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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05 ‘별’을 바라본 적전 탈영 중대장 (24)
  2. 2010.06.08 그들의 이야기 [ 2 ] (5)
  3. 2010.04.09 맥아더가 만나 장군 그리고 병사[下] (31)

‘별’을 바라본 적전 탈영 중대장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7.05 15:23

 6ㆍ25전쟁사를 읽다보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국이 명령하는대로 군인이라는 직분을 다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연기처럼 사라져간 영웅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단지 전쟁 당시 어려운 상황으로 이들 영웅들과 전공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인데, 앞으로 이들 무명 영웅 모두를 후세 사람들이 알아줄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잊혀진 영웅들이 한 두 명이 아닌 반면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훈련시키고 임관시킨 장교 중에서 상상이 가지 않은 비겁한 지휘관들이 있었다. 전장에서 부대 임무와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지휘관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우들을 버리고 저 혼자 살아 보겠다고 도망친 것이다.

 북한군과 치열한 격전을 겪던 중에 부하들을 내동댕이치고 도주하였던 한 중대장이 처벌을 받기는커녕 거듭해서 대령까지 진급했었고 장군 진급 심사까지 받았던 기막힌 일이 있었다. 다행히 장군 진급 심사에서 그의 비열한 전력이 드러나 진급에서 떨어지고, 얼마 후 군을 떠났다.

 이 희한한 일은 남침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국군 6사단의 정예 7연대에서 발생했었다. 춘천을 방어하던 7연대 1대대는 옥산포 전투와 소양강 방어전투에서 기막히게 선전(善戰)했었다.

<춘천 북방 옥산포에서 침공한 북한군을 섬멸하기 전 7연대 1대대 병력이 점령하고 있었던 164 고지 일대 능선- 비오는 날 촬영. 촬영 위치에 북한군이 있었다. 무모하게 전진해온 북한군을 능선참호의 국군 7연대 1대대 장병들이 산사태처럼 뛰쳐 나와 무시무시한 함성과 함께 적의 측면을 타격했었다. 이날 밤 인접 가평에서 H 대위가 부하들을 버리고 도주했다.>


 그런데 우측 가평지구를 방어하던 2대대 쪽에서 황당한 일이 생겼다. 적의 거센 공세에 죽을 힘을 다하여 방어 전투를 하던 26일 심야에 0중대장 H대위가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중대장이 행방불명이 되자 중대원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지만, 소대장 중 선임자가 지휘를 해서 급박한 전황에 그럭저럭 대비를 했다. 나중에야 H대위가 가평 전선에서 빠져나가 집이 있는 춘천으로 도주했음이 밝혀졌다. 

 H대위는 트럭을 - 그 때는 군용 트럭도 있었지만 징발한 민간 트럭도 있었다. - 불법으로 활용해서 가재도구를 싣고 자신의 소유인 쌀 60가마도 실었다.

 그의 부인은 유흥업 종사자 출신으로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 챙길 것을 다 챙긴 그는 전선에서 부하들이 죽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안전한 부산으로 내뺐다.

<1864년 남북전쟁 때 교수형당한 도망병 윌리암 존슨>


 한편 7연대는  충청도와 경상도로 후퇴해가면서 혈전을 계속했다. 계속되는 전투에 사병들은 물론 부사관과 장교들에게서도 사상자가 속출했었다. 전우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누구도 증발한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2차 대전 최초로 처형당하는 미군 도망병 에디 슬로빅>


 전투에서 부상한 7연대의 많은 장병들은 부산의 제 5육군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 7월 어느 날 뜻밖에도 행방불명 된 H대위가 병원에 나타났다. 치사한 짓을 하고 전우들을 배신했지만 본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자신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는 얍삽한 생각을 품고 얼굴을 내밀었으리라.

 하필이면 이 병원에 입원한 장교들 중에 그가 전선에서 버리고 도망친 중대의 소대장들과 부사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뻔뻔한 그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저 개만도 못한 것을 쏴 죽여 버리고 싶구나!"

 울분을 이기지 못한 소대장 모중위가 병원에 입원했던 간부들의 서명을 받아 병원에 나타난 비겁자를 체포해서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6사단 7연대장 임부택 대령에게 보냈다.

 도량 넓은 지휘관이라는 평을 받던 임 부택 대령도 전투 중에 부하들을 내동댕이치고 연기처럼 사라진 H대위가 부산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체포 압송할 헌병 상사 인솔의 체포 팀 3명을 부산에 보냈다.

 부산에 온 체포대는 H대위가 사는 집을 알아내 찾아가서 동행을 요구했다. H대위는 찾아온 연행 팀들을 극진한 식사를 대접하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순식간에 또  없어졌다.

 H대위는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는 달변가였다. 그가 그렇지 않아도 귀대하려고 준비중이라는 등, 오해가 있었다는 등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바람에 체포대도 잠시 방심했던 것이 탈이었다. 다음날 찾아보니 어느새 그는 육군 병원에 가서 생배를 가르고 맹장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상사는 임 부택 연대장에게 돌아와서 "수술한 사람을 연행할 수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라고 경과를 보고하였다.

 임부택 연대장은 입맛이 썼지만 이 벌레 같은 존재인 H대위에게 계속 신경을 쓸 수없을 정도로 전쟁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생배를 째고 병원에 입원해서 눈치를 보던 그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 타부대로 전출을 갔다.

 그 무렵 전황이 급박해서 재편성하는 부대나 창설부대가 많았다. 처세술이 기막히다는 H대위는 미리 알고 대비를 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역시 물장사 유흥 업계 출신인 그의 부인이 체포대에게 손을 썼다는 소문도 은근히 나돌았다.

 7연대는 북진 길에 올랐고 압록강에 최초로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 길에 기습을 받고 와해되고 말았다. H대위의 비밀을 아는 7연대의 장병들고 전사를 했거나 연대를 떠나 다른 부대로 전속을 갔다.

 그를 고발하거나 처벌할 사람들과 시스템이 희미하게 된 것이다. 휴전이 되고 그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의 비겁한 전력을 들추기에는 세월을 너무 흘렀다.

 당시 대대 및 연대는 물론 사단 본부조차 여기 저기 이동하며 천막생활을 하던 때라 행정적으로 그의 비겁 행위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국운이 백척간두에 있었을 때라 그 무렵의 군대나 민간의 행정이나 기록은 엉망진창이었다.

 나중에 그의 소식을 듣게 된 장교들도 비웃어 버릴 뿐이지 고발을 하거나 투서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투서라는 것은 아무리 올바른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해도 점잖치 못한 것이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여튼 뛰어난 처세술의 H대위는 과거를 세탁하게 해주는 시운(時運)의 힘을 얻어 진급을 거듭하여 대령이 되고 장군 진급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제넘게도 과거의 추태를 잊고 육본을 들락거리며 장군 진급의 로비를 했다.

 그러나 하늘은 그를 끝까지 놔두지 않았었다. 6ㆍ25 다음 날의 비겁 행위를 한 진급 심사원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제보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겁자가 어찌 감히 장군을 바라봐?!"

 진급 심사장은 그에 대한 성토장이 되었고, 그는 물론 진급이 되지 않았다.

 그간 주변에서 쉬쉬하던 그의 비겁 행위가 육군본부의 고위층이 다 알아버렸으니 그는 군에 오래 발을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만약 체포되어 연행되어 갔더라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두 가지의 전례가 있다.

 6ㆍ25중에 비겁한 전선 이탈자 중에 최고 계급자들은 포병 사령관을 역임했었던 장은산 대령과 6ㆍ25 발발직전 김포지구위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계인주 대령이 있다.

 인사에 불만을 품었던 계인주 대령은 북한군이 김포 반도로 몰려들자 탈영을 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일본으로 밀항할 배편을 알아보다가 헌병대에 체포되고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대구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형을 기다리던 그에게 믿기 힘든 행운이 찾아왔다.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KLO 부대 최 규봉 씨가 국군 정보 전문가를 찾던 일본 GHQ 정보 책임자 홀맨스 다커 소장에게 적극 천거해서 그는 살아남았다. KLO 부대는 그를 형무소에서 우격다짐으로 빼 내와서 일본 GHQ로 데려갔다. 계인주 대령이 사실 인천 상륙작전 정보 수집전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군을 떠난 뒤 일본으로 가서 커피 샾을 운영해서 큰 돈을 벌었고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정착했다. 작고하기 전 자서전을 남겼는데 자기를 홀대하고 장군으로 진급시키지 않은 신성모 장관에 대한 원망을 많이 늘어 놨었다.

 그를 대신해서 김포 지구 방어 부대 지휘관이 되었다가 힘든 중압감을 못 버티고 자결한 우병옥 중령을 생각하면, 계인주 대령의 태도가 조금은 아쉽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장은산 대령은 만주군 출신으로 여러 사람이 김 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를 배후 조종한 장본인들중의 한 명이라고 지목했었다. 그는 부대를 이탈하여 부산으로 가서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였는데, 밀항 희망자들은 돈 많은 부자들과 같이 사회 지도층이 많았다.

 밀항선이 이들을 싣고 바로 일본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두에 정박하면서 더 많은 고객을 기다리느라 며칠을 보내던중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일망타진되었다.

 거창 사건도 저질렀고 경찰로 전신해서 치안 국장이 되었던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이 체포 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체포한 밀항자들을 "이 국적(國賊)놈들!" 하며 구타했었다.

 장은산 대령은 체포 된 뒤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처형되었다.[처형을 기다리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다.]

<1949년 처형당한 좌익 반도들-- 총살형이 집행된 뒤에 검찰관으로 짐작되는 장교가 권총으로 확인 사살을 하고 있다. 6ㆍ25전시에 전선 이탈자나 적전 비겁자는 대부분 처형되었다. 지휘관이 즉결 처분권을 활용해서 일선에서 사살하기도 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계인주 대령을 보거나 피하지 못하고 총살당한 장은산 대령을 보았을 때 H대위는 틀림없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서 총살당했을 것이다.

 장군 진급 탈락후 그는 수년 후에 군을 떠났다.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처세술이 기막힌 사람이라 계인주 대령처럼 잘 살았으리라고 본다. 출중한(?) 능력을 몰라주고 자신을 장군 진급에서 탈락시킨 군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전장에서 목숨을 던져 국가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호국의 영웅들이 전역후 사회의 거센 물살에 밀려 말년을 쓸쓸하게 보낸 것과 대조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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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 [ 2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6.08 09:36

 

  1952년 12월, 수십 기로 이루어진 전투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김포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인물은 제2차 대전의 전쟁영웅이자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된 인물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였습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6·25전쟁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만일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그 즉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고 이를 실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국군 수도사단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 본토 밖의 최전선을 시찰한 것이 이번이 사상 최초였을 만큼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오성장군으로 연합군최고사령관이었던 인물답게 저돌적으로 전선을 누비면서 일선부대를 방문하여 의견을 듣고 현황을 파악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미 제8군 사령관이자 후배인 밴 플리트에게 놀라운 부탁을 하였습니다.


[(좌에서 우)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제8군 사령부를 찾아 밴 플리트 사령관으로부터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의례적인 질의와 응답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장군, 내 아들 존(John S. D. Eisenhower 1922~)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시 아이젠하워의 외아들도 6·25전쟁에 참전 중이었습니다.  존 아이젠하워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첫째 아들인 다우드가 어려서 병사하여 외아들과 다름없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아들 존과 함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따라서 어쩌면 이 질문은 아버지가 아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존 소령은 미 제3사단 대대장으로 현재 중부전선의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의례적인 대답을 하였는데, 다음에 이어진 아이젠하워의 부탁에 순간 경악하였습니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빼주시겠습니까?”  이번 전쟁에서 외아들을 잃은 밴 플리트가 듣기에는 몹시 거북한 말이었습니다.


[(좌에서 우로 ) 미 제3사단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클라크, 밴 플리트]


  아이젠하워는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장군, 내 아들이 전사한다면 나는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포로가 된다면 적들은 대통령의 아들을 놓고 미국과 흥정하려들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만일 국민들이 국가의 자존심문제라 생각하여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나온다면 차후 작전에 애를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후 작전에 심대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방조치만 요청하는 것입니다.”


[제3사단을 방문하여 아들 존 소령과 면담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의 말을 들은 밴 플리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답하였습니다. “각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존 아이젠하워는 후방의 정보처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고 이후 육군 준장을 거쳐 주벨기에 미 대사까지 부임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부탁은 차기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당선자라는 지위를 남용한 명령이 아니었으며 군 선배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청탁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아이젠하워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야전사령관에게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가 아닌 차후 작전 차질을 우려한 대통령의 입장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당당하게 합리적인 부탁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밴 플리트의 화답도 단지 차기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보신책이 아니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밴 플리트, 이승만 대통령, 아이젠하워]


  6·25전쟁 당시 유엔군 최고 지휘관과 그 아들이 동시에 참전하여 피를 흘린 경우는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휴전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 대장과 그 아들 마크 빌 클라크(Mark Bill Clark) 육군대위의 경우인데, 아들 빌은 금화지구전투에서 중대장으로 복무도중 부상을 당하여 전역하게 되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휴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던 클라크 장군의 아들은 참전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6·25전쟁과 미군의 참전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고위 미군 장성이나 정치인의 자제들이 앞 다투어 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점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대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총 142명의 장성의 아들들이 참전하여 이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들이 참전의사를 밝혔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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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아이 2010.06.08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실감케 하네요. 작전상 방해가 될까봐 대통령이 내린 속깊은 결정도 그렇고, 정치인들의 자제가 대거 전쟁에 참전한 것도 솔직히 놀랍네요. 6.25전쟁 60주년이라는 의미가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는데, 이런 글들을 보면서 새삼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의 한국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요론? 글들 많이 올려주심 참 좋을 것 같네요^^ 좋은 공부가 되네요^^

  2. 박민영 2010.06.20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생각에도 정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 정말 맘에 와닿습니다. 고위직이라고 자기 자식을 하면 충분히 전쟁 현장에 투입못하게 뺄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참전하게 한 것 보면 정말 그리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한국에 존재하게 끔 한국을 지켜주신분들 정말 숙연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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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유엔군을 추격하여 내려온 중공군은 일단 그곳에서 숨을 고르려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

맥아더가 만나 장군 그리고 병사[下]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09 07:55

 

  맥아더가 뜬구름 잡듯이 터무니없는 허언만 남발한 채병덕에게 몹시 실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 아마 맥아더는 채병덕과 면담한 후 일본군의 무모한 옥쇄(玉碎)를 떠올렸을 것이고, 이런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 최고 지휘관인 한국군을 어떻게 도와 전쟁을 하여야 할지 상당히 난감해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맥아더를 감격하게 만들어 6·25전쟁에 적극 참전하도록 결심을 굳혀준 계기가 곧바로 벌어졌습니다.


[총참모장과의 면담에서 실망한 맥아더는 곧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브리핑을 받자마자 맥아더는 한강 남단의 동양맥주공장 (현재 영등포공원 부근) 근처를 시찰하러 나갔는데,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여러 부대들을 모아 급편 된 국군 수도사단 8연대 3대대가 담당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북한군이 발사하는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최전선으로 맥아더가 도착하였을 당시에도 박격포탄이 떨어져 길옆에 있던 차량 1대가 파괴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9일 전선 시찰 당시 동행 한 히긴스 기자]


  이처럼 워낙 여건이 위험하여 주위에서는 맥아더의 시찰을 만류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한강을 직접 시찰하여야겠다며 언덕위로 올라가 전방을 관찰하였습니다. 그의 쌍안경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서울 도심과 끊겨진 한강교량 등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마디로 하루라도 빨리 증원군이 투입되어야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절망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고지에서 한강변을 관찰하던 모습]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루먼 대통령이 참전을 결심하였다는 전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시간이었는데, 미군이 건너올 때까지 한국군이 최대한 공산군의 진격을 막아 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갑부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전력은 한국군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국군의 창군에도 음으로 양으로 관여하였던 맥아더는 당시 국군의 전력이 국내의 치안유지에나 대처할 수 있는 빈약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함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전략도 없이 무조건 옥쇄 운운하는 자가 당시 국군의 최고 수장이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맥아더는 그날 오전의 브리핑과 직접 확인한 전선의 상황만으로 깊은 시름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맥아더의 눈에 개인호 속의 한 병사가 눈을 부릅뜨고 한강변 전방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맥아더는 그에게 다가가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무명 병사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통역을 맡았던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참모장 김종갑(金鍾甲) 대령의 증언입니다.


  이때 (맥아더)원수는 진지를 지키고 있던 일등중사에게 다가가 ‘자네는 언제까지 그 호 속에 있을 것인가?’하고 물었다. 이에 그 중사가 대답하기를 ‘각하!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상관이 철수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여기에 남아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무명 병사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통역을 통해 이 말을 전해들은 맥아더는 몹시 감격해 하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병사의 어깨를 두들기며 ‘내가 곧 도쿄로 돌아가 지원 병력을 보내 줄 테니 나를 믿고 안심하고 싸우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바로 전까지 암담한 상황과 최고 책임자의 무책임한 이야기에 낙담하였던 맥아더는 확고한 의지로 최전선을 지키는 무명 병사와의 만남을 통해 용기를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맥아더가 국군에게 내심 요구한 것은 일단 상황이 나쁘지만 미군의 증원이 있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시간을 벌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경험 많은 그에게 장군 채병덕의 허언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었고, 무명 병사의 진정한 용기만이 대한민국의 저항의지를 뚜렷이 각인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의 참전 결정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회생할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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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itchen Design 2011.10.18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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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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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색이 군인이고 장군이었다면 복무규율은 지킬 줄 알아야죠..."군은 절대 정치에 개입해선 안된다."라고 군인복무규율조항을 넣은 건 박모씨였는데 그걸 어긴 것도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5. Asteroid Stack 2011.11.05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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