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장'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4.30 밤의 死神, B-26 폭격기 (4)
  2. 2010.04.21 평북 숙천의 공중 강습 (25)
  3. 2010.04.01 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5)

밤의 死神, B-26 폭격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30 08:58

밤의 死神, B-26 폭격기.


6·25 전쟁에서
폭격하는 B-2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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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6·25전쟁에 참전했던 한 폭격기에 관련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은근히[?]좋아 했던 여선생님의

태어난 곳이 전북 군산 비행장이 있던 옥구군이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지금도 미공군 기지가 있다.


그 분은 어느 날 우리들에게 자기는 야간에 출격하는 폭격기의

소란스러운 폭음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었다.


거의 매일 잠이 들 만한 시간이면 요란한 소리를 내고 폭격기들이

여러 차례 출격했고 다시 새벽녘이면 몇 번에 걸쳐 이것들이
시끄럽게
돌아오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고 했었다.


이 시끄러운 폭격기들이 때로는 주간에도 수십 기씩 편대를 지어

북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데 이 놈들 수 십 기가 출격하면
조용한
시골 마을의 상공이 찢어 질 듯한 폭음에 휩싸였었다.

그런데 휴전이 되고 보니 소란스럽기 짝이 없던 밤이
거짓말같이
조용해지더라는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 공군의 B-26 폭격기였다.



B-26 인베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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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항공력의 역할과 실적은 절대적이었다.

한국전에서 활약한 군용기중 우리에게 제일 잘 알려진

스타 군용기로서 미그 킬러인 F 86, 한국 공군의 F-51,

태평양 전쟁의 명성을 6·25전쟁 참전으로 이어온 B-29,

인천 상륙 작전의 해병대 F-4U 콜세어 기,‘호줏기’로

널리 알려진 미티어 기[영국과 호주의]등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유명 스타기 반열에 편입할만큼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지상 폭격의 궂은일을 밤낮을 마다하지 않고

담당했던 전투 항공기가 B-26 쌍발 폭격기다. 

다시 말하면 B-26은 유엔 공군 실적의 적지 않은 부분을

달성했던 폭격기였던 것이다


이 폭격기는 6·25전쟁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북한군이 남한 침공을 개시하고 단 이틀 뒤인 6월 27일 일본에서

출격한 B-26 편대들은 서울 외곽에 진입하기 시작한 북한군에게

폭격을 개시했다.


이 폭격은 때로는 너무 서둔 관계로 오폭도 있었지만 압도적인

북한군에게 패퇴하고 있었던 국군에게 미군 참전 소식을
알려 주어
말할 수 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었다.


B-26기의 개전초기 첫 출격은 북으로 이어졌다.

미군의 참전은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남침을 개시한

북한 수뇌부에 정신이 바짝 들게 하는 폭격이 그들의

심장부에 가해졌던 것이다.


1950년 6월 29일 평양과 그 교외 순안 비행장등에

B-26기의 첫 폭격이 있었다,


그리고 유엔군 사령관 밴 프리트 장군의 아들인 밴 프리트 중위가

돌아오지 못한 마지막 출격에서 몰고 나간 폭격기가 이 B-26이다.



1951년 2월 얼어붙은 북한 상공을 나는 B-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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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장에 첫 데뷔를 이렇게 장식한 B-26은 전쟁 내내

적 저항 거점이나 후방의 시설물, 군수품 야적장, 철도,

보급로등의 폭격등, 적의 대공포화에 맞서야하는 궂은
대지공격을
마다 안하고 내내 수행했는데 이중 대부분은
야간에 출격한 것이었다,



한국전의 대표적 유명 사진인 이 사진도 B-26이
실시한 폭격 장면을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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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목표물을 찾아 야간에 산악 많은 북한 상공을 저공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격자체가 기본적으로 큰 위험을
내포한 것이다. 


유엔군의 항공력이 두려워서 어두운 야간에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공산군 보급대에게 갑자기 폭음과 함께 나타나 조명탄을

쏘거나 써치 라이트를 비추고 이어서 기총소사나 폭탄을 퍼붓는

B-26은 밤 도깨비 같은 괴로운 존재였다,


야간 출격을 B-26만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야간에 절대 필요한

많은 폭탄 적재량과 긴 항속거리등을 B-26만큼 갖춘 이상적인

공격기는 없었다,


유엔군이 1951∼1952년,적 후방에 일정지역을 정해놓고 밤마다
출격해서
적 철도등의 보급로를 폭격했던 교살 작전
[OPERATION  STRANGLE]에서도 작전의 최고 적임자는
B-26밖에
없음을 증명해주었다,



야간 출격 비행중인 B-26의 조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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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6의 이력과 제원을 알아보자.

B-26은 미국이 한창 전쟁 중에 있던 1942년 첫 비행을 하고

실전 배치는 1944년부터였다.


그러나 항공기 매니어라면 조금 이상한 사실을 느낄 것이다,

역사에 B- 26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 시킨 활약 중의 한 해전으로

미드웨이 해전이 있다,


미드웨이 섬에서 출격하여 어뢰를 품고 일본 기동함대에 육박하던

4 기의 B-26기들이 다 격추되거나 대파 된 일이 있었다,


이 때가 1942년 6월이다.

한국에서 활약하던 B-26이 첫 실전 배치되기 시작했던
1944년 보다
2년이나 앞선 해이다.


그러나 이차 세계대전의 경폭격기로 맹활약하던 B-26와

6·25전쟁 중에 활약하던 B-26과는 같은 프래트 & 휘트니사의

R-2800 엔진을 쓴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항공기다.


다시 말하면 B-26기가 두 기형이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시 활약하던 B-26은 마로더라는 이름을 가졌고

마틴 사에서 제조하였다.



마틴 B-26 마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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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활동했던 B-26은 이차 세계 대전 중에는 A-26이라는

모델명이 활약했고 별칭은 인베이더였다.

태평양 전쟁 초기 활약하던 A-20 허드슨 폭격기의 후계기다.


A-26인베이더의 전신 A-20 허드슨기가 비스마르크해전에서
반도폭격으로 일본 수송선을 격침 시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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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명공격기 스카이레이더의 제조 회사였던

더그라스사가 개발 생산했다.


전쟁이 끝나고 마틴 사의 마로더 폭격기는 은퇴하고 1949년

A-26이 마틴 마로더의 B-26이라는 제식 명을 승계 받아

활동을 계속했다.


전후 삭감되어 제한된 예산으로 두 가지 비슷한

성능의 폭격기를 운용한다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A-26이 기존 B-26보다 성능상 여러모로 더 낫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B-26 인베이더는 여러 파생형이 있지만 크게

B와 C 의 두 가지 주력 모델이 있다.


하나 즉 인베이더 B형은 기수에 8정의 Cal. 50 기관총을

장비한 대지 공격형이다,


더 발전한 형은 양 날개에도 각기 3정, 총 6문의 기관총이

장비되어서 총 14정의 기관총을 가진 형도 있다,



B-26 B형의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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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형은 C형으로서 기수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고

정밀 폭격을 위한 노르덴 조준기가 붙어있다.


노르덴 조준기는 자이로 장치가 붙어있어 비행 중 기체가 흔들려도

조종수는 흔들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밀 폭격을 할 수가 있다,

B-17을 정확한 폭격으로 유명하게 만든 정밀 장치이다,

B-26 기 두 모델 다 한국전에 참가했었다.

6·25전쟁중 최초 출격했던 B-26은 미 공군 3 폭격 비행단의
B-26 C 형이다.

한국전이 격화되자 경폭격기가 더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8월 19일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예비역으로

편입하고 활동을 중지했던 제 452 예비 비행단이
다시 소집되었다.


소집된 452 비행단은 그 해 11월 일본 규우슈의 이타쓰케
비행장을
기지로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기존의 3 비행단이 야간 출격을

전담하고 452 비행단은 주간 폭격을 수행했다.



B-26기의 조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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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참전이 확대되자 더 가까운 혼슈의 서쪽 해안에 있는

미호 비행기지로 옮겨가 출격했다.

1951년 초에는 부산의 동쪽에 있는 비행장으로 옮겨가 출격 수를

증가시켜서 주간은 물론 야간 폭격까지도 감행했다.


1951년 5월 경험이 축적된 452 비행단은 야간 출격 전문의

3 폭격 비행단과 같이 야간 폭격만을 전담 출격했다.

두 비행단은 한반도를 수직으로 나누워 동해안 쪽 절반은
452 비행단이
담당하고 서해안쪽 절반은 3 폭격 비행단이 담당했다.


452 폭격 비행단은 1952년 5월에 다시 동원 해제되어

예비 비행단이 되고 장비와 인원은 17 비행단으로 흡수되었다.


452 비행단은 활동 기간에 15,000회를 출격했는데 이중
7,000회는
야간 출격이었다.

인적 손실도 상당해서 85명이 전사했다.


휴전이 될 때까지 3비행단과 452 비행단은 적 후방 폭격을 통해서

38,500대의 차량과 406량의 기관차와 철로로 다니는

철도 트럭 3,700대를 파괴했다.

[도로망이 빈약했던 소련이 개발했던 것으로 타이어는

 기관차 바퀴로 교체해서 운행했다.]

적 비행장의 폭격으로 적기 7기를 파괴하는 기록도 수립했다.


B-26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회담이 발효되기
불과 24분 전까지도
야간 폭격 임무를 수행했었다.


6·25전쟁중 B-26기의 총 전투 출격 비행시간은

232,000 시간이나 된다 .

전쟁 중 발사한 Cal 50구경 실탄만 2,000만발이 넘는다



B-26의 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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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전략가는 B-26이 주로 적의 보급로 차단작전에
대단히
성공적인 활약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평가는 전후 북한 공군의 고위 간부가 한국전쟁 중
가장 두려웠던
유엔군의 항공기가 밤에 북한 상공을 누비고
다니던 B-26기들이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뒷받침 해준다.


B-26은 한국에서의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뒤에도
그 왕성한 활동을 세계 여러 곳으로 확대해 나갔다.


B-26 엔진- 2000마력으로서 1600마력의 무스탕 엔진보다도
더 마력이 좋고 두 대형 엔진이 내는 큰 폭음은 B-26의
특징이라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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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군이 B-26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도 사용했는데 유명한

디엔 비엔 푸에서도 포위된 프랑스군을 지원 출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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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B-26은 유명한 사건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된다.


즉 케네디 정부는 카스트로 정부 타도를 위해서 반정부 세력을

쿠바 피그스 만에 상륙시켰다가 모두 카스트로 측에 토벌되는

비극을 맛보았다.


상륙 작전 직전에 미 CIA 소속 조종사가[망명 쿠바인]
쿠바 공군으로
위장하고 쿠바 기지를 폭격하고 플로리다로
망명하는 위장극을
연출했었다.

이 장면은 세계의 톱 뉴스로 보도되었다.

크게 실패한 이 작전에 동원된 CIA의 B-26기는 20기가
되었지만
그중 9기나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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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B-26은 세계 여러 곳의 분쟁지역에서
활약했다.


월남전 초기 CIA가 펼친 동남아시아 여러 곳 작전에서
이 폭격기는
단골로 얼굴을 내밀었었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포루투갈이, 그리고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군이,

비아프라군 이 B-26기들을 도입해서 실전에 사용했었다.


미국의  B-26기는 주 방위군이 마지막까지 사용했으나

1972년 모두 은퇴했다.

[그 뒤 소수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산불 진압용으로 사용되었다.]



B-26의 편대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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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폭격기는 전장에서의 활약은 아직 종말을 고하지 않았다.

1978년 인도네시아가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있던 서 티모르를

침공 했을 때 인도네시아 공군은 B-26기의 마지막 전투 출격을

감행했었다.


이미 제트 시대가 왔는데도 이 탁월했던 성능의

폭격기는 수명이 다 할 때까지도 활약을 했던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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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태 2010.05.03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26 폭격기가 두가지가 있었네요.
    여기까지 와서 울프독님 글을 보니 참 좋습니다.
    건필~~!

  2. get addiction recovery program 2012.05.29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이런 종류의 내가 비록 지금 자신의 정보가 뛰어난 될 수 있습니다 대해 고려하고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정 정보를 제공을 위해 감사합니다.

  3. visit site for assistance 2012.05.29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토와 함께 우수한 기사의이 유형에 대한 감사, 나는 완전히 astounded입니다! 되는가 도착 만요.

  4. rattan indonesia 2012.12.3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중요한 전망과 더​​ 많은 블로그와 포

평북 숙천의 공중 강습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21 08:30
 

6·25전쟁에서 병력을 투하하는 C119 박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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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 대규모 공수 작전은 두번 있었다.


한번은 평양 북방 숙천 순천 지역에, 두번째는 서울 북방
문산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공수 투하에 주로 동원 된 C119 박스카,
그러나 C-46과 C-47도 공수 작전에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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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 맥아더의 GHQ휘하 예비대로 일본에 주둔하던
187연대가 동원되었다. 187연대의 정확한 명칭은
187 연대 전투단 [RCT-Reginment Combat Team]으로서
준장이 단장이었다.
현지 일본인이 부대를 부르는 애칭칭인 라카산[낙하산]이
부대 애칭이다.


187 공정단의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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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서 북의 수도 평양을 향하여 진격하고
있을 때인1950년 10월, 맥아더는 북한군이 붕괴하는 시점에
평양을 빠져나가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 병력과 북한 공산당과
정부 관리들을 섬멸하거나 체포하고 한편 끌려가는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 187 공수 연대의 한국 투입을 결심했다.


한국군 1사단과 미 1기병사단은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했다.
맥아더는 1950년 10월 20일 평양 북방에 공수부대를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평양을 점령한 지상군은 계속 진격해서 투하된 공수부대와 함께
도주하는 적군과 끌려가는 미군 포로들을 중간에
포위하자는 계획이었다.


187 공정단의 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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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지점은 두 곳이었다.

주력이 투입될 곳은 평양 북방 50키로 지점의 숙천이고
다른 한 곳은 숙천에서 25킬로 미터 동쪽에 위치한 순천이다.


이 두 곳은 평양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주요 두 국도가
통과 하는 곳이다.

187연대의 1대대가[1450명]이 먼저 낙하해서 숙천을 장악하고
읍의 동쪽과 북쪽의 산을 점령했다


다음 2대대는 같은 지역에 낙하한 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3킬로 전방의 언덕을 점령하고 도로와 철도를 봉쇄했다.


제 2대대[1200명]에 낙하하여 목표를 장악하고 국도를
페쇄 한 뒤에
순천 동남방에서 청천강을 향하여 북진하는
한국군 6사단과 연결했다.

그 다음날 10월 21일 숙천과 순천에 낙하한 두 부대는
서로의 방향으로 정찰대를 파견하여 상봉했다.


숙천 낙하 1대대는 숙천 북방으로 진출하여 상당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여 봉쇄를 더욱 완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10킬로 지점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저항을
만나
치열한 교전을 했다.



6·25전쟁 참전 호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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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인 21일 미 24사단과 선두에 선 배속 27 영연방
여단이 선도하는
가운데 미 24사단이 숙천으로 진격했다.


다음날 22일 북진하던 영연방군은 어파리에서 숙천에 낙하한
공수부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던 북한군과 조우했다.

북한군은 총구를 뒤로 돌려 영연방군을 공격했다.

양쪽에서 공격받은 북한군은 격멸되고 받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협격되어 격멸된 북한군은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했던 북한군 239연대였다.

이 연대는 북한군 주력의 철수를 엄호하는 후미 방어를 맡아서
청천강과 평양 사이의 최고 방어 거점인 어파리에 진지를
만들어 놓고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미영군의 합동공격에
결국 소멸되고 말았다.

어느 정도 전과를  거둔 공수 작전이었지만
북한군의 주력은 미군들이 낙하하고 있었던
시점에 청천강을 도강했거나 도강중이었으므로
적을  간발의 차이로 놓친 결과가 되어 최대의
전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특히 영연방군의 선두에 섰던 오스트리아군  
대대의 활약이 컸다..


사리원에서 돌격하는 호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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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영 연방군이 동 지역을 인수하고 187연대는
전원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이 숙천에 투입했던 연대 규모의 공수 투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적의 주력부대를 차단하여 함정에 가두지도 못했고 적의
중요 인물 체포도 못했고 포로들을 구출하지도 못했지만
일천명의 적병을 사살하고 3,818명의
포로를 획득했다.


6·25전쟁의 대규모 공수작전은 5개월 후 다시 있었다.

북진했던 미군은 개입했던 중공군에게 밀려서 다시 서울까지
내놓고
후퇴하여야 했다.

사고로 전사했던 워커의 후임으로 부임한 리지웨이 장군은
리퍼 작전으로 다시 북상하여 서울을 문턱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경은 중부 전선의 춘천에 집중되어 있었다.


C-46, 전쟁 기념관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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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의 정보부서는 춘천을 중공군의 주요 보급지며
통신 시설이 집중된 지역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리지웨이는 완강한 저항이 예상되는 춘천 후방에 187공수
연대를
낙하시켜 춘천 중공군의 붕괴 철수를 유도하기로 하였다.


작전 개시 예정일은 1951년 3월 22일이었다

그러나 공수 연대가 작전 준비를 거의 마쳐가는 3월 19일
미 기갑 선발대가
춘천 시내에 돌입하자 적은 재빠르게
철수해버려 공수작전은 취소되었다.


리퍼 작전이 서울 점령으로 마무리되자 릿지웨이는 이 작전의
최종 목표를 서울에서 문산 북방 임진강으로 변경하고
서울을 점령한 미 1군단에게 계속 진격을 명했다.

문산에 투하된 미 공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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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미 1군단은 서울을 벗어나 임진강을 향하여 북진했다.

리지웨이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1군단의 진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이미 준비된 187연대와 2개 중대의 레인저 중대를
포함한 3,000명의 병력을 23일 개성과 서울사이에 투입하기로
하였다.



C-119 복스카 내부 -전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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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작전이 개시되었다.
수송기만 90기기 동원된 대대적인 공수작전이었다.
그러나 첫 낙하의 1대대 간부들의 수송기가 엔진고장으로
대구 비행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차질이 있어서
공수 낙하는 하루 더 계속되었다.

공수 부대는 문산 북동쪽 개활지에 낙하되었다.
공수 연대와 레인저 중대는 낙하 즉시 동쪽으로 진격하였다.
불량한 기상과 도로 사정으로 전진이 늦어졌지만 공수부대는
문산 북방의 감제고지들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한편 23일, 그로든 중령이 지휘하는 73탱크 대대
[TF 그로든, 백선엽 장군의 1 사단과 같이
 평양에 돌입했던 부대다]가
서울 - 문산 축을 진격해 올라갔다.


대전차 지뢰가 많아서 시간이 지체 했으나 24일에는
공수 부대와
링크 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이미 서울을 내놓고 멀찌감치 북쪽으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적을 함정에 가두기 위한 목표는 실패했지만 미 3사단의
최종 목표인
임진강선 점령을 손쉽게 하는 목적은 거두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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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낙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댓글

  3. medical billing and coding 2011.10.29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당당히 봉사활동을 했었다는...취재진들의 질문이나 포즈에도 적극 응해주고 말이

  4. Asteroid Stack 2011.11.05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댓글

  5. Handy ortung 2012.02.07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것이 미래에 더 할 것이라고 생각, 난 당신이 귀하의 블로그와 제공하는 상세 정보에 넣어 내 지식 , 시간과 노력에 추가한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6. online stock trading 2012.04.16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군 단일 지휘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강수를 두게 하였을 만큼 참담하였습니다. 평창-횡성전투, 사창리전투의 연속된 패전으로 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신뢰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벌어진 현리전투의 결과는 그야말로 국군을 믿지 못할 존

  7. insurance payments on my income tax 2012.05.3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문서에 아주 좋아요 세부 사항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고맙게도 제가 당신의 웹사이트 전반에 걸쳐이 우연히 나타났습 이외에 대학 신문에 집중하자이 주제에 대해 첫째 주에 살펴본. 이 기사를 읽고 좋은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8. insure gear just 2012.05.31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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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1 09:52

[일본 쓰이키 기지에 주둔하던 F 80 비행단 기록 필름]


  6·25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보면 한 미묘한 사실이 발견된다.  남한과 북한의 후원국으로 간접적인 전쟁을 하면서도 직접대결은 극력 피했다는 사실이다. 전후 완전히 무장을 해제 하다시피했던 미국 자신도 그랬지만 유럽의 우방국들, 영국이나 프랑스등도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판국이니 대규모 무력 충돌은 피 할수가 없었다. 스탈린도 북한의 침략을 허락했었고 6·25전쟁중에 북한과 중국이 사용하던 전쟁무기들을 꾸준히 공급했으면서도 미국과 전면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다. 소련 공군이 만주지역에 기지를 두고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참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조종사들에게 소련어가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라고 명령했었다.[조종사들의 반발로 이 무리한 명령은 취소되었다.]


   미군 역시 소련을 자극하는 군사행동은 자제했다. 6·25 참전 초기 황해에서 소련 해군기를 격추 시켰을 때도 비밀로 했었고 대청도 근해에 몰래 잠입해 들어온 소련 잠수함을 격침하고도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직접 대결을 피하기 위한 군사력 충돌을 피해 오던 양국의 조심성을 비웃는 직접적인 군사 공격이 있었다.


  미 공군기 두 기가 동해안에 인접한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물론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은 공격이었다. 1950년 10월 8일. 소련 우라지보스톡 인근 쑤카야 레츠카 공군 기지를 두 기의 전투기가 공격했다. 동체에 별 표시가 뚜렷이 보이는 미 공군 F-80 두 기가 바다로부터 초 저공으로 내습, 비행장을 기총 소사했던 것이다. 이 F-80기들은 대구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 공군 49 전투 비행단 소속이다.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전투기 형인 F-80 슈팅 스타기]


  대공 포대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두 기는 일열[一列]로 주기한 소련 공군의 전투기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했다. 기총소사를 하고 스쳐갔던 두 F 80기들은 아무런 대공 사격이 없었던 것에 자신을 얻어 원을 그리고 되 돌아와 기총소사를 한번 더하고 재빠르게 도주했다. 이 소련 공군 기지에서 미공군기들에게 기총소사를 받고 격파 되었던 소련 전투기들은 공교롭게도 미국제 P-63 코브라 전투기들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초기 그 열등한 성능으로 일본 해군 제로기에게 고전했던 미 벨사 제작 P-39기를 성능을 개선한 형이다.


[P-63, 엔진이 비행석 뒤에 있다.]


  미군에게는 성능이 좋은 전투기들이 속속 투입되어서 이 전투기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당시 독일군과 싸우던 소련군에 제공되어 주로 대지 공격기로 많이 활용하였다. 주둔했던 소련  공군 부대는 821 독립 초계 비행단이었다. 일열로 주기했던 탓에 12기의 P 63기들이 F-80의 기총소사로 구멍 투성이가 되었고 연료를 만충해 놨던 한 기에서는 화재가 발생해서 완전 염상(炎上)해 버렸다. 벌집이 되었던 전투기들은 그럭저럭 수리를 해서 다시 비행 가능 상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불붙은 한 기는 다 타 버려 수리가 불가능했다. 소련 측에게는 다행하게도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F-80 슈팅스타 , 한국 공군에서 이 기형의 연습기인 T-33기를 운용했었다.]


  난데없이 공습을 받은 소련은 격분해서 미국 측에 강경하게 항의했다. 미 공군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그날 출격했던 두 명의 조종사들을 일본의 극동 공군 사령부에 불려가 치밀한 조사를 받았지만 두 사람은 ‘항법상의 실수’ 로 소련 영토에 침입해서 공습을 했다는 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미 공군도 그렇게 발표했다. 외교의 뒷 무대에서 미국이 ‘유감‘ 표명 정도의 사과는 했는지 하여튼 소련은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소련 비행장을 습격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속내는 지금으로서 알 수는 없다.



[P-63]


  그리고 이 동해안 최북단은 주로 미 해군 함재기들이 활동하던 구역이었는데 미 공군 F-80 전투기가 이 먼 곳까지 출동한 것도 좀 이색적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하나마 추정 할만한 배경은 있다. 당시 동해안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었던 중국 군용 비행장은 두만강 바로 옆에 위치한 훈춘에 있던 것이었다. 몇 년 전에 가 보니까 비행장은 없어지고 밭이 되어있었다. 훈춘 비행장의 공중 정찰 사진을 북한 땅에 있는 비행장으로 잘못 분석했던 결과를 비행사들에게 브리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훈춘 비행장과 우라지보스톡- 보이지는 않지만 우측 만에 있다.]


  가까운 북한 땅 회령에 옛 일본 육군 항공대의 9 비행연대 비행장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오해의 소지는 기본적으로 있었다. 그러니까 출격한 비행사들이 소련 비행장을 발견하고 이를 북한 비행장으로 착각하고 공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일도 있었다. 6·25전쟁 초기 일본에서 평양을 폭격하고자 야간 출격했던 비행대가 전북 만경강을 대동강으로 오인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으로 오인한 이리를 폭격했던 어이없는 사례가 있었다. 이 실수가 소련 비행장 폭격 같은 오류는 얼마든지 범할 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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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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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 역은 이렇게 전쟁시 폭격을 당했고,
    이후에 1977년 11월 11일 밤 한국화약열차에 의해 또 한 번 폭파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건이 이리역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물론 삼일만세운동이나 기타 의병활동도 있기는 하였지만 단일 사건으로 가장 컷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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