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장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8.12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24)
  2. 2010.06.03 그들의 이야기 [ 1 ] (4)
  3. 2010.02.16 16. 누가 빠른가??? (22)

워커 중장의 비극과 불운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2 09:02

  6·25 전쟁은 역대의 그 어떤 전쟁 못잖게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대개 전쟁영웅들의 희비는 참으로 극과 극 그 자체인데 이 중에서도 뛰어난 전공에도 불구하고 가장 불운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 제8군사령관 월톤 워커 중장입니다.
  그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작전을 지도했음에도 중공군 개입 후 38선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트럭과 충돌하여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워커 중장은 군사령관으로서 숱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매튜 리지웨이·밴플리트 장군만큼 영예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워커 중장은 영광보다 오히려 불운·비극으로 점철되다시피한 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월톤 워커 중장은 여러분도 잘 아는 조지 스미스 패튼 대장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패튼 대장은 제3군 사령관 시절 특유의 쾌속 기동전을 통해 북프랑스와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맹장이었고 특히 과감무쌍한 기동작전을 선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특유의 과감한 고속 기동전을 통해 독일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3군 사령관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중장. 그의 과감한 지휘 기질은 부하였던 워커 중장이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러한 상관의 지휘를 받은 워커 중장은 곧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이동합니다.
  물론 전쟁 초반은 그에게 있어 비극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워커 중장이 한반도 전선의 지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받고 전황 파악을 위해 한국에 온 첫날인 1950년 7월 8일 미 제24 보병사단 예하 34 보병연대장 로버트 마틴 대령이 천안전투에서 북한군 T-34/85의 일격을 받아 전사함과 동시에 부대가 와해돼 천안이 함락되었고 7월 13일, 대구시에 미 제8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전선을 지도했지만 아직까지 전황은 북한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7월 20일에는 전략적 요충지인 대전이 함락됨은 물론 사단장 딘 소장까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미 제24 보병사단장 딘 소장과 워커 중장. 딘 소장은 최선을 다해 대전을 사수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던 북한군의 노련한 작전으로 결국 패전지장이 됨은 물론 주민의 밀고로 포로가 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함은 물론 새로운 세계의 맹주로서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군은 그 어떠한 전쟁에서도 당해보지 못했던 수모를 겪으며 패퇴를 거듭, 결국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에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이 때의 망신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던 맥아더 원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미 제8군 사령부를 전격 방문, 워커 중장에게 “됭케르크·바탄 같은 후퇴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오”라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도대체 본토의 증원군은 언제 오는 겁니까?" 좌측부터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콜린스 대장, 존 처치 준장. 워커 중장은 개전 초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충분치 못했던 취약점까지 극복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워커 중장에게는 예비 전력이 충분치 못해 보다 융통성있는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죠.
  특히 그를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전선에 투입된 미군이 대부분 축소 편제된 일본 주둔 부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단은 3개 보병연대로 편성되어 본토 주둔군과 편제상 차이는 없었지만 각 연대는 겨우 2개 대대만 완편되어 있어 사단 전투력은 사실상 2개 연대 수준이었고, 포병과 전차부대도 사정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오늘날의 주한 미군 제2 보병사단은 규모가 많이 감축되었어도 여전히 한국군 1개 사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군의 예상을 깬 북한군의 빠른 남진 속도는 워커 중장을 크게 당혹시켰습니다.
  결국 워커 중장은 독소전 당시 과감한 기동작전을 선보인 소련군에게 훈련받은 북한군의 위력에 경악하며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력들을 부산항에 상륙하는 즉시 바로 전선에 배치시키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죠.
  상황이 이러하니 효과적인 방어 진영 배치나 예비부대의 확보 따위는 한낯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워커 중장은 최악의 전장 환경에서 ‘가난하면서 자식 많은 흥부’가 한 끼 식사를 때워 나가듯 전선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미 제1 기병사단. 하지만 이들은 상륙과 동시에 곧바로 전선으로 이동해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7월 말부터 시작된 미 본토증원 병력으로 전선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 듯했지만 아직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부족했습니다.

  바로 북한군의 대대적인 정면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워커 중장은 즉각 미군 1개 보병연대를 차출해 전략 예비대로 북한군에게 돌파된 지역마다 마치 응급환자에게 긴급 수혈하듯 다부동과 영산돌출부와 같은 ‘전략적 공백지대’를 메워 나갔습니다. 
  여기에 한국군은 아직
 군단조차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뿐만 아니라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도를 수행하는 등 워커 중장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8군 사령관으로 모자라 한국군의 사단들까지 지휘해야 하니 자연스레 지휘부담도 커지게 되었고 1944년 유럽전선에서 패튼 중장의 휘하로 용맹을 떨쳤던 워커 중장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촉박한 한반도에서 졸지에 '우리에 갇힌 맹수'꼴이 되며 지쳐갔습니다.
  캠프 케이시에서 담소 중인 미 제2 보병사단장 마이클.S.터커 소장과 한국군 제5 기갑여단장 나상웅 준장. 오늘날 한국군은 야전군과 군단, 독립 기갑여단 등을 갖춘 체계화된 군대로 거듭났지만 6·25 초반에는 그야말로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군단급 작전은 미군의 지휘를 받아가며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미군의 고초가 컸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버티며 지탱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마침내 총반격작전이 감행되자 워커 중장은 오랜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닥칠 영광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지만 작전의 하이라이트인 서울 점령의 영광은 제10 군단장 알몬드 소장에게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고초를 겪어가며 전선을 유지하고 총반격작전까지 성공시킨 대가는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전선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광범위해진 전선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알몬드 소장과 지휘권을 나누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명분은 좋았지만 아무런 영광도 누리지 못한 워커 중장에게 ‘치욕'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나마 북진작전에서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평양 점령으로 겨우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곧이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전면적인 개입은 악운이자 비극의 서곡으로 작용했습니다.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은 경무장한 보병이 주력이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의 작전에 말려들어 문자 그대로 판돈을 완전히 날려버렸고 이는 오늘날까지 '인디언 헤드'의 치욕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유명한 태형의 골짜기에서 미 제2 보병사단 "인디언 헤드"가 궤멸적 타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군 제2 군단이 완전히 박살나 미8군 상황판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개전 이래 당해왔던 패배 중 이렇게 참담한 경우가 또 없었습니다. 
  특히 최대의 전리품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던 평양을 포기하고 38선 이남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며 워커 중장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까지 치욕적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워커 중장의 불운과 비극으로 점철된 뫼비우스의 띠는 1950년 12월 23일, 한국군 트럭과의 충돌 사고로 종결됐습니다. 
  평소 자동차 스피드광( 狂, Mania )이었던 워커 중장은 의정부 북쪽 덕정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사망한 것이죠.  미국 정부는 워커의 중장 전공을 기려 대장으로 특진시켰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이런 조치는 이미 한 발 늦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워커 대장의 묘지
  하지만 워커 대장의 생전 활약으로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는 더욱 굳건하게 다져진 만큼 우리는 그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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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ogo Design Contest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상웅 여단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3사 16기로 임관해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렇게 여단장까지 진급하신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3. Write My Essay 2011.09.1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사가 그런 것이죠. 전쟁영웅은 대단히 허망한 법입니다

  4. chat 2011.10.30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どのような有用な記事は本当に再びこの時間と時間に戻って来るということだ。おかげで..

  5. Memphis Jobs 2011.11.0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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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은 역대의 그 어떤 전쟁 못잖게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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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기동전을 통해 북프랑스와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맹장이었고 특히 과감무쌍한 기동작전을 선호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 1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6.03 11:04


 

  1950년 12월 25일, 미 제24사단의 일선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샘 워커 ( Sam S. Walker 1925~ ) 대위는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에게 호출 당하여 도쿄의 극동군사령부를 방문하였습니다. 야전의 말단 지휘관인 젊은 워커대위는 맥아더의 집무실에서 거물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샘이 경례를 하자 담담하면서도 서운한 표정의 맥아더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워커 대위 ! 부친의 전사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훌륭한 군인이었던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 대장(사후 추서) 의 죽음은 우리 미국에게 커다란 손실이다. 나는 귀관에게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까지 운구하도록 지시한다.”


[전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워커 대장의 묘]


  샘 워커는 6·25전쟁 초기에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방어전과 북진을 이끌던 월튼 워커  중장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들 부자는 함께 6·25전쟁에 참전 중이었는데, 이틀 전 아버지가 전선을 시찰하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을 하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맥아더는 아들 샘으로 하여금 아버지 월튼의 시신을 본국으로 운구하도록 조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은 샘 워커대위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반대했습니다.


[방한한 콜린스 미 합참의장에게 아들 샘 워커를 소개하는 월튼 워커
그는 자신처럼 군인이 된 아들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각하! 저는 일선의 보병 중대장이고 지금 저희 부대는 후퇴중입니다. 후퇴작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각하가 오히려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 중대장 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님 시신의 운구는 영현담당자들이 잘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당장 전선으로 돌아가서 부대를 지휘하겠습니다.”


[당시는 1.4후퇴 직전이라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는 1.4후퇴 직전으로 전황이 몹시 어려웠던 상황이었고 전투에서 공을 세워 ‘은성무공훈장’까지 수여 받았을 만큼 저돌적이었던 샘에게 후방 전보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이것은 명령이다.”라고 간단히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맥아더는 그의 충실한 수하였던 월튼 워커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하였습니다. 때문에 혹시나 최전선에서 사상을 당할 수도 있던 그의 외아들을 안전한 본국으로 전보시킴과 동시에 유해를 직접 운구하도록 조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유엔군사령관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가 이들 부자에게 베풀 수 있었던 최고의 배려였습니다.


[맥아더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지만 사실 그것은 배려였습니다]

(평양에서 맥아더를 영접하는 월튼 워커)


  하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던 샘은 전선에 계속 남기를 자원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격은 강골이었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샘 워커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워싱턴의 육군성에 근무하게 되었지만 이후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며 1977년에 미 육군 최연소 대장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미군 역사상 부자가 대장에 오른 두 차례 밖에 없는 희귀한 예입니다.

[미 육군대장 당시의 샘 워커]


  이처럼 6.25전쟁에서 워커부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전형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했던 6.25전쟁에서 워커부자처럼 공과 사를 구별하며 맡은바 책임을 다하였던 다른 예는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월튼 워커과 리지웨이에 이어 미 제8군 사령관이 되었던 인물은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1892~1992)였는데, 당시에 그의 외아들인 밴 플리트 2세(James Van Fleet Jr.)는 미 공군의 중위로 역시 6.25전쟁에 참전 중이었습니다.


[밴 플리트 미 제8군 사령관]


  1952년 4월 2일, 밴 플리트 2세는 B-26 중형 폭격기를 조종하여 평양인근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즉시 수색작전이 시작되었는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미 제5공군 사령관이었던 에베레스트 장군이 직접 밴 플리트에게 사고와 수색내용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밴 플리트는 묵묵히 보고를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습니다.

“밴 플프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위험하고 무모하다.”


[실종된 벤 플리트 2세]


  아버지가 외아들의 구출작전을 너무 무모하다고 중지시킨 것이었습니다. 혼자 남아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여 군의 최고 통수권자로써 단호한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습니다. 보기 힘든 그리고 상당히 어렵지만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밴 플리트 장군은 이처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밴 플리트에게 자기 가족의 편의를 봐달라는 한 가지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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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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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아이 2010.06.07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해주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네요^^
    본국으로 돌아가는 선택 대신 이곳에 남아 싸워 나간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2. ink cartridges used 2012.05.15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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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누가 빠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6 10:25


 

  제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무어는 채병덕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동을 공격하여 가급적 오랫동안 확보함으로써 진주 방어를 위한 시간을 획득하려 결심하였습니다.


[미군의 무덤으로 변한 하동고개]


  제19연대에 긴급 배속된 미 제29연대 제3대대는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야간행군을 위험하게 생각한 제3대대장은 하동으로 진입을 다음날로 미루고 횡천리에서 일단 숙영하였는데, 당시 제3대대 병사들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을 한잠도 자지 못했을 만큼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연대의 명령에 따라 27일 08시 45분경 하동고개를 향해 출발한 제3대대는 09시경, 우계리 일대에서 10~15명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추격하였는데 그것은 북한군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북한군의 뒤를 쫓아 하동고개로 진입한 순간 매복하여 있던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고개에 갇힌 제3대대는 대항도 못해보고 붕괴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집계된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추산되었고 제3대대를 안내하던 채병덕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유인책에 미군이 완벽하게 결려든 전투로 그해 9월 말, 미 제25사단이 하동을 탈환했을 때 미군 시신 313구를 발견하였을 만큼 치욕스런 결과였습니다.


[상황을 오판한 미군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하동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제8군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적은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진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7월 29일 오전부터 정면공격과 함께 양익포위 공격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7월 31일 06시경 진주를 함락시키게 되었을 때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가 확인되었고 미군은 경악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이 마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은 부산에서 불과 4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증원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산을 노리는 적은 예상과 달리 2개 사단의 엄청난 규모였지만 이를 막아야 할 미 제24사단은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긴박성을 감안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일한 예비인 제27연대를 마산에 투입하고, 7월 31일 부산에 상륙할 예정인 제5연대 전투단을 마산에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싸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증원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것이 빠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미 제25사단은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마산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결국 워커장군은 8월 1일부로 전 전선을 낙동강 선으로 철수시켜 병력을 절약하고, 상주에 있는 미 제25사단을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시켜 마산 정면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마산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군 제6사단의 예상치 못한 진격이 유엔군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제부터 미 제25사단은 이를 능가하는 기동을 전사에 선보였습니다. 만난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인 8월 3일 17시 30분, 마산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지 못한 이러한 놀라운 이동 전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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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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