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엽대령의 희생정신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03 08:21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그가 남긴 유훈은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큰 감흥이 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정실 쓰키야마 부인을 처형하고 장남 노부야스를 할복시킴은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지 이동령에도 아무런 불평 불만없이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오타니 요시쓰구, 우키다 히데이에가 주축이 된 서군을 격파하고 일본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人の一生は重荷を負うて 遠き道を行くが如し
  急ぐべからず。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心に望み起らば
  困窮したるときを思い出すべし。
  堪忍は無事長久の基、怒りは敵と思え
  勝つことばかり知りて、負けることを知らざれば
  害その身に至る。
  己を責めて人を責めるな
  及ばざるは過ぎたるより勝れり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 ━

 
아! 6·25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흔히들 일본 통일의 3대 주역으로 꼽히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온갗 수모와 치욕을 견뎌내며 참고 또 참아내며 아무런 불평없이 살아온 결과 최종적으로 에도 바쿠후를 창건하고 200년이 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은 오늘날 우리 세대들에게 많은 감흥을 줍니다.


  그 중에서도 1616년, 슨푸성에서 임종하기 전에 남긴 유훈은 시간에 쫓기고 한탕 인생을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이 중 '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즉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에 해당되는 일화가 바로 6·25 전쟁 중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1950년 6월 25일, 개전 이후 1년 동안
육·해·공 3군 총사령관 겸 육군총참모장을 역임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일권 중장(위의 사진)이 자신의 계급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제 2보병사단 사단장에 임명되었던 일입니다.
  명색이 육군참모총장 및 3군의 수장을 역임한 장성에게 국방부 장관도 아닌 육군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 사단장을 맡으라니, 이렇게 황당한 인사가 또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정일권 중장은 부당한 인사에 항의하기 위해 전역 지원서를 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정일권 중장은 이러한 부당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제 2보병사단장 부임을 앞두고 "이 충무공의 백의종군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일선에 투신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전 이래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백선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백인엽 대령은 개전 직전에 발발한 여수·순천 제14 보병연대 반란사건 당시 제12 보병연대를 지휘해 진압작전을 성공리에 이끈 지휘관이었습니다.


  1950년 7월 말까지 경북 안동에서 청송에 이르는 전역 기간 중 북한군에게 혹심한 피해를 입은 한국군 수도사단은 결국 국방부에 의해 문책을 받아 사단장 김석원 준장이 보직 해임되고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추천으로 백인엽 대령(위의사진)이 후임 사단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초 제17 보병연대장을 역임한 후 1950년 8월 1일, 27세의 나이에 최연소 사단장으로 승진한 백인엽 대령!
  요즘 같으면 고향 주민들이 동구밖 가수원길부터 경축 현수막을 내걸고 중·고등학교 동문들은 학교 교문에 현수막을 내걸며 자축할 경사와도 같은 일이었지만 전시의 상황에서 그런 여유는 한낱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백인엽 대령은 준장 진급( 1950년 10월 24일이 되어서야 겨우 '별'을 달았습니다 )도 하지 못한 채 사단을 이끌게 되었으니까요.
  여하튼 진급은 못했지만 사단장으로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8월 한달 동안 낙동강 방어선의 중동부인 안강~기계 방면에서 포항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온 북한군 제 12사단과 766유격대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고 해당 지역을 사수합니다.
  이 부대는 최근 좋은 흥행성적을 낸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들이 포항여중에서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했던 부대죠.
  이 전투에서 수도사단에 패한 766유격대는 비학산에서 해체돼 제12사단에 흡수되는 치욕을 겪습니다.
 
포항 지구의 격전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현재의 고착된 전선을 타개하는 한편 북한군에게 통쾌한 반격을 가할 크로마이트 작전, 즉 인천상륙작전에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되면서 지휘관으로 누구를 임명하는가? 에 대한 인사 문제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었습니다.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과 연대장으로 각각 임명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신성모 국방부 장관.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전투를 잘 지휘할 수 있는 장교가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이에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이 때도 수도사단장 백인엽 대령을 추천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 사람으로 합시다!"
  이승만 대통령은 흔쾌히 백인엽 대령의 임명을 승낙했습니다.
  문제는 크로마이트 작전에 참가할 한국 육군이 1개 연대라는 점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크로마이트 작전을 앞두고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지만 그 규모는 겨우 1개 연대에 불과해 백인엽 대령에게 큰 고민으로 다가섰습니다.

  당연히 신성모 장관은 사단장을 한 대령에게 다시 연대장을 역임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결국 백인엽 대령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재 계획 중인 반격작전에 참가하는 연대의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하오. 지금 사단장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이러는 것은 곤란하지만 백 대령의 의견을 듣고 싶소. 어찌하시겠소?"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장관님, 전쟁을 하는데 사단장이면 어떻고 연대장이면 어떻겠습니까? 뭐 중대장도 괜찮습니다. 까짓거 백의종군 하지요. 맡겨만 주십시오”고 당차게 답변했습니다. 
  현재 연대를 지휘하는 사단장 보직을 수행하는 그에게 있어 이는 대단히 큰 치욕이자 불명예였음에도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과 더불어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킨 백인엽 대령!
  하지만 그가 어느 부대를 지휘하느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부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반드시 한국군의 이름을 드날릴 훌륭한 부대를 선정할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따라서 신성모 장관은 백인엽 대령을 호출해 어느 연대를 지휘하겠느냐고 물었고 백인엽 대령은 주저할 것 없이 개전 초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제17 보병연대를 선택했습니다.

  두번째로 연대장을 맡게 된 백인엽 대령의 의지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있던 제17 보병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17 보병연대는 요충지인 경주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고 당연히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중장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백인엽 대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17 보병연대는 경주에서 이동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 그리고 미 제7 보병사단과 한국군 제17 보병연대 등이 참여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의표를 찌르며 성공리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이후 두번째로 제 17보병연대장에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인천을 탈환한 후 다시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17보병연대는 개전 초 옹진반도에서 당했던 참패의 치욕을 되갚으며 인천 상륙 이후 미 제7 보병사단에 배속돼 잠실 방면에서 한강을 도하한 뒤 남산을 탈환하고, 북한군의 증원부대 및 퇴로 차단을 위해 망우리에 전개했습니다.


 
서울에 입성해 치열한 시가전을 치르고 있는 미 해병대원들. 제17 보병연대는 백인엽 대령의 지휘 하에 북한군의 발악적인 저항을 격퇴하며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9월 28일 서울을 북한군에게서 탈환한 제17 보병연대가 폐허가 된 시가지의 잔해들을 치우는 한편 경무대 경호와 수도경비임무에 전념했고 이를 지켜본 미군들은 제17 보병연대를 ‘서울연대’로 호칭했습니다.
  이렇듯 백인엽 대령의 제17 보병연대는 서울탈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백인엽 대령은 10월 24일 준장 진급과 동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영전했고, 제17 보병연대는 제2 보병사단에 예속된 후 저격능선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파하며 그 용맹을 과시했습니다.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불합리한 대우라도 아무런 불만없이 잘 받아들여 성과를 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정도 이상의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으시더라도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호쾌하게 "예! 맡겨만 주십시오!!"를 외친다면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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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타임머신 2011.07.02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안중에 두었겠습니까.... 그냥 갈기고 보는거죠...
    형님인 백선엽 장군은 지리산 근처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지리산 주변 주민들까지
    준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동생인 백인엽 장군은 여순사건 때, 반란 군인들은 이미 지리산 및 다른 지방으로
    도망쳤는데, 민간인 중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사람들 죽이고...

    햐.... 자신들의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 죽이는거...
    뭐 별거 있습니까?

    임진왜란 때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죽인다는 것...
    다 구라갔죠? 전시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치안이 불안할 때, 무력이 최고고
    그 무력으로 공적을 위해서라면, 민간인 가지고 노는거
    일도 아니죠...
    (요즘에야 개념이 잡혔지만... 글쎄요... 전시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3. kayak storage 2012.05.25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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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개념상실 2012.08.25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성질 더러운 놈으로 유명했죠. 후퇴하다가 사병한명이 짚차를 막아서 통행에 방해했다고 권총으로 즉결처분한적도있고, 공산군에 부역한 민간인들 잡아내서 일본도로 참수하기도하고, 자기형인 백선엽장군 아니었다면 피해가족들한테 생매장되었을겁니다.
    그리고 선인재단 만들어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죠. 인천의 화교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려서 대만대사관에서 항의하고, 강제철거하면서 온갖 폭행사건 터지고..
    글쓴분은 역사공부 많이하시고 정신차리세요.

  6. 지랄하네 2013.02.03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미친 새끼 때문에 형 백선엽까지 도매급으로 욕 처먹는 건 아슈?

    • 영웅 2013.10.2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선엽이 지 자신만으로도 욕쳐먹어 마땅한 기회주의자 인데 동생의 개망나니짓은 화룡점정 정도....ㅋㅋ

  7. 개념 2013.02.13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보인다고 댓글로 똥을 싸놓네
    6.25전쟁때 북괴에 맞서 목숨바쳐 나라를 위해 충성한 장군아닌가?

  8. 개그 2013.03.05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일화 많지....
    병사가 지프차 앞 막았다고 처형, 지프 시동 껐다고 운전병 처형...
    진정한 친일파 인간 쓰레기가 백인엽이다 차라리 채병덕이 양반이지..그나마 전선에서 뒤지기라도 했으니
    그러고도 아직도 살아있는거도 웃기고 이런걸 좋다고 빠는넘이 있는건 더한 개그다

  9. chat random 2013.05.02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10. 바른역사 2013.05.0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신성모 대한민국역사이래 최고의 기회주의자요 야비하고 잔이한 아부꾼들 찬양하는 글을쓴 인물은 도데체 누구? ㅉㅉㅉ

  11. Click here 2013.05.27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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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www.bonnevillefinancial.com 2013.09.3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13. 영웅 2013.10.20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을 칭송하네 ㅋㅋㅋ 조를까서 쳐 잡수세요 ㅋㅋ

  14. 양심좀가져라 2013.10.29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이를 빠는 글도 있네. 최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좋다고 글을 쓰다니...위에서 시킨다고 뇌없이 그냥 글쓰지말고 머리로 생각 좀 하면서 살길.

  15. Relationship with Luminix Power 2014.02.13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16. 여방오 2014.02.15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것.. 백인엽씨에게도 전쟁 중 공은 있겠죠..그런데 너무 찬양일색인 것 같은 아쉬움은 뭘까요.. 정일권씨나 백인엽씨. 개인적으로 인간애를 발휘한 김백일장군이 더 좋게 보여집니다, 전시라곤 하지만, 부하들에대한 즉결처형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휴전 후에 벌어진 이들 두 장군의 비리는 보릿고개에다 전후피해에 시름하던 국민들을 생각하면... 지휘관들의 공적도 많지만 이름없이 쓰러져간 하급장교, 병사들. 그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글들도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너무 탈도많았던 장성급만 다루시고 그분들만이 이 나라 이 겨레를 구한 것 같은 이 느낌은.. 평소 전사에 관심많아 예까지 와서 글은 잘 읽었습니다...

  17. Lawyers In Greentree 2014.04.10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18. seattle roofing 2014.04.13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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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http://lamari.pl/ 2014.04.24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20. 보름달 2014.05.14 0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인마 미국놈 작전에 독립운가와 백성 민족을 잡는 쥐잡이 놈들이 결국 백인협 백선엽 살인을 일삼고 제주도 살인자 14연대 살인자 부대놈들이 헬리곱터원정 전라도 의상봉 중심으로 경찰살인자 박가놈 3인방과 묵인 6인배후 열락책 위조책이 용변산반도 전라도민을 무자비 죄도 묻지 않고 살인을 하고 지역감정을시킨 살인마 미국놈들이 우방국이라니 한심한 친일파놈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미래가 없다..

  21. Invincible76 2014.08.05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글쓴이는 인간의 기본 윤리개념도 없는 정신이상자 이신 듯..?
    큰 잘못도 없는 부대원이나 다른 장병들을 심심하면 밥먹듯이 '즉결처분'이라고 총살하던 그 인간백정 쓰레기를 찬양하는거 보니,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겁니까 당신?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1 08:32
  예나 지금이나 반격에는 항상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필수입니다.
  고대 전사에서도 기병이 예비대이자 반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대포가 발명된 이후에는 공격과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반격작전을 지시하는 육군 총참모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이형근 준장에 대해 일부 분들은 "어찌 상관에게 항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형근 제2보병사단장의 반박이 무조건적으로 억지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당시 전황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전선에서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T-34/85와 Su-76으로 인해 사실상 공황상태 그 자체였고 한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로는 일격에 전차를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이형근 준장은 어차피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천연 장애물인 한강선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는 상식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건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로는 북한군의 T-34/85를 원거리에서 일격에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공황상태는 치명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형근 준장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일축하면서 "북괴군 놈들의 전차와 포병에 위축되지 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반격을 감행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걸작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적 전차에 육탄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부분을 보자면 마치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을 방불케하기 충분한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에 대한 육탄공격은 보병으로서는 대단히 큰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황이 파국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하에서 정작 단합되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작전을 수립해야할 육군 수뇌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6월 25일은 그야말로 전방과 후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된 하루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이 지속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명령만을 하달하자 마침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채병덕 총참모장이 이형근 준장의 반박에 분을 못참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험악한 풍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하니 제7 보병사단 사령부는 가장 길었던 하루( The Longest Day )를 보낸 셈이었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과 달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로지 현 위치 고수와 반격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지휘 계통마저 무시한 채 직권으로 예하부대를 출동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신이 명령에 제2 보병사단장이 끝까지 반박하자 마침내 채병덕 총참모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 2대대장 차갑준 소령에게 직접 구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이 곳 의정부에 달려 있다. 현재 포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고개( 축석령 ) 앞에는 적 전차 30대가 포진하고 있으니 즉시 특공대를 편성해 격퇴시켜라. 이 작전에서 귀관이 성공한다면 진급 규정에 관계없이 중령으로 특진시키겠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진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내려진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꽤 메리트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차갑준 소령은 부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차갑준 소령의 2대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탄약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 6·25 방문자 여러분들 중 혹시 1997년에 개봉한 파울 베르회펜( Paul Verho"ven )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감상하신 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지만 보병에게 지급되는 탄약의 양은 지독하게 적고 자동소총이 보편화된 현재 140발로는 택도 없는 지경입니다.
  아라크니드족의 대군을 맞아 요새를 지켜내야 하는 러프넥 중대원들의 사투 중 탄약이 바닥나 옆 동료의 탄창을 얻어쓰는 부분이죠.
  오늘날 한국군의 소총수는 개인당 140발의 5.56mm×45탄을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전시에 이 정도 양으로는 반나절도 채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K-2 소총의 경우 3점사나 연발로 사격할 때 30발 탄창 비우는데 20초도 채 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실제 제가 군복무 시 K-2 소총을 이용, 공포탄 20발 탄창 3개를 연발로 난사하여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쏘고 난 다음 3일 동안 방아쇠만 제외한 총의 전 부위를 완전 분해해 손질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 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미국제 M1 개런드 소총이 아무리 묵직하고 반동이 강한 7.62mm×63탄을 사용하더라도 최소 1인당 8발 클립 11개, 총 88발이라는 만만치 않은 양이 지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카빈 소총은 15발 탄창 11개, 톰슨 기관단총은 30발 탄창 7개가 지급되었습니다 )
  문제는 당시 2대대 병사들에게 지급된 M1 소총탄은 1인당 평균 2~5개 클립, 총 16~40발이 고작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전시 지급량의 절반도 못 채운 셈입니다.
  카빈의 경우는 더 심각해 평균 15발, 즉 1인당 1탄창이 고작이었고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경우 20발 탄창 4개 - 총 80발이 전부였습니다.


  차갑준 소령이나 예하의 중대장들이 봐도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상황이었고 회의 끝에 축석령에서 탄약을 재보급받기로 결정, 6월 26일 오전 3시를 기해 부대를 출동시킵니다.

  의정부의 운명이 걸린 축석령으로 향하는 2대대! 하지만 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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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익열사 2010.09.0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형근 장군... 대한민국 군대 군번 1번 아닌가요?

  2.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쉽 트루퍼스의 요새 전투 장면은 지금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3. FPS를 할때 2011.06.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오브듀티 5 월드앳 워에서 개런드 M1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128발이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죽은 동료의 총알을 노획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 게임 반도 못가서 총알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게임 안에서도 이럴진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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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 고사시킨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6 08:23


 


처형을 앞둔 경찰관 살해 공비들 .
경찰을 죽이고 탈출을 시도해서 전원 사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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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있기는 한 고역이었다.

참기가 어려워 뒤척이는 순간 누가 신호를 보냈다.

“쉿!”

분명 적이 멀리서 흔적을 보였다.

공비들은 한 줄로 서서 달빛 속을 걸어왔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산들바람을 타고

먼저 대원들에게 도착했다.

대원들은 아연 긴장했다.


공비들이 마을 앞을 태연자약하게 통과해서 오는 것을 보니

과연 소문대로 대장 외팔이는 대담한
성격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공비들이 고추밭에 들어서자 마른 고춧대가 사각거리며

소음을 냈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짙어 지더니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리고 어둠 저편에서 공비들의 상반신부터 노출이

되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공비들이

잠복 지점으로 들어섰다.


20미터, 10미터, 5미터, 소총을 든 공비 선두 첨병이 

내 앞을 지나갔다. 등의 짐을 이기느라 고개를 앞으로

뺀 적들이 2,3미터 간격으로 우리 앞을 통과하고 있었다.


완전한 돌출 타겟이었다.

네 명이 나의 정면을 통과했던 순간이었다.

“ 쏴라!”


빠바바앙 -!

일제 사격에 돌출 사격은 무너져 내렸고

대원들은 스프링처럼 공비대열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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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았던 월남의 매복전에서도 일제 사격과 크레머를

터뜨려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도 이렇게 총검돌격을

하는 일은 없었는데 하여튼 이 시절 한국 전투경찰이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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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닥쳐야 할 육박전의 대상은 없었다.

기습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 두어 명이 노루처럼

이리저리 뛰어 달아나는 뒤에다 대고 대원들이 따라가며

총을 쏘았다.


미처 짐을 벗지 못한 적 한명은 총 개머리 판에

타격되어 생포됐으며 나머지는 총이나 약탈 짐을 지고

둑길 아래에 쳐 막혀 있었다.


생포 1명에[김경준, 선전책] 사살 5명의 전과였다.

일차 타격으로 부안 공비 9명중 6명을 섬멸 한 것이다.


생포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끌려오자 나는

신원확인 질문으로 시간을 끄는 사찰계장과 우두거니 서있는

경비계장을 제치고 이들을 직접 심문했다.

“ 제 2의 비상 집합 장소는 어디냐?”

“-----”
“제대로 말하면 살려 주겠다.그렇지 않으면--”

즉결 처분한다는 위협이었다.


“천연암 아래요.”

“제 3의 장소는?”
“그 너머 고지라우.”

“무장은 소총 몇 정이었나?“
”석 자루 뿐이었어유.“

소총이 3 정뿐이라면 달아난 적은 모두 비무장이라는

결론이다. 시체에서 거둔 총이 석 자루였다.


나는 경비계장에게 생포자를 재갈 물리고 앞세워

곧바로 제 2, 제 3의 비상 장소를 찾아가도록 시켰다.

대원 중 6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나와 사찰 계장은 공비 시체 검사를 맡았다.

내가 죽은 공비들 시체에 섞여있는 외팔이의 시체를 검사하고

있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던 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어! 이거 멀쩡하네!“

하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죽은 시체로 보였던 공비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놔라! 이 싸가지 없는 개들아!”


나는 달려가 보았다.

여자 공비였다.

허벅지에 중상을 입고 다량의 출혈을 한 것이

어둠 속에서도 확인 되었다.

그녀는 악을 쓰며 죽여주기를 원했다.

“언제 입산했나?”

“묻지 마라 이놈아 ! 나는 혁명 전사다 어서 죽이라 !”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싶었다.


그 녀는 결국 힘을 모아 “조선 의용군가”를 부르고

대원에게 처형당했다.


도주한 두 명의 공비는 제 2의 접선장소에서

체포가 되었지만 한 명은 끝내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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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공비중  한 명인 임한근은 김두운씨와

줄포 국민 학교 동창으로 밝혀져 그가 구해 내려고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친구는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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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공비들도 군경이나 그 가족들을 함부로 죽였지만

군경도 포로들을 가차없이 즉결처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붙잡힌 포로 세 명도 김두운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찮게 생각한 부안 경찰서 사찰 계장이
모두 사살해버렸다.

어두운 한국사의 한 시절이었다.

김두운 씨는 이 사건뒤에 생포한 공비는 처형이 아니라
반드시 설득하고 감화시켜 전향시키기로 맹세했다.



죽음이 일상화 되었던 6·25전쟁후 한국.
여순 사건때 반란군들이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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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터지고 김두운 씨는 동료들과 다급한

후퇴 길에 올랐다.

시골 고향에서는 형님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날 도주했던 공비가 따발총을 가진 무장병을 데리고

김두운 씨 가족을 몰살하러 왔다가 다행히 동구에서

형님을 만나 이미 김두운 가족이 좌익에게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혀를 차며 그대로 돌아갔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공산화 대박을 터뜨린 모택동의 신화를

재현할 꿈을 가지고 입산했던 수 천 명의 남한 공비들은

모두 섬멸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소위 유격활동을 할 구역이 너무 좁았고

주변도 인구 밀집지역으로 뻗어나갈 공간도 없었다.


두 번째로 북한과의 연계 실패다.

북한은 공비들이 다 섬멸되기는 손가락을 물고 구경만

했지 한 푼의 지원도 해주지 못했다.

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가 식량 확보의 실패다.

이것은 첫 번째의 실패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빨치산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식량을 공급해줄‘해방구'도 인구 밀집의 남한에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전투 경찰 경비아래 수확하는 농민들.
이 단계부터 경찰은 식량을 공동관리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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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공비들의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공동 추수를 독려하고 수확물은 지서에 공동으로 보관시켰다.

부락민들은 식구의 한 끼만 가져가서 밥을 해먹도록 했다.


쌀이 손에 안 들어오자 공비들은 식량을 찾으러 민가로 내려왔다.


경찰은 이들을 매복전술로 맞받아 쳤다.

식량이 이들 입으로 가져가기 직전 좌절시키는 작전이었다


마침 내가 찾아낸 더 큰 경찰 매복 전술의 성공적인 사례를 

조금 이른 시기의 것이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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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의 식량 사정은 더 나빠져서 대원들이 며칠씩 굶는 날이

  많았다. 1950년 4월 16일 도당 간부 몇 사람만 남겨놓고
  무장대원
40명 비무장 대원 20명, 모두 60명이 합쳐
  보급투쟁에 나섰다.


  구례 간전면 제기암 골에서 백운산 상봉은우회하여

  진상면 야지로 나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결사적인 시도였다.

 

  이틀간의 잠복 끝에 가까스로 식량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돌아오는
도중 고리봉[상봉]근처에서 앞질러 와서 매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퇴로를 차단당했다 .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쫓기며 귀환을 시도했으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찰의 추격으로 겨우 20명 정도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로서 전남 도당은 큰 타격을 입었고 식량을 비롯한
  제반 사정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


공비들은 시간이 지나고 경찰이 매복 토벌을 체계화 하자

식량 확보는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전쟁 후반은 공비들은 식량 확보에 모든 전력을 쏟는

기현상의 유격전이 벌어졌다


공비들에게 식량은 생명이었고 이의 확보가

바로 전쟁이자 전투였다


식량 약탈은 보급 투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계급투쟁이 공산주의자의 목표인데 남한의

공비들은 식량약탈 투쟁을 주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농민해방이니 부르조아지 타도니 남조선 혁명이니

하는 때깔 좋은 소리는 그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

공비들은 자주 저녁 식사시간에 동네를 급습했다.

식구들의 밥상을 통째로 빼앗아서 미친 듯이 쓸어 넘고도

부족해서 밥을 더 담은 밥그릇을 가지고 다니며 게걸스럽게

밥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었다니 공비들의 뱃속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항공 촬영한 호남 농촌지역
공비 아지트가 있는 산에는 식량이 없었다.
식량 공급처인 농촌지역의 확보 실패가 공비를
죽음의 보급투쟁으로 내몰았다.

공비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 농촌으로 오는 길에
경찰이 설치한 '매복'이라는 죽음의
덫이 기다리고 있었다.

-------------------------------------------


자기 쌀 강탈해간다는데 좋아할 농민들이 없었다.

인심은 당장 돌아서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에 호의를 가지던 주민들도 한번 이라도

약탈을 당하면 당장 경찰 편으로 돌아섰다.


물고기인 공비들의 물이 되어줄 농민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경찰 토벌에 협조했다.


그러나 공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급투쟁은

더욱 먼 거리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들에게 등을 돌리는 주민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고 오고 가는 장거리에 여러 매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과거 빨치산 생활을 경험한 분에 의하면

공비들이 마치 침투 간첩이 하듯 식량 약탈의

루트를 개척해 놓으면 경찰들이 단 시간 내에 귀신 같이

파악해서 매복을 했다고 회고했다.

즉 자신들의 아지트는 수십겹의 경찰 매복의 그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보급투쟁은 목숨을 걸어야 했었다.
앉아 있어도 죽음이 있었고 서서 움직여도 죽음이 있었던
것이 공비들의 운명이었다.



희생당한 전투 경찰 박원기의 장례식.
그칠 수없는 어머니의 통곡이 너무 슬프게 보인다.
-----------------------------------------------


결국 한국의 공비들은 모택동의 정강산이나 연안의 화려한

꿈 대신 거지와 도둑이 결합된 화적떼로 퇴화하여 볼품없는
소멸의
길을 갔다.


식량 부족이 공비들을 말려 죽인 것이다.

공비들을 말려 죽였다고 할만한 매복전술은

한국의 전투경찰들이 몸으로 부딪히고 희생하면서 터득한 것이다.


한국 전투 경찰의 매복전술은 육군 대부분의

전술 교리가 미국 FM에서 가져온 것에 비하면 토종

한국형 전술이다.


나의 좁은 지식에 나중에 채 명신 장군이 월남에서 사용했던

중대기지 전술과 중공군 인해전술에 수류탄 대량 투척으로 맞섰던

고지 방어 전술 외에 이에 비견할 특별하게 폭 넓게 적용된

한국형 유명 토종 전술은 생각나지가 않는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의 환경을 맞추어서 자생적으로 창안되고

개발된 전술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중국 모택동의 유격 전술이나 이스라엘 군대가 개발하고

활용해온 이스라엘 식 전격전 전략은 이 말을 증명해준다.


나는 20년 전 남아공의 특수 부대가 사막거주 부쉬만 종족들의

비법인 동물이나 사람 발자국 추격 술을 세세하게 캐묻고
연구하고 체계화해서 특수부대 교육용 매뉴얼로 만든 것을
보고 감탄한바 있었다.

특수부대는 이 교범으로 부대원를 훈련시켜 반도들의
추적 작전에
활용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6·25전쟁 이나 월남전중 선배들이

몸으로 희생하며 터득하고 개발한 전훈을 교리로서

정리하는 측면이 매우 부족했다.


6·25전쟁 후 전투경찰의 매복 전술의 세련도는 분명 육군의

그것보다 한 수 앞선 것이었다.


한국 전투경찰의 매복전술이 정리되고 교범으로 정리되어
후배들에게 전달이 되었더라면
월남전등에서나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고 한국의
전투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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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이아빠 2010.07.06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두운서장 노년 모습입니다.. http://www.wonbuddhism.or.kr/wonnews/interview/i1108.html

  2. 냥햏 2010.07.0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ㄱ-; 안그래도 소통이 잘 안된다는 평을 듣는것 같은데 .. 뎃글마저도 '승인'이 필요한건가요? 가끔 와서 좋은글 읽고 갑니다만 .. 운영 방식이 너무 구시대적인 것 같아 안타깝네요.

  3. Gray 2010.07.11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읽고 갑니다.

  4. 요츠 2011.05.23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뜨질 않네요..
    사진을 보고싶은데..

  5. carinsurancecompany community hunting 2012.05.26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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