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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첫 대패- 수동의 터널 전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28 08:17



압록강을 건너오는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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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한반도 파견을 결정한 중공은 팽덕회가
지휘하는
30만 대군을 한반도 중앙의 산악지대에 침투시켰다.
이들은 참전 초기에  평안북도 산간지대에서 잠복기습으로
유엔군에게 큰 패배를 안겼었다.


장진호의 영웅 리첸버그 대령-[당시 장군 진급 예정]
리첸버그 대령이 지휘하는 7연대는 서울 탈환의
선두에 섰던 연대다. 후에 중장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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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는 군사 박물관에 가보면 군우리 전투나

운산 전투, 
그리고 장진호 동안(東岸)전투는 엄청나게 과장해서
선전해놓은 초전의
승리들을 볼 수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입을 봉하고 모르는체하는
전투로서
초전에 장진호 입구에서  중공군 1 개사단이
미 해병 연대에게  호되게 당했던 수동 전투가 있다.


이 전투를 겪은 미 해병 하사 와랜드 커쉬의 전투 회고담을 소개한다.
[Face of war, Korean vignette에서 발췌.]


원산에 상륙하는 미 해병들 195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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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산에 상륙한 1 해병사단 7연대 1대대의 3.5인치
로케트포 사수였다.

상륙후 부대는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함흥평야에서
좌로 꺽어 장진호 방향으로 서진했다.


해병 1사단은 10군단장 아놀드 중장의 명령으로 이 산악지대를

통과해서 
서쪽 평안북도에서 북진중인 미 8군과 링크하는
작전 목표에 따라
전진하고 있는중이었다.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원래 거칠고 때로는 마구잡이인

아몬드 장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대를 좁은 산길로
투입하는 것을 내심 찬성하지 않았다.


그의 예감과 같이 모 택동은 6·25전쟁 발발후
만주에 이동 전개를 마친 
송시륜 장군의 9병단에게 동해안을 진격해오는
10군단 해병들과
서쪽의 8군 사이를 파고 들어
이들을 포위 격멸하라고 지시했다.

송시륜은 대장정 때 연대장으로 참전했던 다혈질의

노병이었다.

그는 명에 의해 동계전투 장비도 부실한 그의 6만 병력을
한반도 중앙 산악지대로 침투시켰다.


송시륜의 9병단은 중공군이 항상 한국군을 먼저 치던

전술대로 선두에서 
전진해오던 김백일 장군의 1 군단을
잠복 기습해서 패주시켰다.


원산 해안의 미 해군 상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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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커쉬 하사가  쓴 전투 회상이다.

북한 원산에 별다른 저항도 받지않고 상륙하고 며칠후
우리는 트럭으로 차량 행군을 했다.
함흥을 조금 지난 지역이었다.
아침에 기상하자  우리는 행군을 계속했다.
남쪽으로 후퇴하는
한국군의 대열이 우리 사이를 빠져서 지나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오던 쪽을 가리키며“ Many Chinese !
 Many Chinese!"라고 겁먹은 표정으로 알려 주었다.


장진호 입구에 수동[SUDONG]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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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소총 중대마다 3.5인치 로케트 포가 몇 문씩 배치되었는데
이날 나는 C중대에 나가 있었다.
로케트 포 조가 합류했을 때 C 중대는 계곡물을 끼고 서쪽으로
전진하고 있었고 B중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시내 건너에서는 A중대가 도로를 따라 우리와 병행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우리는 행군을 정지하고 고지들의 첫 번째
능선으로 올라 어두어 지기 전에 호를 파기 시작했다.

*이 고지 선점의 해병대의 전술은 해병대가 장진호 대결에서

 중공군에게 패배당하지 않았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중공군이 나중에 자체 전술 분석에서 지적했지만
 미 육군이 중공군에게 피해를 입은 이유중의 하나가
 산타기를 싫어하고 도로에 집착했던 이유를 드는데
 이 점에서 해병대는 예외였다.


다음날 우리 중대는 다시 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다음 능선을

오르게 되었고 B중대는 우리가 있던 곳으로 옮겨와서
우리가 파놓은 참호 진지를 점령 보완했다.

중공군은 양익 포위의 작전개념으로 기동한것이지만
완전 포위가 되지 않아 오히려 외곽 후미 해병의 포병이
엄청난 화력으로 두들겨 팰 표적이 되었다.

중공군의 장진호 전역 실패 원인중의 하나가 미군의 병력을
실제보다 과소하게 정보 판단한 것이었다.
이때도 미 해병들의 규모와 전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공격을 개시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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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대가 진지 구축을 완료했던 지점은 수동마을에서
약 1마을 남쪽이었다.

*수동에서 장진호로 올라가는 길은 이 수동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7연대 1대대는 수동 마을에서 불과 1마일 남방의 고지들에
구축했다. 같은 연대 2대대는 727 고지를 우측에 두고
698고지의 좌측
기슭에 위치했다.

모리스 로쉬 소령의 3대대는 뒤로 약간 떨어져서 두 번째의
방어선이라 할만한 진지선을 만들어 연대의 열차를
보호하는 형태로 전개했다



진지 공사를 막 완료했던 자정께
중공군이 대거 공격해왔다.
때는 1950년 11월 2일이었다.

1대대를 공격한 중공군은 124사[사단]의 371연대였다.
그들은 해병의 정면 공격을 맡았고 다른 370연대는
후방으로 우회해서 동쪽으로 부터 후방 해병 부대를 쳤다.
372연대는 중공군 후방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시내 건너에서 병진 행군을 하던 A중대는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우리의 위치보다 조금 앞선 건너 고지에 진지
구축을 마친 상태에서 중공군이 해병연대의 정면과 측면의
광정면에서 공격해왔다.


*북한군의 T-34전차 한량의 지원까지 받았다.

우리 고지가 제법 높아서 중공군이 쏴오는 수많은 녹색 예광탄들과

우리가 쏘는 붉은 예광탄이 오가는 것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가끔 하늘이 폭발 섬광으로 환하게 밝아지곤 하는 것도 보였다 .


A중대보다 악간 남쪽으로는 도로가 넒어 지는 곳이 있었는데

이 지점으로부터 바로 강 건너에 B중대 진지 밑을 지나는
터널의
입구가 관측되었다.
이 터널을 빠져 나온 철도는 북으로 껶여서 시내물과 도로에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장진호 바로 밑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가

 이 전투 현장을 통과했다
.]

중대장은 중공군이 공격할 때 이 터널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여러 정의 LMG와 AR을 터널 입구와 주변을 조준하고 설치하였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

중공군은 터널 안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와서 입구에
설치해놓은 우리 중대의
화망에 걸려들었다.
파리 떼를 두들겨 잡는 듯한 해병대의 기관총
사격이 적 700명을 사살하기까지 계속되었다.


7연대 1대대장 데이비스 중령.
그는 장진호에서 영웅적인 전투 지휘로 미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월남전에서의 사단장을 거쳐 4성 장군으로 전역'
2003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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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능선에 자리 잡은 C중대의 -중공군이 공격해오는 방향-

서북쪽은 공격했지만
그 반대편 동해 쪽의 C중대 구역은
상당히 조용하였다.


약 반 시간 정도의 기관총 사격으로 적의 예봉이 꺾였을때

중대장은 옆 참호 속에 있던 자동 소총[AR]조에게 전방으로
이동하여  우리 능선과 다음 능선의 골짜기에
놓여있는 [중공군이 통과할]
철로 주변을 사격하라고 명령하였다.

*미 해병은 자동소총[AR]을 중시했다. 육군이 분대에
1 정을 배치했지만  해병은 2 정씩 배치했다.


그날  자동 소총조는 밤새도록 실탄 전량소진을 경계하여서

반자동으로만
사격하였다.
나는 다른 기관총들과 목표에 더 다가갔던 이 자동소총의
기총사격에
단 한명의 중공군도 무사히 철로를 지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골짜기에 겨우 도착했던 중공군의 무리는 기관총이

먼저 처리했을 것이고
그 나머지는 반자동 사격의
자동소총 사수가 끝장을 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달 뒤 해병들의 장진호 탈출. 아래에 협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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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해병 몇 명은 고지를 내려가 중공군의
시체의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100명이 넘자 싫증이 나서
그만 두었다.

해병 7연대의 1,2 양 대대는 이날 밤 5.,000여명의 중공군
124사단의
공격 병력을 섬멸해버렸다.


중공군 124 사단장 위 치량 - 대패후 그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1951년 춘계공세 때 북한강변에서 대패한 180사단장
정 기귀는 전사 강등[한국군으로 이야기 하면 이등병 강등]
뒤 군에서 불명예 제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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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해병들이 잘 싸웠고 중공군이
 견제하지 못한 후방의 포병 포 18문이 1,431발의 포탄을
 퍼부운  바람에 124 사단은 막심한 피해만 입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새자 출격한 콜세어 기들은 1,500발의 기관포탄과 15발의
로케트 폭탄, 그리고 여러 발의 고폭탄을 투하해서 중공군을
사살했다.


1951년 춘계공세에서 포로가 된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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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력의 집중과 고지를 점령한 해병의 분전은 중공군으로

  하여금 해병 7연대 1대대 지역에만 662구의 확인 시체가
  남기게 헸다.

*중공군 371연대의  5개 중대가 섬멸되었고 측 후방을 공격했던

 중공군 370연대의 2개 중대가 섬멸되었다.
 전투후 수동 전장에서 확인된 중공군의 시체만 793구였다.

*그들이 유기하지 않고 운반했던 전사자의 시체까지

 계산하면 전사자는 더 많을 것이고 여기에 두어 배가 넘을
 부상자들까지 합치면 124사단의 두 개 연대는 문자 그대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하겠다.

* 사실상 궤멸 된 124 사단은 다음에 치열하게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송시륜은 해병과의 초전에서 대패하고 서쪽의 평안북도에서
 [8군을 공격해서 ]성과를 올린
동료 장군들에게 형편없이
 체면을 잃자 불덩어리 같이 대노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장진호로 기어들어 오는 미 해병대를
 반드시 한명도 남김없이 전멸시키라고 다그쳤다.

*그의 체면 회복 작전 지휘는 방한 장구도 부족한

  60,000명의
9병단 병사들로 하여금 상식 밖의 무리한 공격을
  되풀이 하게 헸다. 
 
*결과 연속적인 작전 실패로 대 피해를 입고 

 해병 철수후에  함흥 평야에서 4개월 넘게 재 편성과
재정비를 했었다.

중공군의 무더기 죽음을 보여주는 이 유명한 사진은
수동 전투후 전장 정리 과정에서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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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초전에 잠복 기습 전술로 몇 개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장진호 전역에서는 
그 사상자의 숫자로 보아 대패라고 할만한 큰 피해를 입었다. 
[60,000만 병력의 절반이 섬멸 되었다.]

중공군이 실질적으로 패한 장진호 전역의 첫 패배 는
미 해병들이 장진호 입구 수동에서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수동 전투에 대해 중국의 전사가들은
현재 규모 를축소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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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ra 2010.10.0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수동전투가 있던 지역은 11월 1일인데 이정도면 낮엔 쌀쌀해도 동계복장까진 입지않아요ㅎ
    저 전투가 한국에선 잘 알려져 있지않아서 잘 모를수도 있지만, chaffee2080님 좀만 더 검색해보고 댓글다시길 바래요~

    • 자격증무료자료받기 2012.07.16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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