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10.19 돌출부에 대한 단상 (11)
  2. 2010.08.03 백인엽대령의 희생정신 (38)
  3. 2010.07.28 전멸을 각오한 사투 다부동 전투 (24)

돌출부에 대한 단상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10.19 08:49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이북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현재 미치지 못하는 미수복지역입니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지역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지방의 DMZ은 여타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전당시에 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이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최북단으로 남게 된 데는 한미 지휘관간은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의 DMZ이 북쪽으로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51년, 중공군의 몇 차례에 걸친 대공세 이후 미국이건 중공이건 서서히 휴전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길항이 있었으나 전선은 현재의 DMZ부근에서 거의 고착화되었는데, 그런 이유는 최대한 전선을 짧게 단축하는 것이 우리도 그렇고 공산군 측도 유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고 고착화 되었다면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를 염두에 둔 배치인데, 이 경우 전선이 길게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이를 방어하는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볼 때 크게 2군데의 최단 횡단점이 있는데 하나는 동안만과 서한만사이의 북위 39도 50분 지점과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38도선 지점입니다.

[북쪽의 횡단점은 전략상 공산군 측이 수용하기 곤란하여 두개의 횡단점 중 군사적으로 대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은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성지역을 북에 넘겨주고 휴전을 하게 된 것은 아군의 공격을 공산측이 훌륭히 방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강-임진강 하구를 방어선으로 삼고자하던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암묵적인 와중에서 볼 때 고성지역의 돌출부는 사실 조금 특이한 지역입니다.  만일 가칠봉에서 간성읍까지 최단거리로 DMZ이 형성되었다면 전선의 길이를 약 20Km 정도 단축하여 방어에 유리 할 것이고 이점은 북측도 알고 있었습니다.

[개성은 도심 뒤에 고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이곳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 만큼 휴전선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형성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북으로 돌출하여 자유대한 지역으로 편입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1951년 6월 이후 동해안에서 작전을 벌이던 부대는 백선엽 소장이 지휘하던 국군 제1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태백산맥 서쪽과는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국군이 전담으로 방어하다보니 타 전선에 비해 화력지원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훗날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오른 백선엽]


  포병전력의 확충이 여의치 않음을 고민하던 백선엽은 미 제7함대 제
5순양분대의 사령관으로 동해에서 작전 중인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소장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의를 즉시 받아들여 국군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거침없이 함포 사격을 지원했습니다.

[알레이 버크 그 또한 해군대장까지 진급하였다]


  요청이 있으면 이유불문, 시간불문, 장소불문하고 즉각적으로 지원사격이 이루어졌을 만큼 두 장군은 궁합이 잘 맞았고 이러한 버크제독을 백선엽이 국군 제1군단의 포병사령관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 덕분에 국군이 전담하던 동해안은 공산군이 감히 탄막을 뚫고 내려올 생각을 못하였고 그 결과 동해안의 휴전선은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해상포격은 국군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아군을 흥남으로 몰아넣고도 중공군이 배타고 후퇴하는 유엔군의 모습을 손가락 빨고 쳐다만 보았던 이유는 미 해군이 해상으로부터 쏟아부어대는 엄청난 탄막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내내 공산군은 해상포격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DDG-51 알레이 버크]


  호인이었던 버크는 전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미 해군 작전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 해군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버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 해군 사상 최초로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 건조한 구축함의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바로 최강의 전투함으로 평가받는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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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10.19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와 중공은 당시에 미주리같은 미국의 거함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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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이북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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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10. http://www.estyma.eu/ 2014.04.26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11. http://motowynajem.pl/ 2014.04.26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

백인엽대령의 희생정신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03 08:21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그가 남긴 유훈은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큰 감흥이 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정실 쓰키야마 부인을 처형하고 장남 노부야스를 할복시킴은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지 이동령에도 아무런 불평 불만없이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오타니 요시쓰구, 우키다 히데이에가 주축이 된 서군을 격파하고 일본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人の一生は重荷を負うて 遠き道を行くが如し
  急ぐべからず。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心に望み起らば
  困窮したるときを思い出すべし。
  堪忍は無事長久の基、怒りは敵と思え
  勝つことばかり知りて、負けることを知らざれば
  害その身に至る。
  己を責めて人を責めるな
  及ばざるは過ぎたるより勝れり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 ━

 
아! 6·25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흔히들 일본 통일의 3대 주역으로 꼽히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온갗 수모와 치욕을 견뎌내며 참고 또 참아내며 아무런 불평없이 살아온 결과 최종적으로 에도 바쿠후를 창건하고 200년이 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은 오늘날 우리 세대들에게 많은 감흥을 줍니다.


  그 중에서도 1616년, 슨푸성에서 임종하기 전에 남긴 유훈은 시간에 쫓기고 한탕 인생을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이 중 '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즉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에 해당되는 일화가 바로 6·25 전쟁 중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1950년 6월 25일, 개전 이후 1년 동안
육·해·공 3군 총사령관 겸 육군총참모장을 역임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일권 중장(위의 사진)이 자신의 계급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제 2보병사단 사단장에 임명되었던 일입니다.
  명색이 육군참모총장 및 3군의 수장을 역임한 장성에게 국방부 장관도 아닌 육군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 사단장을 맡으라니, 이렇게 황당한 인사가 또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정일권 중장은 부당한 인사에 항의하기 위해 전역 지원서를 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정일권 중장은 이러한 부당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제 2보병사단장 부임을 앞두고 "이 충무공의 백의종군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일선에 투신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전 이래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백선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백인엽 대령은 개전 직전에 발발한 여수·순천 제14 보병연대 반란사건 당시 제12 보병연대를 지휘해 진압작전을 성공리에 이끈 지휘관이었습니다.


  1950년 7월 말까지 경북 안동에서 청송에 이르는 전역 기간 중 북한군에게 혹심한 피해를 입은 한국군 수도사단은 결국 국방부에 의해 문책을 받아 사단장 김석원 준장이 보직 해임되고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추천으로 백인엽 대령(위의사진)이 후임 사단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초 제17 보병연대장을 역임한 후 1950년 8월 1일, 27세의 나이에 최연소 사단장으로 승진한 백인엽 대령!
  요즘 같으면 고향 주민들이 동구밖 가수원길부터 경축 현수막을 내걸고 중·고등학교 동문들은 학교 교문에 현수막을 내걸며 자축할 경사와도 같은 일이었지만 전시의 상황에서 그런 여유는 한낱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백인엽 대령은 준장 진급( 1950년 10월 24일이 되어서야 겨우 '별'을 달았습니다 )도 하지 못한 채 사단을 이끌게 되었으니까요.
  여하튼 진급은 못했지만 사단장으로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8월 한달 동안 낙동강 방어선의 중동부인 안강~기계 방면에서 포항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온 북한군 제 12사단과 766유격대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고 해당 지역을 사수합니다.
  이 부대는 최근 좋은 흥행성적을 낸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들이 포항여중에서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했던 부대죠.
  이 전투에서 수도사단에 패한 766유격대는 비학산에서 해체돼 제12사단에 흡수되는 치욕을 겪습니다.
 
포항 지구의 격전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현재의 고착된 전선을 타개하는 한편 북한군에게 통쾌한 반격을 가할 크로마이트 작전, 즉 인천상륙작전에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되면서 지휘관으로 누구를 임명하는가? 에 대한 인사 문제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었습니다.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과 연대장으로 각각 임명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신성모 국방부 장관.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전투를 잘 지휘할 수 있는 장교가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이에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이 때도 수도사단장 백인엽 대령을 추천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 사람으로 합시다!"
  이승만 대통령은 흔쾌히 백인엽 대령의 임명을 승낙했습니다.
  문제는 크로마이트 작전에 참가할 한국 육군이 1개 연대라는 점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크로마이트 작전을 앞두고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지만 그 규모는 겨우 1개 연대에 불과해 백인엽 대령에게 큰 고민으로 다가섰습니다.

  당연히 신성모 장관은 사단장을 한 대령에게 다시 연대장을 역임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결국 백인엽 대령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재 계획 중인 반격작전에 참가하는 연대의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하오. 지금 사단장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이러는 것은 곤란하지만 백 대령의 의견을 듣고 싶소. 어찌하시겠소?"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장관님, 전쟁을 하는데 사단장이면 어떻고 연대장이면 어떻겠습니까? 뭐 중대장도 괜찮습니다. 까짓거 백의종군 하지요. 맡겨만 주십시오”고 당차게 답변했습니다. 
  현재 연대를 지휘하는 사단장 보직을 수행하는 그에게 있어 이는 대단히 큰 치욕이자 불명예였음에도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과 더불어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킨 백인엽 대령!
  하지만 그가 어느 부대를 지휘하느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부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반드시 한국군의 이름을 드날릴 훌륭한 부대를 선정할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따라서 신성모 장관은 백인엽 대령을 호출해 어느 연대를 지휘하겠느냐고 물었고 백인엽 대령은 주저할 것 없이 개전 초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제17 보병연대를 선택했습니다.

  두번째로 연대장을 맡게 된 백인엽 대령의 의지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있던 제17 보병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17 보병연대는 요충지인 경주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고 당연히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중장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백인엽 대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17 보병연대는 경주에서 이동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 그리고 미 제7 보병사단과 한국군 제17 보병연대 등이 참여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의표를 찌르며 성공리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이후 두번째로 제 17보병연대장에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인천을 탈환한 후 다시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17보병연대는 개전 초 옹진반도에서 당했던 참패의 치욕을 되갚으며 인천 상륙 이후 미 제7 보병사단에 배속돼 잠실 방면에서 한강을 도하한 뒤 남산을 탈환하고, 북한군의 증원부대 및 퇴로 차단을 위해 망우리에 전개했습니다.


 
서울에 입성해 치열한 시가전을 치르고 있는 미 해병대원들. 제17 보병연대는 백인엽 대령의 지휘 하에 북한군의 발악적인 저항을 격퇴하며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9월 28일 서울을 북한군에게서 탈환한 제17 보병연대가 폐허가 된 시가지의 잔해들을 치우는 한편 경무대 경호와 수도경비임무에 전념했고 이를 지켜본 미군들은 제17 보병연대를 ‘서울연대’로 호칭했습니다.
  이렇듯 백인엽 대령의 제17 보병연대는 서울탈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백인엽 대령은 10월 24일 준장 진급과 동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영전했고, 제17 보병연대는 제2 보병사단에 예속된 후 저격능선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파하며 그 용맹을 과시했습니다.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불합리한 대우라도 아무런 불만없이 잘 받아들여 성과를 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정도 이상의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으시더라도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호쾌하게 "예! 맡겨만 주십시오!!"를 외친다면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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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타임머신 2011.07.02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안중에 두었겠습니까.... 그냥 갈기고 보는거죠...
    형님인 백선엽 장군은 지리산 근처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지리산 주변 주민들까지
    준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동생인 백인엽 장군은 여순사건 때, 반란 군인들은 이미 지리산 및 다른 지방으로
    도망쳤는데, 민간인 중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사람들 죽이고...

    햐.... 자신들의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 죽이는거...
    뭐 별거 있습니까?

    임진왜란 때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죽인다는 것...
    다 구라갔죠? 전시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치안이 불안할 때, 무력이 최고고
    그 무력으로 공적을 위해서라면, 민간인 가지고 노는거
    일도 아니죠...
    (요즘에야 개념이 잡혔지만... 글쎄요... 전시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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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엽 성질 더러운 놈으로 유명했죠. 후퇴하다가 사병한명이 짚차를 막아서 통행에 방해했다고 권총으로 즉결처분한적도있고, 공산군에 부역한 민간인들 잡아내서 일본도로 참수하기도하고, 자기형인 백선엽장군 아니었다면 피해가족들한테 생매장되었을겁니다.
    그리고 선인재단 만들어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죠. 인천의 화교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려서 대만대사관에서 항의하고, 강제철거하면서 온갖 폭행사건 터지고..
    글쓴분은 역사공부 많이하시고 정신차리세요.

  6. 지랄하네 2013.02.03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미친 새끼 때문에 형 백선엽까지 도매급으로 욕 처먹는 건 아슈?

    • 영웅 2013.10.2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선엽이 지 자신만으로도 욕쳐먹어 마땅한 기회주의자 인데 동생의 개망나니짓은 화룡점정 정도....ㅋㅋ

  7. 개념 2013.02.13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보인다고 댓글로 똥을 싸놓네
    6.25전쟁때 북괴에 맞서 목숨바쳐 나라를 위해 충성한 장군아닌가?

  8. 개그 2013.03.05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일화 많지....
    병사가 지프차 앞 막았다고 처형, 지프 시동 껐다고 운전병 처형...
    진정한 친일파 인간 쓰레기가 백인엽이다 차라리 채병덕이 양반이지..그나마 전선에서 뒤지기라도 했으니
    그러고도 아직도 살아있는거도 웃기고 이런걸 좋다고 빠는넘이 있는건 더한 개그다

  9. chat random 2013.05.02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10. 바른역사 2013.05.0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신성모 대한민국역사이래 최고의 기회주의자요 야비하고 잔이한 아부꾼들 찬양하는 글을쓴 인물은 도데체 누구? ㅉㅉㅉ

  11. Click here 2013.05.27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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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www.bonnevillefinancial.com 2013.09.3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13. 영웅 2013.10.20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을 칭송하네 ㅋㅋㅋ 조를까서 쳐 잡수세요 ㅋㅋ

  14. 양심좀가져라 2013.10.29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이를 빠는 글도 있네. 최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좋다고 글을 쓰다니...위에서 시킨다고 뇌없이 그냥 글쓰지말고 머리로 생각 좀 하면서 살길.

  15. Relationship with Luminix Power 2014.02.13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16. 여방오 2014.02.15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것.. 백인엽씨에게도 전쟁 중 공은 있겠죠..그런데 너무 찬양일색인 것 같은 아쉬움은 뭘까요.. 정일권씨나 백인엽씨. 개인적으로 인간애를 발휘한 김백일장군이 더 좋게 보여집니다, 전시라곤 하지만, 부하들에대한 즉결처형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휴전 후에 벌어진 이들 두 장군의 비리는 보릿고개에다 전후피해에 시름하던 국민들을 생각하면... 지휘관들의 공적도 많지만 이름없이 쓰러져간 하급장교, 병사들. 그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글들도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너무 탈도많았던 장성급만 다루시고 그분들만이 이 나라 이 겨레를 구한 것 같은 이 느낌은.. 평소 전사에 관심많아 예까지 와서 글은 잘 읽었습니다...

  17. Lawyers In Greentree 2014.04.10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18. seattle roofing 2014.04.13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사단, 17연대 2사단, 1사단, 6·25전쟁, 766유격대, 공군, 낙동강, 백선엽, 백인협, 북한군, 비학산, 사단장, 아625, 옹진반도, 육군, 포항여중, 포화속으로, 한국군, 해군, 해병대

  19. http://lamari.pl/ 2014.04.24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20. 보름달 2014.05.14 0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인마 미국놈 작전에 독립운가와 백성 민족을 잡는 쥐잡이 놈들이 결국 백인협 백선엽 살인을 일삼고 제주도 살인자 14연대 살인자 부대놈들이 헬리곱터원정 전라도 의상봉 중심으로 경찰살인자 박가놈 3인방과 묵인 6인배후 열락책 위조책이 용변산반도 전라도민을 무자비 죄도 묻지 않고 살인을 하고 지역감정을시킨 살인마 미국놈들이 우방국이라니 한심한 친일파놈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미래가 없다..

  21. Invincible76 2014.08.05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글쓴이는 인간의 기본 윤리개념도 없는 정신이상자 이신 듯..?
    큰 잘못도 없는 부대원이나 다른 장병들을 심심하면 밥먹듯이 '즉결처분'이라고 총살하던 그 인간백정 쓰레기를 찬양하는거 보니,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겁니까 당신?

전멸을 각오한 사투 다부동 전투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8 17:09
  혹심한 손실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다부동을 사수해낸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
  6·25 전쟁 중 가장 격렬한 전투가 계속된 기간은 언제쯤일까요?
  많은 분들은 중공군과 북한군의 춘계 대공세와 고지 쟁탈전 기간을 떠올리시겠지만 전혀 의외로 낙동강 방어 전선이 유지되던 1950년 8월초부터 9월 중순까지가 꼽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한국군과 북한군 양측이 사활을 건 대규모 격전을 벌이던 시기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이 8월 15일 이전까지 부산 점령을 끝내고 통일을 경축하고자 했고, UN군과 한국군은 차후의 반격( 인천상륙작전 )을 위해 반드시 이 방어선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이죠. 


 
대전 전투의 참패와 더불어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의 전라도 석권으로 인해 한국군과 UN군은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으로 밀려났고 곧 치열한 혈전이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경상남북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내어준 상황에서 대구와 부산마저 상실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전선의 장병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마저 없던 셈이었습니다. 
  낙동강에서 북한과 유엔군 측의 대결은 물자와 전투기술의 대결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신력과 의지의 대결이라 할 수 있었죠.

  치고 내려올 수 있는데까지 내려왔기에 최후의 승리를 목전에 둔 북한군 전선사령관 김책( 좌측 사진 )은 이미 전 사단에 8월 3일에 8월 6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만 이미 제공권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 하에서 실시된 낙동강 도하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부산 점령의 날짜는 뒤로 밀리자 초조해졌습니다. 
  하지만 8월 12일 한국군이 대구 북방으로 퇴각하자 김책은 이 기회를 이용해 8월 15일까지 작전을 종결하고자 일선 사단장들에게 서둘러 대구를 함락시킬 것을 독촉했습니다.
  이에 따라 낙동강 전선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대구로 접근하기가 용이한 다부동이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었습니다.
   북한군은 이 곳을 사수하고 있던 국군 제1 보병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개전 이래 숱한 실전을 겪으며 활약한 정예 부대인 제1, 13, 15 보병사단을 투입했습니다.
 
이로써 발발한 다부동 전투는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이 보다 융통성있는 방어작전을 위해 전선을 축소 조정한 후 제1 보병사단이 경상북도 칠곡군의 다부동으로 철수한 다음 날인 8월 13~29일까지 무려 16일간이나 지속됐습니다.
  백선엽 준장의 제1 보병사단은 다부동 전면의 험준한 유학산 839 고지, 좌측의 숫데미산 518고지와 328고지, 그리고 우측의 신주막~대구 간 도로의 방어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사단 좌측 지경선 너머인 왜관 너머에는 미 제1 기병사단이 낙동강 중류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군위와 신녕을 방어하는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가 연접하고 있었지만 이 사단들은 '내 코가 석자'였기 때문에 쉽사리 지원부대를 보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문자 그대로 제1 보병사단은 나홀로 북한의 정예 3개 보병사단을 상대해야 했죠.
  만약 다부동을 사수하는데 실패해 대구가 함락당한다면 한국군은 전원 부산 앞바다에 빠져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용호동 해군 작전사령부 인근의 해안 절벽지대.
  한편 한국군 제1 보병사단의 방어선을 단숨에 붕괴시키고 대구를 장악하고자 했던 북한군은 제15 보병사단이 최영희 대령의 제15 보병연대가 사수하고 있던 숫데미산과 328고지를, 북한군 제1 보병사단은 박기병 대령의 제12 보병연대가 사수하고 있던 중앙의 유학산 정상 부근의 높은 절벽과 같은 고지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동쪽의 계곡 접근로에서는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이 김동빈 대령의 제11 보병연대 방어선을 붕괴시킨 후 신주막~다부동~대구 간 도로를 이용해 남하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 제8군은 즉각 제11 보병연대 방어선 후방에 미 제2 보병사단 23 보병연대, M26 "퍼싱" 중전차를 장비한 제73 전차대대 C중대와 포병 2개 대대를 증원부대로 배치했습니다.
  한반도로 투입된 F-86 "세이버" 전투기. 다부동 전투 시기에는 참전하지 못했지만 전쟁 기간 중 미 공군은 한반도 전역에서의 제공권을 확고하게 장악함으로써 북한군의 주간 이동과 공격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습니다.
  북한군은 7월 한달간 미 공군의 맹렬한 폭격에 의해 후방보급선을 차단당함으로써 보급이 급격하게 악화돼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병사들은 하루 1, 2끼 정도만 섭취할 수 있었고 일부 전차·자주포·야포 수송차량 등은 포탄과 경유, 휘발유 공급이 끊겨 가동 불능상태에 처했지만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충천했습니다.
  골수 공산주의자들인 북한군 장교와 고참병들의 전의는 왕성했고 이에 따라 다부동 전투는 소강상태 없이 연일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반복되는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어서 오너라! 괴뢰군!!" 대구 북방에서 90mm 대공포를 이용, 치열한 지원 포격을 감행하고 있는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 장병들. 다부동 전투는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절대적인 현 위치 사수전이었습니다.
  이러한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제1 보병사단의 대응은 놀랍게도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반격작전을 감행, 함락당한 방어진지와 거점을 반드시 탈환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8월 15일, 북한군 제15 보병사단에게 함락된
숫데미산 탈환을 위해 제12 보병연대 2대대는 무려 349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15 보병연대 역시 뒤지지 않겠다는듯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된 8월 15~16일에 일선의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모든 행정병과 취사병까지 동원했고, 이로 인해 부족한 T/O는 갓 자대 배치된 신병들에게 할당했습니다.
  이처럼 전멸을 두려워하지 않은 작전 전개로 인해 제15 보병연대
 1대대는 단 하루 만에 중대 병력 130명이 60~70명으로 줄어들었고, 그 중 전투경험이 있는 선임병이 겨우 15~16명일 정도로 참담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초기 개전 부분에서 말도 안되는 고증 오류로 인해 비난을 받았던 MBC 미니시리즈 로드 넘버 원에서도 다부동 전투는 치열하고도 처절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너무나도 혹심한 인명피해로 인해 사단 사령부는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만 수백 명의 신병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격렬한 전투 중 많은 지휘관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 후송당하는 통에 중대에서는 소대장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이렇듯 다부동 전투는 제1 보병사단은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사병이나 투혼을 발휘한 방어전이었습니다.
  특히 방어선에 갓 배치된 많은 신병들이 북한군의 함성소리와 쉴 새없이 날아드는 박격포탄의 작렬로 동요하고 흔들리자 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직접 착검한 M1 개런드 소총을 움켜쥔 채 돌격의 선두에 나섬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데 성공했고 이에 따라 사단은 부대 건재와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한국군 제1 보병사단의 결사적인 방어전으로 잇따른 공세의 감행에도 불구하고 진격이 다부동 서측방과 중앙에서 돈좌되자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장 최용진 소장은  마침내 8월 21~23일 밤에 걸쳐 T-34/85 9대를 집중시켜 신주막~다부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통해 야간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은 마지막 희망을 T-34/85에게 걸었지만 의정부와 오산, 대전의 영광은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번 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를 열람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훗날 "볼링 앨리" 전차전이라 불린 이 격전에서 미군은 M26 "퍼싱" 중전차를 동원해 치열한 야간 전차전 끝에 돌격해 들어왔던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 대부분을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북한군의 마지막 공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미군 전차대에 의해 마무리지어졌습니다.
  결국 다부동 전투 종전까지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은 T-34/85 14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 5대를 손실해 사실상 기갑전력을 완전 손실하며 전투력을 상실했고 이로써 제1 보병사단은  혹독한 희생을 치른 끝에 적 3개 보병사단의 맹공을 격퇴시키며 다부동과 대구를 지켜냈습니다.
  1975년,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의 대통령궁에 입성하는 북베트남군의 T-54 전차. 만약 제1 보병사단이 다부동을 사수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런 사진을 바라보며 공산치하에서 고통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부동 전투를 통해 전투는 의지와 인내력의 싸움이며 하도 전사자가 속출하다 보니 주변이 온통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차고 여름의 찌는 듯한 폭염 아래에서 죽음과 부상의 공포를 이겨내며 3배에 달하는 적을 맞아 승리할 때까지 버티며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고군분투한 제1 보병사단 장병들의 투혼에 존경심을 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단장 백선엽 준장부터 말단 병사들까지 문자 그대로 계급을 가리지 않고 싸움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감투정신은 북한군의 정예 3개 보병사단의 맹공을 막아낸 제1 보병사단의 승리라 더 후대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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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ChatRandom 2013.05.02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분들은 중공군과 북한군의 춘계 대공세와 고지 쟁탈전 기간을 떠올리시겠지만 전혀 의외로 낙동강 방어 전선이 유지되던 1950년 8월초부터 9월 중순까지가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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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국이라는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전선의 장병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마저 없던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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