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08.16 72. 국군을 노린 공세 (4)
  2. 2010.08.12 71. 예견된 대전투 (2)
  3. 2010.08.10 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3)

72. 국군을 노린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6 08:26

 

  사령관 밴 플리트나 미 제8군사령부의 판단과 달리 중국 지원군사령관 펑떠화이는 국군이 담당하던 동부전선에 커다란 돌파구를 형성시킴으로써 서부전선의 후퇴를 유도하려 하였습니다. 펑은 전임 제8군사령관이자 현 유엔군 총사령관인 리지웨이처럼 서울이라는 상징적인 목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중-동부전선에서 한국군 사단들을 격멸하여 배후를 차단하면 자연히 서부전선을 고립시킬 수 있고, 그렇다면 지난 제1, 2, 3차 공세 당시처럼 미군을 일거에 섬멸하거나 적어도 멀리 밀어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펑떠화이는 동부전선을 노렸습니다.]


  펑은 지난 제4, 5차 공세를 통해 단지 병력만으로 결코 화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음을 뼛속 깊이 통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미군의 화력은 현재의 중공군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미군이 담당하고 있던 서부전선으로의 정면 돌파는 중공군이 더 이상 고려하기 힘든 전략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공군은 그동안 너무 많은 피를 미군의 화력에 의해서 날려버린 상태였고 더 이상 그렇게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중공군은 미군의 화력과 기동력이 제한되는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전력이 약한 국군 부대들을 공격함으로서 화력과 기동력의 열세를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지난 여러 차례의 공세를 통해 중공군은 국군을 상당히 만만하게 보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지난 2월 제4차 공세 당시에 중공군은 횡성을 돌파하면서 국군 제8사단을 궤멸시킴과 동시에 국군 제3사단을 일거에 몰아내어 심각한 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그리고 4월 제5차 공세에서 국군 제6사단을 사창리에서 붕괴시킴으로써 서부전선에서 선전하고 있던 아군을 곤혹스럽게 만든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선의 몰락을 막아낸 것은 지평리를 사수한 미 제2사단 23연대와 가평에서 피로써 중공군을 무참히 격퇴시킨 영연방 제27여단이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결국 중공군은 방어선 전체를 국군이 담당하여 유엔군의 즉각 증원이 어려운 중-동부로 주공을 삼았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1차 목표로 삼은 아군 부대는 신남 지역에 배치된 미 제10군단 예하의 국군 제5, 7사단과 현리 지역에 배치된 국군 제3군단 예하의 제3, 9사단 등 4개 사단이었으며, 2차 목표로 동해안지역에 배치된 수도사단과 제11사단도 포함시켰습니다. 당시 국군은 총 10개 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중 6개 사단이 홍천 북방 자은리로부터 동해안까지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즉 중공군은 단 한 번의 공세로 국군의 6개 사단을 모조리 섬멸하겠다는 무서운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철저하게 미군을 회피하고 국군을 상대로 하여 전쟁에 올인 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중공군은 국군이 전담하고 있던 동부전선을 노렸습니다.]


  이러한 중공군의 전략은 국군에게 있어 굴욕이었지만 사실 그런 빌미를 우리가 제공하였습니다. 지난 수차례의 공세에서 국군은 중공군의 꽹과리, 피리 소리에 놀라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 다니는 행태를 반복하였습니다. 미군은 군우리전투나 운산전투처럼 초기에는 망신을 당하였지만 이를 재빨리 극복하였던 반면 국군은 중공군 등장이후 지금까지 교전을 포기하는 행태를 반복하여 유엔군 사령부를 난감하게 만들고는 하였습니다. 개전 초부터 현재까지 북한군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국군은 이상하리만큼 중공군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무한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싸우다가 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공군 그림자에 놀라 총을 팽개치고 도망 다니는 국군의 모습을 미군은 대놓고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중공군의 계획대로 이번 공세에서 국군의 6개 사단이 일거에 붕괴된다면, 중-동부 전선이 완전히 무너져 중-서부 전선의 유엔군의 안전을 결코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의 의도대로 휴전회담이 진행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당시에 공산군은 중공군 3개 병단과 북한군 4개 군단 등 총38개 사단을 보유하였는데, 이 가운데 신남-현리 일대의 국군부대를 포위섬멸하기 위해 중공군 제9병단과 북한군 3개 군단 등 총 18개 사단을 동원되었습니다.


[공산군은 공세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


  서쪽의 중공군 9개 사단이 국군 제3군단 좌측에 위치한 국군 제7, 5사단과 미 제5사단 지역을 돌파해 오마치, 계방산, 속사리 방향으로 진격함과 동시에 동측에서 북한군 9개 사단이 국군 제3, 9사단 지역을 돌파해 배후에서 중공군과 연결함으로써 3중의 엄중한 포위망을 구축하려 계획하였습니다. 이처럼 공산군은 주공이 3중 포위망으로 국군 제5, 7, 3, 9사단을 일거에 격멸시키는 동안 12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조공이 서부전선의 미군을 현 위치에 잡아놓고, 나머지 8개 사단이 중부전선에서 여주 방향으로 돌파하여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을 분리함으로써, 서부의 유엔군 부대가 주전장인 중-동부 지역으로 지원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조치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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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도승우 2010.09.22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민당군에게 노획한것이 분명한 독일제 37mm 대전차포네요.(47mm 일본제 1식대전차포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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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예견된 대전투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2 09:09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끝나고 아군의 반격이 얼추 끝나가던 5월 초, 교통의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일대에서 전선으로 향하는 공산군 측 군수물자의 수송량이 눈에 띠게 증가되고 있음이 포착되었습니다. 더불어 포로를 심문한 결과, 지난 공세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군은 곧바로 공세를 재개할 것이라는 첩보도 입수되었습니다. 이런 각종 정보를 분석한 결과 전선에는 중공군 54만, 북한군 20만이 배치되었고 더불어 만주에는 후속투입 될 75만의 예비 병력이 주둔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전선에 집결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은 또 다른 대규모 공세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의미였습니다. 공산군은 지난 제5차 공세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지만 신속한 보급과 증원으로 전력을 조속히 재편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중공군의 전술과 보급 능력을 고려한다면 6월초나 공세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앞당겨 질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도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느 규모의 공세보다 클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반면 당시 유엔군 27만, 국군 23만으로 구성된 아군은 수적 열세를 면하지 못하였고, 다만 화력으로 병력의 부족을 만회해 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사실 중공군의 참전이후 정립된 이러한 패턴은 휴전 때까지 계속하여 이어지게 될 6·25전쟁의 패러다임이기도 하였습니다. 제5차 공세를 물리쳐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밴 플리트는 적의 재 공세가 있다면 현 전선에서 후퇴 없이 적을 저지하여 고착화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일 이 상태에서 적에게 밀려 다시 남으로 철수한다면 간신히 꺾어놓은 적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게 되고, 이것은 차후 예상되는 휴전협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시소처럼 이제까지의 한차례 씩 공세와 방어가 오고가던 반복상황을 그는 끝내려 하였습니다. 이제 아군의 전략은 중공군이 공세를 하면 지연하면서 후퇴하다가 적이 약해지면 반격한다는 소극적 개념에서 현 전선에서 후퇴 없이 적을 막아낸다는 적극적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지난 중공군의 제4차, 제5차 공세를 통하여 일주일 정도만 방어선을 지켜내면 적을 반드시 물리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20여 킬로미터의 전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기 시작하였고 배후에는 강력한 포병전력이 구축되었습니다.  더불어 진지를 고수하며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양의 탄약과 보급물자가 비축되었습니다.


[유엔군도 전력을 정비하여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하였습니다.]


  공산군의 대공세는 조만간 예상되어 있었고 아군도 이에 대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처럼 초조와 긴장으로 고요해진 전선은 어느덧 폭발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기까지는 유엔군 측이나 공산군 측 모두가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산군이 어느 방향으로 공세를 취하려 하는가하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던 중공군의 의지에 딸려있는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대공세라 하더라도 전 전선을 일거에 밀어붙이기는 힘들었습니다. 대개 전선의 일각을 돌파하여 적의 배후를 차단함으로써 전선 전체에 부담을 안겨 주면서 후퇴를 유도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중공군이든 아군이든 즐겨 사용하던 전술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예정된 공세에서 중공군이 어디로 주력을 집중하여 공세를 개시하려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엔군은 이를  예측하는데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5월 중순에 공세가 감행될 것이라는 시점에 대해서는 미 제8군사령부는 정확히 예측하였지만 주공방향은 지난 제5차 공세와 마찬가지로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5월 초 항공정찰 결과와 포로 진술에 의하면 공산군의 새로운 공세는 중-동부의 산악지역에서 감행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적의 페인트 모션으로 보아 묵과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사령부는 미 제3사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예비전력을 서부전선으로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유엔군은 예비전력을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 방어선을 강화하였습니다. ]


  이처럼 제8군이 오판하여 서부전선 강화에 주력하자 국군 6개 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중-동부지역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는 중-동부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의 전력도 약한데다 국군이 산악지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선다면, 설령 예상과 달리 적의 공세가 그쪽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엔군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이곳으로 주력을 지향하려는 데는 지난 수차례의 공세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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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0 09:04

 

  공산군의 제5차 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자,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즉시 반격에 나섰습니다. 전임 사령관 리지웨이는 일단 상황을 본 후 점진적으로 공세로 전환하는 신중한 스타일의 지휘를 하였지만 밴 플리트는 저돌적인 성격대로 즉각 추격을 결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공산군의 전투력이 고갈된 취약시기를 이용하여 적을 38선 이북으로 완전히 밀어 붙이고 공산군에게 차기공세를 준비할 수 있는 재편성과 휴식의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밴 플리트는 곧바로 반격을 개시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


  사실 이것은 상당히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중공군의 약점이 무엇인지 간파한 이상 그들이 회복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5차례의 공세를 통해서 중공군은 한번 공세가 끝나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회복기를 두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을 알게 된 이상 집요하게 파고들어 적을 괴롭게 만들수록 중공군의 재정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이번 중공군의 공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중동부전선을 좀 더 위로 쳐올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세 당시에 공산군 주력을 서부전선에서는 훌륭히 막아내었지만, 오히려 중공군 조공이 견제 공격을 가한 중동부 전선에서 아군은 고전을 겪었습니다. 전선 중앙의 사창리에서 벌어진 국군 제6사단의 붕괴는 서부전선에서 선전을 펼치던 아군이 서울을 다시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철군하여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더불어 중-동부전선의 주 보급로인 홍천-인제-간성간 도로가 북한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당하였습니다. 따라서 태백산맥 서쪽의 국군 제3군단과 동해안 연안의 국군 제1군단은 보급로가 제한을 받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밴 플리트는 전술도로의 탈환이 시급함을 깨닫고 서부전선에서 적의 공세를 좌절시키자마자 즉시 반격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전방 각 사단들에게 5월 2일부터 위력수색과, 중요목표지역에 대한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부전선의 국군 6개 사단이 5월 7일, 미주리 선(Missouri Line)으로 명명된 춘천-인제-미시령-속초를 연하는 선을 향해 일제히 반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히 확보해야할 고지가 인제의 우측을 감제하는 위치에 있는 한석산과 매봉이었습니다. 당연히 적 또한 이곳을 계속하여 차지하려 하면서 연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한석산과 매봉을 놓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 포로가 된 북한군 )


  당시 한석산을 공격한 부대는 국군 제3군단 9사단 30연대였는데, 이 전투에서 제30연대는 72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적 사살 895명, 포로 42명과 4트럭 분량의 보급품 및 탄약을 노획함으로써 지난 제5차 공세 당시에 깊숙이 남진하여 있던 북한군에게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 전투는 1,000미터가 넘는 산악 능선에서 대승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는데, 여담으로 참패를 당한 북한군은 약 1년 전 6.25전쟁 초기에 바로 인근의 홍천에서 굴욕을 겪었던 제12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30연대가 혈전 끝에 확보한 한석산은 차후공격을 위한 유리한 발판으로 사용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실 고지는 차지하면 적을 감제하기는 쉽지만 후속 보급이 어려워 지속적으로 확보하기가 생각보다는 어렵습니다. 특히 전선이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어 유동적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뒤이어 실시된 중공군 제6차 공세를 견디지 못한 국군 제3군단이 현리 일대에서 붕괴되었을 때 어렵게 확보한 한석산은 이 같은 이유로 곧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음 공세를 준비완료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 제5차 공세를 슬기롭게 막아내고 5월 2일부터 5월 중순까지 곧바로 실시된 반격작전으로 전선을 12~14킬로미터를 북상시켜 38선 일대에 다시 고정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공군의 제5차 공세는 중공군의 출혈을 유도하며 전선을 오히려 북상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패로 막을 내린 제5차 공세에서 공산군은 아군 전선의 결정적 약점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곧바로 개시된 제6차 공세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제5차 공세 당시에 중공군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제6차 공세가 예상보다 빨리 실시되었고 이것은 전사에 엄청난 피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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