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4.12 무비유환(無備有患)의 대표적 전투, 오산전투(4/4) (135)
  2. 2010.07.28 65. 거인의 퇴장 (5)
  3. 2010.07.27 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4)

무비유환(無備有患)의 대표적 전투, 오산전투(4/4)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4.12 21:39

북한군은 차츰차츰 전진하여 들어왔고,
일부는 죽미령 좌우로 우회하여 퇴로를 차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자 방어선이 급속히 붕괴되었고,
스미스는 포위망이 뚫려있는 92고지를 경유하여 철수하라는 명령을
부대원에게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때까지 대오를 갖추었던 스미스특수임무부대는
아래에 매복한 적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하였습니다.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대패에 사기를 잃고 천안으로 도망치는 34연대

미군은 병력, 화력, 병사의 훈련면에서 북한군에 뒤졌습니다.
그들의 뒤에는 증원군도 없었고 당연할 것으로 믿었던 항공지원도
기상상태로 인하여 기대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통신망을 이용하여 지원을 받을 최소한의 방법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준비소홀이 결국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이 뼈아픈 일격을 당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최초 540명이었던 스미스특수임무부대는 천안에 집결했을 때 전사 120명, 포로 및 실종 36명 그리고 150여명의 부상자와 더불어 모든 중화기는 완전히 유기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특수임무부대는 북한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인해 그들이 어떠한 패배를 당하였는지 확인 할 시간도 없이 34연대가 배치되어 있는 천안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군의 참전에 놀랐으나 사기가 오히려 올라갔다고 증언한 북한군 2군단 작전참모 이학구

미군의 의도대로 오산전투는 북한군에게 미군의 참전사실을 각인시켜는 주었으나
의도와 달리 북한군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후에 포로가 된 북한군 2군단 작전참모 이학구는
"오산에 미군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지만
초전에 격파하여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산전투는 앞으로 계속 될 암울한 앞날의 시작이었습니다.

평택~안성선에 방어선을 설치하고 적을 기다리던 34연대는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참담한 패배 소식을 접하자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이 나타나자 전의를 상실하고 곧바로 천안으로 철수하다가
숨쉴 틈 없는 북한의 호된 공격에 급속히 붕괴되면서 6ㆍ25전쟁 중 해체되었고 이후 재편성되지 않은 유일한 연대라는 불명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 24사단의 수모는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맹렬히 지휘하였지만 적의 포로가 된 윌리엄 딘 미 24사단장

대전에 배치되어 있던 24사단 19연대는 북한군의 우회 포위 전술로 위기에 직면하여
옥천으로 후퇴, 미 1기병사단의 구원을 받고나서야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미 24사단은 전사에 길이 남는 대참패를 당하였던 것인데
굴욕의 대미는 딘(William F. Dean) 사단장의 실종이었습니다.
그는 최전선에서 맹렬하게 부대를 지휘하였지만, 낙오되면서 적의 포로가 되었고
휴전 후에 겨우 생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총 16,000명의 병력과
국군 전체보다 많은 4,800대의 차량을 보유했던 미 24사단은
7월 5일 오산전투를 시작으로 7월 21일 옥천전투까지
17일 동안 7,000명의 병력과 장비의 60퍼센트를 잃었는데,
미군 전사에는 이를 'defeat after defeat'(패배 후 패배)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상황을 심각하게 깨달은 미군은 낙동강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서야
미개한 군대라고 판단하고 있던 북한군의 공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적을 얕잡아 본 오만함은 계속된 패배를 불러왔습니다

충분한 준비없이 적을 깔보고 달려들었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이었는지
미군은 24사단의 굴욕으로 똑똑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자가 한 마리의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진리를 망각하였던
미군은 죽미령에서부터 겪었던 치욕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각종 교육을 통하여 반복하여 이를 학습하고 되뇌이고 있습니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워싱턴 홀(Washington Hall)에 가면
미군이 참전한 여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그려 넣은 '스테인드글라스화'들이
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들 모두 한심한 이유로 패전한 전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산전투입니다.
그만큼 미군 역사에 무비유환의(無備有患) 역사로 기억될 충격적인 패배였던 것입니다.


워싱턴 홀의 '스테인드글래스화'

비록 미군은 최초 전투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지만 자랑스러운 승전이 아닌 이런 악몽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군 당국의 이러한 자세는 이라크전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할 듯싶습니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외국의 군대도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이처럼 노력하는데 막상 요즘 우리세대는 많이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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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거인의 퇴장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8 08:13

 
  전쟁 종결 방법에 관한 맥아더의 강력한 의지는 영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측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지으려는 트루먼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아닌 유엔군사령관의 직위를 가진 맥아더가 전쟁을 지휘하는 한 정부와의 불화는 더욱 격화될 것임이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맥아더가 설득당하여 그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던 워싱턴 당국은 맥아더를 해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임된 전쟁영웅의 귀환을 반기는 뉴욕시민]


  1951년 4월 11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를 해임시켰다는 워싱턴 발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유엔군사령관이라는 직위 외에도 주일 연합군사령관, 극동 미군사령관, 극동 미 육군사령관의 직위를 함께 보유한 제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군인이기 이전에 일본을 통치하는 총독과 같은 존재였고 인천상륙작전에서 알 수 있다시피 6·25전쟁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하던 또 하나의 주요 정치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거물의 갑작스런 해임소식에 세계는 놀랐으나 사실 맥아더의 해임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지휘관을 교체하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이지만, 문제는 맥아더가 미군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공화당으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전쟁영웅이라는 점이 정치인 트루먼에게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맥아더의 해임은 선거에 임박해 있던 그에게 분명히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한 트루먼은 마샬, 브래들리, 애치슨, 해리만 등의 참모들과 협의를 거쳐 극약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의 후임으로 어려운 시기에 제8군을 잘 이끌어 왔던 리지웨이를 임명하였습니다.
   

  1951년 4월 14일, 유엔군사령관으로 영전한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공석이 된 제8군사령관에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중장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제1급 전투사령관이라는 보증서가 붙어 있는 역전의 용사로 상당히 공세지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 같이 최고 지휘부가 일거에 교체됨으로써 전쟁의 양상은 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공세적인 성격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와 신중한 성격의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지휘체제로부터 신중한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와 공세적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체제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내한 한 브래들리 합참의장을 안내하는 리지웨이와 밴플리트]


  이 시점에서 새로운 지휘부의 최대 화두는 소련의 개입이었습니다. 소련의 개입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전면개입, 해-공군만 투입하는 제한개입, 장비와 물자만 지원하는 간접개입 등으로 나뉘어 질수 있었는데, 당시 정보에 의하면  간접개입단계로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고 규모는 중국군의 참전이후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현 단계에서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는 개입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한마디로 가장 큰 고민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1951년 4월말까지 소련은 북한이나 중국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소련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간절히 도움을 원했던 것은 절대 열세 상태에 있던 공군이었습니다. 비록 소련이 MIG-15같은 최신병기를 공급하여 주었지만 흔히 미그회랑(MIG Ally)이라 불리던 한만국경에서나 작전을 펼칠 수 있었지, 정작 가장 중요한 38도선일대는 공중지원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야포나 전차의 지원도 그리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됩니다.


  가장 큰 가능성이 중국이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어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사태를 소련이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입니다. 다음으로 소련의 국력에서 더 이상의 개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소련은 불과 6년 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천만 명이상의 인명손실을 입었고 국토의 대부분도 황폐화되어 재건에 매진하여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되는데,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 당시 시점에서는 소련이 미국과의 직접대결을 회피하였던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1945년 8월 만주점령 당시 환영받는 소련군,

소련은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주저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련이 6·25전쟁에 확대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주요 당사자였고 중국의 개입을 사주하기도 하였던 소련이 막상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전쟁 내내 견지하자 중국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이것은 후일 중-소 이념분쟁의 한 가지 원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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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2. qwe 2012.02.19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병전우회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중공군이 물밀듯이 서울로 향하여 내려오고있던 1950년12월2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은 서울북쪽 의정부의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로 했다.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던 워커중장의 짚을 추월하려던 한국군 트럭이 추월했다. 짚이 옆으로 뒹굴면서 보좌관과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중장은 즉사했다. 이승만대통령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한국군 운전병을 즉시 처형하도록 지시한다. 옆에 있던 미 군사고문관 짐 하우스만 대위가 말려 운전병은 3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 짐 하우스만 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뼈아픈 지적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고풍어린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서 목숨을 바친 20여명의 하버드생 병사들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을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교수들도 참전해 더러는 전사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한 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게하는 표지는 없다. 존경하는 소대장님, 용감한 중대장님, 대대장님, 그리고 생명을 던져 진지를 지켜낸 병사들의 애기는 입으로만 전해질 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후 팔응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갖지 못했다. 행사장이나 연회장 같은 데서 한국전 전상자들을 만나 본 적도 없다.>
    여중생 두명이 미군 장갑차 깔려 죽은 것만 기역하는 젊은이들은 6.25때 한국을 지키는 작전을 총지휘했던 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의 과실로 죽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도 다른 미군 사령관의 아들이 자원하여 참전, 폭격임무에 종사하다가 전사한 사실도 모를 것이다.
    알아도 아무 감흥이 없다면 국가적으로,인간적으로 구제불능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위와 같은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로 모교를 소개 했습니다.

    "6.25때 교통사고로 죽은 워커 중장"이라는 글을 써주신 참전 해병 선배님,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배님께서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자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표지는 없다."라고한 하우스만 대위의 회고록을 인용하셨는데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모교 '서울고등학교'는 한국전쟁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많은 학교입니다. 제일 많은 학교가 제주 오현고등학교고, 저의 모교가 2번째라고 합니다. 저의 모교에는 1956년도에 포충탑(褒忠塔)이라는 탑을 건립,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의 뜻은 충성된 마음을 기리는 탑이라는 뜻이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친필 휘호입니다. 그 탑의 뒷면에는 "조국을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에게"란 15자의 글을 그 당시 모교 은사로 재직하고 계셨던 시인 조병화 선생님께서 지어주셨고, 6.25전쟁 참전 학도병들숭에서 전사한 30명의 학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 후 4.19의거 때 희생된 학우들, 또 월남전 파월전에 수류탄을 덮고 산화하신 강재구 학우등 총 33명의 이름이 각인되어있어 후배들에게 애국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강재구 소령의 흉상은 그 동기들이 졸업 30주년 기념으로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강재구 소령 동상,삼일탑(3.1탑)등 3개 시설물은 국가보훈처로부터 2002년 12월11일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선배님 제 모교 자랑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도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의 뜻을 기리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과 같은 글을 해병대 전우회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What an excellant high school we attended! How smart and nice the education we received was!! How noble

    __________

    지난 해 7월 8일 독립신문(http://independent.co.kr/ )독립군 게시판 623번 글에 실렸던 이 칼럼은 비록 짧지만 우리가 주한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우정을 이해하기 위해 몹시 중요한 글이므로 일독을 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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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7 08:19

  아군이 반격에 나선 후 1951년 3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또다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을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중국도 저우언라이가 지리적 정치적 경계선으로써 38선은 이미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사실 우리나 유엔군 또한 굳이 여기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논쟁의 핵심은 38도선까지 진격한 이후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정부는 다시 한 번 북으로 내달려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고 이미 주변에서는 전쟁이 이 수준을 벗어나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38선이 다시 화두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전쟁은 대한민국을 지리적으로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 군사적 전략이 완전히 달라질 상황이었습니다. 최초 전쟁에 개입한 유엔은 전쟁 전에 한국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38선 이남 지역만을 대한민국으로 해석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고 북한군을 괴멸시킨 후에는 대한민국을 한반도 전체라고 해석하여 북진을 승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자의 논리를 따르면 대한민국을 원래대로 구해냈으니 이제는 이 부근에서 종전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후자의 의견에 의하면 다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확대전략을 구사해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미국 위정자들의 생각은 전자에 속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직접 전쟁에 참가한 이상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다시 진출해도 과연 전쟁이 끝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소련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요 참전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38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판이 커져 소련이 개입하면 유럽에서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상당히 전전긍긍하던 상태였습니다.


  반면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완승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 이상 38선은 무의미하며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일관된 지론이었습니다. 더불어 전쟁 전부터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 역시 유엔군의 38선에서 전진이 멈추는 것에 대해 반대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비록 대대적인 여론조성에 들어가 통일의 당위성을 선전하였지만 전쟁은 우리의 의지대로 진행될 수 있던 시점을 지난 지 이미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결국 38도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다면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맥아더나 한국정부의 의견에 따라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을 경우 그것이 종전을 보장하지는 않고 오히려 1,2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국경선에서 중국 및 소련의 대군과 무한정으로 대치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가장 동서간의 거리가 짧은 청천강-원산을 연하는 선이 고려될 수 있었는데, 이 선은 200킬로미터가 채 못 되어 종전선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였으나 평양을 포함하고 있어 상대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므로 우리의 의지대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이 38선 부근인데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캔사스선까지 진출하는 것을 미국과 유엔군이 공산군과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체면을 회복하게 된 시점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워싱턴의 위정자들과 미군 수뇌부는 이 같은 의지를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통보했습니다. 3월 20일자 맥아더에게 하달된 훈령은 직설적으로 공산군과 협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상 분명히 확전을 제한하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맥아더는 3월 21일자 전문에서 “더 이상의 제한을 가하지 말라. 현재의 제한사항만으로도 적을 북한지역에서 몰아내는데 곤란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맥아더와 이승만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어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습니다. ]


  이러한 맥아더의 전문을 당국은 거부의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워싱턴 당국은 대통령의 성명으로 맥아더의 주장이 수용 불가함을 공식 언급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전쟁영웅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남다른 미국에서 맥아더의 반대의견을 함부로 저버릴 수 없었던 분위기 때문에 선택한 고육책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 도달할 때쯤인 3월 23일과 24일에 연이어 맥아더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그는 유엔이 현재의 군사적 제한조치를 풀고 군사행동을 중국의 해안선과 오지까지 확대한다면 중국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자폭탄의 사용, 대만군의 참전 허용, 만주폭격 등을 재차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트루먼에 의해 거부되었던 것들이었으므로 기자회견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맥아더의 절대적 의지이자 트루먼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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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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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망 2010.09.23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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