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영'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10 79. 용문산의 승전보 (16)
  2. 2010.08.05 68. 굴욕 그리고 그것을 막은 자 (4)
  3. 2010.06.17 북 기만술에 당한 원창현 전투 (7)

79. 용문산의 승전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10 08:41

  하지만 제2연대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사단 및 군단에서 지원된 5개 포병대대의 조명 및 화력지원 하에 중공군의 공격을 맨 앞에서부터 저지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압도적이었던 중공군 일부가 방어선을 돌파하고 제1, 2대대의 진지까지 접근하여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 용사들은 진지 안으로 들어온 중공군과 백병전을 펼쳐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분명히 이런 상황이면 국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았는데, 예측을 벗어난 제2연대의 이러한 용전분투는 중공군이 참전한 후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동쪽의 국군 제3군단은 현리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제 2연대의 용전분투는 중공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제2연대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저항을 계속하자, 중공군은 이곳을 국군 제6사단의 주저항선인 것으로 오판하였습니다. 중공군은 제6사단을 제거하기 위해 5월 19일 새벽부터는 제63군 주력 모두를 이곳에 투입하면서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도영 사단장이 원하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최대한 많은 적들을 끌어 모은 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키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선전을 펼친 제2연대가 좀 더 버텨주어야 했습니다.


  총공세를 감행한 중공군은 08시경 제1대대가 방어중인 559고지를 연대규모로 포위 공격하였으나, 제1대대는 근접항공지원 하에 고지를 고수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공중폭격이 종료되자 중공군 증원부대가 장락산맥 계곡으로 투입되어 제1대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일순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할 제1대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3시간동안 혈전을 펼치면서 5월 19일 15시경, 적의 포위망을 뚫고 연대본진이 있는 나산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동시에 울업산을 방어하던 제2대대는 중공군 제189사단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10배나 많은 적의 공격을 받은 제2대대는 19시경 근접항공지원의 엄호 하에 427고지로 철수를 단행했습니다. 이로써 제2연대의 방어정면은 353고지-나산을 연하는 선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전처럼 무질서한 후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방어 후 예정된 후방 방어진지로 이동한 성공적인 철수였습니다. 제2연대는 이곳에서 방어전을 계속 펼쳐내었고 더 큰 전투가 제2연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문사전투 상황도]


  국군 제6사단을 밀어붙였다고 오판한 중공군 제63군은 20시경 예하 3개 사단 모두를 투입하여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이때부터 제1대대는 나산에서, 제3대대는 353고지에서, 제2대대는 427고지에서 전면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조명탄을 밝힌 가운데 진내로 접근한 중공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했습니다. 제2연대는 지금까지 어떠한 유엔군 부대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방어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방어진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는 강력한 정신력으로 방어진지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엿보던 장도영 사단장은 현리의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한 미 제8군의 반격명령이 하달되자 용문산 일대의 주 저항선 좌우에 배치되어 있던 제19연대와 제7연대에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들 연대들은 5월 20일 05시에 진지를 박차고 나와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제2연대에 매몰되어 있던 중공군 제63군의 배후를 제19연대와 제7연대가 차단하자 순식간 중공군은 역 포위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유하거나 지원 가능한 모든 화력이 포위망 안에 갇혀 있는 중공군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으로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이었습니다.


  5월 21일 03시경 중공군은 서둘러 북한강 이북으로 철수를,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고 국군 제6사단의 무서운 추격이 개시되었습니다. 북으로 도망가던 중공군 제63군은 화천저수지에 퇴로가 막히게 되었고 이곳에서 국군 제6사단의 맹공을 받으면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국군 제6사단은 불과 한 달 전에 사창리에서 당한 수모를 몇 배 이상 중공군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용문산에서 화천호로 이어진 일련의 전투 결과 3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25,000여 중공군 제63군은 완전히 격멸되었고 이것은 6·25전쟁에서 국군 유엔군을 통틀어 사단급 부대가 단일 전투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공군은 화천호에서 녹아내렸고 이후 파로호로 명칭이 바뀝니다.]


  이 놀라운 승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화천호를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국군 제3군단이 해체될 만큼 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신뢰가 무너지던 바로 그 시점에서 터져 나온 극적인 역전타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국군을 쫓아다니던 중공군에 대한 콤플렉스를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중공군도 더 이상 국군을 얕잡아 보고 국군 방어지역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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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 2010.09.10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몇달째 너무도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2. 오늘도 2010.09.1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보고 감니다

  3. 비도승우 2010.09.22 0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민해방군 아닌 인민훼방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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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아수라와 같은 용맹으로 인해를 이루는 중공군을 격퇴한 국군 6사단의 이야기를 잘 봤습니다. 제 2연대가 잘버텨주어 중공군을 한 곳으로 최대한 끌어 모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킨 전략은 훌륭했습니다. 특히 버텨준 제 2연대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퇴로를 차단당해도 굴복하지 싸우다가 성공적으로 전략적 후퇴를 한 제 1대대 얘기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제 2연대가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가 싸운 모습에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선배 군인들의 용맹한 정신과 임전무퇴의 정신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25000여 중공군을 괴멸시켜 화천호가 파로호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6.25 전쟁의 용문산의 승전보는 보는 내내 참 기분좋았던 글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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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68. 굴욕 그리고 그것을 막은 자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05 08:09

  나름대로 서부전선에서 선방하며 중공군의 제5차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그 시점에 커다란 위기가 중부전선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공세 이전인 4월 22일까지 춘천북방의 사창리-화악산 일대에서 육단리-와수리 방향으로 공격하던 부대는 미 제9군단에 배속된 국군 제6사단이었는데, 군단으로부터 사단 전방에 대규모의 적이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으로 보아 중공군의 대공세가 충분히 예견되는 시점이어서 사단장 장도영(張都暎)은 16시경 공격을 중지하고 부대를 방어태세로 전환시켰습니다. 더불어 사단 좌측의 미 제24사단과 우측의 미 제1해병사단도 공격을 방어로 전환하며 진지구축에 들어갔습니다.


[중공군의 공세가 예견되자 방어태세로 바꾸었습니다.]


  이들 앞에 등장한 적군은 중공군 제9병단이었는데, 이들은 화천-가평 축선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중동부의 미 제9군단과 서부의 미 제1군단의 연결을 끓어 서울을 공격하는 주공부대(제19, 3병단)의 동 측방을 엄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가 서울 재 함락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조공에 해당되던 부대였습니다. 그런데 서부전선에서 국군 제1사단과 미 제3사단의 분전에 막혀 중공군 주력이 남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오히려 조공이었던 중공군 제9병단이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내어 전선전체에 커다란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미군의 화력을 겁내 사창리에 집결한 국군 제6사단 지역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만일 이곳을 뚫어버리면 양측에 있던 미 제24사단과 미 제1해병사단의 후퇴도 자연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4월 22일 17시경, 중공군은 정면공격과 병행하여 부대 간격으로 침투해 국군 제6사단의 후방지역을 차단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좌전방 제19연대는 순식간 적중에 고립되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우전방 제2연대와 예비인 제7연대는 겁에 질려 차량 및 장비를 포기한 채 분산 철수하였는데, 갑작스런 제6사단의 후퇴로 말미암아 후방에서 사단을 지원하던 미군 포병들도 순식간 중공군에게 포위당하여 다수의 화포를 유기한 상태로 철수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제6사단은 항공기와 포병의 지원으로 중공군의 공격을 둔화시키면서 화악산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나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그날 밤 중공군의 공격에 의해 또다시 돌파되었습니다. 결국 4월 25일에 제6사단이 긴급 배치된 영연방 제27여단의 엄호 하에 가평일대로 철수를 완료하였을 때 집결한 병력은 후퇴 이전 정원의 60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6,313명이었습니다. 이들의 무질서한 후퇴는 주변 미군들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국군에 대한 신뢰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국군방어선이 돌파당하여 후방 미군지원부대까지 위협을 받았습니다.]


  사창리에서 제6사단이 조기에 붕괴되었던 것은 하급제대의 지휘관 및 참모들의 지휘통솔 및 전투능력 부족과, 하사관들의 사기 저하 등에 기인 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명을 내려도 통하지 않던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제6사단의 문제가 아니라 1951년 중반까지 한국군 전체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하였습니다. 6·25전쟁 초기의 병력은 낙동강까지 밀려가면서 소진이 되었고 그 이후 징집된 병력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체 북진에 나섰지만,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도 없이 단지 걸어 다니기만 하였던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국군 제6사단을 격파한 중공군은 23일과 24일, 가평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서부전선과의 연결고리인 서울-춘천간의 도로를 차단하려 했습니다. 서부전선에서 막힌 중공군의 제5차 대공세가 엉뚱한 곳에서 성공하려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긴급 투입되어 가평에 진지를 구축하고 강력히 저항에 나선 영연방 제27여단에 가로 막혔습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병사들로 구성 된 영연방 제27여단은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치고 가평을 사수하는 기적을 만들었고 중공군의 제5차 공세는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2월 지평리에서 미 제2사단 23연대가 중공군의 제4차 공세를 좌절시킨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가평의 전설을 만든 영연방 제27연대 소속의 뉴질랜드 포병대 ]


  그런데 이것은 이후 중공군이 제6차 공세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힌트가 되었습니다. 추후 공세는 미군이나 유엔군이 담당하는 전선이 아닌 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곳으로 하여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공세에서 국군 제1사단이 나름대로 분전하였지만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공세에서 중공군이 위세를 떨쳤던 것은 아쉽게도 주로 국군이 담당하던 전선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유엔군이 구멍을 틀어막아 위기를 해소하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렇다면 다음 중공군의 공세는 국군들이 담당하고 있는 곳으로 예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굴욕적인 역사지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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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0.08.05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만보면 6사단은 참...대실패와 대승리를 오가는군요. 사단이 와해될정도의 피해를 입었다가도 3개사단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지를 않나..파란만장하고도 드라마틱한 사단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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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기만술에 당한 원창현 전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6.17 09:03

               


남침하는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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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이 사단이 세계에서도 알아줄만한

독특한 기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6·25전쟁 중 6사단은 대승과 대패를 번갈아 왔다갔다하는

극과 극의 전투를 해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풍운의 사단이라고 할만하다.


고른 승리를 기록했던 1사단과도 비교되지만

중공군과의 주요 전투에서 매번 패배를 맛보아 조롱 받던

모 사단과도 극명하게 대조되는 ‘개성 있는 이력’의 사단이다.


6사단은 패주하던 북한군을 추격하여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

물을 마시는 환희의 승리도 맛보았지만 불과 며칠 뒤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중에 중공군 야간 공격에
산하 7연대가
산산조각이나는 붕괴의 패배를 맛보았다.


그 뒤 중공군의 5차 전역, 즉 1951년도 춘계 대공세 때

6사단은 사창리에서 압도적인 적 병력의 공세에 패주했다.


장도영 사단장이 미군 사령관에게 ‘당신 싸울 줄아나?’

하고 경멸 섞인 조롱을 당했다는 일화를 남긴 패주였다.



용문산 전투의 6사단장. 장도영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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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6사단은 심기일전해서 한 달 뒤 용문산 전투에서

무섭게 선전해서 군단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했다.


유명한 용문산 대첩이다.


이 6사단이 6·25전쟁 초기 춘천 방면의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해서

한국군의 체면을 세워준 공훈을 국민들이 알아주고 있다.


그러나 풍운아 6사단의 춘천 승리는 역시 어이없는

패배로 연결되었다.


전사에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전투이지만
6사단이
가진 풍운아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춘천 전선에서도 잘 싸우고도 육본의 지시로 내키지 않은

후퇴를 하던 6사단 7연대가 춘천 남방 원창현[고개]에서 성공적인

매복 공격중의 막판에 북한 1개 중대가 부린 기만적 반격에

대대 병력이 어이없이 패주했던 전투를 소개한다.



춘천 전투의 6사단장, 김종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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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 7연대[연대장 임부택]는 6월 28일 명에 의해서 철수하면서
예하
김 종수 소령의 2대대를 후위로서 춘천 남방 원창현 마루턱에

배치했다.


원창현 고개 마루는  당시 춘천 분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해발

600 미터의 고지였다.


양쪽의 산은 별로 험하지 않았지만 민둥산 많았던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도 잡목림(雜木林)으로 덮여 있었다.


그래서 김 종수 대대는 매복한 진지를 용이하게 은폐 시킬 수가 있었다.


춘천 방향에서 고개로 올라오는 길은 구불구불해서 기습하기에

아주 좋은 지형이었다.


오후 두 시 경 멀리서부터 적의 대부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긴 장사진(長蛇陣)이었다.

병력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거의 2개 연대에 달하는 것으로 보였다.


잠복한 부대원은 적의 선두가 300 미터 내로 접근 할 때까지 대기했다.


7연대는 사실 6사단의 다른 연대들이 내침한 북한군을 맞받아치며

분전하는 동안 춘천 남쪽의 석사리에서 북한군 2 사단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아직 큰 전투를 해보지는 못했었다.


각 부대원들은 우리는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철수만

하고 있느냐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던 터였다.


대대장은 드디어 적에게 일제 사격을 명하였다.

대대 장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격렬한 화력을 고개 마루

아래 접근로의 북한군에게  퍼부었다.


북한군은 지형상 어디로 도피할 수도 없고 후퇴 할 수도 없었던

터라 속절없이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북한군이 공격으로 옮기는
기미가 보였으므로 한층 치열한 사격을 가하자 선두의 적들은
백기를 흔들었다.


백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북한 병사들이 모두 손수건이나 수건 같은 것을 꺼내서 흔들었다.

김 종수 대대장은 적이 투항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1개 대대가 적 2개 연대를 포로로 잡는 순간이었다.

부대원들은 환호하며 모두 참호 밖으로 나와서 포로를

영접[?]할 준비를 하였다.


투항하는 북한군은 한 손에 따발총을 다른 손에 태극기를 들고

두 손을 올리고 고개에서 환호하는 국군에게 다가왔다.

병력은 약 1 개 중대 규모였다.



따발총
------


김종수 대대장은 투항하는 적병 중에 대대장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장[?]에 대한 예우로서 연락병을
보내
모셔 오라고[?} 명령했다.

동시에 자신도 마중을 위해서 호에서 나와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웬걸, 만사체념한 듯이 얌전히 걸어오던 북한군들은

느닷없이 함성을 지르고 따발총을 난사하며 돌격해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급습을 당한 국군은 다급히 총을 들어

반격하러 했으나 북한군은 진지까지 난입해서 국군 병사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원체 사생결단하고 덤벼드는 북한군의 공격에 국군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무질서하게 도주했다.


김동수 대대장도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지고 탈출했다.

적 대대장을 모시러 적진으로 갔던 연락병은 첫 일격에

전사했다.


부대는 겨우 후방 사현에 축차 진지를 구축했던 김용배 소령의

1대대 지원을 받아 한숨을 돌리고 재편성을 했다.


이 북한군의 악랄하기로 유명했던 최 현[전 국방상]이 지휘하던

북한군 2사단 병력으로서 홍천을 점령하고 이어 수원 쪽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북 2사단은 남하하는 105전차 여단에 앞서 수원에 진출,
국군을 포위하려고 시도 기동 중 6사단의 7연대 2대대와
격돌하였다.
------------------------------------------------


그러나 이 부대는 비록 기만전술로서 사지(死地)에서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원창현에서 김종수 대대에게 큰 타격을 받고 원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가평 방면으로 방향을 변경했다.


젊었던 한국군은 적 기만전술에 경험이 없었기에 급습을
당했던 것이다.


기만전술은 소련군이 독일 군과 싸우면서 구사했던 치사한 교리로서

독일군은 이 비열했던 기만 전술을  알고서도 번번이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북한이 소련에서 배운 남침의 노우하우중 하나다.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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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종수 소령의 2대대는 역시 6사단 대대답게 며칠 뒤

충북 진천의 동락리에서 적 1개 연대를 전멸시키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극과 극을 오가던 6사단의 풍운의 전력은 전쟁 초기부터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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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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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레아 2010.06.17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전쟁에서의 국군사단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 6사단....저 또한 6사단 출신임에도 군에 가기전까지 1, 3, 5, 7, 9사단은 알았어도 6사단은 몰랐었죠. 한국전쟁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2. 원창... 2010.06.18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창고개 쪽에 군견대가 있지 않나요? 군견훈련 당시에 2주동안 파견나간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주워들은 얘기로는 원창고개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어지는 최후의 요지라고 하더군요. 원창고개를 빼앗기면 곧장 춘천은 물론 가평 방면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부근에 군부대도 많고 야트마한 산지임에도 작은 부대들이 산재해 있더군요. 민간인들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위장되어 있는... 뒤로는 공군부대가 주둔하는 대룡산이 있고요.

  3. janghoseo 2010.06.21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독님 블로그에 이어 이곳에도 들러 댓글을 남겨봅니다.

    당시 대대장의 가중 큰 과오는 백기를 들고 오는 적에게 무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지 않고 20m 전방까지 접근시켰다는 점입니다.. 개인이나 부대를 막론하고 투항의 첫째 조건이 '무장해제' 임을 간과한 거죠.

  4. 태풍 2010.10.30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발총 파파샤넹 (PP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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