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밸리 전투(제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20 08:38

퓨시리어 대대와 같이 한 시간 만 더 일찍 명령을 접수했다면

얼스터 대대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명령접수 지연은 그날 밤 큰 불행을 얼스터 대대에게 안겼다.


철수명령을 늦게 받은 대대는 유기 장비들이 없도록 모든

짐을 다 트럭에 적재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미군들은 급한 상황 철수시 모두 버릴 장비도 영국군은

모두 챙겼다.


보병들은 언덕에서 내려와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수 행군 순서는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B중대가 앞장서고

그 뒤를 대대 본부가 뒤따랐다.


그리고 전투식량과 탄약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다음,

그리고 C,D A,중대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을 크롬웰과 대대에 배속된 탱크 지원중대의

파견대가 후위를 맡았다.


마지막 기만과 정찰을 위해서 박격포로 무장한 소대병력
장갑차 부대가
작은 고개에 잔류하여 불규칙한 교란 사격으로
적을 견제하도록
  하였다.

이 부대의 장갑차들은 11시 20분에 철수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낮에 제일 높을 고지인 작은 고개를 점령했다가 공습으로

공격대가 전멸당한 중공군은 고지에서 영국군이 모두 철수하자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고지를 점령하고 그 연이은 언덕들에
신속히 침투하였다.



철수로는 우측 위의 쟁고개로부터 아래로 그은 푸른 선이다.
이 소로옆을 따라 언덕이 연이어 있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곡릉철교를 전후에서 전투가 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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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증에 비극의 현장을 이 된 이 작은 고개 지역은 100미터도
안되는
언덕들이 도로를 따라 몇 백미터 내려오다가
곡릉천을 만나면 오른쪽
즉 하류 쪽으로 휘어져 하천을 따라 갔다.


다른 말로 쉽게 설명하면 ‘ㄴ’를 거꾸로 휘어 놓은 것 같은

형태를 띄우고 있다.


지금은 작은 고개를 통과한 도로가 남쪽을 향하여 직선으로
힘차게 뻗어 갔지만
영국군이 싸울 때는 도로가 바로
작은 고개를 넘어와 곡릉천을 만나면
다시 옆으로 휘어져
언덕과 하천 사이를 따라 가다가 하천을 건너 삼하리
벌판을 
가로 질러 매내미[큰 고개]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작은 도로였다.
새도로가 뚫리고 이 도로는 없어졌다. 


우마차나 겨우 다니는 소로였고 지역 물류나 교통은

이 지역을 지나는 열차가 담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대를 수송할 차량부대가 이 역 L자가 끝나고

곡릉천을 건너 삼하리로 들어가는 지점, 다시 말하면 교외선의

철교가 지나는 지역의 눈 덮인 논에서 정렬하여
대기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곡릉 천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 구도로 -이 길로 영국군의
보병들과 전차들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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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지점이 중공군이 은폐해서 접근할 수 있는 언덕애서
불과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대는 어둠 속에서 중공군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근처 언덕을 따라  빠르게 전개했다고 믿었다.


그래서영국군은 어둠을 이용해서 이 소로를 타고
빨리 전선을 벗어 나기로 했다.

기도비닉이 중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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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이는 잘못된 전술적 판단으로 보인다.

중공군의 전투 자산은 ‘밤’과 ‘산’이다.


이 중공군의 전술적 자산은  밤이 되면 산을 타고

은밀하게 유엔군의 틈새로 침투해서 후방 도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미 한달전 미 1 기병사단의 한 대대가 이같은 우회침투와
도로 차단의 전술에 의해서 궤멸 되어 버렸다.

영국군의 철수로 좌측은 낮은 산[언덕]이 동행하듯 같이

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는 영국군 철수도중 중공군이 얼마든지 도로차단과

측면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공군 전술이 이날 밤 이 순간에 꿈틀대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군에게 이 우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도로 옆
언덕[산]에서
일 분이라도 빨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였다.


즉 '기도비닉'보다도 '신속이탈'의 전술적 명제가

더 급한 상황이었다.

쟁고개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철수로와 나란히 뻗은
언덕형 산맥- 철수시 이 언덕의 위험을 인지하고
빨리 이탈해야 했었는데 --- 유감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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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부대 지휘관 쿠퍼 대위가 선두에 서겠다고 자원했지만

전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적에게 부대 철수를

알린다고 믿어서 이 요청은 거절당했다.


모든 트럭과 보병이 떠난 후  전차 부대는 뒤에서 천천히

후위를 맡아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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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을 또 해본다.

먼저 전차와 트럭에게 보병 1개 중대를 배속시켜

중공군이 붙은 우측 산에서 신속하게 이탈하여

후방 매내미 고개로 철수하고  이들로 하여금

철수 부대의 화력지원을 하게 한다.


보병들은 도로에서 벗어나 구보로 삼하리 들을 가로지르는
직행으로 3킬로 떨어진
매내미 고개로 가게 했다면 그날 밤
아무리 상황이 나빴어도
전차 14량을 다 잃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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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계획대로 되어 가는 듯했다.


우측 언덕의 중공군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줄은 알았지만

어둠 속에서 길 위의 이 부대를 무턱대고 공격할 수는 없었다.

병참이 빈약한 중공군은 실탄을 물처럼 쏴대는 미군들에 비하면

무척 사격군기가 강해서 실탄을 아껴 함부로 교란 사격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전투 지역에 두 개의 철교가 있다.
이 철교는 첫번째 철교로서 얼스터 대대는 그 우측 길을
무난히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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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수 부대에 갑자기 불행이 찾아 온 것은 밤 9시 30분이었다.

선두 B중대와 본부 중대는 이미 매내미 고개를 넘어서

전투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일부 부대가 승차한

트럭 부대가 후속하는 철수의 중간이었다.


검은 하늘에 출동한 미 공군기가 낮에 항공 공격을 했던

이 지역에 이르자 조명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비밀리에 움직이던 영국군의 모든 것이 언덕위의 중공군에게

백일하에 들어났다.

중공군은 즉시 자동화기 포문을 열고 공격을 개시하고 이어서

수백발의 박격포탄이 날아보냈다.



중공군의 매복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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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던 영국군과 트럭들은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다.

일부 트럭들은 정지하기도 하고  불에 타기로 했고

많은 보병이 죽어 나갔다.


최대의 비극적인 전투가 대대가 최종 목적지인 곡릉천 이북

철교 근처 작은 마을 불미지 인근의 수송 트럭 집결지에서
발생했다.


영국군이 중공군에게 불의의 첫 일격을 맞은 곳은

곡릉천 철교 오른쪽의 논에 수송트럭들이 집결한 곳이었다.


중공군의 지휘관은 매우 노련하였다.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으로 영국군의 지휘체계를

충분히 흔들어 놨다고 판단하고 언덕으로부터 이 지점으로의

돌격을 명했다.


돌격 나팔 소리와 함께 언덕으로부터 중공군 대병력이

새까맣게 언덕 아래 영국군의 측면으로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와
부대를 덮쳤다.



중공군들이 내려와 영국군을 급습한 낮은 언덕의 한 부분.
이 연속 언덕은 앞 사진 언덕의 연속이지만 앞의 언덕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이 언덕은 곡릉천을 따라 동서로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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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항상 장기로 삼는 단병접전(短兵接戰)의 전술이

어둠 속에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적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사격을 하며 몰려와 삽시간에 영국군과 뒤섞여 버렸다.

아무리 정예 부대라도 이 상태로 기습을 당해
지휘체계가 붕괴 되었다면 어쩔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은 근거리의 영국군을 닥치는대로 쐈다.

영국군들도 스텐 기관총과 소총, 브렌 기관총으로 용감하게
응전했으나
이미 지휘체계가 마비 된 상황에서 그것은 각 병사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전투는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영국군과 이를

살육하려고 쫓는 중공군 때문에 전투장이 서쪽과 남쪽으로

직경 1km정도로 확대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서쪽으로는 전진하는 영국군이 진입한 불미지

마을과 그 동쪽 터널로 전투장이 확대되었다.


영국군의 기록에 의하면 중공군들이 크롬웰 전차의 궤도를

궤도 파괴용 특수 폭탄을 써서 파괴 했다고 되어 있지만

현지를 방문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공군은
특수 폭탄이 아니라
평범한 방망이 수류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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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전차의 궤도는 방망이 수류탄에도

파괴 될 만큼 좁고 얇고 연약하였다.


방망이 수류탄에 전차 14대가 나가 떨어지는

전무후무한 진기한 기록을 만들었다.


현지에 가서 확인했지만 이곳 지형은 센츄리온 전차나

크롬웰 전차의 기동에 차별적 제약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더 튼튼한 궤도를 가진 센츄리온

전차를 파견 헸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에 참전한 센츄리언 마크 3 형 전차- 20 파운드[84mm]
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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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 센츄리언 탱크는 특히 그 탁월한 야지 횡단
능력과 고지 등판 능력으로 미군들의 전차들 보다도
휠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 튼튼한 철 궤도의 현수장치는 나중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메르카바 전차를 개발할 때 참조했었다. 

1960년대에 한국군에서 센츄리온 탱크와 비슷한

크기의 M-47 탱크 철궤도에 수류탄을 넣고 폭파하는

실험을 했지만 궤도는 끄덕 없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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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전차대의 소대장 알렉산더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들을 피해서 곡릉천 제방 위를 달렸다.



곡릉천. 이 하천은 당시 얼어 있었다. 남쪽 제방에서 본 북쪽 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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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하면서 그는 중공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진지에 75mm

전차포를 발사했다.

크롬웰 전차들과 보병들은 적이 점거한 불미지 마을로 진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전차는 불미지를 통과했지만 적의 방망이

수류탄 공격으로 궤도가 벗겨지고 정지해야 했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피다가 피격당해

전사했다.

그의 전차 승무원들은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뒤에서 후속하던 대장 쿠퍼 대위 역시 전차 궤도가 끊어져

포수 쿠퍼 하사와 함께 곡릉천쪽으로 피했지만 이들은

중공군 20여명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목격당하는 것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일부 전차들은 철로를 따라 고양 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집요하였다.


철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터널 [용본 터널-동네 어르신네는
굴칸이라고 부른다.]
안에 진입한 크롬웰 전차를 공격해서
기동 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뒤에 따르는 두 여대의 전차들도 정지하고 승무원들은 중공군의

사격 속에서 피신할 곳을 찾은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 유기된 크롬웰 탱크.
중공군이 고정 포대로서 활용하려고
위장 했었다.

크롬웰 전차 한 대는 중공군이 몰고 한강 철교까지
내려와서 배치되었다가 마침 반대편의 남안에 나타난
영국군 센츄리언 탱크에 의해서 격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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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영국군을 완전히 포위하고 섬멸작전을 계속하였다.

불길에 휩싸인 불미지는 영국군의 묘지가 되었다.


부대의 맨 뒤에서 행군하던 대대장 대리 브레이크 소령은

이 난전을 지휘하려 애쓰다가 이 동네 외곽에서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중공군의 공격은 곡릉천 남쪽 양주시 삼하리에서도 전투가
격심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철교와 불미지 마을 일대가
최대의 격전장이었다고 했다.



전투의 분깃점인 곡릉철교- 이 좌측에
해피 밸리 전투 최대의 격전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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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에 곡릉천 북쪽 선유리에서만 파괴되고 유기된 전차만

6-7대나 되었다고들 하였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클릭∼∼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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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중대의 양수리 도강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6.28 09:38

 

한강 도강하는 89전차대대 C중대 - 유엔군이 서울 탈환을
목표로 전개했던 리퍼 작전중인 1951년 3월 촬영이다.

배경의 산야가 눈이 덮힌 것을 보니 본 포스팅의
A중대가 도강을 완료한 뒤에 따라서 도강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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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전차전들이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 내내 유엔군 전차들의 주요업무[?}는
대전차전이 아니라
보병 지원업무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각 출판물에 6·25전쟁에 대표 전차로 소개되는 M 26 전차와

M 46 전차뿐만 2차 세계 대전의 M 4 셔먼 전차가 여러 주요 임무를

맡아 실행했던 일꾼이었음도 별로 각광받지 못한 점도 유의하자. 


오늘 소개하는 전차의 사례는 전투의 클라이막스가 ‘화려한’

전차전과는 달리 양수리 인근에서 남한강을 도강해서

보병들을 지원한 한 전차 중대의 ‘착실한’ 전투의 기록이다.


한국적인 지형에서 전차 단독이 아닌 보전포의 협력된

전투가 이상적인 작전형태가 될 터인데 이의 한 참조고가

될 사례로서 기대해본다.



1952년 철원 평야의 셔만 전차 중대 집결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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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9 전차대대 A 중대는 3월 2일 8군으로부터

한강을 도하할 25사단 35연대 3대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수령했다.


본래 작전 계획은 보병들이 도강하는 동안 전차 중대는
강변에서 화력지원을 하고 한 나절을 기다린 뒤에
부교 설치가 끝나는 저녁에야 도강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강한 보병들이 전차의 동행없이 강변에서 멀리
진격해 들어 가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전차 대대장 돌빈 중령과 중대장 브레넌 대위는 토의끝에
전차도 보병들과 같이 동행 도강해서 작전 시작부터 끝까지 
보병대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보병대대의 요청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 하면서도
더 나은 지원을 하겠다는 전차 부대의 자발적인 의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951년 3월 4일.

중대장 브레넌은 전차 중대를 염두에 두고 있던 도강 지점에서

3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귀여리의 전방 집결지로 이동시켰다,


[지금은 팔당호의 최 상류지점이 될 듯하다.
그러니까 전차의 공격은
팔당호 연안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
호반 길을 따라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전투 상보. 왼쪽이 지금은 팔당호 상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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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그는 소대장들을 그가 중대 본부로 쓰는 초가집으로

불러 그가 구상하는 한강 도강 계획을 밝히고 토의를 했다.


그의 계획은 전차 한 량를 전차 구난차의 윈치 케이불로 연결하여

강을 시험 도강을 해 보는 것이었다.

만약 수심이 너무 깊어 전차가 빠지게 되면 이쪽 제방에 있는

구난차가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전차가 북쪽 제방에 건너가게 되면 나머지 전차들은

개척했던 길을 쫓아가면 되었다.


셔만 전차 차대를 활용한 M 32 구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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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대장[토마스 앨리 중위]이 그 첫 번 전차를 강으로

끌고 가겠다고 자원했다.


이튿날 브레넌 대위는 한강의 남쪽 제방을 정찰했다.

그는 정찰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지점에서 1,000야드
남한강
쪽에 작은 섬이 존재함을 발견하고 이를 도강지점으로
선정했다.

그 작은 섬의 이 쪽은 강변과 250피트,
섬 건너
다른 한 쪽은 200 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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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지점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간

지점이 보병들이 도하 작전을 했던 곳이다.- 지도 참조 -
전차는 양평쪽으로 더 올라간 상류의 사잇섬에서 도강했다.
이곳은 팔당 댐이
들어 선후 강 수면이 크게 상승하여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이곳에 작은 섬이 있었고 흙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농사가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수초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서 표시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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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병들이 도하하는 도중 화력지원을 해줄

각 전차 소대의
진지도 선정했다.

보병들은 더 하류 쪽에서 도하 지점을 선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중대가 지원할 보병 25사단 35 연대와
지원업무를 협의하고
보병들이 타고 강을 도강할 단정을
챙길 공병 부대장과도 협의를 했다.


공병 대장은 브레넌에게 전차들로 하여금 단정을 적재한

트레일러 8량을 도하지점인 한강까지 견인 해줄 것을 간청했다.

각 트레일러마다 단정 5척, 합계 40척이 적재되어 있었다.



한국전 후반의 고지에서 활약하는 M4 셔만 탱크
셔만 전차는 작아서 한국의 좁은 산길이나 농로를
잘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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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들의 요청은 트레일러 견인 트럭들이 진흙탕이 질척한
물가로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병 및 공병들과 최종 합의한 작전 계획은 강변에 전개한
전차들이
0555부터 20분간 포격을 하고 0615분에 보병대대가

단정을 타고 한강을 도강하기로 하였다.


3월 7일 0330분에 기상한 전차 중대원은 0345에 이른 아침을 먹고

전차들을 도로에 행군 대형으로 정렬을 했다.
전날 내리던 눈도 그쳐서 주위가 조용한 은세계였다.

중대 편성은 전차 3개 소대 15량의 전차와 구난차 1량이었다.


서두에서 밝힌대로 중대는 전날 밤에 반쯤 파괴된 마을
귀여리에 도착해서
다음날 미리 행군 순서를 정해놓고
행군 대형을 짓기 좋게
분산해서 숙영했었다.


0430 브레넌 대위는 중대에게 출발 명령을 내렸다.

전차들은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전차 15량 중 8량은 주정을 실은 트레일러를 전차 뒤에

견인하고 있었다.


한 척에 12명씩의 보병들이 승선할 수가 있었다.

너무 어두웠고 전차의 마력을 올려서 엔진소리가 적 진지까지

들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서였다.


전차들은 트레일러를 끌고 하류 쪽 보병 도하 지점으로
일단 가서
트레일러를 분리시키고 사잇섬이 있는
상류 쪽으로 이동하여
소대별로 미리 선정한 진지를 점령했다.


진지 점령 완료시각은 0545였다.

0555 105미리 곡사포 1개 대대와 영국군 포병 1개 연대와

이미 지정된 표적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드디어 명령일하 불레넌 대위 중대 전차들도 포문을 열었다.



도강 직후의 셔만 전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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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셔만 전차들은 그날 격전이 될 것을 예상하고 포탑내에

71발의 포탄을 만재하고도 뒤 엔진실위에 예비포탄 54발을

최대한 적재했었다.

[76미리 포탄은 90미리나 105미리 탄 보다 훨씬 작아서

 다량 적재가 가능하다.]


첫 사격에는 엔진 실위에 적재했던 포탄부터 사용했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아 강 건너 적 진지가 있는 고지들은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전차들은 할당된 사격구역의 주요 적 진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지역 사격으로 두들겼다.



한국 전쟁중 M4 셔만 전차와 보급품을 투하하는
C119 플라잉 복스카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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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대대 보병들은 신속한 동작으로 단정을 강 속으로

밀어 넣고
희미한 여명 속에서 제파[梯波]별로 도하를
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관총이 사격을 개시하였다.

몇몇 주정에 구멍이 나고 보병들이 부상을 당했지만
도하는 계획대로
진전되었다.


보병들은 강을 건너자마자 내륙으로 깊숙히 진출했다.

적의 기관총 사격은 치열해져 보병들에게 사격이 가해졌다.

적의 포병들 사격도 치열해서 설치 준비를 하던 부교도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보병대대의 단정 도하 작전은 아침 0740에 완료되었다.

중대장 브레넌 대위는 계획했던 전차의 시험 도강를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3소대장 엘리 중위의 전차는 구난차를 데리고
강변 200야드 지점까지
진출했다.


구난차의 케이블은 도강을 감행할 앨리 중위 전차의
후미에 연결되었다.

0800 앨리 중위의 전차는 강 복판의 사잇 섬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물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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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도강은 엄밀히 배를 타고 건너는 도하[ferry]와

도섭[ford]이 있다.

이 경우는 전차의 도섭(渡涉)에 해당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도강이라는 일반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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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더 좋은 전차장 석의 앨리 중위는 조심스럽게 전방

강 수면을 살피며 차내 전화로 조종수
길로리 존슨 하사를 유도했다,


강의 수심은 생각보다 얕아서 3피트가 되지 않았다.

전차가 모래섬까지 거리의 3분지 2쯤 왔을 때 구난차의 윈치가

갑자기 멎었다.


그러나 전차는 탄력으로 케이블에 달린 구난차를 끌고
3,4피트를 가자
전차에 연결한 윈치 케이블의
커플링이 떨어져 나갔다.

조종수 길로리 존슨은 속력을 올려 사잇섬 물가에 무사히 올라섰다,


원래 도강 계획은 섬을 횡단해서 그대로 직진하고자 했으나

앨리 소위는 섬의 상류 쪽에 흙다리 교각과 이어진 발 디딤돌을

발견했다.


인간이 다리를 놓을 지경이라면 분명 그곳이 제일
얕은 곳일 것이다.

그는 즉각 섬의 상류 쪽 다리 기초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도 다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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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그 곳의 수심은 깊었다.

전차는 급경사로 물속에 머리를 들이 밀고
물이
조종수와 전방 사수석으로 물려와 두 승무원은
당장 물로 흠뻑 젖었다.


경험 많은 조종수 길로리 하사는 엔진이 침수되어 정지할 것을

막고자 악세레이타를 밟아 그대로 빠르게 전진하였다.

흙다리 나무 교각을 세 개쯤 지나자 또 수면이 깊어지며 물결이

포탑 아래 부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수 초뿐, 전차는 다시 얕은 바닥으로 올라서며

강 건너편 강변에 도달했다.


마지막 구간을 건너는데 단 2 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전하게 강안에 자리 잡은 앨리 중위는 건너편 강변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중대 전차들에게 빨리 도강하라고 송신했다.


제 2 번 전차 스탈린 W.하몬 중사가 꼭 같은 루트를 타고
도강을 해서
단 5 분도 안되어 소대장 전차와 합류하였다.


전차 한 량씩 차례로 수중 도강을 하기를 원했던 앨리 중위는

2번 전차가 완전히 도강을 완료한 후에 3번 전차에게
도강을 명했다.


그러나 3번 전차는 바로 전 강변에서 화력지원을 하던 중

충격으로 조종석 아래의 비상탈출 해치가 느슨하게
풀려 있던 것을
미처 몰랐었다.

해치는 물속에 떨어졌다.


조종석과 전방 사수석에 물이 마구 밀려 들어와
조종 불능 상태가
되었다.


전차는 섬에 도착도 못하고 비교적 얕은 모래섬 강변에
정지하고 말았다.

앨리 중위는 남은 두 량의 전차들에게 조심해서 강을 건너도록
지시해서
모두 완료하였다.


5 량의 전차에서 좌초[?]한 한 량의 전차를 제외한 네 량의 전차가

도강에 성공하자 앨리 중위는 미리 도하를 완료한 보병과

합류하기 위해서 방향을 왼쪽으로 돌려 남한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 때가 083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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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량 1개 소대인 미군 전차 부대 편제에서 소대장이 3 량을,

선임 하사가 2 량을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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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당시에 보병들을 승차 시키고 한강을 넘어
후퇴하는 89전차 대대의 M4 셔만 전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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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반 3번 전차가 물속에 좌초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리 중위는
단 2 량을 지휘하고 앞서 갔다. 그 뒤를 약간

거리를 두고 선임 하사반의 전차들이 따랐다.


도하에 성공했던 보병은 1,000야드 정도 전진하다가 북한강과

한강 사이의 좁은 지역을 가로 지르는 도로 근처에서 잠시

교착되어 버렸다.


600야드 전방의 작은 고지와 철도 둑에서 적의 심한 사격을

받는 좋지 않은 상황에 노출 되었기 때문이다.


앨리 소대 전차 중 소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소대장반

전차 2량이 고지를 맡아 앞으로 돌진했다.

포사격과 기관총 사격을 연속으로 가하자 고지로부터의 공격은

중단되었다.


고지의 적이 침묵하자 전차 2량은 양수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중앙선 철도 둑에 붙어서 저항하는 적들에게 포문을 돌렸다.


철로에는 다 부서진 화차 6량이 서있었다.

화차들은 공습에 전소되고 기총소사에 벌집이 되어 있어

기동불능상태였다.


중공군은 기관총 3정을 화차 밑에 거치하고 미군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앨리 중위의 두 전차는 공축 기관총과 76미리 주포의
12-15발의
포탄을 날려 적 기관총 3정을 모두 격파시켰다.


화차 밑의 기관총 3정이 제거되자 보병들과 전차는 철도를 넘어

보전 협동의 전진을 600야드 정도 계속했을 때 적의 새로운

기관총 3정이 전방에 나타나서 사격을 해왔다.


앨리 중위는 그중 한 정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고
76미리 포탄
두 발을 쐈다.


두 번째 포탄이 정확히 명중하여 적의 기관총과 사수, 조수가

공중으로  분해 되어 비산했다.

앨리 중위의 두 전차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할 때 조금 뒤에서

후속하던 2 량의 전차가 알맞은 타이밍에 도착했다.

선임하사 커티스 D. 해럴 상사가 지휘하던 2 량의 선임 하사반

전차들이었다.


선임 하사반 전차 2 량은 나머지 두정의 기관총을 찾아내서

포사격으로 침묵시켜버렸다.


소대장반 2 량의 전차와 합세한 선임 하사반 2 량의 전차가
합쳐진
4량의 전차는 30분간 공축 기관총 소사를 하며
다시 보병들과
700야드를 전진했다.


엘리 소대가 분전[奮戰]할 때 강 저쪽에 남아있던 중대 전차중

일개 소대가 단 20분 만에 도섭에 성공했다.


후속 소대가 전차의 지원이 절실했던 다른 보병 중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전방으로 이동을 하는 동안 마지막
전차 소대도 도강을 완료했다.


오전 10시까지 물에 빠진 한 량을 제외한 A중대의 모든 전차가

강을 건너 보병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전진하였다.


비상 탈출 해치가 떨어져 나가 이른 아침부터 물속에
고립되어 있던 전차도
그 오후에 구난되어 수리를 마치고
강을 건너 중대에 합류하였다.

그날 오후 보병대대는 전차 중대의 헌신적인 화력지원으로
목표를 어렵지 않게 점령하게 되었다.

도하 작전은 완전 성공으로서 보병 대대장 리 중령은
작전 성공은
전차의 성실한 근접 지원에 힘입은 바가
절대적이라고 하며 브레넌 대위에게 감사를 표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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