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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2 71. 예견된 대전투 (2)
  2. 2010.03.02 21. 북한군의 8월 공세 (24)

71. 예견된 대전투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2 09:09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끝나고 아군의 반격이 얼추 끝나가던 5월 초, 교통의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일대에서 전선으로 향하는 공산군 측 군수물자의 수송량이 눈에 띠게 증가되고 있음이 포착되었습니다. 더불어 포로를 심문한 결과, 지난 공세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군은 곧바로 공세를 재개할 것이라는 첩보도 입수되었습니다. 이런 각종 정보를 분석한 결과 전선에는 중공군 54만, 북한군 20만이 배치되었고 더불어 만주에는 후속투입 될 75만의 예비 병력이 주둔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전선에 집결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은 또 다른 대규모 공세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의미였습니다. 공산군은 지난 제5차 공세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지만 신속한 보급과 증원으로 전력을 조속히 재편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중공군의 전술과 보급 능력을 고려한다면 6월초나 공세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앞당겨 질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도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느 규모의 공세보다 클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반면 당시 유엔군 27만, 국군 23만으로 구성된 아군은 수적 열세를 면하지 못하였고, 다만 화력으로 병력의 부족을 만회해 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사실 중공군의 참전이후 정립된 이러한 패턴은 휴전 때까지 계속하여 이어지게 될 6·25전쟁의 패러다임이기도 하였습니다. 제5차 공세를 물리쳐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밴 플리트는 적의 재 공세가 있다면 현 전선에서 후퇴 없이 적을 저지하여 고착화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일 이 상태에서 적에게 밀려 다시 남으로 철수한다면 간신히 꺾어놓은 적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게 되고, 이것은 차후 예상되는 휴전협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시소처럼 이제까지의 한차례 씩 공세와 방어가 오고가던 반복상황을 그는 끝내려 하였습니다. 이제 아군의 전략은 중공군이 공세를 하면 지연하면서 후퇴하다가 적이 약해지면 반격한다는 소극적 개념에서 현 전선에서 후퇴 없이 적을 막아낸다는 적극적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지난 중공군의 제4차, 제5차 공세를 통하여 일주일 정도만 방어선을 지켜내면 적을 반드시 물리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20여 킬로미터의 전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기 시작하였고 배후에는 강력한 포병전력이 구축되었습니다.  더불어 진지를 고수하며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양의 탄약과 보급물자가 비축되었습니다.


[유엔군도 전력을 정비하여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하였습니다.]


  공산군의 대공세는 조만간 예상되어 있었고 아군도 이에 대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처럼 초조와 긴장으로 고요해진 전선은 어느덧 폭발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기까지는 유엔군 측이나 공산군 측 모두가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산군이 어느 방향으로 공세를 취하려 하는가하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던 중공군의 의지에 딸려있는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대공세라 하더라도 전 전선을 일거에 밀어붙이기는 힘들었습니다. 대개 전선의 일각을 돌파하여 적의 배후를 차단함으로써 전선 전체에 부담을 안겨 주면서 후퇴를 유도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중공군이든 아군이든 즐겨 사용하던 전술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예정된 공세에서 중공군이 어디로 주력을 집중하여 공세를 개시하려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엔군은 이를  예측하는데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5월 중순에 공세가 감행될 것이라는 시점에 대해서는 미 제8군사령부는 정확히 예측하였지만 주공방향은 지난 제5차 공세와 마찬가지로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5월 초 항공정찰 결과와 포로 진술에 의하면 공산군의 새로운 공세는 중-동부의 산악지역에서 감행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적의 페인트 모션으로 보아 묵과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사령부는 미 제3사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예비전력을 서부전선으로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유엔군은 예비전력을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 방어선을 강화하였습니다. ]


  이처럼 제8군이 오판하여 서부전선 강화에 주력하자 국군 6개 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중-동부지역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는 중-동부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의 전력도 약한데다 국군이 산악지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선다면, 설령 예상과 달리 적의 공세가 그쪽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엔군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이곳으로 주력을 지향하려는 데는 지난 수차례의 공세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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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북한군의 8월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02 09:50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방어선을 구축하자마자 뒤쫓아 내려온 북한군이 8월 5일을 전후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면서 2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낙동강 방어선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은 국군이 담당한 왜관-영덕 구간은 물론 유엔군이 담당한 마산-왜관 구간의 요충지 곳곳으로 돌파를 시도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전쟁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방어에 급급한 국군 및 유엔군은 이를 반복하여 격파하였고 낙동강은 서서히 피로 물들어 갔습니다.


[8월의 시작과 함께 낙동강이 피로 물들어 갔습니다]


  미군 3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서남부 방어선은 강을 끼고 있어 상대적으로 적의 공세를 막는데 좋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안전한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미군은 비록 참전초기에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제2차 대전의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노련한 군대였습니다. 새롭게 징집된 말단 신병들은 전쟁 경험이 전무 하였을지 몰라도 이들을 지휘하는 간부들 대부분은 역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자 시행착오를 극복한 미군은 전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적을 서서히 격퇴하여 나갔습니다.


  8월 5일 자정, 북한군 제4사단이 야음을 틈타 낙동강을 은밀히 도하하여 미 제24사단이 배치된 영산을 장악하면서 밀양에 위기가 고조되었는데 제8군사령부는 재빨리 보유한 예비대를 투입하여 북한군을 겨우 격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8월 9일 밤, 북한군 제3사단이 왜관-현풍사이로 낙동강을 넘어 공격을 시도하였고 이번에는 미 제1기병 사단이 이를 간신히 격퇴하였습니다. 하지만 보다 큰 위기는 미 제25사단과 북한군 제6사단이 진주-사천 일대에서 벌인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습니다.



[마산 공략에 대한 의지를 알 수 있는 북한군 포스터]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유엔군 수뇌부를 경악시킨 북한군 제6사단이 7월 31일 마산의 서쪽 초입인 진주를 함락시키자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8월 3일, 미 제25사단이 상주로부터 마산으로 급거 이동 전개함으로써 위기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북한군 제6사단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끓임 없이 마산 정면으로 공세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북한군 주공이 대구 북방으로 집결되는 것이 파악되자 제8군사령부는 마산 앞에 있던 방어선을 진주-사천을 연하는 선까지 밀어붙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부산교두보의 서측방 위협을 제거함과 동시에 대구 정면에 집중된 북한군 예비대를 마산으로 유인시켜 대구 정면의 압력을 분산시키려는 일석이조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제8군사령부는 24,000여명의 101대의 전차로 증강된 미 제25사단으로 반격을 담당할 특수 임무 부대를 편성하였는데, 사단장의 이름을 따서 ‘킨 특수 임무부대(Kean TF)’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최초의 미군 역공격이 8월 7일 06시 30분에 시작되었습니다.


[미군의 최초 역공은 참담한 실패를 거두었으나 그 대가로 마산을 지켜냅니다.]


  그런데 북한군 제6사단은 병력 7,500명 정도이며 전차는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산악 능선의 주요 지점을 선점하고 있어서 위치상으로 유리하였습니다. 더불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계속되자 미군은 전투 손실의 6배에 이를 정도까지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악전고투 끝에 선두 부대가 장천리-진주고개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으나 매복해 있는 북한군들은 배후를 차단하면서 오히려 후방인 봉암리에 위치하고 있던 미군 지원포병 3개 대대가 북한군의 습격을 받아 참패하는 대 참사를 입었습니다.


  결국 지형의 이점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기습적인 공격을 퍼붓는 북한군과 살인적인 무더위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군의 공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제8군사령부는 12일 저녁에 작전 중지를 명령하면서 최초로 실시한 공격 작전은 종결되었습니다. 비록 적정 판단잘못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예기치 못한 큰 손실을 입고 말았으나 그 피의 대가로 마산을 지켜내었습니다. 이로서 부산 서측방 위협이 감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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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인연(^^*) 2010.03.02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귀하고 많은 자료들의 글을 어떻게 올리시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2. 풀칠아비 2010.03.02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열한 그해 여름의 전투상황을 잘 설명해주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3월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3. mami5 2010.03.02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 군군 장병들은 지금쯤 연세가 지극하시지싶네요..
    모두 고생들 많이했으리라..
    그때의 방어구축때문에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글 잘 보고갑니다..^^

  4. Koreanwar60 2010.03.02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부분 70대 80대 분들입니다. 물론 더 많으신분들도 계시고요...
    이분들이 살아계실때 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해야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죠
    방문감사합니다.

  5. 무예24기 2010.03.02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할아버지 진격을 했는데 포위 됬다고 하더라구요

  6. 김혜옥 2010.03.05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조선대학교 군사학부 6기생 김혜옥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제 블로그에 담아가도 되겠습니까 ?
    네이버 블로그 입니다.

  7. cksthd1009 2010.03.07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625의 비극이란.....
    저도 우리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담아가도 돼겠습니까?
    네이버블로그입니다.

  8.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2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패하고도 마산을 지켜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 인해서 낙동강 방어선이 지켜졌을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창원마산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는데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9. 이주영 2010.05.17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이 아프고
    어찌되었든 목숨은 소중한것인데, 나라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준 그분들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으로써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네요....

  10. 김영보 2010.08.04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씩 차례대로 퍼 가서 다른곳에도 올리겟습니;다.
    그래도 되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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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적정 판단잘못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예기치 못한 큰 손실을 입고 말았으나 그 피의 대가로 마산을 지켜내었습니다. 이로서 부산 서측방 위협이 감소되었습니다.

  17. electric dog fences 2012.12.03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18. cipro 2013.03.24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