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18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3)
  2. 2010.07.21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10)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18 08:38

  대한민국 군번 제1호로 유명한 이형근(李亨根 1920~2002) 예비역대장은 1993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른바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개전 당시에 제2사단장이었고 이후 여러 요직을 거쳐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던 인물이 의심을 가졌을 만큼 전쟁 초기의 정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이상한 점이 많기는 하였습니다.


[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이형근 전 참모총장 ]


  그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선 부대의 적정동향보고를 수뇌부에서 철저할 정도로 묵살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하여, 전쟁발발 열흘 전인 6월 15일 중앙요직은 물론 일선사단장과 연대장을 거의 동시에 대폭교체한 점, 6월 13일부터 20일에 걸친 대대적인 부대 재배치 등등 모두 10가지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이것들은 전쟁초기에 너무나 일방적으로 적을 이롭게 하고 반대로 아군의 몰락을 가져온 미스터리로 거론되기에 충분한 주장들입니다.


[전쟁직전인 1951년 6월 초 서울]


  그러한 이상 정황은 아직도 논란이 많고 여기에 대한 추가 연구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북한 측의 전쟁 사료가 완전하고도 가감 없이 사실그대로 공개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오래 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이형근 예비역 대장이 꼽은 미스터리들 중에서 네 번째가 6월 24일 0시 (또는 6월 23일 24시)를 기하여 육군본부가 전군에 내려져 있던 비상경계조치를 해제시켜 버렸던 사실입니다.


[창군 초기의 국군(1948년 여순 반란 당시)]


  사실 이점은 이형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적인 의심사례로 거론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전쟁 징후를 느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불과 30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침공했다는 자체가 내부에 적을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아무리 사전에 남침을 계획하고 있던 북한군이라 하더라도 아군의 비상경계령이 해제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전쟁을 감행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더구나 당시 육군본부의 비상경계 해제명령에도 불구하고 부대 자체판단으로 긴장된 경계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였던 제6, 8사단의 경우는 개전 초에 상당히 선방하였던 반면, 4할 정도의 병력이 일거에 외출 외박을 나가 전력이 약화 된 제7사단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점만 봐도 비상경계령의 유무가 전쟁 초기의 전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훈련 중인 창군 초기의 국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더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1950년 들어와 아군은 정보기관이 수집한 각종 정보에 의거 북한의 전면 남침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4월 29일 처음 비상경계령을 발령하여 긴장된 전투태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쟁 발발 전까지 5월 3일~5월 9일 사이, 6월 2일~6월 11일의 두 차례에 걸쳐 경계령이 일시 해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비상은 계속 이어진 상태였습니다.


[창군 초기 국군 수뇌부]


  따라서 6월 24일의 경계해제는 영구적인 조치가 아니라 앞선 두 번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해제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예를 참조한다면 일단 경계해제 후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비상경계에 돌입할 가능성은 농후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군 수뇌부에 잠입한 간첩의 공작 때문이라는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국군의 비상경계령 해제 조치가 가까운 시일 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 충분히 예측하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 전 국군 기갑연대를 검열하는 미 군사고문단]


  그런데 지난 두 차례의 비상경계령 일시 해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군이 비상경계 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사실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북한 측도 충분히 가까운 시일 내에 국군이 일시적이라도 경계령을 해제할 것이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설명할 그 이유는 어쩌면 그 시절 우리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하였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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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1 08:32
  예나 지금이나 반격에는 항상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필수입니다.
  고대 전사에서도 기병이 예비대이자 반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대포가 발명된 이후에는 공격과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반격작전을 지시하는 육군 총참모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이형근 준장에 대해 일부 분들은 "어찌 상관에게 항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형근 제2보병사단장의 반박이 무조건적으로 억지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당시 전황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전선에서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T-34/85와 Su-76으로 인해 사실상 공황상태 그 자체였고 한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로는 일격에 전차를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이형근 준장은 어차피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천연 장애물인 한강선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는 상식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건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로는 북한군의 T-34/85를 원거리에서 일격에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공황상태는 치명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형근 준장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일축하면서 "북괴군 놈들의 전차와 포병에 위축되지 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반격을 감행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걸작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적 전차에 육탄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부분을 보자면 마치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을 방불케하기 충분한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에 대한 육탄공격은 보병으로서는 대단히 큰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황이 파국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하에서 정작 단합되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작전을 수립해야할 육군 수뇌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6월 25일은 그야말로 전방과 후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된 하루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이 지속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명령만을 하달하자 마침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채병덕 총참모장이 이형근 준장의 반박에 분을 못참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험악한 풍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하니 제7 보병사단 사령부는 가장 길었던 하루( The Longest Day )를 보낸 셈이었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과 달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로지 현 위치 고수와 반격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지휘 계통마저 무시한 채 직권으로 예하부대를 출동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신이 명령에 제2 보병사단장이 끝까지 반박하자 마침내 채병덕 총참모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 2대대장 차갑준 소령에게 직접 구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이 곳 의정부에 달려 있다. 현재 포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고개( 축석령 ) 앞에는 적 전차 30대가 포진하고 있으니 즉시 특공대를 편성해 격퇴시켜라. 이 작전에서 귀관이 성공한다면 진급 규정에 관계없이 중령으로 특진시키겠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진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내려진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꽤 메리트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차갑준 소령은 부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차갑준 소령의 2대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탄약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 6·25 방문자 여러분들 중 혹시 1997년에 개봉한 파울 베르회펜( Paul Verho"ven )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감상하신 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지만 보병에게 지급되는 탄약의 양은 지독하게 적고 자동소총이 보편화된 현재 140발로는 택도 없는 지경입니다.
  아라크니드족의 대군을 맞아 요새를 지켜내야 하는 러프넥 중대원들의 사투 중 탄약이 바닥나 옆 동료의 탄창을 얻어쓰는 부분이죠.
  오늘날 한국군의 소총수는 개인당 140발의 5.56mm×45탄을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전시에 이 정도 양으로는 반나절도 채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K-2 소총의 경우 3점사나 연발로 사격할 때 30발 탄창 비우는데 20초도 채 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실제 제가 군복무 시 K-2 소총을 이용, 공포탄 20발 탄창 3개를 연발로 난사하여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쏘고 난 다음 3일 동안 방아쇠만 제외한 총의 전 부위를 완전 분해해 손질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 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미국제 M1 개런드 소총이 아무리 묵직하고 반동이 강한 7.62mm×63탄을 사용하더라도 최소 1인당 8발 클립 11개, 총 88발이라는 만만치 않은 양이 지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카빈 소총은 15발 탄창 11개, 톰슨 기관단총은 30발 탄창 7개가 지급되었습니다 )
  문제는 당시 2대대 병사들에게 지급된 M1 소총탄은 1인당 평균 2~5개 클립, 총 16~40발이 고작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전시 지급량의 절반도 못 채운 셈입니다.
  카빈의 경우는 더 심각해 평균 15발, 즉 1인당 1탄창이 고작이었고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경우 20발 탄창 4개 - 총 80발이 전부였습니다.


  차갑준 소령이나 예하의 중대장들이 봐도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상황이었고 회의 끝에 축석령에서 탄약을 재보급받기로 결정, 6월 26일 오전 3시를 기해 부대를 출동시킵니다.

  의정부의 운명이 걸린 축석령으로 향하는 2대대! 하지만 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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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익열사 2010.09.0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형근 장군... 대한민국 군대 군번 1번 아닌가요?

  2.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쉽 트루퍼스의 요새 전투 장면은 지금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3. FPS를 할때 2011.06.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오브듀티 5 월드앳 워에서 개런드 M1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128발이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죽은 동료의 총알을 노획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 게임 반도 못가서 총알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게임 안에서도 이럴진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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