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무인도에서 구출 된 미 공군 대령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8.17 08:25

 6ㆍ25전쟁 중 적 미그기에 격추된 한 미 공군 조종사가 압록강 앞 바다 낙도에서 37일간이나 연명 하다가 한국 유격대에게 구출된 일이 있었다.

[F-86 세이버]


 6ㆍ25전쟁 중 미군의 지원하에 백령도를 기지로 한국인 유격대가 서해안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미군들이 작명한 "동키 부대" 라는 별칭이 있었다. 동키 부대중 제 15부대인 백마 부대는 평북 출신 대원들로 구성되어 압록강과 대동강 사이 해안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대동강 앞 바다의 초도에도 유격대 기지를 운용하고 있었다. 맵이라는 미군 중위가 고문관으로 초도에 근무를 했었으며, 이들은 원래 북쪽 압록강 앞 바다의 대화도도 점거하고 있었다.

[아래에 대화도가 있다.]


 이곳에는 유엔군이 비밀리에 운용하는 레이다 기지가 있었다. 레이다는 만주 비행장에서 뜨고 내리는 공산기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유엔기에는 큰 도움의 존재였지만 공산군에게는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

 1950년 11월 30일 중공군 148사단은 용암포에서 여덟 척의 선박을 타고 출발, 습격해와 미군 2명과 영국군 1명이 포로가 되고, 유격대는 이틀간 저항하다가 많은 피해를 입고 모두 철수하였다.

[구월산 유격대(동키 부대)의 정찰 연락함 구월호. 유격대 선박들은 어선들을 개조한 것이다. 구월산 유격대 블로그에서 빌려옴]


 이 작은 섬의 유격대를 내몰아내기 위해서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쌍발 폭격기까지 투입해서 폭격을 해댔다. 섬을 점령했던 중공군은 얼마 후 철수하고 섬은 빈 무인도가 되어 버렸다.

 초도의 유격대 2대대장 백우영의 지휘로 이용섭, 전용호 등 8명의 대원들은 1952년 6월 7일 대화도를 재점령하여 다시 전초기지로 쓸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화도로 향했다.

 이 배에는 미군 고문관 맵 중위도 동행했었다. [일설에는 서해상에 추락한 F-51 전투기 조종사를 수색하다가 대화도를 방문했다는 설도 있다.]

[험준한 북한 상공을 나르는 F-86 세이버 편대]


 야간에 섬에 상륙한 그들은 전에 본부로 쓰던 마을의 한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어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주민들이 다 철수한 그 섬에서 수상한 인적이었다. 유격대는 그 집을 포위하고 수색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니 그 곳에 한 백인이 잠을 자고 있었다.

 유격대는 그런 곳에 미군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확인해 본바 그는 수원 기지의 미공군 51전투비행부단장 미군 조종사 알버트 쉰즈 대령이었다.

 그는 1952년 5월 1일 F-86 세이버 전투기로 출격해서 압록강 상공에서 미그기들과 공중전을 벌이다가 피격 당했다. 그는 파괴된 F-86을 가까스로 몰고 서해상으로 나와 비상 탈출했다. 그러나 그를 구조할 헬리콥터와의 연결에 실패했다.

 그는 구명 보트를 저어 가까스로 근처 대화도에 상륙하였다. 찾아보니 사람들이 살던 부락이 있었고 집들을 수색해 보니 약간의 쌀과 찐 옥수수, 양파들이 있었다. 한 집에서는 섬에서 재배한 목화로 만든 큰 솜 덩어리들도 있었다. 그는 솜으로 "SOS"와 "MAYDAY"라는 국제 구조 신호를 만들어놓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미 공군의 구조 손길은 뻗히지 않았다. 그가 배고픔와 공포로 기진맥진했을 때 기적같이 한국 유격대가 나타난 것이다.

[구출 직후의 쉰즈 대령]


 아닌 밤중에 무장한 유격대의 방문을 받은 쉰즈 대령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백 대장이 "안심하시오! 도와 드리겠소" 라고 하자 그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초도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쉰즈 대령은 굶주렸다는 듯이 배안에 있는 계란 한 줄을 다 먹고 위스키 한 병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쉰즈 대령과 가족]


 초도에 도착하자 그는 무전기로 호출할 수 있는 모든 공군 기관을 불러서 그의 실종 수색을 조기에 단념한 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수원 51전투 비행단 기지, 이 비행단은 현재 오산 비행장을 기지로 쓰고 있다.]


 쉰즈 대령을 구출했던 유격대원 중 백우영 대장을 포함한 5명은 아깝게도 두달 뒤인 1952년 7월 중순 대화도 근해의 작은 섬 우리도[牛里島] 전투 중에 전사했다. 이 때 평안북도 연안 섬들을 탈환하는 공산군의 대공세가 있었다. 알버트 쉰즈 대령의 구출 일화는 라이프지에 한국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제목으로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는 1971년 공군 소장으로 퇴역하여 은거 생활을 하다가 1985년 작고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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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b site master 2012.05.2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 아름답다. 내가 인식하고 분명한 포인트를 존중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의 작문 스타일로서 그리고 정확하게 당신의 개념을 표현하는 방법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2. internet site examine 2012.06.07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반적으로 다른 한편 포스트에 게시물에서 코멘트를 작성하지 않는 경향이 너의 논문을 추천하라고 촉구했다. 이 게시물은 귀하의 좋은 기사를 위해, 아픈 위대한 통찰력을 penning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포괄적이다.

33. 치열했던 서울탈환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13 07:58


 

  인천으로 상륙한 미 제10군단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미 해병 제1사단과 국군 해병연대는 서울탈환을 위해 동진하면서 김포공항과 영등포외곽까지 진출하였고, 미 제7사단과 국군 제17연대는 낙동강에서 치고 올라오는 미 제8군과 연결하기 위해 안양, 수원, 오산방향으로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울 수복과 동시에 낙동강가 몰려있던 북한군을 일거에 붕괴시킬 수 있는 대담한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역시 수도 서울이었는데,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만큼 이곳을 사수하려는 북한의 집념도 컸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습니다.]


  9월 20일 새벽 2시, 미 제5해병연대와 국군 해병대가 김포공항에서 행주산성으로 최초로 한강 도하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을 만큼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는 강력하였습니다. 결국 엄청난 폭격으로 북한군의 저항 근거지를 제거한 후 강을 건너 행주산성을 장악한 아군은 곧바로 신촌 방향으로 진격하여 들어갔고 21일 저녁에는 중앙청 바로 목전인 연희동 일대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쪽에서 진격한 미 제1해병연대는 영등포 시가지에서 치열하게 방어에 나선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22일 아침, 노량진 한강일대까지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중앙청(현재 광화문)까지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9월 22일, 국군 해병 제1대대는 연희고지를 공격했지만 점령에 실패하였습니다. 목표까지 거리는 불과 1킬로미터 정도였지만 이곳을 요새화한 북한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하여 이틀이 지나도 점령은커녕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 말았습니다. 결국 국군을 대신하여 미 해병대가 공격을 계속하였는데도 연희고지는 함락되지 못하였고 결국 항공기의 집중적인 지원에 힘입어 9월 24일 오후 천신만고 끝에 연희고지를 탈취하면서 북한군의 서울 서측방어선이 붕괴되었습니다. 더불어 미 제1해병연대가 한강을 도하하여 마포방향으로 진출했습니다. 인천상륙 후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을 만큼 이때의 전투는 격렬하였지만 적 1,750명이 사살 된 것으로 파악되었을 만큼 북한군의 피해도 극심하였습니다.


[연희고지 전투에서 피아간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한강 남쪽까지 순식간 진출하였을 때 당황한 북한은 최용건(崔庸建) 서해안방어사령관의 지휘로 경인지역에 흩어져 있던 잡다한 부대들과 사리원, 철원, 김천에 위치한 20,000여명 정도의 모든 가용 병력을 끌어 모아 서울에 투입하였고 또한 시민을 강제로 동원해 진지와 바리케이드를 구축해 시가전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남쪽에서 낙동강 전선이 붕괴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 번 차지한 서울을 결코 내어놓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습니다. 아니 바로 직전까지 부산을 집요하게 위협하고 있다가 일순간에 반전 된 이러한 상황을 북한수뇌부는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이었고 그만큼 서울 시내에서의 저항은 극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서울탈환이 지연되자, 미 제10군단장 알몬드는 낙동강에서 반격하여 올라오는 미 제8군과 연결하려 수원방향으로 진출중인 미 제7사단과 국군 제17연대를 서울 공격부대로 추가 투입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9월 25일 미 제7사단 32연대와 국군 제17연대가 서울 남쪽에서 공격하자, 힘을 얻은 미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연대는 일제히 북한군을 소탕하고 서울중심부로 돌입하여 들어갔습니다. 여기에서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북한군이 격렬히 대항하였으나 사실 이 이상의 저항은 무리였습니다.


[환도식의 모습]


  9월 27일 15시 08분, 점령한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되면서 북한군의 저항은 종식되었고 서울시 전역에 대한 소탕작전을 완료한 국군과 유엔군은 28일을 기해 각부대별로 경계태세에 들어감으로써 전쟁발발 3일 만에 북한군에게 내어준 서울은 91일 만에 다시 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총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감격스런 환도식이 중앙청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로써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상황을 환원시켰으나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38도선 돌파의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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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13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수.
    무엇을 사수하려 하는 가에 따라 역사가 달라집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수하는 것,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수하는 것,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수하는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2. emergency essentials for car 2012.10.21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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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피알앤애드 2014.06.25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25 09:16
 

[트라이엄프의 활동을 함재기 화이어플라이기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영상]


  6·25전쟁중 영국군은 상당한 육해공의 병력을 파견해서 중요한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951년 봄, 임진강 전선에서 중공군 춘계 공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그로스터 연대의 용맹한 일화를 육군이 남겼고, 압록강 상공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터어 쌍발 전투기로 공산군 미그 15기와 힘겨운 공중전을 벌인 영국 공군의 분투기도 한국 항공 전사에 기록했었다.


  영국 해군 역시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군으로 김일성 남침 불과 며칠 후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남침 불과 일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 해군 순양함과 같이 동해안에서 남파 병력 호송대를 호위하던 북한 어뢰정 세 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었다.
6·25전쟁중 영국 해군은 황해를, 미군은 동해를 맡아서 3년간 작전했었다. 영국 해군은 6·25전쟁 참전중에 여러 전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이한 활동으로서 최초로 파견된 영 항공모함 트라이엄프의 활약을 소개한다. 트라이엄프는 2차 세계 대전 바로 후인 1946년 5월 6일 취역했다. 총 톤수 1,7000 인 경항모였다.


[영 항모 트라이엄프]


  6·25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들이 27,000톤의대형이어서 80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를 탑재하는데 트라이엄프는 작전시에 단지 24기만 탑재했었다. 트라이엄프의 함재기들은 이미 구식이 되어가는 프로펠러 전투기 씨화이어와 역시 프로펠러 전투기인 화이어플라이 기들이었다. 씨화이어 기는 유명한 스피트화이어기들의 해군용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착륙 장치가 강화된 것이다.


[씨화이어]

 

  이 전투기는 빠르고 운동성도 좋지만 그 모양[실루엣]이 북한 공군의 야크 9와 비슷해 자주 오인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1950년 6월 트라이엄프는 영국 해군 극동 함대에 이동 배치되었다. 사령관은 죠지 앤드류스 소장이었다. 배속된 극동 해역으로 항해하던 중 홍콩 근해에서 트라이엄프와 다른 호위함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았다. 트라이엄프와 호위하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항해를 계속하여 일본 구레[吳]항에 기착했다. 구레 항은 호주군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작전해역으로 투입 전 트라이엄프는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이 군항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비행하기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은 네 기의 씨화이어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내려놓았다. 작전을 위한 격납고내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트라이엄프는 다시 한국 해역으로 출발하면서 다른 영국과 호주함들과 기동 함대를 구성했다.


[영 함재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기동함대를 구성했던 영국함들은 순양함 저메이카, 구축함 HMS 콘소트였다. 두 함들은 6·25전쟁중에 활발한 활동과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영국함들에 호주 프리게이트 함 HMAS 숄하벤과 영국 급유함 웨이브 콘퀘러가 가세해서 6·25전쟁참전 영연방 함대를 이루었다. 트라이엄프 함대는 출항하자 오키나와로 남하하여 급유를 받은 다음 미 7함대의 미 항모 부대와 함께 연합 함대를 구성 출동하였다. 황해 작전 해역에 도착한 트라이엄프의 함재기[827 해군 항공대]들은 미 함대와 합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3일 첫 출격이 있었다. 미 해군 항모 밸리 포지[에섹스급 항모]와 협동 작전이었다. 트라이엄프의 12기의 씨화이어와 9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출동하였다.


[미 항모 밸리 포지]


  영 함재기들은 황해도 해주 비행장을 들이쳤다. 유감스럽게도 적기는 없었다. 공격대는 비행장 빌딩과 격납고를 파괴하고 귀함했다. 다음 날에도 트라이엄프의 공격대가 출격했다. 이 날에는 괄목할 전과가 있었다. 연안과 해주 사이의 철교를 부수어 철로를 끊고 북한군 병영과 고사포 진지를 기총소사했다. 트라이엄프는 대지 공격이 없으면 주로 대잠 정찰과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평양 폭격이 있은 지 2 주 뒤인 7월 19일, 트라이엄프가 탑재한 구난기인 씨 오터 쌍엽기가 조종사 케인 중령이 조종하고 황해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 원산 앞 바다까지 장거리를 날아가 격추된 미군 콜세어 기의 조종사를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구출해내는 위험한 구조 임무를 완료했다.   이 구난 업무는 구식 씨 오터 기들의 마지막 전시 출동 임무였다.


[항모 탑재 구난 비행정 씨 오터. 1943년 취역했다.]


  7월 28일 거의 비극으로 끝 날 뻔한 재난이 발생했다. 씨 화이어 일개 편대가 함대 북동방 공역에서 함대의 레이다가 잡은 미확인 비행체들을 확인 차 출격하였다. 씨화이어들은 그 미 확인 비행체들이 함대에 내습하는 적기가 아니라 미 공군의 B-29임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마음 놓고 접근했던 씨 화이어 3번 기는 300야드 거리에서  B29 한 기로부터 느닷없는 불줄기의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 말한 듯 멀리서 보는 씨 화이어의 실루엣[외형]이 북한 야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한 미 B 29기의 기총수들이 기관총을 쐈기 때문이다.


[씨화이어 기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야크 9기]


  씨화이어기들이 일제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한 기의 연료 탱크에 기총 탄이 명중했다.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조종사는 크게 화상을 입었으나 기체를 뒤집고 자유 낙하하는 방법으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파도가 너무 거칠고 높아 항모에 탑재한 씨 오터 기로도 바다에 표류하는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조종사는 속절없이 한 시간동안이나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미국 구축함  에버솔에 구출되었다. 이 사건 뒤 영국 전투기들은 동체와 날개에 검고 흰줄을 쳐서 야크기가 아님을  알렸다.


[식별 표식을 한 씨화이어 기]

 

  트라이엄프는 계속 현장에서 대공 및 대잠 활동을 수행하고 다시 일본의 구레로 돌아왔다. 8일간 머무르며 재정비와 보급을 마친 트라이엄프는 7월 9일 영 순양함 케니아와 구축함 코머스, 그리고 두 척의 카나다 HMCS 아타바스칸 과 수우등의 전투함과 같이 출항했다. 이번에 주어진 주요 임무는 적 항구에 대한 집중적인 사진 정찰이었다. 함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남한의 목포나 군산 그리고 인천을 정찰했고 북쪽의 진남포까지 항공 촬영하였다. 비행대장 맥라크란드 중령은 순양함 저메이카가 군산시에 위치한 대형 공장을 포격하는 것을 유도했다.


  8월 14일 진남포 인근 대동강 하구에 큰 대형 선박 세 척이 정박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인 중령 지휘 아래 오후에  6기의 씨 화이어기들과 6기의 화이어 플라이기들이 로케트 탄으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편대는 대공포화가 격심했지만 로케트 공격으로 이 선박들을 대파시켰다. 나중에 격파된 한 척은 북한 해군 소해정이었고 한 척은 2,000톤 크기의 화물선, 한 척은 800톤의 연안선으로 밝혀졌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기동 함대는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영 씨화이어의 착함 모습 - 착륙할 때 후미의 훅이 걸리는

과정을 살펴 보시기 바람]


  정찰 업무가 끝나고 트라이엄프는 계속 서해를 초계하며 작전을 이어 나갔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연안용 작은 배들도 여러 척 격침했고 해변에 설치된 오일 탱크를 파괴하였다.


  8월 19일에는 영국 구축함 콘소트와 트라이엄프의 화이어플라이가 협동하여 군산에 있는 공장을 포격했다. 8월 23일 고장 사고 격추등의 이유로 작전 가능했던 24기의 함재기가 단지 9기만 남자 트라이엄프는 일본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트라이엄프는 일본 사세보로 돌아와 싱가폴에서 함재기들을 수송해온 항모 개조 공작선 유니콘으로부터 14기의 함재기를 인수받았다. 


  트라이엄프가 사세보에 기항해있는 사이 황해에서초계 항해를 하던 구축함 HMS 코뮤스는 군산 서쪽 85마일 해역에서 북한 공군 IL-10 두 기의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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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는 김포 아니면 수원 비행장에서 출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격위치는 어청도에서도 중국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제공권도 없는 북한기가 이렇게 먼곳까지 출격을 나왔던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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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의 우현이 파괴되고 수병 한명이 전사했고 한 명이 부상했다. 함은 동료함 콘소트의 호위 아래 사세보로 돌아왔다.


[소련제 IL 10 공격기]


  8월 26일 다시 출항한 트라이엄프는 한국의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북한 서해안에 정찰비행을 나간 두기의 화이어플라이기 들은 해변에서 숲으로 우거진 세개의 이상한 섬을발견하였다.그러나 잘 살펴보니 나무와 풀로 뒤덮어 위장한 세척의 북한 위장선이었다. 세 척은 위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이어플라이기에 즉각 파괴되었다.  이번 출동에서 적의 100톤짜리 어선을 비롯한 여러 척의 북한 배들을 파괴하였다. 트라이엄프는 통상의 초계업무를 했고 함대의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채리티의 연안 함포사격을 위한 사전 정찰과 탄착점 유도를 하는 지원 업무를 했다.


 

  8월 29일 트라이엄프 함상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 기가 꼬리에 달린 정지 후크없이 착륙하다가 항모 갑판을 미끄러져 안전벽에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함교로 날아가 작전실의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맥라크란 중령을 후려쳤다. 맥라크란 중령은 800 해군 비행대의 대장이었다. 맥라크란 중령은 이 불운한 사고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한 해역에서 의식을 갖춘 장례식으로 수장되었다. 그는 6․25전쟁중에 사망한 유일한 해군 조종사였다.


[영국 해군의 함상 장례식]


  9월 3일 출동한 트라이엄프 함대는 군산 비행장과 군산역을 포격한 저메이카를 위한 탄착점 유도를 했다. 9월6일 트라이엄프는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아라뭉가, 그리고 바타안과 같이 황해를 떠나서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작전하던 미 7함대 항모 부대의 작전임무를 인계 받았다. 7함대는 일시 휴식과 보급 그리고 정비를 위하여 일본의 모항으로 귀항해야만 했다. 트라이엄프 함대의 동해안 작전은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와 씨화이어등은 연일 북한 땅의 목표들을 공습해서 북한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했다.


  첫 주요 목표는 철도였다. 원산 남방으로 뻗은 철도를 따라 내려가던 6기의 씨 화이어와 6기의 화이어플라이는 한 작은 역에서 열차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화차들을 모두 벌집이 되게 파괴하고 기관차는 완전히 운행불능인 고철이 되게 부수어 놓았다. 이어서 동해안 철도를 따라 계속 수색하여 고원 역에서 80량의 화차를, 영흥 역에서 40량의 화차들을 발견해서 모두 파괴해버렸다.


[유엔기의 공습을 받는 북한 열차]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9월 12일에 보급 및 재정비를 마친 트라이엄프는 호위하는 와라뭉가,채리티와 콕케이드, 콩코드등과 함께 기동 부대를 만들어 사세보를 출항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인천이었다. 바야흐로 역사적 인천 상륙작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폭격받는 인천시]


  함대 승무원들에게는 행선지는 물론 비밀로 했다. 트라이엄프 기동부대의 임무는 상륙 작전 사전에 항공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상륙작전 직전 함대는 화력지원과 정찰 업무를 개시했다. 트라이엄프의 함포 사격 지원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순양함 저메이카와 케니아의 함포는 화이어플라이가 지시한 고지의 북한군 목표를 포격해서 대 폭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곳에 적 탄약고가 있었던 것이다. 산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고 엄청난 연기가 2,500미터 이상 솟구쳤다. 그날 저녁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 소장은  맥아더 원수로부터 치하 전문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첫날 13,000명의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다음날 17일 새벽 북한 야크기 두기가 인천 앞 바다의 상륙 함대를 공습했다. 두 기는 미 순양함 로체스터를 폭격하고 그중 한 기는 겁 없이 더 먼 바다에 있던 영 순양함 저메이카를 기총소사를 했다. 수병 한 명이 전사하고 두 명이 부상했지만 야크기는 저메이카의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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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습 전투기가 야크- 9기라는 설과 IL-10  기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국 기록은 이 북한 기들을 IL-2로
 적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기가 투하한 폭탄의 크기가
 전투기용인 소형으로 보여 야크기 설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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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양함 저메이카]


  트라이엄프는 인천 상륙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9월 21일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항했다. 이 번이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작전 항해였던 것이다. 함재기들의 손실도 많았고 함의 이곳 저곳도 손을 보아야 할 함들이 많아 한국 파견 임무를 종결해야했다. 트라이엄프는 이틀간 사세보 드라이 독크에 들어가 작전 중 입은 파손 부위를 긴급 수선했다 9월 25일 트라이엄프는 임무를 일주일 뒤에 극동해역에 도착할 다른 항모 테세우스에게 인계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테세우스 - 트라이엄프와 같은 급이댜.]

 

  트라이엄프는 그 후 영국 해군에 장기간 더 봉사했다. 50년대 말에는 함정 수리를 전담하는 공작함으로 변신해서 재 취역을 했다. 퇴역한 트라이엄프는 1981년 스페인 고철 업자에게 팔려 해체 되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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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3.26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좋은 시간이되세요..^^

  3. 야후 낙화 2010.03.2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기고글 잘 보았읍니다
    감사 드립니다 독님

  4. li815 2010.03.26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phy1133 2010.03.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기고가가 되신 ~님께 축하 메세지 남김니다. 즐감~

  6. 장대수 2010.04.1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어요~

  7. Douglass Pabich 2012.05.3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유익한 기사 극단적인 재미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 내에있는 모든 사람을 겪고 있습니까? 나 역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쓰는 사람의 방법을 만끽하는 데 도움 것을 보내 겠소. 감사

  8. Michel Alvidrez 2012.05.3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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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orest Skrebes 2012.05.31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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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5. Full Term Insurance 4 Sale Article 2014.03.31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