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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들의 횡재 - 장진호 목재소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20 08:52

 


6·25전쟁중 변변치 못한 군용품들이었지만 공산군의 일부

군용품중 한국군과 UN 군 사이에 인기를 끌던 노획품들이

있었다. 


소제 TT 권총이 한국군뿐만 아니라 UN군 장병 사이에

제일 인기가 있었고 따발총도 인기 노획품이었다.


미군들도 중공군의 큼직한 야전삽을  즐겨 사용되었고

국군들 사이에 그들의 튼튼하게 만든 농구화도 인기가 있었다.

인천 상륙 성공직 후 맥아더의 축하를 받는 미 1 해병 사단의
스미스 소장 -  빈  권총집이 말해주듯 그는 속기사 자격증도
있는 온건한 학구파였다.그러나 인천과 장진호 전역에서
어느 맹장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용맹한 지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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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획품 중에 대단히 특징 있는 것이 있었다.

미 해병들이 장진호반 아래 하갈우리에서 노획한 산판 제재소와

엄청난 양의 벌채된 통나무였다.

이 원목들은 장진호 일대의 원시림에서 벌채 된 것이었다.


다른 전투 상황이었다면 이 통나무들은 미 해병들과
별다른 관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려온 이 고원지대에서

미 해병들은 이 통나무들을 모두 제재소에서 가공해서
정말 요긴하게 잘 활용했다.


하갈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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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통나무들이 그렇게 잘 활용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자.


6·25전쟁에 8월부터 참전한 미 해병 제 1사단은 과달카날과

유황도에서 극악하게 저항하는 일본군들을 격멸하고 섬들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운 미 최 정예 보병 사단이었다.


6·25전쟁 개전한달 만에 한국으로 파병되어 낙동강 전선의

위기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9월에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의 영웅적 주인공이 된다.

이 사단은 서울 탈환 후 다시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흥남을 거쳐 장진호로 향하게 된다.


해병 1사단은 배속된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이 구상한대로

한반도 북방을 동서로 가로질러 동쪽 평안북도에서 북상중인

미 1 기병사단과 상봉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한반도의 북쪽을 양단하는 작전이었던 만큼 잘만 되었으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참전을 결정한 중공군이 이미 10월 16일부터
압록강을
건너 서쪽 워커 장군의 8군과 동쪽의 아몬드
10군단 사이 80마일
공간을 파고 들어 잠복하고 있었고 그 뒤로도
추가 병력이 계속 후속해서 증파 되고 있었다.


즉 1 해병 사단은 둥지를 틀고 있던 적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작전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제대로 정보 수집과 판단도 하지 않고 대 전략을 구상했던

아몬드의 실수였다.


해병의 작전을 간파한 모택동이 움직였다.

그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송 시륜의 6병단에게 UN군의

한반도 북부 절단을 거부하는 대작전을 개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6병단은 동계 장구도 제대로 못 한 채 급히 한반도로 출동했다.

[이 결과로 수없는 동사자와 동상자가 생겨서 병단은 전투력을

 잃은 폐병단이 되어 다시 몇 개월간 다시 부대 편성을 해야했다.]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은 50년 11월 초 흥남에서 장진호로 향하는

길목인 수동에서 송시륜  휘하 중공군 124사단과 초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서부 전선의 군우리에서 미 육군이  중공군에게 대패했던 것과

대조가 되었다.

이것은 전체 중공군의 첫 한반도 참전 대패였다.

패전한 중공군 124사장 위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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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진호반으로 들어갈수록 저돌적인 아몬드 장군과는

다르게
1 해병 사단장 스미스 장군은 전방에 대군의 중공군이

증강되어 대기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아몬드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전진속도를 최대한 지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 해병의 5및 7의 두 개 연대가 산맥과
장진호반의 좁은 사이인
유담리로 들어갔고 배속된 육군 7사
31연대는  비슷한 지형의 호수 건너
풍구리로 들어갔다.


뒤에서 후속하던  미 11 해병  연대는 고토리를 통과 중이었다.

호수 제방 남쪽 하갈우리에 도착한 이 시점에 스미스 장군은

결과에서 입증된 정확한 결단을 했다.


유담리와 신흥리의 해병과 육군 연대에게 전진을 최소한
늦추고
근처 고지를 점령하게하고 넓은 하갈우리에 비행장을

만들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해병들은  하갈우리 근처 고지를 점령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여차하면 해병 사단이 모두 철수해야할 비상상황에
만반의 대비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몬드의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전방에 정찰을 계속

실시하며 상황의 눈치를 보았다.

적정은 날로 우려스러워졌다.


날씨는 엄청나게 추워져서 땅이 돌처럼 굳어졌다.

활주로를 밀고 있던 불도저의 날이 상해서 예비 날을 용접하여

사용하여야 했다.


하갈우리에는 함흥으로 이어지는 좁은 협궤  철도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일제가 장진호 부근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해서

운반해내던 철도였다.


용의주도한 준비에는 하갈우리에 많은 시설 건설이

필요하였다.건축 자재도 필요했다.


이 모든 자재를 흥남에서 좁은 길로 운반해 오려면

수송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이 길은 중공군에 의해서 차단되고 오직 급히 건설한
비상 비행장만이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비행기로 목재를 운반하는 것은 낭비적인

짓이었다.


이 순간에 해병들이 철도의 옆에서 발견한 제재소와

산더미 같은 통나무 원목은 해병대의 행운이었다.


해병 건설 공병들은 대원을 파견해서 제재소를

다시 가동하고 통나무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그 산더미 같은 원목을 다 제재해서 가공하기에 며칠이 걸렸다.


한편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토막 낼 포위망을 형성한

중공군 제 9 병단 6만 명의 지휘관 송 시륜은 드디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초전의 수동 전투 패배에서  체면을 깎이고
악에 바쳐 있었다.


6병단장 송 시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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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중공군의 주력[6만명의 병력중 5만 병력]은 유담리에

들어간 최선두의 미 해병
두 개 연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고지를 선점했던 해병들은 잘 싸워서 이들의
공격을 무산시키고 큰 피해를 주어서 격퇴하였다.

그러나 출현한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에 놀란 해병은
시급한 철수를 결정했다.

유담리의 공세에서 실패한 송 시륜은  비로서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 방향을 돌려 호수 건너 신흥리의  육군 7사단 31연대와
하갈우리의 해병사단 본부도 공격했다. 


육군 31사는 고전했지만 하갈우리의 해병들은 중공군을
격퇴해냈다.


유담리 구호소의 해병 부상자들 -상당수가 동상환자였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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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이 난 송시륜은 한국 참전 최초의 인해전술까지

써가며 맹공격했으나 
하갈우리를 점령할 수는 없었다.

최초에 하갈우리의 병력과 전투력을 얕보고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장진호 산길에 길게 배치된  해병들의 부대에서

사단 본부가 위치한 하갈우리가 전략적으로 제일 중요했었고

또 제일 허술하게 방어되고 있었는데 송 시륜은 큰 작전 실수를

했다고 하겠다.

이곳을 집중해서 쳤다면 해병의 사단본부는 섬멸되고

외부와의 유일한 통로인 비상 비행장을 잃고 사단은
3분되어 그 운명을 짐작하기가 곤란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집을 세우던 아몬드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해병들에게

이미 총 퇴각 명령을 내려 놨던 터였다.


철수하는 해병대가 전방의 항공 폭격을 지켜보고 있다.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가 바로 아래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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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유담리의 2개 해병 연대가 무사히 철수해서 하갈우리로

돌아오게 되면 혹독한 추위 속에 이들을 단 며칠이라도 따뜻하게

수용할 숙소가 필요하다.
그들은 전투와 추위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엄청난 수의 텐트를 건립해야 했다.


하갈우리 여기저기 안전한 곳에 텐트촌에 건설되었다.

이 텐트 촌  건설에도 목재가 필요했다.

미군의 크고 작은 텐트들은 지주목(支柱木)이 필요했고
그 양은 막대했다.

북한이 해병들에게 선사하고 떠난 통나무 원목은 대부분
지주목으로
가공되었다.


한국전중 미군 텐트 촌 - 군용 텐트는 여러형이 있었으나
모두 지주목이 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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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결국 유담리 쪽의 해병 2개 연대는 적의 봉쇄를 깨고

무사히
장진호 동쪽 하갈우리 사단  본부로 철수할 수가 있었다.


호수 오른쪽 신흥리로 전진했던 육군 7사단 31연대는 산산조각이

나서 연대장과 연대장 대리가 전사하고 연대기를 빼앗기는

대패를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병력이 호수 얼음을 통해 탈출해

왔다.



유담리의 해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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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리의 해병들은 덕동고개를 넘어 하갈우리로 진군해

들어올 때 해병대 찬가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이들은 12,000명이었다.


전방의 병력이 합류한 하갈우리 사단본부의 병력은
20,000명이 가까웠다.
텐트촌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하갈우리에서 발견한 제재소와 통나무들이 이 엄혹한

시기에 나타나 준 것은 해병들의 큰 행운이라 하겠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모로코 전선의 미군  천막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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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와 추위에 지친 해병들은 북한 정권의 선물로 세운

따뜻한 텐트 안에서 뜨거운 식사와 휴식을 즐겼다.


환자들은 역시 긴급 치료를 받고 비상 비행장을

왕래하는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후송되었다.


미 해병들의 천막은 다양해서 이런 원추 모양의 중소형 천막도
다량 설치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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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격렬한 전투를 겪었지만 하갈우리의 해병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주변 산악의 중공군들에게 겹겹이 포위당한

그들이지만 부대에 믿기 힘든 루머가 떠돌았다.


루머는 해병들이 하갈우리에서 두어 달 시간을 보내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트루만이 핵무기로 한국 참전

중공군들을 쓸어버리고 다시 국경 쪽으로 진격해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한다는 루머였다.


겹겹이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그만큼 해병들의 자신감과

사기가 높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루머는 함흥평야로 철수할 때까지도 끈질기게 떠돌다가

흥남 철수가 결정된 것을 알게 된 뒤에야 사라졌다.


해병들은 중상자들을 후송시키고 휴식과 정비를 한 다음

적 차단을 뚫고 고토리로 철수했다.

고토리의 해병11연대와 합류해서 사단 일체가 된 해병들은

이제 겁날 것이 없었다.


중공군은 계속 평북 군우리나 운산 같은 골짜기 기습을 노렸지만

해병들은 모두 극복하고 마지막 관문인 황초령[장진호 입구]의

차단한 중공군도 격멸해 버리고 죽음의 함정을 탈출해 나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해병들이 고토리 좁은 산길로 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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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지 않아하는 해병들을 대군의 적병들이 잠복한 위험한

산길로 몰아넣었던 10군단장 아몬드는 해병들이 엄청난 병력에게

포위 된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장비를 모두 버리고 신속히

해안으로 탈출하라고 지시했었다.


사단장 스미스 장군은 이를 거부하고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맞받아치면서 모든 장비는 물론 전사자의 사체까지 모두

운구해 가지고 철수했다.


하갈우리에서 제재한 텐트 지주목도 모두 가지고 나와

흥남에서 다시 텐트촌을 만들고 승선을 대기할 때 다시 요긴하게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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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is be 2010.08.22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병특수수색대출신의50대입니다. 감동적으로 글 잘 읽었습니다. 한번해병은 영원한해병

  2. 시라소닉 2010.08.25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과 목재와는 거리가 멀거라 생각했는데 엄청 요긴하게 쓰였네요...
    글과 함께 실린 사진 덕분에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3. Amoled 2010.09.17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울프독 님은 퍼싱이라는 분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블로그에서 엄청나게 비난하고 싸우시던데. 연유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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