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용문산의 승전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10 08:41

  하지만 제2연대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사단 및 군단에서 지원된 5개 포병대대의 조명 및 화력지원 하에 중공군의 공격을 맨 앞에서부터 저지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압도적이었던 중공군 일부가 방어선을 돌파하고 제1, 2대대의 진지까지 접근하여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 용사들은 진지 안으로 들어온 중공군과 백병전을 펼쳐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분명히 이런 상황이면 국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았는데, 예측을 벗어난 제2연대의 이러한 용전분투는 중공군이 참전한 후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동쪽의 국군 제3군단은 현리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제 2연대의 용전분투는 중공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제2연대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저항을 계속하자, 중공군은 이곳을 국군 제6사단의 주저항선인 것으로 오판하였습니다. 중공군은 제6사단을 제거하기 위해 5월 19일 새벽부터는 제63군 주력 모두를 이곳에 투입하면서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도영 사단장이 원하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최대한 많은 적들을 끌어 모은 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키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선전을 펼친 제2연대가 좀 더 버텨주어야 했습니다.


  총공세를 감행한 중공군은 08시경 제1대대가 방어중인 559고지를 연대규모로 포위 공격하였으나, 제1대대는 근접항공지원 하에 고지를 고수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공중폭격이 종료되자 중공군 증원부대가 장락산맥 계곡으로 투입되어 제1대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일순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할 제1대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3시간동안 혈전을 펼치면서 5월 19일 15시경, 적의 포위망을 뚫고 연대본진이 있는 나산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동시에 울업산을 방어하던 제2대대는 중공군 제189사단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10배나 많은 적의 공격을 받은 제2대대는 19시경 근접항공지원의 엄호 하에 427고지로 철수를 단행했습니다. 이로써 제2연대의 방어정면은 353고지-나산을 연하는 선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전처럼 무질서한 후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방어 후 예정된 후방 방어진지로 이동한 성공적인 철수였습니다. 제2연대는 이곳에서 방어전을 계속 펼쳐내었고 더 큰 전투가 제2연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문사전투 상황도]


  국군 제6사단을 밀어붙였다고 오판한 중공군 제63군은 20시경 예하 3개 사단 모두를 투입하여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이때부터 제1대대는 나산에서, 제3대대는 353고지에서, 제2대대는 427고지에서 전면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조명탄을 밝힌 가운데 진내로 접근한 중공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했습니다. 제2연대는 지금까지 어떠한 유엔군 부대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방어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방어진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는 강력한 정신력으로 방어진지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엿보던 장도영 사단장은 현리의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한 미 제8군의 반격명령이 하달되자 용문산 일대의 주 저항선 좌우에 배치되어 있던 제19연대와 제7연대에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들 연대들은 5월 20일 05시에 진지를 박차고 나와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제2연대에 매몰되어 있던 중공군 제63군의 배후를 제19연대와 제7연대가 차단하자 순식간 중공군은 역 포위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유하거나 지원 가능한 모든 화력이 포위망 안에 갇혀 있는 중공군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으로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이었습니다.


  5월 21일 03시경 중공군은 서둘러 북한강 이북으로 철수를,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고 국군 제6사단의 무서운 추격이 개시되었습니다. 북으로 도망가던 중공군 제63군은 화천저수지에 퇴로가 막히게 되었고 이곳에서 국군 제6사단의 맹공을 받으면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국군 제6사단은 불과 한 달 전에 사창리에서 당한 수모를 몇 배 이상 중공군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용문산에서 화천호로 이어진 일련의 전투 결과 3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25,000여 중공군 제63군은 완전히 격멸되었고 이것은 6·25전쟁에서 국군 유엔군을 통틀어 사단급 부대가 단일 전투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공군은 화천호에서 녹아내렸고 이후 파로호로 명칭이 바뀝니다.]


  이 놀라운 승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화천호를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국군 제3군단이 해체될 만큼 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신뢰가 무너지던 바로 그 시점에서 터져 나온 극적인 역전타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국군을 쫓아다니던 중공군에 대한 콤플렉스를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중공군도 더 이상 국군을 얕잡아 보고 국군 방어지역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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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 2010.09.10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몇달째 너무도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2. 오늘도 2010.09.1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보고 감니다

  3. 비도승우 2010.09.22 0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민해방군 아닌 인민훼방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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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아수라와 같은 용맹으로 인해를 이루는 중공군을 격퇴한 국군 6사단의 이야기를 잘 봤습니다. 제 2연대가 잘버텨주어 중공군을 한 곳으로 최대한 끌어 모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킨 전략은 훌륭했습니다. 특히 버텨준 제 2연대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퇴로를 차단당해도 굴복하지 싸우다가 성공적으로 전략적 후퇴를 한 제 1대대 얘기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제 2연대가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가 싸운 모습에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선배 군인들의 용맹한 정신과 임전무퇴의 정신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25000여 중공군을 괴멸시켜 화천호가 파로호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6.25 전쟁의 용문산의 승전보는 보는 내내 참 기분좋았던 글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

  15. true religion jeans outlet 2012.11.2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73. 피의 공세가 개시되다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7 08:13

 

  1951년 5월 16일 16시, 중공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개시되었고 엄청난 포탄이 국군 제7사단의 전방연대 진지에 작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숨 막히던 긴장감을 깨고 피로 얼룩진 중공군 제6차 공세가 드디어 개시된 것이었습니다. 제7사단은 예하 제8연대를 서측 전방에, 제5연대를 동측 전방에, 제3연대를 예비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전방의 연대들이 엄청난 포연 속에 파묻혀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군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소속이었지만 소양강 남단을 방어선으로 하여 군단의 가장 우측을 담당하면서 우측으로 국군 제3군단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개시되었습니다.]

(6·25전쟁 중 중공군이 사용한 야포 * 사진출처-LIFE)


  중공군의 포격으로 제7사단은 초전에 통신시설이 파괴됨과 동시에 후방의 포병대대가 상당한 피해를 입어 화력지원 체계가 마비되었습니다. 2시간의 포격이 그치고 서서히 포연이 걷혀가자 엄청난 중공군이 소양강을 도하하여 공격해왔습니다. 무시무시한 사전 포격에서 살아남은 제7사단 장병들이 최초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였으나 연이어 중공군의 제파공세가 이어지자 더 이상 방어진지를 사수하기 힘들었습니다.


  중공군은 제20군 예하의 3개 사단과 제27군 예하의 3개 사단 등 무려 6개 사단을 집중하면서 순식간 아군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제7사단 5연대는 진지 안으로 밀려들어온 중공군과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고 후방의 연대지휘소마저 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사단장은 현 진지를 고수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이미 제5연대는 분산되어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좌익을 담당하고 있던 제8연대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후퇴하는 아군과 진지를 돌파하여 앞으로 내달리는 중공군과 뒤섞일 정도로 전선의 상황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후방에서 예비로 있던 제3연대에게 철수하는 전방 연대를 엄호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지만, 병력 부족으로 인해서 주요고지 위주로 병력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비워버린 계곡사이로 중공군이 진출하여 제3연대마저 적중에 고립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처럼 국군 제7사단을 가르며 쾌속의 진격을 계속한 중공군 제12군 60사단 178연대 2대대 6중대가 5월 17일 07시 30분경에 후방의 오마치(오미재) 고개를 점령했습니다. 불과 12시간 만에 최초 진격선에서 직선거리로 30킬로미터를 주파한 것인데,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그것도 심야에 시간당 평균 2.5킬로미터 속도로 진출한 경이적인 전과였습니다.


[중공군의 산악돌파 능력은 경이적이었습니다.]


  오마치고개는 당시에 미 제10군단 관할 하에 있던 고개 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우측에 있던 국군 제3군단의 유일 후방통로였습니다. 무주공산이던 오마치고개가 이처럼 아침에 한개 중대에 의해서 순식간 점령당하였지만 후속하여 산길을 뛰어온 중공군이 시간대별로 증강되기 시작하더니 그날 밤 중공군 제60사단 전체가 고개 주변을 완전히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 역사상 국군 최대의 참패를 불러오는 무서운 전주곡이 되었습니다.


  오마치고개가 점령당하던 그날 오후에 후방의 침교 일대를 중공군 제81사단이 거의 동시에 점령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의 좌측은 적이 치기 시작한 2중의 포위망에 갇혀버렸습니다. 하지만 포위망을 완전히 공고화하려는 중공군의 공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 제12군이 가장 좌측의 국군 제5사단을 가르고 외곽지역을 크게 돌아 속사리로 돌파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중공군 제12군은 자은리 일대로 진격하여 내려왔는데,  정보 분석을 오판하여 국군 제5사단 담당지역이 아닌 보다 좌측인 미 제2사단 지역으로 출몰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외곽으로 돌아 3번째 포위망을 구축할 예정이던 중공군 제12군은 미 제2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진출이 저지되었습니다. 특히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미 제2사단 38연대는 중공군에게 포위되었지만 진내포격을 하는 초강수까지 두어가며 적의 진격을 물리치는 괴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것이 지평리전투와 더불어 미 제2사단사에 빛나는 승전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벙커힐전투입니다.


[벙커힐전투는 공산군 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로 인해 중공군은 처음에 계획한 3중 포위망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는데, 만일 미 제2사단 38연대의 놀라운 분전이 없었다면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현리전투결과를 추정하여 보았을 때 만일 공산군의 완전한 3중 포위망이 완성되었다면 6.25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전을 넘어 강원도 인제의 골짜기는 대학살극의 현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만큼 벙커힐전투의 의의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중공군 공세의 일부를 막아내었을 뿐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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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육이오 2010.08.17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날때마다 읽어서 일주일거의다되가네요 정말 좋은글같습니다./..

  2. 한국전쟁 2010.08.20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거의 매일 들러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3. 오늘도 그대로 2010.08.25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주일째 기다리는데 다음편은 언제쯤 올라 올려나요...

  4. expedia vacation plans commercial airline 2012.05.2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한동안 주제의이 종류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 몇 시간을 포함한 몇 가지를 위해 공부하고 항상 매우 흥미로 사이트를 식별됩니다. 행복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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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과 같은조 그리스의 참전경위와 활동

생생! 6·25/6·25전쟁 지원국 2010.03.08 10:32

1. 참전경위
   그리스는 1950년 7월 중순 유엔사무총장이 군사지원을 요청하자 7월 20일 6대의 C-47 수송기와 3,800명으로 편성된 1개 보병여단의 파견을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보병부대의 파견은 미국 합참과의 협의과정에서 1개 대대 규모로 축소 조정되었고 먼저 10월 13일 C-47 수송기 6대와 병력 67명을 차출하여 제13수송편대를 창설하여 11월 1일 미 제5공군에 배속시켰습니다. 지상군은 11월 16일 아침 미국 수송선(General Han) 편으로 그리스를 출발하여 23일간의 긴 항해 끝에 12월 9일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2. 지상군의 활동
   미 제1기병사단에 배속된 대대는 1951년 2월 24일 이천으로 이동하여 이천-곤지암-경안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26일 소정리 부근에서 적의 기습공격을 받아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을 입어 첫번째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28일에는 381고지, 307고지, 258고지를 점령하였습니다.  제3중대는 29일 자정 무렵 중공군의 선제공격에 통신마저 두절되어 381고지에 완전 고립되었으나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하였고 이 전투에서 대대는 적 28명을 사살하였습니다.


  동두천에서 부대를 재정비한 대대는 10월 3일 코만도작전에 참가하여 철원 서쪽 선벽 부근의 313고지(Scotch)를 공격하였으나 중공군의 역공으로 참전 이후 하루 전투에서 가장 많은 14명이 전사하는 손실을 입으며 공격에 실패하였습니다.  5일 새벽부터 항공폭격과 각종 지원포격으로 313고지를 포격한 후 공격을 재개하여 313고지를 확보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적군 150여 명을 사살하고 부상자 12명을 생포하였으나 대대도 10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11월 28일 미 제1기병사단이 일본으로 떠나자 미 제3사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습니다.


  1952년 1월 19일 임진강 서쪽으로 이동하여 고잔리 일대에 재배치되었습니다. 3월 17일 켈리(Kelly)고지, 노리(Nori)고지, 베티(Betty)고지에서 중공군과 전초진지 쟁탈전을 펼쳐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한 후 기산리로 이동하여 4개월 여 동안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주력하였습니다. 특히 이 기간중에 제1중대는 5월 23일부터 40여일 동안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임무도 수행하였습니다.


   대대는 중공군이 추계공세를 개시하자 26일 아침에 대노리고지를 공격하기 위하여 임진강 동쪽 중산리에서 서쪽의 소노리고지로 이동하였고 28일 새벽 야포와 전차로 적의 방어거점인 고양대, 대노리고지와 그 북쪽 117고지를 집중적으로 포격한 후 제2중대 제1소대가 공격을 개시하여 대노리고지를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09:00경 적 2개 중대규모의 공격을 받아 고지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1953년 1월 29일 김화 서북쪽 하진리로 이동하여 주 저항선에 배치되었고 정찰대는 2월 9일 420고지에서 중공군 27명을 사살하고 3월 11일 438고지 북쪽에서 20여 명을 사살하였으며 이 작전에서 대대도 6명이 전사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휴전이 임박할 무렵인 5월 16일 강산리로 진출하여 중가산 일대의 주 저항선에 배치되었습니다. 중공군은 휴전선 확정에 영향을 미치는 420고지(Harry)를 수중에 넣기 위하여 6월 17일 자정 무렵 폭풍우가 몰아쳐 시야가 극히 제한된 틈을 타 공격을 개시하였고 대대는 이들을 맞아 5시간 동안 공방전을 벌여 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중공군이 7월 공세를 개시할 무렵 대대는 금성 남쪽 북정령 일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중공군은 7월 17일 15:00경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간공격을 개시하였고, 대대는 포병화력의 엄호 하에 2시간 30여 분동안 숨막히는 혈전을 벌여 이들을 격퇴하였고 중공군은 휴전을 불과 3일 앞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2차에 걸쳐 공격을 재개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150명을 사살하고 27명을 생포하는 큰 전과를 올려 6.25전쟁의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3. 공군의 활동
   미 제315전투수송비행사단에 배속된 제13수송편대는 12월 4일 연포기지에 파견됨으로써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장진호로 진출하였던 미 해병사단이 철수를 시작하자 편대는 보급품 193톤을 공수하고 전사상자 800여명 을 후송하였고 편대는 12월 중순 미 제10군단의 흥남 철수작전을 지원하였습니다.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진출하자 편대도 1951년 5월 14일 수영기지에서 김포기지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무렵 편대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협소한 여주, 원주 활주로를 이용하여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였고 8월로 접어들면서부터 편대는 서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백령도에 대한 지원작전을 개시하였습니다. 이때 편대는 백령도가 적지에 근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조시에만 천연활주로를 이용할 수 있어 이착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2월 22일 편대장이 조종한 수송기가 수원비행장에서 미 공군기와 충돌하여 승무원 5명과 후송중인 미군 부상자 5명이 전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설상가상으로 27일 편대장 대리로 임명된 조종사가 진해기지를 이륙한 후 고지정상에 충돌하여 14명이 전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참전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1953년 2월 초 신규편성 된 미 제6461대대가 여의도기지로 진출하자 편대는 대구와 김포기지에 집결된 병력과 물자를 전방까지 추진 보급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편대는 휴전이 성립된 이후에도 김포기지와 여의도기지를 오가며 5대의 C-47 수송기로 지원임무를 계속 수행하였습니다.



  그리스는 6.25전쟁에 10,581명이 참전하여 전사 188명, 부상 459명의 손실을 입었고, 휴전 후 공군은 1955년 5월, 지상군은 12월에 철수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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