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선'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8.17 73. 피의 공세가 개시되다 (6)
  2. 2010.08.12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24)
  3. 2010.04.26 음~ 너무나 맛좋은 개고기... (92)

73. 피의 공세가 개시되다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7 08:13

 

  1951년 5월 16일 16시, 중공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개시되었고 엄청난 포탄이 국군 제7사단의 전방연대 진지에 작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숨 막히던 긴장감을 깨고 피로 얼룩진 중공군 제6차 공세가 드디어 개시된 것이었습니다. 제7사단은 예하 제8연대를 서측 전방에, 제5연대를 동측 전방에, 제3연대를 예비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전방의 연대들이 엄청난 포연 속에 파묻혀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군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소속이었지만 소양강 남단을 방어선으로 하여 군단의 가장 우측을 담당하면서 우측으로 국군 제3군단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개시되었습니다.]

(6·25전쟁 중 중공군이 사용한 야포 * 사진출처-LIFE)


  중공군의 포격으로 제7사단은 초전에 통신시설이 파괴됨과 동시에 후방의 포병대대가 상당한 피해를 입어 화력지원 체계가 마비되었습니다. 2시간의 포격이 그치고 서서히 포연이 걷혀가자 엄청난 중공군이 소양강을 도하하여 공격해왔습니다. 무시무시한 사전 포격에서 살아남은 제7사단 장병들이 최초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였으나 연이어 중공군의 제파공세가 이어지자 더 이상 방어진지를 사수하기 힘들었습니다.


  중공군은 제20군 예하의 3개 사단과 제27군 예하의 3개 사단 등 무려 6개 사단을 집중하면서 순식간 아군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제7사단 5연대는 진지 안으로 밀려들어온 중공군과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고 후방의 연대지휘소마저 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사단장은 현 진지를 고수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이미 제5연대는 분산되어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좌익을 담당하고 있던 제8연대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후퇴하는 아군과 진지를 돌파하여 앞으로 내달리는 중공군과 뒤섞일 정도로 전선의 상황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후방에서 예비로 있던 제3연대에게 철수하는 전방 연대를 엄호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지만, 병력 부족으로 인해서 주요고지 위주로 병력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비워버린 계곡사이로 중공군이 진출하여 제3연대마저 적중에 고립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처럼 국군 제7사단을 가르며 쾌속의 진격을 계속한 중공군 제12군 60사단 178연대 2대대 6중대가 5월 17일 07시 30분경에 후방의 오마치(오미재) 고개를 점령했습니다. 불과 12시간 만에 최초 진격선에서 직선거리로 30킬로미터를 주파한 것인데,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그것도 심야에 시간당 평균 2.5킬로미터 속도로 진출한 경이적인 전과였습니다.


[중공군의 산악돌파 능력은 경이적이었습니다.]


  오마치고개는 당시에 미 제10군단 관할 하에 있던 고개 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우측에 있던 국군 제3군단의 유일 후방통로였습니다. 무주공산이던 오마치고개가 이처럼 아침에 한개 중대에 의해서 순식간 점령당하였지만 후속하여 산길을 뛰어온 중공군이 시간대별로 증강되기 시작하더니 그날 밤 중공군 제60사단 전체가 고개 주변을 완전히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 역사상 국군 최대의 참패를 불러오는 무서운 전주곡이 되었습니다.


  오마치고개가 점령당하던 그날 오후에 후방의 침교 일대를 중공군 제81사단이 거의 동시에 점령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의 좌측은 적이 치기 시작한 2중의 포위망에 갇혀버렸습니다. 하지만 포위망을 완전히 공고화하려는 중공군의 공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 제12군이 가장 좌측의 국군 제5사단을 가르고 외곽지역을 크게 돌아 속사리로 돌파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중공군 제12군은 자은리 일대로 진격하여 내려왔는데,  정보 분석을 오판하여 국군 제5사단 담당지역이 아닌 보다 좌측인 미 제2사단 지역으로 출몰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외곽으로 돌아 3번째 포위망을 구축할 예정이던 중공군 제12군은 미 제2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진출이 저지되었습니다. 특히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미 제2사단 38연대는 중공군에게 포위되었지만 진내포격을 하는 초강수까지 두어가며 적의 진격을 물리치는 괴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것이 지평리전투와 더불어 미 제2사단사에 빛나는 승전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벙커힐전투입니다.


[벙커힐전투는 공산군 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로 인해 중공군은 처음에 계획한 3중 포위망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는데, 만일 미 제2사단 38연대의 놀라운 분전이 없었다면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현리전투결과를 추정하여 보았을 때 만일 공산군의 완전한 3중 포위망이 완성되었다면 6.25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전을 넘어 강원도 인제의 골짜기는 대학살극의 현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만큼 벙커힐전투의 의의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중공군 공세의 일부를 막아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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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육이오 2010.08.17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날때마다 읽어서 일주일거의다되가네요 정말 좋은글같습니다./..

  2. 한국전쟁 2010.08.20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거의 매일 들러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3. 오늘도 그대로 2010.08.25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주일째 기다리는데 다음편은 언제쯤 올라 올려나요...

  4. expedia vacation plans commercial airline 2012.05.2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한동안 주제의이 종류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 몇 시간을 포함한 몇 가지를 위해 공부하고 항상 매우 흥미로 사이트를 식별됩니다. 행복을 빌어요.

  5. learn to get airfare unit web page 2012.05.21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보통 우리를 도울 수있는 인터넷의 콘텐츠를 검색하는 느낌이다. 상당한는 귀중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6. national airline carriers consignments 2012.05.31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문제는 환상적입니다 지금 사람의 지각하더라도 이미 대해 조사되었다고 하나입니다. 이 정보를 표현 주셔서 감사합니다.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2 09:02

  6·25 전쟁은 역대의 그 어떤 전쟁 못잖게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대개 전쟁영웅들의 희비는 참으로 극과 극 그 자체인데 이 중에서도 뛰어난 전공에도 불구하고 가장 불운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 제8군사령관 월톤 워커 중장입니다.
  그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작전을 지도했음에도 중공군 개입 후 38선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트럭과 충돌하여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워커 중장은 군사령관으로서 숱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매튜 리지웨이·밴플리트 장군만큼 영예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워커 중장은 영광보다 오히려 불운·비극으로 점철되다시피한 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월톤 워커 중장은 여러분도 잘 아는 조지 스미스 패튼 대장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패튼 대장은 제3군 사령관 시절 특유의 쾌속 기동전을 통해 북프랑스와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맹장이었고 특히 과감무쌍한 기동작전을 선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특유의 과감한 고속 기동전을 통해 독일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3군 사령관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중장. 그의 과감한 지휘 기질은 부하였던 워커 중장이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러한 상관의 지휘를 받은 워커 중장은 곧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이동합니다.
  물론 전쟁 초반은 그에게 있어 비극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워커 중장이 한반도 전선의 지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받고 전황 파악을 위해 한국에 온 첫날인 1950년 7월 8일 미 제24 보병사단 예하 34 보병연대장 로버트 마틴 대령이 천안전투에서 북한군 T-34/85의 일격을 받아 전사함과 동시에 부대가 와해돼 천안이 함락되었고 7월 13일, 대구시에 미 제8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전선을 지도했지만 아직까지 전황은 북한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7월 20일에는 전략적 요충지인 대전이 함락됨은 물론 사단장 딘 소장까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미 제24 보병사단장 딘 소장과 워커 중장. 딘 소장은 최선을 다해 대전을 사수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던 북한군의 노련한 작전으로 결국 패전지장이 됨은 물론 주민의 밀고로 포로가 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함은 물론 새로운 세계의 맹주로서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군은 그 어떠한 전쟁에서도 당해보지 못했던 수모를 겪으며 패퇴를 거듭, 결국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에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이 때의 망신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던 맥아더 원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미 제8군 사령부를 전격 방문, 워커 중장에게 “됭케르크·바탄 같은 후퇴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오”라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도대체 본토의 증원군은 언제 오는 겁니까?" 좌측부터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콜린스 대장, 존 처치 준장. 워커 중장은 개전 초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충분치 못했던 취약점까지 극복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워커 중장에게는 예비 전력이 충분치 못해 보다 융통성있는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죠.
  특히 그를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전선에 투입된 미군이 대부분 축소 편제된 일본 주둔 부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단은 3개 보병연대로 편성되어 본토 주둔군과 편제상 차이는 없었지만 각 연대는 겨우 2개 대대만 완편되어 있어 사단 전투력은 사실상 2개 연대 수준이었고, 포병과 전차부대도 사정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오늘날의 주한 미군 제2 보병사단은 규모가 많이 감축되었어도 여전히 한국군 1개 사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군의 예상을 깬 북한군의 빠른 남진 속도는 워커 중장을 크게 당혹시켰습니다.
  결국 워커 중장은 독소전 당시 과감한 기동작전을 선보인 소련군에게 훈련받은 북한군의 위력에 경악하며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력들을 부산항에 상륙하는 즉시 바로 전선에 배치시키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죠.
  상황이 이러하니 효과적인 방어 진영 배치나 예비부대의 확보 따위는 한낯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워커 중장은 최악의 전장 환경에서 ‘가난하면서 자식 많은 흥부’가 한 끼 식사를 때워 나가듯 전선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미 제1 기병사단. 하지만 이들은 상륙과 동시에 곧바로 전선으로 이동해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7월 말부터 시작된 미 본토증원 병력으로 전선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 듯했지만 아직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부족했습니다.

  바로 북한군의 대대적인 정면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워커 중장은 즉각 미군 1개 보병연대를 차출해 전략 예비대로 북한군에게 돌파된 지역마다 마치 응급환자에게 긴급 수혈하듯 다부동과 영산돌출부와 같은 ‘전략적 공백지대’를 메워 나갔습니다. 
  여기에 한국군은 아직
 군단조차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뿐만 아니라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도를 수행하는 등 워커 중장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8군 사령관으로 모자라 한국군의 사단들까지 지휘해야 하니 자연스레 지휘부담도 커지게 되었고 1944년 유럽전선에서 패튼 중장의 휘하로 용맹을 떨쳤던 워커 중장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촉박한 한반도에서 졸지에 '우리에 갇힌 맹수'꼴이 되며 지쳐갔습니다.
  캠프 케이시에서 담소 중인 미 제2 보병사단장 마이클.S.터커 소장과 한국군 제5 기갑여단장 나상웅 준장. 오늘날 한국군은 야전군과 군단, 독립 기갑여단 등을 갖춘 체계화된 군대로 거듭났지만 6·25 초반에는 그야말로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군단급 작전은 미군의 지휘를 받아가며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미군의 고초가 컸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버티며 지탱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마침내 총반격작전이 감행되자 워커 중장은 오랜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닥칠 영광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지만 작전의 하이라이트인 서울 점령의 영광은 제10 군단장 알몬드 소장에게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고초를 겪어가며 전선을 유지하고 총반격작전까지 성공시킨 대가는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전선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광범위해진 전선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알몬드 소장과 지휘권을 나누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명분은 좋았지만 아무런 영광도 누리지 못한 워커 중장에게 ‘치욕'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나마 북진작전에서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평양 점령으로 겨우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곧이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전면적인 개입은 악운이자 비극의 서곡으로 작용했습니다.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은 경무장한 보병이 주력이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의 작전에 말려들어 문자 그대로 판돈을 완전히 날려버렸고 이는 오늘날까지 '인디언 헤드'의 치욕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유명한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 "인디언 헤드"가 궤멸적 타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군 제2 군단이 완전히 박살나 미8군 상황판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개전 이래 당해왔던 패배 중 이렇게 참담한 경우가 또 없었습니다. 
  특히 최대의 전리품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던 평양을 포기하고 38선 이남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며 워커 중장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까지 치욕적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워커 중장의 불운과 비극으로 점철된 뫼비우스의 띠는 1950년 12월 23일, 한국군 트럭과의 충돌 사고로 종결됐습니다. 
  평소 자동차 스피드광( 狂, Mania )이었던 워커 중장은 의정부 북쪽 덕정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사망한 것이죠.  미국 정부는 워커의 중장 전공을 기려 대장으로 특진시켰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이런 조치는 이미 한 발 늦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워커 대장의 묘지
  하지만 워커 대장의 생전 활약으로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는 더욱 굳건하게 다져진 만큼 우리는 그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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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ogo Design Contest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상웅 여단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3사 16기로 임관해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렇게 여단장까지 진급하신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3. Write My Essay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사가 그런 것이죠. 전쟁영웅은 대단히 허망한 법입니다

  4. chat 2011.10.30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どのような有用な記事は本当に再びこの時間と時間に戻って来るということだ。おかげで..

  5. Memphis Jobs 2011.11.0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6. web hosting mexico 2012.04.11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올려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답을 안주셨잖아요 ㅠ
    발간 추카드려요~ 일빠로 사볼께요 ㅋㅋ

  7. trina solar 2012.04.25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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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psychics 2013.04.02 0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지식은 분명하다. 난이 기사를 읽고 좋아, 난 당신이 업데이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와 함께 공유 할 감사

  17. Chatrandom 2013.05.0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 전쟁은 역대의 그 어떤 전쟁 못잖게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18. Social Bookmarking 2013.05.14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사 16기로 임관해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렇게 여단장까지 진급하신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19. Rapid Writers 2013.06.26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기사는 여기 잘하면 내가 그것으로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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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기동전을 통해 북프랑스와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맹장이었고 특히 과감무쌍한 기동작전을 선호했습니다.

음~ 너무나 맛좋은 개고기...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26 08:50


 

  38선 돌파 후 무제한의 쾌속 북진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에 대해서 두고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도 분단된 우리나라의 지도를 볼 때마다 만일 당시의 전쟁 지휘부가 북진속도를 늦추더라도 ‘역습에 대비한 방어선을 구축한 후 진격하였으면 과연 어떠하였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아쉬움이 많았던 북진은 결국 흥남철수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각개 부대 간 경쟁을 유도 할 정도의 쾌속진군이 전선의 단절을 불러와 중공군의 내습에 꼼작 없이 당했다’는 지난 역사의 결과를 알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그 시점에서 본다면 정답은 없을 겁니다. 어쨌든 인천상륙작전 성공이후 낙동강 교두보를 박차고 나온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어 이를 소개합니다.


[1950년 가을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북으로 달려갔던 시기입니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여 평양을 선점하기 위한 무제한의 레이스에 돌입한 부대가 국군 제1사단, 제7사단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여하한 일이 있어도 평양의 수복만은 우리의 손으로 먼저 이루라’는 신신당부를 국군지휘부에게 내렸을 만큼 그 북진속도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평양 선점을 향한 부대 간 경쟁은 대단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제한의 북진은 가뜩이나 열악한 당시 도로사정과 더불어 당연히 후속한 보급과 군수지원의 문제를 야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군수지원의 문제는 비단 국군뿐만 아니라 최전선까지 코카콜라가 공급 된다는 미군 또한 심각하게 겪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지형적인 제한 등으로 보급에 애를 먹었습니다]


  다음은 미 제1기병사단 5기병연대 I중대 소속으로 북진에 참여하였던 카디널(James Cardinal) 일병의 이야기입니다. 


  평양근처에 이르러 식량과 담배부족으로 고생을 했다. 이때쯤 우리들은 하루에 통조림 고기 한 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주로 영화에서 군인들은 여자얘기나 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식욕은 모든 욕구 중 최고 입니다]


  오로지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하였으며 밤에는 먹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 (중략) ... 또 하나의 문제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동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내용만 보면 스탈린그라드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던 독일 제6군이 오버랩됩니다)


[야전에서 제때에 식사를 하는 것도 복입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선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우리 소대에는 한국인들이 6명(이른바 KATUSA입니다) 있었는데 ... (중략) ... 어느 날 나는 한국인에게 먹을 것을 좀 구해오라고 부탁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닭이나 송아지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닭이나 송아지를 상상했는데 나타난 놈은 ?]


  3시간 후 한국인 병사가 돌아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바짝 마른 잡종개 한 마리였다. 그러자 부대 안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은 환호 하였고 즉시 잡종개를 요리하기 시작하였다. 요리가 끝나자 한국인들이 나를 식사에 초대하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들의 식사초대를 거절했다.


[보신탕 시식회에 참석한 외국인들]


  그러나 그로부터 3주일 후 허기와 싸우다 지친 내가 한국인들 보다 맛있게 개고기를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쟁 기간 중 어떤 요리도 그때 먹었던 개고기보다 맛있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고유한 식습관은 문화의 우월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사실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고유한 식습관은 문화의 우월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신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편협한 이유만으로 우리를 야만시하는 외국의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극한상황(?)에 있던 카디널 일병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편견을 깨는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 : ‘ 한국전쟁 : 부산에서 초산까지 ’에 수록된 참전 미군들의 회고담 중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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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머쉰 2010.08.21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아?
    문맥을 이해 못하시는건지 , 아니면 일부러 곡해하고 싶으신건지?
    그 행태 = 갑을병의 왈가왈부가 아니라
    그 행태 = 갑을병정 십간이, 아니 수백간이 돌아가며 여기서 한번 저기서 한번 끈질기게 강요하는 행태

    개인적인 자리에서 개고기 찬반 관련 토론이 벌어지는건 뭐 그들 자유겠습니다만
    세명 이상? 세번 이상? 하하 이거;;




    정도의 예를 들어 비교한 후


    그 정 도 수 준 에 서 만 족 못 하 시 겠 습 니 까?


    라고 말했습니다만.
    개보호론자 혹은 해당 이념을 지닌 누리꾼과 인권,환경보호론자 혹은 해당 이념을 지닌 누리꾼의 차이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이 개고기 찬반문제의 범주에서 절대로 절대로 벗어나지 않았다고 몇번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듣고싶지 않은 내용은 자꾸 논제에서 벗어났다고 하시는데
    개고기반대론자의 대부분이 지금 이와같은 행태를 하고 있으며 글쓰시는 흐흐님도 결국 마찬가지 격이니
    그건 곧 강요이고 누구든 이념을 강요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개고기 반대론자들의 근본적인 접근방법부터 잘못되었으며, 현재의 행태는 절대 자연적인 사회인식 작용이 아니니
    스스로 자중할 필요가 있고 결론은 상호존중 Let it be 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해 되십니까?

  3. 흐흐 2010.08.21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는 이 블로그에 개식용반대 댓글을 단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이로군요...?

  4. 머쉰 2010.08.21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보호운동은 상호 피해를 주지 않는 취향의 차이를 강요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충분히 도가 지나친 상황이므로
    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흐흐 2010.08.2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 개식용반대 댓글을 단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이로군요?

  6. 흐흐 2010.08.21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약시킨 답변이 아니라 비약시킨 머쉰님의 논리겠죠.
    문제삼는 대상과 반론의 근거를 저에서부터 특정 행동주의단체, 동물보호운동 전체에 걸쳐
    홍길동처럼 넘나드시는군요. 마치 프랙탈을 경험한 듯 짜릿했습니다.

    단순히 나와 다른의견을 가진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하시는 그 논점,
    잘 깨닫고 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면 병림픽이라 일컬을테고
    저나 머쉰님이나 똑같은 사람으로 보겠습니다만,
    나름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논의는 이만 줄이도록 하죠.


    결론은 제가 졌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려요.
    머쉰님 개고기 맛있게 드세요.


    모든 개식용찬성하시는 분들께 흑백논리를 추천해 드립니다.
    도를 넘어서는 비논리에 동물보호론자들이 치를 떨며 나가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7. 머쉰 2010.08.21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기 비논리적인지 모르겠군요.
    끝까지 흑백논리라고 고집하며 그걸 비논리라 하니
    자신이 여타 개보호론자와 다르다고 어떻게든 자위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같으니 문제이지요. 허허
    강요라는 공통점이 당신들을 하나로 묶는다고 했잖습니까.
    흑을 흑이라 불러야지 그럼 무어라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흑백논리 혹은 가상의 허점을 만들어 불리한 논점은 피하려는 자세
    훌륭했습니다. 특히 최근의 ' 그 행태' 관련에선
    비꼬는게 아니고
    정말로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
    하하 ;; 다시 웃습니다.
    그쪽 역시 단순히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먹는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 않습니까?

    용도는 다르지만 써놓고 보니 참 우습습니다.

  8. 머쉰 2010.08.21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네. 단순하게 비약시킨 답변이 듣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다시한번 답해드리죠.
    잘못입니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요?
    아고라 개고기 토론방이나, 개고기 찬반 이슈관련 스레드에서나 이런 댓글이 어울리는겁니다.
    무슨 네이버 다음 오늘의문학 이런 게시물에도 사람들이 많이 보겠다 싶으면 뜬금없이
    '개가 죽습니다.제 블로그의 도축영상을 보고가세요' 이런 댓글이라거나..
    보신탕 집에서 직원회식을 했다는 개인블로그에 무슨수로 찾아왔는지 악습이 어쩌고 분위기 망치고..
    6.25 회고록에 개고기를 먹은 미국인 이야기가 나오니 역시 악습에 식인에 서구가 말리니 맞춰주자는 둥 ..
    어이쿠 잘못이죠. 암요 잘못이고 말고요.

    잊지 마시죠. 당신도 '그들' 입니다.

  9. ㄹㄷㄴ 2011.05.11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왜 소나 돼지 그리고 닭 기타등등은 먹어도 되고 개는 안돼는 이유를 알 수 가 없죠.

    풀만 먹는 인간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를 하지 개빼고 다먹는 인간들이 개 먹지 말라고 하면

    어이가 없을뿐..

  10. 택군 2011.06.26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전쟁사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개판이 되었네요

  11. 머꼬이기 2011.09.03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 빠순이들이 이리 많을꼬...
    지네만 좋으면 그만인것을 머 남까지 끌어들이려 하남..

  12. 최승규 2011.10.03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지도 않는 이론 가지고 주입식 세뇌하려는 사람 많이 보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중 채식주의자가 얼마나 될지?
    돼지나 소는 가축이고 개는 동물이다?
    그러한 구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도 퍽이나 궁금하네요.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 하는것이지 종류별로 존중을 받고 안받고 해야하는것이던가요?
    태어나서 고기 맛있게 먹은 적 없는 사람과 채식주의자 이외에 사람들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말도 안되는 모순사이에서 돌고돌뿐으로 보이는...
    그 이전에 언쟁은 아무리 해도 끝날 수 없지요.
    개개인의 상대성을 존중하는게 어떨가 싶네요.
    개인의 이념을 주입식으로 세뇌시키려고들하지 마시고...

  13. 최승규 2011.10.03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아닌,
    개인적 견해이자 판단이지만 흑백논리는 흐흐님이 아니실지?
    애초부터 어떤 동물과 동물의 종류를 가지고 가축과 가족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14. 진짜 2011.10.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같은 소리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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