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5.25 47. 후방을 향한 공격 (5)
  2. 2010.02.06 13. 미 제24사단의 굴욕 (20)
  3. 2010.02.03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8)

47. 후방을 향한 공격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5.25 23:50


  기뢰에 막혀 바다 위를 한 달 동안 무의미하게 맴돌다가 원산에 겨우 행정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은 11월 16일이 되었을 때 인공호수인 장진호(長津湖) 인근의 하갈우리(下碣隅里)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개마고원(蓋馬高原)초입인 이곳은 협로로 연결되어 있어 앞으로 나갈수록 전진이 어려웠고 더구나 해발 고도 1,000~2,000미터의 고산지대여서 기온이 영하2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맥아더가 최종공세를 명령하자 동부지역의 미 제10군단도 11월 27일 진격을 개시하였는데, 이때 군단장 알몬드는 제1해병사단에게 장진호에서 낭림산맥을 넘어 강계방향으로 진격하여 서부전선의 제8군과 연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공격만 하다가 벌어진 전선의 간격을 막기 위해 내린 고육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미스(Oliver P. Smith) 미 제1해병사단장은 보급로와 임시 비행장 건설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야 사단을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여 진출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준비는 이후 놀라운 기적을 연출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장진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올리버 미 제1해병사단장 ]


  준비를 마친 미 제1해병사단은 제7해병연대가 유담리(柳譚里)로, 제5해병연대가 무평리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지만, 11월 27일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공격이 저지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10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만들어 놓은 포위망 안으로 제1해병사단이 유인되어 있던 상태였고 이런 놀라운 사실이 정찰대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제1해병사단을 향하여 중공군의 공격이 개시되었는데, 더불어 밤에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가는 기온은 오히려 중공군 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11월 30일,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철수명령이 하달되자 사단장은 가장 앞서 있던 양 연대를 12월 4일, 사단사령부가 있는 하갈우리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무려 중공군 4개 사단의 집요한 방해를 물리치고 600여명의 들것 환자와 함께 부대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이룬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미 제1해병사단이 이곳에 이룩한 신화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제 하갈우리에는 4,300여명의 부상자를 포함한 10,000여명의 병력과 1,500여명의 피란민 그리고 1,000여대의 차량이 집결하여 있었습니다.


[험로를 통하여 철수하는 미 제1해병사단 병사들]


  중공군 제9병단 예하 8개 사단에 포위된 이들이 황초령을 넘어 함흥까지 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때 병력만 공중으로 철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사단장은 최소한 2개 대대가 마지막까지 활주로에 잔류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이고 해병대 역사상 그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일언지하 거절하였습니다. 단지 4,300명의 부상자만 수송기로 사지를 탈출하였고 나머지 병력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12월 6일, 철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스미스 사단장은“우리는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격멸하고 후방을 향하여 새롭게 공격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훈시를 내렸습니다.


  유담리와 하갈우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격멸하는데 실패했던 중공군 제9병단은 4개 사단을 황초령 일대에 추가 투입하였지만 해병대의 의지는 중공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살인적인 혹한과 더불어 그들을 가로막는 중공군과 사투를 거듭하면서 황초령을 넘었고, 12월 11일 드디어 함흥을 거쳐 흥남에 도착하여 철수작전을 완료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섬멸할 경우, 미 국민들이 입게 될 심리적 충격을 잘 알고 있어 연일 매체를 통해 포위섬멸은 시간문제라고 선전하던 중이었고 미국 언론들도 미 제1해병사단의 포위와 철수과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존심을 건 상징적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결국 포위망을 뚫고 철수하는데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공격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전사 393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와 맞섰던 중공군 제9병단은 거의 궤멸되어 이후 4개월 동안의 부대정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중공군이 미 제1해병사단에게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함경도 깊숙이 진출한 미 제10군단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의 살신성인과 같은 투혼으로 아군은 전력을 보존하였고 반면 중공군은 이후 벌어진 제3차 공세에 제9병단을 동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바로 대한민국의 수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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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 제24사단의 굴욕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6 17:35

 
  스미스 부대의 오산 전개와 더불어 한반도에 후속 투입된 미군 부대는 미 제24사단 예하(의) 제34연대였는데, 7월 5일 저녁 경에 평택-안성을 연결하는 선에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제34연대의 굴욕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천안 시가지에 돌입하는 북한군]


  8일에는 후퇴하기에 바빠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도 전에 뒤 쫓아 온 북한군에게 천안을 내어주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장 마틴(Robert R. Martin) 대령이 전사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마틴 대령은 처음 천안에 도착하였을 때 전투복이 아닌 간편복에 단화를 신고 부대를 지휘하였을 만큼, 바로 직전에 있었던 스미스 부대의 참담함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북한군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으나 상대를 우습게보았던 결과는 이처럼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요충지인 천안에서 얻어터지며 물러난 미 제24사단이 다음으로 선택한 방어선은 금강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군이라는 자신감과 이름만으로 북한군을 막을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미 제24사단은 7월 12일 오후에 금강 이남으로 철수를 완료한 뒤 공주와 대평리에 각각 1개 연대를 배치하고 1개 연대를 예비로 후위에 배치하는 방어태세를 갖춘 후 7월 13일 금강의 교량은 물론 도선장과 나룻배까지도 모두 폭파하였습니다. 비록 국군이 한강교를 폭파하였을 때와 같은 비극이나 서두름은 없었지만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2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한군이 금강방어선에 도달하였고 곧바로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강에 방어선을 구축한 미 제24사단]


  공주지역으로 진격한 북한군 제4사단은 치열한 포격과 함께 야음을 틈타 소형 목선을 이용해 기습 도하 후 곧바로 후방으로 진출하면서 후방의 미 제24사단 포병대대를 유린함으로써 전면에서 앞만 바라보고 방어 중인 제34연대를 놀라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변변한 대응도 못한 제34연대는 패배의 무한반복을 계속하며 7월 15일 아침 논산 방면으로 후퇴하였습니다. 그러자 대평리 지역에서 방어 중인 미 제19연대의 좌우가 순식간 텅텅 비게 되었고 이틈으로 북한군 제3사단이 돌파하여 제19연대의 후방을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결국 제19연대도 7월 16일 17시경, 모든 중장비를 파괴한 후 산악 능선을 이용해 유성 방향으로 철수하게 되자 딘(William F. Dean) 미 제24사단장이 기대를 걸었던 금강방어선은 3일 만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제 결전의 장소는 교통의 요지인 대전이었습니다. 천안부터 계속 얻어터지며 이곳까지 밀려 내려온 제34연대에게 대전 방어임무가 부여되었으나 전의도 상실하고 피해도 많이 입어 지쳐있던 1개 연대로 대전을 방어한다는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습니다. 아직까지 북한군의 수적, 질적 우세는 계속되고 있었고 더구나 담당한 전선이 너무 넓어 틈이 많았기 때문에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대전 공격은 숨 돌릴 틈도 없이 7월 19일 아침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딘 소장의 지휘 하에 격파된 T-34전차]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격전에도 불구하고 미 제24사단은 치욕을 겪었습니다.


  갑천을 중심으로 공방전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방어지역 곳곳이 돌파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논산-대전 축선의 북한군 일부가 보문산 남측방으로 우회하여, 금산 및 옥천방향 도로를 차단하면서 제34연대는 다시 한 번 포위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제34연대는 차량 등 중장비를 파괴한 후, 소부대로 분산된 채 산길을 따라 금산과 옥천 방향으로 철수하였고 이로써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인 대전은 7월 20일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금강 및 대전 전투에서 미 제24사단은 2천여 명의 인원 손실과 대부분의 장비를 잃어 전투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낙동강까지 밀려난 제34연대는 전쟁 도중 해체되어 전투서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유일한 6.25전쟁 참전 미군 연대라는 참담한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두에서 용감하게 부대를 지휘하였던 사단장 딘 소장은 철수 중 실종되어 36일 동안 산야를 헤매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되면서 6.25전쟁 중 공산군의 포로가 된 최고위 인사라는 불명예도 얻었습니다. 너무 상대를 깔보았던 미군이 얻은 대가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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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진강 2010.02.07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없이 당했군요

  2. 안강 2010.02.10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께 6.25 전쟁때 이야기 3시간동안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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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J 2010.03.30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의시간에 듣고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는데

    좋은 내용 감사합니당!

  4. Jinkyu Kang 2011.09.13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을 과소 평가 한것이 아니고 본병력이 올때까지의 24사단은 예비사단 이기때문 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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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3 11:46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1950년 6월 30일, 결정이 나자마자 곧바로 미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이 이루어졌을 만큼 미국의 6·25전쟁 개입은 상당히 빨랐습니다. 일본 점령군으로 임무 수행 중이던 미 제8군 예하부대 중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규슈(九州)에 주둔하던 미 제24사단에게 제일 먼저 출동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여 제24사단에게 우선 대대 규모의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부산으로 공수시키고 난 후 뒤이어 사단 본대를 한반도로 전개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하는 스미스 부대]


  제24사단장 딘 소장은 예하 대대 중 가장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제21연대 제1대대에 포병대와 약간의 지원부대를 증원시켜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였고, 이를 대대장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수 임무대(Task Force Smiths)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일 14시경 수송기편으로 스미스 부대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역사적인 6·25전쟁 참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미군이 전세를 즉시 역전시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열차편으로 북상한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03시에 오산 북쪽 경부가도 상에 있는 교통요지인 죽미령인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중, 명령이 하달되자 당일 부대를 편성하고 다음날 부산에 도착한 후 대전과 평택을 경유하여 죽미령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스미스 부대원들의 전투준비는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전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때문에 미군들은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스미스 부대원들은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넘치는 자신감이 만용임이 밝혀지는데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스미스 부대가 빗속에 허둥지둥 진지편성을 마치자마자 8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죽미령을 향해 다가오는 북한군의 행렬이 관측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한국군처럼 북한군 전차에 대한 공포는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사격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까지 다가오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7월 5일 07시 30분, 자신만만하게 7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북한 전차를 명중시키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북한군간의 최초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타격을 입은 북한군 T-34전차는 잠시 멈칫했을 뿐 계속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미 보병들은 뒤에 배치된 제52포대로부터 지원 화력을 받았으나 적 전차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군을 보기만 해도 물러갈 것으로 생각했던 북한군이 생각과 달리 전차를 앞세워 전선을 돌파함과 동시에 보병을 좌우로 신속히 산개시켜 미군진지를 일순간 포위 돌파하면서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은 순식간 붕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상황은 순식간 당혹으로 바뀌었고 6월 25일 국군들이 느꼈던 공포를 미군들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던 스미스 부대원들
하지만 그들도 6시간의 전투 후 이 대열에 동참합니다 ]


  북한군의 진격 속도는 미군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을 만큼 상당히 급속하였습니다. 죽미령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포병대조차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 북한군 전차에 짓밟혀 버려 산산조각 나 버렸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반나절의 전투로 스미스 부대는 440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포병대의 야포를 비롯한 모든 중화기는 망실되었습니다. 미군과 북한군의 역사적인 첫 전투는 이처럼 미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미군들은 후퇴하는 국군과 나란히 열을 맞추어 남쪽으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초기에 벌어진 미군의 참담했던 패배는 단지 이제부터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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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기자부대 2011.01.0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력과 정신력도 문제였겠지만 빨갱이가 얼마나 잔악한 놈들인지 그 실체를 정확히 몰랐던 데 기인한 것입니다.

  2.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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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electric fence for dogs 2012.12.03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8. rattan indonesia 2012.12.30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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