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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4 52. 예상을 벗어난 위기 (3)
  2. 2010.04.02 31. 낙동강아 잘 있거라 (7)
  3. 2010.02.26 20. 북한군의 기도 (16)

52. 예상을 벗어난 위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6.14 08:30

 

  서울에 미련을 두지 않고 37도선까지 후퇴한 아군은 1월 6일 평택-안성 간에 설정된 방어선을 점령했으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서울에서 추격을 멈추었습니다. 마치 중공군의 그림자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간 꼴이 되어버린 제8군은 이러한 의외의 상황에 상당히 당황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목표는 유엔군 격멸이 아니라 서울의 점령이었고 여기에서 그 동안의 계속된 공세로 지쳐있던 부대를 재편할 예정이었습니다. 어쨌든 중공군은 최초 등장이후부터 매번 예측을 벗어나는 행태를 보여 계속하여 아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중공군은 알려진 것이 없는 미지의 군대였던 것이었습니다.


[유엔군에게 있어 중공군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군대였습니다.]


  이처럼 1951년 들어서자마자 숨 가쁘게 서울을 내주고 물러났지만 양측 주력이 팽팽히 길항하던 서부전선은 곧바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가평-춘천 지역으로 공세를 펼친 중공군 2개 군이 국군 제2, 5사단 지역을 돌파한 후 서부전선과 연결을 시도하여 이곳에도 일시적으로 위기가 조성되기도 하였으나 1월 8일을 전후해 일제히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공군의 모습과 달리 북한군이 공세를 벌인 홍천-원주 지역은 전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국군 제8, 3사단이 담당하던 전선이었는데, 정면에 북한군 2개 군단이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후방에서 암약하던 유격대가 아군의 배후를 공격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순식간 영월-단양 일대까지 진출하면서 제8군의 후방 병참선을 위협하면서 순식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으로 진출한 북한군 제2군단 10사단은 안동지역까지 급속 남하하여 아군을 초긴장상태 몰아넣었습니다. 한마디로 1950년 여름 북한군의 최대 진격선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진출속도는 오히려 당시를 초과하였습니다. 위기를 직감한 제8군사령관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던 국군 제3군단을 1월 3일자로 미 제10군단에 배속하여 중부전선의 위기를 수습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당시 미 제10군단은 대구 및 부산 등에서 부대를 정비하고 있던 중이었고, 이곳에는 군우리에서 학살과 같은 참화를 겪고 망신창이가 되었던 미 제2사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 제2사단은 중부전선의 최대 위기처인 원주를 사수할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당시의 요도]


  이제 1951년 1월 초, 유엔군의 최대 관건은 서부전선보다 원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북한군이 원주를 돌파하여 청주-대전방향으로 진출한다면, 서부전선에 포진한 유엔군 주력은 후방이 차단될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을 내어주고 중공군의 공세가 주춤한 1월 4일 이후부터는 북한군의 공세가 극성을 부린 원주가 제8군의 최대 관심지역으로 부각된 것이었습니다. 북한군 제5군단은 피란민으로 위장했던 부대를 원주 정면에 투입함과 동시에 원주 서측 문막에 제12사단을 투입하여 방어에 나선 미 제2사단의 후방을 위협했습니다. 군우리의 악몽이 떠오르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포위당하여 몰 살 당할 악몽을 경험하였던 미 제2사단은 퇴로차단을 우려해 1월 7일 밤, 원주 남쪽의 목계 방향으로 철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주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군단장의 명령으로 현지사수로 목표를 바꾸었고 1월 8일 아침, 항공기의 근접지원과 함께 역습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격렬한 공방전 끝에 1월 11일 오후, 원주를 감제할 수 있는 요충지인 247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4일간의 전투에서 북한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철수하게 되었고, 미 제2사단은 제8군의 위기를 수습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전투를 기화로 미 제1사단은 군우리에서 당한 패배의 앙금을 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던 점입니다.


[원주를 공격하는 미 제2사단 (1950년 1월 10일 사진)]


  1950년 12월말, 연합사령부를 구성하면서 공산군 측 지휘권을 펑떠화이가 모두 차지하게 되었던 것을 내심 김일성과 북한 군부가 반발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부전선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단독공세가 사전에 중국 측과 조율되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북한군에게 단독 공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었고 더욱 더 중국 측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중공군은 제3차 공세는 마오쩌둥의 지침에 따라 서울점령이라는 작전목표를 손쉽게 달성하였지만 국군과 유엔군은 서부전선의 주력을 보존하여 후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바다를 통해 후퇴한 미 제10군단이 즉시 전선에 재투입되기에 곤란한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중동부전선의 방어선이 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이때 중공군이 북한군과 함께 원주지역으로 전력을 집중하였다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의 명령에 따라 예정보다 빨리 제3차 대공세를 개시한 중공군도 준비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아군은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수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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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낙동강아 잘 있거라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02 08:31

 

  인천상륙작전 다음날인 9월 16일 09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드디어 제8군의 반격이 개시되었습니다. 피 말리는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었던 힘들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일거에 뒤엎을 수 있다는 간절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대처럼 성공적으로 상륙부대가 적의 배후 깊숙한 곳을 강타하는데 성공하자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있던 아군은 교두보를 박차고 나와 북한군을 돌파하여 경부 축선을 따라 진격해 인천상륙부대와 연결하는 사전계획대로 진격을 개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인천상륙과 동시에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김천에 설치한 전선사령부 예하의 13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사단이 낙동강가에 촘촘히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공군의 후방차단으로 보급 및 병력보충이 불가능하여 총병력은 7만 여명에 불과했고 그 대부분도 점령지에서 강제 징집한 신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초훈련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전투력도 모자랐고 식량 및 탄약이 절대 부족하여 사기도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전선붕괴는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반면 국군과 유엔군의 병력은 총 16만여 명까지 늘어나 있었고 전차, 야포 등의 중화기 전력은 어느덧 10배 이상의 우위를 보였습니다. 더구나 하늘과 바다에서의 전력차이는 비교불가의 상태일 만큼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아군의 전선 돌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천에 아군이 상륙한 이후인 9월 16일 까지만 해도 전장의 주도권을 아직도 북한군이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북한군은 7월 31일 이후 거의 고착화되어 있던 마산-왜관-영천-포항을 연하는 선에서 집요한 공격을 감행하던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아군의 반격작전이 시작된 9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어느 쪽이 공자(攻者)이고, 어느 쪽이 방자(防者)인지도 모를 정도로 전선이 혼란스러웠던 상태였고 더구나 기상악화로 항공지원이 곤란하자 제8군의 공격은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대응은 집요하였고 전선 돌파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9월 18일, 비가 그치고 기상이 호전되자 돌파구를 개척하려 왜관-김천축선에 B-29폭격기 42기가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하였으나 공격은 진척이 없었고 반격의 선봉으로 내정 된 미 제1기병사단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에 낙동강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사단장까지도 유엔군의 인천상륙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계속 낙동강에만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당시의 낙동강방어선에 모여든 북한군은 자신들의 정확한 처지도 모르고 오로지 공격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자 제8군사령관 워커의 근심은 커져갔고 맥아더는 군산에 추가적인 상륙작전 준비를 지시했을 만큼 초조해 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인천에 상륙한 미 제10군단이 경인지역에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될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때 이런 어려운 고비를 뚫었던 것은 국군 제1사단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 작별인사를 하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원래 주공으로 예정되었던 미 제1기병사단의 우측에 있던 국군 제1사단은 북한군의 방어지역을 공격하던 중 가산산성 우측계곡이 텅텅 비어있던 것을 알고 이곳으로 신속히 돌파를 감행하여 9월 19일에 기습적으로 갈뫼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갈뫼가 아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대구공격에 투입되어 있던 북한군 제1, 3, 13사단의 동측이 완전히 차단되었는데,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배후가 차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낙동강가의 북한군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국군의 선전으로 미 제1기병사단은 19일 14시경, 북한군 제3사단을 붕괴시키면서 왜관을 탈환하고 이어서 저녁 무렵에는 낙동강을 건너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 22일, 국군 제1사단이 지난 8, 9월 내내 양측이 명운을 걸고 피로 물들였던 다부동에서 미 제1기병사단과 연결되자 나머지 국군과 유엔군의 모든 부대들은 낙동강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앞으로 내달릴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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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별!!
    좋은 작별도 있었네요.

  2. G-Crusader 2010.04.12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부동의 기적의 승리와 낙동강 방어가 있었기에...

    인천상륙이 가능했고...

    오늘의 자유대한이 있습니다.


    백선엽대장께서는 다부동의 승리가

    하나님께 받은 기도 응답이었음을 엊그제 간증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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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광명성(=계명성, 광명성),적그리스도이자 루시퍼의 도구인,

    김정일의 사탄의 군대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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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21세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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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북한군의 기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26 08:50

 

  8월 1일을 기점으로 아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자 북한군은 ‘신속히 추격하여 낙동강을 돌파한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아군에게 낙동강 방어선은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인 부산을 안전하게 확보하기위한 마지막 보루였지만, 반면 이곳을 돌파 당하면 북한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연히 북한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낙동강을 넘어 부산으로 진격하여야 했고 필연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은 예고되었습니다.


[부산은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이었습니다.]


  폭염의 8월과 더불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어가기 시작하였을 때 다행히도 양측의 전력은 서서히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군은 계속적인 증원으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반하여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진출하면서 5만 6천여 명의 병력 손실과 함께 초전승리의 원동력이었던 전차의 80퍼센트 이상이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일선 부대의 전투력은 이미 최초 편제의 50~60퍼센트 수준으로 격감했습니다.


  전후 파악된 여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자신만만하게 전쟁을 개시하였지만 막상 구체적인 후속계획이 미흡하여 전선이 남으로 내려갈수록 전력보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사실 북한군의 전력이 이처럼 고갈된 데는 아군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었습니다. 개전 후 7월말까지 아군은 전사에 일방적으로 패배와 후퇴의 기록만 남긴 것 같지만 그러한 반대급부로 북한군의 급격한 소모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조기에 확보한 제공권은 북한군이 주간에 마음 놓고 작전을 펼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군의 포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북한군의 Su-76 자주포]


  따라서 단지 겉으로 북한군은 7월말까지 한반도의 90퍼센트를 점령하는 엄청난 전과를 보였지만 당장 낙동강을 넘어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하여 격파할 여력이 없을 만큼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만약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초전 3일간처럼 공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능히 한반도 전역을 조기에 휩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였고 다만 그동안의 공세를 발판삼아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보급선이 38선으로부터 300여 킬로미터나 늘어났지만 운송수단이 열악한데다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하여 기본적인 보충조차 이루어지지 못할 만큼 최전선의 북한군은 애를 먹었습니다. 북한은 36만의 주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1인당 20킬로의 보급품을 심야에 하루 20~30킬로미터 씩 릴레이식으로 보내는 고육책으로 하루 평균 400톤 정도의 보급품을 전선에 공급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여건은 유엔군과의 전력균형이 변화하는 요인이 되었고 당연히 전투력의 저하를 불러왔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균형이 무너질 것임을 북한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점령지에서 의용군을 강제 징집하였을 만큼 북한군의 능력은 반감되었습니다]


  개전 초에 북한은 조공으로 정면을 견제하면서 주공을 아군의 간격사이로 진출시켜 후방을 차단하는 전술을 사용했지만, 낙동강에 촘촘히 방어선이 구축되자 더 이상 이런 전술을 사용할 수 없었고 이제는 피해를 무릅쓰고 정면으로 공격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북한군은 영천 및 포항 방향 그리고 창녕 및 마산 등 다양한 여러 곳을 선전하여 전선의 일각을 돌파한 후, 돌파된 지역으로 예비대를 신속 투입하여 부산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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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0.02.27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속으로 사라진 아픈 기억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2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제로 징집되어 북한군에 가담하였던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적군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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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piano movers nj 2013.08.25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단장은 작전을 처음부터 재검토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군이 피의 능선 지역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었다는

  15. cosmetic dentist in boerne tx 2013.10.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마지막 보루였지만, 반면 이곳을 돌파 당하면 북한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