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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6 공비들 고사시킨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 2편 (8)
  2. 2010.01.05 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4)

공비들 고사시킨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6 08:23


 


처형을 앞둔 경찰관 살해 공비들 .
경찰을 죽이고 탈출을 시도해서 전원 사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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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있기는 한 고역이었다.

참기가 어려워 뒤척이는 순간 누가 신호를 보냈다.

“쉿!”

분명 적이 멀리서 흔적을 보였다.

공비들은 한 줄로 서서 달빛 속을 걸어왔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산들바람을 타고

먼저 대원들에게 도착했다.

대원들은 아연 긴장했다.


공비들이 마을 앞을 태연자약하게 통과해서 오는 것을 보니

과연 소문대로 대장 외팔이는 대담한
성격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공비들이 고추밭에 들어서자 마른 고춧대가 사각거리며

소음을 냈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짙어 지더니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리고 어둠 저편에서 공비들의 상반신부터 노출이

되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공비들이

잠복 지점으로 들어섰다.


20미터, 10미터, 5미터, 소총을 든 공비 선두 첨병이 

내 앞을 지나갔다. 등의 짐을 이기느라 고개를 앞으로

뺀 적들이 2,3미터 간격으로 우리 앞을 통과하고 있었다.


완전한 돌출 타겟이었다.

네 명이 나의 정면을 통과했던 순간이었다.

“ 쏴라!”


빠바바앙 -!

일제 사격에 돌출 사격은 무너져 내렸고

대원들은 스프링처럼 공비대열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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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았던 월남의 매복전에서도 일제 사격과 크레머를

터뜨려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도 이렇게 총검돌격을

하는 일은 없었는데 하여튼 이 시절 한국 전투경찰이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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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닥쳐야 할 육박전의 대상은 없었다.

기습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 두어 명이 노루처럼

이리저리 뛰어 달아나는 뒤에다 대고 대원들이 따라가며

총을 쏘았다.


미처 짐을 벗지 못한 적 한명은 총 개머리 판에

타격되어 생포됐으며 나머지는 총이나 약탈 짐을 지고

둑길 아래에 쳐 막혀 있었다.


생포 1명에[김경준, 선전책] 사살 5명의 전과였다.

일차 타격으로 부안 공비 9명중 6명을 섬멸 한 것이다.


생포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끌려오자 나는

신원확인 질문으로 시간을 끄는 사찰계장과 우두거니 서있는

경비계장을 제치고 이들을 직접 심문했다.

“ 제 2의 비상 집합 장소는 어디냐?”

“-----”
“제대로 말하면 살려 주겠다.그렇지 않으면--”

즉결 처분한다는 위협이었다.


“천연암 아래요.”

“제 3의 장소는?”
“그 너머 고지라우.”

“무장은 소총 몇 정이었나?“
”석 자루 뿐이었어유.“

소총이 3 정뿐이라면 달아난 적은 모두 비무장이라는

결론이다. 시체에서 거둔 총이 석 자루였다.


나는 경비계장에게 생포자를 재갈 물리고 앞세워

곧바로 제 2, 제 3의 비상 장소를 찾아가도록 시켰다.

대원 중 6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나와 사찰 계장은 공비 시체 검사를 맡았다.

내가 죽은 공비들 시체에 섞여있는 외팔이의 시체를 검사하고

있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던 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어! 이거 멀쩡하네!“

하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죽은 시체로 보였던 공비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놔라! 이 싸가지 없는 개들아!”


나는 달려가 보았다.

여자 공비였다.

허벅지에 중상을 입고 다량의 출혈을 한 것이

어둠 속에서도 확인 되었다.

그녀는 악을 쓰며 죽여주기를 원했다.

“언제 입산했나?”

“묻지 마라 이놈아 ! 나는 혁명 전사다 어서 죽이라 !”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싶었다.


그 녀는 결국 힘을 모아 “조선 의용군가”를 부르고

대원에게 처형당했다.


도주한 두 명의 공비는 제 2의 접선장소에서

체포가 되었지만 한 명은 끝내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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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공비중  한 명인 임한근은 김두운씨와

줄포 국민 학교 동창으로 밝혀져 그가 구해 내려고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친구는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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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공비들도 군경이나 그 가족들을 함부로 죽였지만

군경도 포로들을 가차없이 즉결처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붙잡힌 포로 세 명도 김두운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찮게 생각한 부안 경찰서 사찰 계장이
모두 사살해버렸다.

어두운 한국사의 한 시절이었다.

김두운 씨는 이 사건뒤에 생포한 공비는 처형이 아니라
반드시 설득하고 감화시켜 전향시키기로 맹세했다.



죽음이 일상화 되었던 6·25전쟁후 한국.
여순 사건때 반란군들이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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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터지고 김두운 씨는 동료들과 다급한

후퇴 길에 올랐다.

시골 고향에서는 형님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날 도주했던 공비가 따발총을 가진 무장병을 데리고

김두운 씨 가족을 몰살하러 왔다가 다행히 동구에서

형님을 만나 이미 김두운 가족이 좌익에게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혀를 차며 그대로 돌아갔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공산화 대박을 터뜨린 모택동의 신화를

재현할 꿈을 가지고 입산했던 수 천 명의 남한 공비들은

모두 섬멸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소위 유격활동을 할 구역이 너무 좁았고

주변도 인구 밀집지역으로 뻗어나갈 공간도 없었다.


두 번째로 북한과의 연계 실패다.

북한은 공비들이 다 섬멸되기는 손가락을 물고 구경만

했지 한 푼의 지원도 해주지 못했다.

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가 식량 확보의 실패다.

이것은 첫 번째의 실패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빨치산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식량을 공급해줄‘해방구'도 인구 밀집의 남한에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전투 경찰 경비아래 수확하는 농민들.
이 단계부터 경찰은 식량을 공동관리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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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공비들의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공동 추수를 독려하고 수확물은 지서에 공동으로 보관시켰다.

부락민들은 식구의 한 끼만 가져가서 밥을 해먹도록 했다.


쌀이 손에 안 들어오자 공비들은 식량을 찾으러 민가로 내려왔다.


경찰은 이들을 매복전술로 맞받아 쳤다.

식량이 이들 입으로 가져가기 직전 좌절시키는 작전이었다


마침 내가 찾아낸 더 큰 경찰 매복 전술의 성공적인 사례를 

조금 이른 시기의 것이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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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의 식량 사정은 더 나빠져서 대원들이 며칠씩 굶는 날이

  많았다. 1950년 4월 16일 도당 간부 몇 사람만 남겨놓고
  무장대원
40명 비무장 대원 20명, 모두 60명이 합쳐
  보급투쟁에 나섰다.


  구례 간전면 제기암 골에서 백운산 상봉은우회하여

  진상면 야지로 나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결사적인 시도였다.

 

  이틀간의 잠복 끝에 가까스로 식량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돌아오는
도중 고리봉[상봉]근처에서 앞질러 와서 매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퇴로를 차단당했다 .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쫓기며 귀환을 시도했으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찰의 추격으로 겨우 20명 정도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로서 전남 도당은 큰 타격을 입었고 식량을 비롯한
  제반 사정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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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은 시간이 지나고 경찰이 매복 토벌을 체계화 하자

식량 확보는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전쟁 후반은 공비들은 식량 확보에 모든 전력을 쏟는

기현상의 유격전이 벌어졌다


공비들에게 식량은 생명이었고 이의 확보가

바로 전쟁이자 전투였다


식량 약탈은 보급 투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계급투쟁이 공산주의자의 목표인데 남한의

공비들은 식량약탈 투쟁을 주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농민해방이니 부르조아지 타도니 남조선 혁명이니

하는 때깔 좋은 소리는 그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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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은 자주 저녁 식사시간에 동네를 급습했다.

식구들의 밥상을 통째로 빼앗아서 미친 듯이 쓸어 넘고도

부족해서 밥을 더 담은 밥그릇을 가지고 다니며 게걸스럽게

밥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었다니 공비들의 뱃속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항공 촬영한 호남 농촌지역
공비 아지트가 있는 산에는 식량이 없었다.
식량 공급처인 농촌지역의 확보 실패가 공비를
죽음의 보급투쟁으로 내몰았다.

공비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 농촌으로 오는 길에
경찰이 설치한 '매복'이라는 죽음의
덫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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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쌀 강탈해간다는데 좋아할 농민들이 없었다.

인심은 당장 돌아서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에 호의를 가지던 주민들도 한번 이라도

약탈을 당하면 당장 경찰 편으로 돌아섰다.


물고기인 공비들의 물이 되어줄 농민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경찰 토벌에 협조했다.


그러나 공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급투쟁은

더욱 먼 거리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들에게 등을 돌리는 주민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고 오고 가는 장거리에 여러 매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과거 빨치산 생활을 경험한 분에 의하면

공비들이 마치 침투 간첩이 하듯 식량 약탈의

루트를 개척해 놓으면 경찰들이 단 시간 내에 귀신 같이

파악해서 매복을 했다고 회고했다.

즉 자신들의 아지트는 수십겹의 경찰 매복의 그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보급투쟁은 목숨을 걸어야 했었다.
앉아 있어도 죽음이 있었고 서서 움직여도 죽음이 있었던
것이 공비들의 운명이었다.



희생당한 전투 경찰 박원기의 장례식.
그칠 수없는 어머니의 통곡이 너무 슬프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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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의 공비들은 모택동의 정강산이나 연안의 화려한

꿈 대신 거지와 도둑이 결합된 화적떼로 퇴화하여 볼품없는
소멸의
길을 갔다.


식량 부족이 공비들을 말려 죽인 것이다.

공비들을 말려 죽였다고 할만한 매복전술은

한국의 전투경찰들이 몸으로 부딪히고 희생하면서 터득한 것이다.


한국 전투 경찰의 매복전술은 육군 대부분의

전술 교리가 미국 FM에서 가져온 것에 비하면 토종

한국형 전술이다.


나의 좁은 지식에 나중에 채 명신 장군이 월남에서 사용했던

중대기지 전술과 중공군 인해전술에 수류탄 대량 투척으로 맞섰던

고지 방어 전술 외에 이에 비견할 특별하게 폭 넓게 적용된

한국형 유명 토종 전술은 생각나지가 않는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의 환경을 맞추어서 자생적으로 창안되고

개발된 전술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중국 모택동의 유격 전술이나 이스라엘 군대가 개발하고

활용해온 이스라엘 식 전격전 전략은 이 말을 증명해준다.


나는 20년 전 남아공의 특수 부대가 사막거주 부쉬만 종족들의

비법인 동물이나 사람 발자국 추격 술을 세세하게 캐묻고
연구하고 체계화해서 특수부대 교육용 매뉴얼로 만든 것을
보고 감탄한바 있었다.

특수부대는 이 교범으로 부대원를 훈련시켜 반도들의
추적 작전에
활용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6·25전쟁 이나 월남전중 선배들이

몸으로 희생하며 터득하고 개발한 전훈을 교리로서

정리하는 측면이 매우 부족했다.


6·25전쟁 후 전투경찰의 매복 전술의 세련도는 분명 육군의

그것보다 한 수 앞선 것이었다.


한국 전투경찰의 매복전술이 정리되고 교범으로 정리되어
후배들에게 전달이 되었더라면
월남전등에서나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고 한국의
전투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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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이아빠 2010.07.06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두운서장 노년 모습입니다.. http://www.wonbuddhism.or.kr/wonnews/interview/i1108.html

  2. 냥햏 2010.07.0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ㄱ-; 안그래도 소통이 잘 안된다는 평을 듣는것 같은데 .. 뎃글마저도 '승인'이 필요한건가요? 가끔 와서 좋은글 읽고 갑니다만 .. 운영 방식이 너무 구시대적인 것 같아 안타깝네요.

  3. Gray 2010.07.11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읽고 갑니다.

  4. 요츠 2011.05.23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뜨질 않네요..
    사진을 보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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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톡!톡! 자료실/자료 톡!톡! 2010.01.05 20:32


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9.16       미 제8군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총반격 개시.

9.18       김포비행장 탈환.  
김일성, 단계적 철수 하달.

9.19       서울 탈환 작전.  
필리핀 지상군 도착.

9.21       소련 외상 비신스키, 유엔총회에서 평화선언 제안.

9.23       육군본부 대구로 이동.  
스웨덴 병원선 도착.

9.26       미 제25사단의 777특수임무부대 오산에서 인천상륙작전부대 미 제7사단
             제31연대와 연결.

9.27       미 합참, 맥아더에게 '9·27 훈령' 전달.

9.28       서울 수복.  미 제24사단, 대전 탈환.  호주 지상군 도착.
            이승만 대통령, 38선 이북 진격 명령.



9.29       중앙청에서 서울탈환식 거행.
             미국, 유엔군의 북진계획 승인.

9.30       미 제25사단, 군산 탈환.  
원주·주문진 탈환.

10.1       맥아더, 방송으로 김일성에 항복 권유.  
             제3사단 및 수도사단, 동해안 지구에서 38선 돌파.
             김일성, 모택동에게 파병 요청.

10.2       유엔군사령부 북진명령 하달.  일성, 북한군에 저항명령 하달.
             소련 외상 비신스키, 한국 휴전안 유엔에 제의.

10.3       주은래, 중공군 개입 경고.

10.6       국군 제2군단, 중부전선에서 북진 개시.

10.7       유엔총회, 통한결의안 가결, 유엔군의 북한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회
             (UNCURK) 설치안 결의.
             신유엔한위(호주, 칠레, 네덜란드, 필리핀, 타이, 파키스탄, 터키 등 
             7개국) 구성.

10.8       유엔총회, 유엔군의 북진 지지.
             모택동, 동북 변방군을 중공 인민지원군으로 개편, 출동 준비명령 하달.
             중공, 북한과 소련에 인민지원군 편성 및 파견 통보.

10.9       미 제1기병사단 개성부근에서 38도선 돌파, 북진개시.
             유엔군총사6령관, 북한군에게 즉각 항복요구.

10.10      국군 제1군단, 원산 탈환.
             중공외교부, 유엔군 38선 돌파에 군사개입도 불사하겠다고 항의.
             주은래, 스탈린을 방문해 군사원조와 공군지원 요청.

10.11      김일성 항복 거부. 최후항전 명령 하달.

10.13      중공 정치국, 소련 공군의 지원 없이도 참전을 결정.

10.14      모택동, 중공 인민지원군 10월 19일 참전 명령 하달.

10.16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원수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 불개입 장담.
             중공군 선발대 압록강 도하.  국군 제3군단 창설.
             이북지역에 비상계엄령 선포.

10.17      국군 제1군단, 함흥·흥남 탈환.
             터키 지상군 도착.

10.19      국군 평양 탈환.  
중공군 제13병단 약20만명이 압록강을 도하.

10.20      미 제187공정연대, 평양북방의 숙천·순천 공수 낙하.
             김일성·팽덕회 회담.

10.21      미 제1군단, 평양에 군정 실시.

10.24      맥아더, 모든 진격제한지시 철폐 전 예하부대 압록강으로 
총진군 명령.

10.25      중공군 제40군 120사단이 국군 제1사단과 운산-온정에서 조우.

10.26      국군 제6사단 7연대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초산에 도달.
             중공군 본대(제50군·제66군) 추가 압록강 도하 개시.
             국군 제2군단 중공군 대병력과 충돌.

10.27      미 제10군단 동해안으로 진군, 미 제1해병사단 원산상륙.

10.29      미 제7사단 이원 상륙.

10.30      이승만 대통령 평양시찰 및 평양탈환 시민환영대회.
             미 제1기병사단, 최초로 중공군과 조우.

10.31      국군, 선천·박천 탈환.
             선천 상공에 중공 미그(MIG) 15기 첫출현.

11.1       중공군의 1차공세 실시, 국군 제6사단에 섬멸적 타격.
             미 제10군단, 장진호 일대 진출.

11.2       유엔군,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
             미 전투기, 선천 상공에서 YAK기 및 미그기 21대 격추.

11.3       미 제8군, 청천강 방어선 전투.
             국군 제7사단, 비호산에서 중공군 1개 사단 격퇴.


11.4       중공 정부, 한국전 참전 발표.
             영국 제27여단, 박천에서 중공군 격퇴.

11.6       맥아더, 중공군 개입에 대한 비난 성명 발표.
             맥아더 압록강 철교 폭파 명령.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초산에서 개천으로 철수 완료.

11.7       캐나다·태국 지상군 도착.
             미 제8군 청천강 선으로 철수.

11.8       미 공군 B29 폭격기 편대, 신의주 부근 압록강교 최초로 폭격.
             신의주 상공서 미국 F86 전투기와 소련군 미그15 전투기가
             사상 처음으로 제트기 공중전.

11.9       수도사단, 인민군과 어랑천 전투 개시.

11.16      트루먼, 중공 영토 존중을 공약.

11.20      인도 야전병원 부대 도착.

11.21      미 제7사단 제17연대, 혜산진 도달.

11.22      이승만 대통령 함흥 시찰.

11.23      국무총리에 장면 임명.  네덜란드 지상군 도착.

11.24      맥아더 사령관, 전쟁종결을 위한 총공세(크리스마스 공세) 명령.

11.25      국군 수도사단은 청진, 제3사단은 백암 점령.
             중공군의 제2차 공세(11월 공세) 개시, 서부전선의 미 제8군을 공격.
             미 제8군, 청천강 철수 개시.  그리스 공군 참전.

11.26      미 제2사단, 구장동에서 중공군과 혼전.

11.27      국군 제2군단, 주저항선 붕괴.
             중공군 장진호의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공격.

11.28      유엔군사령부 긴급 작전회의 개최, 평양·함흥·원산 철수결정.
             터키여단, 참전 후 와원에서 중공군과 최초 전투.
             미 제2사단, 군우리 전투 개시.  맥아더 원수 ‘전혀 새로운 전쟁’ 선포.

11.29      국군 제3사단, 제26연대 혜산진 진출.  프랑스 지상군 도착.

11.30      트루먼, 한국전에 원폭사용 가능성 시사.

12.1        엔군사령부, 유엔군의 전면후퇴를 결정.
              미 제8군, 숙천·순천·성천 방어선 형성.

12.3        국군과 유엔군, 38선으로 철수작전 개시.

12.4        유엔군 평양 포기.

12.5        중공군 평양 진입.

12.6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방한, 한국전선 시찰.
              미 제1해병사단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철수작전 개시.

12.7        정부,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12.8        이승만대통령, 미국에 한국군 50만 병력 무장 요구.
              유엔군 원산서 철수 완료.

12.9        그리스 지상군 도착.

12.11      이승만대통령, 서울사수 언명.
              미 제1해병사단, 장진호 철수작전 완료.

12.14       유엔총회, 13개국 한국정전안 가결하고 정전3인위 설치안 채택.

12.15       미 제8군, 38선에 신방어선 구축 개시.
              미 제10군단 흥남 철수작전 전개.

12.16       미국, 對중공 전면 금수령 발표.

12.19       팽덕회, 신정공세 준비명령 하달.

12.21       국민방위군설치령 공포.

12.23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 의정부부근에서 차량사고로 순직.

12.24       북한군·중공군, 38선을 돌파.  정부, 수도권 일월에 피난령 포고.
               국군·유엔군 및 피난민 흥남에서 철수 완료.

12.25       국군 제3사단, 홍천부근에서 북한군과 공방전.

12.26       미 제8군사령관 후임에 릿지웨이 중장 부임.

12.27       미 제10군단을 미 제8군에 배속.

12.31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공세) 개시.
              맥아더, 합참에 對중공 확전 건의.
              뉴질랜드 지상군 도착.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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