것이 아니라 적을 향해 역습을 가하라니!
  그야말로 화약을 안고 화로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죠.
  후에 육군본부 작전 명령 제91호로 공식 문서화된 반격작전의 개시 시간은 6월 26일 오전 8시로 최종 공격 목표는 급격하게 붕괴된 38도선의 회복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공격을 진행 중이라 적잖이 애를 먹고 있던 북한군에게 있어 한국군이 제 발로 진지에서 걸어나온다는 것은 행운 그 자체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한국군이 제대로 된 반격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전력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국군 제7 보병사단은 이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안 그래도 2개 보병연대만으로 격전을 치르는 통에 전력이 급격히 감소되었고 특히 제1 보병연대의 경우 동두천이 25일 밤 10시 무렵에 함락된 후 가까스로 수습된 잔여 병력으로 재편성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육군본부는 부랴부랴 수도경비사령부 예하였던  제18 보병연대( 현 제3 보병사단 예하 "백골부대" )를 제7 보병사단에 배속시켜 반격작전에 나서도록 지시했습니다.

  오늘날 동부전선의 제1 군 예하로 철통 철책경계에 임하고 있는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그러나 개전 초반 이렇다할 활약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실상 사단이 궤멸되고 마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7 보병사단 5 보병연대, 필자 제공 )
  하지만 의정부는 그나마 상태가 좀 나은 경우였습니다.
  리영호 소장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주력이 배치되어 있던 포천은 이미 전면적인 붕괴가 임박했는데 우선 제7 보병사단 9 보병연대가 사실상 와해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전선을 이탈, 25일 오전 11시를 기해 광릉 방면에서 간신히 잔여 전력을 추스려 후퇴를 하려던 찰나에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 변경되었던 제3 보병연대를 증원한 것이었죠.
   원래 제3 보병연대는 제7 보병사단 예하부대였다가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는데 다시 모 부대로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이후 제3 보병연대는 현재까지 제7 보병사단 예하 부대로 강원도 화천군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포천의 상황은 의정부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본부는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를 추가로 투입시켜 이형근 준장의 지휘 하에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하는 한편 반격에 나설 것을 지시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때 제7 보병사단에 증원된 3, 5 보병연대가 현재도 사단 예하 부대라는 것입니다.

  6월 25일 하루 동안 육군본부에서는 전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육군본부의 결정 및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을 수령한 양 사단장은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였는데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사단 예하 2개 보병연대가 궤멸 직전의 타격을 받은데다 원래 자신의 예하부대인 제3 보병연대를 돌려받는 것은 둘째로 치고 제2 보병사단 병력까지 증원된데다 개전 초반의 붕괴된 전선을 회복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5연대는 가용 병력이 겨우 2개 대대에 불과합니다. 2개 대대만으로 적 1개 사단에 역습을 감행한다니,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현재로서는 조금만 더 현 위치를 사수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16연대와 25연대가 도착할 것입니다. 이 부대들이 완전 배치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때 반격을 감행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전장에서 병력을 축차 투입시키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소이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전선에서의 반격이라는 것은 후방에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정설입니다.
  당시 육군본부의 결정은 전선에 크나큰 파국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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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7.19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퍼싱의 군사이야기를 연재 중인 만슈타인입니다.

    본 포스트는 연재물로서 총 3회 분량으로 계획되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라도 답변을 남겨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강효섭 2010.07.1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님, 언제나 멋진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

    개전 초반에 장군들끼리 저런 알력 다툼이 있었다니....

    적전에서 기막힌 추태 한 판 벌였네요 -_-;;

    • ╋만슈타인╋ 2010.07.20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이런 알력다툼 외에도 5.16 군사혁명과 12.12 군사반란이라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군님들의 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육군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김수민 2010.07.19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은 포천의 승진훈련장 같네요 ^^

  4. 조유진 2010.07.1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싱님, 글 잘보고 있는데요

    사진을 클릭해도 크게 보기가 안되네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5. opohobag 2010.07.20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병덕 의 색깔을 의심해 볼만합니다

    6.25 발반 전후해서 나온 여러가지 명령에 의혹이 가장 많습니다

    무능을 가장한 利敵명령...이랄까

  6.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무가내로 몸으로 막으라는 명령은 정말 충격적인 것 같네요

  7. 김창원 2010.10.02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군된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군의 수준이 보여준 한계였습니다

  8. 이소현 2010.11.09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초기 너무나도 혹독한 희생을 치른 장병들에게 묵념을

  9. 김종관 2010.11.09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속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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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잘못 투하한 조명탄에 노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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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에세이 ]《 대전 지구 전투 기념비 》( 2 )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6.20 11:04
  당시 북한군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소련군의 사진 자료로 대전 전투 당시 제3, 4 보병사단은 이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 제34 보병연대는 논산 가도 방면의 방어를 위해 L중대를 배치했지만 서구 가수원동 일대에는 겨우 1개 소대만 배치하는 실책을 범했습니다.
  결국 L중대의 1개 소대는 논산 가도를 따라 공격해 들어온 북한군 제4 보병사단 16 보병연대에게 가수원동을 내주고 퇴각해야 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곳 가수원동-관저동-성북동 축선은 오늘날 계룡대 및 계룡시-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당시 대전 전투에서 혹독한 희생을 치른 미 제24 보병사단 19 보병연대 장병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파치 공격헬리콥터라도 1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 있지만 아직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큰 차이가 없던 미군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취재 협조 : 미 육군 제2 보병사단 "인디언 헤드"·로드리게스 실 사격장, 필자 제공 )
  제24 보병사단 장병들은 연이은 북한군의 공세로 점차 수세에 몰렸고 결국 보문산 일대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시가지에는 T-34/85를 앞세운 북한군 제3, 4 보병사단이 들이닥치는 통에 공황상태가 벌어졌고  연대장 뷰챔프 대령은 막 공수된 3.5인치 바주카포를 이용해 전차 사냥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7월 20일, 대전은 북한군에게 함락되어 미 제24 보병사단은 세천 터널 일대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사전에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 제4 보병사단 18 보병연대의 매복에 걸려 참담한 손실을 입고 말았으며 이 과정에서 사단장 딘 소장이 행방불명됩니다.
  당시 전투로 폐허가 된 대전 우체국의 모습입니다.
  대전 전투는 미군에게 있어 너무나도 뼈아픈 패배였고 이 때의 전훈으로 오늘날 주한 미 제2 보병사단이 기갑부대의 기동에 유리한 서부전선에 배치돼 사전에 북한군 기갑부대의 돌파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대전 전투로 인해 부산에 상륙한 미 제1 기병사단은 신속하게 낙동강 방어선 일대로 전개하여 북한군의 남하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아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었죠 
  대전 전투 이후 미군은 지연전을 벌일 것 없이 한반도에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주요 장비와 물자들을 후방에 비축함은 물론 유사시 이들을 신속하게 차량과 철도를 이용해 전방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취재 협조 : 캠프 캐롤, 필자 제공 )
  또한 한국과 미군의 연합훈련도 강화했는데 그 일환이 바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입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3월, 부산의 해군 작전사령부에 입항하는 CVN-74 "존.C.스테니스"호와 지휘함인 블루 릿지의 모습입니다( 취재 협조 : 해군 작전사령부, 필자 제공 )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통해 굳건한 방어태세를 확립한 한·미 연합군은 유사시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은 물론 반격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숭고한 희생을 통해 시간을 벌어준 미 제24 보병사단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한국군은 휴전 이후 최후의 혈전이 벌어졌던 보문산에 2개의 전적비를 건립했습니다.
  이 전적비는 1959년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자유는 피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간 생활의 고귀한 상징이오, 평화는 자유를 살릴 수 있는 인류 공동의 신성한 이상이다. 이 자유와 평화를 획득, 수호하기 위하여 여기 국제연합의 거룩한 역사, 한 페이지가 이루어졌다. 단기 4283년 6월 25일 새벽 불법침략을 개시한 공산군은 일거에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침하였다. 세계 자유국가들은 총 궐기하여 이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미 제24 보병사단은 국제연합군의 최선봉으로 7월 5일, 오산에서 적과 처음으로 대전하였으나 과불적중으로 인하여 7월 17일 적은 대전을 포위 공격하게 되었다. 미 제24 보병사단은 20일 동안 결사적인 방어전을 감행하는 등 진두지휘에 나선 딘 소장이 불행히 실종되었었다. 이 처절무비한 악전고투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미 제24 보병사단의 영웅적인 혈투사를 영원히 빛내고 기리고자 이 작은 비를 세우노라. 단기 4292년 3월 31일, 육군 제1202 건설 공병단 세움"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전 지구 전적비는 바로 약간 더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보문산 야외 음악당 전면에 있습니다.
  당시 손수 3.5인치 바주카포를 짊어지고 T-34/85를 격파한 윌리엄.F.딘 소장을 중심으로 한 대전 지구 전적비의 위용은 참으로 듬직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전적비는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인 1981년 12월에 건립되었습니다.
  대전 전투를 통해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혹시 보문산에 놀러가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한번씩 방문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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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윤호 2010.06.20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 가수원 사진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제가 사는 아파트가 나오다니 ㄷㄷ

    예전에 증조할머니께서 가수원은 당시에 굉장히 미군들에게 중요했다고 하는 말을 오늘에서야 이해했습니다...

    • Koreanwar60 2010.06.21 0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송윤호님// 그러셨군요.

      직접 거주하시는 자택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 제34 보병연대가 가수원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겠지만 워낙 병력이 부족한데다 북한군의 포위, 우회, 침투 전술이 너무나도 주효했던 탓이 컸습니다.

  2. 김윤곤 2010.06.21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제 친구가 은아아파트 거주하는데... 가수원...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

  3. 박애경 2010.06.21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사진이 멋있는것같다 탱크도 멋있다 우리 나라가 많이 변한걸 알게되어서
    공부가되었다

  4. 박소영 2010.10.02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강 방어전 못잖게 대전에서도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었군요

    숭고한 미군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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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에세이 ]《 대전 지구 전투 기념비 》( 1 )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6.20 10:16
  아! 6.25를 방문해주시는 분들 중 혹시 대전광역시에 거주하시는 분들에게는 낯익은 기념비죠.
  바로 미 제24 보병사단의 대전 사수를 기리기 위해 보문산 야외 음악당 전면에 건립된 대전 지구 전적비입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 6.25의 두번째 포토 에세이는 북한군이 승승장구하던 시기 단신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대전광역시를 사수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미 제24 보병사단의 대전 지구 전적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대전 전투는 후방의 방어선 구축 및 증원병력이 충분히 전개할 수 있도록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켜야 했던 지연전 중 가장 혹심하고도 치열했던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미 제24 보병사단은 잔여 병력의 46%, 장비 및 차량 65%를 손실하는 참담한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사단장인 딘 소장이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전 전투의 결과로 미 제1 기병사단이 신속하게 한반도에 증원, 전개함은 물론 낙동강 방어선을 강화할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희생과 패배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대전 시가지 전경입니다. 개전 당시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이자 인구 13만명으로 남한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던 대전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주변이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제대로 방어선만 구축한다면 충분히 적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인만큼 이 곳을 장악한 세력은 반드시 중요한 군사 방위시설을 구축했습니다. 이를 대변해주듯 국가사적 제355호인 계족산성은 대덕구 장동에 위치한 해발 423m의 계족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습니다.
  미 제24 보병사단이 최후의 저항을 펼친 보문산 역시 보문산성이 축성되어 그 전략적 가치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이렇다 할 높은 건물 한 채 없던 농경지대 및 소부락들은 이제 고층 빌딩이 들어선 시가지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전 전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미 제24 보병사단은 개전과 동시에 신속하게 투입시켰던 미 제21 보병연대의 스미스 전투단( Kampfgruppe "Smith", Task Force "Smith )이 오산에서 북한군 제4 보병사단 및 제105 전차여단 107 전차연대에게 와해되자 잔여병력을 추스려 예하의 제34 보병연대와 함께 천안 방어전에 투입했다가 또다시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단장 윌리엄.F.딘 소장은 공주를 중심으로 금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당시 공주는 약63년간 백제의 도읍 역할을 수행할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는데 이를 입증하듯 오늘날 당시 도성이었던 웅진성이 조선시대에 대대적인 개축을 거쳐 남아 있습니다. 
  웅진성 성벽에서 촬영한 금강의 모습
  척 보기에도 이 일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면 한동안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은 7월 14~17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비밀리에 금강를 도하해 후방을 차단하는 등 정면 공격과 후방 차단 및 포위를 병행하면서 대평리 일대의 방어선을 돌파했고 결국 금강 사수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금강 방어선의 돌파는 곧 T-34/85를 장비한 제107, 203 전차연대가 대전으로 진출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미 제24 보병사단이 보유한 M24 "채피" 경전차는 공격력과 방어력에서 T-34/85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딘 소장은 어쩔 수 없이 영동에 배치되어 있던 제19 보병연대 2대대를 신속하게 대전으로 복귀시키는 한편 제34 보병연대는 논산 방면에서 몰려올 북한군 제4 보병사단을 저지하도록 합니다.
  한편 천안 전투에서 전사한 마틴 대령의 후임으로 제34 보병연대장에 부임한 뷰챔프 대령은 대전 비행장에 연대 본부를 설치한 다음 예하의 제1, 3대대를 갑천변과 대전 비행장 동쪽의 구릉지대에 각각 배치했습니다.
  1950년 7월 19일 오전 7시 20분을 기해, 북한군 제4 보병사단 5 보병연대가 유성에서, 제16 보병연대가 가수원동 일대로 공세를 감행하고 북한 공군이 대전 비행장을 공습하는 등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사진은 오늘날 충남대학교가 위치하는 등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유성 시가지로 이렇게 평온한 모습을 보면 도저히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으실 듯 합니다.
  뷰챔프 대령의 제34 보병연대 본부가 설치되었던 대전 비행장은 오늘날 대전광역시청이 들어서 있어 당시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면 관계 상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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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전 2010.06.22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안전투에서 연대장이전사하고
    와해된미24사단은 대전전투에서 딘,24사단장이북한군에
    포로가되고마는엉망이된전투

  2. 조유진 2010.07.19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장소는 완전 공공기관 아님 공원이 되어있네요

    전적지를 기념하지 못하고 개발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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