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탈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19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13)
  2. 2010.07.13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2 ] (10)
  3. 2010.01.05 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4)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9 09:16


  불과 3명의 적병을 사살하고 서울을 탈환한 제1 보병사단  오늘날에도 국토방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기간에 치러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1950년 9·28 서울 수복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비해 51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제2차 서울 수복작전은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50년 9월의 1차 수복작전이 수만 명에 달하는 적의 격렬한 저항을 극복한 후 이뤄졌던 데 반해, 2차 수복작전은 좀 싱겁게 끝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1951년 3월 14·15일에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선봉인 제15 보병연대가 서울에 입성한 이후 적의 경미한 저항만을 받았을 뿐 이렇다 할 치열한 교전없이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서울을 함락한 이후 중앙청 앞에서 승리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 
  이 작전은 미 제8군이 3월 7일부터 발동한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인데 당시 제8군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이 작전을 통해 중부의 미 제9 군단 예하 25 보병사단이 양수리와 팔당 부근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해 서울 동측을 위협하는 한편 한강 남안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미 제1 군단( 한국군 제1 보병사단·미 제3 보병사단)을 투입시켜 큰 피해 없이 서울을 탈환하려 했습니다.
  1951년 3월 7일 전 전선에서 UN군의 리퍼 작전이 개시되자 중·조연합사령관 펑더화이는 미 제25 보병사단의 도하와 중동부 지역에서 감행된 미 제10 군단과 한국군 제1 군단의 공격에 대해 지연전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펑더화이. 리퍼 작전이 개시될 시점에서 펑더화이는 현재 극심하게 소모된 전력으로 반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고 신속한 철수 지시를 하달합니다.
  당시 베이징 방문 이후 막 전선 사령부에 복귀한 펑더화이는 3월 9일 한강 남안 진지에 있던 제38군의 1개 보병사단과 제50군의 1개 보병사단에 한강 북쪽으로 도하에 성공한 미 제25 보병사단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3월 11일에는 베이징의 저우언라이에게 “우리 군은 그 동안의 전투로 전력이 너무 많이 손실되었습니다. 따라서 재편성할 시간을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포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후미 부대로 지연방어를 펼치면서 일선의 유생역량을 보존하고 적 주력을 흡수해 38선까지 진출하도록 합니다.”는 내용의 작전 의도를 밝히는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그의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극도로 혹심한 손실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아! 6.25 방문자 여러분 중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그와 테란을 통해 "인해전술"과 "화해전술"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저그하면 빠른 확장과 부화장, 3마리씩 생산되는 라바를 통한 압도적인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 중국 인민지원군을 저그족으로 보면 되는 셈이죠.
  반면 테란은 대량 생산능력 및 보병 전력이 취약하지만 대신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크라이트 공성전차와 토르, 전투 순양함 등으로 대표되는 '화해전술'을 구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테란이 UN군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1951년 1월 말에서 2월에 걸쳐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부족한 병력의 열세를 강력한 화력으로 보완하는 '화해전술( 火海戰術 )'을 구사했습니다.
  안 그래도 추위와 적시에 보급을 받지 못해 허덕이던 중국 인민지원군은 인해전술을 감행할 때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포탄과 기관총탄, 폭격으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서울을 함락시킨 후 한강 남쪽까지 진출하는 과정까지 누적된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연히 UN군의 리퍼 작전에 맞서 과거와 같은 대 반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무리였던 셈이었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철수하여 후방에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1951년 1월 말부터 감행된 UN군의 맹렬한 공격은 오랜 국공내전 및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인민지원군의 정예병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펑더화이로서는 중국에서 추가적으로 증원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재 전선에 배치된 전력만으로 싸워야했던 한계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죠.
  이에 따라 서울을 방어하던 북한군 제47 보병사단과 중국 인민지원군 제50군에는 3월 13일, 도시를 포기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들은 3월 14일까지 서울에서 완전 철수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3월 14일 제15 보병연대장 김안일 대령에게 수색대를 투입시켜 한강을 도하한 다음 중앙청까지 진출해 적정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미 제3 보병사단과 제1 보병사단 15 보병연대는 치열한 시가전을 치를 것을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죠. 솔직히 위 게임장면을 봐도 알 수 있듯 일선 군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피를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수색대의 지휘를 맡은 제15 보병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장 이석원 중위는 소대를 이끌고 마포 쪽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역을 거쳐 중앙청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이 중앙청까지 행군하는 동안 적의 저항은 하나도 없었고 사실상의 무혈입성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 다가갔을 무렵에야 처음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하는 적을 발견하니 사실상 싱겁게 서울에 진입해 작전을 수행한 셈이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서 적 기관총팀의 저항을 받았을 뿐 사실상 서울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석원 중위는 별다른 문제없이 전방 고착견제와 측방 타격조 우회 전술을 이용해 적 기관총팀 3명을 사살하고 중앙청에 입성했습니다.
  "뭐야, 이 녀석들. 전부 도망간 것 아냐?"
  이석원 중위와 수색대원들은 문자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좀더 수색한 결과 서울 시내에 적이 철수하고 없다는 정황을 확인한 후 저녁 무렵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연대 본부에 복귀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최종 보고를 접한 김안일 대령은 3월 15일, 예하 3개 대대 전체를 서울 시내로 진출시켰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습니다.
  무혈입성하기는 했지만 이미 서울은 치열한 격전 끝에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죠. 사진은 전화로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모습입니다.
  1차 수복 당시에는 해병대가 그 몫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1 보병사단이 그 역할을 수행한 셈이었죠.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치열한 격전 끝에 탈환했던 평양과 달리 너무나도 손쉽게 무혈입성한 서울 탈환으로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기에 장병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요.
  펑더화이의 ‘서울 자진철수’ 결정 및 제47 보병사단이 서울에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중국 측에 격하게 항의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의견이었던 탓에 저우언라이에 의해 간단히 묵살당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1951년 5월 중순까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제1 보병사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서울을 완전 수복한 제1 보병사단의 활약은 오늘날에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제1 보병사단이 탈환한 서울은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의 맹렬한 대공세에도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휴전을 맞이하며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굳건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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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8.19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준기님// 감사합니다.

    제2차 서울탈환작전은 중공군의 신속한 퇴각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작전을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이번 탈환작전으로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전세에 중요한 국면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의의를 둬야겠죠

  2. 강현구 2010.08.2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Ⅱ : 자유의 날개 화면이네요. 울트라리스크와 히드라리스크 대군에게 쫓기는 테란군이라....

    딱 적절한 대조 같습니다.

  3. 김준기 2010.09.15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 님

    내가 김준기인데 위의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요.

    우리 아빠가 내이름으로 열어놓은 블로그인데
    거기에 링크까지 걸었군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양심적으로 실고 싶으면 삭제하세요..

  4. 박소영 2010.10.02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지상군 페스티벌 2010에서도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니 서울에서 당장 내려가 보고 싶네요 ^^

  5. 코튼 맨 2010.10.02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국방부 블로그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안타까워요 ㅠ

  6. 리산 2011.06.07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1년 3월 9일경 한강도하에 성공한 미25사단이
    실제로 어디로 도하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일부 책에는 현재의 양수리(두물머리공원),
    전적비는 조안면 쪽에..

    어떤 책에는 덕소쪽이라고 하는데,

    3군데 모두 도하를 한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면 부탁드립니다.

  7. 용뿔 2011.06.2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소하지만, 오타지적입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에서 우뢰는 우레로 정정합니다.우레는 순수 우리말로 천둥이라는 의미입니다.

  8. 이민하 2012.03.25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뺏기고 뺏기는 ..북한 남한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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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박성현 2012.09.0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 상무대 보병학교 교육단 교도대대 화기중대 상병 박성현 입니다.

    본 포스트를 읽으면서, 먼저 일반적으로 20대들에게 친숙한 스타크래프트2를 인용하며 포스트를 해 주셔서 더욱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포스트로 제 1보병사단의 활약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자신부터라도 남은 군생활 동안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복무하겠습니다.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21sunghyun@naver.com

  13. Get more info about Luminix Power 2014.02.13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2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13 07:59

 

  한강교량 폭파는 시기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후퇴 시 한강교량 같은 거대한 다리의 폭파는 철수하는 아군이 철수가 완료된 후 적의 추격 도하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실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한강교량들이 폭파될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우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성급하게 폭파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관련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한강교량의 폭파는 시기부터 잘못된 작전이었습니다]


  다리가 폭파되던 당시에 북한군 주력은 아직 서울 외곽에 있었고 오로지 2대의 북한군 전차만이 당시 서울의 북쪽 경계인 미아리를 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서울 방어를 위해 투입된 많은 아군부대들이 한강 북쪽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는데, 동부전선의 제6, 8사단과 옹진반도에서 퇴각한 독립 제17연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부대들이 이곳에 투입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서울 방어의 중핵인 의정부 지구에서 선전을 독려하는 최병덕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수뇌부]


  비록 제7사단처럼 초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부대들이 많아 서울의 함락이 예견될 정도로 상황은 암울하였지만 반면 경의축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던 제1사단처럼 고군분투하던 부대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건재가 유지되었건 아니면 무너졌건 한강 이북에 있던 모든 국군 장병들은 침략자를 막아내기 위해서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후방의 한강다리 폭파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싸우던 국군에게 한강교량 폭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후퇴로가 없어졌다는 의미로만 해석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한창 전투와중에 한강다리들을 폭파함으로써 국군 지도부 스스로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증명하였고, 이 때문에 한강이북에 있던 부대들의 전투 의지 또한 급속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전의를 상실한 아군은 모든 중장비를 유기한 체 단위부대 별로 흩어져 한강을 건너게 되는데 바로 이때 전쟁 초기 아군의 전력이 가장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도하하여 후퇴하는 국군의 모습]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지원 나온 미 군사고문단의 처치(John H. Church) 준장은 미증원부대가 올 때까지 서울에서 적극 시가전을 펼칠 것을 권고하였지만 육군본부는 다리를 성급히 폭파함으로써 서울을 사수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반면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 작전 당시에 전력이 열세였던 북한군은 서울을 요새화하여 무려 열흘 가까이나 방어해 내었습니다. 이처럼 서울은 적에게 점령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어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서울은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내어준 것에 가까웠습니다.]


  다리 폭파직전에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전개한 부대는 서울을 방어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야반도주한 위정자들을 따라 함께 내려온 육군본부와 김포반도에 긴급 배치된 일부 부대들뿐이었습니다. 즉, 한강교량의 폭파는 어떠한 전후좌우 사정도 가리지 않고 국군 주력을 한강 이북에 그대로 둔 상태로 무턱대고 벌인 우발적인 사건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한강교량 폭파가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었냐는 폭파 당일의 모습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한강교량 폭파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위정자들의 보여준 무책임의 극치였습니다]


  비록 방송에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위정자들이 서울을 버리고 야밤에 줄행랑쳤다는 소문이 돌자 수많은 시민들이 한강교량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를 통제하지도 않은 체, 다리를 폭파하여 최대 800명으로 추산되는 서울 시민들이 폭사하거나 한강으로 떨어져 익사하였고 50여대의 차량도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아무리 위급한 전시라도 이것은 결코 용납하기 힘든 작전이었습니다.


[개전 초 북한의 남침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최근 드러났습니다 ]


  결국 한강교량의 폭파는 필요하였지만 시기와 방법이 완전히 잘못된 작전이었습니다. 한강교의 폭파로 잃은 것은 수도 서울의 조기함락, 국군의 조속한 붕괴 그리고 죄 없는 민초들의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희생을 대가로 얻은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은 미미하였습니다. 처음 언급하였던 것처럼 처음에는 북한군의 진격을 3일간 막은 이유로도 보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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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의 생명을 아무렇지않게 폭파시킨 당시 위정자들에게 치가 떨린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눈에 보이는것없이 그런 명령을 내려서 국민이 살려고 건너는 것을 알고도 죽였는가? 자신의 뒤에 어머니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더라도 네 아들 딸이 있었더라도 그랬겠나?

  7. mikrolån med betalningsanmärkning 2013.09.0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퇴 시 한강교량 같은 거대한 다리의 폭파는 철수하는 아군이 철수가 완료된 후 적의 추격 도하가 이

  8. Real estate news in Miami 2013.09.15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성급하게 폭파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관련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9. Looking for oceanfront real estate 2013.10.24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10. data entry speed test 2013.11.06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성급하게 폭파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관련 재판에서도 그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톡!톡! 자료실/자료 톡!톡! 2010.01.05 20:32


6·25전쟁 연표Ⅱ(1950. 9. 16 ∼ 12. 31) 

9.16       미 제8군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총반격 개시.

9.18       김포비행장 탈환.  
김일성, 단계적 철수 하달.

9.19       서울 탈환 작전.  
필리핀 지상군 도착.

9.21       소련 외상 비신스키, 유엔총회에서 평화선언 제안.

9.23       육군본부 대구로 이동.  
스웨덴 병원선 도착.

9.26       미 제25사단의 777특수임무부대 오산에서 인천상륙작전부대 미 제7사단
             제31연대와 연결.

9.27       미 합참, 맥아더에게 '9·27 훈령' 전달.

9.28       서울 수복.  미 제24사단, 대전 탈환.  호주 지상군 도착.
            이승만 대통령, 38선 이북 진격 명령.



9.29       중앙청에서 서울탈환식 거행.
             미국, 유엔군의 북진계획 승인.

9.30       미 제25사단, 군산 탈환.  
원주·주문진 탈환.

10.1       맥아더, 방송으로 김일성에 항복 권유.  
             제3사단 및 수도사단, 동해안 지구에서 38선 돌파.
             김일성, 모택동에게 파병 요청.

10.2       유엔군사령부 북진명령 하달.  일성, 북한군에 저항명령 하달.
             소련 외상 비신스키, 한국 휴전안 유엔에 제의.

10.3       주은래, 중공군 개입 경고.

10.6       국군 제2군단, 중부전선에서 북진 개시.

10.7       유엔총회, 통한결의안 가결, 유엔군의 북한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회
             (UNCURK) 설치안 결의.
             신유엔한위(호주, 칠레, 네덜란드, 필리핀, 타이, 파키스탄, 터키 등 
             7개국) 구성.

10.8       유엔총회, 유엔군의 북진 지지.
             모택동, 동북 변방군을 중공 인민지원군으로 개편, 출동 준비명령 하달.
             중공, 북한과 소련에 인민지원군 편성 및 파견 통보.

10.9       미 제1기병사단 개성부근에서 38도선 돌파, 북진개시.
             유엔군총사6령관, 북한군에게 즉각 항복요구.

10.10      국군 제1군단, 원산 탈환.
             중공외교부, 유엔군 38선 돌파에 군사개입도 불사하겠다고 항의.
             주은래, 스탈린을 방문해 군사원조와 공군지원 요청.

10.11      김일성 항복 거부. 최후항전 명령 하달.

10.13      중공 정치국, 소련 공군의 지원 없이도 참전을 결정.

10.14      모택동, 중공 인민지원군 10월 19일 참전 명령 하달.

10.16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원수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 불개입 장담.
             중공군 선발대 압록강 도하.  국군 제3군단 창설.
             이북지역에 비상계엄령 선포.

10.17      국군 제1군단, 함흥·흥남 탈환.
             터키 지상군 도착.

10.19      국군 평양 탈환.  
중공군 제13병단 약20만명이 압록강을 도하.

10.20      미 제187공정연대, 평양북방의 숙천·순천 공수 낙하.
             김일성·팽덕회 회담.

10.21      미 제1군단, 평양에 군정 실시.

10.24      맥아더, 모든 진격제한지시 철폐 전 예하부대 압록강으로 
총진군 명령.

10.25      중공군 제40군 120사단이 국군 제1사단과 운산-온정에서 조우.

10.26      국군 제6사단 7연대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초산에 도달.
             중공군 본대(제50군·제66군) 추가 압록강 도하 개시.
             국군 제2군단 중공군 대병력과 충돌.

10.27      미 제10군단 동해안으로 진군, 미 제1해병사단 원산상륙.

10.29      미 제7사단 이원 상륙.

10.30      이승만 대통령 평양시찰 및 평양탈환 시민환영대회.
             미 제1기병사단, 최초로 중공군과 조우.

10.31      국군, 선천·박천 탈환.
             선천 상공에 중공 미그(MIG) 15기 첫출현.

11.1       중공군의 1차공세 실시, 국군 제6사단에 섬멸적 타격.
             미 제10군단, 장진호 일대 진출.

11.2       유엔군,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
             미 전투기, 선천 상공에서 YAK기 및 미그기 21대 격추.

11.3       미 제8군, 청천강 방어선 전투.
             국군 제7사단, 비호산에서 중공군 1개 사단 격퇴.


11.4       중공 정부, 한국전 참전 발표.
             영국 제27여단, 박천에서 중공군 격퇴.

11.6       맥아더, 중공군 개입에 대한 비난 성명 발표.
             맥아더 압록강 철교 폭파 명령.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초산에서 개천으로 철수 완료.

11.7       캐나다·태국 지상군 도착.
             미 제8군 청천강 선으로 철수.

11.8       미 공군 B29 폭격기 편대, 신의주 부근 압록강교 최초로 폭격.
             신의주 상공서 미국 F86 전투기와 소련군 미그15 전투기가
             사상 처음으로 제트기 공중전.

11.9       수도사단, 인민군과 어랑천 전투 개시.

11.16      트루먼, 중공 영토 존중을 공약.

11.20      인도 야전병원 부대 도착.

11.21      미 제7사단 제17연대, 혜산진 도달.

11.22      이승만 대통령 함흥 시찰.

11.23      국무총리에 장면 임명.  네덜란드 지상군 도착.

11.24      맥아더 사령관, 전쟁종결을 위한 총공세(크리스마스 공세) 명령.

11.25      국군 수도사단은 청진, 제3사단은 백암 점령.
             중공군의 제2차 공세(11월 공세) 개시, 서부전선의 미 제8군을 공격.
             미 제8군, 청천강 철수 개시.  그리스 공군 참전.

11.26      미 제2사단, 구장동에서 중공군과 혼전.

11.27      국군 제2군단, 주저항선 붕괴.
             중공군 장진호의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공격.

11.28      유엔군사령부 긴급 작전회의 개최, 평양·함흥·원산 철수결정.
             터키여단, 참전 후 와원에서 중공군과 최초 전투.
             미 제2사단, 군우리 전투 개시.  맥아더 원수 ‘전혀 새로운 전쟁’ 선포.

11.29      국군 제3사단, 제26연대 혜산진 진출.  프랑스 지상군 도착.

11.30      트루먼, 한국전에 원폭사용 가능성 시사.

12.1        엔군사령부, 유엔군의 전면후퇴를 결정.
              미 제8군, 숙천·순천·성천 방어선 형성.

12.3        국군과 유엔군, 38선으로 철수작전 개시.

12.4        유엔군 평양 포기.

12.5        중공군 평양 진입.

12.6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방한, 한국전선 시찰.
              미 제1해병사단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철수작전 개시.

12.7        정부,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12.8        이승만대통령, 미국에 한국군 50만 병력 무장 요구.
              유엔군 원산서 철수 완료.

12.9        그리스 지상군 도착.

12.11      이승만대통령, 서울사수 언명.
              미 제1해병사단, 장진호 철수작전 완료.

12.14       유엔총회, 13개국 한국정전안 가결하고 정전3인위 설치안 채택.

12.15       미 제8군, 38선에 신방어선 구축 개시.
              미 제10군단 흥남 철수작전 전개.

12.16       미국, 對중공 전면 금수령 발표.

12.19       팽덕회, 신정공세 준비명령 하달.

12.21       국민방위군설치령 공포.

12.23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 의정부부근에서 차량사고로 순직.

12.24       북한군·중공군, 38선을 돌파.  정부, 수도권 일월에 피난령 포고.
               국군·유엔군 및 피난민 흥남에서 철수 완료.

12.25       국군 제3사단, 홍천부근에서 북한군과 공방전.

12.26       미 제8군사령관 후임에 릿지웨이 중장 부임.

12.27       미 제10군단을 미 제8군에 배속.

12.31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공세) 개시.
              맥아더, 합참에 對중공 확전 건의.
              뉴질랜드 지상군 도착.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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