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4.05 32. 감격적인 합류 (6)
  2. 2010.03.09 23. 포항에서의 일진일퇴 (62)
  3. 2010.02.25 19. 최후의 선택 낙동강 (77)

32. 감격적인 합류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4.05 08:36

 

  국군 제1사단의 선전으로 낙동강방어선이 일순간 붕괴되자 북한군은 소백산맥과 금강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9월 21일경부터 인천상륙 소식이 전선에 전파되었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북한군은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북한군 군관들이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하여 총을 난사하며 독전을 강요하였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노력만으로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워커 제8군사령관은 전선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9월 22일부로 추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드디어 전쟁 개시 후 처음으로 낙동강으로부터 전선을 밀고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낙동강을 벗어나 북으로 진격하는 미 제1기병사단]


  워커로부터 경부가도를 따라 38선으로 밀고 올라갈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었고 그중에서도 선봉은 제7기병연대였습니다. 제7기병연대는 보다 신속하게 전방을 개척하고자 린치(James H. Lynch)중령이 지휘하는 예하 제3대대를 특수임무부대로 편성하여 9월 22일 08시, 다부동을 출발시켰습니다. 그날 중으로 낙동강을 도하한 린치특임대(TF Lynchs)는 다음날 상주까지 진출하여 북한군의 저항 태세를 점검한 결과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해도 될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6일, 사단의 후속부대들이 상주에 집결을 완료하자, 린치는 그의 특임대에 배속된 제70전차대대 C중대 3소대에 수색대를 합류시켜 “보은-청주-천안-오산방향을 따라 전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전진하고 저항하지 않는 적은 대응하지 말라”는 진격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린치의 판단대로 전선은 밀고 댕기며 교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군의 진격이 멈춘 곳에서 전선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일 보은으로 출발한 수색대는 오후에 청주를 지나 저녁에 진천 남쪽에서 진격을 멈추었는데 그것도 북한군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색대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군이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북한군 수송대가 미군 전차를 발견하고는 3대의 트럭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공교롭게도 트럭에는 휘발유가 가득 실려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연료를 보충 받은 수색대는 전차에 다시 시동을 걸고 전진을 계속하여 그날 20시 30분경 천안삼거리에 도달했습니다. 교통정리를 하던 북한군 병사에게 “오산?”하며 길을 묻자, 북한군 병사가 얼떨결에 오산방향을 안내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까지 발생하였을 정도로 이들의 진격은 빨랐습니다.


[양쪽에서 전진하던 아군의 선두 부대들은 오산부근에서 연결됩니다.]


  쉬지 않고 오산남쪽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전방에서 갑자기 치열한 사격이 벌어져 노출된 전차병 1명이 전사하면서 일순간 긴장 상태에 빠졌지만 곧 교전이 멈추었습니다. 전방 부대는 인천으로 상륙하여 오산으로 남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31연대였는데, 다행히도 오인으로 인한 아군간의 교전이 확대되기 이전에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때가 9월 26일 22시 26분으로 인천상륙부대와 낙동강 반격작전 선두부대가 감격적으로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선두부대가 조우한 장소가 미군이 한반도에서 북한군과 처음 접촉하여 망신을 당한 죽미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08시경, 미 제1기병사단 본대가 상륙부대인 제7사단의 본대와 연결 되면서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전선은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결국 맥아더의 대담한 도박은 제8군의 낙동강 반격이 성공함으로서 단숨에 북한군 13개 사단의 배후를 포위해 버리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고 38선을 향한 진격은 계속되었지만 포위망 안에 갇힌 북한군 패잔병의 소탕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전의를 상실한 잔적을 소탕하는 것보다 전쟁이 종결을 위해서 전진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남한 각 지역에 쪼개져서 게릴라가 되어 갔지만 그리 위협적으로 여기지는 않고 천천히 소탕하면 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지리산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판단과 달리 북한군 패잔병 게릴라들은 두고두고 후방지역의 암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엔군의 놀라운 진격에 일순간 패퇴하였지만  북한군 대부분은 부대 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오대산, 태백산, 지리산 등지로 잠입해 아군 병참선 차단과 습격 등의 후방교란 임무를 수행하였고 특히 중공군 개입 이후에는 더욱 기승을 부려 아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까지 지연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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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5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잡은 빨치산 중에 정말 빨치산인지 아니면 당시 강제로 끌려가서 활동하게 된 사람인지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긴 시간을 두고 가려낼 정도로 한가한 상황도 아니니 뭐라 말할 평편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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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론 중에 무수히 변하는 변수를 모두 기록한 교범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기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지요. 물론 경험이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경험이야 말로 순간적인 반사행동으로 나오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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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포항에서의 일진일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09 08:17

 

  38선을 돌파하여 동해축선을 따라 남진하던 북한군 제5사단은 서쪽에서 청송-기계 축선으로 남진하던 제12사단과 보조를 맞춰 영덕-포항 방향으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때 영덕을 방어하던 국군 제3사단 제22, 23연대는 치열한 접전을 반복했지만, 제23연대의 일부 진지가 돌파되면서 방어선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순식간 전투력이 저하된 제3사단은 8월 10일, 강구의 남쪽 장사동으로 철수하여 방어선을 재편하게 되었습니다.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동해축선의 교량을 파괴하는 모습 ( 울진 남대천 )]


  동시에 강구 남서쪽 3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기계가 북한군 제 12사단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포항이 차단될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어서 다음날 북한군 제766유격연대의 일부가 마침내 포항 시내까지 진입하였습니다. 포항은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엔 해․공군의 발진 기지였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타격할 검점이었습니다. 때문에 북한군은 제 12사단, 제 5사단, 제766유격 연대 등을 모든 전력을 집중하였고 그 결과 8월 11일에 선도부대가 포항시내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비행장과 항구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고 있는 낙동강 교두보 동북 측의 포항은 아군이 어떻게든 사수하여야 하는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포항항과 영일비행장의 중요성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제 8군사령관 워커는 위기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미 제19연대 3대대를 증강시킨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Bradley TF)를 조직하여 즉시 포항에서 영일비행장에 이르는 도로를 차단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위기에 빠진 포항시내의 모습]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북한군 제 5사단 일부가 7번 국도를 우회하여 홍해까지 순식간 진출함으로써 배후가 차단된 국군 제 3사단이 장사동 일대에서 궤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해권을 가진 유엔 해군의 지원으로 고립된 아군은 8월 17일 06시부터 해상철수를 단행하여 성공적으로 포항 남쪽의 구룡포로 이동함으로써 비록 장사동을 적에게 내주었으나 전력을 보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포항 탈환 임무를 부여받고 민부대(閔部隊)가 급거 출동하여 형산강 남쪽을 장악하였습니다.


  민부대는 개전 초에 의정부 축선에서 붕괴된 제7사단 재창설을 목적으로 민기식 대령 지휘 하에 기간요원으로 구성된 2개 대대규모의 임시부대였지만 포항의 위급한 상황이 민부대의 출동을 촉진시켰던 것이었습니다. 민부대는 포항 시내에 진주한 북한군이 유엔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포항 외곽으로 도주하였음을 확인하고, 8월 18일 새벽 포항 시내로 진입하여 포로 180명을 잡는 전과를 올리며 포항을 탈환하였습니다. 최초 출동에서 훌륭한 전과를 올린 민부대는 다음날 구룡포에서 북상한 국군 제 3사단에게 진지를 인계한 후 대구로 복귀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민부대를 지휘한 민기식]


  포항에 매몰되어 앞으로만 달려온 북한군은 계속되는 작전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고 유엔 해‧공군의 집중적인 포격과 폭격으로 보급이 차단되어 전투력이 급감했습니다. 더구나 포항 공약에 동원된 3개 부대가 제대로 된 협조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달려들어 왔던데 반하여 가용 전투력이 극히 부족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은 긴밀한 협조로 북한군을 격퇴하고 포항의 요충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북한군은 상당 기간 동안 부대 정비에 임하게 되면서 이후 9월까지 동해안 지역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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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최후의 선택 낙동강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25 08:47


  1950년 7월말이 되었을 때 제8군사령관 워커는 최후의 보루인 부산을 반드시 지켜내려면 북한군의 우회 돌파가 허용되지 않도록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때문에 아군 부대들을 좀 더 촘촘히 연결하여 틈을 없애야 했는데 그때까지 한국군 및 유엔군의 전력은 절대 열세여서 물리적으로 즉시 간격을 메우기는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워커는 전선을 좀 더 축소하여 부대 간 거리를 단축함과 동시에 절약된 병력으로 예비대를 구성하여 결사항전하기로 결심하였고 그러한 교두보로 낙동강을 선정하였습니다.


[대구에 설치 된 제8군사령부에서 작전을 숙의 중인 워커]


  이러한 사령관의 의지에 따라 시급히 설정 된 낙동강 방어선으로 8월 1일부로 철수하도록 모든 부대들에게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의 90퍼센트를 적에게 내어주고 그동안 7만 여명의 병력이 손실되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여야 했습니다. 그 결과 아군은 증원 부대의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얻었고 적에게 계속적으로 소모를 강요하여 약화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더불어 개전 후 얼마 되지 않아 확보한 제해권과 제공권은 북한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로써 지난 7월 한 달 동안 중과부적의 상태로 많은 피해를 동반하며 지속하여 왔던 지연작전이 종식되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쟁 개시이후 처음으로 좌우가 연결된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설정 된 낙동강 방어선은 동에서 서로 영덕-청송-의성-낙동리까지 80킬로미터를 이어지다 여기서 꺾여 북에서 남으로 낙동리-왜관-남지-마산까지 160킬로에 이르는 총 연장 길이 240킬로미터의 교두보였습니다. 방어선의 상당 부분이 강폭 400~800미터, 수심 1~2미터의 낙동강에 연하여있어 방어가 용이했지만 모든 구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부의 낙동리-영덕간의 80킬로미터와 서남부의 남지-마산 간의 80킬로미터 구간은 험준한 산악 능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북한군의 침투가 용이한 편이었고 이후 대부분의 혈전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낙동강가에서 적진을 경계하는 미군]


  처음에 낙동강 선의 책임 지역은 서부의 마산-남지-왜관까지의 약 120킬로미터를 미군 3개 사단이, 북부의 왜관-낙동리-의성-청송-영덕까지 약 120킬로미터를 국군 5개 사단이 담당하기로 하였으나 미군에 비해 화력과 전투력이 미약한 국군의 방어선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어 8월 11일부로 국군의 관할 지역을 왜관-다부동-신령-기계-포항을 연하는 선으로 조정하였고 그 결과 방어선의 전체 길이도 200킬로미터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구축과 동시에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에 대비해 부산 주변을 마지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예비방어선 구축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당시 제8군 공병참모인 데이비드슨(Garrison H. Davidson) 준장의 주도로 마산-밀양-울산을 잇는 90킬로미터의 예비진지를 구축하여 이를 ‘데이비드슨 선’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산항 확보에 주안을 둔 방어선으로 만일 유엔군이 데이비드슨 선으로 철수한다는 것은 부산을 통해 해상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여서 반격을 염두에 두고 구축한 낙동강 방어선과 개념이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을 구한 최후의 교두보, 낙동강 방어선]


  다시 말해 낙동강 방어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교두보였습니다. 낙동강 교두보는 이처럼 피와 공간을 받쳐가면서 얻은 천금 같은 시간으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보루 삼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피와 눈물 그리고 땀이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되어야 했고 반드시 사수하여 적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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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にんにくらんおう 2013.03.09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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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Austine 2013.04.17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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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Social Bookmark 2013.05.11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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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creditrepair-madeeasy.com 2013.10.02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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