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05 32. 감격적인 합류 (6)
  2. 2010.02.22 18. 맥아더의 의지 (12)
  3. 2010.02.12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12)

32. 감격적인 합류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05 08:36

 

  국군 제1사단의 선전으로 낙동강방어선이 일순간 붕괴되자 북한군은 소백산맥과 금강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9월 21일경부터 인천상륙 소식이 전선에 전파되었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북한군은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북한군 군관들이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하여 총을 난사하며 독전을 강요하였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노력만으로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워커 제8군사령관은 전선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9월 22일부로 추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드디어 전쟁 개시 후 처음으로 낙동강으로부터 전선을 밀고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낙동강을 벗어나 북으로 진격하는 미 제1기병사단]


  워커로부터 경부가도를 따라 38선으로 밀고 올라갈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었고 그중에서도 선봉은 제7기병연대였습니다. 제7기병연대는 보다 신속하게 전방을 개척하고자 린치(James H. Lynch)중령이 지휘하는 예하 제3대대를 특수임무부대로 편성하여 9월 22일 08시, 다부동을 출발시켰습니다. 그날 중으로 낙동강을 도하한 린치특임대(TF Lynchs)는 다음날 상주까지 진출하여 북한군의 저항 태세를 점검한 결과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해도 될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6일, 사단의 후속부대들이 상주에 집결을 완료하자, 린치는 그의 특임대에 배속된 제70전차대대 C중대 3소대에 수색대를 합류시켜 “보은-청주-천안-오산방향을 따라 전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전진하고 저항하지 않는 적은 대응하지 말라”는 진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린치의 판단대로 전선은 밀고 댕기며 교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군의 진격이 멈춘 곳에서 전선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일 보은으로 출발한 수색대는 오후에 청주를 지나 저녁에 진천 남쪽에서 진격을 멈추었는데 그것도 북한군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색대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군이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북한군 수송대가 미군 전차를 발견하고는 3대의 트럭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공교롭게도 트럭에는 휘발유가 가득 실려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연료를 보충 받은 수색대는 전차에 다시 시동을 걸고 전진을 계속하여 그날 20시 30분경 천안삼거리에 도달했습니다. 교통정리를 하던 북한군 병사에게 “오산?”하며 길을 묻자, 북한군 병사가 얼떨결에 오산방향을 안내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까지 발생하였을 정도로 이들의 진격은 빨랐습니다.


[양쪽에서 전진하던 아군의 선두 부대들은 오산부근에서 연결됩니다.]


  쉬지 않고 오산남쪽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전방에서 갑자기 치열한 사격이 벌어져 노출된 전차병 1명이 전사하면서 일순간 긴장 상태에 빠졌지만 곧 교전이 멈추었습니다. 전방 부대는 인천으로 상륙하여 오산으로 남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31연대였는데, 다행히도 오인으로 인한 아군간의 교전이 확대되기 이전에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때가 9월 26일 22시 26분으로 인천상륙부대와 낙동강 반격작전 선두부대가 감격적으로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선두부대가 조우한 장소가 미군이 한반도에서 북한군과 처음 접촉하여 망신을 당한 죽미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08시경, 미 제1기병사단 본대가 상륙부대인 제7사단의 본대와 연결 되면서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전선은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결국 맥아더의 대담한 도박은 제8군의 낙동강 반격이 성공함으로서 단숨에 북한군 13개 사단의 배후를 포위해 버리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고 38선을 향한 진격은 계속되었지만 포위망 안에 갇힌 북한군 패잔병의 소탕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전의를 상실한 잔적을 소탕하는 것보다 전쟁이 종결을 위해서 전진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남한 각 지역에 쪼개져서 게릴라가 되어 갔지만 그리 위협적으로 여기지는 않고 천천히 소탕하면 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지리산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판단과 달리 북한군 패잔병 게릴라들은 두고두고 후방지역의 암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엔군의 놀라운 진격에 일순간 패퇴하였지만  북한군 대부분은 부대 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오대산, 태백산, 지리산 등지로 잠입해 아군 병참선 차단과 습격 등의 후방교란 임무를 수행하였고 특히 중공군 개입 이후에는 더욱 기승을 부려 아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까지 지연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5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잡은 빨치산 중에 정말 빨치산인지 아니면 당시 강제로 끌려가서 활동하게 된 사람인지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긴 시간을 두고 가려낼 정도로 한가한 상황도 아니니 뭐라 말할 평편도 아닙니다.
    그러나 평시 같으면 무고한 사람이 당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묶고 그것을 짊어지고 적군 전차로 뛰어들었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나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군대에 안 가본 사람이 긴박한 상황의 군대를 지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렇게 할 수는 있어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전쟁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면 그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다음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서 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많은 이론 중에 무수히 변하는 변수를 모두 기록한 교범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기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지요. 물론 경험이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경험이야 말로 순간적인 반사행동으로 나오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4.06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킨을 시원스레 바꾸신거네요..^^
    글 잘 보고갑니다..^^

  3. home insurance mail quotes 2012.06.05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 블로그 사이트와 함께 제공 내용은 이해하기 절대적으로 매우 가치뿐만 아니라 간단하다. 그것은이 웹 사이트를 참조 반가워하며 유료 교육입니다.많은 감사합니다.

  4. home insurance renowned estimates 2012.06.0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좋은 기사, 화려한 텍스트입니다 .. 밀린! 당신의 능력 밖으로 볼 수있다, 우리는 당신이 우수한 기사를 작성하는 계속 기대 ..

  5. mercury insurance arkansas 2012.06.07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점검 시간이 걸릴 결정할 때 그것은 아주 좋은 개인의, 나는 단호하게 이번에 미래에 더 찾는 데 끝내준 모두 이것에 관한 거예요. 할 수있다면, 노하우 습득으로, ​​당신은 추가적인 유용한 정보와 함께 더 자주 블로그를 변경하는 생각하나요? 진심으로 그것은 자신을 매우 유용합니다.

  6. pocket fm radio best reception 2012.10.21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잡은 빨치산 중에 정말 빨치산인지 아니면 당시 강제로 끌려가서 활동하게 된 사람인지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긴 시간을 두고 가려낼 정도로 한가한 상황도 아니니 뭐라 말할 평편도 아닙니다.
    그러나 평시 같으면 무고한 사람이 당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묶고 그것을 짊어지고 적군 전차로 뛰어들었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나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군대에 안 가본 사람이 긴박한 상황의 군대를 지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렇게 할 수는 있어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전쟁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면 그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다음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서 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많은 이론 중에 무수히 변하는 변수를 모두 기록한 교범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기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지요. 물론 경험이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경험이야 말로 순간적인 반사행동으로 나오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18. 맥아더의 의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22 08:23

 

  전쟁이 개시된 후 약 한 달이 지난 7월말이 되었을 때 호남지방으로 우회한 북한군 제6사단이  하동, 진주를 연이어 함락하고, 북한군 제4사단이 소백산맥을 지나 대구의 측면인 고령 지역에까지 진입하였습니다. 전선 중앙에서는 소백산맥을 차례로 넘어 온 북한군 제1, 13, 15사단이 문경과 상주 일대로 진입하고 있었고 제8, 12사단은 죽령을 돌파하여 영주와 안동 정면에, 제2, 3사단은 김천 외곽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동해안에서도 북한군 제5사단이 영덕에 태백산맥 일대에서는 제766유격연대가 기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전선 전체에서 압박을 가하며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예외 없이 부산이었습니다. 부산 함락은 유엔군의 해상 철수와 대한민국의 패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이제 어떤 곳이라도 북한군의 돌파를 허용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북한은 전선의 어느 일각이라도 무너뜨리고 부산으로 내달리기 위해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전후에 북한군이 전선 전체에 걸쳐 돌파구를 내기위해 애쓰지 말고 한두 군데의 거점을 선정하여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분석이 나오기도 하였지만 당시 유엔군은 사방팔당에서 달려드는 북한군을 막아내기가 상당히 버거웠던 상황이었습니다.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적은 전력으로 북한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어선을 최대한 축소하여 촘촘히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런 계획에 따라 7월 26일, 예하의 전부대에 미리 구상해 두었던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 방어선 바로 아래인 대구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불퇴전의 자세로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워커 본인조차 사수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시 워커는 제8군사령부의 참모들에게도 숨긴 채 비밀리에 극동군사령부 참모장 알몬드 소장에게 연락하여 제8군사령부를 부산으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였을 만큼 상황이 비관적이었습니다.


[워커(좌)와 맥아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워커는 물론 한국전에 허겁지겁 투입된 수많은 미군장병들 대부분에게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세계였고, 목숨을 바쳐가면서 반드시 사수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절박함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상황이 나쁘면 한반도를 포기하고 배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만연하였고 따라서 끈기 있게 전선을 방어하여야 하는 동기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낙동강 교두보를 반드시 사수하여야 할 것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알몬드를 통해 워커의 생각을 보고받은 맥아더는 그 즉시 대구로 날아와 워커에게 “제8군은 현 진지를 고수해야 하며, 제8군사령부는 지상에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해상철수는 결코 없으니 앞만 보고 싸우라는 의미였습니다. 맥아더가 당시의 절박한 전황을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방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회심의 반격 작전을 이미 구상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낙동강 방어선에 적을 최대한 많이 붙잡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수에 대한 의지가 전달되면서 격렬한 저항이 이루어졌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대해 확신이 없던 워커는 맥아더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결사적인 항전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상주-함창 방면에서 고전하고 있던 미 제25사단을 찾아가 낙동강방어 작전계획을 알리면서 부하 장병들에게 비장한 전선 사수에 관한 비장한 결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는 버터야 한다. 우리는 현재 시간과 싸우고 있다. 더 이상의 철수나 후퇴는 있을 수 없다. 덩케르크와 바탄반도의 비극을 되풀이 할 수 없다. 부산으로의 후퇴는 사상 최대의 살육을 의미한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한다.” 워커 장군의 이러한 결의는 뉴욕타임지의 핸슨 볼드윈 기자에 의해 ‘고수 아니면 죽음(Standor Die)’이라는 제목으로 “포로가 되느니 전사할 각오를 하고 현 위치를 사수하라”는 워커 장군의 강경한 훈령이 보도되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의 여론은 ‘비민주적이고 광신적인명령’이라고 맹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맥아더는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말로 여론을 일축하면서 워커에게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생생! 6·25 > 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 북한군의 기도  (16) 2010.02.26
19. 최후의 선택 낙동강  (77) 2010.02.25
18. 맥아더의 의지  (12) 2010.02.22
17. 동해안의 지연전  (37) 2010.02.19
16. 누가 빠른가???  (22) 2010.02.16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12) 2010.02.12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악랄가츠 2010.02.2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의 명장, 맥아더 장군!
    우리나라 역사에 그가 없었다면,
    정말 아찔하네요! ㄷㄷ

  2. Koreanwar60 2010.02.22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방문 감사합니다.
    맥아더 장군 알면 알수록 더 알고싶은 명장이지요...

  3. casablanca 2010.02.23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읽을수록 소설같은 역사적인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4. Koreanwar60 2010.02.24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asablanca님 블로그를 통해 항상 좋은글과 사진으로 저를 즐겁게 해주시는데
    이렇게 방문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될 생생 6·25에 관심 가져주세요....

  5.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2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나라의 전쟁에 내가 목숨 걸고 싸울 필요가 없겠지요.
    아마도 그런 심정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소극적이고 편한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고요.
    그런 중에 맥아더장군은 내일과 같이 생각하고,
    정말 필요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주었습니다.

  6. 금메달리스트 2010.05.02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셔서 생존하셨다는군요 ㄷㄷ 학도병이었다는데

  7. 문의사항 2010.07.13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있는 사진들은 어떻게 구하신건가요?
    학생들용 교육 동영상을 만드는데 이미지 자료가 필요합니다.

  8. sex craving establishments 2012.04.27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하의 게시는 매우 훌륭한 접근 방식으로 설계할 수 더하기 그것은 나를 위해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포함합니다. 저는 게시 실제 쓰기의 유명한 방법을 찾아 기꺼이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개념을 적용할 함께 파악하도록 허용합니다.

  9. porn material dependency guides 2012.04.27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이것을 perusing 피할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단지 안 배웠어 정보가 모여, 이렇게 멋진 있습니다. 인터넷 마케팅은 검색 자들이 그대로 현재 거기에 당신이 여러 측면을 전시, 그들의 정상적인 좋은 방법으로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발견하는 데 매우 기쁩니다. 당신은 멋진 작가입니다.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제 동료와 저는 곧 헛것을 볼 지연 수 없습니다.

  10. intercourse craving procedure state of arizona 2012.04.27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당신이 또한 당신이 떨어져 비용 무료로 제공해 가구가 될 것이라는 정보와 같은 환상적인 소스입니다. 누구나 비용 부담 정보의 최고의 소스를 제공에 대한 요구 사항을 인식하고있는 본 사이트를 사랑한다. 이 우수한 자원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11. bulk freeze dried food survival 2012.10.21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 매우 흥미 스마일은 내가 읽기를 사랑하고 항상 이런 정보를 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찾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 위대한 문서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electric dog fence wire 2012.12.03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2 08:28


 

  7월 20일, 치열한 교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 함락되자 아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삼남의 갈림길인 교통의 요지 대전을 지나면 길이 크게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하나는 대구를 거쳐 부산에 아르는  경부가도고 또 하나는 전주를 거쳐 목포에 이르는 호남가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황급히 미군이 참전하였지만 아군의 부족한 전력으로 이 축선을 모두 방어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7월이 되어서도 북한군의 진격은 매서웠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미 제8군은 사령부를 대구에 신속히 설치하여 전의를 가다듬었지만, 호남 방면으로 내려 올 북한군을 상대할 전력은 없었습니다. 국군의 경우는 대전 함락직전인 7월 17일에 서해안지구방어사령부를 황급히 편성하였으나, 병력과 장비 면에서 소규모 민병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난관에 봉착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대전 전투에서 참패 후 부대 재편을 서두르던 미 제24사단으로 하여금 호남지역을 포기하는 대신에 전선을 축소하여 외곽인 진주-함양-거창에 이르는 100킬로미터의 방어선을 점령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 제24사단은 대전에서 당한 피해가 워낙 커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제8군은 이런 조치와 더불어 항공정찰을 강화하였는데, 장마철로 인하여 기상이 나빠 7월 20일 이후 호남지역으로 내려오던 북한군의 행적을 놓쳐 버렸습니다. 비가 그친 23일, 한 무리의 북한군이 군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남하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제8군사령부는 이 부대가 대전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라고 판단하고, 이들이 현 상태로 계속 진출한다면 7월 25일에는 전주까지 진출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항공정찰이 불가능하였던 3일간에 북한군은 아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놀라운 기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석권은 아군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제4사단이 아니라 천안전투 이후 행방이 묘연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이었고 어느새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경상남도 진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7월말까지 제8군은 호남지역의 북한군은 대전 점령 후 금산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 거창으로 내려오고 있던 제4사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안에서 제4사단과 갈라져서 아군의 감시망을 벗어난 서해안의 장항선 철도를 따라 남진한 부대는 방호산(方鎬山)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6사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장항에서 금강하구를 도하하여 군산으로 넘어온 후 호남지방을 폭풍처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주(20일), 광주(21일)를 차례로 점령하였고 이후 연대 단위로 흩어져 목포와 여수를 점령한 후, 순천(25일)에 집결하면서 호남지역을 순식간 석권하여 버렸습니다. 그때서야 아군은 북한군 제6사단의 실체를 포착하였습니다. 미 공간사(公刊史)에는이 정보가 미국의 전쟁지도 방침을 변경시켰다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많은 미국의 전략가들이 북한군 제6사단의 기동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동이었다라고 경탄하게까지 만들었을 만큼 제6사단의 갑작스런 등장은 아군의 허를 찌른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제29연대 투입 직전의 하동]


  북한군 제6사단으로 인하여 경상남도의 서쪽 초입인 진주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워커는 이곳에 배치된 미 제24사단 제19연대의 전력 증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극동군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 본토에서 열흘간의 항해 끝에 오키나와 도착한지 하루도지나지 않은 미 제29연대의 두 개 대대(제1,3대대)가 시급히 한반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들은 24일 부산을 거쳐 25일 진주에 도착하였지만 개인화기의 영점 조정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쉬지도 못하고 화급하게 제19연대에 합류하게 된 제29연대의 제1,3대대 장병들에게 제19연대장 무어(Ned D. Moore) 대령의 생각지도 못한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즉시 제1대대는 함양군 안의면 지역을 점령하여 방어하고, 제3대대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하동을 공격하여 즉시 탈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을 접수한 모트(Harold W, Mott) 제3대대장은 부대원들이 전투경험이 전무한데다 상황에 익숙지 못함을 들어 일단 방어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명령은 완강했고 그것은 비극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단 하루의 여유도 얻지 못한 채 전쟁의 모닥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생생! 6·25 > 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동해안의 지연전  (37) 2010.02.19
16. 누가 빠른가???  (22) 2010.02.16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12) 2010.02.12
14. 제 17연대의 복수전  (15) 2010.02.10
13. 미 제24사단의 굴욕  (20) 2010.02.06
12.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승전보  (6) 2010.02.04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지코리아 2010.02.12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낼모레가 구정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백운도사 2010.02.13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탑재 될때마다 글 하나씩 읽어 나가니 625가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당시 얼마나 다급했나 그들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625 60주년을 기해 만든 이 블로글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626를 알았으면 좋겠네요

    전쟁 얘기를 이렇게 쉽게 작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글 계속 올려주세요

  3. 탐진강 2010.02.14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남을 한순간에 점령당했군요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5. how to refill lexmark inkjet cartridges 3 2012.05.02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유하고 기쁘게하는 것은이 탁월한을 발견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진짜 놀라운 더한 평가를 주셔서 감사 드리며, 우리는 절대적으로 놀라서되었습니다! 보존 장장 한 번 더 다시 그 방법을 찾는.

  6. hp printer 5610 inkjet cartridges 2012.05.02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 그것에 관한 게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용 카드 부채 안에 잘 알려 개별을 결정하는 충격되었습니다. 나는 친구들이 빠르게 귀중한하는 깨닫게됩니다 이해합니다.

  7. refill hp inkjet cartridges 364 2012.05.08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당신에게 실제 기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유익한와 함께 유용하게 지식을 가로질러.

  8. emergency water purification 2012.10.21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 매우 흥미 스마일은 내가 읽기를 사랑하고 항상 이런 정보를 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찾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 위대한 문서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9. shock collars for dogs 2012.12.03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10. wine of the month club 2014.04.18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유하고 기쁘게하는 것은이 탁월한을 발견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진짜 놀라운 더한 평가를 주셔서 감사 드리며, 우리는 절대적으로 놀라서되었습니다! 보존 장장 한 번 더 다시 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