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장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2.12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12)
  2. 2010.02.03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8)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2 08:28


 

  7월 20일, 치열한 교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 함락되자 아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삼남의 갈림길인 교통의 요지 대전을 지나면 길이 크게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하나는 대구를 거쳐 부산에 아르는  경부가도고 또 하나는 전주를 거쳐 목포에 이르는 호남가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황급히 미군이 참전하였지만 아군의 부족한 전력으로 이 축선을 모두 방어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7월이 되어서도 북한군의 진격은 매서웠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미 제8군은 사령부를 대구에 신속히 설치하여 전의를 가다듬었지만, 호남 방면으로 내려 올 북한군을 상대할 전력은 없었습니다. 국군의 경우는 대전 함락직전인 7월 17일에 서해안지구방어사령부를 황급히 편성하였으나, 병력과 장비 면에서 소규모 민병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난관에 봉착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대전 전투에서 참패 후 부대 재편을 서두르던 미 제24사단으로 하여금 호남지역을 포기하는 대신에 전선을 축소하여 외곽인 진주-함양-거창에 이르는 100킬로미터의 방어선을 점령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 제24사단은 대전에서 당한 피해가 워낙 커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제8군은 이런 조치와 더불어 항공정찰을 강화하였는데, 장마철로 인하여 기상이 나빠 7월 20일 이후 호남지역으로 내려오던 북한군의 행적을 놓쳐 버렸습니다. 비가 그친 23일, 한 무리의 북한군이 군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남하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제8군사령부는 이 부대가 대전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라고 판단하고, 이들이 현 상태로 계속 진출한다면 7월 25일에는 전주까지 진출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항공정찰이 불가능하였던 3일간에 북한군은 아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놀라운 기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석권은 아군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제4사단이 아니라 천안전투 이후 행방이 묘연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이었고 어느새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경상남도 진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7월말까지 제8군은 호남지역의 북한군은 대전 점령 후 금산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 거창으로 내려오고 있던 제4사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안에서 제4사단과 갈라져서 아군의 감시망을 벗어난 서해안의 장항선 철도를 따라 남진한 부대는 방호산(方鎬山)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6사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장항에서 금강하구를 도하하여 군산으로 넘어온 후 호남지방을 폭풍처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주(20일), 광주(21일)를 차례로 점령하였고 이후 연대 단위로 흩어져 목포와 여수를 점령한 후, 순천(25일)에 집결하면서 호남지역을 순식간 석권하여 버렸습니다. 그때서야 아군은 북한군 제6사단의 실체를 포착하였습니다. 미 공간사(公刊史)에는이 정보가 미국의 전쟁지도 방침을 변경시켰다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많은 미국의 전략가들이 북한군 제6사단의 기동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동이었다라고 경탄하게까지 만들었을 만큼 제6사단의 갑작스런 등장은 아군의 허를 찌른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제29연대 투입 직전의 하동]


  북한군 제6사단으로 인하여 경상남도의 서쪽 초입인 진주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워커는 이곳에 배치된 미 제24사단 제19연대의 전력 증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극동군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 본토에서 열흘간의 항해 끝에 오키나와 도착한지 하루도지나지 않은 미 제29연대의 두 개 대대(제1,3대대)가 시급히 한반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들은 24일 부산을 거쳐 25일 진주에 도착하였지만 개인화기의 영점 조정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쉬지도 못하고 화급하게 제19연대에 합류하게 된 제29연대의 제1,3대대 장병들에게 제19연대장 무어(Ned D. Moore) 대령의 생각지도 못한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즉시 제1대대는 함양군 안의면 지역을 점령하여 방어하고, 제3대대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하동을 공격하여 즉시 탈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을 접수한 모트(Harold W, Mott) 제3대대장은 부대원들이 전투경험이 전무한데다 상황에 익숙지 못함을 들어 일단 방어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명령은 완강했고 그것은 비극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단 하루의 여유도 얻지 못한 채 전쟁의 모닥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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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지코리아 2010.02.12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낼모레가 구정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백운도사 2010.02.13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탑재 될때마다 글 하나씩 읽어 나가니 625가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당시 얼마나 다급했나 그들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625 60주년을 기해 만든 이 블로글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626를 알았으면 좋겠네요

    전쟁 얘기를 이렇게 쉽게 작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글 계속 올려주세요

  3. 탐진강 2010.02.14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남을 한순간에 점령당했군요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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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3 11:46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1950년 6월 30일, 결정이 나자마자 곧바로 미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이 이루어졌을 만큼 미국의 6·25전쟁 개입은 상당히 빨랐습니다. 일본 점령군으로 임무 수행 중이던 미 제8군 예하부대 중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규슈(九州)에 주둔하던 미 제24사단에게 제일 먼저 출동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여 제24사단에게 우선 대대 규모의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부산으로 공수시키고 난 후 뒤이어 사단 본대를 한반도로 전개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하는 스미스 부대]


  제24사단장 딘 소장은 예하 대대 중 가장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제21연대 제1대대에 포병대와 약간의 지원부대를 증원시켜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였고, 이를 대대장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수 임무대(Task Force Smiths)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일 14시경 수송기편으로 스미스 부대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역사적인 6·25전쟁 참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미군이 전세를 즉시 역전시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열차편으로 북상한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03시에 오산 북쪽 경부가도 상에 있는 교통요지인 죽미령인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중, 명령이 하달되자 당일 부대를 편성하고 다음날 부산에 도착한 후 대전과 평택을 경유하여 죽미령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스미스 부대원들의 전투준비는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전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때문에 미군들은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스미스 부대원들은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넘치는 자신감이 만용임이 밝혀지는데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스미스 부대가 빗속에 허둥지둥 진지편성을 마치자마자 8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죽미령을 향해 다가오는 북한군의 행렬이 관측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한국군처럼 북한군 전차에 대한 공포는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사격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까지 다가오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7월 5일 07시 30분, 자신만만하게 7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북한 전차를 명중시키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북한군간의 최초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타격을 입은 북한군 T-34전차는 잠시 멈칫했을 뿐 계속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미 보병들은 뒤에 배치된 제52포대로부터 지원 화력을 받았으나 적 전차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군을 보기만 해도 물러갈 것으로 생각했던 북한군이 생각과 달리 전차를 앞세워 전선을 돌파함과 동시에 보병을 좌우로 신속히 산개시켜 미군진지를 일순간 포위 돌파하면서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은 순식간 붕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상황은 순식간 당혹으로 바뀌었고 6월 25일 국군들이 느꼈던 공포를 미군들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던 스미스 부대원들
하지만 그들도 6시간의 전투 후 이 대열에 동참합니다 ]


  북한군의 진격 속도는 미군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을 만큼 상당히 급속하였습니다. 죽미령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포병대조차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 북한군 전차에 짓밟혀 버려 산산조각 나 버렸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반나절의 전투로 스미스 부대는 440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포병대의 야포를 비롯한 모든 중화기는 망실되었습니다. 미군과 북한군의 역사적인 첫 전투는 이처럼 미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미군들은 후퇴하는 국군과 나란히 열을 맞추어 남쪽으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초기에 벌어진 미군의 참담했던 패배는 단지 이제부터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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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기자부대 2011.01.0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력과 정신력도 문제였겠지만 빨갱이가 얼마나 잔악한 놈들인지 그 실체를 정확히 몰랐던 데 기인한 것입니다.

  2.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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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electric fence for dogs 2012.12.03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8. rattan indonesia 2012.12.30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 트리트먼트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만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