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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9 09:16


  불과 3명의 적병을 사살하고 서울을 탈환한 제1 보병사단  오늘날에도 국토방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기간에 치러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1950년 9·28 서울 수복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비해 51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제2차 서울 수복작전은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50년 9월의 1차 수복작전이 수만 명에 달하는 적의 격렬한 저항을 극복한 후 이뤄졌던 데 반해, 2차 수복작전은 좀 싱겁게 끝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1951년 3월 14·15일에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선봉인 제15 보병연대가 서울에 입성한 이후 적의 경미한 저항만을 받았을 뿐 이렇다 할 치열한 교전없이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서울을 함락한 이후 중앙청 앞에서 승리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 
  이 작전은 미 제8군이 3월 7일부터 발동한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인데 당시 제8군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이 작전을 통해 중부의 미 제9 군단 예하 25 보병사단이 양수리와 팔당 부근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해 서울 동측을 위협하는 한편 한강 남안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미 제1 군단( 한국군 제1 보병사단·미 제3 보병사단)을 투입시켜 큰 피해 없이 서울을 탈환하려 했습니다.
  1951년 3월 7일 전 전선에서 UN군의 리퍼 작전이 개시되자 중·조연합사령관 펑더화이는 미 제25 보병사단의 도하와 중동부 지역에서 감행된 미 제10 군단과 한국군 제1 군단의 공격에 대해 지연전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펑더화이. 리퍼 작전이 개시될 시점에서 펑더화이는 현재 극심하게 소모된 전력으로 반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고 신속한 철수 지시를 하달합니다.
  당시 베이징 방문 이후 막 전선 사령부에 복귀한 펑더화이는 3월 9일 한강 남안 진지에 있던 제38군의 1개 보병사단과 제50군의 1개 보병사단에 한강 북쪽으로 도하에 성공한 미 제25 보병사단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3월 11일에는 베이징의 저우언라이에게 “우리 군은 그 동안의 전투로 전력이 너무 많이 손실되었습니다. 따라서 재편성할 시간을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포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후미 부대로 지연방어를 펼치면서 일선의 유생역량을 보존하고 적 주력을 흡수해 38선까지 진출하도록 합니다.”는 내용의 작전 의도를 밝히는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그의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극도로 혹심한 손실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아! 6.25 방문자 여러분 중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그와 테란을 통해 "인해전술"과 "화해전술"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저그하면 빠른 확장과 부화장, 3마리씩 생산되는 라바를 통한 압도적인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 중국 인민지원군을 저그족으로 보면 되는 셈이죠.
  반면 테란은 대량 생산능력 및 보병 전력이 취약하지만 대신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크라이트 공성전차와 토르, 전투 순양함 등으로 대표되는 '화해전술'을 구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테란이 UN군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1951년 1월 말에서 2월에 걸쳐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부족한 병력의 열세를 강력한 화력으로 보완하는 '화해전술( 火海戰術 )'을 구사했습니다.
  안 그래도 추위와 적시에 보급을 받지 못해 허덕이던 중국 인민지원군은 인해전술을 감행할 때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포탄과 기관총탄, 폭격으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서울을 함락시킨 후 한강 남쪽까지 진출하는 과정까지 누적된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연히 UN군의 리퍼 작전에 맞서 과거와 같은 대 반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무리였던 셈이었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철수하여 후방에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1951년 1월 말부터 감행된 UN군의 맹렬한 공격은 오랜 국공내전 및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인민지원군의 정예병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펑더화이로서는 중국에서 추가적으로 증원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재 전선에 배치된 전력만으로 싸워야했던 한계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죠.
  이에 따라 서울을 방어하던 북한군 제47 보병사단과 중국 인민지원군 제50군에는 3월 13일, 도시를 포기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들은 3월 14일까지 서울에서 완전 철수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3월 14일 제15 보병연대장 김안일 대령에게 수색대를 투입시켜 한강을 도하한 다음 중앙청까지 진출해 적정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미 제3 보병사단과 제1 보병사단 15 보병연대는 치열한 시가전을 치를 것을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죠. 솔직히 위 게임장면을 봐도 알 수 있듯 일선 군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피를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수색대의 지휘를 맡은 제15 보병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장 이석원 중위는 소대를 이끌고 마포 쪽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역을 거쳐 중앙청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이 중앙청까지 행군하는 동안 적의 저항은 하나도 없었고 사실상의 무혈입성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 다가갔을 무렵에야 처음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하는 적을 발견하니 사실상 싱겁게 서울에 진입해 작전을 수행한 셈이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서 적 기관총팀의 저항을 받았을 뿐 사실상 서울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석원 중위는 별다른 문제없이 전방 고착견제와 측방 타격조 우회 전술을 이용해 적 기관총팀 3명을 사살하고 중앙청에 입성했습니다.
  "뭐야, 이 녀석들. 전부 도망간 것 아냐?"
  이석원 중위와 수색대원들은 문자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좀더 수색한 결과 서울 시내에 적이 철수하고 없다는 정황을 확인한 후 저녁 무렵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연대 본부에 복귀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최종 보고를 접한 김안일 대령은 3월 15일, 예하 3개 대대 전체를 서울 시내로 진출시켰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습니다.
  무혈입성하기는 했지만 이미 서울은 치열한 격전 끝에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죠. 사진은 전화로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모습입니다.
  1차 수복 당시에는 해병대가 그 몫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1 보병사단이 그 역할을 수행한 셈이었죠.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치열한 격전 끝에 탈환했던 평양과 달리 너무나도 손쉽게 무혈입성한 서울 탈환으로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기에 장병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요.
  펑더화이의 ‘서울 자진철수’ 결정 및 제47 보병사단이 서울에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중국 측에 격하게 항의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의견이었던 탓에 저우언라이에 의해 간단히 묵살당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1951년 5월 중순까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제1 보병사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서울을 완전 수복한 제1 보병사단의 활약은 오늘날에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제1 보병사단이 탈환한 서울은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의 맹렬한 대공세에도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휴전을 맞이하며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굳건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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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8.19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준기님// 감사합니다.

    제2차 서울탈환작전은 중공군의 신속한 퇴각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작전을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이번 탈환작전으로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전세에 중요한 국면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의의를 둬야겠죠

  2. 강현구 2010.08.2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Ⅱ : 자유의 날개 화면이네요. 울트라리스크와 히드라리스크 대군에게 쫓기는 테란군이라....

    딱 적절한 대조 같습니다.

  3. 김준기 2010.09.15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 님

    내가 김준기인데 위의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요.

    우리 아빠가 내이름으로 열어놓은 블로그인데
    거기에 링크까지 걸었군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양심적으로 실고 싶으면 삭제하세요..

  4. 박소영 2010.10.02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지상군 페스티벌 2010에서도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니 서울에서 당장 내려가 보고 싶네요 ^^

  5. 코튼 맨 2010.10.02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국방부 블로그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안타까워요 ㅠ

  6. 리산 2011.06.07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1년 3월 9일경 한강도하에 성공한 미25사단이
    실제로 어디로 도하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일부 책에는 현재의 양수리(두물머리공원),
    전적비는 조안면 쪽에..

    어떤 책에는 덕소쪽이라고 하는데,

    3군데 모두 도하를 한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면 부탁드립니다.

  7. 용뿔 2011.06.2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소하지만, 오타지적입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에서 우뢰는 우레로 정정합니다.우레는 순수 우리말로 천둥이라는 의미입니다.

  8. 이민하 2012.03.25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뺏기고 뺏기는 ..북한 남한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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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박성현 2012.09.0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 상무대 보병학교 교육단 교도대대 화기중대 상병 박성현 입니다.

    본 포스트를 읽으면서, 먼저 일반적으로 20대들에게 친숙한 스타크래프트2를 인용하며 포스트를 해 주셔서 더욱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포스트로 제 1보병사단의 활약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자신부터라도 남은 군생활 동안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복무하겠습니다.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21sunghyun@naver.com

  13. Get more info about Luminix Power 2014.02.13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