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본부'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1.08.09 모르는 것이 약 (24)
  2. 2011.04.12 지킨 자 그리고 도망간 자 (118)
  3. 2010.09.01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19)

모르는 것이 약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08.09 15:58

 1950년 6월 28일 서울 함락까지, 전쟁 초기에 국군 수뇌부가 보여주었던 행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울 사수에 급급한 나머지 총참모장 채병덕(蔡秉德)의 주도로 의정부축선에 축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소모시켜 버리고, 한강 이북에 5개 사단을 방치한 상태로 한강교 폭파를 단행하였던 전술은 무능함의 극치였다고 혹평을 받아 마땅합니다.

[전쟁 초기 대처가 미흡하였던 것으로 평가되는 채병덕 총참모장]


 결국 이 때문에 10만이었던 국군이 전쟁발발 일주일도 되지 않아 3만 선까지 몰락하게 되었고, 낙동강까지 밀려나 유엔군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야 겨우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축차 투입되어 순식간에 해체 된 부대는 2, 5, 7사단이었고, 수도경비사령부(수도사단)은 패전 부대를 긁어모아 간신히 재편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략, 전술, 작전, 철학이 부재하여 벌어진 참변이었습니다.

[서울을 피탈당한 후 벌어진 한강방어전의 디오라마]


 의정부 축선을 담당하던 7사단이 북한군의 주력인 3, 4사단과 105땅크여단의 집중 공격으로 밀려난 것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크고,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던 서울에 대한 육군본부의 무의미한 집념이었습니다. 물론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150만의 시민이 살던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적 가치가 컸고, 이후 인공치하에 엄청난 탄압이 자행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방어에 나선 것은 타당합니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선봉이었던 전차부대]


 하지만 군사적으로 도저히 방어해 낼 능력이 없다면 시민을 안전하게 소개시키고 도시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했습니다. 아군의 북진 시, 북한이 도주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평양을 미련 없이 포기하였던 것과 1.4후퇴 당시에 서울을 순순히 적에게 내어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위정자들과 군부는 거짓 정보로 시민을 혼란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국군의 급속한 몰락을 불러오는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 자충수 : 바둑에서 자기가 돌을 놓으면 도리어 자기 수가 죽게 되는 수

[대부분의 중장비를 유기한 체 한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이렇게 서울 북부에서 한심한 장면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던 6사단은 북한군 2군단을 몰락시키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는데, 역설적이지만 6사단이 대승을 거두게 된 데는 육군본부의 무능함이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6사단은 육군본부와 연락이 두절되어 상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작전을 벌이던 중이어서 타 전선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도 일부부대는 선전을 펼쳤습니다.]


 오히려 국군이 해주로 진입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그대로 믿어 모진교 폭파에 실패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춘천과 인제 일대로 북한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김종오 사단장은 사단 예비부대로 원주에 주둔하던 19연대에게 출동을 명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19연대는 우선 선도대대를 징발된 차량 등을 이용하여 춘천으로 급거 출발시켰고, 본대는 열차편으로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이동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전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6사단 19연대의 이동로(점선-선도대대, 실선-본대), 열차를 이용한 본대는 의정부 인근인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날까지 6사단은 육군본부와 통신이 개방된 상태가 아니어서 사단의 의지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육군본부는 후방에서 올라온 부대들을 앞뒤 가리지 않고, 의정부 축선에 축차적으로 투입하기에 급급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9연대가 이곳과 가까운 청량리에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면 임의로 부대의 작전지역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춘천전투 기념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후방에서 이동하는 족족 축차적으로 의정부축선 일대에 투입하였던 육군본부의 대응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비대의 조력을 받을 수 없었던 6사단은 춘천과 홍천 방어에 실패하였을 것이고, 북한군 2군단은 신속히 수원까지 남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어서 개전 초기의 유일무이한 대승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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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킨 자 그리고 도망간 자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04.12 21:51

1950년 6월 28일, 적에게 김포읍이 피탈 당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소사읍(현재 부천시)으로 후퇴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이하 김포사)는
읍사무소(현재 부천시 심곡본동)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밤새워 대오를 수습하던 중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후퇴 와중에 사령관 계인주 대령이 실종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가 지휘소를 설치하였던 소사읍사무소

국군지휘부는 이런 황당한 소식을 보고받고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무릅쓰고 한강교를 폭파하는 초강수를 두며
북한군의 남진을 막고자 했지만 이미 북한군 6사단은
한강하구를 도하한 후 김포반도를 점령하고 남하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북한군이 조기에 영등포를 점령한다면,
아군의 퇴로는 순식간 차단될 위기였는데
이를 최일선에서 막아내어야 할 부대가 바로 김포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강다리를 끓었지만 이미 적군은 한강을 도강한 상태였습니다

김포사는 무주공산으로 방치된 김포반도에 상륙한 북한군을 막기 위해
6월 26일 남산학교(정보학교)장이었던 계인주를 사령관으로
기갑연대 1장갑 수색대, 3도보 수색대, 8연대 3대대, 12연대 2대대, 15연대 12대대,
22연대 3대대, 18연대 2,3대대, 보국대대, 남산학교, 공병학교의 병력을 모아
급조한 부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사분란하게 통합 지휘할 지휘부의 역할이 컸는데
사령관의 갑작스런 실종은 상당히 치명적이었습니다.

독립 기갑연대 소속 M-8 장갑차도 김포사를 지원하였습니다

결국 3사단 참모장인 우병옥 중령이 신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김포사는 즉시 김포공항 탈환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미군의 참전이 이루어진다면 김포공항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른 작전이었습니다.
작전 초기, 비행장에 돌입한 전초부대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아군을 구출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압도적인 북한군에게 점차 밀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0년 7월 초에 촬영된 김포공항

그러나, 비행장 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일선 장병들은
적의 공세에 굴하지 않고 처절하게 저항하였습니다.
선봉에 섰던 안영작 대위, 강문헌 대위, 김일록 중위,
박영수 소위, 김수동 소위 등의 중간 간부들은 적의 공세를 막아내다 전사하였고
현장에서 이들을 지휘한 김포사 참모장 최복수 중령은
단신으로 기관총을 거치한 지프차를 몰고 비행장을 질주하여
적을 유린하다 장렬히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장렬히 생을 마감한 최복수 중령

이와 같은 부하들의 장렬한 전사에도 불구하고,
작전이 실패하고 부대가 와해된데 죄책감을 느낀 사령관 우병옥 중령은
공항이 내려다보이는 원미산 중턱에서 권총으로 자결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김포사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경인가도 일대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부대가 시흥전투사령부에 흡수되어 해체되는 7월 4일까지
치열하게 적을 물고 늘어져 남진을 저지하는 투혼을 발휘하였습니다.

원미산에서 바라 본 개화동 방면
우병옥 중령이 이 부근에서 자결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전투 2일 만에 행방불명된 계인주가 나타난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부산이었습니다.
그는 전황이 불리하고 육군본부가 수원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하여 부대를 무단이탈하여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갔던 것입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겁하게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한 것이었습니다.

팔미도 투입 직전 영흥도에서 촬영된 특공대(우에서 3번째가 계인주)

헌병대에 체포된 계인주는 재판에서 총살형을 언도받았지만,
인천상륙작전 당시 지형을 잘 아는 요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미 해군정보국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풀려나 팔미도 작전에 투입되어 수훈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인주가 비겁하게 도주하였던 행위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팔미도 작전은 굳이 그가 아니어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지만
김포사를 내팽겨 친 행위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계인주의 도주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위였습니다(우측 뒤돌아 본 이)

역사를 보면 최복수 중령처럼 끝까지 저항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 사람도 있고
우병옥 중령처럼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인물도 있지만,
계인주처럼 자신의 영달을 꾀하기 위해 의무를 거부한 이도 엄연히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국은 지키는 자에 의해서만 수호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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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1 08:16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를 급거 이동 전개시켰습니다. 다행히도 이들 부대가 이동이 들어가던 5월 19일을 전후하여 보급에 고질적으로 문제가 많던 중공군의 공세는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서 미 제3사단은 장평리 일대에 집결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3사단이 돌파구를 막으러 긴급 이동 전개에 들어갑니다.]


  미 제3사단이 정찰에 돌입한 결과 속사리-하진부리 일대까지 남하한 중공군이 그 동안의 공세로 몹시 지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3사단은 즉시 반격을 펼치기로 하고 운두령 일대를 공격하였습니다. 깊숙이 남하한 중공군 주력의 배후에 위치한 운두령은 속사리 북방 10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1,326미터의 회령봉과 해발 1,577미터의 계방산사이에 놓인 고개인데, 현리로부터 속사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31번 도로가 지나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국군 제3군단의 붕괴를 가져온 오마치고개처럼 아군이 점령할 경우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고립시킬 수 있는 목지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공군의 거센 저항으로 인하여 운두령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화력은 지쳐있는 중공군을 서서히 압도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반격 3일 만인 5월 22일 18시경 미 제3사단은 마침내 운두령 정상을 점령했습니다. 불과 5일전 중공군의 공세초기에 오마치가 피탈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참담한 상황이 완벽하게 재연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국군 제1군단이 대관령을 선점함으로써 깊숙이 남하하였던 중공군은 순식간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주력은 국군 제3군단을 추격하다가 너무 멀리 내려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퇴로가 차단당하자마자 이어진 엄청난 포화와 공습에 대책 없이 녹아내려 갔습니다. 미 제3사단의 운두령전투는 적의 5월 공세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공격 기세를 완전히 차단하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국군 제3군단을 붕괴시키는 등 전술적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그로 인하여 얻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전략적으로 대실패한 공세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군에게도 이번 공세는 너무나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운두령 점령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우선 적의 차기 작전 예측에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공군 제6차 공세를 앞두고 미 제8군사령부 역시 5월 중순에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가 있을 것으로 시기는 정확히 예측하였으나 주력의 지향방향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이 중-서부의 주력을 불과 일주일 만에 중-동부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공중정찰을 통해 중공군의 이동 징후를 탐지하였으나 이를 중공군의 기만책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세 초기인 5월 17일에 신남 일대의 국군 제5, 7사단이 붕괴된 점만으로도 중공군의 지향방향을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제8군의 예비였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의 이동이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이 때문에 중공군의 과도한 남진을 촉진시켰고 그것이 침략자 스스로의 무덤을 파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군 제3군단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패배를 제8군의 전략부재에서 찾을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3군단 스스로에게 더욱 많은 문제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리 일대에서 전면방어 또는 인제-홍천 축선에서의 공격 등처럼 중공군이 예상치 못하였던 방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격이나 저항은 고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후퇴를 선택한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후퇴가 아닌 붕괴였고 이점에 대한 국군 제3군단의 어떤 변명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밴 플리트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시켜 국군 제9사단을 미 제10군단에, 국군 제3사단을 국군 제1군단에 각각 배속 전환한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국군의 위상이 변화된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변화보다 국군에게 더 한 굴욕은 미 제8군이 직접 모든 국군부대를 지휘하는 체계로 바뀐 점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미군은 국군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뜻에서 육군본부를 통해 국군부대를 지휘해왔으나 이런 절차를 파기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군 제1군단마저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형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굴욕은 내 나라를 내가 지키지 못한데서 온 당연한 귀책사유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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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25 2010.09.03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국군의 화력수준이 어떤수준이였는지 알고계시면 간단히 알려주세요~
    드라마나 영화보면 M1카빈랑톰슨나오던데 맞나요?

  2. JEAN 2010.11.18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6/25를 얼마나 아십니까?"
    모든 국민이 다 6/25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신들이 지켜던 대한민국이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집에 불과하다. 북한이나 김일성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념과 2010년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한민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신들의 가치관이 만고불변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 경직된 국가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이 당신들이 필요했을지는 모르나,
    지금과 미래를 위해서는 당신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한다.

  3. Jim 2012.04.1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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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im 2012.04.1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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