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남은 이야기, 장진호 전투(3/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17 13:26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미 해병 1사단의 소식은 전 세계에 타전되어 자유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반면 중국 당국은 승리를 확신하며 전황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습니다. 사단장 스미스는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바꾸어 공격하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훈시를 내렸고, 12월 6일, 드디어 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병대원들은 탈출로를 막아대는 중공군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흥남을 향해 앞으로 나갔습니다.

[흥남항을 향해 탈출하는 미 해병 1사단]



 유담리와 하갈우리에서 실패를 맛본 중공군은 4개 사단을 황초령 일대에 추가 투입하였습니다. 중국은 미 해병 1사단을 완전히 섬멸할 경우, 미국인들이 입게 될 심리적 충격을 잘 알고 있어서 매체를 통해 연일 전황을 선전하였고, 미국 언론들도 그 과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인이 생중계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만큼 미 해병 1사단의 탈출극은 극적이었습니다.

 추위에 따른 비전투 손실이 많았던 만큼, 장진호전투의 환경은 미군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미군이 적보다 더 무서워한 혹한은 중공군에게도 지옥의 사신이었습니다.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을 원시적인 수단에만 의존하였던 중공군은 혹한의 산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고립되어 전투력을 상실하고는 하였습니다. 이것은 압도적 병력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도 미 해병 1사단을 격멸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 포로가 된 중공군]



 결론적으로 미 해병대의 의지는 중공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사투를 거듭하며 황초령을 넘어 12월 11일 흥남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전사 393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에 맞섰던 중공군 9병단의 피해는 전사자만도 25,000으로 추산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궤멸된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때문에 9병단은 전선에 투입되지 못하고 이후 4개월 동안 부대정비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항공철수를 거부한 해병대의 분투는 막대한 장비와 보급품의 유기를 막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물론 물자보다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만 적들이 유기된 장비를 이용한다면 결국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장진호전투가 가진 의의의 미미한 일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미 해병 1사단의 분투는 진격하여 있던 미 10군단, 국군 1군단 포함 여타부대들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주었습니다.

[역사적인 흥남철수도 장진호전투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으로 평가받는 10만의 피난민이 동반 철수에 성공한 흥남철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만일 중공군 9병단이 후방으로 완전히 빠져 재편을 필요로 할 정도로 타격을 입지 않고, 1.4후퇴를 불러온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즉시 참가하였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유가 장진호전투를 패배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온라인 사전 등에서는 후퇴한 것이니 전략적으로는 패배, 하지만 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혔으니 전술적으로는 승리라고도 표현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의견도 후퇴를 무조건 패배로 보는 고루한 사고 때문에 나온 해석입니다. 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안겨주었으므로 전술적 승리라는 정의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미 10군단을 포함한 사상 최대의 인도적 작전과 중공군 9병단의 전선이탈은 분명한 전략적 승리입니다. 

[전설의 당사자였던 Chosin Few]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진호전투가 어떤 면으로도 결코 패배로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Chosin Few로 통칭되는 참전용사들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는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 싫을 만큼 지옥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잊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전투이기 때문에 장진호전투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6ㆍ25전쟁 중 수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이처럼 장진호전투는 전설로 손꼽는데 결코 모자람이 없다 할 것입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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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cker un compte facebook 2013.05.16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세계인이 생중계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만큼 미 해병 1사단의 탈출극은 극적이었습니

  3. elektronik sigara 2013.05.16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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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eu sinh ly 2013.05.23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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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으로 이룬 반전, 인천상륙작전(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9.09 17:38

 3년간 계속된 6ㆍ25전쟁의 초반기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맥아더(Douglas MacArthur)입니다. 유엔의 권한을 위임받아 침략군을 저지하려 애썼던 그의 노고 덕분에 대한민국은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켰던 인천상륙작전은 그의 지략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념, 고집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작전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인천상륙작전 60주년 행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을 정도로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인천상륙작전을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 합참은 물론 맥아더의 직계와 다름없는 극동군 참모진조차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른 제한된 상륙시간,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너무 먼 거리, 상륙장비 및 병력의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는데, 이는 충분히 타당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계급이나 경력으로 맥아더의 생각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는 없었습니다.

 명령 계통상 미 군부의 최고 수장인 브래들리(Omar Bradley) 합참의장도 맥아더의 까마득한 후배였고, 전쟁 지휘에 바빠 본토에 갈 수 없다하자 투르먼(Harry S. Truman) 대통령이 전황보고를 받으러 웨이크(Wake) 섬까지 오도록 만들었을 만큼 맥아더는 거물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던 인물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집념을 보였기 때문에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반대한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본토에 갈 수 없다는 맥아더를 만나러 웨이크 섬에 도착한 투르먼.
1차대전 당시 맥아더가 장군이었을 때 투르먼은 예하 포대장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설에는 맥아더가 대통령에게도 권위적으로 대했다고 전합니다.


 맥아더는 전쟁발발 직후인 6월 29일 한강방어선 시찰 때부터 상륙작전을 생각하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인천을 상륙지점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북한군을 전면에서 막고 즉시 반격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보급로와 후방을 차단하여 북한군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대담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명령을 받은 미 극동사령부는 구체적 작전수립에 들어갔는데, 인천도 여러 후보지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북한군이 낙동강을 넘으려 최후의 공세를 감행하던 8월 29일에 있었던 김일성의 연설문에서 보듯이 북한군도 유엔군의 상륙작전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인천도 그들이 예상하였던 여러 지점 중 하나였습니다. 서울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인천을 피?아 모두 작전 예정지로 생각은 하였지만, 막상 맥아더를 제외한 아군 대부분이 반대한 이유처럼 북한 또한 같은 이유 때문에 특별히 방어망을 강화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에 청색해안으로 1955년 촬영된 썰물에 드러난 갯벌.
갯벌에 돈좌되는 것을 피하려면 밀물 때만 상륙이 가능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인천상륙작전의 반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와중에 맥아더는 최종 제시된 인천, 군산, 주문진 중 인천이 가장 효과적인 상륙지점이라 판단하여 최종 낙점하였고, 결국 뚝심대로 밀어붙여 작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러 극동군사령부를 방문한 콜린스(Joseph L. Collins) 미 육군 참모총장이 맥아더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오히려 설득되었던 것은 맥아더의 신념이 어느 정도로 강렬하였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맥아더의 생각대로 거대한 계획은 9월을 목표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맥아더는 분신이나 다름없던 미 극동군사령부를 기반으로 하여 재창설한 미 10군단을 인천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신임 군단장에 극동군사령부 참모장인 알몬드(Edward Almond)를 임명하였을 정도였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낸 후 즉시 원대 복귀하겠다는 맥아더의 자신감이기도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일본 항구에서 배에 오르는 미 해병 1사단대원들


 그런데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그 순간까지도 미 10군단은 편성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통상적인 삼각 편제가 아닌 미 해병 1사단과 미 7사단의 2개 부대만으로 군단이 시급히 조직되었지만, 이들 부대들도 1개 연대씩 감편된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군 해병 1연대가 미 해병 1사단에, 17연대가 미 7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분에 국군도 역사적인 작전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습니다. (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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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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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 전차대의 서울 관통 작전(3/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4.07 13:18

10월 1일 아침 6시 30분 해병들은 서울 동북 방면의 북한군을 격멸하고
적지를 수복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서울에서 16마일 떨어진 의정부의 탈환이었다.

작전 주역은 해병 노련한 리첸버그 대령이 지휘하는 해병 7연대였었다.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장진호 입구 수동전투, 장진호 유담리 전투 등
명 전투 지휘로 미 해병전사에 이름을 남겼다. 3성 장군으로 퇴역

7연대는 서쪽에서 서울 중심부를 공격했던 해병 두 개 연대 중

북쪽 지역 담당 부대로서 전면에 북한군이 비교적 저항이 심하지 않아
부대가 피해를 적게 입었던 부대였다.

7연대는 포병 1개 대대, 공병 1개 중대, 한국 해병 1개 중대,
그리고 레스터 체이스 대위의 D전차 중대가 증강된 막강한 공격력을 가졌다.

해병들은 미아리 고개를 넘어 북방으로 전진했다.
좌우 수락산과 도봉산사이의 넓은 전답지대를 뚫고 난 도로를 따라
의정부 방향으로 전진했다.

그들의 작전 임무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누원리 고개라는 곳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지선을 만났다.

도봉산 산자락에 누원리가 있다.
누원리는 지금의 도봉구 다락원 지역이다.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으나 당시 만해도 논과 낮은 언덕 사이로
시내가 흐르는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었다.

북한군은 좁은 고개 양쪽으로 뻗은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해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고갯길에는 밀집 매설한 지뢰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해병들은 이 고개 산악의 북한군을 포병 화력과 항공 지원으로 격멸했다.

누원리 저지선이 붕괴하자 더 이상 해병들의 전진을 방해할 부대는 없었다.

그 날 오후 다섯 시 해병 연대의 선두 부대는 의정부 읍에 진입했다.

의정부 읍에 진입하는 한국 해병대
미 해병사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작전에서 같이 싸운
한국 해병대가 군기가 강하고 용감했다고 호평하고 있다.

다음 날 적을 수색 소탕하고 10월 3일 부로 의정부 일대를 완전 장악하였다.

소탕 작전 중인 10월 2일 전차병들이 한국 참전중 경험했던
이색적인 일중에 한 일이 발생했다.

불도저가 장비된 M4 A3전차 포구로 소총탄 한 발이 날아들어 왔다.

포미의 폐쇄기가 열려있어 실탄은 포탑내 여기 저기 튕겨져서
전차병 두명이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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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안을 쏘는 대전차 전술은 공산군의 상투 수단으로
나중에 장진호 전투에서도 장전 된 포구 속으로 중공군이 쏜 실탄이 들어와
포탄과 포강사이에 쐐기처럼 박힌 일이 있었다.
전차병들은 포탄을 다시 꺼내는데 큰 애를 먹어야했다.
=================================================================================

한반도 최 북단까지 진격했던 전차.
육군 M4A3가 압록강변 혜산진에 들어서고 있다.
이 육군 전차는 76mm 포를 장비하고 있다.

같은 날 10월 1일 역시 서울 북서쪽으로 파견한 기동 부대는
북동쪽 의정부에 보낸 부대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부대였다.

5연대 3대대에 A중대 3소대 전차 1개 소대와 1개 소대의 공병 소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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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탈환 작전을 기록한 출판물은 북서쪽 수색-문산 방향으로 진격한
간략한 상황도를 그려 놓고 북서부 기동 부대의 최종 목표가
수유현(다른 책은 수유한)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수유현은 지금의 수유리 고개로서
북동쪽 의정부로 북상한 해병 7연대가 통과한 지역이다.

이런 곳에 다시 부대가 갈 이유가 없다.
지명에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하다.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궁금해서 계속 조사를 하다가 해병대의
서울 전투 지도를 발견했다

잘 보니 수유현은 파주 아래 금촌이 틀림없었다.
이곳이 왜 수유현이라 불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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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 진격 기동부대 전차 소대의 전차장이었던 스렛저 씨는
말년에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에게 측면 보호를 위한 측위는 없었습니다.
적의 매복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저 쾌속으로 달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부대는 그 날 달릴 만큼 달리며 멀리 전진했습니다.
저녁이 되고 행군 정지 명령이 하달되자
전차들은 진격로 좌측에 정지하고 야영에 들어갔지요.
보기 합동 기동대는 전방을 향하여 전면과
양 측면을 경계하는 반원형 형태의 방어선을 구축했어요.
방어 구역 전면의 약간 높은 언덕에 보병들이 자리 잡고
그 아래 도로변에는 전차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전차들도 방어선의 일부를 담당했던 것입니다.”

북한군 포로들의 후송

전차 전면에는 넓은 논 뜰이 있었다.
물은 다 말라있었지만 수로의 제방이 멀리 보였다.

새벽 한 시 반 무렵 스렛저의 불침번 차례가 되자
그는 포탑 안에서 나와 판초 우의로 몸을 두르고 하늘을 보며 전차 엔진 실위에 누웠다.
엔진실 위는 엔진의 열이 남아 따뜻했다.

“반쯤 조는 상태로 별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제길! 전차 앞에서 어떤 녀석이 내가 평생 들어 보지 못한 큰 고함 소리를 질렀습니다.
보병의 전초 같았어요.
동시에 조명탄이 오르면서 콩 볶는 듯한 총성이 사방에서 울렸습니다.
나는 판초우의를 젖히고 벌떡 일어나 전차 승무원 모두에게 승차하라고 외쳤습니다.
내 불도저 전차의 불도저 날을 올린 상태였는데
세실 병장이 이 도저 날 뒤에서 적들에게 톰슨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전차 안으로 들어와!”

치열한 사격전 중에 우리 전차 전방에서 한 북한군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에 펼쳐진 논 앞의 제방으로 도망갔다.

그는 조명탄을 뒤에 꽂고 있었다.
기관총 사격이 그를 덮쳤는데 그는 쓰러지고 조명탄이 폭발해서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다음날 아침 그는 전차 앞에 흩어진 4-60구의 북한군 유기 시체를 발견할 수 가 있었다.

다른 부대원 E.D. 다이알은 그날 야간에 벌어진 전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날 한 보병 장교가 전방 언덕에서 내려와서
간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다이알은 그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장교에게 북한군 시체를 가리키며
“네. 저것들이 그 무슨 일입죠” 라고 빈정댔다.

북한군의 야습이 있었지만 기동 부대는 다음날 다시 진격하여
목표로 했던 한 도시를 점령할 수가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 이곳은 금촌이었다.

스렛저는 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진 도중 한 동네에서 북한이 임명한 내무소 소장을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호송하기 위해서 전차 궤도를 덮은
펜더(포탑 좌우 측면 공간)위에 그를 태웠습니다.
그가 팬더 위에 오르려고 할 때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사정없이 발로 짓밟고 구타했습니다.”

그들을 겨우 뜯어 말리고 다시 전차 위에 탑승 시켜려고 했는데,
기자들과 사진사들이 달려왔다.

스렛저는 그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기자들은 그 장면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다시 두들기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난처했었는데
기회를 엿보던 촌민들이 다시 달려들어 그 내무 소장을 끌어내려 또 두들겨 팼다.

기자들과 사진사들이 원하던 장면이었다.
그들은 해병들이 또 뜯어 말리기 전에 마구 사진을 찍었다.
서울 북방의 동서 도시들을 장악한 해병들은 작전 성공으로
북으로 부터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실정이 되었다.

두 도시 점령후 해병 전차병들에게 서울시에 분산 배치되어 천막을 치는 등
한가로운 경계임무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10월 5일 전차 부대를 포함한 해병 사단에게
인천으로 모두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인천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사단 전체에 승선 명령이 떨어졌다.
원산 상륙 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원산 상륙작전은 한국군이 빠른 진격으로 점령했기 때문에 단행 되지 못했다.

장진호의 해병 전차대 M 26

해병 1사단은 후에 장진호로 전진해서 유명한 장진호 전투를 겪게 된다.

여기서도 해병 전차 부대는 중공군의 거대한 포위망을
미 해군과 육군 선두에서 뚫어 해병들의 탈출에 주인공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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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포탑 안에서 나와 판초 우의로 몸을 두르고 하늘을 보며 전차 엔진 실위에 누웠다.

  14. Raising money for charities 2013.09.16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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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uy followers 2013.09.18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원리 저지선이 붕괴하자 더 이상 해병들의 전진을 방해할 부대는 없었다.

  16. dr oz green coffee video 2013.09.22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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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thailand cosmetic surgery 2013.10.19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날 아침 그는 전차 앞에 흩어진 4-60구의 북한군 유기 시체를 발견할 수 가 있었다.

  19. Welcome to Got WPAC 2014.02.12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륙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하였고, 북한을 지원

  20. Hort Attorneys 2014.04.10 2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정부 일대를 완전부로 의정부 일대를 완전

  21. extended stay vancouver 2014.04.23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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