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1.07.01 달콤했던 기억 그러나 과하였던 순간, 평양탈환(2/2) (3)
  2. 2010.11.08 98. 전쟁이 남긴 것 (154)
  3. 2010.11.04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99)

달콤했던 기억 그러나 과하였던 순간, 평양탈환(2/2)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7.01 21:05

 6ㆍ25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것은 엄청난 치욕이었습니다. 석 달 후에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을 수복하였지만, 엄밀히 말해 서울을 탈환한 주체는 미 10군단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일 전쟁이 벌어지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했었던, 이승만 정부는 평양 탈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서울 피탈은 반드시 극복하여야 할 치욕이었습니다>


 국군 1사단이 미 1기병사단과 비슷한 속도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조바심이 난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총참모장에게 “무슨일이 있더라도 평양만은 국군이 먼저 점령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미 8군의 우익을 담당하며 한반도의 정중앙을 따라 북진하던 국군 2군단의 일부 예하부대들이 평양을 향하여 진격방향을 좌측으로 틀었습니다.

 그 결과 국군 1사단 15연대가 본평양에 입성하던 시간과 거의 비슷한 19일 밤, 대동강을 건넌 국군 2군단 예하의 7사단 8연대도 김일성대학을 점령하며 평양에 입성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따라서 미군보다 국군이 선점한 것은 맞는데 먼저 평양에 도착한 부대가 15연대인지 8연대인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1사단과 7사단에게 평양을 탈환한 부대라는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대동강을 도하한 7사단 8연대도 거의 동시에 평양에 진입합니다>

 


 하지만 당시 국군은 UN군에게 지휘권을 일임한 상태여서 국군 2군단의 독단적인 진격은 명백한 군령 위반행위였습니다. 미 1군단에 속해 연합작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던 국군 1사단장 백선엽이 국군 7사단 8연대가 평양에 왔다는 소식에 놀라서 직접 찾아가 군법에 회부하겠다고 대노하였던 사례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국군 역사에 평양탈환은 영광스러운 업적이었지만 사실 과유불급이었습니다.

 당시 국군 2군단이 진격 방향을 좌측으로 바꾸자 전선 중앙이 순식간 텅 비어져 버렸고 이틈을 노려 북한군 잔당들이 안전하게 도주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평양탈환 후, 원 위치하였지만 우회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렇게 한 번 벌어진 틈은 이후 중공군이 침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 10월 30일 평양 시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평양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감격하였지만 최전선의 상황은 심각하게 바뀌던 중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0만 평양시민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의 상황은 급격하게 바뀌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후 후퇴 당시에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중공군에게 즉시 내어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상징성은 컸지만 군사적으로는 그다지 의미 있는 거점은 아니었던 평양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평양 탈환이 전쟁의 끝이 아닌 이상 그 임무는 원래 예정된 부대들에게 맡겨야 했는데, 조급함에 사로잡혀 전선의 상당 부분을 공백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한 곳으로만 집중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 제정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50년 10월은 국군의 역사에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시간이었고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평양탈환이었습니다. 특히 국군 1사단이 여건과 장비가 월등히 좋았던 미 1기병사단과 벌인 경쟁은 국군의 위상을 널리 알린 쾌거이기도 하였습니다. 창설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 군대가 이토록 쾌속의 진격을 선보일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터에 제작된 파괴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 狀 감격 속에 탈환한 평양을 이처럼 비극적으로 내주었습니다>


 엊그제까지 지옥의 인공치하 시기를 보내었던 국민들은 적의 심장을 국군이 점령하였다는 낭보에 감격하였고 곧바로 통일이 이루어 질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냉정을 잃고 즉흥적으로 내달렸던 대가는 불과 한 달 만에 달콤했던 북진이 끝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50년 10월에 있었던 감격스러웠지만 과하였던 평양탈환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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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전쟁이 남긴 것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8 07:57


  6·25전쟁은 이 땅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반도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당연히 전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전쟁 전에 남북을 가르던 희미한 38선은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욱 깊게 파인 굵은 휴전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와 전쟁의 폐허만을 거머쥐고 남북한의 감정과 이념대결이 더욱 격화됨으로써 평화통일의 기대는 더욱 멀어져 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3년 동안 파괴와 희생만 부르고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 온 것뿐이었는데 그로인한 대가가 너무 컸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으며, 어느 쪽도 명확하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겨진 피해는 너무 컸습니다. ]


  그렇지만 지난 3년간 피를 바치면서 혈전을 벌여왔던 양측 모두는 전쟁이 멈추자 자신들이 이겼다고 맹렬히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전쟁을 계속하기는 곤란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존심까지 함부로 내팽겨 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세계최강의 미국에게 역사상 첫 패배를 안겨주며 남한의 북침을 저지하여 북한이 승리한 전쟁’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을 물리치고, 남한정부의 전복을 막아 자유를 수호하였기 때문에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승리의 대가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작은 한반도에서 3년을 넘게 계속된 전쟁으로 남-북한 모두는 참혹한 전화(戰禍)를 경험하였습니다. 전선이 남으로는 낙동강까지, 북으로는 청천강 및 함경도 일대까지 오르락내리락 하였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봐야했을 정도였고, 특히 주인이 수차례 바뀐 서울에서 38선 일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참혹한 인적, 물적 손실이 발생하였으며 국토는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전쟁기간 동안 전사상 당한 국군과 유엔군의 손실은 77만 6천여 명이나 되었으며, 화력의 열세를 인해전술로 메우는 전술을 사용하던 북한 및 중공군은 약 2백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더불어 후방의 민간 또한 이에 못지않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민간인의 경우 남한은 100만여 명, 북한 150만여 명 등 250만여 명의 인원피해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전 남북한을 합친 총인구인 2,500만여 명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더불어 320만 명의 피난민과 30만 명의 전쟁미망인, 10만 명의 전쟁고아 등은 그야말로 사회적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수준이어서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민간인의 피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더불어 소중한 개인의 재산은 물론 해방직후 미미하나마 존재하던 국가 기간산업시설과 공공시설마저도 송두리째 파괴되었는데, 이로 인한 재산적 손실만도 당시 가치로 32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습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외침에 의해 국가가 멸망당한 최악의 경우도 있었지만, 6·25전쟁은 피해를 단순히 수치로만 계량화한다면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비참했고 참혹했던 재난으로 인정하는데 결코 이의가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남북 서로가 주장하는 전쟁의 승리 주장을 떠나 전쟁의 결과는 남북한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남북한 모두가 전쟁을 전후하여 인구의 재배치가 급속히 이루어졌는데, 특히 북한은 전쟁 중 대규모의 북한인구가 자진 월남함으로써 인적자원 면에서도 상당한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이동은 해방 및 분단 직후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별개의 상이한 체제를 택하였던 남북간의 경쟁에서 어느 체제가 인간을 존중하였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명확한 바로미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체제에 반대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진 월남함에 따라 공산정권으로서는 전쟁 전 보다 쉽게 ‘김일성 독재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반사 이익도 누렸습니다.


  외적으로 북한은 제2차 대전 후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과 전쟁을 치름으로써 제3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이로 인해 서방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고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화 정책은 더욱 가속화되어 1958년에 이르러 모든 생산수단이 완전히 국유화되어 체제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외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오늘날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 이르게 될 만큼 급전직하 추락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피난민의 이동은 한반도의 인구분포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대한민국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대폭 들어난 인구의 대부분이 중부권에 집중됨으로써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시기의 인구 집중과 달리 단지 전란으로 인한 피난민의 증가는 의식주 해결에도 벅찰 만큼 힘든 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0년대까지 국가의 경제정책은 국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은근히 이어져 내려오던 봉건주의적 마지막 잔재가 무너지고 시장경제 질서에 급격히 성립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란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초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반공이념을 심어 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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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4 08:17


  언제부터인가 휴전회담이 재개될 때면 묵시적인 관행에 따라 전선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 때문에 예상보다 휴전회담이 장기화되자 1952년 이후로 전선은 피아모두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거쳐 확보한 방어선을 공고히 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결국 언제인지는 전쟁의 종결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되었고 다만 전쟁이 멈추었을 때 상대보다 내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모색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대미를 장식할 대공세를 준비하였습니다.]


  특히 회담지연 전술을 적절히 활용한 공산군측은 이 시기에 전력을 대폭적으로 증강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953년 봄이 되었을 때 공산군은 중공군 135만 명, 북한군 45만 명 등 총 180만 명의 대병력과 각종 장비를 전선에 배치시켰는데, 이것은 6·25전쟁 발발 이래 최대의 병력 수준이었습니다. 결심만 한다면 지난 1951년 초여름의 제6차 공세이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있던 대규모의 공세를 재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종전에만 급급하였던 유엔군으로서는 이에 맞선 전력증강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는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이 건의한‘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편 계획’의 조속한 추진에 나섰는데, 이것 또한 엄밀히 말해 국군이 북한의 도발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전을 염두에 둔 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3년 5월 1일에는 현리전투로 해체되었던 제3군단이 재창설되었고, 6월 18일까지 제26, 27사단이 신편 됨으로써, 국군은 휴전발효 직전에 총 3개 군단 18개 사단의 전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이던 6월 8일, 포로송환협상이 타결되면서 휴전이 현실화 되자 공산군측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전하고 한국정부의 북진주장과 휴전반대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유엔군의 반격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하고자 했습니다. 중공군 참전이후 계속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국군이 전담하고 있는 전선을 노렸고 이때 공세지점으로 결정된 곳이 국군 제2군단이 담당하던 화천북방의 금성돌출부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은 국군 담당지역 중에서 지형이 특히 험하여 기갑 및 화력지원이 취약하다고 판단된 곳이었습니다.


[금성돌출부에서 중공군의 제7차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1953년 6월 10일 밤, 1개 군의 중공군이 국군 제5, 8사단 일대를 집중 공격하였으나 어느덧 산전수전 다 겪은 국군의 효과적인 지연에 막혀 9일간 13킬로미터 정면에서 4킬로미터를 남진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유엔군도 현 전선을 그냥 인정 할 것이라 판단한 공산군측은 작전이 성공한 것이라 만족해하며 6월 18일 전후로 예상 되는 휴전협정의 조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변수가 생겼습니다. 6월 18일 자정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27,000여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되면서 조인 직전에 있던 휴전회담은 중단된 것이었습니다.


  선전효과를 노렸던 공산군측의 의도는 일거에 좌절되었고 상황은 급속히 냉각되었지만 공산군측은 휴전회담 자체를 깨려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자체가 휴전을 염두에 두었을 만큼 공산군측고 휴전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자존심 문제라 생각한 중공군은 지난 51년 5월, 제6차 공세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화천저수지의 재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공군의 대병력이 이 일대로 집결되면서 긴장이 높아지자 클라크는 휴전을 염두에 두고 일본으로 빼놓았던 미 제24사단과 제187공수연대를 한국으로 황급히 재배치했습니다.


  7월 13일 밤, 지난 6월의 제한적인 공세와는 비교가 안 되는 5개 군의 대병력이 국군 제2군단의 금성 돌출부지역을 강타하면서 6·25전사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중공군의 제7차 대공세가 게시되었습니다.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하여 금성을 양익포위 하여 전면에 배치된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Maxwell D. Taylor) 제8군사령관은 포위를 거부하고자 방어선을 금성천 남단으로 조정하여 아군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군 제2군단과 미 제9군단이 적근산과 백암산을 연하는 선으로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7월 16일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시켰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중공군의 공세 여력이 바닥이 나자 아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7월 19일에 다시 금성천과 북한강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마지막 공세로 전선을 남하시켰으나 엄청난 피해를 겪었습니다. ]


  중공군이 패주하자 국군은 금성천 북방으로 재진출하려 하였으나 휴전을 염두에 둔 유엔군사령부의 제지로 마지막 혈전은 거기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국군 제2군단은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에서 피탈당한 지역의 절반정도만을 회복하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공군은 전쟁 막바지에 무려 6만 명 정도의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의 마지막 혈전이자 국군의 마지막 전과로 전사에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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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repare-for-test.com 2013.08.22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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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Condo living in Bal Harbour 2013.10.24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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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research interest statement 2013.10.24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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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data entry speed test 2013.11.06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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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car leasing 2013.11.18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로 전선은 피아모두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거쳐 확보한 방어선을 공고히 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