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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7.27 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4)
  3. 2010.07.12 58. 다시 앞으로 나가다 (4)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4 08:17


  언제부터인가 휴전회담이 재개될 때면 묵시적인 관행에 따라 전선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 때문에 예상보다 휴전회담이 장기화되자 1952년 이후로 전선은 피아모두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거쳐 확보한 방어선을 공고히 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결국 언제인지는 전쟁의 종결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되었고 다만 전쟁이 멈추었을 때 상대보다 내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모색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대미를 장식할 대공세를 준비하였습니다.]


  특히 회담지연 전술을 적절히 활용한 공산군측은 이 시기에 전력을 대폭적으로 증강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953년 봄이 되었을 때 공산군은 중공군 135만 명, 북한군 45만 명 등 총 180만 명의 대병력과 각종 장비를 전선에 배치시켰는데, 이것은 6·25전쟁 발발 이래 최대의 병력 수준이었습니다. 결심만 한다면 지난 1951년 초여름의 제6차 공세이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있던 대규모의 공세를 재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종전에만 급급하였던 유엔군으로서는 이에 맞선 전력증강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는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이 건의한‘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편 계획’의 조속한 추진에 나섰는데, 이것 또한 엄밀히 말해 국군이 북한의 도발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전을 염두에 둔 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3년 5월 1일에는 현리전투로 해체되었던 제3군단이 재창설되었고, 6월 18일까지 제26, 27사단이 신편 됨으로써, 국군은 휴전발효 직전에 총 3개 군단 18개 사단의 전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이던 6월 8일, 포로송환협상이 타결되면서 휴전이 현실화 되자 공산군측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전하고 한국정부의 북진주장과 휴전반대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유엔군의 반격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하고자 했습니다. 중공군 참전이후 계속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국군이 전담하고 있는 전선을 노렸고 이때 공세지점으로 결정된 곳이 국군 제2군단이 담당하던 화천북방의 금성돌출부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은 국군 담당지역 중에서 지형이 특히 험하여 기갑 및 화력지원이 취약하다고 판단된 곳이었습니다.


[금성돌출부에서 중공군의 제7차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1953년 6월 10일 밤, 1개 군의 중공군이 국군 제5, 8사단 일대를 집중 공격하였으나 어느덧 산전수전 다 겪은 국군의 효과적인 지연에 막혀 9일간 13킬로미터 정면에서 4킬로미터를 남진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유엔군도 현 전선을 그냥 인정 할 것이라 판단한 공산군측은 작전이 성공한 것이라 만족해하며 6월 18일 전후로 예상 되는 휴전협정의 조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변수가 생겼습니다. 6월 18일 자정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27,000여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되면서 조인 직전에 있던 휴전회담은 중단된 것이었습니다.


  선전효과를 노렸던 공산군측의 의도는 일거에 좌절되었고 상황은 급속히 냉각되었지만 공산군측은 휴전회담 자체를 깨려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자체가 휴전을 염두에 두었을 만큼 공산군측고 휴전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자존심 문제라 생각한 중공군은 지난 51년 5월, 제6차 공세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화천저수지의 재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공군의 대병력이 이 일대로 집결되면서 긴장이 높아지자 클라크는 휴전을 염두에 두고 일본으로 빼놓았던 미 제24사단과 제187공수연대를 한국으로 황급히 재배치했습니다.


  7월 13일 밤, 지난 6월의 제한적인 공세와는 비교가 안 되는 5개 군의 대병력이 국군 제2군단의 금성 돌출부지역을 강타하면서 6·25전사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중공군의 제7차 대공세가 게시되었습니다.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하여 금성을 양익포위 하여 전면에 배치된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Maxwell D. Taylor) 제8군사령관은 포위를 거부하고자 방어선을 금성천 남단으로 조정하여 아군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군 제2군단과 미 제9군단이 적근산과 백암산을 연하는 선으로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7월 16일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시켰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중공군의 공세 여력이 바닥이 나자 아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7월 19일에 다시 금성천과 북한강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마지막 공세로 전선을 남하시켰으나 엄청난 피해를 겪었습니다. ]


  중공군이 패주하자 국군은 금성천 북방으로 재진출하려 하였으나 휴전을 염두에 둔 유엔군사령부의 제지로 마지막 혈전은 거기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국군 제2군단은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에서 피탈당한 지역의 절반정도만을 회복하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공군은 전쟁 막바지에 무려 6만 명 정도의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의 마지막 혈전이자 국군의 마지막 전과로 전사에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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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7 08:19

  아군이 반격에 나선 후 1951년 3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또다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을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중국도 저우언라이가 지리적 정치적 경계선으로써 38선은 이미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사실 우리나 유엔군 또한 굳이 여기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논쟁의 핵심은 38도선까지 진격한 이후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정부는 다시 한 번 북으로 내달려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고 이미 주변에서는 전쟁이 이 수준을 벗어나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38선이 다시 화두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전쟁은 대한민국을 지리적으로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 군사적 전략이 완전히 달라질 상황이었습니다. 최초 전쟁에 개입한 유엔은 전쟁 전에 한국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38선 이남 지역만을 대한민국으로 해석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고 북한군을 괴멸시킨 후에는 대한민국을 한반도 전체라고 해석하여 북진을 승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자의 논리를 따르면 대한민국을 원래대로 구해냈으니 이제는 이 부근에서 종전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후자의 의견에 의하면 다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확대전략을 구사해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미국 위정자들의 생각은 전자에 속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직접 전쟁에 참가한 이상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다시 진출해도 과연 전쟁이 끝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소련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요 참전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38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판이 커져 소련이 개입하면 유럽에서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상당히 전전긍긍하던 상태였습니다.


  반면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완승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 이상 38선은 무의미하며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일관된 지론이었습니다. 더불어 전쟁 전부터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 역시 유엔군의 38선에서 전진이 멈추는 것에 대해 반대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비록 대대적인 여론조성에 들어가 통일의 당위성을 선전하였지만 전쟁은 우리의 의지대로 진행될 수 있던 시점을 지난 지 이미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결국 38도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다면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맥아더나 한국정부의 의견에 따라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을 경우 그것이 종전을 보장하지는 않고 오히려 1,2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국경선에서 중국 및 소련의 대군과 무한정으로 대치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가장 동서간의 거리가 짧은 청천강-원산을 연하는 선이 고려될 수 있었는데, 이 선은 200킬로미터가 채 못 되어 종전선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였으나 평양을 포함하고 있어 상대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므로 우리의 의지대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이 38선 부근인데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캔사스선까지 진출하는 것을 미국과 유엔군이 공산군과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체면을 회복하게 된 시점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워싱턴의 위정자들과 미군 수뇌부는 이 같은 의지를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통보했습니다. 3월 20일자 맥아더에게 하달된 훈령은 직설적으로 공산군과 협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상 분명히 확전을 제한하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맥아더는 3월 21일자 전문에서 “더 이상의 제한을 가하지 말라. 현재의 제한사항만으로도 적을 북한지역에서 몰아내는데 곤란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맥아더와 이승만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어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습니다. ]


  이러한 맥아더의 전문을 당국은 거부의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워싱턴 당국은 대통령의 성명으로 맥아더의 주장이 수용 불가함을 공식 언급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전쟁영웅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남다른 미국에서 맥아더의 반대의견을 함부로 저버릴 수 없었던 분위기 때문에 선택한 고육책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 도달할 때쯤인 3월 23일과 24일에 연이어 맥아더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그는 유엔이 현재의 군사적 제한조치를 풀고 군사행동을 중국의 해안선과 오지까지 확대한다면 중국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자폭탄의 사용, 대만군의 참전 허용, 만주폭격 등을 재차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트루먼에 의해 거부되었던 것들이었으므로 기자회견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맥아더의 절대적 의지이자 트루먼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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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망 2010.09.23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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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다시 앞으로 나가다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12 08:07

 

  1951년 1월 말, 서부지역에서 한강을 향하여 공격하는 썬더볼트 작전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도중에 보급이 취약한 중공군의 약점을 간파한 리지웨이는 서부전선의 북상과 발맞추어 중동부 지역의 전선도 북으로 끌어올리려 결심하였습니다. 상대에 대해 자심감이 생기자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 피아 공히 공격이 어려운 한강을 기준으로 일단 서부전선을 안정화시키면서, 중동부 지역에서 북상을 개시하여 홍천일대에 포진한 중공군주력을 포착하여 섬멸한다면 서울 탈환에 보다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리지웨이는 해당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미 제10군단에게 적극 공세에 나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양측 병력이 홍천일대에 집결하면서 격돌이 예고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朝)․중(中) 연합군사령관 펑떠화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또한 서부지역의 유엔군 반격을 한강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저지한 상태로 중공군과 북한군의 주력을 중부전선에 집결시켜, 횡성 일대로 돌파구를 형성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따라 홍천 포위를 계획하고 있는 아군과 횡성 진출을 기도하고 있는 공산군은 중부전선에서 거대한 일전을 벌일 운명이었습니다.


  서부전선에서 썬더볼트 작전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여주-평창을 연하는 선에 배치되어있던 미 제10군단은 제 8군으로부터 하달된 공격 명령을 접수하자, 서부지역에서 재미를 보았던 위력수색작전으로 반격을 시도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월 31일, 미 제2사단 23연대 전투단이 문막-지평리 방향으로, 기갑부대가 원주-횡성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북진을 시작했습니다. 서부전선에서처럼 적의 대부대는 없었고 단지 산발적인 경미한 저항만을 받으며 기갑부대가 2월 2일 횡성에 도달하였고, 제23연대 전투단이 2월 3일 지평리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기갑부대가 횡성에서 홍천을 향해 북상하자 적의 저항은 점차 치열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부지역의 교통요충지인 홍천 일대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대부대가 집결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되었지만 만약 홍천을 점령한다면 이곳에 모여 있는 적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던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미 제10군단장 알몬드는 우측의 국군 제3군단과 협조하여 홍천을 포위하여 적을 분쇄한 후, 전선을 홍천-대관령-강릉선으로 북상시키려 결심하였습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차기공격에 유리한 발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알몬드는 이를 적의 주력을 몰아서 섬멸한다는 의미의 라운드 업(Round Up) 작전으로 명명했습니다.


[드디어 중부전선에서도 아군의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미 제10군단은 주공인 국군 제8사단이 서측에서, 조공인 국군 제5사단이 동측에서 진격하여 홍천을 포위하도록 했고, 예비인 미 제2사단과 제7사단은 지평리-횡성-원주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전면에 나설 국군 2개 사단을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2월 5일 08시, 야심만만한 홍천 포위공격이 시작되었고 최초 적의 미약한 저항을 물리치면서 아군은 비교적 순조로운 진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중공군의 저항도 거셌습니다. 5번 국도의 요충지인 삼마치 고개에서 중공군 제198사단이 강력히 저항함으로써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습니다.


  국군 제8사단은 금번 작전의 최대 난관인 삼마치 고개를 돌파하기 위하여 항공지원 하에 보병, 전차, 포병의 협조된 공격을 2월 10일까지 계속하였으나, 위치를 선점한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돌파에 실패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측에서 공세에 나선 국군 제5사단도 공격초기부터 북한군 제6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저지되었습니다. 결국 2월 10일까지 홍천 포위작전을 펼쳤으나 진척이 없었습니다. 삼마치의 적이 계속 증강되고 있다는 보고에 따라 알몬드는 국군 제3군단 소속 제3사단을 국군 제8사단 지역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삼마치 고개의 중공군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공군은 삼마치를 방어해 내었습니다.]


  반면 삼마치 고개에 모든 시선이 쏠려있는 틈을 타서 미 제10군단의 우측에서 병진하여 앞으로 내달리던 국군 제3군단은 평창 북방의 창동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태백산맥 동쪽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은 2월 7일 대관령-강릉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동해안의 요충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비록 삼마치 고개 돌파에 실패하였지만 국군은 전술적 요충지인 동해안의 항구와 비행장을 확보하고 대관령과 횡계를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반면에 평창-영월-안동까지 침투해있는 북한군 제2군단은 순식간 연결이 차단되어 고립되었습니다. 중공군과 북한군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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